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리(Charles Horton Cooley, 1864 ~ 1929)1. 생애1864년 남북전투 직후 미시간 주의 안아바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미시간 대학 법률학 교수 였다. 그는 미시간 대학에서 공부했으나 몸이 약해서 재학기간이 길었으며 1887년 대학을 졸업하고 그 후 1년 동안 기계학을 공부하였다. 그 후 베이시에서 제봉사 일을 하고 있는 동안 경제학에 관심을 갖게 되어 대학에 복귀하였으나 3개월 후 Civil Service Commission의 일로 워싱턴에 가게 되어 그곳에서 2년 동안 있었다. 1892년 미시간 대학으로 돌아와 1895년까지 정치학의 조수를 하였고 1894년 미시간 대학에서 사회학을 부과목으로 하여 경제학으로 Ph.D. 학위를 얻었다. 1904년까지 경제학의 조교수로 있다가 그 후 사회학 교수로 죽을 때까지 조직에 있었고 1918년 미국 사회학회 회장을 지냈다.2. 저서「인간성과 사회질서」(1956)는 인간과 상호작용을 통해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을 주로 다루었다. 그는 자아 개념은 어떤 사람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상상함으로써 형성되는 것으로 보았으며 이 정신은 사회적인 것이며 사회는 정신의 구조물이라는 기본적인 이론을 개진했다.「사회조직론」(1909)에서 쿨리는 자신의 심리적 관점의 객관적 결과를 다루었다. 동의, 자유와 같은 요소를 포함한 사회의 도덕적 합일이라는 이상은 가족이나 이웃 또는 어린이들과 같은 1차 집단의 직접적인 관계에서 파생된다고 여겼다.「사회과정」(1968)은 다윈의 이론인 적자생존과 적응이라는 원리를 집단에 적용했는데 100주년 기념 강의 모음집이 출간되었다.3. 사상의 특징쿨리는 몸이 약하고, 귀가 좀 멀고 언어 장애로 강의는 대학생에겐 인기가 없었으며 대학원생에게는 평판이 좋았다. 그의 신체적 여건으로 사색적인 사람이 되어 그의 독서는 사회학 분야만이 아닌 여러 분야에 걸쳐 있었으며 유럽과 미국의 여러 학자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그가 사회학을 발을 들여 넣는 것은 기딩스 표, 감동, 성격, 친구 등에 대한 생각을 가지며 그것으로부터 다양하게 영향을 받는다.”또 쿨리는 데카르트적 전통인 인식하고 사고하는 주체와 외부세계를 엄격히 구분해 오던 전통에 반대하여 사회세계의 대상을 주체의 정신 및 자아를 형성하는 구성요소로 생각했다. 쿨리는 데카르트적 사고가 만들어 놓은 개인과 사회간의 개념적 장벽을 제거하고 그들 간의 상호교류를 강조했다. 쿨리는 말하기를 “사회와 개인은 서로 상이한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동일한 것에 대한 집합적 측면과 분산적 측면을 가리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쿨리는 한 사람의 자아는 다른 사람과의 교제 속에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자아는 처음에는 개인적이다가 나중에 사회적이 되는 것이 아닌 교제를 통해 변증법적으로 성장하는 것이기에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은 그가 다른 사람들의 정신에 다 귀속시키는 자기 자신에 대한 관련이 반영된 것으로서 고립된 자아라는 것은 없다. “당신, 그이, 그들이라는 의식과 관련되지 않은 ..... 나의 의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쿨리는 자아의 반영적 성격을 나타내기 위해 거울에다 비유하였다. “우리 모두는 서로를 비추는 상대방에 대한 하나의 거울” 즉 우리가 거울 속에서 얼굴과 몸매나 옷 모양을 보면서 그것이 우리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관심을 갖기도 하고 그 속에 비추인 자신의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기도 하는 것처럼 상상 속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그려 보고 그것을 통해 우리의 모습과 태도, 목적, 행위, 성격, 친구 등을 파악하게 되고 그것에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그래서 영상자아의 세 개의 기본적 요소는다른 사람에 비추인 자신의 모습에 대한 상상, 그 모습에 대해 타인이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에 대한 상상, 남들의 판단을 상상한 결과로 우리는 자부심이나 굴욕과 같은 일종의 자아감정이 발전된다.사람들이 타인의 몸짓에 대한 영상으로 그들 스스로를 볼 때, 그들은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을 상상하고, 타자의 판단을 알아채며 스스로에 대것이 상호적 행위로 짜여진 거대한 직물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유기적 사회관은 쿨리로 하여금 고전경제학과 스펜서의 사회학을 기초로 이루고 있던 공리주의적 개인주의에 대해 반대하도록 하였다. 미국과 영국에는 개인주의적 전통이 너무나 강하여 전형적인 사회를 직접 접하도록 하는 것은 거의 없고 어떤 분산적 공식, 최대다수의 최대행복과 같도록 하는 것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공식은 인간본성에는 적절한 것이 되지 못한다. 전형적인 사회는 직접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유기적 전체이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상상에 일치되기 위해서는 그렇게 파악될 것이 요구되고 있다. 계속해서 “우리의 생활은 모두가 하나의 인간적 통합체이며 그것에 대한 어떤 실질적 지식을 얻고자 하면 반드시 그렇게 다루어야 한다. 만약에 그것을 잘게 나누어 버리면 그 과정에서 생명을 잃게 될 것이다”고 하였다.3) 원초적 집단 = 제 1차 집단 개념이런 사회생활의 전체성에 대한 강조는 주로 인간과 사회를 연결시키고 개인을 사회적 틀 속에 통합시키는 데 기본적인 것이라 여긴 인간집단에 분석의 초점을 기울이도록 했다.1차 집단이란 친근한 대면이 이루어지는 모임이나 협동으로 특징지어지는 집단을 의미. 그것을 일차적이라 하는 데는 여러 면이 있지만 특히 그것들이 개개인의 사회적 성격과 현상을 형성하는 데 기본적이라는 점에 그러하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친밀한 모임의 결과는 개개인을 하나의 공통된 전체에 융합시키는 것이며 따라서 개인의 자아 자체가 최소한의 여러 목적을 위해 집단의 공동생활의 목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차적 집단의 친밀한 모임의 성격이 가장 완전하게 발전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집단은 가족, 어린이들의 놀이집단, 그리고 이웃 등이다. 이런 모임은 인간적 협동이나 친교를 생성시키는 보편적인 기반이라고 말한다. 1차집단내에서 나타나는 개인의 몸짓에 관한 영상은 자아감저의 출현과 유지에 가장 중요한 것이다. 더욱이 개인과 사회의 터 큰 제도조직과 연결고리는 바로 이 집단들여지니 이유는 그녀가 그 일을 집합체에 대한 봉사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남편이나 아내, 부모와 자녀, 친척과 친구 등은 그들의 자기이익이 자기가 속한 1차 집단에의 업무를 저해하는 것이 될 때에는 기꺼이 그것을 희생시킨다. 그들은 서로서로를 도구적 각도에서가 아닌 내면적인 특성에 기초하여 보고 있는 것이다. 즉 1차 집단은 전체 및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타자에 대한 헌신이 자기이익의 극대화를 압도하고 있는 영역을 말한다.