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사람은 누구나 꿈을 꾼다고 한다. 하지만 그 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으며, 나 또한 그러한 사람중한명이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전날의 꾼 꿈을 기억하려 애쓰고 그러한 꿈들을 나름대로 해석하기를 좋아한다.예를 들어 돼지꿈이나 용꿈 기타 좋은 꿈이라 불리는 상서롭지 않은 꿈들을 꾸면 아무도 모르게 복권을 사거나, 들뜬 마음으로 남들에게 자랑을 하게 된다. 반대로 죽은 사람이 나온다든가 자신이 다치는 꿈을 꾼다든지 하면 매사에 더욱 조심하고 신경을 쓰기도 한다. 안 좋은 꿈은 현실과 반대다 하여 자신을 안심시킨다든지 남들의 안 좋은 꿈에 대해 들으면 이러한 말들로 안심시키기도 한다.또한 과거 설화나 신화에서 보면 꿈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들만 보더라도 꿈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꿈에 대해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프로이드란 인물에 대해 흥미가 있었다. 이번기회에 ‘꿈의 분석’이란 심리학책을 읽고 자신의 꿈을 해석해 봄으로써 나 자신이 알지 못했던 무의식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으면 한다. 그래서 26년 동안 살아오면서 꾸어 봤던 꿈 중에 가장 기억이 남는 몇 가지 꿈들에 대해 서술하고 해석하여 보겠다. 다소 말도 안 되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책에 의거한 나름대로의 해석이기 때문에 편하게 읽어주기를 바란다.Ⅱ. 본론A. 초등학교 5학년 때의 꿈(몇 달간 같은 꿈이 지속됨)한 밤중에 어느 한적한 숲길을 걷고 있다. 누군가가 뒤에서 빠른 속도로 쫑아 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나의 속도는 아무리 빨리 뛰려 해도 더 느려지기만 한다. 그러는 찰라 나는 무시무시한 도깨비의 손에 잡혀 어디론가 끌러간다. 잠시 정신을 잃고 있다가 나는 눈을 뜬다. 나의 몸은 큰 통나무에 어김없이 묶여 있다. 도깨비들은 나의 가족들을 모두 잡아온다. 또 다시 정신을 잃는다. 다시 눈을 뜬 나는 가족과 함께 통나무에 묶여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 가족은 아무 저항도 하지 은 부모님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나와 동생에게 관심과 애정을 쏟지 못한데서 나온 것 같다. 아무저항도 하지 못한 것 또한 돈을 갚아야하기 때문에 아무소리 못한 것과도 일치하고, 아무리 빨리 뛰려 해도 도깨비에게 잡힐 수밖에 없는 것 또한 현실에서 벗어 날 수 없음을 의미한다.위의 꿈의 내용을 하나의 전체물로 파악하고 이것을 비슷한 내용으로 바꾸어 보다 쉽게 상징적으로 해석한 이유는 꿈의 재료는 모두 어떤 방법으로든 그 사람의 체험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이다. 이 꿈은 ‘하프너’의 “꿈은 깨어있는 생활의 계속이다.” 란 말과 ‘베이칸트’의 “꿈은 우리를 일상생활에서 해방시키기는커녕 바로 일상생활로 되돌아가게 하는것이다.” 란 말을 어느 정도 입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이다.B. 중학교 때의 성적호기심에 관한 꿈인적이 드문 한적한 길을 걷고 있다. 멀리 희미한 불빛이 보인다. 나는 그곳으로 걸어간다. 나무로 된 작은집에는 물소리가 난다. 조그만 구멍사이로 어느 여인의 목욕 장면을 볼 수 있다. 들킬지 않게 조심조심 여체를 관찰한다. 풍만한 가슴과 둥근 둔부가 나로 하여금 성적 흥분을 자극한다. 입술은 점점 마르고 침 삼키는 소리는 아주 크게 귀가에 울린다. 얼굴을 보니 편안한 인상을 풍기는 중년의 여인의 모습이다. 나는 그 여인을 만지고 싶지만 감히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숨어서 보다가 잠에서 깬다.꿈 B의 해석중학교 시절 나는 성적으로 관심이 많았지만, 지금과 같이 성능 좋은 컴퓨터라든지 인터넷이란 것이 없던 시절 이었기에 그것을 알 길이 별로 없었다. 학교에서 하는 성교육도 1년에 한두 번 정도로 나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지는 못하였다. 같은 또래의 애들도 그러한 호기심에 못 이겨 여선생님들의 치마 속을 보기 위해 거울을 준비하기도 했다.중학교 2학년 때쯤 나는 우리 집 다락에서 야한 잡지 5권정도 발견하였다.그 시절 나에게는 방과 후 혼자 몰래 집에서 야한 잡지를 보는 것이 하나의 쾌락이었다. 성적으로 무지 했기에 그러한 것들을 아무한테도 이다. 살결이 아주 매끄럽고 부드럽다. 그녀의 성기를 바라본다. 나의 성기는 어느덧 발기되어있다. 잠시 후 그녀와 내가 섹스를 한건지 안 한건지도 모른 채 잠에서 깬다.꿈 C의 해석이 꿈을 꾼 것은 대학교를 막 다니고 있던 20살 때였다. 학교생활이 마냥 즐겁고 선배들, 동기들과 함께 있던 시간들이 좋았을 때이다. 이시기에 나의 성적 에너지는 넘쳤고 딱히 발산할 때는 없었다.다만 술을 먹다가 우연치 않게 여자 선배나 동기들과 신체적으로 민감한부분을 접촉하게 되면 기분이 좋았고 가끔은 그러한 행동들을 같이 술 먹다가 술 취한 여자들에게 의도적으로 행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변태란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성적 에너지가 너무 충만한 나머지 행한 행동이었다. 그러하기에 자위도 하게 되었고 자위를 할 때마다 연예인들이나 학교주위의 여자들의 나체를 상상하기도 했다.이러한 행동들이 나쁘지는 않은 것이지만 그렇다고 딱히 좋을 것도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자신의 성적 에너지를 삭히기 위해 몸이 피곤할 때 까지 운동을 해 보기도 한 시기였다.