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학위논문유가변동에 따른한국 경제의 변화에 대하여유가변동에 따른한국 경제의 변화에 대하여이 논문을 학사 학위논문으로 제출함Ⅰ. 서 론 ㆍㆍ4Ⅱ. 유가 충격이 경제에 미치는 거시적 영향 ㆍㆍ52.1. 기존 연구 ㆍㆍ52.2. 유가충격의 거시경제적 영향 ㆍㆍ102.3. 파급효과 ㆍㆍ14Ⅲ. 유가 변동과 한국 경제의 영향 ㆍㆍ183.1. 국제유가상승이 산업에 미친 영향 ㆍㆍ183.2. 국제유가상승이 산업생산비용에 미친 효과 ㆍㆍ243.3. 국제유가상승이 고용에 미치는 효과 ㆍㆍ253.4. 한국 경제 전체에 미치는 효과 ㆍㆍ273.4.1. 고유가의 영향력 ㆍㆍ283.4.2. 한국경제의 석유의존도 ㆍㆍ32Ⅳ. 결 론 ㆍㆍ38참고문헌 ㆍㆍ41국문요약국제 유가의 변동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본 논문은 국제유가 변동이 한국경제에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고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원인을 분석한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최근의 유가 급등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한 전제로서 2005년 이후의 유가 전망치를 기준 시나리오(60달러,배럴 당)와 악화 시나리오(100달러)를 적용하였다.유가상승이 국내 산업의 생산비용에 미치는 효과는 기준 시나리오 하에서 국내 생산자 물가는 1.34%(2004년-2005년)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추정되며, 악화시나리오의 경우 2.85%(2005년-2007년)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예측된다.이것은 과거 1,2차 석유위기와 걸프 사태 때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높은 편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즉 현재의 실질유가수준이 과거의 65%정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며, 끊임없는 에너지 절약산업으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다른 선진국과 에너지 탄성치를 비교해 보면 여전히 2-3배가량 높기 때문에 똑 같은 폭의 유가상승에 대해 보다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최근 유가 급등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상대적으로 미미한데 그 이유는 첫째, 유가 상승속도가 과거에 비해 완만하고 둘째, 실질유가 수준이 낮으며, 셋째국 대상의 실증적 연구에 대하여 광범위한 조사를 한 Jones and Leiby(1996)에 의하면, 국민 총 생산(GNP)의 유가탄력성은 –0.02~-0.09의 범위에 놓여 있으며 –0.05의 수준에서 밀집되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Tobin(1980)은 이러한 추정된 탄력성의 크기는 전통적 공급 충격에 의한 효과에 부합하기엔 규모가 큰 것으로 여겼으나, Jones and Leiby는 –0.05라는 크기는 석유 요소비중과 거의 유사한 산출탄력성의 예상범위 내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실제로 1973년 오일쇼크 이후 GNP에서의 석유비중은 약 4~6%의 범위에 있어왔다.2.1.2. 한국의 경우우리나라를 대상으로 한 유가와 경제활동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그리 많지 않다. 최근의 연구로는 김성현 ㆍ조경엽(1999), 손양훈(1999), Kim and Oh(2001) 등을 열거할 수 있다.김상현ㆍ김영덕ㆍ조경엽(1999)의 연구는 유가와 경제활동 간 역(-)의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유가충격의 전달경로로 공급충격을 설정하여 국제유가가 상승하였을 경우 국내의 경제 변수들이 얼마나 변화하는 가를 연산일반균형 모형을 이용하여 계산한 것이다. 국제유가상승의 전달경로는 국제유가가 상승하였을 경우, 국내 원유도입단가가 상승하고, 이는 석유류 제품의 가격을 인상시키며, 이는 석유 등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산업의 생산비용을 증가시켜 생산을 위축시키고, 결국 물가상승과 함께 국내 총 생산이 위촉되는 효과를 모형에 설정한 것이다. 그 결과 국제유가가 배렬 당 12달러에서 15달러로 약 25% 상승하였을 경우, 국내총생산 0.44%P 하락하고 소비자물가는 1.62%P 상승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이 연구는 공급충격만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수요충격, 예를 들면 통화정책의 영향과 같은 내생적 변화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충격에 대한 효과가 적정하게 계산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손양훈(1999)의 연구는 유가하락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연산일반균형 모형을.2%로 증가했다.걸프사태시 경제성장률에의 영향은 미미해서 1990년 대비 0.5%p에 그치고 수입의존도 또한 0.4%p로 소폭 증가에 그쳤다. 물가에의 영향은 1991년 소비자물가 9.3%, 생산자물가 4.7%로 적었고 원유수입 물량 29.5% 증가에 비해 원유수입 금약은 걸프사태 진정과 함께 국제유가안정으로 22,3% 증가에 그쳤다.구분1차 위기(1973~1974)2차 위기(1979~1980)걸프사태(1990~1991)경제성장률-3.9▼전년대비 0.5▼물가상승률소비자 24.7▲생산자 42.5▲소비자 28.8▲생산자 38.9▲소비자 9.3▲생산자 4.7▲수입의존도73년 7.9▲74년 6.6▲9.3▲0.4▲석유소비증가율3.8▲원유수입물량9.2▲1.4▲29.5▲원유수입금액300.7▲72.2▲22.3▲3차 오일쇼크 발생 가능성의 점검역사적으로 1ㆍ2차 석유파동은 실질적인 공급감소를 동반한 반면, 최근의 고유가는 중국의 수요증가와 정치적인 요소 및 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따른 시장왜곡에 따른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1ㆍ2차 석유파동기와는 다소 다른 모습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바로 석유의존도의 변화이다.세계 에너지 수요의 석유의존도가 1ㆍ2차 파동기에는 50%에 달했지만 최근에는 38.6%로 하락했기 때문이다.촉발원인지속기간공급량변화(백만b/d)세계에너지석유의존도석유 파동1차4차 중동전쟁1973.10~1974.3-4.350.1%2차이란혁명1978.11~1979.4-5.649.0%유가 급등3차 중동전쟁1967.6~1967.8-2.0-1차 걸프전1990.8~1991.1-4.338.8%현상황수요급증, 테러,핵 관련미국정책,신용경색2004~?+0.338.6%자료 : IEA, International Energy Outlook. 에너지 경제연구원, 참조국제 유가의 상승은 직접적으로 무역수지 악화를 가져오며, 성장률의 하락과 물가불안을 유발한다. (원유도입단가가 배렬 당 10 달러 상승 시 : 유가 요인만 고려할 경우 경제성장률 1.1%p 하락, 물가 1.5%p 상승, 86%, 제조업 전체는 3.03%~4.57% 각각 상승하게 된다. 