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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디노미네이션이 북한 인민에 미친 영향
    리디노미네이션이 북한 인민에 미친 영향- 목차 -Ⅰ. 서론Ⅱ. 리디노미네이션1. 리디노미네이션 개념2. 리디노미네이션의 사례와 전반적인 성격3. 북한의 리디노미네이션III. 리디노미네이션이 북한 인민에 끼친 영향Ⅳ. 결론Ⅰ. 서론북한은 2009년 대대적인 리디노미네이션(화폐 교환)을 시행했다. 구권 100원을 신권 1원 비율로 교환했고, 교환 한도를 설정했다. 교환 한도는 가구당 구권 10만원이었다. 그리고 종합 시장의 폐쇄와 외화 사용 금지를 단행했다. 또한 전체 주민에 대해 1인당 신권 500원의 배려금을 무상 공급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화폐 교환에 관한 내각 결정 제 423-1는 “인민생활 안정과 향상을 위하여”이고, 제423-2는 “경제관리체계와 질서를 바로잡기 위하여” 이다. 일본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09년 12월 11일자)는 '화폐교환' 조치의 목적은 크게 인플레이션 현상을 퇴치하는 것과 동시에 시장의 역할을 축소와, 통제계획경제의 부활을 목표로 한다고 보도했다.그러나 리디노미네이션이 시행된 지 몇 달 만에 물가 폭등, 상품 공급 위축 등의 부작용이 발생했다. 특히 다수의 인민 생활은 타격을 입게 됐다. 상품 공급이 위축돼 쌀 1kg이 2300원에서 40000원으로 폭등했고, 달걀 한 알의 가격이 7000원에 달했다. 리디노미네이션이 시작된 이후 2010년 7월까지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2010년 인플레는, 물가상승 약 50배, 명목이지만 임금인상 약 2배를 고려하면 2500%의 환산 인플레로 평가할 수 있다. 실제로 인민들은 배급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매일 먹을 식량을 구입하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이었다. 그마저도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거나, 돈과 물품을 도둑맞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취사용의 땔감이나 석탄, 비누, 의류 등의 생필품은커녕 끼니를 해결하는 것마저 곤란한 처지에 빠지게 됐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인민들의 인식인데, '화폐교환은 실제 인민생활을 위해서가 아닌 국가의 순간 이득을 취하기 폐?금융적 성격과 경제 개혁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여기서 기대심리란 인플레이션의 기대심리를 낮춘다는 의미인데, 이는 리디노미네이션 시행을 통해 정부가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사숙고하며 노력한다는 심리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실제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의 실질가치의 변동 없이 호칭만 바꾸는 것인 만큼 이론적으로는 소득이나 물가와 같은 경제 변수에만 영향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리디노미네이션과 동시에 예금 지불 정지나 퇴장자금 양성화 등의 조치가 실시된다면 화폐 개혁의 형태를 띠게 되고 이 경우에는 경제의 실질 변수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게 된다.2. 리디노미네이션의 사례와 전반적인 성격우리나라의 경우 리디노미네이션은 53년과 62년 두 번 실시되었으나 모두 인플레를 억제하려는 목적에서 또는 퇴장 자금을 산업자금으로 끌어내려는 비상조치의 하나로 단행됐다. 이들은 모두 경제적인 개념에서 이루어졌다기 보다는 한국전쟁 후와 5?16군사쿠데타 이후에 이뤄져 다분히 사회개혁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제 2차 리디노미네이션의 경우 1962년 6월 10일 '긴급통화조치법'에 의해 구권인 ‘환’ 단위 화폐의 유통과 거래를 금지하고 화폐 액면을 10분의 1로 조정한 ‘원’ 표시 화폐를 법화로 발행하는 것을 골자로 실시되었다. 5?16군사쿠데타 이후, 당시 정부는 퇴장자금을 양성화하여 '경제개발계획'에 필요한 투자자금으로 활용하고 과잉 통화를 흡수하여 인플레이션 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하였다. 그러나 이 조치는 경제적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행 원화체계를 도입했다는 데에서나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하겠다.리디노미네이션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실시 시기, 화폐단위 절하비율과 호칭, 사전공고, 화폐 교환방법 등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데, 그러한 준비를 위해서는 최소 2-3년에서 길게는 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프랑스의 경우 지하 자금을 양성화하는 접근 방법으로 인한 심리적인 혼란을 막기 위해2일 짐바브웨 준비은행은 1조 달러를 새로운 1달러로 개혁하는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였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급속하게 진행되었던 개혁과 국민경제의 혼란 때문에 초인플레이션 상황은 지속되었고, 결국에는 자국 화폐를 포기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유고슬로비아에서는 1966~1994년 사이에 6번(1990~1994년 중 5번)에 걸쳐 단기간에 반복적으로 자국통화의 호칭단위가치를 절하하여, 20세기 후반 들어 최악의 리디노미네이션을 경험하는 국가가 되었다. 리디노미네이션의 실패 사례를 보면 공통적으로 선진국보다는 경제가 불안한 동구와 남미 국가들이 대다수다. 이들 국가들의 리디노미네이션은 세부적 계획을 가지고 서서히 진행된 것이 아닌 단기간에 극격히 개혁이 진행됐다는 특징이 있다.3. 