위의 꿈에서 보면 중학교 때와는 다르게 20대의 여인이 나체로 나오는 것은 이시기의 주로 만남을 가지는 여성이 20대 여성이고 연예인중에 한번 만나봤으면 하는 여성들 또한 이정도의 나이 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어딘지 모르는 침대가 있는 어두운 곳은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 나의 성적 에너지를 표출하는 공간이 주로 어둡고 아무도 없는 집이나 화장실 같은 곳이기에 그렇게 나타난 것이다.아무 옷도 걸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나 자신의 무의식 세계에서 실제 섹스를 해보고 싶다는 그런 솔직한 마음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알 수 없는 야릇한 미소가 뜻 하는 것은 평소에 보았던 포르노 비디오 테잎에서 섹스를 하기 전에 여배우가 남자 배우를 바라보며 짓던 그러한 미소가 아닌 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며, 한번도 실제 섹스를 경험하지 않은 이 당시 나로서는 섹스의 정당화를 시키기 위한 무의식의 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부끄러워하면서도된다. 실제 섹스를 하는 것 같이 성기에 따뜻한 그녀의 체온이 느껴진다. 피스톤운동을 하니 실제와 같이 생생한 쾌락이 온몸에 전해진다. 사정을 했다. 갑자기 여자는 온데간데없고 나 혼자 절벽에 서있다. 무섭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친다. 바람이 분다. 나는 흔들리지 않으려고 하지만 바람은 점점 세차게 분다. 옆에 갑자기 큰 나무가 한그루 생겼다. 나는 나무에 올라가 나무를 꼭 끌어 않고 있다. 피곤함을 느낀다. 배도 고프다 조금은 서러운 생각이 든다. 아무도 없다. 불러도 대답 없다. 혼자 버려진 것 같다. 눈앞에 넓은 평지가 보인다. 광활하기는 하나 자라는 식물도 별로 없다. 걸어간다. 한발 한발 걸어가기가 힘들다. 너무 고통스럽다.꿈 D의 해석이 꿈은 비교적 최근에 꾼 꿈이다. 그래서 앞에 다른 꿈들과는 달리 내용도좀 긴 편이고 자세히 적을 수 있었다. 하얀 방에 조그만 창문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이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도시에 산 나는 푸른 하늘이 보이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한 상상들은 한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이러한 어렸을 때의 동경들이 빚어낸 모습이라 하겠다. 드넓은 벌판과 꽃 그리고 나를 위해 살아 숨쉬는 듯한 느낌은 얼마 전에 방학 때 러시아에 가서 느낀 느낌과 유사하다. 내가 간 지역의 러시아에서는 산이 별로 없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드넓은 평야가 보이고 거기서 뛰어노는 말들도 보였다. 그러한 모습들은 한국에서의 나의 삶과 너무 동떨어진 것이 기에 한국에 와서도 한동안 나는 러시아를 그리워했다.누군가가 걸어오고, 그 여성이 망사를 입은 모습이 나오는 것은 현재 외롭고 누군가와 진심으로 사귀고 싶은 마음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무의식의 한 단편인 것이 다고, 이뻐 보이는 부분에서는 사귀고 싶은 여자가 실제 이뻤으면 하는 마음을 나타낸 것이다.그러나 다르게 생각해 보면 망사로 된 속이 비치는 옷과 어핏 그녀의 다리사이로 검은 숲이 보인다란 부분은 나의 내면에 숨어 있는 변태 성욕인 관던 것 같다. 내가 있는 술자리에 끝가지 남아 있다던가 내가 술 먹을 때 부르면 언제든지 왔다. 한번은 새벽 1시에 술 먹다가 전화 했는데도 나와 주었다. 그 날 키스를 하게 되었고 일주일 안에 섹스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것이 첫 경험이었다. 그 이후에도 나는 그녀와 몇 번의 성관계를 더 가졌다. 나는 그녀를 좋아하지 도 않으면서 섹스를 한 내 자신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그 이후 나는 그녀가 집 앞에 찾아오기 까지 했지만 나는 만나지 않았다. 학교에서 우연히 그녀를 만나게 되면 나는 아주 어색하게 대했다. 혹시나 그녀가 학교에서 그러한 사실들은 말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도 점점 더 커지게 되었다. 이런 불안감이 꿈의 한 단편으로 표출되지 않았나 싶다.나는 나무에 올라가 나무를 꼭 끌어 않고 있다. 여기서 내가 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한 가지 방편이 나온다. 그녀에게 나는 학교 후배를 소개 시켜 주었다. 지금 그녀는 내가 소개 시켜준 후배랑 사귀고 있다. 그 후배한테도 죄책감이 들지만 남들이 잘 어울린다고 하니 잘 했다는 생각도 든다.피곤함을 느낀다. 배도 고프다 조금은 서러운 생각이 든다. 아무도 없다. 불러도 대답 없다. 혼자 버려진 것 같다. 여기서는 여러 가지 것들을 한꺼번에 설명해 보겠다. 우선 복잡한 심정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후배에게 그녀를 소개 시켜주고 잘 사귀는 것을 보니 한편으로 부러운 생각도 든다. 이제 밤늦게 연락할 사람도 없고 전화를 해도 나와 줄 사람도 없다. 그런 외로운 심정이 꿈으로 나온 것이다.앞에 넓은 평지가 보인다. 광활하기는 하나 자라는 식물도 별로 없다. 꿈의 첫 부분과 다르게 삭막한 분위기다 조금은 막막해 보이기도 한다. 삶에 대한 허무함이라고 할까? 염세주의자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주위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에게 애인이 생기면서 연락도 뜸해지고 잘 만나지도 않게 되자 위와 같이 외로움 심정이 더 커져서 보이는 꿈인 것이다.한발 한발 걸어가기가 힘들다. 너무 고통스럽다. 섹스에 대한 쾌락을 알게 다.
