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인의 삶을 옭아매는 집단 사회의 폭력,그리고 강박적으로 거기에 고통당하는 사람들, “억압과 허위의 시대”-를 보고-1. 서론어느 작은 사회 혹은 집단에서도 볼 수 있듯이 주변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어느 개인에게 물리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언젠가부터 많이 사회적으로 대두되어온 “왕따”뿐만 아니라, 크게는 한 나라의 이데올로기나 통념등에 의해서 개인적으로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그러한 집단 폭력은 2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본 영화 에서도 그러한 집단 사회의 폭력을 여기저기서 살펴볼 수 있다. 19세기 뉴욕의 상류사회라는 한 집단이 엘렌 올렌스카와 뉼랜드 아처의 삶을 어떻게 옭아매고, 그런것들로 인하여 그들이 어떻게 고통을 당하는지 알 수 있다.겉으로는 예의범절과 고상한 취미로 치장한 상류사회의 허위와 위선, 그리고 잔인한 이면들이 영화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펴보고 그 감상을 적고자 한다.2. 본론영화의 공간은 외형상 화려함과 풍요로움을 내뿜으로 굉장히 엄숙한 청교도적 윤리가 지배하고 있는 19세기 뉴욕의 귀족사회이다. 영화에서는 그런 상류사회의 화려한 모습들을 너무나도 꼼꼼하고 세밀하고 정밀하게 카메라에 담아놓았다. 수많은 코스들의 요리들과, 보기에도 고급스러워보이는 식기들, 고풍스럽고 세련되게 꾸민 인테리어, 여자들의 잘록한 허리를 더더욱 숨막히게 죄어주는 귀부인들의 옷들.이러한 것들로만 본다면, 이 영화가 도대체 무엇을 드러내고자 하는 영화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저 19세기의 상류층이 어떠했다는 것을 묘사하듯이 보여주기위해 만든 영화인가 싶게 말이다.그러나 그렇게 세세하게 묘사하듯이 카메라를 들이댄 이유는 당시의 상류층의 삶이 얼마나 화려했으며, 결국 한 집단이 갖는 공통적 규율과 삶의 방식의 엄혹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주는 것같다.영화 속에서 수없이 나오는 잡다한 물건들의 클로우즈 업들은 사정없이 보는 이들과 두 주인공들을 죄어가며 엄청난 폐소공포증을 유발시킨다.그 귀족들이 품위와 우아함이라는 이름으로 고수하는 인습은 집단들의 규율이 강요하는 한 개인의 일상에 대한 교묘한 억압이며, 그러한 집단에서 결코 위반할 수 없는 것은 귀족사회에서는 인습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여자에 대한 사랑이다. 설사 그것이 한 남자의 마음속에서만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보이지 않는 억압은 질기고 거의 완전하다.박제화된 관습과 규칙에 끼어 개체이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시대, 개인의 삶을 그토록 억압하고 숨막히도록 짓눌리게 만드는 시대, 그러한 시대가 “순수의 시대”이다.영화에서 항상 순결하고 순수한 이미지로 나오는 메이, 바로 그러한 메이의 시대이기 때문에 “순수의 시대”라고 이름붙여진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우유부단한 면을 많이 보이고 있는 단정한 신사, 뉼랜드 아처의 천사같이 순수하고 순결한 약혼자이자 후에 아내가 되는 메이 웰런드. 책에서 메이는 조금 속물적이고 세상물정 모르는 단순한 캐릭터로 나온다. 그러나 영화속에서 그녀는 단순하고 철모르는 순수한 신부로서가 아니라 매우 인내심이 강하고 교활하게 느껴지리만큼 놀라게 만든다.메이가 준비한 엘렌의 고별만찬 장면에서 식탁 주위에 하인들이 마치 감시꾼같아보였고, 또한 주변의 초대된 모든 사람들이 겉으로는 웃고 식사하며 아무렇지않게 담소를 나누지만 마치 사랑에 빠진 귀족 신사 뉼랜드에게 아무데도 갈 수 없다고 말하는 듯이 느껴진다. 실제로 메이는 고의적으로 그러한 자리를 만든 것이며, 뉼랜드와 엘렌의 사이가 어떤지 미리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주변의 모든 사람들도 다 속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겉으로 모르는 척 했음이리라.메이의 인내와 교활함은 사실은 그와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들의 사회에서 고안된 관습적인 해결책을 그녀의 동물적인 본능이 찾아낸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영화에서 메이는 매우 소름끼칠 정도로 비춰지기도 한다. 너무나도 선량하고 순진해보이는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양궁대회 장면에서 정확히 화살을 꽂듯이 뉼랜드에게 아주 적절한 순간에 임신 사실을 밝히는 장면이 그것이다. 마치 심장에 비수를 꽂는 것과 같이 정확하게 말이다.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집단사회의, 그리고 그 집단사회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너무나도 순수한’ 메이로 인해 뉼랜드와 엘렌은 서로의 격정적인 사랑을 끝까지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그러한 집단적인 억압과 관습,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의의 폭력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강박적인 관념 때문에 뉼랜드는 혼자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한다.영화의 처음에서 나레이션으로도 나와있듯이 뉼랜드 아처는 속으로는 상류사회의 위선과 허위등을 무시하고 싫어하고 따르지 않지만 겉으로는 점잖은 신사처럼 따르는 유형의 사람이다. 또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확고히 밀어붙이는 주관이나 결단성이 없는 우유부단한 사람이기도 하다.물론 아무리 작은 집단이라고 해도, 한 집단에 그러한 선의의 폭력과 억압등을 개인 혼자서 이겨내고 극복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물론 뉼랜드는 인도나 일본등으로 떠나버릴 생각도 했겠지만 말이다.그러나 뉼랜드보다도 더욱더 독립적인 성격의 엘렌 올랜스카는 스스로 당당하게 유럽에서 남편과 살지 않고 혼자 살아가며 늙은 후 뉼랜드가 찾아갔을 때에도 혼자 살고 있었다. 그녀는 뉼랜드보다도 그 집단 상류사회의 수많은 억압과 괄시와 무시등을 당했지만, 그보다도 더 당당하고 독립적이며 강한 성격이다.
