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공사지원동기, 도전목표, 자기계발을 위한 노력 등우리나라의 절반 이상의 인구는 서울 및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이동수단의 문제점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런 시점에서 가장 좋은 교통수단으로 떠오르는 것이 지하철로서, 타 교통수단에 비해, 시간, 경제적, 안전 등의 모든 면에서 우수한 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서울 지하철의 일일 평균 이용량이 600만이 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에 착안하여 시민의 손과 발이 되어줄 그런 정직한 운전사가 되고 싶어 이렇게 지원하게 되었습니다.이런 지원동기를 비롯하여, 보다 나은 지하철 공단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것은 물론, 친절과 봉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며, 서울지하철공사라는 브랜드 가치를 세계적인 우수 사업단으로 등반시키는데 하루하루를 투자할 것입니다. 이런 세계적인 등반을 통한 기술 수출은 서울시 뿐 아니라, 나라에도 큰 이익이 될 것이기에 그런 공사를 만드는데 꼭 힘을 쓰고 싶습니다. 세계적인 지하철, 미래지향적인 지하철 서울지하철공사를 말입니다.이런 말들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보다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취직의 꿈을 이룬 뒤에도 학업을 중단하지 않고 석사 및 박사를 취득함은 물론, 그 학업성취기간에도 알찬 노력을 통해 쌓아온 노하우를 접미 보다나은 인재양성을 일 꾸어 나아갈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공사에 대한 좋은 이미지 및 발전방안많은 지하철 공사가 현 시점에서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수도인지라 시민에게 다가가는 정신이 보다 뛰어나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예로 만남의 장소 조성, 시민의 편이시설 증대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지하철의 암울한 느낌을 벗어버리고 보다 환한 느낌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에, 비록 지하라는 어두운 공간을 달리고는 있지만, 보다나은 생활을 영유하는 하나의 필수적인 수단의 공사라 생각합니다.이런 이미지를 발판삼아 시민의 발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함의 패턴으로 공부를 하다. 말 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느끼고, 체계적으로 영어 회화를 늘리기 위해 학원을 선택하였다.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은 반면 계속적인 노력으로 인한 수업의 성취도 향상은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 넣은 것은 물론, 사제관계 및 교우관계 개선에도 많은 시간을 할당해 주기도 하였다. 이런 한 달여간의 수업을 마친 후, 역시나 생각한 것이 실전 연습이었던 것이었다. 혼자만의 여행 말이다. 이런 차디찬 결심으로 나온 세상은 처음의 학원에서의 교육성과를 믿고 나온 나에게는 너무나 현실적이고 나의 영어 실력에 한 번 더 좌절감을 안기는 경험이기도 하였으나, 사람만이 지닌 계발성에 힘입어 처음에 힘들었던 장벽이 여러 번의 도전을 겪으며, 장벽의 무너짐을 느끼고 그런 결과, 외국인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교성을 키워줄 뿐 더러 사회의 적응력 역시 발전시킬 수 있었기에, 혼자만의 성취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비록 이런 나의 해외경험이 짧다고는 하나, 누가 물어 본다면 난 아무 망설임 없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왔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음은 물론, 다음에 더 큰 세상을 나아가기 위한 포부심을 배웠다고 크게 표 할 것이다.5. 기타 특기 사항제 취미로는 컴퓨터 게임으로 게임 명으로는 스타크래프트와 에어에이지먼트, 카트라이더 이며, 잡기에 능하기에 게임에서 왠만한 등급은 다 가지고 있다 생각합니다. 이 외에도 매일 아침 집에서 도보로 20여분 떨어진 야산에 오르며, 아침 운동을 하는데 콕 찝어서 말하라면 등산이라 하겠지만, 그냥 적는다면 조깅 정도로 하겠습니다. 특별한 특기 사항이라 할 것 까지는 없지만, 남다르다고 생각하는 사항으로는 어느 자리에서건 남들을 웃기는 유머 감각이 풍부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많은 자리에서 분위기 메이커 또는 오락부장 등을 맡아왔으며, 항상 조용한 분위기에는 제가 발 빠르게 호출되어 분위기를 한 층 업그레이드 시키는 역할을 하여 왔습니다.대내외적인 수상경력으로는 대학 생활에서 BK21이라는 정부 주관 장학고 생각합니다. 선박 한 척이 그 선박을 건조한 기업을, 그리고 그 기업이 존재하는 나라를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선박의 설계, 건조, 성능 등 선박의 모든 메카니즘이 유기적으로 조화될 때 그 위상이 더욱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젊은 패기를 가슴 가득 담고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성실과 근면,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분야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으로 어떤 일에나 앞서가는 감각을 가진 사람으로서, 회사에는 보탬이 되고 부서에는 거름이 되는 건강한 일꾼이 되겠습니다.효성1.자신의 성장과정과 학창시절을 소개하여 주십시요.