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를 구가하던 사회의 도시들,사원들,궁전들,무덤들이 중동 지방의 전역에 걸쳐서 폐허가 된 채 잠들어 있다.이 지역은 인간이 최초로 높은 수준의 문명을 건설하였던 곳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지역은 역사의 진행과정이 반드시 끊임없는 진보와 승리의 길만은 아님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문명의 흥기는 인간이 주위 자연 환경을 이용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의 증대에 발맞추어 지행되었다. 또한 문명의 몰락은 주위 자연 환경과의 조화와 균형 상태를 유지하는데 실패함에 따라서 진행되었다. 이 경우에 인간들은 가혹한 생태적 재앙을 겪게 된다. 이 재앙은 기후가 바뀌거나 하여 겪게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 자신들이 초래한 것이다. 사실 기후 변화는 문명이 탄생하기 전에도 인간이 자주 겪었던 것이고, 그때마다 인간은 변화된 기후 조건에 나름대로 적응하여 생존해 왔다. 이 장에서 나는 메소포타미아 인들이 자신들이 거주하던 생태계와 자신들의 문명 사이의 관계 맺음의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메소포타미아란 말은 “강들 사이의 땅" 이란 뜻이다. 히브리어로는 ”아람 나하라임“즉 “두 강들 사이의 아람”으로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지역을 의미한다.이 명칭은 그리스 역사가 폴리비우스와 지리학자 스트라보가 두 강들 사이의 지역들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했다.메소포타미아는 지중해 연안 지역의 동쪽 경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터키 안티오크 북쪽 지대가 그 정확한 경계 지대라고 할 수 있다. 유프라테스 강은 지중해 연안에서 약 145km 떨어진 곳까지 뻗어 있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기후는 지중해 연안과는 달리 매우 건조하다. 연중 강수량이 겨우 15cm에서 20cm 정도에 불과하다. 한여름의 기온은 그늘에 있어도 최고 섭씨 50도 정도까지 올라가며, 심지어 60도까지 올라간 적도 있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거의 모든 생명체들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강이 높은 산악지대에서 부터 운반해오는 물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이들 두강은 아르메니아 지방의 높은 산들 위에 터 두 강물에 의하여 실려와 서서히 쌓인 모래와 침적토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의심할 바 없는 사실 때문에, 한 때 역사가들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초기 문명이 성장하기 시작할 무렵에는 페르시아 만이 지금의 위치1보다 훨씬 더 북서쪽까지 들어와 있었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위의 두 강이 실어보낸 흙과 모래들로 인하여 해안선이 서서히 동남쪽으로 후퇴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메르 인들의 도시들이 지금과는 달리 훨씬 더 해안에 가까웠다고 가정하기까지 한다. 고대사 관련 지도자들에서도 이러한 견해에 따라, 당시의 지형과 도시, 그리고 문명의 위치들을 표시해놓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질학자들의 주의 깊은 연구 결과, 이러한 가정이 잘못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분명히 두 큰 강에 의해 흙과 모래가 쌓여온 곳이기는 하다. 하지만 해안에서 가까운 삼각주 지역의 땅은 결코 쌓이는 토양 때문에 그 높이가 증가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해안에서 가까운 메소포타미아 저지대에서는 지질학적 침강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강물이 아무리 모래와 흙을 실어와도 땅은 증감 없이 본래의 높이를 유지하게 된다. 다소의 작은 변화는 있겠지만 대략적 으로 볼 때, 오늘날의 메소포타미아 삼각주 지역의 해안선은 5천 년 전의 그것과 거의 유사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메소포타미아와 그 근방에서 일어난 세계 최초의 도시들은 인간과 자연환경 사이의 새로운 관계 맺음의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가능하였다. 즉, 두 가지의 중요한 발명품들을 잘 이용한 새로운 형태의 농업에 기초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가지의 발명품들을 잘 이용한 새로운 형태의 농업에 기초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가지의 발명품이란 바로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관개 시설과 쟁기의 사용이다. 무척 비옥하면서도 약간의 모래 성분이 섞여 있어 갈아엎기가 비교적 쉬웠던 메소포타미아의 토양은 쟁기질을 매우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강물이 흐른다는 것 자체가 농사에 큰 도움을 주기는 하였지만, 그 의 대도시들을 괴롭히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은 거의 유사한 형태로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그 지역에서 제일 큰 도시였던 바빌론은 거의 16km에 달하는 성벽을 지니고 있었고, 중심지역 외각의 근교 지역의 크기 또한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아도 상당히 컸다. 유적으로 미루어볼 때, 당시 도시 내부의 도로와 거리는 무척 좁았다. 또한 방어용 성벽 주위에 무질서하게 조그만 집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고, 집안의 방들도 무척 협소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증거들로 미루어, 우리는 고대 도시들이 무척이나 비좁고 붐볐으리라는 추측을 해 볼수 있다. 각종의 생활 쓰레기들이 집집마다 가득 쌓여 있었을 것이고, 진흙으로 만든 마룻바닥에는 진흙 파편과 먼지들이 날로 쌓여 갔을 것이다.