1. 들어가며이 땅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여성으로 교육받고, 여성으로서 삶을 살아가며 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우리는 태어날때부터 여자아이로 길들어져가고 교육을 받으며 여자로 행동하고 사고할 것을 강요당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부모들의 무의식적인 교육에서나 혹은 여자는 이래서는 안돼..라는 식의 직접적인 교육을 받거나, 살면서 주변의 사회를 통해서 무의식적으로 습득되어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생각해보면 나의 어린 시절에서의 내 모습은 전형적인 여자애였다.청바지는 파란색이고, 파란색은 남자것이라고 절대 입지 않았으며 빨간색이 여자색이라고 그 색을 좋아했고, 치마를 입었으며, 항상 동네 아이들과 공주놀이와 인형놀이, 소꿉놀이등을 하며 자랐다.어려서부터 이런저런 행동이나 사물들이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으로 나뉜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고, 본인이 여자아이였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이래야한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행동했던 것같다.누가 나에게 그렇게 해야한다고 가르쳤을까? 사실 딱히 부모님들이 내게 그렇게 가르쳤을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저 어려서부터 삶을 경험하면서 알게 모르게 그런 사고방식들이 주입된 것같다.참으로 신기하게도 이 땅에서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이 여성성과 남성성을 알고서 그렇게 자신에게 성향을 부여하는 것같다. 그리고 여자아이는 여성의 성역할을 하며 남자아이는 남성의 성역할을 수행한다.여성성과 남성성,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 그리고 양성성.. 그리고 현재의 내 안에서는 어떠한 성향이 있는지 살아오면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이번에 엘렌 식수의 ?메두사의 웃음/ 출구?를 읽으면서 다시 한번 위와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았고, 본 글에서 위의 책에 대한 짧은 나의 감상과 위와 같은 것들에 대한 나의 의견을 적어보고자 한다.2. ?메두사의 웃음, 출구?에 관한 감상사실, 이 책은 나에게 있어 굉장히 난해했다.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를 하지 못했고, 솔직하게 말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글이 술술 읽히지 않았고, 그래서 독서의 진도가 상당히 느렸었다.엘렌 식수의 이 수필은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를 통해 모든 상징적인 것들의 남근중심주의에 관해서 이야기 하였고, 단일한 남성성을 가진 남성과 양성성의 성질을 가진 여성, 그리고 기존의 남근중심적인 상징 체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여성적 글쓰기를 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생각해보면 신화나 소설, 철학, 정치 등등에 관련한 모든 텍스트들은 남성에 의해서 씌어졌고,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씌어진 글들이라서 그런지 모두 남성중심적인 글들이다.이 수필에서 나오는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들만 보더라도 신화 속의 여성들이 얼마나 남성에 의해 억압받고 강요된 역할로 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우리는 일상 삶에서도 그렇지만, 어려서부터 동화를 비롯하여 각종 이야기와 텍스트들을 접하는데 이를 통하여 무의식적으로 여성이란 어떠해야한다는 생각들이 깊게 주입이 되고, 가장 이상적인 남성상과 여성상에 대해 잘못된 고정관념을 갖게 된다.사실 꼭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것들만이 남성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 주변에 꽤나 감정적이고 감상적인 남자들을 많이 봤다. 물론 대표적인 성질이라는 것이 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남자들의 성질과 여성들의 성질과 성격, 성향등은 어떠하다든지 하는.그러나 사람마다 다른 점들이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느 고정된 쪽으로만 치우쳐서 생각하지는 않아야한다고 본다.사실 이 수필에서도 말하다시피, 이 사회에서는 여자는 비논리적이고, 쓸데없이 감상적이며 수다스럽고, 감정의 기복이 심하며 비이성적이라는 등의 고정관념이 뿌리깊게 박혀있다. 당연히 그 반대로 남자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과묵하고 할 말만 조리있게 한다는 등의 관념이 있다.