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의 구성과 그 의미는 본기(本紀) 12편, 서(書) 8편, 표(表) 10편, 세가(世家) 30편, 열전(列傳) 70편의 다섯 부문으로 되어 있다. 본기는 제왕의 행적의 연대기적 기술이고, 서는 특정한 사회현상의 개별적 기술이며, 표는 여러 가지 사건에 대한 시간적 유일성과 연계성을 주로한 연표이고, 세가는 정치질서에 있어 제왕의 다음가는 위치에 있는 제후왕의 행적을, 그리고 열전은 제왕과 제후를 둘러싸고 역사를 이끌어 나가는 개인의 생활의 기록이다.여기에서 본기의 ‘기(紀)’는 기록한다는 뜻의 ‘기(記)’와 뜻이 같고 “사실에 근거(本)하여 그것을 기록한다”는 뜻에서 ‘본기’라는 말이 나왔다는 설이 있다. 즉 사실기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의 본기를 보면 「항우본기(項羽本紀)」와 「여후본기(呂后本紀)」의 둘을 제외한 다른 본기는 모두 공인된 제왕의 역사이다. 그리하여 기(紀)는 이(理)의 뜻으로 서 후세를 위한 중요한 다스림의 법도를 나타낸다고 해석하는 설도 있다. 혹자는 이 관점을 더 강화하여 ‘본’이란 그 본계(本系)를 얽어 연결하는 것이고 기(紀)는 다스린다(理)는 뜻으로서 많은 일을 거느려 다스린다고 보기도 한다. 즉 본계를 얽어엮어 세계를 통치한다는 뜻으로 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예 간단하게 ‘제왕의 역사’라고 해버리면 문제가 없을 것 같으나 「항우본기」나 「여후본기」처럼 이단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 항우나 여후의 경우 모두 제왕은 아니었으나 실질적으로 제왕의 역할을 한 인물들이기 때문에 에서 ‘본기’라 할 경우 반드시 제왕의 역사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었던 사람을 정권담당자로 보았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질적인 것을 더 중시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진의 시황제가 죽은 뒤 진승(陳勝)이나 오광(吳廣)이 왕이 되어 장초(張楚)라는 국호를 내걸고, 일시적이기는 하나 실질적인 정권을 장악한 것처럼 보였던 때가 있었지만 에서는 진승의 기록을 ‘세가’에 포함시켜 여러 제후와 마찬가지로밖에 취급하지 않고 있오는 호령이 정치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실력자인가 아닌가가 될 것이다. 진승은 국호를 내걸었지만 그러한 중심자는 아니었다. 사마천이 보기에 ‘본기’에 기록될 자는 그 같은 조건에 맞는 자라야 했다. 말하자면 세계의 중심자라는 의식이 그것이다. 이 의식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이 점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 ‘세가’라는 부문을 살펴보자. ‘세가’란 “세세로 질록(秩祿)을 갖는 집(家)”이라는 뜻으로 보는 설이 있는데, 명쾌하게 봉건제후들의 기록이라고 해버리면 될 것 같다. 그러나 진섭같이 일시적으로 활동한 인물이나 공자같은 사상가의 기록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세세대대를 내려온 제후들의 기록이라고 반드시 말할 수는 없다. 사마천 자신은 “스물여덟의 별자리(宿)가 북신(北辰)을 둘러싸 돌고 (수레바퀴의) 서른 개의 바퀴살이 바퀴통 하나에 합쳐져 운행(運行)이 끝이 없는데 보필고굉(輔弼股肱)의 신하를 이에 짝짓는다. 충신(忠信)된 마음으로 도(道)를 행하여 임금을 받든 자를 30편의 ‘세가’로 기록하였다.”라고 하였다. 스물여덟의 별자리라는 것은 오행(五行)설에 따라 하늘을 동(東:蒼龍), 서(西:白虎), 남(南:朱鳥), 북(北:玄武)의 네 궁(宮)으로 나누고 다시 각 궁을 일곱 수(宿)로 나눈 것을 이름이다. 북신은 북극성을 말한다. 서른 개의 바퀴살은 바퀴의 중심부로 모여 바퀴통에 집결되는 것이다. 즉 모든 별들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여 돌고, 수레바퀴의 바퀴살이 중심부로 모여 별과 바퀴의 운행이 끝이 없듯이 군왕을 도와 수족이 되는 신하를 별자리나 바퀴살에 비유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본기’와 ‘세가’의 관계가 분명해졌다. ‘본기’는 북극성이나 바퀴통에, ‘세가’는 스물여덟의 별자리나 서른 개의 바퀴살에 해당하는 것이다. 또한 사마천은 하늘과 인간이 서로 관련된다고 본 철두철미한 천인상관(天人相觀)론자이고 점성술사였기 때문에 에 있어서의 ‘본기’와 ‘세가’의 관계를 천문의 관계에 맞춰보고 있는 것이다.‘서’는 「평준서(平準書)」만을 제외하고는 점성술사적 주술사의 체 있다. ‘표’는 의 구성에 있어 높이 평가받고 있다. 고대의 역사서 안에 연표가 들어있다는 것은 확실히 경이로운 것이지만, 사마담(司馬談)과 사마천 부자에게 있어서는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시의 천문학은 경험주의적인 것이었으므로 그날그날의 천문현상을 기록하여 그 기록에서 귀납하여 예측을 하거나 책력 작성의 자료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이처럼 ‘본기’, ‘서’, ‘표’, ‘세가’라는 부문 각각에 일관되어 흐르고 있는 것은 천문관으로서의 입장이다. 하지만 ‘열전’은 천문관적 입장과의 깊은 관련을 생각하기 어렵다. 사마천은 ‘세가’에는 기록할 수 없는 개인인 “의를 위해 죽는 충신”에 대하여 기록해달라는 사마담의 부탁을 더 뚜렷이 하여 ‘열전’을 기록한 것이다. 그는 「태사공자서」에 “의(義)를 도와 뛰어나고 스스로의 때를 잃지 아니하여 천하에 공명(功名)을 세운 (사람들에 대하여) 70편이 열전을 지었다.”라고 밝혔다. 또한 사마천의 문장이 가장 정채를 발휘하고, 시대정신 또는 그 시대의 인간상의 상징적 개인을 등장 부각시켜 독자로 하여금 시대와 인간을 탐구하게 하는 것이 곧 이 ‘열전’이다. ‘열전’속에서 우리는 보편적인 인간의 운명과의 싸움, 인간의 인간으로서의 괴로움과 기쁨을 찾을 수 있고, 거기에서 공감 또는 위화감을 느껴가면서 역사의 세계를 자기의 세계와 오버랩시킬 수 있으며 역사를 읽는 효용을 감득하게 하는 것이다.