북한의 리디노미네이션리디노미네이션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실시시기, 화폐단위 절하비율과 호칭, 사전공고, 화폐 교환방법 등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 리디노미네이션은 별다른 준비 없이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다음의 기사 내용은 준비 없이 진행된 2009년 리디노미네이션 당시의 상황을 나타낸다.“화폐 개혁 실시 당일, 도시 주민들은 시골 사람들이 아직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시골에 물건을 사러갔다. 신의주에서는 학교 선생님들까지 수업을 제쳐놓고, 부랴부랴 자전거 타고 시골에 쌀을 사러 나갔다. 갑자기 도시 사람들이 몰려와 쌀 1됫박에 3만원까지 주고 사가자 쌀을 판매한 농민들은 그 순간에는 좋아했지만, 곧 허탈해할 수밖에 없었다. …(중략)… 이틀 전부터 미화 시세가 갑자기 올랐지만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북한 당국이 리디노미네이션을 급속하게 시행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첫째로 달러라이제이션(dallarization) 때문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의 시행을 미리 공지했다면 교환 한도를 넘어서는 규모의 구권 화폐가 휴지조각이 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상인을 포함한 인민들은 달러나 위안화로 환전을 하려고 했을 것이다. 이에 따라 구권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 그에 따른 공급, 배급 체계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만든 빈부격차였다면, 경제난 이후에는 시장이 확대되고 시장 내부에서 경쟁이 이뤄지면서 빈부격차가 새로운 형태로 발생했으며 또한 심화되었다. 이때에 중간상인, 대상인, 부유층은 불법적인 요소를 포함한 자본의 확보 및 축적을 하게 되며, 이는 보유 자본이 많을수록 그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처럼 비공식적인 경제활동을 통해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났고, 이는 북한 당국의 통제력 약화와 통치기반의 침식으로 이어지게 됐다. 따라서 리디노미네이션을 통해 자본의 축적 과정에 대한 추적으로 돈주 등의 부정행위들을 밝혀낼 수 있었다. 결국 이러한 계층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 사회적인 목적을 내포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리디노미네이션을 빠르게 진행하여 돈주들의 자본의 잠식 및 구권 화폐의 현물화, 혹은 달러화 등을 막아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III. 리디노미네이션이 북한 인민에 끼친 영향1990년 중반 심각한 경제난과 함께 배급제가 무너지면서 기존 농민들이 개인부업으로 생산한 소량의 농축산물이 거래되던 농민 시장은 비공식적인 상설시장으로 변모했다. 식량 부족으로 인해 아사 직전의 주민들은 스스로 먹고 살아야했기 때문이다. 시장의 확대가 점차 심화되자 북한 당국은 2003년도에 시장을 합법화했고, 이에 따라 종합시장이 생겨났다. 시내 주택가, 역전 등지에 시장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거래 품목 및 시장 형태도 다양화 됐다. 이는 시장을 합법화하여 시장 사용료와 국가 납부금을 거둬들이려는 북한당국의 목적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의도와는 다르게 비공식 부문의 경제 기반은 강화되는 반면 계획 경제 기반은 서서히 무너져 갔다. 이에 2005년 후반기부터 위기의식에 의한 장마당의 통제 조치를 시행하게 된다. 정해진 시간 동안만 장사가 가능해졌고 연령의 제한도 생겨났다. 하지만 주택가에서는 단속을 피해 창고 내부에 물건을 진열하고 품목을 쓴 종이만 가지고 나와서 장사를 하는 변형된 형태의 시장이 생 의류를 판매하는 장사를 했습니다. '화폐교환'이전에는 매일 쌀 1.5kg 분을 벌었지만, '화폐교환' 이후에는 하루 벌어 살 수 있는 쌀이 반kg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집을 팔고, 남의 집 창고를 빌려 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2010년 6월 청진시 출신의 60대 여성의 인터뷰)“'화폐교환' 이후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늘어났어요.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살아갈 방법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2010년 12월 나선특별시 출신 40대 여성)실제로 리디노미네이션 후의 시기가 고난의 행군 시기보다도 어렵다는 증언들이 있다. 물론 고난의 행군 시기와 그 양상은 다소 다르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식량이 부족해서 어려웠지만, 화폐교환 시기에는 식량 부족이 아닌 ‘사람들 주머니를 다 털어버린’ 화폐 개혁의 영향으로 사정이 나빠졌다는 것이다. 2010년 1월에는 화폐개혁의 영향으로 많은 인민들이 죽었는데, 식량이 부족해서 죽은 게 아니고, 시장에 쌀이 풀리지도 않고 시장에 나와도 살 돈이 없어서 죽은 것이라고 한다. 화폐개혁 이후 식량 문제로 인해 인민의 일상도 영향을 받게 됐는데, 그 중 하나는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구권 화폐가 종잇조각이 돼버리자 장사로 먹고 살던 집일수록 큰 피해가 입게 됐다. 식량 문제까지 악화되니 식구들의 끼니 연명이 어려워진 처지에 돈이 많이 드는 공부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원산시 조군실사범대학의 경우 화폐개혁 후 2013년 4월에만 16명의 학생이 자퇴를 했다고 한다.반면 흰쌀밥을 정상적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일부 있었는데, 외화를 벌어들이는 무역일꾼들이나 화폐개혁에 살아남은 일부 돈주들이라고 한다. 이로써 북한 당국이 리디노미네이션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달러라이제이션 방지와 중간상인, 대상인, 부유층 세력의 축출을 통한 시장 및 시장경제활동 억제는 실패한 듯 보인다. 도리어 리디노미네이션은 영세한 상인이나 구루마꾼 등의 하층민에 큰 타격을 주었다.렸다.
