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지*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1
검색어 입력폼
  • [한국근현대사]전태일 평전
    ♤목차♤1.서론-인물선택의 이유와 그 의의2.본론2-1.간단한 생애2-2.핵심적 사상2-3.중점 사건2-4.인물평론3.결론-마무리 지으며1. 서론 - 인물선택의 이유와 그 의의요즘 사회에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는 이슈 중에 하나가 ‘취업문제’이다. 막상 대학을 졸업하면 졸업하는 날이 바로 백수 길이라는, 막상 운 좋게 취업이 되어도 곧 해고되는 사태가 만연하고 있다. 기업입장에서는 사실 일손이 모자란 것은 아니지만 점점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욕구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늘리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필요에 따라 언제든 해고가 가능하고, 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적은 임금에, 휴가나 보너스를 주지 않아도 되고, 산후보험 시스템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때문에 기업주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어떻게든 늘리고 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추세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산업이 마구 우리나라를 헤집은 60~70년대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은, 거센 산업화 바람에 밀려드는 일감 속에서 혼미한 정신을 하루하루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전태일 열사는 그 변화의 가장 주요한 주축이 되어 시대에 큰 터닝 포인트를 맞게 한다. 모든 노동자들이 마음으로 소망하고 바라던 것을 직접 몸으로 보여주었다. 의사와 열사의 차이점을 볼 때, 열사는 자신의 지조를 나타내려 스스로 자결한 사람을 일컫는다. 때문에 청년 노동자 전태일에게는 열사라는 칭호가 붙은 것이다.전태일 열사의 분신자살사건으로 인해 우리나라 노동계에 큰 변혁이 찾아왔다. 그 때부터, 비정규직 노동자 외에도 여러 노동 문제로 혼란이 가득한 현재까지도, 열사의 정신은 살아남아 끝없는 노동 투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때문에 나는 취업 문제를 눈앞에 두고 있는 대학생으로서, 대학 내 노래패 안에서 민중가요를 부르는 패원으로서, 전태일 열사를 다시 생각해 보자는 의미에서, 열사를 인물탐구의 인물로 선택하게 되었다. 나 개인을 떠나 우리 모두에게 앞서 말한 내용은 내 개인적 이유이자 열사를 선택한 의의라고도 볼 수 있다. 가난하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반 가정과 별 다를 것이 없었다. 힘들고 하루하루가 지침의 연속인 가정 속에서 열사는 태어났다. 가난한 환경 속에서 아버지는 일이 잘 되지 않은 때는, 술과 폭력으로 열사의 어린 시절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그에 비해 그의 어머니는 매우 외유내강형의 분이셔서 행상을 하던 차에 조금이라도 부당한 일이 생겨 권리를 못 찾게 되면 앞장서서 권리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이었다. 어머니의 이런 점이 전태일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열사의 학력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8세에 2학년으로 편입하여 초등공민학교를 들어갔지만 곧 관두고 12세에 다시 국민학교로 편입했다. 그러나 그것마저 곧 중퇴하게 되었다. 첫 번째 가출 후, 대구로 돌아와서는 고등공민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몇 개월 간, 전태일은 이곳에서 생애 가장 뜻 깊었었다고 말하는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얼마 안 가, 또 아버지가 학교를 그만두고 일에만 매진하라고 한 탓에, 뒤늦게 학교생활의 재미있음을 깨달은 태일은 두 번째 가출로 서울 고학을 결심하나 곧 차갑게 다가온 현실 앞에 무너지고 만다. 때문에 열사의 학교생활에 대한 열정은 이곳에서 접을 수밖에 없었다.생애를 이야기하는데 있어 꼭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은 가출이야기이다. 전태일 열사는 가출을 3번 했는데, 정말 힘겹고 일상에서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가출을 했었던 것 같다. 첫 번째 가출은 13세 때 하였다. 학교를 관두고 신문팔이를 하던 도중에, 계속 돈을 수납하지 못하고 가족들의 먹을 것으로 지출되어 미수납금이 많아지자 혼자 괴로워하다가 집을 나간 것이다. 무작정 무임승차로 서울로 와서, 구두닦이로 나섰다가 텃새 부리는 원래 구두닦이들에게 맞기도 하고, 여전히 신문팔이도 해보았다. 잠은 아무데서나 자고 일만 하였는데도, 냉혹한 현실은 가난한 그를 더욱 비참하게만 만들 뿐,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았다. 결국 대구로 되돌아 온 그는, 친다. 두 번째 가출은 꿈같은 학교생활을 하다가 집에서 가정사정으로 인해 학교를 못 다니게 되어 서울 고학을 결심하고 15세 때 가출한 일이다. 남동생과 함께 서울에 올라왔지만 그도 며칠 못가, 바로 집으로 오게 되었다. 마지막 가출은 어머니가 식모살이로 상경하고, 아버지의 폭압에 못 견뎌, 여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찾아 가출한 일이다. 이렇듯, 원래는 학교생활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평범한 학생이지만 너무나 극한 상황에서 가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상황을 헤아려 볼 수 있다.2-2. 핵심적 사상열사의 사상은 마땅히 사상이라고 정리될 부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임금 노동자로 돌아서면서부터 갖게 되는 생각들의, 행동들의 집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17세 때 가족 모두는 서울에서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 전태일은 여전히 신문팔이와 껌팔이 등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고 가정 형편은 여전히 어려웠다. 그러던 중에 시다로 취직하게 되었다. 얼마 안 가 그의 실력은 인정받아 미싱사의 위치까지 오르게 된다. 미싱사의 위치에 있으면서 시다들의 삶을 새로이 돌아보게 되었다. 