그리고 모든 책에서든 삶에 나타는 현상들에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것이 우위를 차지하고, 비논리적이고 감상적인 것은 하위를 차지한다. 남자든 여자든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것을 높게 보며,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을 더 높게 평가한다. 그리고 대부분 그런 성향들은 남성의 것이라고 생각한다.이 수필에서는 여성이 기존의 남성중심적인 상징 체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글쓰기라고 하였다. 글에서는 무엇이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사실 기존의 글들은 모두 남성에 의해서 남성적인 글쓰기로만 이루어졌다.여성은 참으로 다양한 감정의 맛을 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이 글쓰기를 통해서 무한히 많은 것들을 쓸 수 있고, 다양한 표현들과 다양한 감정들을 표출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이 글을 읽고, 본래 나 자신도 글쓰기를 좋아하는 편인데 앞으로는 좀더 힘을 기울여서 여성적 글쓰기에 한번 시도해볼까 생각해 보았다. 내 안에 잠재되어있는 무의식속의 생각들과 감정들과 리비도.. 그런 것들을 풀어냄으로써 좀더 여성으로서의 자신에게 자유로워지고, 기존의 남성적인 것들에서 벗어나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의미있지 않을까 한다.3. 양성성과 여성성, 그리고 새로운 여성성통상적으로, 혹은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대체적으로 여성스럽다, 혹은 여성적이다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지 않을까 생각된다.부드러움, 따뜻함, 달, 소극적, 수동성, 얌전함, 아름다움, 질투, 시기, 얕은 우정, 나약함, 밤,가벼움, 수다스러움, 감정적, 감상적 등등.한편 남성적인 것은, 강(인)함, 태양, 냉정함, 적극적, 능동성, 깊은 우정, 과묵함, 이성적, 논리적, 낮, 활동적, 강렬하고 활발하고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의 모든 것.그리고 양성적이라는 것은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을 둘다 가지고 있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남성중심적인 표상에 갇혀있지 않고, 사람마다 각자 개인 안에서 여자 혹은 남자에 따라 다양하게 뚜렷이 드러나는 두 가지 성, 그 둘의 차이, 그리고 어느 한쪽을 배제하지 않는 그런 양성성이다.그러므로 여성적인 것과 양성적인 것은 분명히 다르다.엘렌 식수는 글쓰기가 양성적이며 그러므로 해서 중성적이라고 말하고, 기존의 여성성과는 다른 새로운 여성성을 말한다.여성은 어떤 의미에서 양성적이라고 한다. 사실 이 말에 동의한다.남성은 가부장적이고, 남근중심적인 사회에서 언제나 남자다워야한다는 의식 때문에 고정되고 단일적인 남성성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여성은 남근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성역할을 강요받으면서도 사실 남성적인 면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양성적이라고 생각한다.·엘렌 식수는 새로운 여성성을 양성성을 가진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이라고 보는 것같다. 남성들에 의하여 제대로 보지못했던 여성 자신의 무한한 리비도를 가진 몸을 똑바로 볼 것과, 이러한 자신의 몸을 사랑하고, 대안적인 의미에서 새로운 여성적 글쓰기를 시도해야한다고 보고 있다.나는 이러한 엘렌 식수의 생각에 동의한다. 예전부터 왜 꼭 여성은 사회로부터 고정되어진 여성스러움만 가져야하는지 항상 의문이었고 불만이었다. 여자라고는 하지만 꼭 여성적인 것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며, 내 안에 혹은 다른 여자들안에서도 사회에서부터 말해지는 여성적인 면 외에 남성적인 면도 다분히 있기 때문이다.양성적인 면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여성, 그런 여성이 자신의 그러한 성질과 특질등을 충분히 발현하며 좀더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몸을 사랑하고, 자신의 몸에 대해 탐구심을 갖고 탐험해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말하고 요구할 줄 알며, 스스로를 하나의 주체로서 의식하고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새로운 여성(성)이 아닌가 한다.4. 나 자신 안의 양성성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나 자신은 기존 사회에서 말하는 여성적인 특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양성적인 사람이다.