    사회과학| 2014.03.17| 10페이지| 4,300원| 조회(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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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큐멘터리 영화 ‘어떤 나라(A State of Mind)'를 보고
    다큐멘터리 영화 ‘어떤 나라(A State of Mind)'를 보고행렬 전체가 다리를 곧게 펴고 한 몸처럼 절도 있게 행진하는 군인들, 한 손에 꽃을 들며 환호하는 군중의 과장된 모습. 우리나라의 북한관련 뉴스 자료화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신기하리만치 일사분란하고, 다소 과장되고 경직돼 보이는 모습들을 통해 우리는 북한을 ‘이상한 나라’로 쉽게 낙인찍곤 한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전체가 하나처럼 움직이는 사회, ‘개인’은 없고 강요된 전체만 있는 사회, 북한은 그런 폐쇄적이고 경직된 사회라고만 생각했다. 가장 가까이 있지만, 가장 제대로 알기 어려운 나라가 북한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도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고립되어 있으며 가장 오해받고 있는 나라”라고 소개되는 북한은 아마도 가장 가까운 이웃인 대한민국의 오해를 가장 많이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영국인 감독 대니얼 고든(Daniel Gordon)에 의해 만들어진 북한 관련 3부작 다큐멘터리 중 두 번째 작품인 ‘어떤 나라(A State of Mind)’는 두 북한 소녀의 집단체조 훈련을 중심으로 북한의 모습을 담고 있다. 무서울 정도의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집단체조의 모습이나 만수대 앞에서 헌화하며 수령을 찬양하는 이들의 행렬은 그들을 향한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반면, 끈끈한 유대감을 보이는 현순과 송연의 가정이나 두 소녀의 평범한 일상은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 자막이 필요 없는 두 소녀의 일상을, 영어로 흘러나오는 내레이션을 통해 설명을 듣자니 기분이 좀 묘하기도 했다. 우리와 가장 닮은 그들의 모습을, ‘제 3국’의 시선을 통해서만 깊숙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통일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되기도 했다. 우리는 ‘푸른 눈의 관찰자’가 아니라 통일을 준비해야 하는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어떤 나라(A State of Mind)'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구경거리로서의 북한이 아닌 언젠가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할 이들인 북한의 모습을 담고 있었기에 더 깊은 울림을 주었다.“장군님을 모시고 행사할 그날을 그리며 아픈 것도 참고 훈련을 합니다.” 현순의 인터뷰를 듣고 나니 역시 남한 사람들 입장에서 가장 납득하기 힘든 부분 중 하나가 김일성 김정일 부자(夫子), 이제는 김정은까지 이어져 내려온 국가 일인자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흥얼거리는 노래에서도 매번 장군님이 나왔다. 매일 피땀 흘려 하는 훈련도 장군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란다. 이러한 모습들은 오늘날의 남한 사람들에게는 이상하다 못해 우스꽝스러워 보이기까지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개그 프로그램에서 묘사하는 북한 사람들은 특유의 북한 사투리를 사용하며 수령님을 찬양하고, 남한의 관객들을 그것을 보며 웃는다. 요즘 같은 세상에 한 인간을 향해 그토록 찬양하며 헌신을 바치는 북한사람들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그들은 순박하다 못해 어리석고 비이성적이라는 판단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대니얼 고든의 북한 시리즈 3부작 중 첫 작품인 ‘천리마축구단(The Game Of Their Lives)’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하곤 했다. 만수대 앞에 선 지난 66년 런던월드컵의 축구 영웅들은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수령님 얘기를 하다 복받쳐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북한 주민들의 태도와 현순과 송연이 시종일관 장군님을 칭송하는 모습은, 영화를 보는 동안 그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이해 가능한 것이 되었다. 그들이 속한 사회에서는 그것이 당연한 삶이기 때문에 우리로서 이해하기 힘들 북한 주민들의 태도도 그들이 이상해서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지구상에서 가장 현란한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집단체조의 왕국”이라는 영화 속 설명처럼 6천 명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기교 넘치는 동작과 1만 2천여 명의 사람들이 관중석에서 보여주는 화려한 카드섹션 장면은 가히 장관이었다. 그야말로 집단주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했다. 엄청난 스펙터클이 주는 집결효과도 당이 의도한대로 상당할 것 같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집단주의의 스펙터클을 보는 동안 느끼는 놀라움이나 경이감도 컸지만 ‘누군가 실수하지는 않을까’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집단체조(mass games) 자체가 한 사람의 실수가 전체를 망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현순이나 송연이, 혹은 이름 모를 어린 소년?소녀가 실수를 해서 큰 곤경에 처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긴장이 됐다. 한 사람의 실수도, 혹은 한 사람의 개인주의도 허용하지 않는 곳이 바로 북한이라고 생각하니 북한 사회를 향한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를 이룩한 사회라고 ‘자족’하는 남한에서 노조를 허용하지 않는 대기업이 존재한다는 사실 역시 북한의 무서운 집단주의와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영화 ‘어떤 나라(A State of Mind)'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북한의 또 다른 모습은 폐쇄성이었다. 그동안의 학교 교육이나 미디어를 통해 추상적으로 느끼는 폐쇄성이 아닌 현순과 송연의 집 안을 들여다보며, 혹은 그들의 일상생활을 따라다니며 볼 수 있는 구체적인 북한의 폐쇄성이었다. 현순의 집에는 북한의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라디오가 설치돼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국영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오며 이 라디오는 소리를 줄일 수는 있지만 전원을 끌 수는 없다고 했다. 