콜리에게 영상자아의 개념과 1차 집단의 관념이 밀접하게 얽혀져 있으니 타자의 사상에 대한 모성애 - 쿨리가 성인을 나타내는 지표로 간주하였던 타자의 태도, 가치, 판단 등에 대한 반응성 - 는 1차 집단의 가깝고 친밀한 상호작용 속에서만 배양되고 자라날 수가 있다는 것이며 이 집단은 특별히 인간적 성장이 일어나는 산지이다. 1차 집단 속에서 성숙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이던 사람이 점차 타자의 요구나 바람에 물이 들고 성숙한 사회생활을 주고받는 과정에 자신을 맞추어 나가게 된다. 그래서 점차 확대됨으로서 1차 집단의 현상이 가족에서 지역공동체로 국가에로 그리고 세계 공동체로 퍼져 나가는 것이 내포된다는 생각에 기초하고 있었다. 이에 미드는 쿨리의 사회사상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가 속해 있던 미국의 공동체에 대한 설명이며 그것의 정상적이고 건강한 과정을 전제하고 있다고 말한다.그러나 미드는 자아의 구성에 대한 쿨리의 지나친 정신적 견해를 비판했으나 마음과 외부적 사회세계와의 데카르트적 분리를 극복하는데 성공한 사람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사실에는 부정한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쿨 리가 확신하고 또 정립하고자 했던 인간과 사회, 자아와 타자의 뗄 수 없는 하나의 유기체에 연결되어 있어서 개인의 사회생활의 특질이나 친구와의 관계의 특질 등이 그의 인격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는 생각이었다.4) 사회학 방법이러한 실질인 관심 외에도 쿨리는 사회학 방법에도 매우 중요한 공헌을 남겼다. 막스 베버와 관련성은 없지만 거의 동시대에 살면서 그들은 인간행위에 대한 연구는하였고 그러한 의미는 부분적으로 이해를 통해서 연구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5) 사회학 과정쿨리는 사회구조에 대해서 비교적 말한 바가 적다. 그의 유기적 견해 속에서 사회생활은 하나의 이음매 없는 망으로 간주되었고 구조적 변수에 대해서 별다른 언급이 없다. 그러나 사회적 과정에 대해 볼 때 그는 날카로운 관찰자이자 분석가였다. 그에게 사회는 구성행위자들과 하위집단간의 의사전달 망으로 이루어 졌다고 한다. 그래서 의사전달과정, 특히 여론 속에 나타나는 그것의 구현은 사회적 연대를 공고히 하고 합의를 뒷받침해 준다. 여론을 하나의 유기적 과정으로 보았고 단순히 시사적인 어떤 문제에 대한 동의상태로 보지 않았다. 그것은 분리된 개개인의 판단이 모인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라 하나의 조직이며 의사전달과 상호영향의 협동적 산물이다. 즉 여론은 동의를 전제하고서야 나타나는 것이 아닌 개별적 의견들 간의 상호작용 - 의사전달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생각들 간의 충돌 -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반드시 동의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으며 주의와 토론에서 나타나는 사고의 원숙함과 안정성이다. 대상적 안정과 구별되는 성숙한 여론은 논쟁에서 나타난다. 이것은 대립된 사상경향들 간의 교제를 통해 창조가 되는 것이다. 즉 하나의 공통된 준거틀이 주어진 후에는 여론은 논쟁이나 지적 대립을 통해 세련화되는 불일치의 상호작용의 산물로 나타나는 것이다.더불어 쿨리의 견해에 의하면 갈등은 그것인 기본적 문제에 대한 기초적 합의가 이루어진 바탕위에서 나타나는 한 건강하고 정상적인 것이다. 그는 특히 민주주의의 장점에 대한 열렬한 옹호자였는데 그 이유는 그가 민주주의를 차이의 탄압을 통해서가 아닌 여론의 광장에서의 과정을 통하여 도덕적 통합체에 도달하게 하는 정부형태로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6) 제도적 분석쿨리는 경제적 가치의 체계를 그 성격상 제도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인간본성과 간접적 관련이 어떠하든 그것들의 직접적 원천은 사회적 메카니즘이다라고 주장한다. 쿨리에게 있어서 시장은 교회나 학교와 았다.
◆ 목차 ◆Ⅰ. 서론1. 월러스틴의 생애2. 종속이론3. 세계체제이론 등장배경4. 자본주의 세계체제론5. 세계체제론과 고전적 맑스주의의 비교Ⅱ. 본론Ⅲ. 결론Ⅳ. 참고문헌Ⅰ. 서론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맥도널드, 코카콜라, 월마트 등과 같은 외국회사 이름들이 너무나 익숙하다. 어쩌면 이러한 회사들이 우리나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이처럼 상품은 더 이상 한 나라 안에서만 판매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상품뿐만 아니라, 문화도 더 이상 한나라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더 이상 한 나라의 영토 안에서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경을 초월하여 경제ㆍ문화 등이 전 세계적으로 형성ㆍ조직ㆍ운영되는 세계화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이번 레포트에서는 이러한 시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상황을 월러스틴은 어떻게 보고 있으며, 그가 주장하고 있는 “세계체제론”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기존학자들이 사회를 바라보는 입장과 다른 신선한 측면이 많이 있다고 하는데 어떠한 것이 있는지 알아보자.Ⅱ. 본론1. 윌러스틴의 생애1930년 9월 28일에 태어난 월러스틴은 그의 모든 학위를 콜 롬비아 대학교에서 받았다.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1959년이었 다. 그 후 이 대학에서 몇 년 일하고, 이어 몬트리올의 맥길 대 학교에서 5년간 시한부 근무를 한 후 1976년에 이르러 빙 햄튼의 뉴욕주립대학에서 사회학교수가 되었다.현재 미국 뉴욕주립대 사회학과 교수이자 같은 대학 부설 「브로델 센터」의 소장을 맡고 있는 등 현재까지 왕성한 학술 활동을 벌이고 있다. 1947년부터 1971년 까지 24년간 컬럼비아대 학에서 학부부터 박사까지 교육을 받았고 이어 교수생활을 하였다. 이 때 칼 폴라니, 찰스 라이트 밀스, 다니엘 벨로부터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 시기는 미국이 주도하는 이른바 자본주의의 황금기로 특히 미국의 핵심도시 뉴욕은 세계생산과 교역, 금융, 국제정치, 문화의 중심지였다. 이렇게 그는 세계문화의 거점인 뉴욕과 서구사회과학의 정점을 이루었던 컬럼비인을 두고 논쟁이 있었다. 소위 발전론자들은 라틴아메리카 자체내의 사회적 근대화의 실패, 특히 경제발전에 중요한 기업가 정신의 부재가 경제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당시 라틴아메리카 경제위원회와 유엔 무역개발회의 등에서 활약하던 일단의 경제민족주의자들은 저발전의 원인이 바로 선진산업국가들에 의한 저개발국의 경제적 수탈을 가능케 하는 여러 가지 불평등한 관계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이들은 왜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한 기타 제3세계 국가들은 예상했던 전후의 경제발전을 이룩하지 못했는가? 왜 유럽과 미국에서 이룩된 경제발전이 제3세계 국가들에게는 불가능한가? 그리고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경제적 침체, 국제수지 적자, 그리고 교역조건의 악화를 초래했는가? 