유가 상승의 경제전체 및 제조업 부문 생산비용 상승효과원유가비용증가액(십억원)총산출액대비증가율(%)석유류비중천연가스비용합계경제전체60달러28,7751,798 =SUM(LEFT) 30,5732.19100달러60,6073,172 =SUM(LEFT) 63,7794.86제조업부문60달러12,973184 =SUM(LEFT) 13,1572.03100달러23,816334 =SUM(LEFT) 24,1504.57주: 2004년 대비 2000년 불변가격기준국제 유가가 기준 시나리오인 1 배렬 당 50달러인 경우 국내 총 생산(GDP)은 0.55% 감소할 것이며, 악화 시나리오인 80달러의 경우 0.97% 감소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산업별로는 1차 산업인 농림수산업과 건설 및 서비스업의 부가가치는 유가 1배럴 당 60달러 및 100달러의 경우 각각 0.2%~0.4% 및 0.3%~0.6%내외의 감소에 그치는 데 비해, 제조업 부문은 0.78% 및 1.37%의 큰 폭 감소가 전망된다. 제조업 중에서는 에너지 고 소비 산업인 화학산업과 비금속산업의 부가가치가 60달러(100달러)시 각각 3.13%(5.50%) 및 1.69%(2.79%)의 대단히 큰 폭의 감소를 시현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유업을 포함하는 석유 석탄 업과 1차 금속의 부가가치도 각각 0.73%(1.29%) 및 0.45%(0.79%)의 커다란 감소가 예상된다.그러나 제조업 중에서도 전기 전자, 수송장비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출업종의 부가가치감소는 각각 0.11%(0.19%) 및 0.26%(0.46%)에 그쳐 고유가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는 것으로 추정되었다.3.3. 국제유가상승이 고용에 미치는 효과고용에 미치는 효과는 유가가 1 배럴 당 60달러 및 100달러의 경우 전체로는 0.35%, 0.811% 감소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농림수산업과 건설업, 서비스업의 고용은 60달러 시 각각 0.35%, 0.11% 및 0.34%, 100달러 시 각각 0.7chanism)를 채택하면서부터는 다소 약해지는 듯하다.지금의 다섯 번째 유가 상승기에는 전세계적으로 보아 아직 석유수요의 위축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석유파동과 걸프전 시기에 작동했던 가격급등 메커니즘은 2000년 네 번째 유가 상승기를 거치면서 상당 부분 바뀐 것으로 보인다. 2003년 발발한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이 종료된 후 유가상승은 오히려 가속화되었다. 과거 유가급등의 주요 원인이었던 정치, 군사상의 우발적 충격에서 비롯되는 공급불안과 감소가 이제는 부수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뿐인 상황이 된 것이다. 그 대신, 세계 석유수요의 견조한 증가세를 공급능력이 충분히 감당하지 못한다는, 구조적이고 경제적인 이유가 핵심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세계경제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중국 러시아, 브라질 등 성장을 주도하는 개발도상 대국들의 석유수요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으며, 여기에 지정학적 불안과 자연재해, 그리고 투기적 요인 등이 가세했다는 것이다.또, 지난 1년 동안의 가파른 유가상승의 영향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에서 실질유가와 GDP 성장률 사이의 관계를 보면, 과거에는 유가상승의 영향이 성장률 추이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데는 대략 4~7분기 정도의 시간이 걸렸음을 알 수 있다.3.4.2. 한국경제의 석유의존도고유가가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약화된 또 다른 논거로 석유에 대한 우리 경제의 의존도가 과거보다 낮아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경제성장에 힘입어 우리나라의 1인당 석유소비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한편으로 국내총생산에 대한 석유투입량, 즉 석유원단위는 1970년대 이후 두 차례 증가(석유효율의 하락을 의미함)와 감소(석유효율 향상)추세를 거듭해 왔다. (그림 5참조)1970년대 내내 석유원단위가 높아진 데는 정부의 강력한 정책의지에 힘입은 중화학공업 성장의 영향이 컸으며, 1990년대 전반에는 세계적인 저 유가 지속에 힘입어 자동차와 에어컨 보급 등 석유소비가 크게 증가했다.한편, 석유원단위의 첫 번째 2-
바퀴벌레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공룡은 멸종해 버렸다. 왜? 무엇 때문에 지구의 점령자였으며 강하고 거대했던 그들은 멸종해 버렸을까? 그들의 치즈를 누군가 옮겨버렸기 때문에?어제 있었던 산이 오늘은 도로가 되고, 오늘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옆집 사람이 내일은 부자가 되어 해외로 이민을 가는, 이른바 변화의 시대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 것인가? 현대인이 즐겨 찾는 서가에는 이미 앞으로의 변화를 경고하고, 예언하고, 또는 적응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책들이 즐비하게 꽂혀 있다. “2010 대한민국 트렌드” 이 책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필자는 마음속으로 “너 역시도 식상해” 하는 생각으로 이 책을 펼쳤다. 그러나 이 책, 만만치가 않다. 마치 “내가 식상하다고? 그거야 두고 볼 일이지” 라고 하는 듯 필자에게 미래의 모습을 각 분야별로 생생하게 펼쳐 보여주고 있다.이 책은 미래의 모습을 마치 수술대 위에 올려 놓은 표본을 관찰하듯 세밀하게, 사실적으로 예언하고 있다. 필자는 이 책이 주는 메시지를 세 부분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부분은, 일반 소비자, 혹은 사회의 뿌리와 줄기를 이루는 계층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가장 미시적이고, 가장 사소한 부분에 속하는 사람들이지만 이들이 사회의 주 트렌드를 이끌어 가고 있다. 이들을 제대로 공략하지 않으면, 기업은 사회에서 도태되어 버리고 만다. 또한 이들이 이 부분에 주목하지 않으면, 풍요롭고 여유롭게 이 시대의 트렌드를 이끌어갈 수 없다. 오히려 현재에 안주하려 하다 세상에 도태되어 버리는, 가장 나약한 계급이 되고 말 것이다. 두 번째 부분은, 기업인, 즉 사회적 트렌드에 부응해, 혹은 한발 앞서서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해야 하는 계층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다시 설립되는 요즘의 시장에서, 어떤 방법으로 고객의 니즈를 충족하고 기업을 존속시킬 것인가, 혹은 번영시킬 것인가? 많은 기업인들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내용을, 이 책은 앞으로의 미래 트렌드를 소개하는 것으로이 있다. 