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기 구조주의자 - 데리다, 라캉, 푸코1) Jacque Derrida 데리다기호학적 전통 및 후기구조주의와 더불어 Derrida는 구조주의의 하나의 큰 줄기인 해체이론(deconstruction)을 발전시켰다. 그는 해체이론을 주로 문학 분석에 적용하고 문학 주변의 철학적 가정들을 파괴하였다.철학자인 Derrida는 글쓰기(writing)에 깔려 있는 철학적 가정들이 어떤 식으로도 그것들의 의미의 보증이 될 수는 없으며 반대로 그러한 가정이 제시되어 있는 담론(discourses)들이 체계적으로 철학을 파괴해 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접근은 전반적인 해체주의적 운동을 대두시켰고 이는 특히 미국에서의 문학 연구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형식에서의 접근 방식은 아무것도 당연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유일한 지침으로 삼는 것이다. 즉 의심과 의문이 원칙(doctrine)의 수준으로까지 올라가 있는 것이다.의미에 대한 그의 생각도 해체주의적인 그의 사상을 뒷받침하고 있다. 우선 Derrida는 기호의 분리된 성격을 묘사하기 위하여 차연(differance)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는 '지연시키다'와 '다르게 하다'라는 두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니는 difer에서 연유한 것이다. 이 단어에서 알 수 있는 바, 의미란 것은 항상 지연된다고 보며 완전한 모습을 결코 드러내지 않는 기표에서 기표로의 끊임없는 지시라고 본다. 하여 Derrida에게서 의미란 고정되지 않고 표류하는 것이 되며 단지 대화를 할 때나 작품을 읽는 맥락 속에서만 잠정적으로 고정되는 것이다.그는 텍스트 분석(특히 문학작품)에 있어서 해체적 관점을 중요시 하였다. 이는 대중문화와 고급문화라는 대립이라는 '폭력적 위계질서'를 비판하는 것으로 양자 대립을 해체하고자 하였다. 양자는 반대 개념이 아니라 각각 다른 편에 의해 자극을 받고 있다는 '보충적 질서'에 편입되어 있는 것이다. 하여 이러한 반대 개념을 해체하기 위해 우월한 위치에 대한 위계 질서를 타파하고자 해체적 독서를 강조하였다. 그는 해체적 독서를 통해 독자는 작가가 의식하지 못하는 특정한 관계를 밝혀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도록 '생산적' 독서를 강조하게 되었다.Derrida의 해체주의는 Barthes이 {저자의 죽음}(The death of author)에서 밝힌 제 입장과 연관된다. 즉 저자의 비독창적인 텍스트와 독자만이 텍스트에 일시적인 통일성을 부여한다는 것 그리고 텍스트 속의 상호 교류라는 활발한 과정을 강조한 Barthes의 사상은 고정된 기의나 기호 보다는 기표 자체을 강조한 Derrida의 입장과 상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구조주의 분석은 텍스트 중심에서 '해독자'로 옮아가기 시작한 것이다.2) Jacques Lacan 라캉Lacan의 구조주의는 Freud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근원적으로 욕망의 존재임을 부각시킨다. Lacan은 소쉬르의 기호학을 바탕으로 Freud를 재해석을 시도하고 그의 저작을 통해 정신분석학을 보다 일반화 시켰다.주체 발달과 무의식에 관련된 언어학적 구조에 대한 그의 연구는 문화 연구에 영향을 미쳤다. Lacan은 Freud의 발달 구조를 후기구조주의 심리분석으로 만들고자 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구조주의의 비판적 재해석을 강조하게 되었다.Lacan은 인간이 결핍되고 상실감에 젖은 존재로서 그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며 상실의 대체물을 찾아 스스로를 위로한다고 본다. 인간에게서 완전한 순간이란 어머니와의 결합 상태에 있었으며 그 후 완전함의 순간을 찾기 위해 끝없이 추구한다.Lacan은 인간의 발달 단계를 세 가지로 가정하고 있다. 첫째는 '거울단계'이며, 둘째는 '실당기기' 게임이고, 세째는 '외디푸스 컴플렉스' 이다. 여기에서 인간이 주체성을 획득하는 과정과 언어와의 결합을 설명하고 있다. 자아에 대한 주체성 확립은 언어 없이는 불가능하며 무의식 조차 언어와의 만남을 통해 발생하게 된다. 즉 언어가 주체성을 구성하며 인간은 그 언어의 구조적 과정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Lacan이 구조주의를 넘어서는 부분은 욕망에 관한 그의 사상에서이다. 언어를 통하여 상상에서 상징으로 전화하는 행동은 어린이가 기표에서 기표로 넘어가게 하는 것이다. 욕망 자체는 고정된 기의를 찾고자 하지만 기의는 영원히 다른 기표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욕망이란 것은 메꾸어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추구가 된다.Lacan은 그의 이론에서 무의식과 주체 발달을 언어와 조우 속에서 파악하고 있으며 늘 변화 속에서 욕망의 추구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인간에게 확정되고 고정된 순간을 거부하는 것으로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자신을 보는 것이다. 이는 Lacan 역시 초기구조주의의 텍스트 내의 분석 보다는 주체와 욕망이라는 심리 분석에 중점을 두고 있으므로 초기구조주의와는 다소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3) Michel Foucault 푸코Foucault의 '계보학적'(genealogical) 분석을 통해 권력과 지식의 관계, 그리고 이 관계가 담론구성체(언술적 형식)에 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것을 밝혀 내고자 하였다. 즉 언어가 사용되는 방식과, 언어의 사용이 다른 사회적, 문화적 행위들과 관련되는 방식을 파악하고자 하였다.담론구성체란 일종의 지식의 존재 양식을 말하는데, 이것은 기존의 지식의 존재 형태로 간주되어 왔던 이데올로기, 이론, 과학, 기타 객관적 지식 등 지식의 단위들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드러나 있는 언술의 수준에서가 아니라 언술들을 조직하는 규칙의 차원에서 지식을 설명하고자 사용된 개념이다.