세계 화상대회와 우리나라냉전 종식 이후 가장 놀라운 사건은 가장 기대하지 못했던 곳에서 일어났다.바로 공산주의 국가 중국의 시장경제로의 대전환과 그에 뒤따른 놀라운 속도의 경제 발전.빈한한 공산주의 국가 중국은 시장경제 체제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는 서구 경제 전문가들의 전망을 무색케 하며 두 자리 수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해 세계의 공장, 세계경제의 블랙홀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중국의 놀라운 성장을 가능케 했던 힘은 바로 중국의 바깥에 또 하나의 거대한 중국을 구성하고 있는 중국인 상인, 화상들로부터 나왔다.3천만여 명으로 추산되고 있는 세계 화상들. 동남아와 미국, 유럽을 비롯해 남쪽으로는 아프리카부터, 북쪽으로는 러시아까지 세계 160여 개 국에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화상들은 “바닷물이 닿는 곳에는 화상이 있다”, “이익이 있는 곳에는 화상이 있다”는 말을 낳으며 중국과 세계를 이으며 중국의 경제발전을 원조하고 있다.★아프리카부터 러시아까지, 이익이 있는 곳에는 화상이 있다.“ 이익이 있는 곳에는 화상이 있다” - 웬진화, 러시아 인민호텔 사장“ 우리는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중국에서 힘겨운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 곳에서는 보다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왔으니까요.”- 알렉스 황(남아공 화상)통치 시스템의 공백 속에 이라크 바드다드 보다 높은 살인 율을 기록하고 있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소련이 무너지고 민간 소비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러시아까지, 이익이 있는 곳, 사업할 거리가 있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중국인 화상들이 있다.★글로벌 시대의 새로운 비즈니스 그룹으로 등장하다.“그동안 세상 사람들에게 중국인은 그저 요리사에 불과했습니다.하지만 우리는 중국인이 가진 다른 측면을 입증한 첫 번째 비즈니스 그룹입니다.우리는 중국인이 단순히 훌륭한 요리사나 기술자일 뿐 아니라 우수한 기업인이자 사업가 라는 사실을 증명한 겁니다.” - 홍첸 ( 하이나그룹 회장)세계 160여 개국에 흩어져 모진 멸시와 차별 속에 생존을 위해 싸워야 했던 중국인들. 이제 그들의 자손들은 IT 를 앞세운 최첨단 화상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실리콘 밸리에서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중국인들은 2천여 명. 실리콘 밸리 IT 업체의 20% 를 차지하는 숫자이다. 홍콩의 경제전문지 아주주간이 선정한 세계 500대 화상 기업의 총자산 규모는 1조 2천억 달러. 지난해 중국의 총생산액 1 조 4천억 달러에 맞먹는다.★중국의 꿈을 실현시키는 힘, 화상“미국과 유럽인들의 시각으로 보자면 중국의 투자위험은 너무 컸습니다.화교들의 경영방식과 자본이 유입된 이후에야 서구인들은 중국의 매력적인 시장과 사업기 회에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 머레이 위덴바움 (미국 워싱턴대학 석좌교수)오랜 세월 세계의 경제흐름을 차단해 온 죽의 장막을 걷고 시장 경제로의 전환을 선언한 중국의 개혁개방 계획을 두고 서구 경제학자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 누가 공산주의 나라 중국에 투자를 하겠는가. 하지만 중국은 그 후 연간 7% 이상의 고속 성장을 거듭하며 ‘신흥 경제 강국’, ‘세계의 공장’ 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서양의 투자자들이 중국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을 때 중국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준 것은 바로 해외 화교들. 그들은 고향에 돌아와 공장과 학교를 세웠고, 그들의 성공을 확인하고 난 뒤에야 서구 투자자들도 중국에 투자를 시작했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세워진 외국 회사와 합자기업 등 외국자본 투자 기업은 51만여 개. 이 가운데 70% 를 이런 화상들이 세웠으며, 외국인 직접투자액 5천 6백억 달러 가운데 반 이상이 화상들의 자금으로 채워졌다. 중국에 자금을 공급해 역동적인 수출 국가로 이끌 뿐 아니라 폐쇄된 중국 사회와 개방된 서구 사회를 매개하는 교량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화상들의 저력이 확인된다.★살아 움직이는 만리장성, 세계 화상들이 서울을 주목한다.“우리는 금융위기 이후 한국이 보다 강력하게 부상했고, 매우 빠른 속도로 경제가 회복됐 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사업 기회가 새롭게 창출되는 것을 높이 평가 해 화상대회 개최국으로 정한 것입니다. 일본도 지난 2년동안 대회 유치를 위해 많은 노 력을 기울였지만, 우리는 한국에 보다 많은 사업기회가 있을 것이라 판단합니다.”- 세계 화상대회 사무국장거주국 정부의 탄압을 피해 베일 속에 그들의 경제규모를 숨겨왔던 화상들이 그 막강한 네트워크를 드러냈다. 바로 세계 화상대회. 전 세계에 퍼져있는 화상들을 하나로 엮겠다는 원대한 포부는 싱가포르와 홍콩, 중국, 캐나다, 호주 등지를 돌며 2년마다 열리는 세계 화상대회와 13만 개의 기업이 등록돼 있는 온라인 네트워크로 확인되고 있다. 거대 화교 자본의 유치와 자국 홍보를 위해 치열한 유치경쟁까지 벌어지고 있는 세계 화상대회가 10월 9일부터 우리 서울에서 열렸다. 이 땅에 자리 잡은 화교에게조차 국적을 불허하고 부동산 소유를 제한해 온 한국은 전 지구상에서 유일한 화교의 불모지라 일컬어져 왔지만, 이제 새로운 비즈니스 그룹으로 부상하고 있는 화상들이 사업의 파트너로서 한국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중화경제권의 경제 통합이 현실화되고 있다. 중국·대만·홍콩· 마카오 주민과 세계 각지의 화교 경제를 포괄하는 중화경제권은 아직까지 공식적·실질적 통합 단계로는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 일반적인 견해였다. 그러나 세계 각지의 '중화인'들은 '통합을 통한 성장'을 가속화하면서 이제 새로운 통합 단계로 나가고 있다.