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동과 근로의 의미5월 1일 메이데이....... 그토록 수십 번의 노동절이 지나갔음에도 이제야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니 먼저 가신 선배 노동자 분들과 나의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말 올리고 싶다.가장 노동절을 알고 느끼고 생각해 보기 위해서는 우선 노동과 근로의 의미를 알아야 할 것이다. 노동과 근로에 대해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보아도 일 하는 것이라는 대답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기본적인 사전적 의미부터 찾아보았다. 먼저 노동은 ‘자연 상태의 물질을 인간생활에 필요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활동’ 이라고 나와 있었다. 근로는 ‘힘써 부지런히 일함’ 이라고 나와 있었다. 이 사전적 의미는 나에게 생각의 실마리를 남겨주었다. 노동은 인간생활에 필요한 것을 변화시키는 활동으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바꾸는 인간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고 근로는 부지런히 인간이 일을 하는 지협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간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던 거 같다. 아니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러하게 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노동은 어감이 어렵고 힘든 일을 하며 그냥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니까 하는 것, 즉 먹고 살기위해 남 밑에서 일 하는 것 같은 블루칼라의 짙은 느낌이고, 근로는 좀 멋있는 창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일을 하고, 창조하며 관리하는 화이트 칼라적 느낌이 짙은 어감인 것 같다.사실 그렇게 나누는 것이 선입견임은 분명하다. 또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하듯 모든 인간의 활동에 대해 상식에 어긋나 누군가에게 해가 되는 일이 아니라면 존중 받아야 마땅하다. 그리고 인간은 태생 혼자 일을 할 수 없고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지라 그것이 노동이고 근로임을 나누는 것은 아주 옳지 못한 행동임은 분명하다. 각자가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살아가야 하는 것임을 생각해 화이트칼라의 일과 블루칼라의 일을 나누면 안 되는 것이다.2. 날짜로 본 노동절3월 8일은 무슨 날일까? 막상 레포트를 쓸려고 하니까 친구생일인거 밖에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인터넷을 찾고 그날이 여성노동자의 날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나의 무지함이 부끄러워졌다. 여성이라는 성은 남성의 오랫동안의 힘의 우위 아래 어쩔 수없이 약한 존재로 살아와 우리에게는 노동에서는 남성보다는 약한 불리한 조건이라 생각을 한다. 또한 노동자도 사용자 측의 반대말로 자본력의 차이에 의해 불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가진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여성노동자는 더욱 더 불리한 노동자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불리함의 핸디캡을 딛고 한 국가의 노동자로 살아가는 우리 어머님을 비롯한 여성노동자 분들께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다시 생각해보면 여성이 가진 약함을 이용하여 남성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케이스도 있다. 허나 같은 조건하에서는 여성이 불리함은 명백하다 할 것이나, 시대가 시대인 만큼 변화가 커 여성의 핸디캡의 보완하는 제도가 마련되고 있음이 분명함으로 여성들의 요구의 적극성을 갖춘다면 여성 노동자의 지위도 덩달아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날은 1857년 미국의 섬유, 의류 공장의 여직공들이 임금향상과 작업환경 개선을 위해 가두 행진을 벌인 날이며, 1908년에는 수 천 명의 여성봉제직공들이 미성년자의 노동금지와 여성참정권의 보장을 위해 시위를 벌인 날이다. 불리한 조건의 개선을 방관하고 있으며 그 방관을 이용한 자본가의 착취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러한 날을 개기로 우리 모두가 반성하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을 길러야 할 것이다.3월 10일은 무슨 날일까? 이날은 1963년 4월 17일 공포된 법률 제1326호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 에 의해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창설일을 근로자의 날로 제정한 날이다. 근로자의 날인 5월 1일과 유사한 듯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60년대에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라는 단체를 설립했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 단체가 제대로 역할을 다해 주었다면 전태일 같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5월 1일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노동절이며 근로자의 날이라 하기도 한다. 1886년 미국노동총연맹이 탄생하여 일일 8시간 근무제를 확보하기 위해 노동자 총 파업을 5월1일에 감행하였던 것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이날 어린소녀를 포함해서 6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것이 결국 노동자 30만 명의 집결을 만들어 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헤이마켓 광장에 모인 30만 노동자는 집회를 하기 시작 했으나 폭탄이 터지고 말았다. 