[제6장 구조주의](구조주의/ 소쉬르, 레비스트로스, 바르트, 알튀세르, 뒤르켐)*구조주의(Structuralism)는 매우 폭넓은 지적 분야를 포괄하는 이론으로 언어학, 인류학, 정신분석학, 사회학, 미학과 정치이론 등의 발달에 매우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다. 곧 구조주의는 단순히 철학의 한 유파라기보다는 하나의 세계관이자 그로부터 비롯된 학문적 방법론으로서의 특징을 지닌다. / 구조주의는 사물의 참된 의미가 사물 자체의 속성과 기능에서가 아니라, 사물들 간의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세계 안에서 사물은 언제나 다른 사물들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존재한다. 그 관계망 안에서 사물이 지니는 위치에 따라 사물의 의미는 규정되며 변화한다. 따라서 사물의 의미는 개별적으로 인식될 수 있거나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부분으로 삼고 있는 전체 체계와 구조 안에서 사물의 의미는 비로소 인식될 수 있으며, 체계의 변화에 따라 사물의 의미도 변화한다. 따라서 구조주의는 전체 체계 안에서 사물들의 관계를 기술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려 시도한다. 그리고 개개인의 행위나 인식 등을 포괄하고 그것들의 최종적인 성격을 규정하는 구조와 체계의 원리를 밝히려 한다. 이러한 구조주의의 특징을 제임슨은 '정신 그 자체의 항구적인 구조를, 정신이 세계를 경험하거나 혹은 그 자체로는 본질적으로 무의미한 것에서 의미를 조직할 수 있기에 소용되는 조직화의 카테고리 및 형식을 분명히 탐구하는 것 이라고 표현한다.이러한 구조주의의 인식과 방법론은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그 계기를 마련하였다. 소쉬르는 언어 현상에서 랑그(langue)와 빠롤(parole)을 구분한다. 촘스키(Noam Chomsky)의 개념 구분에 따르면 빠롤은 개개의 언어수행(performance), 랑그는 그에 앞서서 존재하며 그것을 생성시키는 언어능력(competence)에 해당한다. 예컨대 일상의 언어 생활은 음성언어와 문자 등을 이용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그것이 가능한 것은 언어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언어 체계의 규칙들과 약속들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랑그는 빠롤을 통해서만 구체적으로 나타나지만 빠롤의 전제가 되며, 그것을 뛰어넘어 존재한다. 그리고 소쉬르에 따르면 언어는 '관념을 표현하는 기호의 체계'이다. 그런데 기호의 두 가지 측면, 곧 그것이 표시되는 형식(기표, signifier)과 그것이 나타내는 대상이나 의미(기의, signified) 사이에는 어떤 필연적 연관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나무’라는 낱말의 의미는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체 언어 체계 안에서 다른 낱말들과의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곧 기호는 사물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언어 체계 안에서 다른 기호들과 관계를 맺으며, 그것의 의미는 전체 체계에서 독립해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그는 언어를 역사적인 변화와 관련된 통시적인(diachronic)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공시적(synchronic)인 관점에서, 곧 각 요소들의 상호 관계라는 측면에서 하나의 자기충족적인 체계와 구조로서 이해하고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처럼 소쉬르는 언어학에서 구조주의적 인식의 기초를 만들었으며, 그의 언어학적 모델은 다양한 사회 문화 현상들에 폭넓게 적용되었다. 레비스트로스는 인류학에 구조주의의 인식과 방법을 적용하였고, 구조주의를 현대 사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론적 도구가 되도록 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구조주의의 방법을 원용하여 신화와 상징, 친족관계를 조직적으로 탐구함으로써 인류 사회 더 넓게는 인간 정신의 보편적이고 불변하는 구조를 밝혀내려 하였다. 그리고 바르트는 사회에서 의미의 형성을 궁극적으로 구조화하는 집단적 무의식의 기호 체계에 주목하여, 현대 대중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의미 작용 과정을 구조주의의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라캉은 소쉬르의 언어학 모델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적용해 구조주의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그는 '무의식은 언어와 같이 구조화되어 있다'며 무의식의 고유한 논리적 구조를 언어학적 방법으로 분석하였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를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실존주의적이고 인간주의적인 해석을 비판하려 하였다. 푸코는 한 시대의 지식의 기호체계인 인식성(episteme)이 연속적인 발전이 아니라 비연속적인 비약과 단절의 구조를 지닌다는 것을 논증하며, 문화적 변동을 심층적으로 규정하는 언어와 사상의 무의식적 법칙을 밝히려 했다. 그는 이 인식성이 인간 주체에 앞서 존재하며, 인간 주체의 모든 사상과 행위의 특수한 형태를 조건 짓는다고 규정한다.이렇듯 구조주의는 언어학에서 출발하여 1960년대에 이르러 문학, 인류학, 철학, 정신분석학 등 모든 인문 사회학 분야에 폭넓게 확산되며 큰 영향을 끼쳤다. 구조주의의 중심적인 개념의 대부분은 언어학과의 연관 속에서 발전해 왔으며, 구조주의자들은 언어와 기호에 대한 탐구로부터 인간의 사회 문화적 행위를 규정하는 구조적 체계와 법칙을 밝히려 했다. 언어는 인간 정신의 구조적 측면을 가장 잘 나타내줄 뿐 아니라, 문화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구조주의는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사상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현대 사회의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지배 구조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이러한 구조주의는 인간 주체에 앞선 ‘구조’를 강조함으로써 실존주의 등의 인간중심적인 사유와 대립하며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이른바 ‘후기-구조주의’(post-structuralism)로 분류되기도 하는 라캉, 푸코 등의 사상은 탈근대주의(post-modernism) 논의의 형성과 발달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뒤르켐의 표상 (집단적표상)뒤르켐을 중심으로 사회학 연보학파는 원주민들이 그들 자신과 그들의 세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스스로의 관념, 곧 집합표상((collective representations)에 주목했고, 문화 항목들을 개별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의미의 복합적 전체로서 비교하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집합표상이란 개인의식의 상태와 대립되는 집단의식의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그 집단이 우주와의 관계를 인식하는 방식의 표현을 말한다 집단의식이란 그 집단의 평균성원들에게 공통된 믿음과 정서로서 그 집단의 고유의 체계를 형성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위베르와 모스의 제물의례에 대한 연구와 에르츠의 죽음의 표상에 관한 연구 등은 전형적인 사회학 연보학파의 성과물인데, 이 전통은 그대로 영국 사회인류학의 전통이 되었다.