여성의 입장에서 본 테스Ⅰ. 서론평범한 시골처녀가 나쁜 남성들에 의하여 비극적이고 힘든 고난의 삶을 살다가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이야기.이 것이 어렸을 적 내가 테스를 읽었을 때의 느낌이었다.같은 여성으로서 한 여자를 망치게 한 세 남자- 테스의 무능력하고 게으른 아버지, 야만적이고 동물적인 알렉, 그리고 위선적인 엔젤-에 대해서 어렸지만 나름대로 분노하고 테스를 너무나도 가여운 여자로만 바라보았었다.본 글에서는 10년이 지나 다시 소설을 읽고 영화를 봄으로써, 개인적으로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본 테스에 대해 느끼고 생각한 바를 말하고자 한다.또한 영화와 소설을 보았을 때 느꼈던 차이점과 그 차이점으로 인해서 테스의 모습이 어떻게 다르게 그려지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Ⅱ. 본론먼저 영화와 소설을 보았을 때 느꼈던 차이점을 말하겠다.문학 텍스트 안에서 표현되는 테스의 성격을 살펴보면, 테스는 시골처녀답게 순박하면서도 매력적이며 다른 처녀들과 달리 기품이 깃든 듯 했고, 매우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이며 건강하고 밝다. 또한 효심도 깊고 긍정적이며 용감하고 자존심도 매우 강한 여성이다.동생 아브라함에게 별들도 세계가 있으며, 가끔 별이 사과나무에 달려있는 사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한다든가, 낙농장에서 일하게 될 때에 식사중에 별들을 바라보면 영혼이 육체와 분리된 듯한 느낌을 갖는다던지 하는, 여러 군데에서 그녀의 순수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그러나 그녀의 너무나도 매력적이고 건강한 아름다움은 난봉꾼으로 나오는 알렉의 덫에 걸리게 만들고, 그녀의 매우 강한 자존심은 알렉에게 순결을 잃은 후 그와 결혼하여 살 수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홀로 사생아를 낳게 한다. 또한 무지에 가까울 정도로 순수하고 정직한 성격은 엔젤과 결혼후에 과거를 털어놓음으로써 그녀도 이미 예견했던 파국을 맞게 하기도 한다.그런데 영화속에서의 테스는 그다지 성공적으로 테스를 그려내지 못하고 있다.나스타샤 킨스키는 테스의 강한 자존심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으며, 밝고 건강하고 매력적이며 순수한 처녀이기보다는 조금은 무뚝뚝하고 말수적은 귀족집안의 처녀같은 이미지를 풍긴다.험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강한 의지나 삶의 활기, 생명력등이 영화속의 테스에겐 제대로 형상화되지 않고 있다.알렉도 이와 마찬가지로, 소설속의 알렉은 거친 욕설을 하며 매우 야만스럽고 난봉꾼같은 성격으로 나와 있는데 영화속에서는 그러한 것들이 잘 드러나지 않았고, 테스를 강간하는 장면에 있어서도 미화된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엔젤은 그래도 그중에서 영화와 소설속에서 내가 느꼈던 이미지와 많이 일치하고 있다.스스로의 자유의지에 따라서 진보적으로 살아가려하며, 낡고 보수적인 것보다는 새롭고 자연스러움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그러나 인습이나 관습을 싫어한다고 해도 어려운 난관에 닥치게 되면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제대로 가치관을 정립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인습의 세계로 숨어들어가는 약한 사람이다.테스를 테스 자체로서의 여자로 바라보지 않고, 자신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하나의 이상과 환상의 존재로 보며 이중적인 성윤리를 가지고 있고, 위선적이다.영화에서는 그러한 엔젤의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알렉과는 정반대의 이미지를 가졌으며 세심하고, 농부로 지내려하지만 귀족적인 티가 나는, 사실은 진정한 의미로서의 농부가 되지 못할 사람으로 생각된다.위와 같은 점으로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소설의 분량과 묘사, 서술면에서 원작을 각색한 영화가 매체상의 이유로 모든 것들을 다 소화해내지는 못하겠지만, 감독이 주인공을 선택한 점에서는 각 인물의 개성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제대로 형상화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실패를 했다고 보며-특히 알렉과 테스가 그렇다- 테스가 강간당하는 장면을 미화시킨 듯한 장면이나 알렉의 야만스러운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 모습은 후에 테스가 알렉을 살해하는 장면에서 설득력을 많이 잃는 것은 아닌가 한다.각 인물들의 성격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 이런 점들로 인하여 영화에서의 테스나 테스의 행동들은 소설에서 중요시한 것들을 제대로 나타내주지 못하고 있다.다음으로 여성의 입장으로서 본 테스라는 작품에 대해서 말하자면, 비록 빅토리아조 시대의 작품이긴 하나 현대사회에서의 여성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특히나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도 순결이데올로기가 강요되고 있으며, 여전히 가부장적인 제도가 사회에 뿌리깊게 박혀있다.이를테면, 요즘 젊은 사람들은 꼭 순결한 처녀만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하고, 혼전성관계나 동거등에 대해서도 많이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그러나 실상 개인적으로 자신의 일이 되면 소설속의 엔젤과 마찬가지로 여성에게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위선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일본군 성노예 범죄의 국제법적 책임목차Ⅰ. 서론일본군 성노예제의 용어정리 및 배경, 일본의 주장Ⅱ. 본론1. 일본 정부의 국제법적 책임⑴ 국제관습법(육전협약)의 위반⑵ 인도에 반한 죄⑶ 강제노동금지협약의 위반⑷ 부녀매매 금지협약의 위반⑸ 노예제도 금지 규범의 위반2. 일본의 국가책임⑴ 국가책임의 성립⑵ 국가책임의 해제3. 개인의 형사책임4. 금전적 배상책임Ⅲ. 결론Ⅰ. 