아버지는 자기관리에 유난히 철저했으며 무엇보다 성취욕이 뛰어난 분이셨고, 가족을 위해 불철주야 뛰는 아버지의 모습을 항상 존경했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헤쳐나가기 힘든 난관에 직면하더라도 강인한 의지력과 정신력만 갖고 있다면 전화위복의 기회는 반드시 온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인생은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개척해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열정적으로 삶을 살았습니다.또한, 대학시절은 자신을 계발하는 장으로 생각하고 항상 꾸준한 노력을 한 덕분으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전공 공부 외에도 자기계발을 위해 자격증 공부를 꾸준히 해왔습니다. 자격증을 소지하였다는 사실만으로 능력을 갖추었다고 볼 수 없겠지만,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하고, 성취하였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고,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음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과외 활동으로는 봉사 동아리를 했습니다. 매달 재활원을 찾아가며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무엇보다 BK21을 통해 다녀오게된 호주 경험이 가장 큰 재산이라고 자부합니다. 외국에 대한 느낌과 영어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자신의 성격및 남다른 지식이나 재능에 대하여 소개하여 주십시요.사람들은 제 첫인상만 보고 욕심이 없어 보인다고 합니다. 아마도 잘 웃는 모습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겉보기와 달리 공부면 공부, 일이면 일, 욕심이 아주 많고3 수능이 끝난 뒤 부터는 방학 때 라면 항상 아르바이트(막노동, 공장, 정육점, PC방) 를 하였고 모든 고용주로 부터 격려와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두산성취를 느낀 경험학교 동아리 활동 중, 음악 듣기를 하기 위한 컴퓨터 조립을 한 일이 있는데, 다른 부품들은 쉽게 조립이 가능하였으나, 음악을 듣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인 사운드카드가 컴퓨터 상으로 인식을 못 하고 있어 혼자 속 앓이를 하며 골몰히 생각한 일이 있었는데, 이런 일이 가격으로 환산해도 하찮은 가격 이였고 시간낭비라는 주위의 많은 핀잔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상표명과 모델명 등을 알아내어 시스템 파일을 찾아 설치하여 직접 조립한 컴퓨터로 음악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그 당시 이런 일이 타인에게는 하찮게 여겨질지 몰라도 그 때 당시의 제 자신의 기분은 온 몸에 전율이 느껴지는 성취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창의적인 아이디어아르바이트 중 막노동(공사명 : 온천다리 공사)에서 일어난 일로서, 더운 여름 날인 어느 하루는 막노동 일꾼 아저씨들께서 땀을 흘리며, 시멘트 포대를 옮기는 것을 보고, 마찰저항의 원리를 이용, 다니는 길을 약간 변형 시켜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닌 콘베어 벨트와 비슷한 모습을 가춘 운반기기 (기기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그렇지만, 명칭은 이렇게 쓰겠습니다) 를 직접 설계 아저씨들의 도움으로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 외에 하나를 더 적자면, 학교 수업(과목명 : 공조설비) 중 발표 시간에서 주어진 도명 상의 설계를 많은 공간상의 활용으로 교수님으로 부터 많은 칭찬을 받게 되었습니다.별명과 이유비록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덤 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저의 이름과 같은 한 살 차이 동생이 한명 있는데, 그 친구가 더머라고 불리며, 덤 & 더머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이유라고 생각되는 것은 항상 둘이서 어느 모임이든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노력을 하기에 이러한 별명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생각의 차이로 다른 사람과 다툰 일군 복무 시, 무작정 절 싫어하며 해(공사명 : 온천다리 공사) 현장에서 일어난 일로서, 더운 여름 날인 어느 하루는 막노동 일꾼 아저씨들께서 땀을 흘리며, 시멘트 포대를 옮기는 것을 보고, 마찰저항의 원리를 이용, 다니는 길을 약간 변형 시켜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닌 콘 베어 벨트와 비슷한 모습을 갖춘 운반기기 (기기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그렇지만, 명칭은 이렇게 쓰겠습니다) 를 직접 설계 아저씨들의 도움으로 만들어 사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비록 이 역시 사소한 것이었으나, 내가 먼저 발견하고 시행하였기에 나름대로의 자부심과 주위로부터의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지원하신 회사, 직무, 근무지와 관련하여 특별히 희망하는점이나면접자에게 꼭 알리고 싶은 사항을 기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이름은 앞서 보신바와 같이 석자로 구성된 이동규 입니다. 한문의 의미로는 떠오르는 태양으로서, 희망찬 건실한 청년으로 보셔도 무방하다 생각 합니다. 