사회인류학은 뒤르켐의 사회적 사실 이론에 바탕을 두고 사회, 사회조직, 사회구조 등 사회적인 것을 강조하는 구조기능주의 이론으로 발전해 나갔고, 사실 추적적이고 경험적인 민족지적 전통을 구축해 나갔다. 미국에서는 사회인류학을 사회와 문화들의 비교연구라는 의미로 사용하는데, 이것은 고고학과 인류학적 언어학 그리고 문화와 사회들의 비교연구를 포괄하는 미국의 문화인류학과 대비시켜 사용하는 용어이다.// 뒤르켐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와 사회성원은 존재의 종류가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분석의 차원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분석방법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살율과 같은 현상도 자살을 하는 사람의 개인적 생애사를 고찰한다고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나 클럽이나 가족 등에 대한 소속감이나 이런 집단들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통합의 정도 등과 같은 사회적 요인들로서 고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인들도 다른 모든 사회적 데이터처럼 심리적 측면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제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제도 자체가 고려되면,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들의 심리가 아니라 사회제도들간의 상호연관성과 성원들이 서로 공유하고 있는 믿음과 가치, 곧 뒤르켐이 말하는 집합표상(collective representations)이다. 그래서 인류학은 문화의 참여자들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 문화와 사회체계를 연구한다는 점에서 심리학과 다르다.* 소쉬르, 레비스트로스, 바르트, 알튀세르1) Ferdinand de Saussure 와 기호학 소쉬르현대의 기호학적 분석은 스위스의 언어 철학자 Saussure와 미국의 철학자 Charles Sanders Peirce에 의해 연구되어졌다. 소쉬르의 강의록인 『일반 언어학 강의』가 그의 사후, 1915년 처음 출판되었을 때 기호학의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기호학은 20세기 초에 프라하 학파와 러시아에서 중요한 연구들이 있었고, 이제는 Barthes와 Umberto Eco 등의 학자에 의해 연구되고 있다.'의미는 어떻게 발생하는가?'라는 명제는 기호학의 기본 연구 과제이다. 기호학은 의미 체계, 상징 체계의 연구를 사회학적 주요 관심사로 부각시킨다. 모든 인문 사회 현상은 자연현상과 달리 무엇인가를 의미하는 의미 현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커뮤니케이션을 목적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영역(예컨대 매스미디어, 예술 등)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을 기호로 구성되는 커뮤니케이션의 체계로 개념화할 수 있다고 본다.* 언어의 통시적 연구와 공시적 연구
*포스트 모더니즘: 후기자본주의의 문화논리(프레드릭 제임슨)프레드릭 제임슨은 오늘날의 근본적 문화정치의 가장 효과적인 형태가 무엇인지 좀 더 고찰하기 위해서 새롭고 체계적인 문화 기준과 그것을 재생산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하고자 포스트모더니즘을 분석한다. 그가 후기자본주의의 문화논리라는 논문을 펴내기 전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연속이다, 단절이다 라는 등의 논쟁들이 나왔는데 그는 이것을 후기자본주의라는 사회학적 이론으로 본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어떤 양식으로 보다는 ‘문화적우세종’으로 보는데, 그는 문화라는 것이 사회생활 전체 속에 내파 되어 있어 문화 아닌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말한다. 소비자사회, 대중매체사회, 정보사회, 전자사회, 또는 고도기술 사회; 포스트모더니즘을 후기자본주의 시대 속의 하나의 현상, 문화로 보고 있는 것이다.오늘날 미학적 생산이 상품생산에 대체로 통합, 미학적 대중주의(고급문화와 소위 대중문화 또는 상업문화를 가르는 이전의 본격적 모더니즘에서 행하던 구분이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사라졌다는 것)라는 것은 예술과 대중문화의 기준의 사라짐인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이다. 포스트모더니즘시대에선 반고흐의 작품인 과 뭉크의 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은 더 이상 적절하지 않은 것이며 뭉크의 그림의 불안감 소외와 같은 개념은 포스트 모더니즘적 세계에서는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정서의 퇴조-이것은 애가적 신비의 퇴조를 의미하며 모더니즘시대와는 달리 시간의 범주에 의해서 보다는 공간의 범주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라고 불러 온 자아 중심의 심리병상의 종말도 초래한다. 패스티쉬(혼성모방), 역사성의 분열, 위기의 포스트모더니즘의 모습들은 라깡의 정신분석학의 개념들로 이해 할 수 있겠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자본주의의논리, 상품의 논리 앞에 함몰하게 되는 것, 비판적 거리가 이 공간 안에서는 완전히 없어졌다는 점은 당연한 결과이다.즉, 다국적 자본의 시대인 후기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모든 것이 전 지구적인 는 새로운 양식을 발견하는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고 본다.