서론먼저, 여기에서 ‘종군 위안부’라 하지 않고 ‘성노예’라고 표현한 이유에 관하여, 그리고 용어의 의미에 관하여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현재 매스컴을 통해 일반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해진 용어는 ‘정신대’ 혹은 ‘위안부’이며 요즘에는 정신대보다는 위안부가 더 많이 쓰여지고 있다. 예전에는 종군위안부, 정신대 등을 구분하지 않고 비슷하게 사용했었는데 실은 그 용어는 다른 의미를 뜻하고 있다. ‘정신대’는 전시체제 아래서 일본 제국주의의 전투력 강화를 위해 남녀 불문하여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치는, 즉 특별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조직, 또는 부대를 뜻한다. 그 중에서도 일제 시대때 군수공장에서 노동력을 위해 동원한 우리 나라의 미혼 여성들을 ‘여자 근로 정신대’라 한다. 그리고 ‘종군 위안부’는 일본에서 많이 쓰는 용어로, 말 그대로 군을 따르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강제성 보다는 자발성이 포함되기에 적절한 용어가 되지 못하며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고 은폐한다. 그래서 현재는 국제사회에서 ‘군위안부’, 또는 ‘성노예’, ‘성폭력 피해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으며 여기에서도 그에 따르려 한다.즉, ‘성노예’란 과거 일본 제국군이 ‘종군위안부’란 이름으로 여성에게 성적 서비스를 강요한 노예적 행위를 뜻하는 국제 용어이다.)이러한 성노예, 군위안부는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만주침략을 할 당시, 그들의 성적 해소를 위해서 ‘위안소’를 설치하면서 생기기 시작했다. 그 당시 일본 군인들은 수많은 중국인들을 학살하고 특히 점령지 여성들을 무자비하게 강간하였는데 이에 중국인들이 반발하고 반일감정이 격해지자 일본이 점령지 적용에 의한 시간적 장애로 더 이상 제기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본 글에서는 성노예를 국제법상에서 고찰하여 일본의 주장에 대한 반박과 일본이 저지른 국제법 위반 규범과 국가책임을 살펴보고 그 해결방안을 찾아보고자 한다.Ⅱ. 본론1. 일본 정부의 국제법적 책임⑴ 국제관습법(육전협약)의 위반19세기 후반부터 제 1차 세계대전 전까지의 기간 동안 수많은 전쟁법규가 국제적인 조약으로 발전했다. 일본은 1907년 육전의 법규 관례에 대한 조약(헤이그조약)과 동 조약 부속 규정인 육전의 법적 관례에 관한 조약(헤이그 규칙)을 1911년에 비준했다. 헤이그 규칙 제 46조는 ‘가족의 명예’를 보호하고 ‘개인의 생명의 존중을 교전국 의무로 규정했다. 그런데 모든 교전국이 조약의 가맹국인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하는 총가입 조항(제 2조)이 있고, 제2차 대전 중에는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으므로 일본은 이에 구속되지 않았다.) 그러나 1911년 12월 13일 이 규약에 가입한 일본이 협약에 구속됨은 당연한 일이다. 가족의 명예란 가족 구성원중 여성이 모욕적인 성추행의 대상이 되지 아니할 권리를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 협약의 내용은 당시 국제관습법으로 성립되어 있었다. 즉 가입여부와 관계없이 이 규약의 내용은 국제관습법으로서 모든국가에 대하여 법적 구속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노예‘는 교전지에서 점령지 주민의 가족에게 여성의 권리와 여성의 존엄을 현저히 손상했으므로 국제관습법을 위반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명문 규정이 없어도 국제법의 원칙에 따라 개인 피해자에 보상에 대한 보상 의무를 포함한 국가 책임을 진다.)그리고 개인의 규약상 권리와 관련하여, 본 규약 3조는 “부속서상의 의무를 위반한 교전당사자는..손해배상을 지불하여야만 한다. 교전당사자는 개별전투원의 모든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부담한다.”고 규정하여 성노예 개인 피해자들이 가지는 청구권의 중요한 근거중 하나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일본 정부는 피해자에게 배상 의무를 져야 한다. 즉 일본이 이나 국제법상 금지된 행위들이었다. 따라서 국제군사재판소의 헌장에서 규정한 인도에 반한 죄는 이러한 국제관습법을 성문화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일본의 일본군 '위안부'제도의 실시당시에도 이미 국제법상 그러한 제도는 금지되어 있었던 것이며, 전후 그 금지 위반 행위는 '인도에 반한 죄'라는 범주로 처벌이 가능했던 것이다. 특히, 극동군사재판소 조례 제5조는 인도의 반한 죄의 구성 요건중 일부로서 '노예화, 격리추방, 기타 비인간적 행위'를 열거하고 있는 바 정신대관련행위와의 시이에 구성요건적 정형성이 명확히 갖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정신대관련자들은 비록 극동군사재판에서의 심판을 피하였으나 인도에 관한 죄의 죄책을 여전히 부담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죄를 범한 전쟁죄범인은 개인으로서 처벌되어야 하며, 일본은 국제법상 국가책임을 져야할 것이다.⑶ 강제노동금지협약의 위반군에 의한 성적노예화의 행위를 통하여 일본은 일본이 1932년 11월 21일에 가입한 국제노동기구 관장 제 29호 조약인 '강제노동금지협약'을 위반하였다. 협약 4조는 가입국의 의무에 대하여 첫째로, 관련당국은 개인이나, 회사 기타 단체를 위하여 강제노역을 허용하거나 부과하여서는 아니되며, 둘째로, 그러한 관행이 존재하는 경우는 협약의 효력발생과 함께 완전히 철폐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협약 25조에서 규약당사국들은 강제노역실시의 범죄화에 합의하였다. 