중화경제권이 하나의 경제 실체로 통합될 경우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2004년 현재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중화인'은 14억 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22%가량을 차지한다. 경제적으로 중국·대만·홍콩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구매력 기준)는 7조6000억 달러로 미국(11조6000억 달러)과 유럽연합(EU·8조6000억 달러)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화교가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의 5개국을 합친 GDP는 9조7000억 달러(전 세계 GDP의 17%)로 세계 2위다.중국의 개방은 중화경제가 통합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었다. 즉 중국의 성공적 개방의 일등공신은 화교였고, 역으로 화교들은 중국의 개방으로 급속한 성장의 활로를 찾았다. 1983년 이후 올 초까지 화상의 본거지인 홍콩·대만·싱가포르와 동남아 각국이 중국에 투자한 돈은 전체 대( ?중국 투자의 80%를 넘는다. 게다가 홍콩과 마카오가 중국에 복귀함으로써 통합을 위한 정치적 계기도 마련됐다최근 중화경제권의 결속을 보여주는 두 가지 사건이 주목을 끈다. 하나는 2004년 1월부터 발효된 '중국-홍콩 간 긴밀한 경제협력 관계협정(CEPA·Closer Economic Partnership Arrangement)'이다. 이 협약은 홍콩이 원산지인 상품을 무관세로 중국에 들여올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특히 2006년 1월부터는 대상 분야가 모든 화물무역과 운수·건설·여행업 등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화상의 본거지인 홍콩은 이제 대륙경제와 명실상부한 통합을 이뤘다.다른 하나는 지난 7월 발효된 중-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이 계획에 따라 올 7월부터 관세 인하를 시작해 중국과 6개 선발국은 2010년까지, 4개 후발국(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베트남)은 2015년까지 관세가 없는 자유무역지대를 설립한다. 동남아가 화교 상권임을 감안하면 이 FTA는 사실상 동남아 화교와 중국 간의 자유무역지대 구축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와 중화경제권 간 협력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그렇다면 중화경제권의 통합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어떻게 기회로 바꿀 것인가. 해답은 역시 대륙·대만·홍콩·동남아 각국을 별개로 보던 과거의 접근방식에서 벗어나 중화경제권을 통합된 실체로 보는 데서 찾아야 한다. 이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중화경제권과의 협력방식을 모색해야 한다.첫째는 우리 기업과 화교자본의 중국 동반 진출이다. 이 방식은 화교의 문화, 언어적 소통능력을 이용할 수 있어 효과적으로 중국 내수시장에 진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둘째는 중국 대륙에 편중된 기존의 대중화권 투자를 홍콩·동남아 등지로 다각화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과도한 중국 의존에 따른 위험을 줄이면서 중국시장에 대한 우회진출의 이점을 누릴 수 있다. 중-홍콩 CEPA와 중-아세안 FTA 발효에 따라 우리 기업이 홍콩과 동남아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중국시장에서 국내 생산품 대우를 받기 때문이다.
Ⅰ서론계속 되는 경기침체 속에서 기업들이 새로운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해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컬러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칼라마케팅은 색상을 이용하여 판매를 극대화 시키는 판매전략이다. 기업의 제조기술이 평준화되면서 디자인 중에서도 색상이 제품선택을 결정하게 되었고, 사람은 색채에 대해서 감성적인 반응을 보이므로, 이것이 곧 구매충동과 직결된다는 것이 마케팅의 기본논리이다.20~30대 직장인 22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사대상의 92.6%가 제품 구매 시 시각적 요소를 가장 높게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은 이 마케팅 기법을 사용하고 있고, 이를 위해서 1년에 몇 백억씩이 돈을 투자해 가면서, 기업과 제품의 이미지를 구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마케팅을 이용하여 주 소비층인 10대, 20대 등 신세대 젊은 고객들의 고정관념을 깬 색으로 공략하였으며, 광고에서도 제품과 가장 잘 어울리는 하나의 색만을 사용하여 광고와 브랜드 간의 일치된 색을 통해 보다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여 매출을 증대 시켰다. 식음료를 비롯한 가구, 자동차, 가전제품 등 소비재 전 분야에 걸쳐 그 대상이 확산되었다.Ⅱ본론어떤 색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제품과 브랜드의 이미지가 달라지는 만큼 컬러마케팅 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은 높다. 기업들은 제품과 가장 잘 어울리는 특정 색을 사용하여 소비자의 눈길을 끌고 강력한 이미지를 심어 보다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광고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1) 기아자동차의 스포티지{- 지난 8월 뉴 스포티지를 출시하면서 신문, TV 등 광고 모델 차에 하와이안 블루 색을 입혔다. 