*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장 보드리야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큰 별이다. 그의 사상 전체는 세 가지 개념을 주춧돌로 한다. 그것은 소비, 기호체계(코드) 그리고 과실재(過實在, 시뮬라크르)다. 이 세 개념은 언제나 분리 불가능한 상보관계에 있다. 다만 문맥에 따라 이들 중 한 개념이 번갈아가며 논의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가령 ‘대상의 체계’(1968), ‘소비사회’(1970) 등의 초기 저작에서는 소비가 다른 개념에 비해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기호체계가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기호의 저치경제학’(1927), ‘상징적 교환과 죽음’(1976) 등과 같은 중기 저작이다. ‘시뮬라시옹’을 시작으로 발표된 후기 저작에서는 실재, 과실재, 시뮬라크르 등이 성찰의 초점이다. 이는 보드리야르가 형이상학적 사변으로 접어들었음을 말해준다.초기 저작에서 보드리야르는 현대사회가 후기구조주의적 기호개념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새로운 현상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음을 갈파한다. 현대사회는 노동과 생산에 의해 발전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에 의해 확장되며, 따라서 소비사회라는 것이다. 이 소비사회에서 상품의 사용가치나 교환가치보다 중요한 범주가 기호학적 가치, 특히 광고언어가 그 상품에 부가하는 기호학적 가치다. 이 기호학적 가치는 상품의 교환과 소비의 문맥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적 현실 전체에 침투한다. 뿐만 아니라 기호체계는 현실 자체를 구성하고 창출한다. 이런 현상은 정보의 교환이 텔레비전·전화·이메일·휴대폰 등 전자매체에 의존할수록 심화된다. 이 원격통신사회에서 기호의 지배력은 무한히 확대되어, 바깥으로 향한 출구는 사라져버린다. 중기 저작에서 보드리야르는 기호체계 혹은 코드가 이런 무한한 지배력을 획득하는 과정과 그 코드가 작동하는 방식에 중점을 둔다. 그가 마르크스적 전통과 완전히 결별하는 것도 중기 저작을 통해서다.‘시뮬라시옹’은 보드리야르 후기 저작의 첫 작품이며, 가장 영향력이 컸던 저서로 손꼽힌다. 여기서는 형식으로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이 작품에서 중심을 이루는 주제는 시뮬라클(시뮬라크라)와 시뮬라시옹(시뮬레이션)이다. 이미 초기 저작에서부터 보드리야르는 소비사회와 대중문화 안에서 대상의 의미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음을 누누이 강조해왔고, 그런 변화된 존재이해가 예술의 차원에서 팝아트를 통해 선명하게 표현되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시뮬라시옹’은 이 탈근대적 대상개념을 심화, 발전시킨다. 이런 새로운 대상개념은 여전히 탈근대적 기호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과거에 기호는 어떤 대상을 지시하거나 재현하는 역할에 머물러다. 반면 오늘날 기호는 대상을 지시한다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지시하며, 대상을 재현한다기보다는 창조한다. 게다가 기호가 창조한 대상은 자연적 대상을‘능가한다’. 더 실재적이고 탁월하며, 그런 의미에서 과실재다. 왜 과실재인가. 이는 그것이 자연적 대상보다 이상적이며, 그 대상에 대해 모델의 위치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표상의 순서가 역전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과거에는 자연적 대상을 기준으로 기호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했다. 반면 탈근대 사회에서 인간은 기호가 생산한 대상에 비추어 자연적 대상을 표상한다. 기호체계의 평면이 자연적 대상을 비추는 거울이며, 인간은 그 거울 없이 사물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기호의 안개 속에 실재가 사라진다" 탈근대 사회에서 기호의 질서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게다가 충분히 파악할 수 없는 어떤 자율적 영역을 이루고 있다. 기호는 자연적 지시대상으로부터, 그리고 주체로서의 인간으로부터 해방되어 있다. 기호체계는 대상과 주체로부터 해방된 것에 그치지 않고 대상과 주체 자체를 구성하는 형식이다. 현실을 있게 하는 선험적 형식인 것이다. 보드리야르가 말하는 시뮬라시옹은 기호에 의해 자연적 실재를 능가하는 과실재가 산출되는 과정을, 그리고 마침내 자연과 인공의 구분마저 소멸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시뮬라크르는 그 시뮬라시옹의 결과다. 그것은 모사적 사물인 동시에 독창적 사물, 다시 말해서 자신을 있게 한 조건과 생산주체칙의 유토피아를 거꾸로 뒤집어서 가치로서의 기호에 대한 근본적 부정으로부터 출발한다. 모든 지시관계의 사형집행에 해당하는 기호로부터, 지시관계가 죽은 후 이 지시의 권리를 획득한 기호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는 후기구조주의적 기호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는 동시에 들뢰즈의 시뮬라크르와 유사한 의미내용을 지니고 있다. 그밖에도 그 말에는 라캉의 정신분석, 특히 거울단계이론과 상징개념이 그대로 들어와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적어도 시뮬라시옹과 시뮬라크르로 집약되는 탈근대적 대상개념에 관한 한, 보드리야르는 다양한 후기구조주의적 이론들의 비빔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상승적 종합에서 일찍부터 보드리야르의 색깔이 드러나게 되는데, 그것은 ‘내파’ 혹은 ‘함열(implosion)’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통해서다. 내파는 외파(explosion)에 대해, 내부적 원인에 의한 폭발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보드리야르는 탈근대 사회를 지배하는 기호체계와 시뮬라크르는 오로지 자기증식의 마지막 단계에서만, 그 자기증식의 무게 자체에 의해서만 파괴될 수 있다고 본다. 데리다에게 텍스트의 바깥은 없는 것처럼, 보드리야르에게 코드의 바깥은 없다. 코드에 저항하고 그것으 상대화할 근거는 코드밖에 없다. 기호는 무한히 불어나서 다른 기호에 대한 변별적 의미를 상실하기 전까지, 다시 말해 유사한 기호가 너무 많아져 기호로서의 기능과 가치를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저항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힘을 지니고 있다.