이 같은 설명을 들으며 조금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등장하는 텔레스크린이 떠올랐다. 물론 라디오를 통해 북한 주민들을 감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고 선전하는 수단이라는 측면에서는 어딘가 닮은 듯 보였기 때문이다. TV에서는 국영방송 한 채널만이 나오고, 어린아이들 대상의 만화 프로그램에는 군복을 입은 다람쥐가 등장하며 전투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송연의 가족이 휴일을 맞이해 평양에서 떨어진 지역의 협동농장을 방문할 때는 허가증이 필요했다. 이러한 모습들은 역시 ‘그들’과 ‘우리’는 다른 체제 속에 살고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영화 속에서는 평양을 일종의 선전용 수도(show case city)라고 소개한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북한의 모습은 흔히 남한 사람들이 ‘북한’하면 떠올리는 ‘빈곤’, ‘꽃제비’, ‘고난의 행군’과 같은 ‘가난의 단어’들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지하철을 타고 통학을 하거나 출퇴근하는 시민들, 고층의 아파트, 집 안 식탁 위 차려진 음식들은 그동안 생각해온 북한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텅 빈 평양의 도로나 매일 밤 일상적으로 정전이 발생하는 모습, 그리고 과거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은 왠지 모를 촌스러움은 북한이 우리나라에 비해 확실히 경제적으로 낙후돼 있음을 말해주는 듯 했다. 뿐만 아니라 꽤 쌀쌀할법한 날씨에 야외의 맨바닥에서 체조연습을 하는 소녀들의 모습을 보며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이 일기도 해다. 아버지가 김일성대학의 교수라는 송연의 가정은 비교적 풍족해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의 행군 때는 예외 없이 자녀의 생일에도 ‘통강냉이죽’을 쑤어 먹어야 했다고 했다. 그러한 사실은 북한과 남한 사이의 현실의 간극을 더욱 선명히 보여주는 듯했다.영화 속 현순과 송연의 일상을 따라가며 북한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동안 남과 북의 극명한 차이를 절감하며 적잖이 놀라기도 하고, 친근한 모습에 깊이 공감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자유 민주주의의 측면에서 우리보다 열악한 북한의 현실을 보며 북한을 향한 우월감 섞인 동정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고민하다보면 ‘과연 우리의 삶이 모든 면에서 그들보다 나은가’ 하는 질문에 이르게 됐다. 장군님을 위해 고된 훈련을 이겨내는 현순의 삶이 남들보다 더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밤늦도록 비싼 사교육비까지 지출해가며 공부하는 대한민국의 청소년들보다 불행한 것일까, “우리당이 제일이요, 사회주의 제일이세”를 신명나게 불러대는 현순의 노래가 “짜릿한 이 밤을 함께”하자는 남한 아이들의 노래보다 더 이상한 것일까. 인민군대를 보며 감탄하고 장군님을 떠받드는 현순의 할머니는, 지난시절의 개발독재를 향한 향수를 지닌 채 독재자를 향한 존경심을 내비치는 우리네 할머니들의 모습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사회과학| 2014.03.17| 4페이지| 2,500원| 조회(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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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1’을 읽고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1’을 읽고한국사회는 역사교과서 논쟁이 한창이다. ‘친일적’ 시각의 뉴라이트 계열 교과서가 문제가 되는가 하면, ‘아웅산 테러’를 다루지 않은 ‘좌편향’ 교과서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는 한국 사회에 여전히 진보와 보수 간의 갈등이 첨예함을 방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역사는 이렇게 ‘현재의 정치’에 휘둘리고, 평가되고, 재단되는 것이었다. 때문에 첨예한 이념 갈등과 전쟁, 그리고 분단을 경험한 한국 사회에서 역사연구가 어떤 길을 걸어왔을 지는 어렵지 않게 예상해볼 수 있다. 과거의 어떠한 부분은 가려지고 지워지고, 또 잘려져야 했을 것이다. 특히 한국 근현대사에서 공산주의 부분은 최대한 잘라내고 또 잘라낸, 한두 줄만의 문장으로 교과서에서 접할 수 있었다. 합의를 모르는 극단적인 정치적 갈등과 역사를 둘러싼 논쟁은 어느 편에 서서 봐도 우리의 근현대사에 대해 부족한 이해와 회의감이 계속되게 했다.스칼라피노 교수와 이정식 교수가 함께 쓴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는 ‘현재’라는 분명한 ‘편집 기준’을 가지고 편집되고 단순화 된 역사만을 접했던 이들에게 비교적 ‘객관적인’ 역사를 전해줄만한 책이라 할 수 있다.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는 분명하게 어느 한쪽에 자리를 잡고 확실하고 명쾌한 사실들을 전달하는 데 주력하려는 듯한 다른 역사서들과는 달랐다. 특히 다양한 사료에 접근하고 그 사료들을 저울질해보며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사용하는 과정이 돋보였다. 독자로 하여금 근거가 불충분하고 한쪽으로 치우쳐진 단정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유추한 바를 함께 고민하고 판단할만한 여지를 주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반쪽 교과서’를 미심쩍으나마 재미있게 공부했던 나에게는 남은 반쪽 이상의 것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한 때로는 부끄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우리의 역사를 충분히 납득 가능한 맥락 속에서 읽을 수 있어 유의미한 시간이었다.제 1장 한국공산주의의 기원‘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1’의 첫 장은 한국 공산주의의 기원에9세기 말엽부터 시베리아로 이주한 한인들과, 만주에 거주한 43만에 달한 한국인들은 일제 식민지 현실 속에서 러시아 혁명에 역동적으로 대응하며 공산주의의 기운을 축적하기 시작한다. 볼셰비키를 지지하고 반제국주의를 주장하는 이동휘와 그가 이끄는 한인사회당을 중심으로 흔히 ‘상해파’라 부르는 세력이 형성되고, 일크츠크에서는 철저히 러시아화된 한인들을 중심으로 한 ‘일크츠크파’가 형성된다. 그리고 이 두 세력은 이후 끊임없는 파벌 싸움의 주 세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후 임시정부를 비롯한 독립운동 역시 상해파와 일크츠크파 간의 파벌 싸움에 의한 끊임없는 혼란을 겪게 된다. 특히 공산주의와 민족주의, 그리고 각 진영 내의 파벌 갈등은 코민테른과 같은 외부 세력의 영향을 받으며 변화를 거듭한다.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는 당시의 상황을 비교적 세부적으로 적으며 다양한 맥락적 상황을 설명한다. 