책 읽기에 앞서책을 읽기를 정말 싫어하는 나에게 이런 강제성(?)이 조금은 있는 계기가 가을을 맞아 독서를 해야 할 당위성과 필요성을 던져준 듯 하다.참고문헌 중 어떤 책이 읽을 읽어볼까 많이 고민을 하다가 결국 선택은 ‘경영의 신화, 디즈니’로 결정했다. 아마도 디즈니라는 친근한 단어의 효과가 많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영풍문고를 가서 책을 찾아보니 디즈니라는 말과 어울리게도 노란색 표지가 귀여운 느낌을 주었다.처음 막연한 생각으로 어떤 책일까 무척 궁금했다. 하지만 책 앞에 목차를 유심히 들여다보니 “전체적으로 어떤 내용이겠구나”하고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나의 예상은 정확했다. 재미있게 책을 읽었다. 그뿐만 아니라 평소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엔터테인먼트산업의 전체적인 윤곽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몇가지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경영의 신화, 디즈니이 책은 디즈니 형제의 죽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디즈니의 창시자 월트 디즈니가 1966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1971년 10월에 디즈니 월드를 개장한 후 2개월 뒤에는 그의 형 로이 디즈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들은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잠자고 있는 거대한 왕국을 뒤로하고 그렇게 떠났다. 두 형제의 죽음은 디즈니를 곤경에 빠트리기에 충분한 사건이었고 그들의 어두운 유산은 금세 표면으로 드러났다. 창업자인 두 형제간의 대립으로 인해 내부 파벌이 형성되어 있었던 데에다가, 월트의 사후에는 영화제작부문(실사+애니메이션)이 부진을 면치 못했고, 이의 연쇄효과로 테마파크와 호텔사업의 매출 또한 감소함으로써 디즈니는 유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두 형제의 사후 디즈니는 대담한 모험을 시도하기 꺼려하고, 과거의 성공패턴을 답습하다가, 현 상황과의 괴리로 대다수 실패하거나 아예 비즈니스의 기회까지 상실하기 일쑤였다. 이렇게 대 내외 적으로 흔들리던 디즈니는 1977년 커드 워커가 론 미러를 제작부문 최고책임자로 임명하는 것을 발단으로 커다란 격변을 겪게 된다.로이 에드워드가 이사직을 사임한 후 웰즈와 골드는 디즈니 프로덕션을 로이에게 넘겨주기 위한 ‘브레인 트러스트’를 통해 경영진이 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고, 제4차 M&A붐을 혼란 속으로 빠트리고 주식시장과 사채시장을 교란시켰던 장본인 마이클 밀켄이 디즈니를 M&A의 표적으로 주식매점을 통해 기업을 탈취하려 하는데, 1980년대 미국 전역을 휩쓸었던 M&A의 열풍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던 디즈니 앞에 ‘백마의 기사’ 시트바스가 등장해 악의 무리를 무찌르고 디즈니를 구해내게 된다. 소위 Wolf's Target이 되었던 디즈니는, 우연히 이 과정에서 디즈니 프로덕션즈를 친족회사에서 근대적 기업으로 탈피시켰다. 그것은 대기업의 발전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다. 오히려, 이정도 규모의 회사치고는 너무 늦은 일이다. 이 변모야 말로 신생 디즈니 왕국의 탄생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일련의 소동 뒤에 이 왕국을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잠자고 있는 숲 속의 공주님께 키스를 해서 잠에서 깨어나게 해야 한다. 그러나 ‘백마의 기사’ 시트바스는 이 왕자님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야만 했고, 창조적 타입과 경영자 타입, 바로 파라마운트 사장으로 제작자의 길을 걸어온 아이즈너(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와 20세기 폭스사의 최고경영자 스탠필 사이에서 고민을 하게 된다. 아이즈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에서 경력을 쌓아온 인물로, 경영이 기울고 있던 파라마운트를 회생시킨 장본인이다. 스탠필은 경영적인 업무처리 능력이 출중한 관리자형의 인물로써, 제작측과는 거리를 두고 지배하는 경영 스타일을 지닌 인물이다. 결국 결론적으로 디즈니는 창조적 경영자가 필요한 회사이고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으로 중심이 옮겨간다는 점, 그리고 성을 수비하는 것이 아닌 끊임없는 혁신의 정신이 필요하다는 점 등의 주변상황은 결국 아이즈너에게 숲 속의 공주님께 키스를 하게 한다.아이즈너와 카젠버그는 함께 디즈니 프로덕션즈의 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1985년까지 400통 이상의 해고 통지가 발송된다. 