동 조항은 "강제노역의 불법한 실시는 형법위반으로 처벌되어야 하며, 모든 규약당사국들은 법에 의하여 부과된 형벌이 실제에 있어 적절하며 엄격히 적용되도록 보장하여야 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정부는 일본전시정부 스스로에 의하여 행해진 성적 노예화행위로 인한 법적 책임을 지며, 동시에 일본군에 의한 성적 노예화에 관련된 개인범법자들을 처벌하여야 할 규약상의 의무를 부담하고, 의무 불이행시 국가책임의 발생이 야기된다고 하겠다.⑷ 부녀매매 금지협약의 위반일본은 1925년, 다음 ‘추업’관계 3조약을 비준했다국가로 보아 온 전통적인 국가책임이론에 따라 국제법상의 불법행위에 의해서 발생하는 책임을 국가의 국제불법행위책임 또는 국가책임이라고 한다. 전통적인 국가책임이론은 국제의무를 위반한 의무주체가 의무위반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 한 국제법질서란 존재할 수 없다고 하여, 국가책임을 가장 주요한 국가의 기본적 의무로 내세우고 있다.국제법상 국가책임의 성립을 위해서는 첫째, 국가기관의 행위일 것, 둘째, 직무상의 행위일 것, 셋째,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행위, 넷째, 국제법의 위반행위일 것, 다섯째, 손해의 발생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일본군 ‘위안부’제도의 설치 및 운영은 일본의 국가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국왕, 수상 및 육군대신, 각급 군지휘관, 일반 장병의 행위에 의해 이루어졌다. ‘위안부’의 설치 및 운영은1944년 8월 22일의 ‘여자정신근로령(칙령 제519 호)’에 의거하였고, 칙령의 형식으로 제정된 ‘여자정신근로령’은 히로히토 일본천황이 서명날인하고 내각총리대신 고이소구이아끼를 비롯, 군수.내무.후생 등 4개 대신이 부서한 것이었다. 그 근거에 따라 일본군 ‘위안부’제도의 설치 운영은 역시 국가기관인 수상과 육군대신의 지시, 조정과 각급 군지휘관의 감독과 통제하에 이루어졌다. 실제 위안소를 출입한 것은 일반 장병들로서 이들도 국가기관임에는 의문이 없다.)결론적으로 일왕, 수상, 육군대신, 각급군지휘관등이 ‘위안소’의 운영, 설치에 있어서 '칙령의 제정', '허가', '통제 및 감독' 등의 행위를 통하여 관여한 것은 일본의 국제법상 국가책임을 성립시키는 행위로서 일본의 국가책임은 유효하게 성립한다.⑵ 국가책임의 해제위와 같은 국가책임의 성립요건을 충족하면 해당 국가는 국제법상으로 국가책임을 져야 한다 는 것은 국제법상의 기본 원칙이다.) 이러한 국가 책임은 국가 스스로 해제하지 않으면 안되며 그 해제의 의무는 영구적으로 남는다고 해석된다. 이것은 국제 불법행위의 시효를 정하는 특별한 국제법규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일반적인 국가책시 국가책임이 발생하기도 하나, 본래적 의미로서의 국가책임과 개인의 형사책임은 엄연히 그 출발점과 발전과정 그리고 접근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둘을 혼용해서 사용해선 안될 것이다. 개인의 형사책임은 중대한 국제법 위반행위에 대해 국가의 배상책임과는 별도로 개인에게도 직접 형사책임을 추궁하는 것으로서, 비록 국가책임에 적용되는 것과 같은 법규에서 그 처벌근거를 찾을 경우가 있더라도 구체적으로 국가에게 적용되는 규범과 개인에게 적용되는 규범은 내용에 따라 구별된다. 그리고 개인에게만 적용시키기 위한 국제법상 범죄의 개념들이 계속 발전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일본이 비록 국가로서 법적 책임을 부담한다고 하여도 범법행위를 행한 개인들의 책임이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반대로, 1996년 ILC ‘인류의 평화와 안전에 반하는 범죄 법전 초안’과 1998년 ‘국제형사법원 로마규약’에 명시된 바와 같이, 개인의 형사처벌로 인해 국가의 책임이 해제되는 것도 물론 아니다. 물론 실제로 개인행위의 국가귀속으로 인해 국가책임이 발생하면 국제법상 개인의 민?형사책임의 성립은 제한을 받는 것이 사실이나 반대의 경우, 즉 개인형사책임의 성립이 국가책임의 발생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실제로 위안소 체제에 관여한 군인 및 관리들은 많은 수가 사망하였고 일본측의 자료 미공개로 구체적인 처벌대상자를 찾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1996년 미국에서는 위안부 문제 등과 관련된 일본인 16명에 대해 입국금지 조치를 내린 바도 있고, 한국도 1997년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하여 일본전범의 입국금지를 결정한 바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일단 공식적으로 명단이 확인되는 선에서부터,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유태인들의 나치전범 색출작업을 참고하여, 위안부관련 처벌대상자 확인작업이 이루어져야 하겠다. 우선 위안소관련 위법행위를 직접 행한 중간장교와 사병은 처벌되어야 한다. 상관의 명령이라는 변명은 부과되는 형벌의 감경사유는 될지언정 국제법상 책임의 면책사유는 되지 못한다. 다음으다.)