그래서 폭동죄로 주동자를 비롯한 8명이 체포되어 5명은 사형, 3명은 금고형을 선고 받게 된다. 훗날 이 폭탄은 자본가의 조작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 사건을 비롯해 보면 결국 그날의 사건도 자본력이 강한 사람이 자본력이 약한 사람의 불리한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에게 유리하게 일을 처리한 것이 된다. 그만큼 불리한 지위의 사람은 불리한 대우를 받아가며 살아가고 있다고 보여진다.아무리 사용자 측의 좋은 대우가 있다 하여도 결국 현장에서 뛰는 노동자의 불편함과 부당함의 건의는 사용자 측의 느낌의 현실감이 없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귀를 기울이는 힘은 그 사람을 위에 놓고 나를 낮추어 생각해야하는 어려운 일이다. 결국 Understand는 보이는 것만큼 쉬운 것이 아니다. 노동법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이번 학기 동안 갖추어야 할 성품임이 분명하다.11월 13일은? 얼마 전 전태일 평전을 읽었기에 11월 13일은 기억이 난다. 전태일이 서울동대문 평화시장 앞에서 온몸에 휘발유를 붓고 “근로기준법을 지켜 달라!”를 외치며 분신한 날이다. 영화도 보았지만 결국 국민의 힘으로 만든 법을 제발 좀 지켜달라는 것뿐이었다. 다시생각해보면 그 당시는 결국 법도 지식의 빈부라고나 할까? 더 많이 안사람이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 만들고 그들을 보호하기위해 만들어 졌다고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고 국민들에 의해 인정받은 법을 왜 지키지 않는 것인가이다. 더 예쁘게 더 멋있게 지키자는 외침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지키기만 해달라는 바램뿐이었다. ‘잘살면 지키자’ 라는 자본가의 생각으로 무시하던 그 법으로 인해 청년의 목숨을 빼앗아 갔으며 수 천 수 만 명의 노동자를 아프게 하고 병들게 했다. 그래서 더 더욱이나 잊을 수 없는 날이기도 한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나와 나의 친구들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청년들은 그 분들이 어렵게 만들어 놓은 그 환경에서 지금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동안 모르고 살아왔는지 또한 누구하나 제대로 중등교육 때 가르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내가 흘려들어서인가? 아니다. 중등교육과정에 노동절은 보통 형식적 자료만을 넘기고 지나간다. 또한 11월13일도 잊고 지나간다. 단순히 누가누가 수학을 잘하나 영어를 잘하나를 겨루지 이러한 사고는 없이 지나간다. 지나가고 지나가면 결국 잊혀지기 때문인가? 아니다. 이러한 날을 잊어서도 안 되고 간과해서는 안 되는 날이다.3. 누가 누구를 평가하는가?공정함을 기해 도덕적이고 성실한 감시자가 있다. 이 감시자의 역할은 누가 감시하는가? 더 나은 도덕적 완성자가 감시해야 하나? 그러면 그 감시자는 또 누가 감시하는가? 결국 노동자도 열심히 근면하고 성실하게 노동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사람을 도태시키며 회사의 이익을 위해 해고를 해야 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기준을 설정하고 그것을 판단하는 사람은 누가 해야 하는 것인가? 또 그 사람의 직무수행의 근면, 성실은 누가 평가하는 가로 부딪치게 된다.
176p Talk it over1. What was wrong with Smith`s Telegraph Office? Do you think there are businesses like this nowadays?-> The Skagway had no telegraph lines. 2. What is a con game? A protection Racket? What films have you seen about these activities? How do they portray the people involved?-> Con game is sleight-of-hand tricks which involved hiding large bills in bars of soap. 3. Who was Frank Reid, and how did he die?-> He is a former Indian fighter and surveyor who helped lay out the original town. Soapy Smith tried to force his way into the meeting, but found his path along the wharf blocked by Frank Reid. After a brief struggle, the two exchanged gunfire and both fell to the deck. Smith died immediately of a bullet through heart; Reid lingered 12 days longer.
Soapy smith.Jefferson Randolph "Soapy" Smith probably ranks as Skagway's best-known character from the gold-rush days. Certainly, he was its most notorious con man. It is said that at the height of the gold rush, Smith and his gang virtually controlled the town, a reign that ended in a shoot-out with one of Skagway's leading citizens, Frank Reid.제퍼슨 랜돌프 "소피" 스미스(비누장사를 하던 사기꾼의 별명)는 아마 Skagway의 골드러시 날 이후에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일 것이다. 확실히 그는 가장 악명 높은 사기꾼이었다. 