해고된 사람의 자리에는 파라마운트 시절의 동료들로 채워졌다. 아이즈너는 업적에 따른 임금조정방식과 스톡옵션으로 구성된 새로운 급여시스템을 도입함과 동시에 경영수뇌들에게 성과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을 보장했다. 이로써 아이즈너 휘하의 ‘팀 디즈니’로 불리는 우수한 인재들의 간부집단을 형성하게 된다. 더불어, 아이즈너와 카젠버그는 디즈니 재생책의 제 1보로 광고 캠페인을 활용한 테마파크 입장료 인상 전략에 성공, 여기에 그치지 않고 호텔 매리엇의 게일리 윌슨을 영입함으로써 호텔사업도 확장시킨다. 또한, 외부 투자자본과의 합작을 통한 영화제작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침체일변도를 걷던 디즈니 영화에 새 바람을 불어넣는다.팀 디즈니는 많은 성공을 거뒀지만 실질적인 사업 부문에 대한 노선 전쟁과 기득권인 경영층과 실제적인 제작 부문 중역들의 신뢰감소 및 갈등으로 디즈니는 새로운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른 바 ‘팀 디즈니의 붕괴’이다. 1985년, 팀 디즈니의 한계를 인식하고 인재획득 작전에 나섬에도 불구하고 1988년, 제작확대 노선이 막다른 길에 봉착하고, 1990년대에 들어 노선전쟁과 계급투쟁으로 중역교체와 불만이 증가했다. 거기에다가 카젠버그와 아이즈너의 갈등으로 카젠버그가 디즈니를 떠나감으로써 90년대 초부터 시작된 ‘팀 디즈니의 붕괴’가 가시화되기 시작했다.아이즈너는 일어난 사건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서 일을 성공시키는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주었다. 혼란속에서 만든 독제체제에 의거한 지도력으로 디즈니사를 단숨에 미디어 제국으로 변신시켰다. 때는 바야흐로 나날이 고도로 정보화되어가는 시절. 케이블, 위성방송이 가입자 확보를 위한 컨텐츠를 필요로 하던 때, 아이즈너는 지상파 네트워크 인수를 통한 이익극대화를 추진한다. 또한 이는 때마침 신디케이션 사업에 대한 법률이 완화됨으로써 더욱 가속화 되었다. 그리고 결국엔 ABC를 매수하게 되는데, 이는 사업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경영권 방어용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인수였다. ABC 매수 후 아이즈너 회장은 경영조직을 변경, 인원배치 전환을 모색하고 또 CAA의 마이클 오비츠를 ‘마법의 왕국’ 넘버 투의 자리로 영입한다. 이로써 디즈니 제국은 그야말로 방송, 테마파크, 창조적 컨텐츠를 두루 보유한 미디어 제국으로 변신을 마치게 된다.엔터테인먼트 왕국에서 미디어 제국으로 변신은 성공했지만 최근의 디즈니 사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부상하고 있다. 1999년도의 총수입은 234억 달러로 전년대비 +2%이고 영업이익은 -21%인 32억 달러로 떨어졌다. 그리고 모두가 사라졌다. 과거의 ‘팀 디즈니’에는 있었던 인재가 사라졌다. 카젠버그나 오비츠 이후에 간부들의 퇴사가 줄을 이었다. 그리고 간부들의 아이즈너 독재체제에 대한 불만은 날이 갈수록 높아져만 갔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2류 배우들을 이용한 수익 극대화 전략에 대한 불만, 고용배우들에 대한 수익중심의 불성실함, 디즈니의 동업자들에 대한 부당한 계약관계 형성 등으로 기업 이미지의 실추 또한 눈에 띄게 드러났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카젠버그가 이끄는 드림웍스가 애니메이션 시장을 위협하고 나서는 등 새로운 라이벌들이 등장하고, 소비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독점행위에 대한 불허방침이 떨어지면서 디즈니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충분한 대비가 필요할 것이다.디즈니의 성공요인여기까지가 이 책(경영의 신화, 디즈니)에 나오는 주된 내용이다. 사실 이 책은 월트 디즈니의 회장 ‘아이즈너’의 일대기를 쓴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과연 지금 2005년에도 아이즈너가 회장직에 그대로 있을까라고.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 본 결과 2003년에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회장직에서 물러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이 책을 통해 디즈니가 성공을 거둘 수 있게 된 몇 가지 요인을 나름대로 요약해보고자 한다.첫째, 84년의 최고 경영자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아이즈너를 선택했던 점이다.아이즈너가 회장으로 임명되기 전의 디즈니사는 점차 수익이 줄어들고 기존의 핵심 분야였던 엔터테인먼트 산업보다는 부동산 운용에 치우져진 운영을 하고 있었다.만약 이때 아이즈너가 아닌 ‘스탠필’을 회장에 임명했다면 지금쯤 디즈니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경영의 첫 원칙. 기업은 수익을 내야한다는 포커스에 맞춰 창업 당시 월트 디즈니 본래의 모습을 상실했을지도 모른다.