따라서 감성과 가격, 이 두 조건을 충족하는 상품에 대한 소비 욕구가 ‘미샤’, ‘더 페이스샵’ 등과 같은 저가상품들을 등장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상품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에의 욕구가 소비 큐레이터들을 등장시켰고, 또한 소비자가 자신이 사려는 상품에 대한 정보를 이용하기 위해, 혹은 개인의 정보욕구를 만족하기 위해 점점 더 폭넓게 사용되고 있는 인터넷이 인터넷 상의 자기 모습을 표현하려는 웹 아이덴티티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아바타와 미니홈피, 개인 블로그 등에 소비하는 돈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냈고, 그들은 인터넷 상에서 실제의 그들의 모습과는 다른, 즉 자신이 보이고 싶은 모습 – 실제와는 한계가 있는, 혹은 실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습 중 자신 있는 모습 – 을 형성해 새로운 사람이 된다. 그들이 지닌 감성은, 굳이 인터넷으로 만들지 않아도 아름다운 모습을 향유하기 위한 노력, 즉 매트로 섹슈얼리즘이 대두하게 되었다. 또한 남성이 매트로 섹슈얼리즘 문화를 갖게 되었다면, 여성에겐 더 유능하고 독립적인 모습을 향유하기 위한 콘트라 섹슈얼리즘 문화를 갖게 되었다. 이들의 삶의 더 나은 질 추구는 그들의 시간을 좀더 효율적으로 쓰는 행동양상을 낳게 되었고, 그러한 니즈는 그들을 위한 도우미 제공하는 산업을 낳기에 이르고, 움직이는 소비자를 위한 트랜슈머 인프라까지 구축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소비트렌드는 이미 미래의 일이 아닌, 현재와의 연직선상에 있는 일들이다. 그러나 소비자가 소비패턴을 그들의 소비 생활로부터 얻어내는 것은 당연한 일, 좀더 폭넓게 미래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선 사회 문화적 트렌드와 접목시켜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소비자는 사회∙ 문화 트렌드에 대해 주목해야 할 것이다. 3장에서는 미래 문화에 대한 트렌드가 약간은 씁쓸하게 묘사되고 있다. 일상의 교통사고 현장에서 “법대로 해, 법대로”, “절대 합의해 줄 수 없다” 는 말들은 이미 사회의 소송만능주의가 만연하게 될 것이라는 전주곡인 듯 하다. 변호사들의 이션 문화를 이용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자극적인 문화를 공유하는 등 더 사회적 역치를 높이고 있다.때문에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이질감 때문에 더욱 사회적으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세대간 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유머? 웃음은 모든 세대를 잇는 연결고리다. 호모 후모아들의 새로운 등장. 사회에서 한숨만 쉬고 있는 우리네에겐 아주 바람직한 소식이다. 모두를 즐겁게 하는 유머. 그 유머를 사회가 갖고 있는 활력으로 만들어내는 일. 아마 사회 어떤 계층이든지 바라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웃음이 함께라면 여러 계층들이 지니고 있는 특징이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2. 기업가들은 이 모습에 주목!바야흐로 세계 기업의 시대이다. 우리는 우리나라에 살면서도 외국 기업의 상품을 아무 불편 없이 살 수 있다. 우리나라 기업 역시 다른 나라에 진출해서 그 나라 기업 상품과 경쟁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기업이 도산하고, 수십 개의 기업은 새로 상장된다. 모두가 어려운 시대. 어려운 시점에서 우리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까? 필자 기준으로 이 책에서 기업가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chapter2, chapter5, chapter7 즉, 산업, 경영, 글로벌 트렌드라고 생각한다. 물론 소비자들이 주목해야 할 트렌드 역시 기업은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기업은 산업을 재료로 발전해야 하고, 여러 가지 경영 전략으로 기업을 꾸려 나가야 하며, 국제시장을 파악해서 더 나은 방법으로 존립해야 할 것이다.미래의 유망산업. IT낙오자들에게는 좀 비극적인 소식일지 모르지만, 앞으로의 산업은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첨단 기기들을 기반으로 한 산업이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저렴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앞으로의 기업은 이러한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첨단기기들을 더욱 잘 활용해야 할 수 밖에 없다. 또한 IT낙오자를 위한 첨단기기의 사용이 용이한 인터페이스 구축 역시 기업의 당면 과제이다.산업트렌드 장의 필요로 하고 있을까?‘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당신의 집, 자연에게 허락 받았습니까?’ 왠지 어색하지 않은 미사여구다. 자연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푸근해지지 않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터전이며 우리의 조상들에게 물려받았고, 앞으로 세대에게 물려줄 것이 아닌가. 이제는 높은 경영실적, 당기 순이익, 안정적으로 높아지는 주가 등은 바람직한 기업에게는 필수. 그리고 또 한가지. ‘친 환경 기업인가’ 라는 질문에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는 기업이어야 한다. 환경을 해치는 기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 소비자들 역시 웰빙 트렌드에 맞춰 자신과 환경에 대한 관심을 나날이 더하고 있는 이 때에 공해를 유발하는 기업은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이 땅을 더럽히는 기업. 물건이 아무리 좋은들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기업이 환경을 위해 이해타산도 맞지 않는 친환경전략을 무조건적으로 사용할 수 는 없을 터. 이 때문에 ‘식스 시그마 경영’ 역시 대두하고 있다. 식스 시그마 경영. 특별한 기법이 아닌 경영철학이기 때문에 개별적 도입에는 효과가 없지만, 차세대에는 다른 경영 기법들과 통합하거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등의 방식으로 “열심히 뿐만이 아닌 똑똑한 경영” 을 모토로 하고 있다. 기존의 것을 변형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변화하려는 과감성. 현대 소비자들은 기업의 그런 면모를 바라고 있다. 또한 이러한 과감성이 다양한 시도를 불러일으킴에 따라 소비자의 다양성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려 할 것이다. 이에 대두된 퓨전 경영. 이런 저런 경영법을 혼합하고 새로운 결과를 도출해 내는 경영은 더욱더 그 경우의 수를 늘림에 따라 소비자들을 유혹하게 된다. 