또한 혈액형은 A형으로 남들은 A형이 소심하다 생각하나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보다 신중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남들보다 한번 더 생각하는 재고의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다 명백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서 제가 강조 드리고 싶은 것은 이런 재고의 정신이 처리속도의 지연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에 맞는 확실한 결정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또한, 항상 웃음을 잊지 않기에 주위의 평판이 좋을 뿐더러 타인을 배려하는 정신 역시 남들보다 띄어나다는 것을 강조 드리고 싶고 한 번 시작한 일에는 끝을 봐야하는 성격으로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는 멋진 모습을 가진 청년이라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제가 입사한다면, 절대 후회라는 단어를 생각지 안으실껍니다.위에 기술한 내용외에 추가하실 내용이 있으시면 기술하여 주세요비록 미비된 사회생활이라고 하나 일찌감치 사회 노하우를 터득 하려는 노력과 독립심을 키우기 위해 매 학기 방학 때 마다 아르바이트(정육점, 막노동, PC방, 공장 등)를 하였습니다. 모든 일을 할 때는 항상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일을 처리하였기에 모든 아르바이트 근무지다.
< 실학사상의 특징>'실사구시'의 학문실학파의 실학 사상은 주자학의 실제를 벗어난 청담공론에 반대하고 학문을 사회적 생산과 생활에 응용할 것을 주장하였고, '경세치용'과 '이용후생'을 목적으로 형성되었으며, 실학 사상가들은 모두 주자학의 '공소·공론'을 반대하고 생산과 생활에 실용적인 학문 연구를 강조하였다.민본적 민주사상실학파의 민본적 민주 사상은 유교의 중민 사상이라는 테두리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그러나 그들이 제기한 평등 사상은 객관적으로 상공업 자본가의 이익을 미약하게나마 반영했다는점에서 진보적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민족적 자주 정신실학파는 사대주의에 반대하고 자주 정신을 강조 하였는데, 이는 조선이 진보적인 학자들이발전한 서양 과학 문화를 받아들인 결과이고, 사대주의가 조선 봉건 사회에, 초래한 심각한 위기에 대한 반성이며, 부강한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였다.‘탁고 개제'의 개혁 정신사회 개혁 사상의 특징은 옛날 사람의 도를 빌려 현실을 개혁하려는 탁고개제의 방법에 있다.경제 개혁의 측면에서 보면 실학파는 전제 개혁을 매우 중시하여 그것을 부국강병의 중심 고리로 보았고, 정치 개혁의 측면에서 보면, 실학파는 주로 고대 사회의 왕도·인정에 대한 미화와 패도·폭정에 대한 반대를 통하여 정치 개혁의 목적을 실현하고자 하였다.일제가 한국침략과 식민지배의 학문적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조작해낸 역사관.식민사관에 기초를 둔 한국사 연구는 19세기 말 도쿄제국대학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신공왕후의 신라정복설과 임나일본부설한국역사를 만주에 종속된 것으로 보는 만선사이론, 당시의 한국 경제를 일본 고대의 촌락경제수준으로 보는 이론 등을 내세웠는데, 이러한 논리는 20세기 초 조선침략이 본격화되자 일선동조론, 정체성론, 타율성론으로 대표되는 식민사관의 토대가 되었다.은 본래 한국과 일본은 같은 민족으로 한국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일본의 보호와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한민족의 독자성을 부정하고 일본과의 합병이나 식민지 지배를 비아의 투쟁’이라는 투쟁사관을 내세우고 민중의 직접 혁명을 통해 독립이 가능하다고 하였다.박은식 ·신채호를 통해 정립된 민족사학은 정인보 ·안재홍 ·문일평 등에 의해 계승되었다. 이들은 주로실학자들의 저술을 정리하여 간행했으며 식민사관에 맞서는 사론을 확립하였다. 정인보는 조선사연구에서 민족정신을 찾는 ‘얼사관’을 정립하여 민족주의를 정립 유지하려 했다. 안재홍은 조선상고사감에서 단군조선과 삼국시대까지를 고조선의 발전과정으로 보고 식민사학에서 강조했던 한반도의 고대 북방문화와 남방문화의 이질성을 부정했다. 문일평은 역사발전의 원동력으로 민중의 역할을 강조하고 고대사회의 민족문화권이 북으로는 만주까지 남으로는 일본까지 확대하였다. 민족사학은 한민족의 독립을 지향하는 학문이었으므로 일제의 탄압 때문에 지속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게다가 8 ·15광복 이후 민족이 분단됨으로써 더 이상 계승되지 못하였으나 현대에 들어 근대적 ·주체적 역사관 정립에 크게 기여했다.일제시기 식민주의사학에 대항하여 발전해 온 민족주의사학과 마르크스주의 사학 그리고 문헌고증사학은 해방 이후 대학간단에서 발전하였다.그 단서는 해방 직후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던 ‘신민족주의사학’에 의해서 주어지고 있다.신민족주의 사학은 계급과 민족의 문제를 역사 속으로 끌어 들인 점에서 새로운 역사이해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계급, 계급투쟁은 구체적 역사 속에서 실종되어 버렸고 계급사외의 계급대립과 투쟁, 다른 사회 혹은 민족과의 관계 등이 역사발전과정 전체로서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신민족주의 사학은 신민족주의에 서서 역사적 사실을 수집하고 재평가하여 우리 역사를 체계화하려는 데서 이전의 전통적 역사학과는 다른 새로운 역사학의 방향을 보여 주고 있다.하지만 불행하게도 이후 민족주의사학 주류에 이어지지 못했다.4.19혁면과 반미투쟁으로 민족주의론이 부활되었다.