이상이 의 구성인데 덧붙여 특기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각 편의 끝에 ‘태사공이 말하기를(太史公日)’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그 편의 내용에 대한 사마천 자신의 비평이 첨가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비평은 태사공 자신의 의견으로 논찬(論贊)이라고 불린다. 또 하나 특기할 일은 열전 70편의 마지막편이 「태사공자서(太史公字書)」로 되어 있는데 이는 사마천의 자서전이며 동시에 의 해제도 된다. 이 「태사공자서」에도 논찬이 있다. 이는 자기 자신을 열전의 한편으로 소재화한 꼴이다. 그러므로 자서전이기는 하나, 사마천의 의식마지막으로 현대사로서의 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는 통사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지만 진한(秦漢)시대가 반 이상을 차지한다. 진한시대가 사마천에 가깝거나 동시대였으므로 자료가 양적으로 많은 것은 당연하지만 전체의 양으로 보면 균형을 읽었다고 해도 좋다. 이는 궁형을 당한 사마천이 자기 자신이 경험한 것과 같은 고통을 당하는 동시대의 걸출한 인물들을 알게 됐을 때 그들의 얘기를 쓰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시대의 역사를 쓴다는 것은 바로 현대사를 쓴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는 형식상으로는 통사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현대사인 것이다.2. 論贊의 成立의 각 편에는 논찬이라는 것이 있다. 각 편의 기술 내용에 대한 논평인데 이 형식은 의 독창이다. 이 형식은 이후에 큰 영향을 주어 정사(正史) 등의 역사서가 거의 이 형식을 본땄다. 이 논찬을 사마천은 왜 생각해내게 되었을까?이릉사건 전에 호수에게 말한 역사편찬 태도와 이릉사건 후의 그것은 명백하게 차이가 있다. 춘추학적인 경향으로 기울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마천은 역사가로서의 전통적인 방법, 즉 사실기록이라는 자세 자체는 거의 바꾸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이릉사건으로 인한 맺힌 마음을 어디에 표현할 것인가? 설명에 머물지 아니하고 짓고(作)싶은 마음이 고조되는 것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이 길을 타개해준 것이 이었다. 은 당시 널리 읽혀졌다는 것 말고 사마천에게는 다른 뜻으로 애독서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을 읽음으로써 불효자로서의 의식을 조금이라도 잠재울 수 있었을 터였기 때문이다.사마천은 이릉사건 이후 미래에 의지하여 를 지어 나갔다. 자기 의견의 표현이 점점 높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사실기록자로서 자기표현을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할 때 에 보이는 것 같은 인용 비평 가지고는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흔한 상투적인 인용으로 그 ‘맺힘’을 풀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인용도 전통적인 고전에서뿐 아니라 , 등 범위를 확대하는 한편, 그 인용의 내용을 부연하는 자기표현의 과정에서 ‘논찬’ 이 자기 의견을 ‘태사공왈’로 묶어 각 편의 끝에 붙이게 되었을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각 편의 끝에 ‘태사공왈’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맨 처음에 ‘태사공왈’이 나오고 그 다음에 역사기록이 나오는 경우가 있으며, 객관적인 역사서술인 본문과 자기 의견의 주관적 표현인 논찬이 뒤섞이는 경우까지 있다. 앞의 경우는 「순리열전(循吏列傳)」과 「혹리열전(酷吏列傳)」이 그러하며, 뒤의 경우는 「백이열전(伯夷列傳)」과 「화식열전(貨殖列傳)」이 그러하다. 특히 「백이열전」은 다른 열전과는 그 형식이 달라 사실기록은 조금밖에 없고 대부분은 백이와 숙제(叔齊)의 행위에 관한 논평이다. 논찬도 편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앞쪽에 ‘태사공왈’로 나와 있다. 이 열전은 사실기록은 부차적이고 그에 대한 논평이 주가 되어 있다고까지 할 수 있다.3. 사마천의 自畵像사마천이 태사령이라는 직에 있었을 때에는 역사를 기록하는 데 있어 마땅히 전통적인 사관이 해야 하는 대로 소임을 다했으리라고 생각된다. 전통적인 사관이 해야 하는 대로라는 것은 사실기록을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돌보지 않는다는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릉사건 이후 중서령(中書令)이 된 사마천은 이제 공식적인 사관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중서령인 사마천이 쓰는 역사는 어디까지나 객관적으로는 사사로운 역사(私史)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사마천은 완성한 의 정본을 “명산(名山)에 감추고 부본은 서울에 둔다. (그리하여) 후세의 성인군자를 기다린다.”고 하고 있다. 이는 책을 완성하였어도 곧 공표할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사마천은 앞에서 살핀 대로 ‘논찬’이라는 자기주장의 장(場)을 갖고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사실기록보다 논찬이 우선하기까지 한다. 사마천이 의 여러 곳에서 객관적인 역사사실을 기록한다는 방식을 통하여 자기의 생각을, 자기의 모습을 그리려 하였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오자서열전」과 「계포열전」에 잘 나타나있다. 그 둘의 생애를 통해 궁형을 당하는 치욕을 감수하면서까지 살아남아 를 완