퓨전 경영은 비단 동서양 경영문화의 결합 뿐 아니라 각 분야별 산업의 기업들이 경영법을 결합함에 따라 색다른 생존에의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선진국만을 좇는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탈피해서 저개발국의 개발을 꾀하는 전략 역시 필요할 것이다. 또에는 이점에 주목하라!미래에 정부는 없다? 현대 정부는 하나의 기업이라고 할 정도로 면밀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전형적인 관료제가 살아 숨쉬고 있는 그곳! 아마도 많이 완화되었다 하지만 정부 기관들의 관료제가 완전히 뿌리 뽑힐 날은 아직도 멀고 먼 듯 하다. 정부가 일단 주목해야 할 부분은 chapter 4, chapter6 의 인구와 국내 경제 트렌드. 아무래도 국가기관은 국내 정황에 우선적으로 주목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세계 최저 출산율. 누구의 작품인가?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를 주창한 대한민국 정부. 화끈한 우리 국민은 끝내 세계 최저 출산율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다. 최저 출산. 그저 어린아이가 줄어드는 것만은 아닌 현상. 이것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노령화가 빨리 진행되는 나라 중 한 곳으로 지정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직장인은 정년 후에도 늘어난 수명, 많아진 노년계층들 덕분에 동료들과 함께 30년은 더 살아야 하고, 끊어지다시피 한 소득이 그들의 삶을 피폐화 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 정부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너무도 부실한 정책이기 때문에 보강이 필요하다). 또한 기업은 실버시장의 규모가 커질 것을 예상하여 실버산업에도 주목해야할 필요가 있다. 핵가족화 현상은 점차 단일가족화로 변하는 추세이고, 미혼이 이제는 부끄러운 일이 아닌, 당당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TV나 드라마에서도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고, 심지어는 멋진 삶을 꾸려나가는 모습으로 미화되기까지 한다. 출산율이 낮아지다 보니 외동딸, 외동아들은 부모 위에 황제와 같은 대접을 받고, 때문에 기업은 이러한 고객 – 많지는 않지만 까다로운 고객 – 에 대한 전략을 주어야 할 것이고, 이들이 성인이 되면 부모, 조부모까지 부양해야 하는 현상은 절대 정부가 지나쳐 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이러한 인구 문제에 대한 좀더 철저한 대책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노령화 사회는 이제 멀기만 한 미래가 아니기 때문이다.정부는 또한 우리된다.
Q. “자유무역과 보호주의, 도전할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The Choice” 를 읽고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시오.경제활동은 인류의 시작과 동시에 시작된 뿌리 깊은 인류활동 중 하나로 발전을 거듭하며 지속되어 왔다. 인간들은 탄생과 함께 생존을 위해 많은 것들을 생산하고, 수확했으며, 소비하고 또한 자신의 힘으로 생산하기 어려운 것들을 교환했다. 이제는 인류생활에서 경제생활이란 뗄레야 뗄 수 없는 활동으로 자리 잡고 있고, 개인의 경제를 벗어나 세계가 협력하는 경제, 공공선을 지향하는 경제로 그 형태를 달리하고 있다. 인류가 그 각각의 국가를 형성함에 따라, 토지의 자원이 각기 다르고 각 국민과의 생산성과 효율성이 다른 문제가 발생함에 따라 세계는 각각의 협력이 필요하게 되었고, 각국의 이익이 최대한으로 창출되기 위한 방법론적인 논쟁이 바야흐로 시작되려 하고 있다.자유무역인가 보호주의 무역인가의 논쟁이 시작된 것은 비단 가까운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고대 사회에서부터 각 국가는 무역을 해 왔고, 각각의 특산물을 서로 맞바꿈으로서 국가간의 우호관계가 유지되었다. 힘이 센 나라와 힘이 약한 나라와의 무역은 조공이라는 형태의 불공정거래형태로 이루어지기도 했고, 힘이 비슷비슷한 나라는 필요한 물건을 서로 맞바꾸기도 했다. 화폐의 발명으로 이러한 관계는 좀더 발전적으로 이루어졌고, 이러한 무역의 상황에서 각 상인들과 정부는 자신들의 이익이 최대가 되도록 언제나 자신들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들이 제국주의의 형태로 발전함에 따라 각국은 중상주의, 보호주의 무역을 통해 각국의 이익을 최대로 하기 위해 노력했고, 여러 강대국들이 이때 강대국의 기반이 되는 부를 축적했다. 미국은 이러한 과정에서 영국이나 그밖의 나라로부터 분리되면서 새로운 신문명을 구축해나가는 동시에 새로운 발전을 꾀했고, 광대한 자원과 자유주의를 토대로 강대국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The Choice 는 미국이 강대국의 반열에 들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무역방식에 대한 선택의 분기점에 다다른 모습을 데이비드 리카도와 60년대 텔레비전 공장 사장인 에드 존슨의 대화를 통해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60년대 미국은 외국에서 밀려들어오는 상품과 경쟁해야하는 상황에서 자유무역을 표방해야 하는가, 외국 상품에 적절한 조치를 취해 자국 상품을 보호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립관계가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책 속에서의 프랭크 베이츠라는 보호주의자가 자신의 당선을 위해 에드 존슨에게 보호주의무역을 지지하는 내용의 연설문을 낭독해 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에서 나타나진다. 물론 에드 존슨 역시 데이비드 리카도의 조언을 듣기 전까지는 보호주의자들과 같이 자신의 텔레비전 회사가 번창하기 위해서는 일본에서 수입되고 있는 텔레비전에 대한 적절한 규제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만약 내가 에드 존슨과 같이 60년대 미국의 가전기기 생산 공장의 지배인이라면, 자국내 경쟁회사와의 경쟁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해외상품과의 경쟁빈도를 될 수 있으면 줄이는 것이 회사의 번창을 위해 더 낫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롭게 수입되는 외국의 텔레비전이 자국내 소비자 점유율을 점차 높여나가면 공장에서 생산되는 텔레비전의 수는 수요-공급의 균형 원리에 따라 점차 감소시켜야 하기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가 생겨날 것이다. 한 공장의 지배인으로서 노동자를 해고시켜야 한다는 것은 슬픈 현실임에 틀림없다. 때문에 에드는 데이비드 리카도에게 거듭 자유무역에 대한 문제점으로 야기될 수 있는 것들을 제기함으로서 공장과 노동자에 대한 미련을 표현하고 있다. 