때문에 당시 일본의 팽창과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으로 인한 혼란이 계속되던 극동의 상황을 보다 넓은 시각으로 살펴보며 훗날 일제에 대항해 조선 독립운동의 한 축을 담당한 한국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을 보다 자세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된다.식민지 민족에게 해방을 약속하며 극동에 출현한 공산주의는 당시 독립의 열망을 지닌 많은 한국인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적 가치관이 뿌리내려 있고, 집단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공산주의의 확산은 수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공산주의 운동의 확산에 제동을 건 원인 중 하나로 제기된 것은 “반체제운동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근대국가의 효율성과 능력”이었다. 일제의 식민통치는 항상 ‘악(惡)’으로 규정돼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으면 안됐다. 하지만 그러한 평가는 오히려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한 끊임없는 시도들과 그 실패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게 한다. 그런 점에서 당시 일본 식민 지배 체계에 대한 보다 객관적이고 냉정한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제 2장 시련의 시기이 책의 2장 ‘시련의 시기’는 1925년 끝없는 실패를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당시 한국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그 시각을 일본 본토로까지 확대한다. 의회정치가 시작되고 정당에 의한 정치가 이뤄지기 시작한 일본은 언론 및 출판의 자유가 보장됐고, 이로 인해 ‘프롤레타리아 문예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프롤레타리아 문예운동’은 한국인 지식인들이 급진적인 경향을 띠게 했고 이후 한국 공산주의 운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1920년대의 일본에 대한 대부분의 평범한 한국인들의 시각은 ‘제국주의’라는 한 단어를 통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동북아 팽창에 대한 야욕을 품고 한반도를 점령한 일본을, 피해자인 우리가 폭력적이고 부정적인 언어 외에 다른 표현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당시의 일본이 정치적으로, 특히 ‘민주주의’ 측면에서 큰 발전을 이루고 있었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공산주의 활동이 이뤄졌다는 것은 한국 공산주의 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 간과돼서는 안 될 부분이기도 하다. 당시 일본과 조선이 단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로만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측면의 역동성이 있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한국 공산주의 운동에서 소련에 동화된 정도의 차이에서 비롯됐던 상해파와 일크츠크파의 대립은 이후 한국 본토 내로 공산주의 운동이 확산되자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화요회와 북풍회 등 새로운 파벌이 등장했고 이들은 서로 얽히고 설켜 갈등했다. 이러한 파벌투쟁과 지도력의 부족은 조선공산당이 반복적으로 창당되고 와해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조선공산당은 만 4년이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4번에 걸쳐 창당과 와해가 반복됐다. 제 1차 조선공산당은 신의주 사건으로, 제 2차는 6?10 만세운동 전 일본경찰의 조직적 진압에 의해, 제 3차 공산당은 그 절정을 이루던 파벌투쟁과, 그로 인한 기밀 누설에 따른 일본경찰의 검거로 인해 와해되고 말았다. 제 4차 조선공산당 역시 내부분열과 경찰의 감시에 의한 밀정활동으로 인해 그 명맥이 끊어지고 만다. 결국 4차에 와해의 가장 큰 원인은 파벌투쟁과 일본경찰의 효율성이라 할 수 있다. 세계사에서 공산진영이 탄생하던 격동의 시대에, 주권을 뺏긴 약소민족으로서 독립을 위해 끊임없이 시도하고 또 분열하기를 반복하며 안타까운 발버둥을 치던 모습들은 단지 "파벌을 만들어 싸움하기를 좋아하는 것이 우리의 민족성“이라는 자학적이고 자조적인 평가로만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부끄러운 부분을 삭제하고 축소하는 것이 ‘자학적 사관’을 피하는 길이 아니라, 보다 다양한 설명과 성찰이 가능한 넓은 시각과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이 아닐까.고등학교 국사 과목의 근현대사 부분에서 신간회는 시험문제로 자주 출제되며 강조되곤 했다. 교과서에서 강조했던 것은 신간회는 좌우익 세력의 합작에 의해 탄생된 항일 단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좌우간의 결합이라는 의미 있는 창립 이후의 해체의 과정은 오히려 더욱 강조되어야 할 부분처럼 느껴진다. 다시금 반복된 분열에 의해 해체된 신간회의 해체 과정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며 더욱 안타까워진다. 공산주의자들은 국제 공산주의운동의 영향력 아래 있었고, 온건파에 대한 주도권 경쟁에 힘을 쏟아야 했던 공산주의자들은 결국 코민테른의 결정에 따라 신간회 해소를 주장하게 된다. 민족의 해방을 위해 힘을 쏟던 이들의 목표가 일제당국과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순간에 느끼는 안타까움을 통해 ‘왜 역사를 연구하고 공부해야하는가’에 대한 답이 더욱 명확해진다. 조직을 중시하는 한국문화와, 외세의 과도한 영향, 분산적이고 자족적 태도 등으로 인해 계속된 파벌투쟁을 보고 있노라면 식민치하의 한반도 상황에 더욱 큰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이 같은 안타까움을 통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고민하는 것을 배웠다며 지금과 같이 분열과 갈등을 반복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스칼라피노, 이정식 교수의 연구는 1973년 출판됐고 한국에서는 1986년 출간됐다. 한국공산당에 대한 끈기 있는 연구 성과인 이 책은년대나 그 후로 30년이 가까이 지난 지금의 2013년에나 한국사회에 여전히 많은 것들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공주의적 시각이 지배적이던 당시 한국과 미국의 사회분위기를 고려할 때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서술에 있어 저자들의 판단에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기도 한다. 이 책의 2장 ‘10. 