골드러시가 절정이었을 때, 스미스와 그의 일당은 사실상 그 마을을 지배하고 있었고, Skagway의 지도적인 시민들 중 한명인 Frank Reid와의 총격전으로 지배는 끝이 났다고 전해진다.Smith was born in Georgia in 1860 to parents who were both members of prominent Southern families. Smith spent most of his formative years in Texas, where his family moved in the 1870s. After his father, a lawyer, fell on hard times, young jeff was forced to earn a living as a delivery boy and as a runner for a hotel, a job in which he rustled up customers and thus discovered his natural gift for speech.스미스는 1860년 조지아에서 저명한 남부 집안의 출신 부모로부터 태된 후(돌아가신 후), 젊은 제프는 어쩔 수 없이 배달부, 호텔 심부름꾼으로 생활비를 마련하게 되었다. 손님을 속이는 일들을 하면서 연설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음을 발견했다.when still in teens, Smith hired on as a trail hand on cattle drives, and spent several years drifting about the west. he eventually learned sleight-of-hand tricks and made a living in the mining camps with gambling games such as the peas-under-the shell game. He acquired his nickname "soapy" from a game which involved hiding large bills in bars of soap.아직 10대일 때, 스미스는 소몰이의 길잡이로 고용되어서 수년 간을 서부를 돌아다니면서 보냈다. 그는 결국 속임수를 배웠으며 광산에서 ‘껍질 속 완두콩’으로 불리는 게임을 하면서 살았다. 비누사이에 큰 돈들을 숨겨놓는 것을 포함하는 그 게임에서 그는 “소피”라는 별명을 얻었다.Smith, who was generally opposed to violent methods, graduated to larger operations and set up in Denver where he formed a gang. In Denver, he acquired a wide reputation for his con games, as well as for his generosity to charities, churches, and those in desperate need. Also in Denver, he married a singer by the name of Anna Nielsen, whom he dept insulated from his "public" life and who ev성했던 덴버에서 경영하게 되었다. 덴버에서 그는 사기꾼(confidence game, confidence trick)으로서 그의 자선과 교회활동에서, 그리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비심만큼 큰 명성을 획득하게 된다. 또한 그는 덴버에서 자신의 세상이 다 아는 인생을 숨기고 가수 안나 닐슨과 결혼하여 결국 아이들을 낳았다.About 1890, Smith set up operations, including a gambling hall, in Creede, Colorado, a wide-open mining town, but eventually returned to Denver. After numerous run-ins with the law and local politicians, Soapy Smith quit Colorado and, in October 1897, arrived with his gang in Skagway, apparently with intentions of "taking over" the town.1890년 스미스는 문이 활짝 열려있는 광산촌 콜로라도에서 도박장을 포함한 조직을 경영하게 되나 결국 덴버로 돌아가고 만다. 법과 지방정치인을 수없이 유린한 후, 소피 스미스는 1897년 10월, 콜로라도의 일을 그만두고 명백히 도시를 인계하기를 의도한 Skagway에 있는 그의 조직에 도착했다.Working out of an establishment called Jeff Smith's Parlor, an oyster parlor that also offered liquor and gambling, Smith and his gang soon were operating their con games, as well as taking part in some outright robbery, running a protection racket, and overseeing businesses like Smith's "Telegraph Office." This last have been legitimate but for the fact that Skagway had no telegraph lines.‘Jeff Smith's Parlor라는 이름의 굴 요리점 가게로 술과 도박을 제공하면서, 스미스와 그의 일당들은 곧 몇 건의 노골적인 강도짓에 가담하고, 상점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가게 주인들에게서 돈을 뜯어내었고(protection racket), 스미스의 회사였던 “전신 사무소”와 같은 사업들을 감독하는 일과 더불어 사기극도 진행하였다. 세계 어느 곳이든 전보 요금을 5달러로 한, 맨 나중에 언급한 “전신 사무소” 사업은 스캐그웨이에 전신선이 없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합법적인 것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Despite his lawless ways, Smith was liked and respected by many for his charity, which included organizing a program to adopt stray dogs. The towns-people, however, had no use whatsoever for his gang. Eventually, several of Skagway's leading citizens formed a vigilante-style "Committee of 101" to rid the town of its criminal element. Among the committee's founders was 54-year-old Frank Reid, a former Indian fighter and surveyor who helped lay out the original town.