그렇지만 데이비드 리카도는 공장에서 가장 타이핑을 잘 하는 에드가 타이핑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 것처럼 미국도 좀더 우위가 있는 산업에 투자하는 것-우위가 낮은 산업은 자연스럽게 해외에 의존하게 된다-이 효율적이라는 것을 여러 가지 단적인 예를 들어 알려 주고 있다.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2000년대 미국이 그들의 무역방식을 달리 함으로 해서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는 모습이었다. 자유주의 무역을 선택한 2000년대 미국은 시장개방으로 인한 경쟁 때문에 오히려 상품의 질이 점점 향상되고 여러 가지 직업이 창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개인에게 보다 균등한 경제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전문직이 증가해 보다 폭넓은 직업선택의 기회가 주어질 뿐만 아니라 새로운 부가 창출되는 모습이었다. 반면에 보호무역을 선택한 2000년대 미국은 변화가 없는 60년대와 흡사한 생활을 하고 있었고, 지금 세계적으로 손가락에 꼽히는 부를 창출하고 있는 MICROSOFT 사나 DISNEY 사가 그들의 가능성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도산하거나 생성되지도 못한 채로 도태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물론 에드는 이 두 모습에서 특별히 어느 것이 더 ‘낫다’ 라거나 ‘좋다’ 는 표현은 하지 않았다. 또 보호주의를 옹호하지도, 자유주의 쪽으로 치우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세계의 모습에 대해 인정하고 자신의 공장을 일본 기업에 매각했다. 세계화의 시류 속에서 보호무역에 성공한 2000년대의 미국의 모습은 물론 그에게 익숙한 모습이긴 하지만, 또 그의 텔레비전 공장에는 단기적인 호황을 누리게 할 테지만, 그에게 익숙한 그 모습보다는 앞으로의 발전할 미국의 모습이 더욱 가치 있다고 느낀 것이리라. 물론 그의 공장을 매입한 일본 기업은 3년 후 수지를 맞추지 못해 공장 문을 닫게 되지만, 공장 자리에는 새로운 기업이 자리 잡고, 그로 인해 일자리를 잃었던 노동자들 역시 다른 곳으로 일자리를 찾아서 가치창출에 다시 일조하게 된다. 에드는 자유무역으로 인해 줄어들 일자리를 걱정하지만, 그의 기업가적인 편협한 시각으로 봤을 때 일자리가 줄어들는지는 몰라도 자유무역은 분명 다른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게 된다. 때문에 그의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은 1년 안에 모두 다시 재취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미국의 기술력은 다른 여러 가지 직업을 만들어냈고, 새로운 형태의 직업은 오랜 시간동안 경제활동에서 외면되어왔던 여성의 사회활동을 증가시키는 결과도 가져오게 된다.어쩌면 이 책 속에서 지은이 러셀 로버츠는 자유무역에 대한 지나친 이상을 말하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책 속에서 데이비드 리카도는 말한다. 자유주의가 낙원이라는 것도 아니고, 보호주의가 무조건 옳지 않다는건 아니지만, 생을 택하라고, 삶을 경험하라고.그렇다. 에드는 사실 앞으로의 경제적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무언가가 변화할 것이라는, 그 안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막막함 때문에 보호주의를 택함으로서 변화를 막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들 사람들은 누구나 변화를 두려워한다. 새로운 것이 나타남에 대한, 지금까지의 생활환경이 변화할 것에 대한 두려움은 생각보다 커다란 것이어서 두려움을 이기고 새로운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보다 도태되지 않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익숙함보다 새로움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보다 변화를 지향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음속에 각각의 두려움을 간직하고서.이 책의 배경은 미국이고 데이비드 리카도가 바라는 방향의 경제는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이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미국은 완전한 자유주의 무역국가는 아니다. 그들은 아직도 갖가지 품목에 갖가지 명목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광대한 시장과 그곳에서 경쟁하고 있는 각국의 상품 역시 다양하다. 다양한 상품의 흡사 전쟁을 방불케 하는 경쟁현장에서 상품들은 나날이 발전해 가고 있고, 여러 가지 직업과 가치가, 또 그에 따른 부가 창출되고 있다. 한국 역시 경쟁하며 부를 창출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아직 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어찌된 일인지 한국은 아직 FTA 협정을 맺은 이렇다할 경제적 우방국도 없고, 외국상품에 대한 선입견이 많은 나라 중 하나다.
-목 차-Ⅰ. 서 론Ⅱ. 본 론1. 근대 경제학의 변천1) 중상주의사상2) 중농학파3) 고전학파4) 사회주의 학파5) 역사학파6) 신고전학파7) 제도학파8) 케인즈학파2. 현대 경제학의 변천1) 통화주의학파2) 합리적기대학파3) 공급중시 경제학3. 주류경제학과 비(반)주류경제학(근현대경제학의 변천구분과 생성배경, 주관적견해를 통틀어 서술하였음)Ⅲ. 결 론미시경제학 개인과제Q. 시대적 흐름에 따른 경제학의 변천에 대해 서술하시오.Ⅰ. 서론“경제는 생물이다” 는 말이 있다. 여러 가지 유기체들이 살아서 움직이듯이 경제 또한 사람의 역사와 함께 움직이고 생동하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오랜 옛날, 인류가 세상에 출현하고부터 인간은 경제현상에 대해, 또 무엇이 경제 현상을 어떻게 발전시키는지에 대해, 또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며 탐구해왔다. 시간이 변함에 따라 경제는 환경이나 시대와 같이 변화해 왔는데, 그래서 경제학은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나름의 생동감을 지니고 있다.경제학의 흔적을 가장 최초로 나타낸 서적은 플라톤(Platon)의 공화국(the Republic)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정치학(politics)이다. 이 두 서적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상국가의 조건으로 물질적 풍요를 제기하고, 이를 위한 실천적 대안을 제시했다. 이것이 경제학의 시초이며 이런 형태의 생각은 훗날 여러 사상가들의 머릿속에 뿌리박혀 여러 가지 학문들의 발전을 촉진시켰고, 이론 뿐만 아니라 실천학문으로써의 경제학의 전통이 여기서 시작되게 되었다.그러나 경제학이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구체화하게 된 계기는 18세기 중반 이후 케네의 경제표(1758)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1776)이 간행된 이후부터이다. 