민족주의 사학의 재건이 재창되고, 식민주의사학과 문헌고증사학에 대한 비판이 본격적화 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곧 반도적 성격론, 사대주의론, 타율성못 하고 일본 안에서 우리의 역사를 조작하여 자기들을 정당화하는데 사용하고 또 그러한 것들을 우리학생들이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가서 배운다는 것을 억울하기 그지없다. 과연 있는 역사를 그대로 배울 것인지 의심스럽다 물론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 현혹되지는 않겠지만 우리로서는 증거나 근거가 없이 일본에서의 잘못 된 것이라도 근거가 나오면 과연 제대로 알 수 있겠는가.지금의 미국이나 이스라엘이나 지금까지 여러 나라들이 전쟁이나 침략을 통해 나라라는 것을 형성하였다 .그럼 그보다도 훨씬 전인 고대에는 어떻게 나라가 형성되었는가.우선 씨족들끼리 무리가 형성되어 씨족의 부족장이 여러 가지 이유로 하여 씨족끼리의 연대를 형성하고 그 연맹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이가 그 연맹을 하나의 나라로 만든다. 거의 모든 나라들이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세계 모든 나라에서 그런 국가와 문명이 있고 당연히 우리민족도 있다. 우리 선조들은 오랜 옛날부터 단군을 우리나라 최초의 고대국가인 고조선의 건국시조로서의 역사적 존재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역대의 통치자들은 자기를 단군의 계승자로 자처하였고 백성들은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간주하고 있었다.《제왕운기》에 시라, 고례, 동북부여, 남북옥저, 예맥 등이 모두 단군의 후예라고 Tm여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또한 신라의 유명한 화가 솔거가 단군의 초상을 1000매나 그린 것이라든가 고려시기에 삼남지방의 집집마다 단군의 초상을 모시고 있다고 한 것을 보면 후기 신라와 고려 시기에도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간주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역사학적으로 고조선의 존재를 추적해볼 수 있는 시기는 기원전 10세기경이 한계. 기원전 8·7세기경에는 이미 비파형 청동검을 비롯한 청동기문화를 누리고. 청동검은 흔히 거친 무늬청동거울과 함께 출토. 칼과 거울은 무당이나 사제의 상징적인 소지품들로 보이는 만큼 이 두 가지가 같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고조선 전반기의 청동문화단계에 지도자 내지 지배자들이 종교적 사제를 겸했음을 보여주고(확보하고 낙랑군과 대방군을 정복, 한반도에서한사군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 고조선의 옛 땅을 회복하였다.소수림왕 때 불교 공인과 태학 설립(372), 율령 반포(373) 등으로 국가체제 정비와 정치적 안정기반이 구축되었다. 이와 같은 단계에서 즉위한 광개토대왕은 정복 군주로서 백제의 한성)을 침공하여 임진강과 한강선까지 진출하였고, 신라 을 원조하여 왜구를 격퇴하였다. 북으로는 후연을 쳐서 요동을 차지하고 숙신을 복속시켜 만주와 한반도에서 우월한 위치를 확보하였다.장수왕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이어받아 제도의 정비와 대외정책의 확대 등으로 최대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는 중국의 남 ·북조와 통교하였고, 유연등 새외민족과도 통교하면서 외교관계를 확대하여 중국을 견제하였다. 427년 남하정책의 일환으로 수도를 고조선의 문화 유산지인 평양으로 천도하여 집권적 정치기구를 정비하고 국력을 신장시켰다.남하정책에 위협을 느낀 신라와 백제는 나제동맹을 체결하였다장수왕의 뒤를 이은 문자명왕은 494년 부여를 복속시켜 고구려는 만주와 한반도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고 중국과 자웅을 겨루었다. 광개토대왕비와 중원고구려가 당시의 광대한 판도를 밝혀주고 있다.70여 년에 걸친 수 ·당나라를 비롯한 거란 ·신라와의 투쟁으로 인한 인적 ·물적 손실은 많은 국력을 소모시켰다. 그리고 연개소문의 독재는 민심을 혼란시켰고, 666년 연개소문이 병사한 후 세 아들의 불화로 지도층이 분열되었으며, 연개소문의 아우 연정토는 12성을 가지고 신라에 투항하였고, 남생은 당나라에 투항하는 등 내분이 심화되었다.이러한 기회를 이용한 나 ·당 연합군은 668년 김인문이 이끈 27만의 신라군과 이적 ·설인귀가 이끈 당나라 군사 50만으로 평양성을 공격 ·함락시켰다.고구려는 그 당시 국가의 재정을 충당하는 체제가 구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정복을 통해 정복한 국가의 지배계층을 자신들의 지배계층 속에 포함시켜 재정을 충당하였다.광개토대왕은 천자만이 할 수 있는 황제라 칭하였고 영락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 중일어나, 고구려 ·백제와 더불어 한반도의 판도를 가르고 7세기에 최초로 한반도를 통일한 왕조(BC 57∼AD 935).시조 혁거세로부터 경순왕까지 56대, 992년간 존속하였다.신라는 다음과 같이 3기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① 상대(시조∼28대 진덕여왕, BC 57∼AD 654)는 원시부족국가 ·씨족국가를 거쳐고대국가로 발전하여 골품제도가 확립된 시기이다.② 중대(29대 무열왕∼36대 혜공왕, 654∼780)는 삼국을 통일하고 전제왕권이 확립되어 문화의 황금기를 이룬 시기이다.③ 하대(37대 선덕왕∼56대 경순왕, 780∼935)는 골품제도의 붕괴, 족당의 형성 및 왕권의 쇠퇴로 호족 ·해상세력이 등장하고 멸망에 이르는 시기이다. 이 밖에 29대 무열왕 이전을 삼국시대, 그 이후를 통일신라시대로 크게 구분한다.성골신분의 남자가 없어 부득이하게 왕위에 올랐다. 이것으로 보아 신분에 대한 차별이 아주 심하다고 볼 수 있다. 진평왕의 경우 왕권이 강하여 딸인 선덕여왕을 즉위 시킬 수 있었다.삼국은 당나라와 관계를 유지하여 삼국대립을 자기 쪽에 유리하도록 노력하였다쿠데타를 일으킨 연개소문이 신라에 강경한태도이고 백제도 같이 협력하였다 신라로서는 당나라밖에 없었다. 당나라도 고구려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신라와 협력했다.한국인들은 대부분 통일을 위해외국세력을 끌어들이고 평양이북의 땅을 내준 신라에 의한 통일을 반기지 않는다. 차라리 고구려에 의한 통일이 되었으면 저 넓은 요동이 지금 우리의 땅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구려의 강력한 군사력이 있지만 약한 왕권, 백제의 많은 인구와 높은 수준의 문화, 왜의 관계, 해상능력 보다 신라의 뛰어난 인물인 김춘추와 김유신의 외교능력의 승리라 말할 수 있다.서기전후 무렵부터 562년까지 한반도의 남단인 지금의 경상남북도 서부지역에 존재하였던 국가들의 총칭, 또는 좁은 의미에서 보아 김해의 가야국이나 고령의 대가야국.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이르러 경상남도 해안지대에 철기문화가 보급되면서, 이 지역에서는 사회통합이) 북한