장정일 문학과 정신분석1. 프로이트 정신 분석학의 문학 비평에의 적용정신 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그의 이론을 문학 비평에 직접 적용하였다. 불과 몇 편밖에 안되는 것이지만, 그의 논문들은 심리주의 비평의 한 모형을 제시해 준 셈이 된다.그는 자신의 70회 탄생일에 즈음하여 어떤 사람이 “무의식의 발견자”라고 그에게 인사한 데 대해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서 그 칭호를 사양했다. 그리고 그는 “나 이전의 시인들과 철학자들이 무의식을 발견해 낸 것입니다. 내가 발견한 것은 무의식을 연구할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이었지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노숙한 학자의 겸허한 태도를 보여 주는 이러한 한 일화에서도 명백히 나타나는 바와 같이, 그가 현대 심리학에 기여한 핵심적인 공적은 무의식의 양상을 강조한 데 있다. 그는 여러 가지 사례 연구를 통하여 인간의 대부분의 행동의 무의식의 힘에 의해 유발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한편, 무의식의 개념과 그 활동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무의식”이라는 말은 묘사적이라는 점에서 가장 오래되고 좋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그 존재를 가정할 수는 있으나(예컨대, 어떤 방식으로든 그 결과로부터 그것을 추론하기 때문에)직접 깨닫지는 못하는 모종의 정신과정을 “무의식적”이라고 한다. 보다 정확하게 규정한다면 우리가 당장에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할지라도 어떤 특정한 시간에 그것이 활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가정해야 하는 하나의 정신 과정을 “무의식적”이라고 말함으로써 우리는 그 진술을 한정할 수 있다.?그는 인간의 정신 과정은 대체로 무의식적이며 인간의 모든 행동은 리비도Libido, 즉 성적 에너지에 의해 유발된다는 두 가지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인간은 이드Id와 자아Ego 및 초자아Super ego라는 3종의 정신대를 지니고 있는데, 이드는 전적으로 무의식적이며 자아와 초자아만이 부분적으로 의식의 정신 과정에 놓임을 알 수 있다. 이드는 리비도의 저장소이며, 모든 정신적 에너지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쾌락 원리에 따라 본능적인 욕구를 만족시킬 뿐, 사회적 질서니 도덕이니 하는 가치 관념과는 관계없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다. 프로이트의 말을 빌면, 그것은 “아무런 조직이나 통일된 의지를 지니지 않고 쾌락 원리에 따라 본능적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충동만을 지닌 흥분된 혼동 상태, 즉 끓고 있는 큰 가마솥과 같은 것으로서 본래 가치니, 선악이니, 도덕이니 하는 것들과는 상관이 없다.”고 한다. 이러한 이드의 개념은 신학자들이 정의한 악마의 그것과 흡사하다. 프로이트 이전에는 이러한 정신의 힘이 자연적이고 내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초자연적이고 외적인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는 그것이 인간성의 한 부분으로서 인간이 원래 타고난 생득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이드는 사회적인 제약을 돌보지 않고 제멋대로 활동하는 무의식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개인과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그것을 제어하는 정신적인 요인이 요구된다.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 그것을 제어하는 정신적인 힘이 곧 자아이다. 이것은 이드와 같이 강력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지는 못하지만, 이드의 본능적 충동이 파괴적 행동을 유발시키지 않도록 통제하는 데 그 기능이 있다. 프로이트의 말을 빌면, 이드는 길들지 않은 열정으로 향하는 데 반해, 자아는 이성과 신중을 지향한다. 쾌락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이드와는 달리, 자아는 현실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서 내적 세계와 외적 세계를 연결하는 중개자의 역할을 한다.자아가 이드를 통제하고 개인을 보호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면, 초자아는 사회를 보호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프로이트의 말을 빌면, 초자아는 “도덕적인 모든 제약의 대표, 즉 완전성을 추구하는 충동의 옹호자로서, 우리가 인간생활에서 보다 차원 높은 것이라고 일컫는 바에 대해 심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초자아는 인간의 도덕적?윤리적 핵심이 된다. 여기에 초자아의 기능이 있다. 이를테면 성욕 도착증이나 외디푸스 본능과 같은 것을 통제하는 기능이 그것이다. 이러한 초자아의 도덕적 기준은 부모를 통해 형성된다. 즉 부모는 사회가 좋은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을 주고 나쁜 행동이라고 보는 것에 대해서는 벌을 주는데, 이것이 초자아의 활동 기준을 마련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초자아는 자칫하면 자아 이상에 빠지게 되고, 이드와 마찬가지로 현실 감각을 상실하고 비합리적인 행동을 유발시킬 가능성이 있다.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세 가지 정신대를 하나로 통합하여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다. 이들 억제 요소들은 어느 하나도 제거하지 않고 모두 포괄하여 한 개인의 전체적 구조 속에 균형을 이룩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프로이트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모든 정신 현상은 리비도의 변화와 발전으로 해석된다. 