이후부터 경제학은 눈부시게 발전하기 시작하였고, 시대를 거듭하면서 더욱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형태로 변모하게 되었다.우리가 이렇게 변모하는 경제학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는, 각각의 경제학적 사상들이 각기 다른 배경 속에서 발전하면서 서로 프랑스의 진보적인 사상가들인 미라보(M.Mirabeau), 트루네(R.Trusne), 튀르고(A.R.Turgot)등에 영향을 주었다. 이들은 경제학설사상 최초의 학파로 평가, 이들을 중농학파라 부른다.3) 고전학파케네의 자유방임사상은 스미스(A.Smith)에 계승되어 고전학파를 탄생케 하고 국부론으로 열매를 맺게 하였다.국부론은 자본주의 경제의 여명기인 산업혁명에 진입하는 시기에 집필된 책이다. 스미스를 비롯한 당시 경제학자들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이 새로운 체제가 어떤 형태로 발전될 것인가 하는 것이고 그러한 발전의 요인과 메카니즘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스미스는 핀(pin)을 제조하는 공장에서 분업체제가 생산력을 높이고 있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러한 경험에서 사회적 분업 이야말로 경제를 발전시키는 요인으로 보았다. 또한 당시 새로 발흥하고 있는 자본주의경제 속에서 분업을 촉진하는 시장조직(invisible hand)을 발견한 것이다. 즉 사회적 분업은 그 전제로서 교환사회를 필요로 하는데 거기에서는 시장조직이 기능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스미스는 분업을 가능케 하는 자본축적이 경제발전의 주요인임을 지적하고 이윤이야말로 자본축적의 원천으로 간주, 부의 분배메카니즘을 해명하고자 하였다.스미스 경제학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고 발전시켜 고전학파 경제학을 완성한 자는 리카도(David Ricardo)이다. 그는 지주, 자본가, 노동자의 세 계급간의 부의 분배법칙을 해명하는 것이 경제학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그에 의하면 지주계급에 대한 분배분인 지대는 경작되고 있는 토지의 최열등지에 있어서의 수확과 우등지의 수확과의 차액이고 노동자 계급에 대한 분배분인 임금은 멜더스가 주장한 인구법칙에 따라 노동자의 생존수준에서 결정된다. 따라서 자본가계급에 지불되는 분배분인 이윤은 이들 두 분배분을 제외한 잔여이기 때문에 경제가 확대되어 보다 열등한 토지가 경작되게 되면 그 몫은 점차로 줄어간다. 이윤이야말로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자본축적의 원천인데 이윤의 장기적 저하 경향지만 독일은 아직 제 4단계에 있기 때문에 보호무역을 해야 하고 국민생산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로셔(Wilhelm Roscher), 힐데브란트(B.Hildebrand), 크니스(K.A.Knies) 등에 계승, 발전된 역사학파 경제학은 자유경쟁과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고전학파 경제학을 영국의 이익을 대변한 궤변에 불과하다고 폄하하는 한편 독일의 이익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따라서 그들은 경제학의 절대성 ? 보편성을 부정하고 각 시대의 국민적 특성에 부합하는 국민경제학을 강조함으로써 이론의 상대성, 특수성을 주장하여UT다. 그리고 국민경제학의 출발은 그 나라에 고유한 역사연구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며 역사분석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이상의 구역사학파는 주로 독일의 후진성의 극복에 주안하였다. 그러나 1870년대에 이르러 보불전쟁에서의 독일의 승리 및 통일은 역사학파에게 새로운 과제를 부여하였는데 이는 독일의 승리 및 통일은 역사학파에게 새로운 과제를 부여하였는데 이는 독일의 산업화과정에서 체제를 위협하는 사회주의에 대한 대안의 제시였다. 신역사학파는 사회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정책을 통한 노동자의 노동조건이나 생활조건은 개선할 것을 주장하고 중산계급의 안정을 통한 국민경제의 조화적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신역사학파를 대표하는 학자들은 쉬몰러(Gustav Schmoller), 브렌타노(Lujo Brentano), 바그너(Adolf Wagner), 좀바르트(Werner Sonbart) 등이다.마르크스 경제학이 노동자 계급의 입장에서 고전학파 경제학을 비판했다면 역사학파 경제학은 후진국의 입장에서 고전학파 경제학을 비판한 것이다. 오늘날 경제적으로 낙후된 제지역의 공업화과정에서도 국민주의적 또는 민족주의적인 보호사상이 확인된다.6) 신고전학파19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유럽 여러 나라들의 생산력은 비약적으로 확대되었다. 그 결과 사람들의 관심이 생산의 확대보다는 오히려 공급과잉에 빠지기 쉬운 상품을 어떻게 판매하는가 하는 쪽으로 옮겨갔다. 그것은 소비문제 또는 가격하락을 통해 수급균형을 이뤄 자연적으로 치유된다는 것이었다. 즉 그들은 “공급은 그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 는 세이의 법칙(J.B.Say's law)를 맹신하고 있었다.이에 대해 케인즈는 공황을 방치하면 자본주의사회는 붕괴하고 말기 때문에 여하튼 공황을 인위적으로라도 극복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 “유효수요가 국민경제 전체의 활동수준을 나타내는 국민소득을 결정한다”는 수요측 경제학(demand-side economics)을 제시하였다. 공황이란 유효수요의 부족 때문에 노동, 자본설비 등의 생산자원을 완전히 고용하지 않는 상태로 선진국경제에 자주 나타나는 바람직스럽지 못한 현상이다. 이런 상태를 케인즈는 풍요속의 빈곤(poverty midst plenty)이란 말로 표현했다. 그의 아이디어는 불황기엔 저축율(또는 저축성향)이 높은 고소득자에 누진적으로 과세하여 그것을 소비율(또는 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자에게 사회보장 등의 형태로 이전지출하여 사회전체의 소비율을 끌어올리든가 혹은 이자율을 낮춰 투자수준을 높이든가 하여 사회의 총수요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소득자에 자의적으로 더 많은 세금을 물리는 것은 사유재산제도하에서 한계가 있고 이자율은 이른바 유동성함정(liquidity trap) 때문에 무한정 낮출 수도 없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정부가 적자재정이 되더라도 재정지출을 증대하여 총수요수준을 높여야만 한다는 것이다.케인즈경제학은 시장의 실패(market failure)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었다. 따라서 케인즈경제학의 대두로 말미암아 종래 고전학파가 맹신하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은 보이는 손(visible hand)으로 대체되었다. 또한 케인즈는 경제학의 중심축을 종래 공급측에서 수요측으로 전환시키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따라서 케인즈의 업적을 기려 이를 케인즈혁명(Keynesian revolution)이라 부른다.