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제3세계의 저발전의 원인을 규명하고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코자 이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을 총칭해서 종속이론가라고 한다.이들은 종속(Dependencia)이란 Dos Santos의 정의처럼 “국가의 경제가 타국가의 발전과 확장에 의해서 조건 지어지며 다른 지배 국가들에 의해 수탈되는 상태”라고 주장하고, 경제의 자주성 상실을 종속현상의 핵심적 문제로 보았다. 어떻게 하면 경제적 자주성을 회복하고 저발전 상태와 종속에서 탈피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이론으로서 뿐만 아니라 실제에 있어서 라틴아메리카의 최대 과제였던 것이다.종속의 개념을 자유주의자들은 상호의존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하고 있지만 이들도 종속관계에서의 지배와 피지배 관계는 힘의 월등한 차이에서 발생하는 만큼 단순히 상호의존의 하나의 변형으로만 볼 수 없다는 점을 시인하고 있다.종속관계는 처음에는 미국과 라틴아메리카의 정치경제적 관계를 축으로 연구되었지만 곧 선진공업국과 제3세계의 저발전 국가간의 전체적인 문제로 확대되었다.3. 세계체제이론 등장배경라틴아메리카의 경제민족주의자들에 의해 발전되어온 종속이론은 중심과 주변관계를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다루지 못하고 주로 국가수준 혹은 특정지역 수준에서 다루었기 때제(world-system)'에 대해서 알아야한다. 세계체제는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즉 지구위에 존재하는 국가들이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누가 세계 흐름을 주도하며 이끌어가고 누가 이에 끌려가는지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월러스틴이 보는 세계 체제의 유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로마, 몽고, 나폴레옹 제국 등 단일한 정치 체제 아래 일사분란하게 통치되었던 세계제국(world.- empire)이 있고 현재의 세계처럼 각 국가가 고유한 정치적/문화적 체제를 갖고 경제를 통해 '느슨하게' 연결된 "세계 경제(world-economy)"라는 또 다른 세계체제의 형태가 있다.로마처럼 오랜 기간 지속된 경우도 있지만, 세계제국을 건설하려 했던 시도들은 대체로 보다 국지적인 범위에서 진행됐고, 또 빠르게 몰락하였다. 본질적으로 이질적인 다양한 사람들을 정치적 강제를 통해 하나의 테두리 안에 묶는 것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그 세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다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세계체제는 '세계 경제' 라고 할 수 있다.(2) 핵심부 - 주변부 - 반 주변부세계체제론의 분석대상은 역사적 세계체제 이다. 이것은 주류 사회과학에서 실종된 시간과 공간을 복원한 것으로, 현실을 지배하는 사회논리들을 충분히 담아낼 수 있을 만큼의 긴 시간과 넓은 공간을 의미한다. 역사적 논의의 방향을 잡기 위해서는 현대의 세계체제 내에서 이루어져 있는 지리적인 국제적 노동 분화를 기술해 주는 월러스틴에 인해 발전된 개념인 핵심부와, 주변부 그리고 반 주변부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기축적 분업은 생산을 핵심부적 제품생산과 주변부적 제품생산으로 양분한다. 핵심부- 주변부를 통해 의미하고 자는 바는 생산과정의 이윤획득 능력의 정도이다. 이윤획득 능력은 독점화의 정도와 직접 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핵심부적 생산과정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준독점에 의해 통제되는 생산과정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변부적 과정 제품생산이 거의 동일한 비율로 섞여 있는 경우가 있는 데 이런 국가들을 반 주변부적 국가라고 부를 수 있다.반주변부 국가들의 특별한 역할은 중간정도의 힘을 가진 국가들은 현재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는 머무르기 위해서라도 매우 빨리 뛰어야 하고 이를 위해 자신들의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국가들은 자신들이 사다리의 계단을 혹시 올라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국내영역은 물론이고 국제적 영역에서 생산자나 자본축적자로서의 측면 그리고 군사력 측면에서도 국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국가권력을 매우 목적의식적인 방식으로 사용한다.이런 반주변부 국가들의 선택은 궁극적으로 매우 간단하다. 다시 말해 이들이 직면한 선택은 그 위계구조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데 성공하거나 아래로 밀려 떨어지는 것 둘 중 하나이다. 반주변부 국가는 자국의 연합 상대와 경제적 기회를 주도 면밀 하면서도 신속하게 선택해야 하며 강한 국가들 간의 경쟁과 자국의 지위와 힘을 신장시키고자 하는 반주변부 국가들의 노력은 현재진행중인 국가간 경쟁의 결과로 나타나며 일반적으로 이 경쟁은 이른바 세력균형의 형태를 띠게 되는 것이다.(3) 헤게모니헤게모니는 단순히 한 정치적 상황에서의 지도적 위치나 지배적 위상을 뜻하는 느슨한 의미로 종종 사용된다. 이탈리아 공산당의 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는 마키아벨리를 따라, 대중에 의해 지도적 역할의 정당성이 인정되는 과정에서 이데올로기적?문화적 요소가 가지는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람시가 볼 때, 이 과정은 엘리트들이 권력을 유지하는데 핵심을 이루는 것이었다.세계체제 분석에서는 헤게모니라는 용어가 더 좁은 의미로 쓰이는데, 한 국가가 다른 강한 국가들에 대해서 경제?정치?금융의 우위를 확보함으로써 이를 통해서 군사적 ?문화적으로도 지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상황을 뜻한다. 하지만 이렇게 정의된 헤게모니는 오랫동안 존속할 수 없으며 결국에는 자기파멸적 길을 걷게 된다고 보고 있다.지난 500년간 지구상에는 세 번의 헤게모니가 있었 확보하는 데 힘을 쏟으면서 엄청난 비용을 쏟게 되고, 이것이 경제, 즉 자본주의에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헤게모니 국가가 경제 아닌 다른 분야에 힘을 쏟는 동안 다른 국가들은 자국의 경제력을 키우는 데 주력하고, 결국 세계 체제 내에서 헤게모니를 갖고 있던 국가의 경제력을 추월하게 된다는 게 월러스틴이 이야기하는 헤게모니 변화의 이유이다(6) 근대세계체제의 위기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 세계체제, 즉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위기에 놓여 있다. 이런 위기에 진입한 지도 상당한 시간이 지났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이 위기는 25년~50년 정도 지속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이행기의 중심적인 특징은 우리가 현재 세계체제의 본질적 부분이라고 알 고 있는 모든 구조와 과정들의 격렬한 요동이다. 