본능보다 더 높은 차원의 문화적 목표를 지향하여 리비도를 발산시킬 때 승화 작용이 나타난다고 하겠는데, 예술은 바로 이러한 승화 작용의 결실이다. 즉 예술은 승화된 리비도의 소산으로서 근원적인 정신 활동에 힘입고 있다. 그러므로 예술 작품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그 속에 담긴 “내재적 의미”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2. 프로이트 정신 분석학의 장정일 문학에의 적용프로이드는 정신 분석학의 방법을 이용하여 예술 작품에서 그 속에 담긴 “내재적 의미”와 예술가의 인간적 기질을 설명하고자 했다. 장정일의 문학작품을 통해 그것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에서 이야기의 디테일은 수시로 변한다. 회사원이 사는 단칸방은 애초에는 연립주택 지하였다가 어느덧 3층으로 변하고, 아내가 빌려온 비디오테이프의 개수가 5개에서 4개로, 그가 방금 앉아 있던 가게가 햄버거집에서 피자집으로, 출근 때 타는 버스가 102번에서 105번으로, 장모의 구멍가게가 여관으로, 직장 동료가 듣는 피아노곡의 작곡가의 이름은 게리 윈스턴에서 제레미 화이어스톤, 조지 화이어스톤, 제레미 스트롱으로 변하고, 또 사이즈가 동일한 아내와 처제의 신체치수는 165센티미터의 키에 34-24-34에서부터 174센티미터의 키에 33-24-34까지 수시로 변하며, 두 대의 텔레비전의 크기는 14인치에서 33인치 사이를 넘나든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기술이 수시로 바뀌는 것이다. 또 소설의 모든 의성어나 의태어는 ‘탕-’이다. 전화벨도 탕-탕-탕-울리고 웃음소리도 탕-탕-탕-, 개짖는 소리도 탕-탕-탕-, 침을 밷는 소리도 탕-, 뺨을 치는 소리도 탕-, 심지어는 사람을 쳐다보는 행인들의 시선도 탕-탕-탕-이다. 이런 상태에 이르면 소설의 비현실성은 더 이상 말할 나위가 없다. 장정일은 이를 즉흥성과 돌발성을 강조하는 재즈적 글쓰기라고 부른다. 요컨대 그는 독자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내 소설은 모두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같이 표현함으로서 서사는 일상의 틀 바깥으로, 소설적 공간 바깥으로 벗어나고자 하는 격렬한 충동을 마음껏 드러낸다.
1. 유학 사상의 형성중국 유학은 삼대를 지나면서 형성되어 갔고 공자에 이르러 집대성되었다. 삼대는 중국의 고대 왕조인 하(夏)?은(殷)?주(周)를 말하는 것이다. 하 왕조 이전에는 요(堯)로 대표되는 당(唐)과 순(舜)으로 대표되는 우(虞)왕조도 존재했다는 것이 유교 경전의 하나인 에 기록되어 있다. 요와 순은 고대 국가의 제왕이며 이상적인 도덕 정치를 편 성자(聖者)로 공자나 맹자에 의해 추숭이 되었다. 이로 인해 후세에 요순시대라면 안정과 평화가 깃든 태평성대로 인식이 되고, 요순정치라면 어질고 착한 임금이 다스리는 정치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하 왕조는 우(禹) 임금이 창립한 왕조로서 그 자손에 의해 왕위가 계승되었다고 한다. 요는 순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순은 우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는데, 이는 재위 기간에 나라 안에서 인재를 골라 통치 경험을 쌓게 한 후에 다음 왕위 계승자로 지명해서 뒤를 잇게 한 것으로 선양(禪讓) 제도라 한다.공자나 맹자는 이 선양 제도를 왕위 계승의 이상으로 삼았다. 우에 이르러 그 아들이 계승하게 되어 선양 제도는 허물어지고 말았다. 하 왕조는 17세(世) 439년이 이어진 후에 걸(桀)이라는 임금의 대에 이르러 폭정을 펴는 바람에 탕(湯)에 의해 멸망이 되고, 은 왕조가 성립되었으며, 은 또한 제28대 주(紂)왕에 이르러 폭정을 펴서 주(周)의 무왕(武王)에 의해 멸망이 되었다. 이 때가 기원전 1,122년 경이다. 주나라는 문왕(文王)이라는 어진 임금이 일으켰고, 그의 아들인 무왕에 이르러 천하를 통일했다. 무왕의 아우인 주공은 학문이 깊고 심성이 어질며 정치 경륜이 뛰어난 분으로 요?순?우?탕?문?무로 이어져 내려운 유교 문화와 이상 정치를 집대성해서 새롭게 체계화하고 현실 정치에 적용했으며, 이를 공자에게 전해 주었다. 이른바 유교의 도통(道統)이다. 에서는 “공자께서는 요임금과 순임금을 으뜸으로 계승하시고 문왕과 무왕을 본받아서 그 법도를 밝히셨다”고 적고 있다.유학의 개창은 공자(孔子)에 의해 이룩되었다. 공자는 중심 의 변천은 일반적으로 선진(先秦)시대, 한당(漢唐)시대, 송명(宋明)시대, 청(淸)대의 네 시기로 분류할 수 있다.첫째, 선진시대는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기 이전의 시대를 말한다. 이 시대는 중국철학의 기본골격이 이루어지는 시기로 유가학파의 창시자인 공자를 필두로 맹자(孟子)와 순자(荀子)를 중심으로 전개된 시기이다.공자를 중심으로한 유가학파는 도덕적 질서와 예법의 질서로써 사회의 안정을 기하려 하였다. 그들은 부국강병만을 목표로 하였던 사회풍조에서 인도주의사상을 고취하여 인의(仁義)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이 때의 철학은 인도(人道)를 보편적 원리로 제시하여 진리의 기준으로 삼았다. 이 인도는 선천적으로 인간에게 부여된 천도(天道)라하여 공자는 항상 도를 강조하였다. 제자백가들이 모두 도를 제시하지만 공자의 도는 인간의 생명을 소중히 아는 인도정신이 그 중심을 이룬 것이다. 따라서 선진시대 유학 사상의 철학적 문제는 인성(人性)이 주제였으며, 공자의 인간관을 위시하여 맹자와 순자에 있어서 인성의 선악문제가 그 논의의 초점이 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리하여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은 중국철학사상사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둘째, 한당시대는 한대로부터 위진남북조시대를 지나 수당오대에 이르기까지 약 천년동안의 시기로 중세라 칭한다. 일반적으로는 한대에는 경학과 황노술, 위진남북조시대에는 노장의 현학, 그리고 수당시대에는 불교가 융성하였다. 진나라의 분서갱유 이후 한대 혜제 때에 이르러 협서율의 해제와 더불어 유학이 소생하게 되었으며 동중서의 건의로 정책사의 반영을 보았지만 유학 사상의 입장에서는 침체기라고 할 수 있다.