갈등이란 무엇인가━━━━━━━━━━━━━민주주의의 발전은 전쟁의 종식을 불러왔고 그 대신 대화를 통한 갈등의 해결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켰다. 따라서 현대에서는 갈등의 해결을 위한 대화의 기술 즉 토론의 기술이 절대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한정된 자원 속에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남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국내의 갈등 상황을 살펴보면 사회적으로는 세대간의 갈등, 정치적으로는 지역주의 갈등, 경제적으로는 계층간의 갈등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의 해결을 위한 토론의 문화가 성립되어 있다면 이는 국내 민주주의 발전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국내의 토론 문화에 대해 생각해 보면 위의 갈등들은 국론 분열의 소지를 안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토론에서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이고 평화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자신의 주장을 돌아보고 상대방의 주장을 수용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에서의 토론은 서로의 의견에 대한 반발심만 높아지고 결국 대립의 양상이 심화되는 결과를 야기 시킨다. 그럼 올바른 토론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우선 토론의 전제조건중 하나인 갈등 에 대해서 알아보자. 갈등의 개념에 대한 학자들의 정의를 살펴보면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다른 사람이나 집단과의 상호 작용이나 활동으로 상대적 손실을 지각한 결과, 대립ㆍ다툼ㆍ적대감이 발생하는 행동의 한 형태 -리터러(J.Litterer), 상대방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 치는 행동을 하리라고 개인이나 집단이 지각할 때 발생하는 조직행동의 과정 -그린버그&배런(Greenberg&Baron) 등이 있다. 이러한 갈등의 원인 에는 상충되는 목적추구로 인한 승패의 상황, 제한된 자원의 획득과 사용에 의한 경쟁, 지위부조화, 지각의 차이, 불균형적인 종속, 보상의 차이 등이 있다. 이러한 원인에 의해서 일어나는 갈등은 여러 분야에서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또 하나의 문제점은 전통적인 관점에관한 입장에 있는 제3자를 중재자나 토론진행자로 두고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 이는 경영에서 고문 의 필요성과 같다.현재 TV에서 나오는 토론 프로그램을 보면 사회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전문가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나와서 토론을 한다. 하지만 그분들의 토론과정을 살펴보면 전혀 토론을 하고 있는 모습이 아니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가 급급하다. 또한 갈등관계에 있으면서도 민감한 주제에 관련된 직접적 이해당사자들이 출연을 거부하고, 주로 힘 있는 쪽, 기득권 세력은 특히 참가를 꺼리고 있다. 안티조선에 대한 토론프로그램에서 조선일보 측 토론참여자가 없다든지, 프로야구 선수협 논쟁 때 구단주 측이나 KBO측이 나오지 않는다든지 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이러한 현 주소에서 토론문화의 성숙이나 발달을 꿈꾸기란 매우 힘들다.올바른 토론문화의 정착을 위해서는 위의 제도적인 장치도 필요하지만 제일 우선적인 것은 토론에 대한 의식이 개혁이다. 갈등을 갈등이 아닌 경쟁으로 보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닌 자연스러운 인간의 생활과정으로 파악해야 한다. 또한 교육을 통한 논리적인 사고구조의 정립과 토론문화의 조기 경험 등이 필요하다. 이것이 갈등 관계자들이 서로 이기고 나아가서 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고 할 것이다.계층갈등의 원인과 해결책━━━━━━━━━━━━━━━━━━1. 서론계층갈등은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으며 사회가 발전할수록 심화되었던 사회적 갈등이며 그렇기에 고도의 현대사회인 현재에 있어서도 중요한 문제이다. 다른 계층의 사람들 간의 갈등은 좀처럼 해결하기 어려우며 우리나라의 경우 그 양상이 더욱 복잡하고 그런 만큼 명쾌한 해답을 찾기가 어렵다. 그럼 지금부터 계층갈등의 배경과 원인, 특징, 그리고 그 해결방안에 대해 고찰해 보기로 하겠다.2. 