제 1세대 한국 공산주의자들의 사회경제적 배경’ 부분을 보면 “공산당에 참여한 상당수는 전반적인 생활조건, 특히 경제적 처지에 깊은 불만을 품은 젊은 지식인”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근거로 든 통계표에서 생활고에 의해 공산주의운동에 가담한 비율은 3.6%로 유의미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또한 계속된 공산주의 운동의 실패와 그 원인을 “이론에 도취된 젊은이들에 의해 전개된 소부르조아 운동”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공산주의 운동의 동기를 경제적 이유는 이론에 도취된 젊은이들의 치기로 판단하는 것은 전체 공산주의 운동의 동기를 너무 단순화 시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한반도 한 편에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일련의 과정에서의 태동기와 같았던 초기 공산주의 활동의 동기를 파악하기 위해 좀 더 의미 있는 연구가 이루어져야 함을 느꼈다.제 3장 노동자, 농민, 유격대한국의 공산주의 운동은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으며 코민테른의 결의에 충실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특히 1928년 코민테른 6차 대회의 결의안과 ‘12월 테제’에 따라 노동자와 농민을 공산주의 기치 아래 동원할 것을 요구받았으며, 이는 신간회의 해소와 당의 전면적 재조직 요구로 인한 공산당의 부재로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한국 내에서 활동할 수 없게 된 공산주의자들은 만주와 일본, 시베리아, 중국 본토 등의 기지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중국과 일본의 공산주의 운동 정세에 휘말리고 코민테른의 결정에 좌우되는 한국의 공산주의자들을 보면 국제 공산주의 운동은 소련의 국익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비난하며 전향한 일본의 공산주의 나베야마 사다치 했다.
    사회과학| 2014.03.17| 5페이지| 3,000원| 조회(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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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 종파 사건’ 정책과 정치의 동학
    ‘8월 종파 사건’: 정책과 정치의 동학- 목차 -Ⅰ. 서론Ⅱ. ‘8월 종파사건’ 개요Ⅲ. 선행연구 분석Ⅳ. ‘8월 종파사건’의 의의Ⅴ. 결론Ⅰ. 서론최근 북한이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숙청을 단행함에 따라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북한 권력의 2인자로 알려졌던 장성택의 실각과 처형은 그가 김정은 제1비서의 고모부라는 점으로 인해 더욱 부각되며 김정은 체제의 권력구도에 대한 다양한 예측들이 나오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숙청’이 주는 충격성을 이용해 센세이셔널리즘적인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기도 하다. 특히 김정은 개인의 폭력적 성향을 강조하며 이후 ‘숙청 리스트’에 오를 인물들과 한국 도발 가능성을 점치느라 분주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이러한 개인들의 권력욕과 투쟁적 모습을 부각시키는 접근은 한편으로 우려스럽기도 하다. 류길재는 1956년 발생했던 ‘8월 종파사건’에 관한 연구에서 8월 종파사건을 김일성의 권력 숙청사의 측면에서 접근하게 되면 북한 역사에서 활발하게 이뤄졌던 정책 갈등과 그로 인해 발생한 정치적 역동성을 개인의 권력욕으로 환원시키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물론 최근의 장성택 부위원장과 그의 측근들의 숙청 과정에서 드러난 북한 사회의 비민주성과 열악한 인권 상황이 주는 충격을 간과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사회가 북한이라는 대상을 무엇을 위하여, 어떠한 방법으로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앞서 언급한 ‘8월 종파사건’과 그와 관련된 연구들은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Ⅱ. ‘8월 종파사건’ 개요흔히 ‘8월 종파사건’으로 불리는 사건은 북한에서 1956년 8월 전원회의를 전후로 일어난 반(反)김일성 세력의 반발과 일련의 권력 갈등 현상을 일컫는다. 전후(戰後) 북한사회의 경제 재건과 권력 재편 과정에서 발생한 권력 갈등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권력 갈등은 전후 경제 재건을 위한 경제 정책에서의 중공업 우선 노선을 둘러싼 갈등과, 소련의 8월 종파사건’을 전후로 한 권력 갈등은 오늘날의 일원적인 북한사회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으며,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권력 갈등의 결과가 사회주의 이행기 북한의 역동성과 다원성을 소멸시켰다고 지적하기도 한다.Ⅲ. 선행연구 분석‘8월 종파사건’은 1950년대의 북한의 변화를 이해하기 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이다. 오늘날의 사회주의 체제의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8월 종파사건’에 관한 다양한 연구들이 존재한다. 북한 관련 연구는 사료에 대한 접근의 문제로 인해 다양한 측면의 분석이 가능한데, 동구 사회주의 붕괴로 인한 다양한 자료에 대한 접근이 좀 더 용이해짐에 따라 과거의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의 분석이 늘어나게 됐다.백준기는 「정전 후 1950년대 북한의 정치변동과 권력재편」에서 다른 연구자들과 같이 한국전쟁 후 북한의 1950년대를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했던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가장 풍부했던 시기로 보고 있다. 50년대를 거치며 북한은 권력구조적으로는 단일지도체제의 전일화가 이뤄졌고 사회경제적으로는 공업화와 농업집단화를 통해 전후복구와 경제발전이 이뤄졌으며, 외교적으로는 북한의 자주적 외교 노선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마지막으로 대남정책에 있어서는 경제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한 통일 전략을 수립함과 동시에 긴장 완화를 위하 제안을 시도했다고 정리하고 있다. 특히 백준기는 1950년대 북한 사회의 정치적 변화에 있어 사회경제적 요인이 다른 분야의 변화를 초래한 기본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그러한 정치적 변화의 정점에 있는 사건이 바로 ‘8월 전원회의 사건’이라고 주장한다.특히 그는 사회경제적 요인에 관하여 설명함에 있어 전후 복구 과정에서의 경제 정책 수립 문제가 아니라, 집행 과정에서의 문제로 인해 권력 갈등이 표면화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백준기의 연구가 다른 연구들과 비교했을 때 차별성을 갖는 주장이기도 하 위해 ‘종파’라는 용어의 사용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그에 따르면 ‘종파사건’이라는 명명은 권력투쟁의 승리자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서 역사적 객관성이 떨어지는 표현이다. 