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그 지배력의 극치에서 오는 자기 붕괴로서의 내파 뿐이다.그러나 이 단계에 이르면 이미 무수한 것이 소멸한 후다. 정치와 권력이, 사회와 역사가, 성(性)과 예술이, 그러나 그 이전에 의미라는 것 자체가 소멸하는 것이다. 정보는 무한하게 많아지되 의미는 점점 더 사라지는 시대, 그것이 탈근대의 마지막이다. 이 소멸은 모두 과잉과 포화가 부르는 재난이다. 보드리야르는 이 모든 현상을 “기호의 안개 속에 실재가 사라진다”는 말로 모했다. 그러나 이때 소비되는 것은 실물의 사용 가치가 아니라 기호, 즉 상품과 다른 상품의‘차이’로서 드러나는 계층적, 신분적 차이의 상징이다. 현대사회는 이렇게 기호를 소비하는 상징의 교환체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자체가 일종의 시뮬라시옹이다.◎ 가상, 실재, 조작 - 시뮬라시옹 개념의 주요 이론가인 귄터 안더스는 텔레비전 영상을 팬텀, 즉 가상도 실재도 아닌 제3의 존재로 규정하고, 미디어가 사건 보도의 어떤 선험적 틀에 따라 찍어내는 세계를 거대한 가상현실로 바라본다.안더스에게 매체의 조작은 사실의 왜곡이나 해석의 왜곡 이전에 이미 ‘어떤 것을 보도할지’ 여부를 선택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여기에는 여전히 가상과 실재의 구별이 존재하며, 안더스는 현실을 조작하는 미디어를 비판한다. 그러나 보드리야르가 보기에는 미디어 조작 이전에 이미 더 크고 근본적인 조작이 존재한다.◎ 하이퍼 리얼리티- 보드리야르에게 있어 세계는 그 자체가 이미 왜곡이다. 즉 어떤 예기치 않은 돌발사태가 일어나 시뮬라시옹의 가상성이 폭로되는 것을 저지하고 차단하기 위하여 아예 현실의 사실성 자체를 없애버리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시뮬라시옹의 세계에서는 미리 입력되지 않은 우발적 상황, 즉 실제 상황이 등장하는 것을 막는 것이 주요한 과제로 떠오른다. 보드리야르에게 디즈니랜드와 워터게이트 사건은 이 하이퍼 리얼리티 전략으로 만들어낸 가상실재의 대표적인 예다.“디즈니랜드는 실제의 나라, 실제의 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하여 거기에 있다. (……) 이 세계가 어린애 티를 내려 하는 이유는, 어른들이란 다른 곳, 즉 실제의 세상에 있다고 믿게 하기 위해서이며, 어른들의 유치성 그 자체가 그들의 실제 유치성을 환상으로 돌리기 위하여 여기서 어린애 흉내를 낸다.“중요한 것은 더 이상 사실성의 거짓 재현이 아니라, 실재가 더 이상 실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숨기는 하이퍼 리얼리티의 전략이다. 워터게이트, 케네디 암살 사건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사실이 드러나있다.
[제5장 문화주의 문화론] (문화주의, 리비스주의/ 호가트, 톰슨, 윌리엄스, 홀)* 문화론적 연구 - 문화론적 연구는 마르크스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사회구조에서 나타나는 지배의 관계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의미의 생산 또는 재생산을 사회구조의 지배 관계에서 파악하고 있으며 이것을 문화와 연결시키고 있다. 하지만 문화론적 연구는 마르크스주의에 뿌리를 두기는 하지만 모든 것을 경제로 환원시키는 경제주의에 반발하여 문화와 이데올로기에 상대적 자율성을 부여한다.문화론적 연구는 문화가 의미의 투쟁 장소이며 단순히 다른 현상들의 반영이 아닌 것으로 파악하는 하나의 실천 영역의 존재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때 문화는 그 나름대로의 독자적 산물을 형성한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문화론적 연구는 그 연구 대상에 있어서 텍스트에 나타난 이데올로기를 주로 분석한다. 이는 문화적 실천이라는 텍스트의 의미 자체가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서 문화론적 연구에서 이데올로기 분석은 하나의 전통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이러한 문화론적 연구의 형태는, 과거로부터 온 개념에 벗어나려는, 그리고 계급 또는 다른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문화의 역할을 감추려는 경향에 대해 비판하려는 이러한 투쟁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문화론적 연구는 지금까지 무시되어 왔던 집단들의 문화를 회복시키고 자리매김 하려고 노력하는 작업의 중추를 이루어왔다. 처음 이러한 노력은 노동계급의 문화의 역사적 발전과 형성에 대한 주목과 민중문화와 현대적 형태에 대한 분석으로 시작되었다.이러한 문화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홀은 분명히 다르면서도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갖고있는 두 가지 연구 시각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것은 문화주의와 구조주의이다. 이 두 관점은 1960년대 유럽에 두개의 연구소가 설치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파리의 매스커뮤니케이션센터(CECMAS)와 영국의 현대문화연구센터(CCCS)가 그것이다. 전자는 미디어 문화의 기호학적 분석이라는 측면으로, 후자는 노동문화주의의 기반이 되고 있다.영국의 문화 연구는 영국 문화가 전후 영국의 특수한 상황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은 자본주의적 산업 생산 양식의 부활, 복지 정책의 수립, 그리고 러시아 공산주의에 대항한 서구 세력의 결집 등으로 인해 새로운 영국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과거의 계급이 사라짐으로써 전쟁 전의 영국과는 단절된 것처럼 보였고, 현대화 및 미국화 된 대중문화가 새로운 미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영국의 문화 연구는 이러한 상황 변화 속에서 그들의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을 이해하고 재평가하려는 시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영국의 문화 연구는 영국의 이와 같은 변화와 아울러 나타난 노동계급의 '부르주아 현상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노동계급의 생활 조건이나 이데올로기가 중류계급의 그것과 차별성이 없게 되었으며, 따라서 도시 노동 계급의 생활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도시 노동계급의 가치 구조와 사회 구조가 어떻게 존속되고 있는지에 대해 탐구했다.