계층갈등의 발생배경과 특징. 계층의 정의와 사회 계층의 발생 배경계층이란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층을 말하며 좀더 구체적으로 사회계층이란P.A. 소로킨이 사회계급과 구별하기 위해 만든 용어로 소로킨에 의하면 개인이나 집단은 부나층이나 중산층의 갈등과 같은 갈등들이 존 재한다.그 중에서도 우리나라의 갈등은 그 구조가 서구 사회보다 조금 더 복잡하다. 현 대의 이데올로기인 민주주의와 경제 체제인 자본주의는 원래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서구사회에서 온 것으로 발생지인 서구에서는 오랜 시일에 걸쳐 분쟁과 타협의 과정을 겪으며 정착되었지만 우리나라가 자본주의 제도 아래서 경제, 사회 발전을 이룬 것은 불과 20~30년 간의 짧은 기간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직 그 부작용이 해결되긴 커녕 빠른 공업화로 인해 불안정한 사회에서 그것이 가시화되어 정착단 계의 진통을 겪고 있는 수준이고, 또한 사회의 구조화도 미숙하여 아직 분명한 틀이 형성된 것도 아니기에 그러하다. 여기에 우리의 정치, 경제 지도자들은 국민 들에게 정경유착이라는 좋지 않은 이미지를 뗄 수 없으며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상류층에 대한 도덕적 불신을 유발하는 커다란 요인 중의 하나이다. 다른 요인로는 정치인들의 사적 이윤추구 행위와 오랜 권위주의의 전통으로 인해 정치권력과 일반 대중이 유리되어 있다는 인식, 그리고 경제인들의 이윤추구 방식이 정당하지만은 않다는 인식이 만연한 것도 있다.흔히 우리 사회의 상류층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서구 사회와는 다른 점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노블리스 오블리제 를 든다.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로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되었는데 근대와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도덕 의식은 계층간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이러한 도덕의식이 뿌리깊이 정착할 수 있었던 배경은 로마 이후 중세의 봉건 영주들이 국왕과 계약 관계를 맺고 봉토를 받는 대신 세금을 내고 전쟁에 나가 솔선수범해 영민들을 통합해 싸웠고 또한 그들을 보호할 의무와 권리에 대한 책임감이 굳게 자리잡게 되었으며 그러한 의식은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함께 해왔던 것이다. 때문에 중앙집권적이며 유교적 군신관계, 그리고 가부장적인 권위 주의통합과 안정에 근본적이고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 착안해 중산층을 기초로 한 연대의식과 우리 민족 전체의 동질감을 토대로 계층 갈등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상류층에 대해서도 사회 지도층 이라는 책임감에서 비롯되는, 그리고 우리 고유의 유교문화의 특성을 살린 새로운 형태의 책임의식이 요구된다. 그리고 사회구조가 개방적인 양상을 띄어야 한다.이것은 개인의 자질과 노력여하에 따라 수직적 신분상승이 가능한 기회가 더욱 확대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이러한 문이 넓은 개방사회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에 따른 갈등요소가 그만큼 완화될 수 있다. 제도적으로도 누진세와 같은 분배성을 반영한 제도를 더욱 강화하고 사회 빈민계급에 대해 더 나은 복지와 고용제도, 더 많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의식개혁으로 우리 나라와 같이 정(情)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경쟁적 의식보다는 공존과 동지의식을 향유하는 것이 가장 절실하다고 생각한다.결국 계층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요구되는 핵심은 모두의 화합이다. 사회 전체가 단합해서 경제발전과 고용창출을 이루고, 그러한 성과를 사회로 돌려 복지를 향상 시키고 더 나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 단순하지만 진리이며, 눈앞의 실천 과제이다. 계층이라는 것은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며 더욱 심화될 것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계층간의 갈등을 원만한 통합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우리에겐 더욱 봉사와 협동적 공존의 가치관이 필요하다고 하겠다.지역갈등의 원인과 해결책━━━━━━━━━━━━━━━━━━Ⅰ. 서론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지역주의 또는 지역 연고주의 등 수많은 갈등을 초래하며 살아왔다. 