셋째, 송명시대는 유학을 부흥하는 획기적인 시대로 주자학과 양명학이 흥성하여 유학의 발전을 이루었다. 육조 이래로 노불이 성행하여 침체되었던 유학은 송 태종의 성학권장으로부터 발흥하기 시작하여 한당풍을 일신하고 도학을 높이 외치게 되었다. 주자학에 대해서는 신유학, 성리학, 송학 또는 정주학 등 여러 가지 명칭이 있으나 그 내용은 모두인 윤리나 도덕의 차원이 아닌 ‘인간의 자아인식과 각오’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의 각성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보다 높고 심오한 경지라고 할 수 있다.인격에 포함되는 요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여덟 가지 측면으로 설명할 수 있다.첫째, 자신의 운명에 대한 자각을 들 수 있다. 에서는 “명(命)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고 하였는데, 북송의 정이천은 “명을 안다는 것은 명이 있음을 알고서 믿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만약 명을 알지 못한다면, 해(害)를 보면 반드시 피하고 이익을 보면 반드시 따를 것이므로 그런 사람을 군자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자는 “오십 세에 천명을 알았다”고 말했다. 이 때 ‘천명’은 ‘사물은 당연한 도리’를 가리키는 말로 풀이 된다.둘째, 목숨을 바쳐서라도 인(仁)을 이루려는 정신이다. 공자가 삶을 구하여 인을 해침이 없고, 몸을 죽여 인을 이루는 경우는 있다고 했던 것을 들 수 있다.셋째, 본바탕과 아름다운 외관이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공자는 “본바탕이 아름다운 외관을 이기면 촌스럽고, 아름다운 외관이 본바탕을 이기면 겉치레만 잘 하는 것이니, 바탕과 외관이 적당히 배합된 뒤에야 군자이다”라고 말했다.넷째, 이로운 것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공자는 “이로움을 보고 의로움을 생각하면, 위태로움을 보고 목숨을 바치려, 오래된 언약에 평소의 말을 잊지 않는다면, 또한 성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다섯째, 항상 자신의 몸을 수양하고, 어버이를 생각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군자는 자신을 수양하지 않을 수 없다. 수신하고자 한다면 어버이 섬기기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버이를 섬기고자 한다면 사람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 사람을 알고자 한다면 천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이 그것이다.여섯째, 뜻이 굳세어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에서 공자가 “삼군의 장수는 빼앗을 수 있으나, 필부의 뜻은 빼앗을 수 없다”라고 말한 데서 비롯되었다. 삼군의 용맹함은 외재적인 것이므로 수 있다. 공자는 “가난함을 근심하지 않고, 편안하지 못한 것을 근심한다”고 하였고, 또 “지위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지위에 설 것을 걱정하라”고 하였다. 이것은 물질적 혜택을 입는 것보다 근본적인 것은 심리적인 안정과 확신이라는 뜻이다.유가의 인격 수양은 ‘진리를 배우는 것’과 ‘몸소 실천하는 것’을 통하여 인격의 완성에 도달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유학에서는 이러한 인격의 완성에 도달한 이상적인 인격을 ‘군자(君子)’라는 말로 표현한다. 군자란 본래 계급적인 명칭으로 정치에 종사하는 사대부를 가리키며, 일반 서민인 ‘소인’과 대칭되었다. 그런데 사대부가 서민들을 이끌기 위해서는 마땅히 덕을 갖추고 있어야 하므로 ‘군자’의 개념은 ‘덕이 있는 사람’, ‘도덕적 인격’을 가리키는 말로 전화된다. 에 “군자는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토지만을 생각하며, 군자는 법을 준수할 것을 생각하는 데 반해 소인은 남이 어떤 은혜를 베풀어 주기를 바란다”라는 기록이 그 예이다.군자의 이상 인격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공자는 지인용(智仁勇) 삼덕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어진 자는 근심하지 않고, 지혜로운 자는 미혹되지 않고, 용감한 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처럼 군자는 지인용 삼덕을 갖추어야 하는데, 지자는 사물의 이치를 밝히고 시비의 표준을 분별하여 버리고 취하는 데 방도가 있으며 선악의 구별이 있다. 그러므로 미혹되지 않는다. 인자는 자기의 사욕을 이기고 남을 사랑하며 천명을 알아서 즐거워하고 남과 자기가 하나임을 깨달아 의심하는 일이 없다. 그래서 근심하지 않는다. 용자는 의(義)를 보고 달려가 위난(危難)을 피하지 않으므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인(仁)으로써 주체를 확립하고, 지(知)로써 사리를 분명히 인식하며, 용(勇)으로써 실천한다는 원칙은 천하에 통달하는 세 가지 덕으로서 인격 완성의 필수적인 요소이다.군자의 특징은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첫째, 군자는 아주 대범하나 소인은 근심할 일이 많다. 군자는 하늘에 대해서나 사람에 대해서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투지 않는 것이다.넷째, 군자는 화목하게 지내고 부화뇌동하지 않으나, 소인은 부화뇌동하고 화목하지 못한다. 군자는 비록 입장이 다르더라도 서로를 존중하지만 소인은 같은 입장에 있을지라도 서로 비난하고 다툰다.다섯째,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여섯째, 군자는 한 군데에만 쓰이는 그릇이 아니다. 그릇이란 각각의 용도에 따라서만 사용되며 서로 통용될 수 없다. 그러나 덕을 이룬 군자는 여러 방면에 두루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한 가지 기술만을 능사로 여기지 않는다.