리비스주의자들은 영국에서 문화 연구를 행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을 열었고, 대체로 문화 연구는 호가트의 {읽고 쓰는 능력의 이용}과 윌리엄스의 {문화와 사회}, {장구한 혁명}의 출판을 시작된 것으로 인식된다. 호가트와 윌리엄스는 모두 리비스로 대표되는 영문학 비평의 전통 내에 존재하는 인물들로, 이 전통의 특징은 문학적 텍스트의 구조와 도덕적/사회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있다. 호가트와 윌리엄스는 둘 다 리비스주의 기본 가설들에 상당 부분 도전하지만 일부분은 수용하기도 했다. 문화와 문명의 전통을 되돌아보면서, 동시에 문화주의와 대중문화에 대한 문화 연구적 접근을 하는 이런 모순적 양상이 위와 같은 책들을 쓰게 만들었고 리비스주의의 비판적 출현으로 나타난 것이다. 호가트와 윌리엄스의 뛰어난 점은 텍스트 비평 방식을 문학 외의 문화 형태, 즉 대중 가요나 대중소설 등을 '읽어 내는' 데 사용했다는 것이다.문화주의라는 용어는 현대문화연구센터의 전 소장이었던 존슨이 세 이론가 - 즉 윌가지 문화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보았으며, 그의 특별한 관심은 노동자 계급의 문화를 형성한 특징적인 태도와 관계에 있었다. 그는 노동자 계급 문화의 양식과 제도에 구현된 가치와 의미를 찾기 위해 마치 그것들이 어떤 특정한 '텍스트' 인 것처럼 노동자 계급 문화를 읽으려 했다. 살아있는 문화에 이러한 방법을 적용하면서 고급 문화 / 저급 문화의 구분에 관한 그때까지의 문화 논쟁의 입장을 거부한 것은 철저한 새 출발이었다.Hoggart는 그의 저서 {읽고 쓰는 능력의 이용}에서 문학 연구의 분석적인 방법들을 보다 범위를 넓혀 문화의 생산물들인 음악, 신문, 잡지, 그리고 대중 영화 등에 성공적으로 적용시켰다. 특히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대중문화의 다양한 영역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Hoggart의 설명은 복합적인 총체서라는 측면에서 경탄할 만하지만, 구조적인 문화라기보다는 유기체적인 문화에 대한 감상적 설명이라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Hoggart는 전반부와 후반부에서 각각 전쟁 전의 노동자의 풍요로운 계급 문화와 전후 새로이 등장하는 대중문화의 대비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여기서 후자는 조직성의 결여 및 뿌리가 없는 문화로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자신의 용어로 본질적으로 허구적일 수 밖에 없는 통속 소설이나 싸구려 잡지 등의 분석을 행하고 있다. 여기에서 문화적 쇠락의 중요한 예로 대중소설을 꼽으며 주된 공격목표를 대중문화의 소비자들이 아니라 생산자들임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Hoggart의 비판 작업의 결과는 대중문화의 형태의 생산과 소비에 있어서 그 구분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Hoggart는 이 책에서 보이는 가장 큰 약점은 1930년대를 다루는 시각으로 1950년대의 대중문화를 다루지 못했다는 무능함에 있다. 젊은 날의 경험에 바탕을 둔 문화에 대해서는 그 구조나 복잡성을 잘 설명하고 있지만, 현대 노동 계급의 청소년 '문화의 풍부함'에 대해서는 그 복잡성이나 기능, 그리고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했다. 195회적 커뮤니케이션의 특권화 한 한 유형일 뿐이라고 정의했다.그는 {장구한 혁명}에서 문화의 정의에 대한 세 가지 일반적 범주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첫째, "문화는 어떤 절대적 또는 보편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이상적인 것'으로 , 인간의 완벽함에 이르게 하는 과정이나 그 상태"라는 것이다. 둘째, '문서화'된 기록들, 즉 기록된 텍스트와 실천 행위로 이루어진 문화이다. 이 정의에서 문화는 "인간의 생각과 경험들이 구체적인 방법으로 다양하게 기록된 지적, 상상적 작업의 유기체"이다. 셋째, "문화에 대한 '사회적' 정의가 있는데, 이때의 문화는 특정한 삶의 방식에 대한 묘사"를 말한다. 이 세번째 정의는 문화주의 출발에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문화에 대한 '사회적' 정의는 문화를 생각해 보는 새로운 방식을 열어 주었다. 첫째, 문화가 특정한 삶의 방식의 표현이라는 '인류학적 주장'이며, 둘째, 문화가 '어떤 의미와 가치의 표현'이라는 것이고, 셋째, 문화 분석 작업이 "특정한 삶의 방식이나 특정한 문화에 내재되거나 표출된 의미와 가치들을 명확히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를 모두 합했을 때 문화의 사회적 정의에 포함된 세 가지 요소 - 즉 특정한 삶의 방식으로서 문화, 특정한 삶의 표현인 문화와 이 특정한 삶의 방식을 재구성하는 방법으로 문화 분석 - 들이 문화주의의 일반적 관점과 기본 과정들이다. Williams는 "이들은 서로가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러므로 이 관계들 자체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는 또, "아무리 어렵더라도 우리는 이 과정을 종합적으로 보도록 노력해야 하며, 단지 외관상으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특정한 연구들이 연관성을 갖고 실재적이고도 복잡한 구조에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이 세 가지 정의를 모두 중요시 했다. 여기에서 그는 비록 방법론은 제시되지 못했더라도 초기부터 그의 생각을 지배하던 감상적 유기체론의 흔적을 흔들어 놓았다.이 {장구한 혁명}에 또 하나 그의 중요한 개념이 등장신의 독특한 철학을 전개한다. 그는 새로운 마르크스주의를 통해 단순히 경제적 결정론적이지 않은 Louis Althusser의 '중층 결정론'과 Antonio Gramsci의 '문화적 헤게모니 이론'을 수용하게 된다. '중층적 결정론'은 문화적 힘의 '상대적 자율성'을 인정한다. 따라서 이데올르기적 지배의 성취를 상호 경쟁적이고 모순적인 세력간의 갈등으로 설명한다. 그에게 이 이론의 유용한 점은 '살아 있는' 경험의 독특한 복합성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것이었다. Williams는 Gramsci 이론의 두 가지 장점을 들고 있다. 그 하나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정의하고 형성하는 '전체 사회 과정'으로서의 '문화'의 개념과 , 또 다른 하나는 의미와 가치 체계가 특정 계급의 이익의 표현과 투사라고 보는 마르크스주의적 '이데올로기' 개념이다. 