케인즈의 이론체계는 이상과 같이 불황에 대한 처방 또는 실업의 구제책을 제안한 이론이기 때문에 때론 단 한 가지 그리고 유일한 치료법이다 라고 주장했다. 필립스 곡선의 함의(含意)를 부정하고 실업의 증대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주요 원인이라고 인식하고 디스인플레이션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떠한 고통스러운 부작용도 견디어 나가야 만이 경제는 자동적인 자체회복기능에 의하여 장기적인 완전고용균형상태로 복귀한다고 역설하였다. 가격메커니즘을 저해하는 정부의 민간부문에 대한 정책적 규제나 시장 간섭을 근본적으로 배제하였다.2) 합리적 기대학파합리적 기대가설은 1950년대 이후 시몬즈, 무스 등에 의해 주장되었으나, 1960년대 후반 이후 경제여건의 악화로 스태그플레이션현상이 심화되자 케인즈 이론의 한계를 인식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회의가 점차 대두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1970년에 이르러서는 사전트, 바로 등에 의해 더욱 발전되어 현대 거시경제학에 새로운 혁신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 이론은 경기변동에 대한 심리적 이론으로부터 출발된 것으로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각에 따라 반응한다는 것이다. 즉, 모든 사람들이 경제적 조건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할 때는 투자가 증대하여 경제를 확대시키지만 경제적 조건이 비관적일 때는 투자가 없으므로 불황을 가져온다는 것이다.이러한 합리적 기대가설은 고전적 경제이론의 위기가 1929년 대공황의 사태를 해결할 수 없어 케인즈가 등장한 것처럼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현상을 케인즈의 경제이론으로 해명할 수 없어 이에 대한 돌파구를 구축하려 했다. 따라서 이 가설은 정책의 역할과 효과를 평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존이론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함으로써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1970년대 미국 경제학계에 커다란 충격을 가져다준 합리적 기대가설은 경제예측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 연구함으로써 케인즈 경제학을 부정하고 통화공급관리의 중시, 정부의 재정정책과 시장개입의 폐기, 자유시장 기능의 극대화 등 적극적인 이론으로 거시경제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다. 합리적 기대가설만이 케인즈 이론의 약점을 발견한 것은 아니나 이를 정면으로 비.
200310149 경제학과 김예림Q. 경제사에서 가장 큰 질문은 아마도 맬서스적 정체에서 근대적 경제성장으로의 전환의 분기점이 된 산업혁명이 ① 조그만 섬나라인 영국에서, ② 18세기 중반 - 19세기 중반 동안에 처음으로 발생한 이유는 무엇인가일 것이다. 단지 우연인가, 아니면 필연인가?Ⅰ. 서론 그리고 개관먼저 산업혁명이 왜 영국에서, 18세기 중반-19세기 중반 동안에 처음으로 발생했냐는 질문을 충족시키는 답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산업혁명이 어떤 배경하에서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산업혁명의 배경에는 산업혁명의 원인들이 종합적으로 함양되어있고, ‘어떠한 이유로 그러했을 것이다’는 단순인과율(simple causation)적 접근으로는 그 기원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종합인과율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중학교 2학년 사회책을 보면,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유를 크게 5가지로 보고 있다. 가장 큰 가지로 구분해 놓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다섯 가지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첫째, 근대적 산업의 발달 : 일찍부터 모직물 공업을 중심으로 한 근대적인 산업이 발전하였다.둘째, 자본축적 : 광대한 식민지를 상대로 한 해외 무역이 활발하여 많은 자본을 축적하였다.셋째, 풍부한 노동력 : 인구 증가, 농촌인구의 도시 이동으로 산업 활동에 필요한 노동력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넷째, 풍부한 지하자원 : 새로운 산업 발전에 필요한 석탄, 철 등의 지하자원이 풍부하였다.다섯째, 제도적 안정 : 명예 혁명 이후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활동의 자유가 보장되었다.이후 이 다섯 가지를 토대로 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관련 문헌을 참고해 살을 붙여보기로 한다.Ⅱ. 본론1. 근대적 산업의 발달1) 농업의 발달⑴ 18세기 농업생산성 변화 가운데 주목을 끄는 것은 새로운 농법(Norfolk 농법)의 보급이다. 전통적 해석은 Jethro Tull의 혁신(골뿌림, 작물간 中耕, 조파기 및 중경기 발명), Charl자. 18세기 말 영국과 프랑스의 토지생산성은 분명히 차이가 있었으며 그 격차는 19세기에도 좁혀지지 않았다. 1520∼1800년 사이에 영국은 전체 인구 가운데 도시인구의 비율이 5.25%에서 27.5%로 높아졌으며 농촌인구 가운데 농업종사자의 비율은 각기 80%에서 50.5%로 낮아졌다. 곡물 수출입을 비롯한 다른 모든 변수를 무시하고 이들 수치만을 고려하면, 1520년에는 100가구가 132가구를, 그리고 1801년에는 100가구가 258가구를 부양할 수 있었다는 계산결과를 얻게 된다. 한편 프랑스의 경우 1500년경에 도시화의 비율은 영국보다 오히려 높았으나 1800년에 이르러서도 도시인구의 비율은 별로 상승하지 않았다. 그 결과 1500년경에는 100가구가 139가구를 부양할 수 있는 반면, 1800년에는 그 수치가 170에 머물러 약간 증가하였을 뿐이다. 이러한 수치는 18세기 말에 이르러 두 나라 농업 생산성에 상당한 차이가 발생했음을 보여준다.2) 공업의 발달면직물공업에서의 기계 발명은 J. 케이의 비저의 발명(1733)에서 비롯되어, 방적부문에서는 J. 하그리브스의 제니방적기(1764∼67), R. 아크라이트의 수력방적기(1769), S. 크럼프턴의 뮬(1779), R. 로버츠의 자동뮬, 방직부문에서는 E. 카트라이트의 역직기(1785∼87) 발명에 의하여 증기력을 동력으로 하는 기계직기에 의한 공장생산이 확립되었고, 그 중심은 맨체스터 및 글래스고 주변이었다. 면직물공업의 발전은 철강공업·석탄화학공업·기계공업과 같은 관련 산업 발전을 촉진하여 석탄과 철의 시대를 도래하게 하였다. 철강공업 기술혁신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선철 생산 과정에서의 A. 다비 1세에 의한 코크스로(爐) 제철(1709년 무렵)과 연철 생산과정에서의 H. 코트의 패들법(1783)이다. 특히 패들법의 발명에 의해 철 생산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그 중심은 웨일스남부, 버밍엄 주변의 중부지방 및 스코틀랜드였다. 