0. 명찰과목 : 건축환경공학 담당교수 : 학번 : 이름 :;건물정면도 후면도 (남향▶)위의 사진은 저희 집의 정면도와 후면도를 나타낸 것으로써, 건물의 방향은 후면이 정남쪽을 정면이 정북쪽을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에 여름에는통풍히 원활히 이루어지는 반면, 겨울에는 보온의 우수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건물 크기는 4층의 높이를 가지며, 32평의 넓이를 지니고 있습니다.각각의 층 수 중 저희 집은 4층으로써 최상층에 위치하고 있습니다.1. 건물형태주위환경 현관문저희 집의 층 수가 4층인 관계로 여름철에 불필요한 일사를 많이 받게 되어, 찜통 같은 더위를 느끼게 되는 반면, 겨울철에는 옥상과의 외부열전달로 인해 한기를 다른 층 수에 비해 더욱 빨리 느끼게 됩니다. 또한 위의 주위환경 사진에서 보듯 주위에 공장과 도로가 인접하고 있기에공해에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부수적으로 현관문의 기밀 부족성으로 인한 외부와의 열전달이 크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개선사항으로는 옥상으로의 열전달차단과 공해에 대한 환기 방법이 우선적으로 고려 되어야 된다고 생각됩니다..2. 문제점 인식3.개선방안옥상 남향 옥상 북향 설계(와이어) 설계(3D) (오른쪽 - 일사면) 실내 배관형태옥상과의 열전달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고안한 것이 옥상의 구조변경을 통한 방법입니다.. 즉, 위의 사진 중 설계(3D)를 보시는 것과 같이 옥상의 양 벽면(일사의 영향을 받는 방향)에 약간의 공간을 두고 벽을 설치합니다. 하면 그림과 같이 두개의 공간이 생기게 되는데, 이 두 공간에는 물을채워넣게 됩니다. 또한 중간영역에는 일사를 피하는 목적 이외에도 공해를 줄이는 방법으로 조그마한 크기의 화원을 꾸미게 되며, 이런 공간 사이의 물은 일사에 의해 데워지게 되는데, 한쪽 면이 데워지는 반면, 다른 쪽 면은 데워지지 않은 상태로 됩니다. 이에 두 빈 공간을 연결하는 파이프를 연결 필요에 따라 밸브를 열게 하여 열교환을 일으키게 합니다. 이 때, 겨울철인 경우, 데워진 물을 배관로를 통해 흘려주면, 배관로로 흘러들어간 온수는 벽면을 타고 내려가며, 외부와의 열전달을 이루며, 실내로의 한기의 침입을 막아주게 됩니다. 반면, 여름철일 경우는 두 공간의 열 수수를 통해, 차가워진 물을 흘려 보내므로써, 실내의 열부하를 줄일 수 있게 됩니다. 이외에도 여름철일 경우에는 따로 배출호스를 두어 한 번씩 옥상에 물을 뿌려 주므로써, 증발잠열을 통한 온도변화또한 겪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위의 사항을 더욱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덧붙여지는 요소로서, 위의 그림 중 배관형태를 보시면 주로 배관로가 직선으로 되어 있는데, 이를 U자형 관을 이용 건물의 벽면을 감아 내려오면, 더욱 더 큰 열효율을 나타낼 것입니다. 이 때에 건물의 외관을 고려한다면, 배관로를 따라 담쟁이 넝쿨을 심으므로 보완가능하겠습니다. 이 역시 일사의 영향을 줄여 줄 뿐 아니라, 공해의 영향 또한 상당히 줄여 줄 것이라 생각 듭니다. 이외에도 실내에 화분 등을 두어 실내공기의 정화기능을 담당하게 하며, 현관문과 같은 기밀 부족성은 방풍지 등을 이용 차폐시킴으로써, 단열 성을 더욱 높여 줄 거이라 생각이 듭니다.
기계공학의 시작은 인류가 쓸모있는 도구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때로 거슬러 올라가 과학기술의 역사와 함께 이야기 될 수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의미의 기계공학은 증기기관이 나타나는 시기에 즈음해서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8세기부터 군사공학(Military Engineering)과 대비되는 뜻으로 민간공학(Civil Engineering) 이라는 명칭으로 시작된 공학은 기초과학 수학 분야에서의 발전과 함께 세분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1800년경 에 기계공학이라는 분야가 등장하였다. 공학은 19세기말에 토목공학, 기계공학, 전기공학, 화학공학 등이 구체적 으로 세분화되었으며, 이 때에 이르러서야 오늘날의 기계공학을 의미하는 형태가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기계와 기계공학, 또 기계공학의 근본이 되는 응용과학의 발자취를 살펴보는데 있어서 사용되는 동력을 기준으로 시기를 구분 하고자 한다. 따라서 원시동력시대(기원전60만년 기원전 600년), 자연동력시대(기원전620년 1690년), 증기동력시대(1690년 1790년), 전기동력시대(1790년 1890년), 근대 및 현대(1890년 현재)의 5개 시대로 구분하여 기계공학의 역사를 되짚어 보기로 한다.원시동력시대(기원전 60만년대 기원전 600년대)존재하는 동력은 사람의 힘이 유일했던 이 시기에는 기계의 정의에 가까운 물건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여러 가지 도구와 기구를 고안해서 사용하였으며, 금속의 기계적 성질을 어느 정도 파악하여 가공할 수 있었다. 