마녀사냥의 발생원인Ⅰ. 서론마녀라고 하면 흔히 동화나 만화, 소설속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연상된다. 매부리코에 깊은 주름이 있고 흉측하게 생긴 노파의 모습에 마법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온갖 엽기적이고 나쁜 일로 주변에 피해를 주는 인물 말이다.그러나 이와 같은 마녀에 대한 낭만적인 상상은 근대 유럽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마녀 사냥이 끝나면서 마녀에 대한 믿음이 희화화 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한다.마녀 사냥이란 세계사적으로도 잘 알려진 여성 억압사이며, 15세기 말에서부터 18세기 말까지 약 300여년 동안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이다. 지금도 ‘사회적 희생양’을 마녀사냥이라고 곧잘 비유할 정도이다.유럽의 마녀 사냥은 단지 일회적인 역사적 사건이나 에피소드가 아니라, 서쪽의 스코틀랜드에서 동쪽의 트란실바니아 그리고 스페인에서 핀란드에 이르기까지, 약 300년여동안에 걸쳐 일어난 수천 개의 개별적인 재판이 복합된 사건이다. 즉 서로 다른 환경, 다른 연대에서 일어났고, 때로는 어느 특정 지역에서 더 심하게 일어났고, 어떤 지역에서는 사냥이 더 빨리 끝나기도 했다.마녀 사냥의 대상엔 남자들도 있었으나 거의 대부분이 여성이었기 때문에 마녀 사냥이라고 불리었으며 마녀 사냥이 활발했던 당시에는 모순되게 성녀 또한 많았다고 한다.학자들의 주장은 각기 다르지만, 어떤 학자에 의하면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의 사람이 처형되었다는 마녀 사냥. 물론 이단자나 남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가난한 농촌 여성들이었으며 입에 담기조차 끔찍할 정도의 잔인한 여러 고문의 방식으로 처형되었다.모든 일이나 사건에는 원인이 있듯이, 이렇게 상당한 기간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마녀 사냥으로 죽게 된 역사적인 사건에는 분명 여러 다양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원래도 여성학쪽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여러 다양한 역사적인 사건이나 문화 속에서 특히 이 마녀 사냥에 대해 관심이 갔고, 도대체 어떤 이유들로 해서 이런 사냥이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Ⅱ. 본론마녀 사냥이 일어나기 으며,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지적, 법적인 측면과, 유럽의 중세.근세의 재앙과 자연 재해,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여성관의 측면에서 등 참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아야 하고, 또한 그러한 여러 면들이 마녀 사냥을 발생케 했다.여기에서는 그런 것들을 통합하여 네 가지로 나누어 그 발생 원인을 밝히고자 한다.1. 지적. 법적 기반일반인들은 마녀 사냥 이전부터 마녀 이야기를 믿었다. 그리고 특히 지배 엘리트 계층의 믿음은 이들이 사법권을 장악했기 때문에 마녀 사냥을 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유럽의 지배 엘리트 계층의 교육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그리고 마녀술에 관한 저술을 포함한 많은 책이 전파되고 마녀술에 대한 소식들이 입을 통해 지방의 엘리트 사이로 퍼져나감에 따라 마녀 사냥은 더욱 쉽게 발생할 수 있게 되었다.유럽인들은 마녀를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유해한 인물로 간주하였는데 그들은 마녀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하나님 믿기를 거부하고, 기독교 신앙을 저버린 자, 악마를 숭배하고 악마의 도움을 받아 유해한 마술을 행하는 자, 어린애를 잡아먹고 집단적으로 난잡한 성행위를 하는 반인륜적.반사회적.반기독교적인 인물 내지는 집단으로 규정하였다.이렇게 유럽인들이 마녀를 정의하게 된 이유는 당시 지배 계층이 그렇게 마녀 이야기를 만들어 일반 민중에게 강제로 심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지배 계층, 즉 고위 성직자. 신학자. 지배자. 법률가등이 마녀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고, 그것이 널리 확산되면서 마녀에 대한 공포심이 깊숙이 퍼져 광적인 마녀 사냥으로 이어진 것이다.이러한 지배층의 마녀에 대한 믿음을 확증시켜 준 것은 사법 제도였다.유럽의 대규모 마녀 사냥은 본질적으로 사법적인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데, 실제로 사냥이 일어나려면 그 지역에서 사법권을 행사하는 법원이 마녀술 사건에 대한 명확한 사법적 권한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머녀를 성공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절차상의 장치가 필요했다. 사실 근대 초 유럽이 마녀를 집중적으로 기소할 수 있었던 것은 13~ 범죄를 처벌할 수 없었다. 그러나 13세기 이후 심문에 의한 재판 제도가 생겼고, 이 제도는 고소나 고발 없이도 사법관은 소문이나 심증만으로 범죄 혐의 있는 자를 잡아들여 심문하고 처벌 할 수 있었다.특히 피의자에게 혐의가 없는 것이 증명된다 할지라도 고소를 통한 재판 제도처럼 동태 복수법(고소인이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못해 피고인이 무죄를 받을 경우, 고소인이 역으로 피고인에게 씌운 혐의 내용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는 제도를 말한다)이 적용되지 않아 이단이나 마녀와 같은 범죄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었다.사법관은 혐의가 있다고 생각되는 자를 고문할 수 있었는데 혐의자에게 잔인한 신체적 고통을 주어 자신이 원하는 자백을 얻을 수 있었고, 그 자백을 통해 사법관은 마녀에 대한 선입관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통의 건강한 남자도 견디기 힘든 고문을 약한 여자들이 받게 되면 어김없이 허위 사실을 말함으로써 스스로가 마녀임을 거짓 자백하게 되는데, 고문의 방법이 너무나도 잔혹하고 여러 말도 안되는 것들을 마녀의 징표라고 했기 때문에 한번 의심을 사서 잡히게 되면 어떻게 되든 마녀가 되버리고 말았다.2. 