또한 기계공업에서는 종래의 시계공업과 수차·마차 제조업에서의 전국에서 급속히 추진되었고, 19세기 중엽 이후에는 인도, 남아메리카 여러 나라 등 후진지역에도 철도가 보급되어 철도는 그야말로 산업문명의 상징이 되었다. 이리하여 세계 철도의 총길이는 1847년에는 2만 5100㎞였던 것이 57년에는 8만 2800㎞, 67년에는 15만 5700㎞라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철도를 건설하는 데에는 많은 자금, 건설자재, 기술자, 노무자를 필요로 하는데, 그런 모든 것을 자급할 수 있었던 나라는 영국뿐이었으며, 대륙 여러 나라, 미국, 미개발 여러 나라에서는 초기의 철도 건설에 있어시 자금·레일·기관차·건설기술자 등 어떠한 형태로든 영국에 의존하였다. 그러나 선진자본주의국가에서 철도 건설붐은 W. 로스토가 말하는 도약단계를 위한 주도부문을 형성하여 철도 주도형 산업혁명을 일으킴으로써 자립적 국민경제 형성에 뚜렷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한편 여러 후진 농업국가에서 철도 도입은 도약의 계기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영국자본에 대한 종속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2. 자본 축적공업성장의 과정에서 자본축적이 진전되었다. 상업자본과 지주자본의 축적이 진전되고 그것이 산업혁명기의 사회간접자본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들 자본은 부분적으로는 산업자본으로 전화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산업자본의 주요원천은 산업자본 그 자체였다. 즉 산업혁명기의 산업자본의 원천은 선행한 시기에 있어서의 소상품 생산자층의 성장에 있었던 것이다. 영국에서는 청교도혁명에 의해서 왕권이 제한되어 의회가 입법권을 가져 정치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한 속에서 중상주의하에서의 독점 및 길드 등 사회경제적 통제체제가 무너지고 노동의 가동성이 증대하고 경제활동의 자유가 부여되었다. 비국교도에 대한 종교적 자유도 공인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소상품 생산자층이 성장하고 공업자본의 축적이 꾸준히 진전되었다.산업혁명기에 기술혁신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고정자본이 차지하는 비율이 낮고 기업규모가 점차적으로 확대되는 속에서 공업기업가는 자신이 축적한 자본과 때로는 친척 및 친지의 자을 가능케 하였지만, 그의 보급은 인클로우저에 의해서 촉진되었다. 18세기의 30년대와 40년대의 저곡가 = ‘농업 불황’기에는 인클로우저는 진전되지 않고, 새로운 개량농법을 통해서 토지의 생산성을 올림으로써 생산비를 절감하고 저곡가에 대처하였다. 한편 18세기 후반기에는 곡물수요의 증대에 따르는 곡물가격의 등귀라는 조건에서 인클로우저가 진전되고,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경작지가 창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조방적인 개방경지제가 지양되고 집약적인 신농법의 보급이 촉진되었다. 이와 관련을 가지면서 인클로우저를 통한 농지제도의 변혁과 개량공법을 통한 농업기술의 변혁이 이루어짐으로써 농업혁명이 수행되었던 것이다.영국의 농업혁명은 전통적 사회관계의 변혁과정으로서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농업혁명에 중요한 전제조건이 되었다. 첫째, 그것은 농업생산력을 크게 증대시켜 18세기의 대부분을 통해서 기본적으로 식량의 자급자족만이 아니라 수출여력까지 가짐으로써 공업화에 필요한 외화를 절약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획득하였다. 둘째, 그것은 농업소득, 특히 지주와 농업자의 지대 및 농업이윤을 증대시킴으로써 농업에서의 자본축적을 촉진시켰고 그것을 산업자본으로 전환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농업부문에서 축적된 자본은 산업혁명기의 철 공업, 광업 및 교통수단의 발전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정부수입의 대부분을 농가가 부담함으로써 상공업부문에서의 부담을 경감시켰다. 셋째, 농가소득을 증대시킴으로써 공업제품에 대한 구매력을 증가시키고 공업생산을 자극하였다. 영국의 공업생산의 확대를 뒷받침한 것은, 확대되면서도 불안정한 외국수요와 함께 안정적 국내수요의 확대였다. 넷째, 그것은 농업생산성을 증대시킴으로써 농업노동의 도시노동력에의 전환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와 같은 노동력의 가동성(mobility)은 전통적 농업제도에 의해서 제도적으로도 촉진되었다. 특히 인클로우저에 의해서 농민분화가 진전되고 토지를 상실한 농민은 농촌 프롤레타리아트로서 농업 또는 공업노동자가 되었다.4. 풍부한 지하 자원1) 철철공업한 역할을 하였다. 공업의 근대적 변혁이 면공업에 의해서 선도되었다면, 그것을 지속적으로 광범히 전개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철공업이었다.2) 석탄철공업에서의 연료혁명, 즉 석탄에 의한 목탄의 대체와 증기기관의 보급 등을 기축으로 한 석탄수요의 큰 증가로 석탄산업도 산업혁명기에 새로운 발전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석탄산업의 발전에도 극복해야 할 중대한 기술적 제약이 있었다.석탄산업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발전해 왔다. 특히 16세기말~17세기 초에 걸쳐서 영국에서는 제철부문을 제외한 여러 공업부문에서 석탄이 연료로 이용되게 됨으로써 석탄산업은 네프(J.Nef)가 말한 ‘초기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과정에서 노천채탄은 없어지고 지하채탄이 진전되고 갱의 깊이는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그에 따라 석탄산업에는 새로운 기술적 문제가 등장하게 되었다. 첫째, 지하갱에서 발생하는 폭발성가스를 처리하기 위한 통풍문제이며, 둘째 지하갱에서 발생하는 지하수의 배수문제이고, 셋째 갱내에서 채굴한 석탄의 지상에의 운반문제였다. 이러한 기술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연동력에 대신해서 기계동력이 도입되지 않으면 안 되었으며, 결국 그것은 와트(James Watt)의 증기기관이 발명됨으로써 근본적으로 극복되게 되었다.5. 제도적 안정1) 국내상업의 발달영국의 국내시장은 18세기를 통하여 꾸준히 확대되었다. 18세기 전반기의 풍작과 농산물공급의 확대에 따른 농산물가격하락은 지주와 차지농에게는 ‘농업불황’의 효과를 미쳤다고 하더라도 일반대중에게는 그만큼 실질소득 증가의 계기가 되었다. 필리스 딘은 18세기 중엽의 영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세기 중엽의 중남미 제국의 평균 소득수준과 거의 같은 것이었고, 오늘날의 저개발국의 소득수준으로 보아도 상당히 높았으며, 당시 가장 부유하였던 프랑스의 소득수준보다도 높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반 대중의 실질소득의 증대가 전근대적 경제형태 속에서 바로 공업제품의 수요증대로만 연결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