-맹자의 이상적 인간상에서 이상적 인간형을 지칭하는 용어로는 대장부(大丈夫), 대인(大人), 성인(聖人), 군자(君子), 현자(賢者) 등 여러 가지가 사용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도(道)를 자각하고 일상 생활에서 이를 실제로 구현하는 이상적 인간을 지칭하지만, 각각에 내포된 의미는 그 쓰임에 따라 약간씩 다른 점이 있다.이상적 인간을 일반형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는 대체로 대장부?대인?성인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에 비해 군자는 계급 개념이 강한 용어이다. 군자통치라는 유가 이념의 전통에서 이는 치자(治者)계층, 증 사대부 계층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맹자가 군자라는 용어를 반드시 이러한 계급 개념으로만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맹자의 사상에 의하면, 군자와 소인은 오직 그 개인의 정신적 자각 여하에 있는 것이요, 반드시 계급적 구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 자각의 입장에서 보면, 상층 계급에도 소인이 있고, 하층 계급에도 군자가 있음은 역사와 현실이 증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자도 군자와 비슷한 용법으로 많이 쓰이는 개념이다. 그러나 이는 도를 자각한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의 뜻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군자와는 다르다.이 중에서 맹자에 의해 이상적 인간의 전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역시 성인이라고 볼 수 있다. 성인에 대해서는 일찍이 공자도 “성인은 요(僥)?순(舜)도 이를 오히려 어렵게 여겼거늘 성(聖)과 인(仁)을 내가 어찌 감이다.
우주나 인간의 모든 현상을 음·양 두 원리의 소장(消長)으로 설명하는 음양설과, 이 영향을 받아 만물의 생성소멸(生成消滅)을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의 변전(變轉)으로 설명하는 오행설을 함께 묶어 이르는 말이다.- 음양(水,火) (음양을 대표하는 것이 水,火이다.)음양이란 사물(事物)의 현상을 표현하는 하나의 기호(記號)라고 할 수 있다. 음과 양이라는 두 개의 기호에다 모든 사물을 포괄·귀속시키는 것이다. 이는 하나인 본질(本質)을 양면으로 관찰하여 상대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을 표현하는 이원론적(二元論的) 기호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우주의 변화 법칙은 궁극으로 보면 음양(水火)의 변화이다. " 이 우주안의 모든 변화의 법칙을 가르켜 도(道)라고 한다. 그 도의 변화법칙을, 즉 이 우주(시간)의 변화법칙을 도라고 한다. 그 우주의 시간 변화 법칙을 밝혀 놓은게 바로 주역(易)이고, 공자는 주역 계사전에 그 변화 법칙을 이렇게 밝혀 놓았다. '일음일야지위도(一陰一陽之爲道)': 한 번 음하게 되고, 한 번 양하게 되는 것을 도라고 한다. 즉, 음양(陰陽)의 변화 법칙이 바로 이 우주의 변화 법칙인 것이다. 음양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광대한 우주 속의 생명법칙이자 도(道)라고 할 수 있다(一陰一陽之謂道). 태극이 변한 후의 첫 단계라고도 할 수 있으며 오행의 전 단계이기도 하다.음양운동에는 태양(日)과 달(月)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왜냐 하면 지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자연 현상과 변화의 이유는 태양과 달이 지구에 비추는 빛에 따라 계절이 나뉘어 지고 밤과 낮이 생기기 때문이다.모든 하나의 개체는 그것이 사람이라 해도 좋고 동물이나 물건이라고 불러도 좋다.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으며 과거, 현재, 미래를 드나드는 하나이면서 동시에 둘이며 또한 하나이거나 둘이 될 수밖에 없는 하나의 구조와 특성을 나타낸다. 그것을 선인들은 음양이라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명철한 원리로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선이 있으면 악이 있고 길하지 않으면 흉하다. 반드시 하나의 성질은 다른 성질을 필요로 하며 빛과 어두움, 건(乾)과 곤(坤) 등이 모두 음양을 표현하고 있으며, 또한 어느 것도 음양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음 속에 양이 있고 양 속에 음이 있으니 화복(禍福)은 서로 의지하며 추위와 더위, 남녀, 모순과 균형, 대립과 화합 등은 음양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음: 땅, 달, 여자, 작은 것, 찬 것, 부드러움, 정적이고 어두운 것 등등. 2,4,6,8,10양: 하늘, 해, 남자, 큰 것, 더운 것, 강함 활동적이고 밝은 것 등등. 1,3,5,7,9한마디로 음이란 거두어 들이고(斂) 저장하며(藏) 침잠(沈潛)하는 성질이다. 양이란 발산하고 드러내며 생장(生長)하는 기(氣)이다.[음양의 뜻]-문헌적 고찰음과 양이라는 말의 본뜻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언덕 위로 해가 떠오르면 응달과 양달이 생긴다는 데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내경(內經) 음양응상대론(陰陽應象大論)陰陽者 天地之道也 萬物之綱紀 變化之父母 生殺之本始 神明之府也 治病必求於本"음양(陰陽)이란 천지(天地)의 길(道)이고, 삼라만상을 통제하는 강기(綱紀)이다. 변화를 일으키는 주체로서 살리고 죽이는 것이 여기서 나온다. 또한, 신명이 깃들인 집으로서 인간과 삼라만상의 병(病)은 반드시 음양의 조절을 통해서 고칠 것이다."? 주역의 계사전(繫辭傳)一陰一陽之謂道"우주에서 삼라만상이 무궁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음(陰)과 양(陽)이라는 이질적인 두 기운이 지닌 바의 작용으로 인하여 모순과 대립이 나타남으로써 일어나는 현상을 변화라고 한다."