흰색, 은색 등의 색깔을 내세운 기존 광고와는 차별성을 내세우며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령(SUV)답게 스포티한 느낌을 주려는 흔적이 돋보이는 시도였다.{- 뉴 스포티지의 대표 색상인 하와이안 블루는 한국색채학회가 선정하는 2004 한국색채디자인 대상 을 수상했다.- 하와이안 블루 외에도 로맨틱 장미, 커피원두, 올리브열매 등 10가지 개성있고 다양한 외장색과 프리미엄 블루, 프리미엄 브라운 등 4가지 독특한 인테리어 색상도 적용했다.{- 출시 전 홈페이지 투표를 통해 가장 갖고 싶은 색 을 공모해 대표 색상을 하와이안 블루로 정하는 등 적극적인 칼라마케팅을 시행해 왔다.- 하와이안 블루는 8월 뉴스포티지 전체 4747대중 516대가 판매되는 등 전체 판매의 1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뉴스포티지의 초반돌풍은 세련된 디자인과 개성있는 색상의 힘이 크며 젊고 역동 적인 기아의 이미지를 차량 색상에 반영한 첫 모델 뉴스포티지{2) 기아 자동차의 대형승용차 오피러스- 세상에 없는 흑장미색 을 마케팅의 전면에 내세웠다.{- 흑장미색은 멀리서 보면 검정색이지만 다가가면 흑장미색이 살아나는 게 특징으로, 오피러스의 성공요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외국 패션 디자이너와 공동 개발한 특별한 색색깔은 기업의 이미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많은 기업들이 기업 광고를 TV에 내보냄으로써 기업의 색깔을 많이 드러내고 있어 그 색깔하면 자신의 기업이 떠오르도록 이미지를 형성해 가고 있다. 대표적인 색으로는 블루 , 레드 , 오렌지 , 옐로'등이 있다.블루는 맑고 현대적, 세련된 느낌이 있는 만큼 신뢰와 안정, 고품질, 성공,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 등의 이미지를 심어준다. 블루 이미지의 기업은 삼성카드, 현대정유 등의 광고가 대표적이다.{{{{{{- 광고는 파란색으로 가득하다. 전지현의 상의, 등장하는 차량, 전지현이 마시는 음료, 배경인 바다와 하늘까지 모두 파랗다. 시청자들이 파란색만 보더라도 자연스럽게 현대오일뱅크를 연상토록 유도하는 것이다.{{레드는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강렬한 색상으로 열정, 힘, 따뜻함이라는 느낌을 통해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어 인지도를 높이는데 활용된다. 레드 이미지의 기업은 BC카드, SK주유소 등의 광고가 있다.{{- 비씨카드에서는 비씨의 마크를 형상화한 빨간 사과를 몇 년 전부터 등장 시키면서 빨간사과하면 BC카드가 생각나게 했고, 광고 모델들은 모두 빨간색과 하얀색으로 옷을 맞추고 있다. 김정은이 빨간사과를 들고 광고에 나올 때부터 시작하여 지금 현재도 빨간사과는 BC라는 이미지를 소비자들에게 심어주고 있다.{{{{{{- 한가로운 여름 한 낮, 전원주택 앞 잔디에서 빨간색 모자와 옷을 입은 한 여성이 잔디에 물을 주고 있다. 지붕 역시 빨간색, 이때 집 앞을 지나가던 자동차가 느닷없이 잔디 마당위로 올라가자 이 여서은 깜짝 놀란다. 차는 딸깍 소리와 함께 자동차의 주유구를 연다. 이어 빨간색만 보면 SK 주유소가 생각납니다. 마음 속의 주유소 SK 라는 카피가 흐른다.이 광고는 칼라마케팅 광고의 가장 대표적인 광고로 빨간색과 기업이미지를 직결시키면서 카피로 다시 한번 이미지를 확실히 심어주고 있다.오렌지색은 따뜻하면서도 활기차고 즐거움을 자극해 정열적이며 사교적인 인상을 준다. 이 색은 빨간색보다는 좀 더 부드럽고 차분한 매력을 준다. 기업들이 새로운 마케팅을 시도하거나 이미지 전환을 꾀할 때 주로 사용하는 색 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기업광고는 KTF의 굿타임 찬스 이다.{{{{{{- KTF는 기존 기업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굿타임 찬스 라는 광고 캠페인에서 오렌지색 을 채택했다. 오렌지색 로고와 함께 최근 강동원 편 광고에서는 커다란 오렌지색 선물상자, 그 속에 오렌지색 깃털 등의 오렌지색 소품이 등장하며 권상우가 등장하는 단말기 보상 서비스 편에서는 벽 색깔도 커다란 자막의 배경화면도 오렌지색이다. KTF는 오렌지색이 주는 톡톡 튀고 상큼하면서도 세련된 느낌 때문에 기존 이미지를 벗고 세련되면서도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보고 있다.포카리스웨트 블루 화이트로 시원함 강조{{{{{{{- 하얀 모래사막이 펼쳐진다. 마치 남극의 설원처럼 느껴진다. 그곳을 한대의 픽업 트럭이 지나간다. 이어 한 여자가 파란색 줄무늬의 열기구를 펼친다. 그는 열기구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아간다. 블루와 화이트의 시원하고 깔끔한 조화를 테마로 한 포카리스웨트 TV광고 장면이다.그동안 지중해 등 유럽을 배경으로 제품 컬러인 블루&화이트리 시원하고 깔끔한 조화를 캠페인 테마로 광고를 해왔던 동아오츠카 이온음료 포카리스웨트가 이번 신규 광고는 사막을 배경으로 제작해 시선을 끌고 있다. 배경이 된 하얀 모래사막은 그래픽 작업 없이도 맑고 깨끗한 화이트컬러를 나타내 마치 설경을 보는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다음 커뮤티케이션즈 광고- 깔끔한 흰색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레스토랑, 하얀 테이블 위로 앳된 얼굴의 여자손님. 까만 수트의 매니저, 가만 정장의 여자 매니저가 주문을 받고, 흰색 셔츠와 까만 앞치마를 두른 웨이터들이 꽃병으로 테이블을 장식하고 물을 따른다.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종업원의 옷 색상은 모두 무채색인데 반해 손님의 옷은 화사한 주황색이고 목에 두른 코사쥬는 눈에 확 들어오는 형광 주황색이다. 메뉴판의 다음 로고와 파란 접시, 테이블의 노란 꽃, 주황색 테이블 보, 초록색 접시 색은 다음 로고의 색깔로 하얀 식탁보 대비 더욱 눈에 잘 들어온다. 마지막 장면의 당신이 다음의 주인공입니다. 