석기시대에 들어와서 사용된 것으로 생각되는 지렛대와 같은 기본적인 역학적 기구 (그 당시에는 경험적으로 알았 을 테지만)외에도, 청동기 시대에는 단조(鍛造)와 주조(鑄造)에 관한 기술을 어느 정도 사용하고 있었다. 이때 이미 청동을 높은 온도 속에 일정시간 동아 놓아두어 성질을 변화시키는 어닐링(annealing)의 기술이 존재했다.자연동력시대 (기원전620년대 1690년대)인류는 르네상스 시대가 다 지나도록 사람과 가축의 힘 이외에는 주로 수력과 풍갑전차의 선구가 되는 전차의 발명, 대포, 화염방사기 등 놀라운 천재적 능력을 발휘하였다.수력 풍력의 자연동력이 노예의 노동력을 대신하여 등장(1556) - 200년간 광부들의 바이블로 여겨졌던 저서.중세의 수차 (위에서 떨어지는 물의 힘으로 해머나 풀무를 작동시킨다)중세의 수차 (수차 아래로 흐르는 물의 힘으로 왼쪽의 큰 맷돌을 돌린다)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무엇보다도 이 시기의 가장 주목할만한 기계공학적, 동시에 기술사적 사건은 수차와 풍차의 출현이다. 수차와 기원전 수세기 전에 중국, 인도에서 출현했다. 536년에 로마에서 수차의 회전이 톱니바퀴에 의해 맷돌로 전달되는 물에 뜬 수차가 발명되었다. 그러나 6 10세기에 서유럽에 출현했던 최초의 수차는 극히 수가 적었다. 수차가 널리 이용된 것은 기술이 전반적으로 발달하고 봉건사회의 생산력이 일정한 발전수준에 도달한 때였다. 14세기 중엽부터 수차는 금속가공공장에 보급되기 시작하여, 1351년 독일에서 철선을 제조하기 위해 최초의 수력을 이용 한 인발기가 발명되었다. 이것은 철선, 철침 제조공장에 수력을 이용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수차를 철사제조에 도입함 으로써 기술이 근본적으로 변화되고 인간은 중노동에서 해방되었으며 또한 생산효율이 급격히 상승하게 되었다. 수차는 기술의 발전에 강력한 혁명적 영향을 미쳤으며, 그 응용 또한 다양했다. 수차는 제분업뿐만 아니라 11세기말부터 양수장치 와 시추장치의 동력으로도 사용되고, 직물공장에서 모직물 압축용 및 벨트압축용 동력으로도 사용되었으며, 제지공장, 화학공장에서의 원료의 분쇄에도 수차동력이 사용되는 등 많은 산업에서 강력한 동력원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드롭해머와분쇄장치, 드릴링 머신, 볼링기계 등 가공기계에도 사용되었다.풍차는 10세기말부터 11세기 초두에 프랑스, 영국 그리고 네덜란드에 출현하였다. 네덜란드의 풍차가 이 나라의 풍물의 하나가 된 것은 이때부터이다. 예로부터 수해를 막아내고 얼마 되지 않는 토지를 간척하기 위해 물을 길어 올려야 했던 네덜란드에 풍차가엄청난 산업에의 파급효과는 1780년대에 이르러 산업혁명을 주도하게 된다.헤론의 기력구에서 와트의 증기기관까지뉴커멘의 양수기 증기엔진뉴커멘의 증기기관이 사용되는 현장증기가 기계적 일을 한다는 것은 증기기관이 발명되기 2000여년전인 알렉산드리아의 헤론의 터빈(기력구)으로부터 인식되었다. 증기력을 동력기관으로 처음 이용한 것은 1695년 양수장치에 이용한 프랑스의 드니 파팽(Denis Papin, 1647 1712)의 피스톤 증기기관이다. 이듬해인 1696년에 영국의 공병 대위인 토마스 세이버리(Thomas Savery, 1650 1720) 는 처음으로 사용할 수 있는 증기양수장치를 발명하였다. 세이버리의 증기기관보다 실용가치가 크게 인정된 증기기관은 1705년 영국 뉴커멘(Thomas Newcomen, 1663 1724)에 의해 만들어진 대기압 증기기관이다. 1712년에 최초의 뉴커멘 증기기관은 광산 배수용으로 사용되었으며, 이때 출력은 8마력으로 80mm 깊이의 물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1720년대 뉴커멘의 양수용 증기기관은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사용되었다.와트의 양수기 증기엔진그러나 본격적인 산업혁명의 도화선이 된 것은 방적기(紡績機)에 영국의 제임스 와트(James Watt, 1736 1819)가 증기기관을 결부시켜 이용한 때(1766)부터라 할 수 있다.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 관련업무에 종사하게 된 것은 1763년 글래스고우대학에 있던 뉴커멘의 증기기관 모형이 고장 수리를 맡고부터이다. 이를 시작으로 와트의 새로운 형태의 증기기관 모형이 1765년에 만들어졌고 그것이 완전히 작동하게 된 것은 1769년의 일이다. 증기기관의 발전은 꾸준히 이어져 19세기에 농업에 쓰이는 증기쟁기까지 출현하게 되었다.증기쟁기(1850년대)수송기관으로서의 증기기관큐노의 증기차(1763)수송기관에 증기를 이용하려고 하는 생각은 이미 17세기부터 있었다. 최초로 시도되었던 것은 증기기관을 보통의 차나 짐마차에 붙이는 것이었다. 그러다 1763년 프랑스의 기사 큐뇨는 포탄운반가지 기계에 대한 간략한 기술'이 연재되었다.고전역학을 완성한 사람은 그 유명한 뉴튼이다. 뉴튼은 역학의 기본적인 개념인 질량(mass), 운동량(momentum), 힘(force), 공간 및 시간의 문제를 분석했다. 그는 3개의 기본적인 운동법칙인 관성의 법칙(제1법칙), 운동의 법칙(제2법칙, 힘과 가속도의 비례관계),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제3법칙)을 정형화하였다.재료역학의 창시는 『신과학대화(1638)』속에서 갈릴레이가 서술한 명제가 발전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갈릴레이는 강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는데, 그는 물체의 극한 상태, 즉 파괴되는 순간의 물체의 강도를 연구했다. 강도 문제에 대해서 17 18세기의 많은 연구자가 이러한 연구방법을 취했다.18세기초 유체역학 분야에서 중요한 성과가 나타났다. 17세기말과 18세기초에 유체역학을 진보시키는 데 가장 큰 자극이 되었던 것은 수차를 움직이기 위해 급류, 하천, 운하를 이용한다고 하는 과제였다. 18세기 중반 무렵에는 이 과제로부터 그것에 관한 이론적 연구가 이루어졌다. 유체역학의 발달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를 거둔 사람은 다니엘 베리누이(Daniel Bernoulli, 1700 1782)이다. 그는 운하와 파이프 수력원동기 속의 액체 흐름을 연구하는 데 이용할 유체역학의 주요 정리(正理)를 끌어냈다. 