蠅파리汽車の中で 기차 안에서あくびばかりしている人の隣に坐った 연신 하품만 해대는 사람 옆에 앉았다窓わくに一匹 蠅が死んでいる 창틀에 한 마리 파리가 죽어있다隣の人は あくびをし 옆자리의 사람은 하품을 하며死んだ蠅をプッと吹きとばした 죽은 파리를 '후' 하고 날려 버렸다それからまた あくびをし 그리고 또 하품을 한다とめどなく あくびをし 끝없이 하품을 한다かなしげに 自分の掌を見ていた 슬픈 듯이 자기의 손바닥을 보고 있다それから 自然に ゆっくり 그리고 자연히 천천히頭を下げ 고개를 숙인다ふかく頭を下げ 깊숙이 고개를 숙인다ゆっくり眠りの方へ沈んでいった 천천히 잠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眠ってしまったら 잠들어 버리면人はもうあくびはしないもんだ と 그 사람은 더 이상 하품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私は思い 나는 생각한다床を見た 마룻바닥을 봤다死んだ蠅はそこに じっと死んでいた。 죽은 파리는 거기에 쭉 죽어 있다.한 학기동안 교수님과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함께 일본의 시를 감상하면서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시에 대해서 제 생각을 써볼까 고민하면서 책을 뒤적이다가 天野忠의 '動物園に珍らしい動物' 라는 시를 읽고 天野忠이 쓴 시를 찾아보던 중 ' 蠅'라는 시를 읽고 써 보기로 했습니다. 1909~1993년을 살았던 그는, 그가 살았던 시대가 격변하는 때였던 것만큼 삶의 본질적인 문제, 자기 정체성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시로 풀어낸 작품이 많았습니다. '蠅'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다 창틀에 죽어있는 파리를 '후'하고 불어버리는 옆자리의 남자를 소재로 한 시입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 사이에서 항상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만드는 모티브를 제공해주는 시였던 것 같습니다. 하찮은 미물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파리라는 생명을 가진 존재에게는 죽음으로 인해 세상이 모두 끝났음을 의미하고 있는데도 우리 인간들은 그것의 소중함으로 간과해 버리고 마는 것 같습니다. 궁극적으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매개체로써 파리라는 소재를 택한 것이겠지만, 그만큼 하찮은 존재이면서도 하나의 생명으로써 소중한 것이기도 합니다. 뉴스나 신문을 보면 하루에도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일어나고 경제 사정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매일같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알려진 사람이 죽으면 한번도 본적은 없어도 가슴이 아파 오는 것을 느낍니다. 오늘도 레이건 대통령의 사망소식을 듣고 잠시 우울했었습니다. 그 사람을 내가 충분히 알고 있다거나 존경했었기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슬펐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내가 가보지 못한 장소에서 죽었다는 얘기를 듣는 그 순간에는 잠시 가슴이 아프기도 하지만 시에서 창틀에 죽어있는 파리를 불어서 날려버리는 사람처럼 이내 무심해져 버리지는 않나 자문해 봅니다. 나는 어떤가.. 나도 수많이 뉴스에서 많은 이의 부고를 접하지만 먼저 세상을 져버렸다는 연민을 넘어서 그 사람을 진정 애도한 적이 있었는가 생각해 봤습니다. 단지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어서 나하고는 관계없는 사람이어서 혹은 그런 불운한 사고가 나한테 일어나지 않았던 것을 가슴 쓸어 내리며 안도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봤습니다. 누구도 죽음을 피해 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일을 응당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태도에서 무서움을 느낍니다. 단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슬픔에 대해 너무 소극적으로 여기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물론 항상 죽는 것을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면 살아가는 순간마저도 누리면서 살수 없게 될 수 있어 애써 외면하게 되는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주위를 돌아보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삶을 더 가치 있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한 걸음씩 내딛어야 하겠습니다.또 '기차 안' 이라는 공간도 생각해봤습니다. 누가 같이 타고 있는지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어디까지 가는 것인가를 모르는 상황, 한 사람 한 사람 속해있는 곳은 달라도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 그곳에 함께 있다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는 타인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서로에게 낯선이로 생각되어지는 기차라는 공간의 익명성, 서로서로 모르는 기차라는 공간 속에 있는 사람들은, 함께 있지만 서로에게 무신경한 태도, 모든 것을 자신을 기준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생각됩니다. 사회 속에서 요구되어지는 타인에 대한 배려나 전체를 위한 사람의 방식에서 벗어나서 자신만을 내세우는 이기적인 모습들, 어쩌면 원래 사람이 가지는 본래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사회라는 테두리를 만들어 살아가는 동안에는 어쩔수 없이 그곳의 습관에 길들여져 있으면서도 결국에는 하나의 개인일 수밖에 없는 사람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이처럼 기차는 특수한 곳이기 동시에 평범한 양면성을 가진 장소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옆자리의 사람은 연신 하품을 해대다가 잠들어 버립니다. 자기 손바닥을 슬프게 쳐다보기도 합니다. 그 동안의 삶이 지치고 고된 것이었나 생각했습니다. 하품만 하는 무신경한 옆 사람은 자신이 그 동안 얼마나 힘겹게 살아왔나 손바닥에 생긴 주름과 지친 피부들로 고된 인생을 되씹으며 파리의 몸을 무참하게 날려버린 입으로 하품을 하면서, 자신도 파리처럼 세상에서 벗어나 잠에 빠져듭니다. 시에서처럼 잠들면 더 이상 하품을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처럼 세상의 힘든 일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잠드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만큼 삶이 힘듦의 연속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물론, 잠들어서 편안함을 얻기를 원한다고 해서 죽는다는 것을 힘든 삶에 대한 돌파구로 해석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파리가 죽은 것과 비교했을 때 고생스런 삶을 살아가는 옆자리의 사람도 자신의 지루한 일상속에서 특별할 것 없는 기차 안에서의 시간들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잠시 쉰다는 의미는 어떨까 합니다. 잠시 살고 있다는 긴박감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가기 위한 기차 안에서, 잠시 모든 것을 잊고 창 밖의 풍경을 보면서 여유롭게 있을 수 있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곳을 향한다는 생각, 비록 지금은 무료해 하품만 하게 되지만, 지금의 생활을 위로 받을 수 있는 새로운 곳을 위한 대비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