라는 카피도 다음 로고의 네 가지 색상으로 둘러싸여 다음 기업광고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아시아태평양지역은 세계 인구의 40.8%, 국민총생산의 56%, 교역량의 45%, 전 세계 면적의 47%를 차지하는 광대한 지역으로, 태평양 국가라는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역사·문화·경제발전단계 등이 모두 상이하다. 따라서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들의 고도성장에 따른 역내 상호의존도 심화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필요성을 역내 국가들이 공감하였고 이를 위하여 최초의 정부 간 경제협력기구인 APEC(Asia Pacific Economic Cooperation)이 오스트레일리아의 호크 총리의 제안에 의해 1989년 출범하였다. 1989년 창설당시 한국, 중국, 대만, 홍콩, 일본, 미국, 캐나다, 멕시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필리핀, 브루나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파푸아 뉴기니, 칠레등 18개국으로 구성되었고 1999년 제8차 각료회의를 통해 러시아, 베트남, 페루가 정식가입 하였다.지난 1993년 미국 시애틀에서 첫 회의가 열린 이후 2005년 한국 부산회의까지 13차례의 회의가 열릴 동안 APEC회의에서는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무역?투자와 기술협력, 테러문제 등 다양한 의제가 다뤄졌다.1회 시애틀 회의(1993.11.20)에서는 21세기 아시아 태평양지역 장래 전망과 경제성장을 위한 각국 고려사항, 아시아 태평양지역 공동 목표달성을 위한 방안 등이 주 의제로 다뤄졌고 인도네시아 보고르에서 열린 2차 회의(1994.11.15)에서는 APEC 회원국간 경제협력 방안과 APEC 무역?투자 자유화 문제가 의제였다.또 3회인 일본 오사카 회의(1995년 11.19)에서는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보다 나은 미래의 실현을 위한 행동이, 4회인 필리핀 수빅 회의(96.11.25)에서는 아시아 태평양협력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가 각각 주제로 설정됐다.5회인 캐나타 밴쿠버 회의(97.11.24∼25) 회의에서는 아시아 지역의 금융위기와 경제인프라 개발, 무역투자 자유화 문제 등이 다뤄졌고 6회인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회의(98.11.17∼18)에서는 금융안정과 무역?투자자유화, 경제?기술협력 및 전자상거래, 다자 무역체제 강화문제 등의 의제로 설정됐다.7회인 뉴질랜드 오클랜드 회의(99.12.13)에서는 다자 무역체제 강화 문제가, 8회인 부르나이 반다르스리베가완 회의(2000.11.15∼16)에서는 공동체에 대한 기여를 주제로 하고 보다 강한 협력기반 구축과 새로운 기회의 창출이 부제로 다뤄졌다.이와 함께 9회인 중국 상하이 회의(2001.10.20∼21)에서는 세계 및 지역경제 현황과 인간능력 배양 등이 10회인 멕스코 로스카보스 회의(2002.10.26∼27)에서는 반테러와 경제적 파급효과, 자유?개방시장으로의 전환 등이, 11회인 태국 방콕회의(2003.10.20∼21)에서는 미래를 위한 파트너쉽과 반테러 등이 각각 의제로 채택됐다.12회인 칠레 산티아고 회의(2004.11.16∼19)에서는 에너지 안보 문제등이 채택되었고, 이어 13회인 부산회의(2005.11.18∼19)는 하나의 공동체를 향한 도전과 변화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건국 이래 최대의 국제회의로 기록된 제13차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경제적 실익과 함께 외교·문화 등에서도 한국의 힘을 세계에 과시하며 한국의 위상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세계 21개국 정상들과 3500여 명의 고위 관리, 1000여 명에 달하는 세계적 경영자들이 정상회의를 비롯한 다양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으며, 전 세계의 눈과 귀가 우리나라를 향했다.우리나라는 이 기회를 충분히 이용할 줄 아는 지혜를 발휘했다. 한국의 첨단 산업과 고유한 전통문화를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행사에 참석한 지도자들은 물론 세계인의 가슴에 ‘KOREA'의 새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커버스토리(11월 14일자)에서 APEC은 “한국의 과거와 미래를 나누는 분수령과 같은 전기”라고 평가하고 한국이 정치민주화, 경제성장, 과학기술과 사회문화 발전 등 모든 측면에서 강인한 ‘헝그리 정신’으로 돌파구를 열어왔다고 분석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도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불리던 한국이 반대로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역동적인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며 과거 3000번이 넘게 침략을 당했던 한국은 이제 IT, 자동차, 한류 등의 분야에서 다른 나라들을 ‘침략’하고 있다고 보도했다.실제로 우리나라는 부산APEC 의장국의 입장과 지위를 한껏 활용, 공식 의제 외에도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4개 강대국과 연쇄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해결의지를 다지고 5억1000만 달러에 이르는 외국 투자를 유치했다. 또 첨단과 ‘세계 최초’의 제품들이 즐비했던 벡스코 (BEXCO) IT전시회를 통해 정상들, 기업인들 그리고 세계 각국의 언론인들로 하여금 “원더플 코리아”를 연발토록 하는 장면도 연출했다.노무현 대통령의 지도력도 빛을 발했다. 주변 4강을 상대한 정상외교를 통해 내외에 지도력을 과시했으며 정상회의 의장으로서 노련하고 효과적인 진행에 대한 정상들의 호평이 줄을 이었다. 노 대통령은 세계무역 강화, 테러 퇴치, 조류인플렌자(AI)예방 뿐 아니라 ‘국가적·사회적 양극화 해소’라는 국제적 현안을 제기하고 회원국의 공동노력 의지를 이끌어 낸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성과로 ‘사회복지를 위한 투사’(독일 FAZ, 11월 18일자)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다.이번 APEC의 최대 결실이라고 할 수 있는 ‘부산 로드맵’과 도하개발어젠다(DDA) 정상 특별성명의 탄생에도 의장국인 우리나라는 노련한 산파 역할을 잘 수행했다. 실제 DDA 특별성명을 놓고 회원국 간 입장차이로 인해 진통이 적지 않았으나 성명서를 내야 한다는 우리나라의 의지가 큰 역할을 한 것이다.