그는 작업, 작업률, 원동력, 효율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또한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근거하여 오늘날 '베르누이의 정리'로 알려진 정리를 끌어냈다. 오일러(Leonhardt Euler, 1707 1783)도 18세기 중반에 유체역학에 관한 논문집을 저술한다. 그는 압력개념을 도입하고 유체역학의 일반방정식과 연속방정식을 구하였다. 오일러는 일정량의 액체를 일정 높이에서 낙하시킬 때의 수력터빈의 효율을 계산하는 문제를 해결했다. 오일러의 세 개의 논문 액체의 평형상태에 관한 일반 원리』, 『액체의 운동에 관한 일반원리』, 내부액체의 운동론에 관한 연구』는 베를린 아카데미의 보고서에 실렸는데(1755 1757) 이0년 스위스의 오일러가 발표한 『물의 반동에 의하여 운전되는 기계의 이론』을 바탕으로, 1825년 프랑스의 뷔르당 (C. Burdan, 1790 1873)이 반동형 수력터빈을 제작하였다. 이것은 몇 개의 도수판을 만들어 그것을 통과한 물이 기기에 부착된 날개에 부딪혀 기기가 회전하는 새로운 수차이다. 뷔르당은 이 수차에 '터빈'이라는 명칭을 처음 붙였다. 종래의 수차에 일대혁신을 가져온 반동형 수력터빈은 뷔르당의 제자인 플네이턴이 1832년 제작하였다.수력대신에 증기력을 사용하여 회전동력기를 만든 사람은 영국의 파슨즈(C.A.Parsons, 1854 1931)이다.1884년 그는 반동증기터빈의 특허를 받아 7.5kW의 터빈 발전기를 만들어 전람회에 출품했다. 그 이후에도 스웨덴의 드 라발(C.P.G. De Laval, 1845-1913)의 충동형 터빈, 1896년 미국의 커티스(C. G. Curtis, 1860 ?), 동년 프랑스의 라토(A. C. E. Rateau, 1863 1930)의 충동형 터빈 등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증기터빈이 개량되어졌다. 실제로 1906년에는 영국의 전투함에 모두 증기터빈을 사용하였다. 증기터빈은 증기기관보다 증기의 소비량이 적고 소형으로 출력이 크기 때문에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증기기관을 대신하여 공장, 발전소, 선박 등의 원동기로 널리 사용되었다.공작기계의 근대화모즐리의 1/1000인치까치 정확히 이송이 가능한 선반(1800년대)18세기말부터 19세기초는 다양한 금속가공기계의 개량이 이루어진 전환기였다. 금속이 기계의 기본적인 구조재료로서 보급되자, 금속가공을 위한 공작기계가 근본적으로 근대화되었다. 이에 수반된 공구이송대의 개발은 마르크스가 공구이송대를 18세기말의 생산혁명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발명의 하나라고 간주할 정도였다. 금속을 절삭하는 공정을 기계화하는 문제는 18세기말에 이르러 해결되었다. 18세기 말 헨리 모즐리(Henry Maudslay)는 이전까지 선반을 개량해서 일반용 선반을 발명했다. 그는 기계제작의 아버지
1. 열교환기란?서로 온도가 다르고, 고체 벽으로 분리된 두 유체들 사이에 열 교환을 수행하는 장치를 열교환기라 하며, 난방, 공기조화, 동력발생, 폐열회수 등에 널리 이용된다.2. 열교환기의 종류ⅰ. 기하학적 형태에 따른 분류1) 원통다관식 (Shell&Tube) 열교환기가장널리 사용되고 있는 열교환기로 폭넓은 범위의 열전달량을 얻을 수 있으므로 적용범위가 매우 넓고, 신뢰성과 효율이 높다.{그림 a. 단일셀 통로와 단일관 통로를 가진 셀&튜브 열교환기(직교유동-대향유동 조작 양식)2) 이중관식(Double Pipe Type) 열교환기외관 속에 전열관을 동심원상태로 삽입하여 전열관내 및 외관동체의 환상부에 각각 유체를 흘려서 열교환시키는 구조이다. 구조는 비교적 간단하며 가격도 싸고 전열면적을 증가시키기 위해 직렬 또는 병렬로 같은 치수의 것을 쉽게 연결 시킬수가 있다. 그러나 전열면적이 증대됨에 따라 다관식에 비해 전열면적당의 소요용적이 커지며 가격도 비싸게 되므로 전열면적이 20{m^2이하의 것에 많이 사용된다. 이중관식열교환기에서는 내관 및 외관의 청소점검을 위해 그랜드 이음으로 전열관을 떼낼수 있는 구조로 하는수가 많다. 이같은 구조에서는 열팽창·진동 기타의 원인으로 이음부분에서 동측유체가 누설되는수가 있으므로 동측유체는 냉각수와 같은 위험성이 없는 유체 혹은 저압유체를 흘린다. U자형전열관과 관상동체 및 동체커버로 이루어지며 전열관은 온도에 의한 신축이 자유롭고 관내를 빼낼 수 있는 이중관헤어핀형 열교환기기 있다. 또 전열효과를 증가시키기위해 전열관 외면에 핀(fin)을 부착시킨것도 있다.{그림 b. 동심 열교환기. (a)평행유동, (b)대향유동.3) 평판형 (Plate Type)열교환기유로 및 강도를 고려하여 요철(凹凸)형으로 프레스성형된 전열판을 포개서 교대로 각기 유체가 흐르게 한 구조의 열교환기이다. 전열판은 분해할수 있으므로 청소가 완전히 되고 보존점검이 쉬울뿐만 아니라 전열판매수를 가감함으로써 용량을 조절할 수 있다. 전열면을 개방할 수 , 점검 및 보수가 곤란하므로 부식성과 오염이 적고 침전물이 생기지 않는 유체에 적당하다. 고정관판형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가) 동체의 오염이적고 유체에의한 동체 및 전열관의 온도차가 작을 때 또는 열팽창 차가 작을 때에는 최적의 구조이다.나) 종형의 관식반응기로서 용도가 넓다.3) U-자 관형 열교환기 (U-Tube Type)U자관형의 전열관을 사용한 형식의 것이며 전열관은 동체와는 관계없이 유체의 온도에 따른 신축이 자유로우며, 또 관속을 그대로 빼내서 청소 및 점검할 수 있는 구조로서 유동두형의 경우와 같다. 그러나 유동두형의 경우 직관이기 때문에 청소가 쉬우나 U자형의 경우는 관내의 청소가 곤란하다. U자관형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가) 열팽창에 대해 자유롭다.나) 관속을 빼낼수가 있으므로 관외면의 청소도 쉽게 할 수 있다.다) 고압유체에 적합하다. 고압유체를 관내에 흘리면 내압부분이 적어도 되므로 중량을 경감시킬수가 있다.라) 구조가 간단하여 관판이나 동체측플랜지가 적어도 되므로 제작이 비교적 간단하다.4) 케틀형 열교환기 (Kettle Type)동체의 상부측은 증발이 잘되도록 빈공간의 증기실이 있다. 액면의 높이는 최상부관보다 적어도 50mm높게 하는 것이 보통이다. 특징은 다음과 같다.가) 폐열보일로러서는 가장 구조가 간단하다.나) 따라서 손쉽게 값싼 증기를 얻는데 널리 사용된다.