이로써 우리의 단기적 예측들은 어쩔 수 없이 매우 불안정해지고 이런 불안정성이 상당정도의 불안으로 귀결될 수 있음으로 해서 사람들은 불안한 상황 속에서 자신들이 확보하고 있는 특권과 위계질서 내의 서열을 지키기 위해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높아진다.일반적으로 이 과정은 매우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다. 그런 면에서, 군사적으로 무한 팽창하는 헤게모니 국가의 모습은 그 패권의 종말이 머지않았음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밝힌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라크까지 최근 마구잡이로 군입들을 투입하고 있는 미국의 모습은 쌍둥이 적자, 유로화 부상 등 세계 경제 내에서 서서히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 미국이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모습이라고 월러스틴은 그렇게 보고 있다.월러스틴은 68년 세계혁명이후 미국 헤게모니 패권에 대한 거부가 노골화되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68년도 혁명에서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미국은 여전히 세계의 초강대국이지만, 미국 주도 세계 체제의 균열은 여기저기에서 보이고 있음을 말해 준다. 그 예로써 중국의 가능성에 회의적인 사람들도 많지만 중국이 미국의 경쟁자로 강력히 부상하고 있고, 유럽연합 또한 미국의 현실적 경쟁자로서 그 세력을 점점 굳혀가고 있는 점, 미국에 우호국 역할에 충 한다
Ⅰ. 서 론관습?제도?가치 등의 사회적 현상들이 사회 속에서 수행하는 기능에 의해서 설명하려고 하는 이론이 기능주의이다. 기능주의는 1920년대 B.K. 말리노프스키와 A.R. 래드클리프 브라운의 두 인류학자에 의해 창시되었다.19세기 초의 유기체론에 뿌리를 가진 기능주의는 사회학에서 가장 오래된 시각이자 최근 몇 십년 전까지 지배적인 시각이었다. 오늘날에도 기능주의적 접근이 존재하지만. 상당히 약화된 형태이고 학문적 세계에서 주변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파슨스는 거대한 분석적 구성물, 즉 머튼이 최소한 암묵적으로는 해체하려고 했던 구성물을 구축하려했던 반면에 머튼은 경험적 기능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경험적 사건들이 휩쓸려 가는 거대 분석적 도식의 구성 경향을 피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머튼은 사회학 이론의 구축을 위한 파슨스의 기능주의 전략에 대한 비판을 가하였다.기능주의의 대표적 학자라 불리 우는 머튼의 기능주의를 살펴보기에 앞서 기능주의의 출현을 살펴보고, 머튼의 중범위이론, 패러다임, 아노미이론과 기능주의의 미래에 대해서도 살펴보기로 하겠다.Ⅱ. 본 론1. 머튼의 생애와 학문머튼은 1910년 7월 5일 미국 필라델피아의 노동계급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7년 장학생으로 템플 대학에 들어갔으며, 처음에는 철학을 공부했으나, 2학년 때 사회학자 심프슨의 영향으로 전공을 사회학으로 바꾸었다. 1931년 템플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하버드 대학에서는 소로킨, 파슨스 같은 사회학자뿐만 아니라 과학사학자 사튼, 생화학자 헨더슨, 과학 철학자 화이트헤드, 곤충학자 휠러 등에게서 배웠다. 이들의 영향으로 머튼은 초기부터 과학사 및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졌으며, 17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근대과학의 사회적 기원에 관한 논문으로 1936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하버드 대학 강사와 튜레인 대학 교수를 거쳐서 1941년부터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 대학교수로 재직했다. 1963년에는 기딩스 석좌 교수로 임명되었고, 1974년에는 컬럼비아 대학 전체에서 4명밖에현상들 간의 변수적 관계의 진술로 구체화되어 있기 때문에, 거대한 기능주의 이론에 비해 이론적으로 더 희망적이다.물론, 중범위 이론도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반면, 경험적 세계에 연결되어 있어서 개념들을 선명히 하고 이론적 일반화의 재구성을 위하여 조사연구를 매우 필요한 것으로 북돋아 준다.중범위 전략을 채택하면 사회학 이론의 개념과 명제들은 보다 견고하게 조직되어, 이론에 초점을 맞춘 경험적 조사는 각 중범위 이론의 개념들과 명제들을 명료화하고, 정교화 하고 재정립하게 하는 것이다.머튼은 기능주의가 단순히 중범위 이론뿐만 아니라 언젠가 그러한 중범위 이론을 포섭하는 거대 이론적 도식을 형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머튼에게 기능주의는 개념들을 배열하고, 무의미한 사회 과정으로부터 의미 있는 개념을 가려내는 전략이다.기능주의도 중범위 이론의 형성에 사용되어져야 한다. 이러한 기능적 이론구성은, 다음과 같은 하나의 의 형태를 취해야 한다.2) 기능적 분석을 위한 머튼의 패러다임기능적 분석에 대한 대개의 비평가들과 마찬가지로 머튼은 초기의 기능주의자들, 특히 인류학자인 알리노브스키와 레드클리프-브라운의 잘못을 재검토함으로써 논의를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머튼은 기능적 이론구성이 잠재적으로 다음과 같은 3개의 공리를 품고 있다고 보았다.(1) 사회 체계의 기능적 단일성머튼은 체계에서의 통합정도를 경험적으로 결정될 수 있는 문제로 보았다. 그러나 고도의 기능적 단일성이 존재해야 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중요한 이론적, 경험적 문제들을 빠뜨리는 것이다.그 문제들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① 어떤 수준의 통합 수준이 서로 다른 체계에 존재하는가?② 다양한 유형의 통합을 구별할 수 있는가?③ 서로 다른 체계부분에는 상이한 통합정도가 나타나는가?④ 다양한 과정들이 서로 다른 영역의 사회체계에 대하여 서로 다른 수준, 형태, 유형의 통합을 낳는가?머튼에 의하면 사회전체의 기능적 단일성 혹은 통합의 공리와 함께 시작하는 분석들은 이러한 질문들을 회피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집단적 항목을 기술하고, 구체적인 경험적 체계의 서로 다른 부분들의 특정 욕구를 만족시키는 다양한 결과들을 평가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한다.두 번째 질문에 대한 머튼의 대답은 확고한데 머튼의 기능적 분석에 있어서 사회체계 내의 혹은 및 의 다양한 형태에 대하여 관심을 두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주장하게 되었다.머튼은 어떤 연관된 문제들을 탐구하다 보면 결국 구조적 항목들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분석을 분리하는 것이 용이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왜 한 특정구조가 다양한 대안들을 제치고 등장하게 되었는가를 추구함으로써, 분석가는 한 항목의 출현을 이끈 그 특수한 과정들을 그 항목의 기능적 결과로부터 분리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각 항목을 체계의 욕구 충족을 위해 존재한다고 가정해 버리는 위험을 피할 수 있게 된다.전통적 인류학과 현대 기능주의적 논리에 대한 머튼의 비판을 재검토하면, 세 가지 기능적 공리에 대한 그의 평가 가운데 많은 부분은 ‘허수아비’를 파괴시키는 데 있었다. 