종교 개혁의 영향중세 기독교 세계의 통일성을 깨트린 종교 개혁 또한 나름대로 마녀 사냥에 영향을 미쳤다.마틴 루터, 장 칼뱅과 같은 초기 프로테스탄트 개혁자의 주요 목표는 초기 기독교의 순수함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가톨릭 교회의 개혁실패에 실망한 개혁가들은 가톨릭교와 결별하고 독립적인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설립했는데 수백만의 유럽인들이 로마 가톨릭을 떠났고, 프로테스탄트의 성공적인 개혁 운동은 가톨릭 내에서도 개혁 운동을 촉진시켰다. 이 두 종교는 내전이나 국제적 분쟁에서 충돌하였으며 끊임 없이 갈등이 들끓었다. 이런 종교개혁이 시작되면서 당시 구종교,가톨릭계는 그 관심을 돌릴 대상이 필요했는데 사회적 지위가 열등한 여성들이 그 표적이 되었다. 종교 개혁 초기에는 마녀 재판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종교 개혁이 마녀 사냥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기간에 마녀려면 현실 사회에서 악마와 그의 추종자를 없애야 했다.종교 개혁은 또한 유럽인들에게 높은 차원의 도덕적인 삶을 요구했는데 이런 도덕적인 삶을 영위하는 자만이 하나님에게 구원 받을 수 있는 선택된 자라고 했다. 따라서 죄지은 자는 그 죄를 타인에게 돌렸는데 즉, 마녀에게 자신의 죄를 돌려 스스로는 도덕적인 순결과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려고 했다.특히 성경의 오독도 마녀 사냥의 한 원인으로 들 수 있는데, 십계명의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라는 구절이나 출애굽기 22장의 '요술장이 여인은 살려두지 못한다'라는 구절등, 이러한 성경에 기초한 이원론적인 사고로 선과 악의 규정에 있어서 악은 선을 위해서, 또한 선을 지키기 위해서 마땅히 제거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간주되었고, 또한 가톨릭을 믿는 것 외에 다른 종교를 믿는 것도 악으로 간주할 수 있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또한 한 단계 더 나아가, 뚜렷한 기준도 없이 혹은 터무니 없는 기준으로 선악을 구분, 악을 척결하려고 했다. 이런 명목으로 많은 이단, 마녀, 유대인들이 학살당했다.3. 사회적 배경과 자연재해, 재앙마녀 재판의 지리적, 사회적 배경을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의 마녀가 조그만 농촌 출신이었다. 농촌에서는 마녀술에 대한 의심과 고발이 일상이 되었다. 농민의 마녀 이야기에 대한 믿음은 대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사는 친숙한 사회에서 발생하는 인간 사호간의 갈등과 결합되어 치명적인 마녀 사냥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너무 못생겼거나 혹은 아름답거나 등등 합당한 이유도 없이 고발되고 고발된 사람은 마녀로 몰려 처형되었다. 그러나 농촌에서만 발생한 것은 아니며 근대 초의 악명 높은 마녀재판은 도시에서 이루어졌다. 도시는 일단 농촌과는 다른 경제적 기능을 가졌으며 정체성이 뚜렷했다. 인구가 많은 도시에서는 농촌과는 달리 대개 이웃에 무관심하거나 적어도 관심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이런 도시에서 마녀 고발이 만연한 것은 불가피한 사회적인 상호 접촉이나 농민의 미신이 아닌 분명을 수가 없는데, 13~16세기 유럽은 사회가 안정되지 않은 혼란기였던 데다 페스트등과 같은 악성 전염병이 유행했다. 또한 마녀 사냥이 시작되던 때에는 십자군 전쟁, 백년 전쟁, 독일 농민 전쟁, 프랑스의 위그노 전쟁, 30년 전쟁등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들과 15세기에서 17세기 중엽까지의 이른바 '작은 빙하기'가 겹쳐져서 사회는 아주 흉흉했다.물론 십자군 전쟁부터 30년 전쟁 사이에는 르네상스라든가 종교개혁과 같은 인류사에 긍정적인(엄밀히 말하면 유럽인들에게 긍정적인) 사건도 있었지만, 역시 그 시기에는 전쟁과 자연재해 등과 같은 재앙이 공존했던 시기이다. 11세기 전까지 마녀는 단지 환상속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막기 어려운 질병이 휩쓸고 시대적 변환기의 혼돈이 닥쳐오자 불안해진 사람들은 그것이 악마와 마녀의 소행이라고 믿게 되었다. 문학작품들은 상상력을 더해 마녀가 달밤을 배경으로 날아다닌다든지 아이의 피와 같은 엽기적인 재료로 요리를 만든다는 등 공상을 만들어냈다.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마녀사냥꾼을 낳았고 마녀사냥꾼들의 마법 이야기는 널리 퍼져서 교황 이노센트 8세가 교서를 발표해 마녀의 존재를 인정하고 마녀를 추적하도록 했다. 여성은 남성의 타락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여겼고 이것이 여성이 악마의 유혹이나 마술을 받아들이기 쉬운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마녀사냥"은 인류의 절반에 대해 인류의 절반이 저지른 "집단괴롭힘"의 성격을 띠었다.마녀 사냥이 일어나던 시기는 소빙하기 시기라고 위에도 언급하였는데,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에는 지구의 기온이 현재보다 1℃ 정도 높았다고 한다. 그 기간을 중세온난기라고 부른다. 그러다가 1300년경부터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해서 1400년경에는 소빙하기(little ice age)에 들어섰으며, 그후로 다시 서서히 기온이 올라가게 되었다고 한다.이렇게 뚜렷한 온기와 냉기가 있었는데 어찌됐건 마녀 사냥이 있었던 시기에는 혹독한 추위가 있었고 이는 여러 재해를 일으켰다. 1560년경부터 약 200여년 간 지속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