오랜 시간 민주주의가 성숙되지 못하고 전통적 공동체 의식을 혈연, 지연, 학연 등 각종 우연적 연줄을 타고 사회를 무질서하게 하는 이른바 연고주의의 형태로 온존하고 있다. 물론 어떤 민족이나 전통 사회는 공 동체적 유대를 그 특징으로 하지만 근대화와 서구화를 계기로 서구 선진 사회에 있어서의 근세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만약 이러한 경향이 기성세대 뿐만 아니라 우리세대, 나아가서 우리의 다음세 대까지 계속 해서 나타난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사회 적으로 중대한 의사결정이 지역감정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면 문제를 합리적으로 처리할 수 없게 되고 그 결과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우리가 꼭 이루어야 하는 민족적 과제인 남북통일까지 생각한다면, 지역 감정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더 이상 늦출 수는 없다.Ⅲ. 지역갈등의 원인1) 경제적 원인박정희 정권은 1962년부터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국가주도의 경제개발은 후진국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첩경으로 인식되고 있었고, 또 사실 한국의 경제개발계획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는 평가도 나온 바 있다. 그러나 박정권의 등장과, 그에 따른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추진은 혁명 주도세력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지역간의 불균형 발전을 초래하였고, 따라서 지역감정을 야기시킨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경제 및 지역개발에서의 실질적인 지역간 격차와 그에 따른 호남인들의 소외의 식은 지역갈등 내지는 지역감정의 근거 또는 존재이유 로 기능하였으며, 따라서 감정적이고 의식적인 측면에서의 지역감정 해소 노력을 성공할 수 없도록 하는 걸림돌 역할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호남사람들, 특히 광주·전남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소외의식 내지 피해의식 으로서의 지역감정의 근저에는 지난 30 년간에 걸쳐 이루어진 경제성장의 결실이 지역적으로 균등하게 배분되지 못했 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갈등이나 지역 감정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가장 중요하고도 공통적인 요소가 바로 이 지역간 경제적 격차이다. 이러한 차이에서 지역의식이 싹터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지역 감정으로 발전하였던 것이다.2) 정치·행정적 원인지난 1987년과 1992년의 대통령선거와 12, 13대 국회의원 선거를 보면 지역감정이 정치권에 예상치 못한 결과를 안겨준 반면, 다
{ - -한국사회 계층갈등과 웨슬리적 답변I. 머리말한 사회의 구조적 특성을 사회학적으로 설명하는 기본적인 분석의 틀은 그 사회가 한마디로 통합(integration) 구조인가, 갈등(conflict) 구조인가를 밝히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 구조의 성격을 규명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근거는 그 사회의 계급 혹은 계층 구조의 성격, 그리고 계급간 혹은 계층간의 관계이다. 따라서 한국 사회의 구조적 성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계급(계층) 구조의 성격과 계급(계층) 간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 결정적인 열쇠가 되고 있다.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계층 문제에 있어 전문적인 학자는 물론 보통 사람들에게서도 자주 쓰여지는 말은 계층간의 위화감 , 계급모순 , 계급갈등 이라는 용어들이다. 또한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 사회 과학도들과 학생운동, 노동자운동, 농민운동을 주도하는 제 세력들의 이념적 토대가 되고 있는 근본적인 개념도 계급모순 이라는 개념이다. 