그러나 허수아비를 붕괴시키는 데 있어서 머튼은 기능적 욕구나 정명이라는 선험적 가정을 세우지 않고, 사회문화적 항목들이 상호간 및 보다 포괄적인 사회 전체에 대하여 갖는 다양한 결과들에 대하여 관심을 고양시키는 공리들을 정립하기에 이르렀다.오히려 기능적 분석은 다음의 내용을 구체화 시켜야 한다.① 전체체계이든 혹은 그 부분이든 대상으로 삼은 사회적 유형② 경험적으로 설정된 생존의 요건에 대한 이러한 유형들의 다양한 결과들③ 다른 유형보다 그 유형들의 존재하게 되고, 그 유형들 서로 간에 혹은 전체사회에 대해 다양한 결과를 갖게 되는 과정들이러한 형식의 기능적 분석을 통해 머튼은 “사회학자가 적절한 기능적 분석을 수행하기 위해 사용하여야 하는 최소한의 개념체계”를 제공하려 하였다.3) 기능적 분석을 실행하기 위한 원칙머튼은 특정 구조와 과정의 원인과 결과를 조사하기 위하여 개인 활동과 집단 활동을 ‘순수하게 기술’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첨부함으로써 종합적인 이해를 도모하였다.셋째, 필수불가결성에 대한 것은 ‘기능적 대안’이라는 개념을 통해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그의 이러한 노력은 흔히 ‘중범위 이론'으로 불린다. 그의 중범위 이론은 파슨스의 기능주의 패러다임을 더욱더 세분화하고 정교한 형태로 보완한 동시에 파슨스 이론의 한계를 지적한 연구전략상의 상당한 수정을 촉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파슨스와 머튼은 이론적인 시각에 있어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양자는 이론 구성전략에 있어서 커다란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연구의 대상, 연구의 범위, 연구 방법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파슨스가 추상적인 분석적인 사회일반에 관심을 갖고 거대이론을 그의 분석적 실재론에 입각하여 연구했던 반면에 머튼은 경험적인 사회현상에 관심을 갖고 중범위 이론을 그의 이론적, 과학적 방법을 통해 연구하고자 했다.이러한 차이는 넓게 보아 이론 구성 전략에 있어서 차이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이론적인 시각 자체의 차이는 아니다. 이로 인해 두 이론가는 같은 이론적인 시각 하에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기능주의 패러다임을 확장시키고자 노력했다고 볼 수 있다.4. 머튼의 아노미 이론머튼은 범죄의 원인이 되는 규제가 없는 상태(아노미)의 원인을 자본주의가 크게 발달한 미국사회의 병폐에서 찾았다. 부의 획득과 축적을 성공의 지표로 삼는 미국사회에서는 사회적 목표와 그 목표에 이르는 수단 간의 불일치를 겪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범죄는 정상적이라는 뒤르켐의 사고와 그의 아노미 이론을 토대로 한 머튼의 이론은 “아마도 현대 사회학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논문이다.” 라고 할 정도로 일탈행위 연구에 이정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머튼의 문제에 대한 접근은 한 사회에 있어서 문화적으로 정의된 그 사회의 목표와 그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을 분배?규제하는 규범간의 차이에서 출발한다. 목표란 한 사회가 그 사회의 전 구성원을 위하여 수립한 합법적으로 가치 있는 목적이며 관심사이다, 따라서 머튼에 의하면 미국의 문화가 정의한n)은 문화적 목표는 수용하지만 제도화된 수단은 거부하는 적응방식으로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목표를 달성하려 하는 횡령, 탈세, 매춘, 강도, 절도와 수용하는 적응방식을 통하여 문화적 목표를 달성하려 한다. 따라서 이들의 반응은 범죄나 비행으로 나타나기 쉽고, 일반적으로 금전획득을 위한 재산범죄가 많다.셋째, 의례형(ritualism)은 사회적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을 규정한 규범을 거의 강박감을 가지고 수용하나, 근본적으로 그 자신들 스스로가 금전적 성공의 목표를 실현할 것을 포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의례주의자는 주로 하층, 중류계층에 속하는 자들로서 고정적인 수입을 가졌으면서도 사회적 목표를 포기한다. 즉 그들은 계속해서 부지런히 일하고 있지만, 결코 사회적 목표인 물질적 성공을 이룰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대민봉사’라는 조직의 목표보다는 절차나 규칙만을 준수하는데 치중하는 무사 안일한 관료가 대표적인 사례이다.넷째, 도피형(retreatism)은 문화적 목표와 제도화된 수단을 모두 거부하고 사회로부터 후퇴 내지는 도피해버리는 적응양식으로 만성적 알콜 중독자, 또는 마약상습자 등이 있다. 이들과 같은 사회계층의 밑바닥에 있는 자들의 적응양식으로 그들이 사회의 목표를 내면화하였다 할지라도, 그 목표를 달성할 기회나 동기가 결여됨으로써 경쟁에서 기권하는 경우이다. 비록 이들의 행위로 인하여 고통을 받는 희생자를 쉽게 가려낼 수는 없지만, 이들의 행위는 매우 비도덕적이고 퇴폐적이다.다섯째, 반역형(rebellion))은 기존의 문화적 목표와 제도화된 수단을 모두 거부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문화적 목표와 제도화된 수단으로 대치하려는 적응양식으로 사회운동가 등이 해당된다. 이 적응방식을 택한 자들이 적절한 목표라고 생각하는 것을 더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하여 주는 새 사회구조를 형성하려고 하는 적응방식이라는 점에서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행위유형달성하고자하는 목표에 대한 집착정도(문화적 목표)목표달성을 위해 동원하는 수단, 방
서론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사회이론은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와 1910년대 말 유럽을 휩쓸었던 혁명 열기의 급격한 퇴조 속에서 맑스주의를 새롭게 구성하고자 노력했던 결과이다. 그람시는 패배의 잿더미 속에서 맑스주의를 새롭게 인식해야할 필요성을 절감하였으며 결정론적 시각에 입각한 전통적 맑스주의로는 이론적 수동성과 정치적 무기력을 극복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결정론적 사고가 맑스주의 속으로 침투하는 것이 맑스주의 운동에 치명적이라고 판단하였으며, 이에 대항하여 맑스주의 고유의 ‘사고 틀’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맑스주의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노력을 통하여, 실천철학(the philosophy of praxis), 헤게모니(hegemony), 시민사회(civil society), 역사적 블록(historical bloc) 등과 같은 강력한 개념들을 발전시켰다.본론1.그람시의 생애와 사상적 배경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1891년 이탈리아 사르디니아에서 태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 뒤 마르크스주의 신문인 를 창간하고 편집장으로 활동하였다.1920년 사회당 분열과 동시에 이탈리아 공산당 창당에 참여 하였으며 이후 당 중앙위원 이 되었다.1924년 하원의원에 선출되고, 당 기관지 를 창간하였다.1926년 에서 이탈리아 혁명의 성공 조건으로 북부 노동자와 남부 농민의 동맹을 역설하였다. 