- 오행(木,火,土,金,水)한편 오행은 우주만물을 형성하는 원기(元氣), 곧 목·화·토·금·수를 이르는 말인데, 이는 오행의 상생(相生)·상극(相剋)의 관계를 가지고 사물간의 상호관계 및 그 생성(生成)의 변화를 해석하기 위해 방법론적 수단으로 응용한 것이다.그리고 오행이란, 바로 이 음양(水火)의 변화가 한 단계 더 세분화 된 것을 말한다. 즉, 양(火)에서 한 단계 더 세분화 되어, 그 속에서 다시 음양 (木,火)이 나오는 것이다. 또 음(水)에서 한 단계 더 세분화 되어, 그 속에서 다시 음양(金,水)이 나오는 것이다..※표. 음양->오행.........↗ 작은양(木)................양(陽-火)............↗.............↘.큰..양(火)태극(음+양) ------------------------------> 중보자(土)............↘.............↗.작은음(金)................음(陰-水)..........↘.큰..음(水)이렇게 해서 음양에서 오행이 나오는 것이다.오행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음양이 구체적인 소리, 맛, 색, 냄새, 감정 등의 오감을 기본으로 표현하고 나가는(行) 5가지 기본적인 갈래를 말한다. 음양이 체(體)라면 오행은 용(用)으로서 질로서의 음양이 구체적인 상(象)으로 나타나는 것이다.목(木): 봄기운같이 위로 자라면서 지향하는 생명의 작용이나 근원으로 만물의 시작이며, 화(火): 여름처럼 사방으로 향하며 열과 빛 에너지인데 분열과 폭발, 발산을 나타낸다. 토(土): 각 계절을 나누며 움직이지 않는 중정(中正)한 지구의 본체나 대지를 말하며 저장, 숙성을 말하며, 금(金): 가을에서 결실을 맺는 것처럼 이미 그 물질이나 성질이 단단하거나 견고하면서 응집된 것을 말하고, 수(水): 겨울이 봄을 기다리듯이 아래로 흐르거나 고정적이지 않는 유동성, 창조, 변화를 나타낸다.
-어조와 문체 ? 아이러니를 중심으로-1. 어조와 문체 ? 아이러니작품 속에서 화자의 심경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은 역시 어조라고 할 수 있다. 어조를 통해서 화자의 심경 변화를 표현할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작품 전체의 분위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 이라는 작품은 독특하게 서간문의 형식을 취하여서 상대방에게 말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어서 어조의 변화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화자가 자신의 심리상태를 거의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어서 그의 심리를 파악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이 작품은 3통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 번째와 세 번째의 2통의 편지는 일본과 조선의 관리가 서로에게 보낸 공적인 편지이고, 두 번째 편지는 주인공이 자신의 아내에게 보낸 사적인 편지이다. 먼저 첫 번째와 세 번째의 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일본국 대마도 태수 다이라 요시자네가 조선국 예조참의 대인 합하께 몇 자 올립니다.조선국 예조 참판 박세모가 일본국 대마도 태수 다이라 공 합하께 회답드립니다.여기에서는 편지를 쓴 주체들이 각 국을 대표하여 편지를 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사무적이지만 예의를 갖춰 공손한 어조로 서로에게 문답을 하고 있다.이제부터 작품의 주요 내용이 담긴 두 번째 편지에 나타나 있는 어조의 변화를 통해 화자의 심경 변화를 살펴보도록 하겠다.사랑하는 당신. 당신의 이름을 불러본 지도 까마득히 오래되었군...(중략) 나는 당신의 이름을 나지막하게속삭이는 것을 좋아했지. 우리가 사랑을 나눌 때 나는 당신 이름을 당신의 귀에 속삭이곤 했잖소. 그럴 때면 당신은 귓불을 발갛게 물들이며 묻곤 했지.(중략)편지의 도입부에서는 주인공 안토니 얀스의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잘 나타나 있다. ‘~했지’라는 종결어미를 자주 사용함으로써 옛 일을 회상하며 그리워하고 있음이 더욱 부각된다. 그리고 그리움을 넘어서서 지금은 예전처럼 아내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심정도 드러나고 있다.거짓 희망이 아니라 참된 희망이 눈앞에 펼쳐졌던 것이오. 스페르베르 호의 선원들은 필사적이었소...(중략)...바다에 떨어진 나는 죽을 힘을 다해 뭍으로 기어올랐소. 죽을힘을 다해버린 나머지 정작 나는 죽지 못했소.배가 표류하는 상황을 서술한 이 부분에서는 그 상황의 절박함을 표현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죽을힘을 다해야만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의 절박함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에게는 그저 ‘살고 싶다’는 생각만이 필사적으로 들 뿐이었다.이 서신을 쓰는 지금, 나는 불안하오. 이 서신이 과연 당신의 손에 닿을 수 있을까...(중략)...죽는 것은두렵지 않소. 그러나 흔적도 없이 잊혀지는 것은 두렵소. 이를테면, 이 서찰은 흔적이오.편지를 쓰는 내내 안토니는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배가 표류할 때 느꼈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흔적도 없이 잊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는 한때 국왕이었던 국왕의 숙부와 전쟁터에서 목숨을 다한 다른 두 이방인이 느꼈을 고독에 동질감을 느끼면서 형제라고 여긴다. 그러면서 그는 코레아에서의 생활을 서술하는 내내 계속 ‘두렵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배가 표류하는 상황을 서술했을 때의 절박함과는 달리 비교적 담담한 어조로 코레아에서의 생활을 서술하고 있다. 