때문에 그는 정당체계에서는 일반적인 ‘당내 경쟁(intra-party competition)'의 개념을 통해 ’8월 종파사건‘을 분석하고자 했으며 ‘종파’라는 용어 대신에 보다 가치중립적인 ‘분파(fraction)'라는 용어를 사용해 분석을 진행하였다. 역사 연구, 특히 그중에서도 한국에서 이뤄진 북한사회에 관한 과거의 연구들이 다소간 냉전적인 시각에서 이뤄지거나, 지나치게 가치가 개입됐던 점을 고려할 때 “‘가치평가적 의미’를 탈각”하려 노력한 점은 의미 있게 평가할만하다.서동만은 그의 저서 『북조선사회주의 체제성립사 1945~1961』의 ‘개인숭배 비판과 「8월 종파사건」’ 부분에서 ‘8월 종파사건’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그의 저서는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서적으로 참고문헌 부분만 50페이지에 이른다. 참고문헌들의 면면을 보면 『김일성 저작집』과 로동신문 등을 포함한 북한 내무문서에서부터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의 다양한 자료들이 등장한다. 이렇게 시공간적으로 풍부한 자료들을 통해 북조선의 사회주의 체제가 성립돼 가는 과정과 북한 사회의 변화상을 종합적으로 담아내고 있다.서동만은 ‘8월 종파사건’ 부분에서는 주로 로동신문과 북한 내부 논문 등의 자료들을 주로 사용하였다. 특히 인물들의 직위 변화를 통해 당시 권력 갈등으로 빚어진 내부의 반응과 정치변동을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저자의 해석과 예측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분석은 ‘파벌’이라는 틀로 당시의 권력 갈등을 분석하는 것과 비교해 보다 세부적이고 정확한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것 같다. 스칼라피노?이정식의 『한국공산주의운동사3: 북한편』에서도 저자는 ‘8월 종파사건’에 접근함에 있어 파벌관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남한 측 자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파벌이 뚜렷하게 구분되거나어 많은 것을 놓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서동만이 당시 당 중앙위원의 구성을 좀 더 세부적으로 구분한 것(빨치산파, 갑산계, 연안계, 손련계, 국내계(북), 국내계(남), 테크노크라트, 기타?불명)과 직위 이동을 면밀히 분석한 것은 당시의 권력 관계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단순한 권력욕에 의한 권력 투쟁을 넘어 사회주의 이행기의 북한 권력의 역동성을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한다.이종석은 「중?소의 북한 내정간섭 사례연구: 8월 종파사건」에서 위의 연구들과는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종석은 ‘8월 종파사건’이 북한의 외교 관계에 미친 영향에 초점을 두고 분석을 진행하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강대국과 약소국의 동맹관계는 일반적으로 ‘안보’와 ‘자율성’이 교환되는 ‘비대칭동맹(asymmetric alliance)’이라 할 수 있는데, 북한과 중국?소련 사이의 관계는 ‘8월 종파사건’을 거치며 전형적인 비대칭동맹이 아닌 ‘내정불간섭형 비대칭동맹(Non-intervention asymmetric alliance)’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내정불간섭형 비대칭동맹’은 강대국과 약소국 간에 안보와 전략적 이익이 교환되는 관계를 일컫는다.1956년 8월 전원회의에서 윤공흠의 발언으로 시작된 반(反)김일성 세력의 저항은 당 내 김일성 지지 세력의 역공을 받고 연안파 일부가 즉시 중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이후에 최창익과 박창옥의 발언이 이어지기는 했지만 반(反)김일성 세력을 형성한 연안파와 소련파 인사들은 ‘반당종파행위’로 인해 탈당, 철직됨으로써 실패하게 된다. 8월 전원회의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중국으로 망명한 연안파 인사들과 주소대사 이상조 등에 의해 중국과 소련에 알려졌고 이에 중국과 소련은 내정간섭을 결정하게 된다. 중국의 팽덕회와 소련의 미코얀 등이 참석한 대표단의 방문으로 인해 9월 전원회의에서 8월 전원회의에서의 결정 사항들이 일부 번복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은 곧 다시양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즉,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상승함에 따라 김일성 지도부의 자주 외교 추구에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종석은 북한이 자주외교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의 대외적 측면을 중시하고 있지만, 자주적 외교를 위한 북한 지도부 스스로의 노력에 더 초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즉 ‘8월 종파사건’으로 인한 중?소의 내정간섭을 경험한 김일성 지도부가 자율적인 정권을 세우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고 이러한 일련의 경험이 이후 “사상에서 주체, 정치에서 자주, 경제에서 자립, 국방에서 자위라는 형식”의 주체사상을 내세우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외부적 요소로 인한 북한 내부의 변화에 있어서 그들 스스로가 내세운 바를 과대하게 해석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Ⅳ. ‘8월 종파사건’의 의의1950년대 북한 내부의 권력 갈등이 폭발한 ‘8월 종파사건’은 김일성의 절대적인 승리로 끝을 맺었다. 그리고 이러한 권력 구조의 변화는 이후 김일성 유일지배체제의 토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당 내에 김일성 반대세력이 활동할 공간이 완전히 사라지게 됨으로써 권력구조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김일성 지지 세력으로의 공고화가 이루어진 것이다.김일성 반대 세력은 소련과 중국이라는 우호적인 외세와 스탈린 사후의 정세 변화에도 불구하고 공고한 김일성 지지 세력으로 인해 어이 없이 실패하고 말았다. 반(反)김일성 세력의 비조직적이고 미숙한 저항은 상대적으로 김일성의 리더십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백준기는 당시 김일성이 1950년대의 권력 갈등에서 승리하고 절대 권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당시 김일성을 대체할 마땅한 리더십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있다. 당시의 김일성은 대다수의 당 중앙위원들과 인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던 반면 연안계와 소련계의 반김일성 세력은 과거 활동 공간이나 경험이 갖는 한계로 인해 특권의식을 형성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인민 대중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일성은 일련의있다.