같은 해, 무솔리니의 정권에 맞서 투쟁하다가 체포되어 20년형을 언 도 받았다.1929 ~ 1935년 옥중에서 자신의 사상을 집대성한 『옥중수고』를 집필하여 레닌 이후 가장 독창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의 면모를 확고히 하였다.1937년 로마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그람시는 체포된 직후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릴 때 어쩔 수 없이 가난과 고통을 맛보았던 것이 자신에게 보탬이 되기도 했다고 회상한다. 그는 보다 안락한 형편에서 자란 자신의 조카 에드메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격동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유약하고 감상적인결과 등과 같은 결정론적 이분법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시도라는 것이다. 그람시는 합리론과 경험론을 비변증법적, 형이상학적, 관념론적, 숙명론적, 기계론적 등의 이유로 거부한다. 경험론과 합리론은 결정론적 이론 틀을 공유하고 있으며 인간의 이성이든 경험적 사실성이든 절대화된 본질은 필연적으로 공허한 형이상학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람시는 실천철학을 경험론/합리론, 유물론/관념론과 같은 결정론적 이분법에 대한 대안으로 내세움으로써 실천철학이 맑스주의 인식론의 핵심임을 분명히 한다. 그람시는 실천철학이 역사의 새로운 단계 그리고 세계사상의 새로운 단계를 여는 통합적이고 독창적인 철학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실천철학은, 기계적인 관념론과 유물론을 모두 뛰어넘음으로써, 전통적인 관념론/유물론의 이분법을 극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람시에게 실천철학은 바로 “맑스주의의 더 이상 축소할 수 없는 핵심”을 뜻한다. 실천철학의 특성은 우선 결정론적 이분법에 대한 반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람시의 견해에 따르면 관념론/유물론, 주체/객체 등과 같은 결정론적 이분법을 둘러싼 극단적 대립은 피상적이고 또한 혼란만 초래한다. 현실성 있는 이론은 양극을 결합, 더 나아가 초월하여야 한다는 것이다.그람시에게 실천철학은 사회구성체에 대한 이론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이를 변혁하기 위한 이론이다. 그람시에게 이론화란 절대적 진리에 대한 수동적 해석이 아니라 사회 변혁을 위한 진리를 구축하는데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한 적극적 참여이다. 진리의 담론적 성격 혹은 진리의 사회적, 역사적 구축에 대한 그의 인식은 진리가 보편적이고 항구불변이라는 결정론적 주장을 거부하고, 진리는 사회적, 역사적으로 상대적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람시에 의하면, 반드시 설명되어야 할 점은 어떻게 모든 시기에 철학적 사고의 여러 체계와 경향이 공존하며, 어떻게 이러한 경향들이 태어나며, 어떻게 이들이 확산되며, 왜 확산 과정에서 이들이 특정 노선과 특정 방향으로 분열되는가 하는 윤이 임금 수준의 축소로 생긴 것이라면 노동자는 더 이상 부르주아지의 지배에 자발적 동의를 보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재생산을 위해 수준이하로 이윤이 하락해서도 안 된다. 이윤의 존재만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재생산을 위해 필요한 투자 기금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헤게모니의 행사를 위해서 부르주아지는 기본적 계급이익의 핵심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프롤레타리아의 물질적 이익을 일정한 정도로 실현시켜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에서의 지도적 역할과 위치가 자동적으로 어떤 특정계급에게 헤게모니를 제공해 주는 것은 아니다. 경제에서의 지도적 역할과 위치는 헤게모니 수립의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경제에서의 헤게모니적 위치는 상부구조 영역에서의 헤게모니적 위치와 기능적으로 연결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그람시는 진정한 헤게모니 국면은 구조부터 복합적 상부구조 영역으로의 결정적 전환이 이뤄지는 순간에 일어난다는 것을 명확히 하였다. 이는 헤게모니 체제 내에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는 토대에서의 경제적 타협을 유지하고 공고히 해 줄 수 있는 방향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상부구조들은 계급타협에 유리한 조건들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조직되어야만 한다. 헤게모니 체제의 구축은 기본계급이 경제, 정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간의 통일을 달성했을 때 완성된다는 것이다.그람시의 “역사적 블럭” 개념은 이런 의미에서 이해된다. 그람시에게 역사적 블럭은 상부구조와 구조의 복합적이고 모순적이며 불협화음적인 앙상블이다. 역사적 블럭 개념은 헤게모니 체제에서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통일의 필연성을 강조한다. 지배적인 경제적 위치와 기능이 헤게모니를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정치와 이데올로기의 조직 또한 헤게모니 체제의 수립을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치와 이데올로기는 경제적 수준에서 헤게모니적 관계를 결합하고 통합하는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한 사회집단의 지배를 보편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의 여러 부분에서 그람시는 국가권력을 장악하기 이전에는 프롤레타리아가 자신의 헤게모니를 수립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람시에 의하면 헤게모니는 항상 대안적 헤게모니와 경쟁하고 있다. 헤게모니는 부단한 계급투쟁을 통해 창출된다. 따라서 헤게모니는 항상 쟁취되어야 하며 안전하게 보호되어야 하고 지속적으로 방어되어야 한다. 그람시는 마르크스주이자이다. 그러므로 그가 항상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은 부르주아 헤게모니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대항 헤게모니의 구축이었다. 말하자면 사회주의 사회의 실현이라는 미래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는 여러 사회집단들과의 대항 헤게모니적 동맹의 구축이었다. 그람시는 새로운 역사적 블럭의 형성과 하위계급들의 새로운 집단의사 형성과 같은 문제의식을 제기함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의 자궁 속에서 대항 헤게모니 조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대항 헤게모니는 엄격한 의미에서 진정한 헤게모니가 아니고 자본주의를 전복시키고 국가권력을 장악하기 이전에 헤게모니를 위한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인 준비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이전의 대항 헤게모니 프로젝트의 내용은 무엇인가? 