그들은 대부분이 어린 여자 직공들이었으며, 형편없는 근로 환경 속에서 묵묵히 일만 할 뿐이었다. 가장 일은 힘들게 많이 하면서 보수는 일당 70원에 못 미치는 비인간적인 행위를 보며 전태일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미싱사에 회의를 느끼고 노동자들의 위치에서 그들을 감싸 안아주고, 노동 환경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에 재단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재단보조에서 4개월 만에 재단사의 위치로 오르게 되지만 그의 원래 목표처럼 감싸 안아주고, 환경을 개선하는 등의 일은 절대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사건은 같이 일하던 한 시다가 각혈을 하는 데서부터 일어났다. 그것을 본 순간, 20년 동안 억눌려왔던 억울함과 분노가 마음속에서 치미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때부터, 태일은 아버지를 통해 노동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려 애썼다. 그러던 와중에 그의 인생에 가장 환한 빛 공부를 하면서 자신이 이렇게만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는 마음이 맞는 재단사들을 모아 노동조합의 시초인 ‘바보회’를 만들게 된다. 조직의 목적을 잘 모르던 회원들을 근로기준법 속에서 새로운 삶을 찾는 사람들로 만들고 자신은 더욱 열심히 법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된다. 세상이 법과 너무나 다름을 깨닫고 좌절하게 된다. 주동적인 활동자로 점점 시장에서 발붙일 자리를 잃게 되고 사실상 바보회의 해체를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나름대로 괜찮은 재단사의 수입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마저 다 잃고 최하의 인생으로 전락한 열사는 장기간의 노동투쟁을 결심하지만 정부도 노동자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모든 것으로부터 거부당하고 밀려난 소외된 인간의 아픔을, 그 시대의 모순을 알게 된 것이다. 막상 자신이 가장 밑바닥 인생 속에서 모든 사람들을 아우르려고 했던 것이다.전태일 사상은 밑바닥 인간의 사상이다. 제대로 공부도 마치지 못한 사람이 근로기준법 서를 들고 몇 마디씩 외치는 것이 그의 사상의 전부라고 보여 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말은 절절한 경험 속에서 표현되는 것이기에 가장 현실 속에서 빛이 나는 말이 되었다. 점차 그의 사상은 기존 현실에 대한 철저한 비판으로 인하여 완전한 거부, 완전한 부정의 사상으로 된다. 그리하여 그의 사상은 근본적인 개혁의 사상, 행동의 사상이 된다. 전태일은 이러한 사상 속에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자신이 택한 길이 그 자신의 ‘양심의 명령’이므로 진리이여. 역사가 그것을 증명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러한 확신이 없었다면 그의 노동운동은 대책 없기만 한, 길이 없는 행동이 되었을 것이다.2-3. 중점 사건여러 노동조합을 선두로 조직하고 이끌은 점도 중요하지만, 그가 직접 석유를 몸에 뿌려 분신자살한 사건이 가장 중점적인 사건이다. 죽기 며칠 전부터 계속 된 시위를 진행하면서 그는 반대와 억압에 부딪히게 된다. 드디어 입버릇처럼 말하던 “누구 한 명이 죽어야 정신을 차린다.”라는 말을 몸소 실천할 결심을 한죽는 것처럼 쇼를 할 것이라고만 하고 불만 대어 달라고 부탁한다. 불만 대는 것이 아닌 석유 속에서 그저 까만 한 덩어리의 시체로 변해버린 전태일 열사는 죽는 순간 까지도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근로 기준법을 개선하라!”라는 말을 남겼다. 전태일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몇몇 사람들에게 국한되어 있던 근로기준법의 내용과 노동운동에 관한 사항들이 시장 내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 알려졌고 그들로 하여금 완연한 투쟁으로 맞서게 되는 힘을 가지게 해준 것이다. 때문에 오늘날 까지도 계속해서 그의 정신과 사상이 이어져 내려와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의 기반이 되고 있는 점이다.2-4. 인물평론위의 사상이나 사건, 생애를 말하면서 조금씩 인물에 대한 평가를 해보았다. 민중의 해방된 삶, 특히 노동에서의 해방의 삶을 주장하던 그의 사상을 다시 정리하며 평가를 해보겠다. 전태일 사상은 인간해방의 사상이자, 인간해방의 선언이다. 마지막 시위에서 그는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고 하며 인간답게 대접할 것을 요구하였다. 극히 제한된 적은 임금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도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기계로 보았던 사회에 비판을 한 것이다. 때문에 그중에서도 노동해방을 통해 인간해방이 실현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전태일 사상은 사회개혁의 사상이자 사회개혁의 선언이다. 현존사회의 가장 강력한 제도라고 알려진 법이 실제에서는 무기력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것을 화형에 처했다. 그럼으로써 전태일은 현존사회의의 거부, 현존사회의 개혁을 선언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사상은 민중투쟁의 사상이자 민중투쟁의 선언이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선언으로 우선 정부 이전에 우리 민중들의 의식 각성과 투쟁 의지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함께 의견을 모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노동운동에서 그는 우리의 단결을 위해 제 한 몸을 불살랐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투쟁이전에 민중주체의 사상이자, 민중주체의 선언이다. 투쟁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하는 인간해방, 사회개혁, 민중투쟁 이 모든 것다.
    인문/어학| 2005.11.28| 5페이지| 1,000원| 조회(251)
    미리보기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14일 화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2:40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