그의 불법적인 방식에도 불구하고, 스미스는 길 잃은 개를 입양하는 프로그램을 조직하는 것을 비롯한 그의 자선행위로 인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스캐그웨이 사람들은 그의 조직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참을 수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몇몇 스케그웨이의 지도시민들은 그 도시를 구 투쟁가이자 측량사였던 54살의 프랭크 레이드가 있었다.(have no use for A : A를 참을 수 없다. 싫어하다, 진가를 인정하지 않다.not(no) ... at all = not(no) ... whatsoever : 전혀 아니다.)The showdown between Soapy Smith and Frank Reid began when a young miner, J. D. Stewart, arrived in Skagway from the Klonedike carrying $2,700 in gold. Somehow, and apparently with the help of someone, Stewart and his gold parted ways. The Committee of 101,hearing Stewart's loud complaints, suspected Soapy Smith and his gang, and on and on July 8, 1898, called a meeting on the Skagway wharf to take action. Soapy Smith tried to force his way into the meeting, but found his path along the wharf blocked by Frank Reid. After a brief struggle, the two exchanged gunfire and both fell to the deck. Smith died immediately of a bullet through heart; Reid lingered 12 days longer.소피 스미스와 프랭크 레이드의 대결은, 젊은 광산업자인 J.D. 스튜어트가 클론다이크에서 2700불어치의 금을 가지고 스캐그웨이에 나타났을 때 시작되었다. 어찌어찌해서, 그리고 분명히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스튜어트와 그의 금은 갈라서게 되었다 (따로 떨어지게 되었다). 101 위원회는 스튜어트의 거센 불평(항의)를 듣고 소피 스미스)
영어2 영시 해석The spell of the Yukon200222035 전 중 언200221527 홍 교 은200221752 김 재 역200221756 김 희200320828 이 유 미The Spell of the Yukon - 유콘의 마법I wanted the gold, and I sought it,나는 황금을 원해 찾았어.I scrabbled and mucked like a slave.노예처럼 뒤집고 몸부림쳤지.Was it famine or scurvy - I fought it;굶주림이었던가, 괴혈병이었던가 ― 나는 싸웠어.I hurled my youth into a grave.내 젊음을 무덤 속에 내던졌지.I wanted the gold, and I got it -나 황금을 원해 그것을 가졌어.Came out with a fortune last fall, -지난 가을 황금을 얻어 그곳을 나왔지.Yet somehow life's not what I thought it,허나 내가 생각한 삶은 아니었어.And somehow the gold isn't all.그리고 황금이 전부는 아니었지.No! There's the land. (Have you seen it?)아니야! 저기 그 땅이 있어. ( 그 땅을 본 적이 있어?)It's the cussedest land that I know,그곳은 내가 아는 가장 미지의 땅이지.From the big, dizzy mountains that screen it그곳을 감싸고 있는 크고 아찔한 산들에서To the deep, deathlike valleys below.죽음처럼 깊은 계곡 아래까지.Some say God was tired when He made it;누군가는 신이 그곳을 만들었을 때 지쳤을 거라고 하고Some say it's a fine land to shun;누군가는 그곳이 피해야 하는 땅이라고 말해.Maybe; but there's some as would trade it그렇지만 아마 어떤 이들은For no land on earth - and I'm one.그곳을 세상의 어떤 땅과도 바꾸지 않을 거야. - 나 역시 그래.You come to get rich (damned good reason);당신은 부자가 되려고 올 테지.(젠장, 좋은 이유야)You feel like an exile at first;처음에 당신은 유배자처럼 느낄 거야.You hate it like hell for a season,당신은 한 계절이 지날 동안 그곳을 지옥처럼 싫어할 테지.And then you are worse than the worst.그리고 당신은 최악보다 더 나빠질 거야.It grips you like some kinds of sinning;그곳은 당신이 잘못을 한 것처럼 붙잡을 테지.It twists you from foe to a friend;그곳은 당신을 적에서 친구로 만들어버릴 거야.It seems it's been since the beginning;그것은 처음부터 그랬던 것 같아.It seems it will be to the end.그리고 마지막까지 그럴 것 같아.The summer - no sweeter was ever;여름 - 이보다 더 달콤할 수는 없을 거야.The sunshiny woods all athrill;모든 것을 생동케 하는 양지바른 곳의 나무들.The grayling aleap in the river,강 속의 grayling aleap(잿빛고기).The bighorn asleep on the hill.언덕 위에서 졸고 있는 bigcorn(큰뿔양).The strong life that never knows harness;고삐를 모르는 야생의 삶.The wilds where the caribou call;순록이 부르는 야성.The freshness, the freedom, the farness -이 생생함, 자유로움, 까마득함.O God! how I'm stuck on it all.오~ 신이시여! 내가 얼마나 그 땅을 사랑하게 됐는지.The winter! the brightness that blinds you,겨울! 당신을 눈멀게 한 그 찬란함.The white land locked tight as a drum,그 하얀 벌판은 북처럼 단단하게 굳어있고.The cold fear that follows and finds you,그 찬 기운이 당신을 따라 갈 것 같아 걱정이 돼.The silence that bludgeons you dumb.