여기서 개인적인 경험을 역사 속에서 이해하고 문화를 '특정 계급의 실재적인 지배와 피지배'로 인식함으로써 역사와 경험, 정치 그리고 이데올로기를 일상 생활 속에 연결시키는 데 이론의 강점이 있다. Williams는 지배가 영속적이지 않고 단지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지배세력, 잔여세력, 부상하는 세력과 같은 항시 갈등과 모순에 가득 찬 세 가지 형태의 문화 세력의 존재를 제시했다.Williams에 대한 비판은 문화 연구에서 차지하는 그의 큰 업적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지적되고 있다. 그가 한번도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는 것과 함께 이론의 적용을 위한 방법론의 제시가 전혀 제시되지 않은 점들이다.(3) Edward. P. Thompson 톰슨Thompson의 은 Hoggart와 Williams의 앞의 저작들보다 시기적으로 약간 늦었지만 같은 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 저작은 역사적 특수성에 엄격하게 그리고 경험적으로 기초하였다. Thompson은 특정한 계급 형성이 이루어지는 역사적 행위의 차원을 강조했다. 그는 문화를 사회적 존재와 사회적 의식 간의 변증법에 위치시키고 Williams의 {장구한 혁었다.
*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 비교[구조주의]1960년대에 들어와서 K.마르크스, M.하이데거, S.프로이트 등의 견해에 대립하여 프랑스에서 새로이 형성된 사상적 조류이다.그러나 내용적으로는 실존주의나 마르크스주의와 같이 명확한 형태를 갖춘 사상적 경향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인류학자, 사회학자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철학자 M.푸코, 리시안 세바크, L.알튀세르, 정신분석학자 J.라캉 등이 구조주의를 주창한 주요 멤버인데, 그들 사이에서도 통일된 의견을 발견하기가 어렵다.공통점이 있다면 마르크스주의나 실존주의 등 이제까지의 사상적 ?사회과학적 업적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여 현대과학의 종합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특징으로서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 논쟁을 벌인 점에 있고, 인간의 주체성과 자유의 문제에 대해서 새로운 견해를 전개하려는 데에 있다. 그리하여 사회의 구조와 시스템에 대해서, 그리고 의미론(意味論) 등을 재구성하려고 한다.현재 마르크스주의의 한계성에 주요 공격이 가해지며, 아울러 실존주의 ·인간주의에 대해서 현대적인 통렬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데, 결론을 끌어낼 수 있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의 새로운 사조(思潮)로서 앞으로도 여러 문제를 제기하게 될 것이다.*구조주의 비판장구한 역사와 방대한 계보를 지닌 구조주의는 오랜 시간 동안 인간주의적인 주체가 실은 꼭두각시일 수도 있음을 지적했고 겉으로 보기에는 그들의 자연스러운 행동이 단순한 인습의 효과에 지나지 않음을 폭로함으로써 현대 사회이론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개념에는 몇 가지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었을 뿐더러 이론 자체가 완성단계에 도달하거나 공통적 주장이 생겨난 적은 없었다. 그로 인해 구조주의에 대한 일반적 비판은 항상 존재해왔다.(1) 구조주의는 무엇보다 구조를 강조하고 인간의 주체성을 무시함으로 인간은 단순히 구조에 의하여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이는 구조의 내부에 있는 주체의 주관적 의미를 지나치게 경시한 것인데,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구조주의의 기본적인 입장은 그러한 현실을 중지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어의 성질을 드러내기 위해 소쉬르는 무엇보다 언어가 말하고 있는 바, 즉 기호가 나타내고 있는 지시물을 억제했다. 그러나 의식은 실친적이라고 믿는 누구에게나, 그리고 현실에서 또 그 현실에 대해서 우리가 행위하는 방식과 의식이 분리될 수 없도록 묶여 있다고 믿는 누구에게나, 그러한 태도는 자기패배적일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마치 혈액순환을 더 손쉽게 연구하려고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다.(3) 구조주의의 체계는 폐쇄적이고 공시적이고 자기 재생적이다. 그리고 그 체계가 다른 체계로 변할 수 있는 역학 내지는 변증법을 적절히 이론화하지 못한다. 구조주의는 일종의 새로운 플라톤주의로서 특수한 물질적 대상을 파악하기 위해 그 대상을 어떤 내재적인 형식의 반영에 불과한 것으로 제쳐놓는다.(4) 구조주의적 문화분석의 가장 큰 단점의 하나는 미학적 판단이 배제된다는 점이다. 구조주의적 분석은 텍스트 안의 요소의 관계와 의미의 생산에 대한 관심만을 보일 뿐 작품자체의 질을 무시한다는 점이 큰 결점으로 지적된다. 왜냐하면 구조주의는 결국 예술에는 관심이 없고 의미와 인지양식(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부호들)에만 관심이 있는데, 이것은 마치 식사를 그 내용물의 질에 의해서만 판단하고 그 음식이 어떻게 요리되고 그 맛은 어떤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5) 구조주의에 대한 정치경제학자들의 비판으로 주로 결정의 문제에서 경제의 중요성이 무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머독(Murdock)과 골딩(Golding)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경제적 관계의 구체적 분석 그리고 그 관계가 문화적 생성의 과정과 결과를 구조화하는 방식으로부터 출발하는 대신, 그들은 문화적 작품의 형식과 내용을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거꾸로 경제적 토대를 기술한다.” 그 결과로 문화적 형태에는 정교한 자율성이 주어지고 그 문화적 형태의 생산을 형성한 경제력은 도식적으로 설명된다구조주의는 그 차이를 간과한다. 그로 인해 구조주의는 어떤 문제에 대한 처방을 제시하지 못한다. 즉, 현상에 대한 설명에 치중하여 설명력은 높였지만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는 총체적 구조파괴의 혁명전략 이외에는 그 어떤 처방도 나올 수 없었다. 이는 미국식 기능주의와 행태주의의 비판이다.*페르디낭 드 소쉬르 - 구조주의는 일반적으로 소쉬르의 ‘구조언어학’ 에 기원을 둔다. 그는 언어란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닫힌 체계라고 규정하였으며 따라서 언어는 결국 많은 기호나 신호, 체계들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랑그와 파롤, 기표와 기의, 통합체와 계열체, 공시성과 통시성 같이 서로 쌍을 이루는 구조 요소들을 규정하였다.