급격한 산업화 과정을 겪으며 1인당 GNP가 6천불에 달하는 기적같은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전반적인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점차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는 일반적인 인식이 널리 확산되고 있으나, 다른 한편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하여 계층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다는 인식이 팽배하고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 사회 영역에서 안정을 누리고 있는 지배 특권층을 제외하고는 오늘날 한국 사회를 통합구조로 보는 이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계급문제와 관계되는 한 한국사회는 오히려 계급모순 으로 인한 갈등구조라고 보는 시각이 학계에서도 우세한 것 같다. 그렇다면 계층 갈등의 문제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극복되어야 할 시대적 과제라 하겠다.계급모순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다양한 입장에서 여러 사회 과학도들에 의해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까지는 그 방안이 주로 마르크스주의적인 계급론적 시각에서 제시되어 온 경향이 있었고, 따라서 그것은 주로 이념적 논쟁으로 그치거나 혹은 극단적인 행동을 부추김으로 오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11/ 한편 계층론자들은 중산층을 교육, 소득, 직업, 재산 등의 요인을 적절히 종합한 지표를 통해서 범주화한다. 이들은 중산층이 산업 구조의 고도화와 함께 형성하는 독자적인 사회 집단으로서, 역사적으로 시민 사회의 핵심적 주체가 되어 왔다고 한다. 이와 같이 계층론자는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서 많은 노동자들이 경제 발전과 함께 중산층화(embourgeoisement of working class)함으로써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과거의 부르즈와 중심사회로부터 중산층 사회로 바뀔 것으로 보는데 비해, 계급론자들은 노동자가 중산층화된 것이 아니라 중산층이 프롤레타리아화(proletarianization of middle class)되는 것이라고 본다./12/1. 계급론적 양극화 모델과 그 비판김영모는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이란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뿐이고, 가운데 있는 중산층 범주는 종속적 , 주변적 계층이라고 보고 있다./13/ 구중산층이 감퇴되고 있으며, 신중간층은 독자적인 정치 지향과 능력이 없어 의미있는 사회적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영 농업 인구를 구중산층의 범주에 넣어 농업 인구의 감소를 구중산층의 감소 현상으로 설명하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 서관모도 한국 사회를 자본주의 사회로 규정하고 세 계급범주(자본가, 노동자, 쁘띠 부르즈와)로 설정하고 있으나, 결국은 양극 분해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14/ 즉 한국 사회를 신식민지 종속화의 국가독점 자본주의 사회로 파악하고 있는 그는 중간 제 계층이 양극분해 과정을 거쳐 일부는 자본가 계급으로, 대다수는 프롤레타리아화되며, 그리하여 양극화된 계급구조는 대립구조로 철저화해 간다고 주장한다./15/ 마르크스 도식에 충실하여 서관모는 계급 이론을 변혁이론으로 발전시킨다.노동자 계급은 단순히 기본모순인 계급모순의 체현자인 것이 아니라, 계급모순과민족모순의 통일물로서의 주요모순(제국주의와 독점자본 대 민중간의 모순)의 가장집중적인 체현자, 따라서 가장 주인구가 증가한다면 계층, 계급간에 야기될 지도 모르는 사회적 갈등의 빈도는 따라서 감소할 것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사회적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가정 때문이라고 보면서, 중산층 귀속의식의 증가 역시 정치사회적 안정의 중요한 원인이며 지표라고 지적하고 있다.35/ 실제로 중산층에 대한 계층분석에 있어서 한상진은 중산층이 꾸준히 증가해 왔음을 밝히고 있다. 예컨대 경제적 기준(수입)으로 보면 중산층이 1980년의 53.9%에서 1985년의 59.7%로 증가했고, 경제적 기준과 사회적 기준(직업, 교육, 주택변수)을 종합한 지표에 따라서도 같은 기간에 36.1%에서 41.1%로 중산층이 증가되었다./36/ 중산층 귀속의식도 증가하고 있음은 이미 밝힌 바 있다. 