당신을 벙어리로 만드는 침묵.The snows that are older than history,역사보다 더 오래된 눈.The woods where the weird shadows slant;운명의 예언자가 비껴간 나무들.The stillness, the moonlight, the mystery,고요함, 달빛, 신비로움.I've bade 'em good-by - but I can't.나는 작별을 하려 했어. - 그러나 할 수 없었지.There's a land where the mountains are nameless,산들에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땅이 있어.And the rivers all run God knows where;그리고 모든 강들이 어디로 흐르는지는 신만이 아실 테지.There are lives that are erring and aimless,거기엔 죄 많고 갈 곳 잃은 삶들이 있어.And deaths that just hang by a hair;죽음은 머리 한 가닥에 달려있지.There are hardships that nobody reckons;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고난이 있어.There are valleys unpeopled and still;고요하고 인적 없는 계곡이 있어,There's a land - oh, it beckons and beckons,그곳은 - 오! 더 가까이 오라고 유혹하고 있어.And I want to go back - and I will.나는 돌아가기를 원해. - 나는 그럴 거야.They're making my money diminish;그들은 내 돈을 탕진하게 만들었어.I'm sick of the taste of champagne.나는 샴페인 냄새에 병이 날 지경이었어.Thank God! when I'm skinned to a finish신이시여, 감사합니다. - 내가 끝장이 날 정도로 망가질 때에I'll pike to the Yukon again.유콘으로 돌아갈 거야.I'll fight - and you bet it's no sham-fight;나는 싸울 거야. - 진실한 싸움이라는 데 내기를 걸어도 좋아.It's hell! - but I've been there before;그곳은 지옥일 거야. - 그러나 나는 전에도 그곳에 가봤어.And it's better than this by a damnsite -그리고 그곳은 이 망할 곳보다는 나을 거야.So me for the Yukon once more.그래서 나는 유콘에 한 번 더 가고 싶어.There's gold, and it's haunting and haunting;황금이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자꾸 맴돌아.
My CountryTo a stranger, the land must seem endless. A herring gull, winging its way from St. John's, Newfoundland, to Victoria on the southern tip of Vancouver Island, will travel as far as the distance from London to Baghdad. It is the vastness that startles the imagination of all who visit my country.이방인에게 대륙은 끝이 없어 보일 게 틀림없다. 뉴파운드랜드의 세인트존스로부터 밴쿠버 섬의 최남단에 있는 빅토리아까지 자신의 길을 날개 짓 하는 재갈매기는 런던에서 바그다드까지의 거리처럼 먼 여행을 한다. 내 나라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상상력)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은 광활함이다.Contrary to common belief, we do not live in snow-covered cabins far from civilization. Most of us inhabit cities that do not seem to differ greatly from those to the south of us. The observant visiter, however, will note some differences. The variety of our national makeup is, I believe, more pronounced than it is in the American melting pot. A newcomer in the United States quickly learns to cover up his or her origins and become an American. A newcomer to Canada manages to keep something of the culture and customs of his or h는 우리국민의 구성의 다양성은 미국의 멜팅팟 보다 좀 더 뚜렷하다고 믿는다. 미국에 새로 온 사람은 빠르게 그 또는 그녀의 기원을 커버하는 걸 배우고 미국인이 된다. 캐나다에 새로 온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그 또는 그녀의 민족적 배경의 문화와 관습을 유지한다.Traditionally, the stranger has thought of Canada as a mountainous, snow-swept land. Certainly it can get very cold in Canada. Few non-Canadians understand that it can also get very hot. The eastern cities suffer in the humidity of July and August, and people actually die each year from the heat. In Victoria, roses bloom on Christmas Day.전통적으로 이방인은 캐나다는 산지이고, 눈으로 덮인 땅이라고 생각해왔다. 확실히 캐나다는 매우 춥다. 캐나다인이 아닌 사람은 소수만이 (캐나다의) 날씨가 또한 매우 덥다는 걸 이해한다. 동쪽의 도시는 7월과 8월에 습기로 고통받는다. 그리고 실제로 매년 더위로 인해 사람이 죽는다. 빅토리아에서는 크리스마스 때 장미가 핀다.Where temperature is concerned we are a country of extremes; and yet, as a people, we tend toward moderation and even conservatism. Non-Canadians think we are the same as our American neighbors, but we are not really like the Americans. Our temperament, our social attitudes, our environment, and our history make us a different kind 우리의 기질, 우리의 사회적 태도, 우리의 환경, 그리고 우리의 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다른 종류의 북아메리카인으로 만든다.First, there is the matter of our history. It has been called dull because it is not very bloody. We are, after all, the only people in all the Americans who did not separate violently from Europe. We have had three or four small uprisings but no revolution or civil war.