(450~1450)기원 4세기경부터 16세기경에 이르는 기간을 역사적으로는「중세」라고 부른다. 이 시대는 봉건제도가 완성되었다가 붕괴되는 시대이기도 하다.이 시대의 음악은 「노래」를 중심으로 해서 발달한 「노래의 시대」였다. 「노래의 시대」가 된 이유는 유럽 음악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우리는 유일한 악기로서 평화의 말을 사용 한다」고 말한 그리스의 옛 신학자가 있다. 평화의 말이란 다름 아닌 성경의 말이다. 성경에는 인류의 평등과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쓰여져 있다. 따라서 이 성경의 말을 인용해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의식을 올리기 위해 사용하는 음악은 자연히 성악(聲樂)이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의 음악이 주로 수도원이나 교회 또는 사원을 중심으로 발달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이리하여 그리스도교 정신은 유럽의 음악, 아니 음악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쳐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1. 봉건사회를 유지한 교회와 노래「그레고리오 성가」라는 음악이 있는데 이것은 「교회선법(敎會旋法)」이라고 해서 현재와 같은 장음계(長音階), 단음계(短音階)를 사용한 것이 아니고 전음계(全音階)로 된 음악이다. 이것은 아주 밝고 깨끗한 음색과 소박하고 강렬한 음향을 지닌 음악이다. 이러한 음악이 먼 중세의 옛 수도원이나 교회 등에서 수도승이나 수도사들에 의해 불려지게 되었다. 이 음악은 엄격한 일과로서 불리워졌으며, 그것은 일과 중 빼놓을 수 없는 일의 하 나였다.그 당시 시골에는 대개 교회가 있었고, 귀족이나 기사, 수도승들이 영주의 자격으로 가지고 있던 장원이라고 하는 토지에 서 농민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이 농민들은 수확의 몇 퍼센트를 영주에게 바치는 대가로 영 주의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었다. 교회의 노래는 이와 같은 농민들의 정신적 지주인 동시에 문화적인 정서생활의 기틀이었다. 다시 말하면, 장원 속에서의 질서는 이와 같은 제도로 인해서 유지될 수 있었으며 이 일의 중심인물이 되어 통일 작업에 몰두했던, 그레고리우스 Ⅰ세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2. 기사들의 긍지와 여성에의 찬미십자군은 11세기말부터 13세기말에 걸쳐 지금의 팔레스티나에 있는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에서 전투를 벌였다. 예루살렘은 그리스도교의 발상지로서 「성지(聖地)」라고 불리고 있지만 동시에 이슬람교라는 종교의 성지이기도하다. 이 시대 에 예루살렘은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사라센 제국의 지배 하에 있었다. 이것을 그리스도교 세계로 되돌리려는 것이 바로 이 십자군 전쟁의 목적이었다. 이 전쟁으로 인해 원정군을 내보냈던 이탈리아의 베니스나 제노바, 프랑스의 마르세 이유 등을 비롯한 각 도시가 급격한 번영을 이룩하게 되었다. 또 군비를 정비하는 데는 큰 돈 과 노동이 필요했으므로 자연히 이들 도시에는 상공업이 크게 번성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농촌에는 없는 자유스런 공기가 맴돌았다. 그 자유스런 공기를 바탕으로 당시의 기사들 중에서 인간감정의 섬세함을 노래하는 음유시인(吟遊詩人)들이 나왔다. 그들은 무거운 교회 노래 대신, 전쟁 중에 있는 기사들의 용맹스런 모습이나, 여성에 대한 사랑을 노래했던 것이다.초기의 음유시인들은 모두 귀족이나 기사(騎士)들이었지만 다소 시대가 지나자 독일에서 는 따로 본직을 갖고있으면서 노래 솜씨가 뛰어난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룹을 만들었다. 이들을 마이스터 징거라고 한다. 소박하고 생활력에 넘치면 서도 유머를 지녔던 그들의 시(詩)나 뛰어난 선율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3. 다성(多聲)의 노래13세기의 도시생활은 확실히 풍요로워졌는데 그것은 주로 상인들의 공적에 의한 것이었다. 당시의 상인이나 직공들은 길드를 조직, 서서히 힘을 발휘하면서 재산을 축적, 옛 봉건영주에게 맞먹을 정도의 정치적인 실력까지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영주권력에 밀착해 있던 교회를, 이번엔 시민들 자신의 풍부한 재력으로 건립함으로써 훌륭한 사원이 등장하게 되었다.그 교회 속에서 노래하는 음악도 새로워졌다. 그것이 바로 다성(多聲)의 노래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스도교는 그 모태가 된 유대교의 영향도 있지만 그밖에 음악을 존중하여 초기단계부터 독특한 의식음악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중세음악은 대체로 로마네스크 음악, 고딕음악, 세속음악 등으로 크게 구분한다.(1) 로마네스크 음악 ( Romanesque Music )로마를 중심으로 하여 발달되었던 음악으로서 이것은 로마네스크 미술과 통하는 양식이다. 그 주요한 것은 초기 기독교의 교회음악으로서, 고대음악처럼 단선율이지만 대체로 성악이며 기독교적인 가사를 가지고 있다. 이 음악은 4세기에서 7세기에 이르러 그레고리 성가로 절정을 이룬다.