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는 그들이 사는 곳 근처에 방치될 뿐이었고, 쓰레기를 한데 모아서 먼 곳에 버린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우물이나 강, 관개 수로 등을 통하여 공급되는 물도 예외 없이 오염되어 있었으리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결국 기대 수명은 매우 짧았다. 유아 사망률이 높았을것이기 떄문이다. 파리,모기가 떼지어 날아 다니고, 쥐들이 설쳐대며, 바퀴벌레가 이리저리 기어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당시로서는 도저히 없었을 것 같기도 한 대기 오염마저도 상당하였다고 추측할 수 있다. 먼지와 악취가 도시에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인도의 캘커타 같은 나오는 무수한 연기와 그 밖의 다양한 인간 활동에서 비롯되는 먼지들이 대기중 에 머무르면서, 좀처럼 흩어지지 않는 연기와 먼지의 막을 형성하고 있다. 여하튼 이러한 열악한 생활 환경 속에서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거주민들의 사망률은 매우 높을 수 밖에 없었다.충적토 지대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동이나 기타 광물 자원들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그런 자원들은 멀리 떨러져 있는 산악 지대나 외국인으로부터 들여오는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일찍부터 교역이 발달할 수 있었다. 거주자들은 주위 환경 조건에 따라서 때, 투쟁과 다툼의 감정으로 점철되어 있다. 자연은 메소포타미아 인들의 신화 속에서 두려움을 주는 미지의 혼돈으로 표현되고 있다. 오직 인간의 힘든 노동과 수혼 신 들의 보살핌에 의해서만 혼돈이 정복되고 질서가 깃들 수 있다고 보았다. 메소포타미아 인들이 믿고 있었던 신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자연에 깃들어 있는 신성성을 지닌 존재였다. 그러나 그 신들이 지닌 특성은 단순한 자연신의 특성과는 다르다. 그 신들은 형벌을 내리는 존재였고, 도시의 수호자였으며, 국가와 사회를 지탱해주고 땅 위에서 인간이 행하는 노동을 복돋우고 하늘의 운행의 규칙성과 땅 위의 농작물들의 발육을 관장한다. 특히 천체 운행의 질서는 메소포타미아 인들의 중요한 관심사였다.그들은 매우 높은 수준의 천문학과 점성술을 발전시켜, 해와 달과 별들의 운행이 대단히 규칙적이며 그 궤도와 위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러한 천문학에 대한 관심은 분명히 정확한 파종과 수확의 시기를 정하여 수확량을 늘려야 할 필요성과 깊은 관 련이 있다.메소포타미아 인들의 영웅신이 엔릴 또는 마르둑은 태고적의 혼돈의 괴물 티아맛을 죽여서 그 찢긴 몸으로 부터 이 세상을 창조하였다. 이 신화는 분명히 메소포타미아 인 자신들의 수고로운 노동을 반영하고 있다. 그들은 홍수가 끊이지 않는 늪지대에 자신들의 도시를 건설하였고, 무성한 갈재밭에 섬을 만들었으며, 잘 계획된 수로망을 통하여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었던 것이다. 그들은 도시를 건설할떄에도 가로망을 마치 수로망을 건설하듯이 만들었다. 예를 들어서 바빌론 중심가의 유적을 보면, 그것이 잘 계획된 격자 무늬 형태로 정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만일 그러한 수고로운 노동이 없었다면 이 지역은 틀림없이,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강물의 범람과 사정없이 작렬하는 강렬한 태양빛 아래, 타는 듯한 사막과 뒤죽박죽인 늪지대가 뒤섞여 평쳐져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관개시설을 계획적으로 설치한 덕에 땅이 질서 있게 정리되었고 토양의 비옥한 자양분들을 잘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만 한다면, 그것을 길들일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들은 이미 이전부터 기르고 있던 소, 돼지, 양, 염소 외에도 새로이 당나귀와 물소 등을 길들이는 데 성공하였다. 또한 야자나무를 활용하는 방법을 익힌 뒤, 그 나무를 곳곳에 심어 퍼뜨리기도 하였다. 메소포타미아 인들은 또한 자연환경에 대한 깊은 호기심과 관심을 보여주기도 하였다.그들은 점토로 만든 판에 많은 동식물과 광물들의 목록을 새겨 넣어 남겨 놓기도 하였다. 이것들은 동식물과 광물 등에 대한 본격적인 과학적 분류법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한 전단계라고 간주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그렇게 까지 간주하기는 힘들다. 그 목록들은 모두가 인간이 이용하기 편리하게 하기 위하여 정리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백화점의 물품 장부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 인들의 사고방식은 다음과 같은 수메르 인들의 전설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니누르타 신이 전쟁을 하는 데 돌들 중에서 일부가 그를 도와 싸웠고, 나머지 돌들은 오히려 그에 대항하는 편에 가담하였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뒤 니누르타 신은 자신을 도와준 돌들을 보석으로 만들어 은혜를 갚았고, 자신에게 대항한 돌들을 길에 까지 돌과 문간에 까는 돌로 만들어 사람들에 의하여 항상 짓밟히도록 하였다고 한다.메소포타미아 인들이 지구라트와 같은 높은 건축물과 탑을 세우려는 열망을 지니고 있었던 것은 다음과 이유 때문이었다. 그들은 본래 숲이나 산자락 사이에서 거주하던 고지대 사람들이었다. 그러다가 평야 지대로 이주해왔고, 따라서 도무지 높은 산 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평평한 땅 위에 자신들이 이전에 살던곳의 환경과 유사한 것을 만들어 놓으려는 열망을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러한 열망은 산악지대에서 내려와 저지대에 침입해 드러 온 1세대와 2세대들 정도가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 이후의 세대들은 평야지대의 자연환경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면 왜 높은 탑과 건물들이 계속해서 이후의 세대들에 의해서도 축조되었을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