    사회과학| 2014.03.17| 7페이지| 3,500원| 조회(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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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 Deviants in Dead Poets Society
    The Deviants in Dead Poets SocietyThere is a school which pillars are tradition, honor, discipline and excellence. The film, Dead Poets Society is a story about boys and their teacher in prestige preparatory school, Welton Academy. This film, questioning conformity and being touching, won the Academy award for Writing Original Screenplay. Even though this film is set in the 1950’s on America, the story is more similar to the realities of Korean education. Students are obliged to be prepared for college, and teachers push them to enter the prestige college with orthodox teaching method. John Keating, Neil Perry and Todd Anderson in the film, Dead Poets Society, were against to this conformity; therefore, they can be called as deviants.John Keating, a new English teacher in Welton Academy, let his students call him captain unlike every other teacher called Mr., and he told his students ‘seize the day’ referring Latin ‘Carpe diem.’ (Weir, 1989) His teaching method was apparently different from orthodox method because he tried to change the conformity of students by teaching poetry, and it caused trouble between Keating and other teachers even some students who wanted to concentrate on preparing themselves for college. In Korea, there are teachers who have problem like a Keating. They want to change Korean education system, which teachers educate students only aiming at entering a college, and teach students more than text book. As a result, most directors of school regard them as deviants and do not admire the teachers like a headmaster of Welton.Neil Perry seemed not only normal but also outstanding among the Welton students. He was active and had passion except when he was with his father. He played a leading role when he reorganized Dead Poets Society where Keating had been a member. However, when his autocratic father enforced him quit acting which he intensely wanted to do, he committed suicide. Even though suicide is not criminal, it is deviance. (Thio, 1991) He became a deviant because his father repressed him until he could not cope with the repression. Like Neil, usually person who acts normally is not regarded as deviant until they show extreme decision or act in Korean culture. In short, Neil could be referred as potential deviant.Todd Anderson who shouted “Oh, captain, my captain” when Keating left a classroom lastly had been inhibited and timid. (Weir, 1989) He was too shy to read poem in front of his friends, and he did not have that many friends. If he had not known Neil, he could not get along with the members of Dead Poets Society. People like a Todd are often regarded as deviants in Korea because they usually have troubles in social life. In Korean culture, group life is important. Consequently, inhibited person is treated as deviant. However, Todd changed after he met Neil and his teacher, Keating. He started to get along with his class mate and show what he was feeling even he showed courageous act when Keating left a classroom.Keating and his students Neil and Todd were different from others. Because of the difference, they were in trouble and thought deviants which people regard as something negative. (Thio, 1991) However, it is difficult to definite what deviant is and to distinguish whether deviant can be positive. Like what Keating emphasized.ReferencesHenerson, D. (Producer), & Weir, P. (Director). (1989). Dead poets society [Motion Picture].United States: Touchstone Pictures.Thio, A. (1991). Bridge to college success: Intensive academic preparation for advancedstudents. In H. Robertson (Eds.), Deviance (pp. 137-143). Boston: Heinle & Heinle publishers.
    인문/어학| 2011.12.09| 2페이지| 2,500원| 조회(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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