기독교는 처음부터 음악을 존중했으나, 처음에는 기독교 박해로 숨어서 음악을 하다가, 기원 후 313년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인정받은 후에야 비로소 성대하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음악은 처음에는 시리아, 팔레스티나, 소아시아 등지의 음악, 즉 유태적이거나 그리이스적인 음악들을 필요에 따라 적당히 기독교적으로 고쳐서 쓰기 시작했다. 이러한 것이 그후 로마의 각 지방에서 조금씩 서로 다른 양식의 음악을 가져오게 하였던 것이다. 로마의 교회세력이 크게 떨치자 지금까지 지방에서 행해지던 교리와 의식, 성가 등을 일정한 형식으로 통일시켜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성가의 경우 밀리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339년경∼397년)가 개혁한 암브로시오 성가(Ambrosian Chant) 이래 2세기후 교황 그레고리우스(Gregorius 540∼604)가 제정한 그레고리우스 성가(Gregorian Chant)로서 마침내 그리스도교 음악을 통일시켰다. 이 전통적인 교회음악인 그레고리오 성가는 단선율의 라틴어 가사로 된 단순한 것이지만 그 유동적인 선율은 실로 거룩하고 아름답다. 이 성가는 지금도 카톨릭교회에서 공식적인 음악으로 쓰여지고 있다.(2) 고딕음악(Gothic Music)대체로 10세기에서 15세기에 이르는 네델란드와 로마를 중심으로 발달한 다성음악(Polypony)형식의 교회음악을 말하는 것으로 당시 교회의 건축양식도가 계속된 14세기의 찬란한 아르스노바(Ars Nova, t새 예술)와 15세기가 되면서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한 대위법적인 다성 음악의 극치를 이룬 네덜란드 악파 (Netherland School)의 음악을 포함하고 있다.(3) 세속음악(Secular Music)11세기경까지 유럽의 모든 예술과 학문 분야는 성직자들이 주도하였으나 12세기에 이르러 봉건사회의 기사계급은 그 동안의 교회와 수도원의 전통적인 권위의 지배속에서 벗어나 인본주의적인 가치관을 추구하였다. 또한 오랜 십자군 전쟁 이후 극단적인 종교열은 침체했고 동방의 화려한 이국문화의 접견으로 세속적 요소가 사회생활에 팽대해졌다.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세속음악은 점차 민중속에서 발전해 나갔다. 대부분의 세속음악은 단선율로서 악기와 함께 연주되었다. 이러한 세속음악은 12세기경부터 귀족계급인 남프랑스의 투르바두르(Troubadour)와 북프랑스의 투르베르(Trouvere)에 의하여 전파되었고 작품도 많이 나왔다. 그들은 자작의 시에 노래를 즉흥적으로 불렀다. 여러 곳의 왕궁과 귀족의 저택을 방문하여 간단한 악기의 반주로 그것을 노래했다. 시의 내용은 사랑노래와 발라드 풍의 이야기, 자연의 찬미, 종교적 또는 도덕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예인(藝人)도 고용하여 다녔는데 자작의 시를 그들에게 노래시켰다. 이들은 프랑스에서는 8세기경부터 종글뢰르(Jongleur) 영국에서는 민스트럴(Minstrel)이라고 했다. 13,4세기경에는 독일 남부에서 오스트리아에 걸쳐 미네쟁거(Minnesange)라는 음유시인(吟遊詩人)이 있었다. 이들은 기사계급이 많았는데 이후 세속음악은 점차 기사계급에서 교양있는 시민계급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독일의 마이스터징거(Miestersinger)이다. 이들은 16세기경까지 계속되는데 독창적으로 창작곡을 내는 것보다 기존의 성가나 세속음악을 수정하여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4) 기보법의 발달그레고리 성가를 위한 기보법이 9세기경에 네우마(Neuma)라는 그리이스말로 창안되었으며 1의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4. 중세시대의 음악가(1) 레오니누스(Leoninus)(불)작곡가. 혹은 의 초기의 대표적 작곡가로서 노트르담 대성당의 기초가 잡힌 1163년 이전에 활약한 것으로 추측된다. 교회력에 의한 1년간의 전례용의 곡을 편집했다.그의 작곡기법은 하나의 저음의 길게 연장된 음표에 대하여, 상성은 자유롭게 흐르는 리듬으로 움직이는 것과, 또 하나는 음표 대 음표의 엄격한 양식이 아울러 존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초기 대위법의 귀중한 예증이라 하겠다.(2) 비트리(Philippe de Vitri(Vitry) 1291∼1361(불)이론가. 작곡가. 젊은 시절부터 파리의 왕실에서 일했고, 후에는 노르망디공(公) 장 2 세를 섬기고, 1346년 장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교황 클레멘스 6세(Clemens Ⅵ)에 대한 사절로서 아비뇽에 파견되었다. 그후 1351년에는 교황으로부터 모의 사교로 추천받았다.1323년 무렵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 논문은 정량기보법, 특히 박자에 관한 중요한 이론서로 간주되고 있다. 그밖에 다수의 모테토가 있다.(3) 던스터블(John Dunstable) 1380∼1453 12. 24(영)작곡가. 그의 생애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15세기 영국의 최대의 작곡가로서 뱅시와(Binchois) 뒤파이(Dufay) 등 대륙 특히 부르고뉴 악파의 작곡가들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라이오넬 파워(Lionel Power)와 동일인물이라고 하는 가설도 있으나 확실성은 희박하다. 또한 음악가임과 동시에 천문학자 수학자였다는 설도 있다. 베드포드공(公)을 따라 몇 차례 프랑스로 여행하여 헨리 5세 당시의 영국 왕실음악의 융성을 가져온 선구자가 되었다. 작품에는 미사곡 모테토 등이 있다.(4) 마쇼(Guillaume de Machault) 1300년경∼1377. 4(불)작곡가 시인. 프랑스 아르스 노바의 대표적인 작곡가 시인.그의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1323년경부터 뵈멘 왕 요한의 비서관을 지냈다.요한 왕을 따라서 이탈리아 옆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