자본주의 사회의 자궁 속에서 헤게모니를 위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투쟁은 현존하는 부르주아지의 역사적 블럭을 해체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대안적인 역사적 블럭 즉,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정치와 이데올로기의 건설을 구축하는 투쟁을 포함한다. 이러한 노동계급의 헤게모니 구축 전략은 기동전이 아니라 진지전 전략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부르주아 헤게모니의 견고한 참호체제에 직면하고 있으나 단독으로 대항 헤게모니 투쟁을 이끌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노동자들의 대항 헤게모니를 위한 전략 선택은 제약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제약으로 부르주아 헤게모니 체제에 대한 전면공격, 기동전은 실현 가능한 전략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진지전이 권력을 장악하기 이전에 프롤레타리아트의 헤게모니 획득을춘 시대로 구분한다. 맑스의 분석과 혁명의 전략은 그 중 전단계에 해당되는 것이고, 시민사회가 확립된 이후부터는 지배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에 더 이상 기동전으로서의 혁명 전략은 맞지 않는다. 1870년 이후 유럽이 식민지적인 팽창으로 나선이래, 이러한 모든 요소들은 변화된다. 국가의 국내적이고 국제적인 조직적 관계들은 한층 더 복합적이고 대량적인 것으로 되고 영구혁명이라는 48년 공식은 확대되어 시민적 헤게모니라는 정식 속에서 극복된다. 시민사회에서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의 강고한 체계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혁명이 성공하지 못한다.이렇게 해서 그람시의 시민사회에 대한 논의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특히 현대사회에서의 지배방식에 대해 그람시는 헤게모니적 지배라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었다. 현대사회가 단지 국가의 강제력만을 통해 대중을 지배하지 않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헤게모니적 지배를 통해 국가의 강제력 외에 현대사회에서 행사되고 있는 다른 지배 방식들로 관심영역을 확대한 것, 아울러 이를 통해 맑스주의 정치이론의 구축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은 그람시의 이론적 공헌이다. 그람시에게 있어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체제의 유지는 단순한 경제결정론이나 인간본성의 자연법칙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에 의한 정치적 지배에 의한 것이다. 설령 자본주의 사회체제의 유지가 전적으로 정치적 지배에 의한 것만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정치적 지배가 체제유지의 주요한 축인 것만은 분명하다. 따라서 이 체제 변혁을 위한 이행전략의 문제도 우선적으로 정치적 지배 방식의 분석에서부터 출발해야 하고, 이를 외면하거나 우회하는 어떤 전략도 현실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4)지식인1) 지식인이란?“나는 단지 위대한 지식인들에게만 관계되는 상투적인 지식인 개념을 벗어나 그 개념을 확장시킨다.” 그람시의 지식인 개념은 기본적으로 지적 활동이라는 정신적 요소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종래의 통상적인 지식인 개념과 공통점을 갖는다. 문인, 철학자, 예술가 등이 대표적인 지식인 집단
서 론- 종교의 발생과 기능 : 지리학적 중요성문화지리를 연구함에 있어서 종교는 소홀히 할 수 없는 분야이다. 지리와 종교는 어쩌면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일 수도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종교지리학이라는 학문 분야까지 있으니 말이다.종교와 지리의 관계를 연구하기에 앞서 종교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보도록 하자.종교란 초자연적(supernatural) 또는 초월적인 것의 존재를 믿고, 그에게 인간의 뜻을 전하고, 기대하는 바를 그의 힘에 의해서 얻어내려고, 그 전능한 초자연적(또는 초월적)인 것을 신앙하며 이에 관련된 행동을 실행하는 것이다.이와 같은 종교는 해당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심리적?사회적 및 가치상의 작용(기능)을 가하거니와, 이들 작용 내지 기능의 존재 때문에 해당 종교를 가진 인간집단이나 그 종교지역의 삶, 그 삶의 외관, 그리고 종교경관은 다른 종교의 그것들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이 점이 문화지리학에서 종교의 특성이나 기능들을 주목하는 이유이다.여기서는 종교의 전파?분포나 경관을 분석하기에 앞서 종교의 일반적 특징 및 기능, 그리고 여러 개 각각의 종교 특징과 그 기능들을 비교적 깊이 알아보도록 하겠다. 더불어 각개 종교(특히 고급종교)에 대한 이해를 하려고 함에 있어서 그 종교가 생겨난 지리적 상황, 문화적 상황, 그리고 역사적 상황을 검토?분석해 보겠다.본 론Ⅰ. 원시종교와 고급종교1. 원시종교종교는 그의 진화(진보)정도 또는 체계화 정도에 따라 원시종교(primitive religion)와 고급종교로 나눈다. 원시종교란 발생초기 단계의 비체계화된, 단순한 종교 및 그 행위요, 무문자시대의 종교이다. 결국 원초적인 인간의 신감(神感)과 신앙행동을 잘 보여주는 것이 원시종교이다.이같은 원시종교는 내용성격상 에니마티즘(animatism), 에니미즘(animism), 그리고 샤마니즘(shamanism)으로 구별된다.에니마티즘은 자연물이 보이지 않는 비인격적인 힘인 마나(mana)를 지니고 있다고 믿고 그에 대한 공포심을 갖고 신앙하는 것을 말한다한다고 믿고 신앙하는 것을 말한다. 교통고립의 내륙오지, 현대문명이 적게 들어 간 곳 등에 널리 분포한다.한 가지 더 논의할 것으로 에니미즘적 요소들과 샤마니즘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들어있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하물신앙(cargo cult)이다. 뉴기니섬 남동부인 파푸아뉴기니와 멜라네시아의 여러 섬에서 믿어지고 있다.샤마니즘은 샤만(shaman;주술행위자, 주술자)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믿음과 그 관련 행동을 말한다. 문명지에서도 쉽게 없어지지 않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오늘날에는 주술을 통한 소원성취의 행사와 점술에 그치고 있다. 한국의 무당, 만신이 샤마니즘에 속한다.2. 고급종교고급종교는 ‘진보되었다’는 의미의 종교를 말한다. 오늘날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유대교 등이 이에 해당된다. 고급종교들 중 세계 여러 지역에 널리 퍼져 수용된 종교를 보편종교라 한다.여기서는 여러 고급종교의 성격을 핵심적으로 다루어보도록 하겠다.기원전 6세기 초반에 성립된 불교는 경전으로 부다의 교시집인 (Tripitaka)를 갖고 있다. 승려의 규칙을 중심으로 한 비나야 피타카, 부다와 제자들 간의 대화와 논설을 중심으로 한 수타 피타카, 그리고 소승불교의 이념을 중심으로 한 아비다마 피타카가 그것이다.