랑그와 파롤이라는 이분법에서 랑그는 구술하거나 글로 쓰는 의사소통의 문법적 구조로서 해당 문화가 암묵적으로 동의해 온 공동의 것을 말한다. 그것은 사회의 개별 성원들이 바꿀 수 없는 사회적인 것으로서 객관적으로 연구될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파롤은 개인적이고 다양한 말이다. 말은 크거나 부드러울 수 있고, 또렷하거나 불분명할 수도 있으며 공시적이거나 일상적일 수 있다. 파롤과 랑그는 상호 의존적이지만 아이가 문법보다 말하기를 먼저 배우기 때문에 개인사에서는 파롤이 랑그에 선행한다. 문화사에서는 반대로 랑그가 파롤보다 앞선다.소쉬르의 체계에서 기표와 기의는 동전의 양면이 동전을 이루듯이 ‘기호’를 구성한다. 기표는 단어의 소리, 혹은 씌어진 요소이고 기의는 단어의 개념적 요소이다. 소쉬르가 말하는 기표와 기의, 즉 글자들의 그룹과 개념 사이에는 어떤 논리적이거나 자연스러운 연결점이 없다. 그들의 관계는 완전히 자의적으로 정해진다. 그러나 그 자의성은 언어다 어떤 선행하는 개념이라기보다는 문화적 맥락에 따라서 전개된다는 사실에 기반을 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언어는 실재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를 구성하는 것이다.기표 또는 말소리와 그 기의를 구별한 소쉬르의 주장은 갑작스레 나타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말과 사물이 마치 서로 고유한 자연스런 내려고 노력한 것은 분명하므로 이 같은 공식은 그리 만족스러운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인공적인 기호들로 이루어진 세상을 이해하고 터득하려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영웅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 구조주의라면 후기 구조주의는 그 같은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드리기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코믹하고 반 영웅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후기 구조주의자들이 구조주의를 조롱하는 것은 자신들에 대한 조롱이나 다름없다 : 자신들이 사용하던 방식에 문제가있음을 갑자기 알게된 구조주의자들이 바로 후기 구조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구조주의'라는 말 자체가 매우 애매하게 사용된다. '구조'라는 말은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에서 가장 흔히 사용하는 개념중의 하나이다. 언어구조니 사회구조니 경제구조, 정치구조니 하는 말들이 그것들이다. 구조주의란 말을 가장 넓게 사용하는 경우는 이처럼 구조를 가정하고, 그것이 반복적으로 다양한 현상들을 만들어 낸다는 전제아래 다수의 현상들 근저에서 구조를 찾아내려고 하는 시도를 가리키는 것이다.후기구조주의의 여섯가지 특징을 구조주의의 문제점과 대비시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1) 전체적인 구조보다는 개체의 존엄성과 자유를 인정한다.(2) 사고의 경직화 및 학문의 과학화를 배격하며 인본주의적 태도를 지향한다.(3) 역사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표명하며 과거를 향수가 아닌 탐색의 대상으로 취급한다.(4) 자아와 주체를 중요시한다.(5) 절대적인 진리나, 중심, 근원의 독선과 횡포를 거부하며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부터 탈피하여 타자를 인정하고 포용한다.(6) 모든 기호와 그것들의 재현능력을 불신한다.이러한 후기구조주의에 속하는 사람들을 분별하기는 쉽지 않게 되어 있다. 즉, 혹자는 알튀세르 이후부터 후기구조주의자로 지칭하는가 하면 혹자는 푸코, 데리다, 사이드 등만을 후기구조주의자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러한 혼동은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 사이에 어떤 연속성과 함께 비연속성이 동시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여하튼 푸코, 데리다, 사이드 등을 후기구조주의자로 전형적인 후기구조주의자라 할 수 있다.데리다 역시 전형적인 후기구조주의자로 분류될 수 있는데, 그는 무엇보다 역사의 중요성을 인정하였다. 또한 해체이론을 주창하면서 구조주의의 과학성을 비판하고 기존질서의 절대적인 진리의 권위를 공격하였다. 또 칸트의 영향을 받아 이성의 자율성을 인정함으로써 개체로서의 주체의 중요성을 확인하였다.사이드 역시 근원보다는 시작을 강조하였고‘오리엔탈리즘’에서 서구의 합리성을 비판하였으며, 텍스트 역사와 사회 연관성을 강조하면서 세속화를 도모했다는 점에서 후기구조주의자로 분류된다. 이렇게 볼 때 후기구조주의는 구조주의의 연속이면서 또 그것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후기구조주의를 구조주의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많지만, 기본적으로는 그것이 구조주의를 근간으로 출발하였고, 또 그것을 비판하며 성숙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구조에 대한 이해’는 변하지 않았기에 구조주의의 연속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구조주의 이전의 실존주의적 사고나 행태주의적 연구태도는 당시의 시대적 혼란을 맞이함에 있어서 학문적인 무능력을 보여주었다. 유럽 전역에서는 학생과 지식인들의 주체들에 의한 변혁의 움직임이 있었고, 프랑스 내에서는 독재체제에 대한 대항의 돌파구로 새로운 철학과 인식론을 필요로 했다. 그 학문은 일찍이 시작된 언어학의 방법론을 도입한 구조주의였고 특히 인류학계열에서 발달하였다. 구조주의의 탄생과 발전은 1960년대에 전성기를 이루었지만, 여러 수준에서 집중적인 비판을 받는다. 최대의 비판은 실증주의, 즉 가설이 검증과 타당성의 입증이라는 과학적 방법의 수호에 헌신한 사람들로부터 왔다.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레비스트로스의 변형 작업을 재구성할수 있는 듯이 보였기 때문에 이들은 레비스트로스가 보편적은 구조를‘발견하였다기보다는 발명’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였다. 이들은 만일 모든 연구자들이 각기 상이한 결과를 얻게 된다면 그러한 연구 작업의 가치는 의문시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에게서조차도 문화와 의식을 생각하는 우리의 방식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