이것은 분명히 중산층이 실재하며, 그 수가 증가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한편 중산층 시민 사회론을 표방하는 김성국도 자본주의 체제에 내재하는 모순(예컨대 부의 불평등과 이에 따른 계급간의 갈등 등)들은 중산층이 주축이 되어서 점진적으로 (즉 비폭력적, 비혁명적으로) 개혁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여기서 규정되는 시민사회란 계급투쟁 대신에 계급적/계층적 공존이 가능한 다원적사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산층이 주축이 된 개혁이라는 말은 중간층이특정사회 내에서 어떤 특권적 내지 지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소득 분배상의 대폭적인 개선을 통하여 노동자, 농어민을 중산층화시켜서 중산층이 사회 세력의 중추가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37/이렇게 그는 과거의 부르즈와 시민사회로부터 중산층 시민사회에로의 변화를 강조한다. (급진적 의미에서의) 민중사회에 대비되는 시민사회는 이처럼 자본주의의 자체수정 능력을 믿고, 서서히 자본주의 혁명(Capitalist Revolution)을 완성한다는 신념에 기초하고 있다고 김성국은 지적하고 있다./38/ 나아가서 그는 부의 불평등한 분배의 원천적 책임은 소수의 지배집단과 그를 둘러싼 특권층에 있는 것이지, 중산층에게까지 그 책임의 소재를 전가하는 것은 지나친-----------------+*금융자산은 예금, 주식, 채권, 보험, 사채의 합계임.**실물자산은 주택, 토지, 자동차 및 기타 재산의 합계임.자료 : 김 대모, 앞글, 27쪽에 따르면 소득 분배보다 자신 분배가 더 불평등하며, 또 자산 중에서는 실물자산보다 금융자산이 불평등도가 더 크다. 이것은 와 에 의하여 크게 뒷받침되고 있다. 총자산의 소유 규모별 분포 (1988)+----------------------------+------------------------+| 소유 규모별 십분위| 점 유 율 (%)|+----------------------------+------------------------+| 1| 0.5|| 2| 1.3|| 3| 2.2|| 4| 3.4|| 5| 4.9|| 6| 6.6|| 7| 9.0|| 8| 12.0|| 9| 17.0|| 10| 43.1|+----------------------------+------------------------+자료 : 권 순원, 소득 분배 문제의 실상과 분배구조의 개선 방향 ,한국개발연구원, 1990.7.14.< 표 5>에 따르면 총 자산에 있어서 상위 10% 계층과 하위 10%계층의 자산 점유율은 각각 43.1%와 0.5%이며, 상위 20%와 하위 20%를 비교하면 각각 60.1%와 1.8%로서 그 불평등도는 소득의 경우보다 훨씬 심한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민유지 소유에 있어서 더욱 심하다 . 민유지의 소득 규모별 분포 (1988)+----------------------------+---------------------+| 소유 규모별 십분위| 점 유 율 (%)|+----------------------------+---------------------+| 1| 0.0|| 2| 0.2|| 3| 0.3|| 4| 0.5|| 5| 1.0|| 6| 1.9|| 7| 3.2|| 8| 5.4|| 9| 10.8|| 10| 76.9|| (상위 5%)| (65.2)|+---------------------- 관리들, 부자가 된 무역상들이 정점에 있었고, 다음에 장인들, 기술공이 있고 그 아래로 빈민들이 있어서 계급의 격차는 현저했다. 특히 하류 민중 계층은 비정규적 노동에 의존하여 비참한 가난 속에서 살았고, 영양실조와 굶주림은 그들의 일상사가 되어 버렸다./54/ 일을 한다 해도 이들은 15시간 이상의 노동과 낮은 임금으로 어려움을 겪은 반면에 고용주들은 끝없는 욕심과 경쟁심으로 그들을 착취하였다. 상류층의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삶에 비해 볼 때 가난한 이들은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 온갖 질병에 시달렸다. 이러한 생활은 도시 빈민이나 농민이나 마찬가지였다.산업혁명으로 제조업과 무역이 신흥 부유층을 만들었고, 이들과 정치가의 결탁으로 상류층의 욕심과 사치는 극에 달했던 반면에 노동자들의 삶은 안전이나 보상은 외면된 채 억압과 착취의 고통을 겪는 삶이었다. 부와 가난의 양극화된 사회, 즉 소수의 지배 계급과 다수의 피지배계급으로 양극화된 사회가 18세기 영국의 사회였다. 이 가운데 중산층으로 불리워질 수 있는 약간의 쁘띠 브르즈와 계급이 있을 뿐이었다. 경제적 불평등은 곧 사회적 무규범의 상황을 초래하게 되었다. 상류층은 사치와 방탕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고, 소외된 계층들은 한편으로는 희망을 상실한 채 도박, 음주, 폭력 등의 무질서한 삶을 살며 자포자기하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만과 불신이 팽배하여 그 억압 감정이 폭발할 상황이었다./55/ 이렇게 하층 민중들 사이에서는 렉키(Lecky)가 혁명의 가장 위험한 징후 (the most dangerous symptoms of revolution)라고 불렀던 상황이 도래하였다./56/ 마르크스적인 용어로 표현하자면 양극화된 계급 갈등이 계급 투쟁과 혁명을 초래할만큼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그러나 영국교회는 이러한 시대적 위기 상황에서 신앙의 열정도 없었고 오히려 상류층의 노동자 계급 착취에 동조했으며, 성직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버리고 가진 자들 편에서 자기 방어에 급급했다./57/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