제행무상(諸行無常), 즉 모든 사물은 공허하고 덧없음을 강조하고 있는 불교이념의 핵심은 4진리 8정도에 담겨 있다. 8정도를 잘 지킴으로서 참선?극기가 잘 이루어지고 그럼으로써 바라는 바 최고경지인 열반에 도달한다고 가르치고 권장한다. 인도 베나레스 근처 사르나드가 불교의 성지이고, 부다가야는 사카무니가 보리수 아래에 앉아 깨우침을 얻은 곳으로서 예배의 중심지이다.티베트, 몽고, 중앙아시아 등에서 신앙되는 라마교는 티베트의 주술적인 토착종교들과 불교가 합쳐진 (불교의 일종)이다.이슬람교(7세기 초반 성립)는 그의 경전으로 을 갖고 있다. 이 경전은 종교상의 성전임과 아울러 생활규범이요, 법률의 기반이다. 이슬람교의 소위 은 5가지 의무로 인식되거니와, 이들 기 수니 이슬람교는 아라비아반도를 위시한 서남아 대부분, 북부아프리카, 인도네시아, 중앙아시아, 파키스탄 등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시아 이슬람교는 오늘날 이란을 필두로, 바레인, 이락, 그리고 레바논에서 신앙된다.알라신의 의지에 복종이라고 하는 의미를 지닌 이슬람교는 제 1의 성지 메카 외에 메디나(제 2의 성지)를 갖고 있다.힌두교는 브라만교에 토착종교(미신적)와 나중에 생긴 불교 및 자이나교 요소들이 적절히 합쳐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에 영향을 준 ‘제생(諸生) 고통’과 ‘열반 지향(指向)’을 강조하고, 한편 영혼 윤회와 전생을 받아들이며 자기해방을 이루는 데 힘쓰도록 강조하고 있다.이 종교는 아리안족이 만들면서 계급차이를 두도록 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카스트제(caste system)를 만들었다. 경전은 베다(Veda)이고, 바르나시(베나레스)는 힌두교의 성지이다. 힌두교는 지형적 조건과 특히 관계가 깊은 종교라 할 수 있다.기독교는 경전으로 성경(Bible)을 갖고 있다. 1세기에 서남아시아의 북부 건조한 초원-사막지역에서 예수에 의해 만들어졌다. 예수 크리스트를 하느님이며 또한 인간으로도 간주하고 있는 기독교는 초기에 카톨릭적 기독교로 조성?전래?전파되어 오다가 역사적인 분화과정을 거쳐 개신교와 카톨릭으로 나뉜 오늘날에 이르렀다.계파적으로 볼 때 카톨릭교는 교회를 교육적 권위로 내세우고, 교황의 무오설(無誤說)에 입각해서 교도를 이끌어간다. 이에 대해서 개신교에서는 종교개혁을 계기로 교권의 남용을 반대해 왔고, 교회의 권위가 아니라 성서의 권위를 믿는다.기독교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유대교(기원전 1300년경 성립, 교조 모세)는 그 이념적 뿌리를 구약성경의 앞부분 5권인 토라(Torah)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를 죽인 자들이 유대교도들이라는 이유로 기독교도들로부터 박해?천대를 받아온 그 유대인들의 종교가 바로 이 종교이다. 유일신이며 시나이산의 산신(山神)인 야외(Jahweh, 예호바, 여호와)를 신앙하고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10계명을 지키며,화, 정신, 정치 등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신도는 일본식 원시종교에 기반을 둔 민족종교이다. 그들의 가미(神)는 일본식 마나(mana)라고 할 수 있다. 신도는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민족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구별의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Ⅱ. 남한의 제 종교남한의 원시종교로는 자연신과 인격을 각각 신봉하는 자연신 신앙과 인격신 신앙이 행해진다.고유하거나 민족적 성향의 종교로는 도교성격을 지녔으며, 국조신을 신봉하는 민족주의 성향의 동학계의 천도교가 있으며, 한 풀기, 상생, 평민존중, 후천개벽 등을 내세우고, 불교 성향을 띤 증산계의 증산교(1901), 대순진리회, 보천교가 있다. 또한 단군을 한민족 최고의 신으로 신봉하는 단군계의 대종교(1910), 한얼교가 있으며 유교계의 태극교 등이 신봉되고 있다.보편적 고급종교로는 중국을 통해 들어온 역사 오랜 불교(교도 약 900만)와 중국과 미국을 통해 들어온 기독교(로마 카톨릭 약 160만, 개신교 약 600만)가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데다가 최근에는 서남아 지역과의 거래가 늘면서 이슬람교도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일부에 들어와 있다.Ⅲ. 종교경관과 성지순례1. 종교경관종교는 생활의 여러 부면, 의식, 그리고 규범형성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과 관련된 외관(外觀)의 상징화에까지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처럼 어떤 외관이나 토지 위에 특정종교의 이념, 사상, 계율, 세계관(world view) 등이 생겨지거나 박혀져, 주위 모습이나 타모습과는 다른 가시적 모습을 나타나게 할 때, 그 나타난 모습을 종교경관(religious landscape)이라고 말한다. 문화경관(文化景觀)들 중의 하나이다. 종교경관들 중에서 들을 만한 것은 예배소(사찰, 교회, 모스크, 기타 예배처), 제단(특히 대형 구조물), 탑(중요한 신앙표적) 등의 신성경관(神聖景觀)들, 특정의미를 지닌 상징물, 세계관이나 종교적 규율을 보여주는 취락구조, 종교적 지명, 그리고 교인무덤이다.예배소로는 파푸아뉴기니 서들 경관은 주위의 모습과 큰 차이를 보이면서 그곳들이 신성 또는 신의 장소임을 알려준다.신에의 제사(희생제의나 공의)를 위해, 그리고 더불어 통치자나 국가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 만들어진 대규모의 높은 제단도 만들어졌는데 그것도 중요한 종교경관에 해당된다. 한국의 서낭(성황)당도 그리 높지 않고 작은 규모이지만, 제단의 구실을 하고 있다. 하나의 작은 종교경관이라고 할 수 있다.종교경관으로서의 취락구조는 힌두교적인 인도 농촌지역의 카스트 촌락(caste village)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촌락의 계층적 내부분화가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기독교의 경우 교회를 중앙에 배치하거나 보다 높은 지형지에 우선 배치하는 것도 이의 예이다. 미국 유타주와 그 인근주들에 다수 분포한 모르몬교도(기독교계)들의 취락구조 역시 그러하다.종교적 지명도 종교경관에 포함된다. 예배당이 언덕 위나 중요한 장소에 우뚝 솟아 있다는 것을 상징성을 겸해서 말해주는 지명, 가령 미국 남부 농촌의 체플힐(Chapel Hill)이 그 한 예이다.기독교의 카톨릭교도와 개신교도들이 사망하면 흔히 매장되는 교회무덤, 불교와 힌두교도들의 무덤을 남기지 않는 것 등 역시 교인무덤으로의 종교경관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2. 성스런 공간의 형성과 구분앞에서 간간히 소재?논의된 종교적으로 신성한 공간(장소)들은 어떻게 이루어지거나 조성되는지를 정리해 보자. 성스런 공간은 3가지 방법을 통해 지표상에 만들어지는 것으로 보면 좋은 것이다.첫째는 사람들이 거룩하게 인식함으로써 생기는 것이다.둘째는 신의 행동에 대한 모방적 행동을 행함으로써 생기는 것이다.셋째는 신의 자세를 재연함으로써 생기는 것이다.위처럼 성스런 공간으로 인식하거나 성스런 공간을 조성하는 일은 어째서인가? 첫째는 신앙들이 신 등의 성스런 존재들은 성스러운 것을 좋아하고, 속(俗)스런 것을 싫어한다고 인식하는 데에 그 근본원인이 있다. 다른 하나는 신 등이 세속의 세계에 있지 않고 에 있다고, 또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식의 사고방식을 속세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