그의 두려움은 이방인의 땅에서 사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잊혀지는 것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동틀 무렵이면 13년 유배의 삶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오...(중략)...그 탈출 역시 나를 위한 것이고 바다에서의 죽음 또한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것이어야 하오. 나 자신의 가난한 희망을 위해 죽을 수 있는 나는,이미 자유인이오.안토니는 마지막 탈출을 감행하면서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 탈출은 그가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탈출로써,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탈출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비치고 있다. 그리고 탈출을 하다가 죽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죽는 것이므로 상관없다는 어조로 말하고 있다.첫닭 우는 소리가 들리오. 이제 서신을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오. 이 서신이 쓸모없어지기를 주님께 기도하리다...(중략)...내 가난한 영혼은 당신의 사랑으로 늘 풍성했소.탈출이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아내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말하며 편지를 마치고 있다.앞서 말했듯이 이 작품은 서간문의 형식을 취하여서 상대방에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구어체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편지를 쓰는 주체는 자신의 아내에게 말하고 있지만 독자는 화자가 사건을 직접 이야기해주는 듯한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조선 중기의 어휘와 하오체를 사용함으로써 정말 그 시대의 사람이 편지를 쓴 듯한 리얼리티를 더해주고 있다. 또 대체로 호흡이 짧은 문장을 사용해서 주인공의 고독과 두려움을 효과적으로 드러내었다.이 작품 속에서는 3가지의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그 중에서 첫 번째 아이러니는 처음에는 안토니의 나라에서 코레아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고 안토니 또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코레아에 표류하고 나서는 그가 코레시안과 다른 생김새를 가진 이방인으로서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미지의 왕국 코레아는 네덜란드에서 생각했던 것처럼 짐승조차 금을 목에 걸고 다니는 보물섬이 아니었다. 그리고 안토니의 무리들은 금발의 원숭이로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국왕 및 고관대작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그들의 환대는 호기심의 다른 이름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안토니 스스로 말한 바와 같이 그는 자신의 무리가 호기심의 대상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도 코레아의 말과 글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코레시안들을 관찰한 것으로 보아 표류한 후에도 코레아와 코레시안은 여전히 그의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두 번째 아이러니는 붉은 수염의 사내 벨테브레에 관한 것이다. 그는 안토니들 보다 20여년전에 표류한 네덜란드인이다. 하지만 켈파르트의 총독은 그를 ‘코레시안’이라고 소개했다. 처음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벨테브레와 대화를 나눠보고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벨테브레는 코레아에 정착해서 가정까지 꾸리고 있었으며, 네덜란드어도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째 탈출사건이 수포로 돌아가고 안토니들이 도성을 떠날 때 강가에서 작은 점이 될 때까지 강가에 서 있던 그는 도성의 유일한 네덜란드인이었다. 그리고 희망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던 벨테브레는 희망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안토니에게 인식시켜준 존재이다.세 번째 아이러니는 안토니가 편지를 쓰고 있지만, 그 편지가 쓸모없어지기를 바라는 상황이다. 그는 자신이 존재했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 아내에게 편지를 쓰지만, 나가사키로의 탈출이 성공하면 안토니 자체가 존재의 흔적이 되므로 편지는 없어도 된다. 편지는 흔적의 증거물이 되지만, 죽음의 증거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탈출이 성공하기를 바라면서 편지를 쓰고 있는 상황은 아이러니하다.2. 상징과 주제먼저 제목이 주는 상징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제목 ‘나가사키여 안녕’에서 나가사키는 이방인들이 추구하는 자유가 있는 곳을 상징하며, 존재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장소이다. 그리고 안녕은 만나거나 헤어질 때 사용하는 인사말로 나가사키로 탈출한 이방인들의 나가사키에 대한 반가움의 인사일 수도 있지만,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을 감행하는 상황에서 어쩌면 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 나가사키에 대한 헤어짐의 인사 일 수도 있다. 따라서 제목은 자유와 존재의 증명 대한 만남과 헤어짐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