첫째로 우리의 역사문제이다. 바로 유혈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지루하다고(격렬하지 않다고)일컬어져 왔다. 어쨌든, 우리는 모든 아메리카 중에서 유럽으로부터 폭력적으로 분리되지 않았던 유일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3~4번의 작은 폭동은 있었지만 혁명이나 시민전쟁은 없었다.We were slow to give up our colonial ties to England. While the Americans chose freedom, we chose order. Our lawmen are appointed from above, not elected from below. the idea of choosing town marshals and county sheriffs by vote to keep the peace with guns never fitted into the scheme of things. Instead, we invented the North West Mounted Police. The Canadian symbol of the Mountie, neat and clean in his scarlet coat, contrasts with the American symbol of the lawmen in his open shirt and gun-belt. The two difme first; settlement followed.우리는 영국에게서 우리의 식민지적 속박을 포기하는 게 느렸다. 미국인들이 자유를 택한 반면, 우리는 질서를 택했다. 우리의 경찰관, 보안관들은 하부로부터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 상부로부터 임명된다. 총기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마을 보안관과 군보인관을 투표로 뽑자는 의견은 캐나다 일의 계획에선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신에 우리는 노쓰웨스트마운티드폴리스(기마경찰)를 만들었다. 주황색 코트를 입은 말끔하고 단정한 캐나다의 기마 경관의 상징은 셔츠를 풀어입고 총을 차게끔 되어 있는 허리띠를 한 미국 보안관의 상징과 대조된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다른 두가지 사회적 태도가 지속된다. (미국과 캐나다의 사회적 태도가 다르다는 뜻) 미국에서는 이주민(정착민)이 법보다 대륙에 먼저 왔다-그러므로“와일드웨스트이다. 캐나다에서는 법이 먼저 왔다; 정착이 다음이다.Outward displays of emotion are not part of the Canadian style. We are after all a northern people. The Americans are far more outgoing than we are. One reason for this, I think, is the very real presence of nature in our lives. Most of us live within a few hours' drive of the wilderness. No Canadian city is far removed from those mysterious and silent places which can have such an effect on the human soul.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은 캐나다인의 방식의 일부가 아니다. 어쨌든 우리는 북쪽 사람이다. 미국인들은 우리보다 더욱 더 외향적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에 대한 한가지 이유는 우리 생활 속에 바로 실제의 자연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 대다수는 Americans, and that is our bilingual and bicultural makeup(Canada has two official languages, English and French, and in its largest province a majority of the inhabitants speak French almost exclusively.) It gives us a picturesque quality, of course, and that certainly helps tourism: Visitors are attracted to the "foreignness" of Quebec City, with its twisting streets and its French-style cooking. But there is also a disturbing regional tension. Quebec has become a nation within a nation, and the separatist movement is powerful there.아메리카 대륙에서 (내 나라를) 독특하게 만드는 내 나라의 또다른 면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두 언어와 두 문화적 구성이다.(캐나다는 영어와 프랑스어인 두 개의 공용어가 있고 가장 큰 지역의 주민들 대다수는 거의 프랑스어로만 말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질을 제공하고 물론, 확실히 관광사업에 도움을 준다; 관광객은 구불구불한 거리와 프랑스 스타일의 요리가 있는 퀘벡 도시의 “이국적임”에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불안한 지역적 긴장감 또한 존재한다. 퀘벡 주는 한 나라 내에 있는 한 나라가 되어 가고 있고, 거기에는 분리주의의 움직임이 강하다.Canadians are not anti-American. We watch American television programs. We tend to prefer American-made cars over the European and Asian products. 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