다) 관속은 유동두식, U자관식으로 할 수가 있으므로 오염되기 쉬운 유체, 압력이 높은 유체에도 적용할 수 있다.5. 열교환기의 설계1) 열 평형열교환기 내에서는 축일, 기계적인 에너지, 위치에너지, 운동에너지 등은 다른 항에 비하여 아주 적기 때문에 단지 열교환기를 통과하는 유체의 내부 에너지만 고려된다. 또 열교환기내 유체는 대기온도와 온도차가 존재 할때는 열수수가 일어 나지만 보통은 적당한 절색에 의해 감소시킬 수 있기 때문에 무시한다. 이러한 가정하에 유체의 비열이 일정하다면 다음과 같은 수식을 세울 수 있다.1Sensible 열교환기- Shell side 열부하QsFouling Factor)열교환기 설계할 때 오염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로 설계를 하면 최초 작업시에는 성능이 보장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Tube의 내부 및 외부에 이물질이 부착되어 전열저항이 증가되므로 Shell Side, Tube side의 열전달 계수는 점점 작아져 필요한 열부하를 만족시키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고 수시로 전업을 중단하고 열교환기만 Cleaning 할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1년에 한번정도 전 공정을 중단시키고 정하는 기간을 이용하여 이 기간에 열교환기도 Cleaning을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설계할 때 1년 연속 운전하였을때 이물질에 의해 형성된 전열저항이 있더라도 요구하는 열부하를 만족할 수 있도록 오염계수를 고려하여 설계하는데 이것이 바로 오염계수(Fouling Factor)이다. 열교환기의 설계에서 이 오염계수도 열전달 계수를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인자중의 하나가 된다. 최근 10여 년 동안 경막 열전달 계수의 측정법이 확립되어 Shell & Tube 열교환기의 열전달 계수는 거의 정확하게 실제치에 접근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열전달 계수를 아무리 정확하게 확정하여도 오염계수를 잘못 확정하면 열교환기의 설계는 오차가 커지게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오염계수가 차지하는 저항의 비중은 발전소, 산업용이 30% 정도, Process 열교환기의 경우는 40∼50% 정도로 아주 큰 편이다. 오염계수는 Process 및 Service 유체에 따라 적용하는 값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구매자가 사양서에 주어진 값으로 설계한다. 만약 주어지지 않았다면 TEMA 값을 적용한다. TEMA에서 측정하는 오염계수는 1년∼1년반 연속 운전이 가능하다고 사료될때 값이지만 운전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으므로 운전자는 설치 후에 1년간은 수시로 점검하여 Cleaning 시점을 잡아야한다.다음은 오염(Fouling)에 대한 일반적인 성질이므로 설계시 참고 할 사항이다1 오염은 250 (136 )이하에서는 일반적으로 심각하지 않다2 Fouling은 Hydrocarbon이 s 수, Erosion 등 여러 인자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열전달 관계를 증가시키기 위하여 Prandtl 수와 Reynolds 수를 증가시켜야 하나, Pr 수는 물성치의 양수이므로 변경불가하고 유속과 비례하는 Reynolds 수를 증가시켜 성능(Performance)을 개선할 수 있다. 그러나 유속을 증가시키는데는 3가지의 제한조건이 있다. 즉, 압력손실과 Erosion 그리고 Vibration으로 너무 유속을 빠르게 하면 Erosion을 초래하여 부식의 진행속도를 촉진시킬 뿐만 아니라 공정상 요구하는 허용압력 손실을 맞출 수가 없다. 그 외에도 Shell side 경우에는 진동이 문제가 될 때도 있다. 그와 반대로 유속이 너무 늦으면 오염이 심각하게 증가되기 때문에 업에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열교환기마다 그리고 재료와 유체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유체가 물이고 재료가 C.S(Carbon Steel)일 때 Shell side는 0.5∼1.5m/s 정도, Tube side 1.0∼2.5m/s 정도가 적합하다. 유체가 기체일 때는 Shell side는 2.0∼15m/s 정도, Tube side 5.0∼30m/s 정도가 적합하다. 대표적인 Shell & Tube 열교환기의 유속을 계산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ⅰ Tube side 유속유속을 증가시키는 방법으로는 다음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1 Tube Pass 수를 증가시킨다. 1 Pass에서 2 Pass로 하거나, 2 Pass에서 4 Pass로 하면 유속은 2배 증가한다.2 Tube 본수를 줄인다.3 유량을 증가시킨다.상기 방법중 설계자는 12항을 조절하여 유속을 증가시킬수 있다. 이때 유속이 너무 빠르면 Tube 내 Erosion이 생겨 부식을 가속화시키므로 Tube 재질에 따라 최대 제한속도 이하로 선정한다.A = ( /4) * (dⅰ) *(Nt / Np) (m ) ( 2.2 - 19 )V = W*(1/ ) / 3600*A (m/sec) ( 2.2 - 20 )여기서 W : Tube side 유체의 유량,계수 등 자연대류에 관계하는 인자를 가지는 그라소프수(Grashof number, Gr)가 영향이 크다. 또한 층류에 있어서는 D/L의 영향이 크다. (L:관의 길이) 프란들수(Pramdtl number, Pr)는 유체의 여러 성질을 포함하기 때문에 유체 종류의 영향을 나타내며 강제대류 및 자연대류에는 관계가 없다. 그런데 액체의 Pr 수는 동일물질에서도 온도에 따라 현저히 변하지만 기체의 Pr 수는 거의 일정하여 1에 가깝다.A. 강제대류의 경우(1) Tube 내 층류에 대한 열전달 계수(hi)Tube 전체를 통해서 생각한 평균 열전달 계수(hi)는 하기 식으로 표시되며hi = q / A ( t)av ( 2.2 - 40 )여기서 ( t)av는 입구에서 벽과 유체 사이의 온도차와 출구에서 벽의 온도와 유체평균(유체의 층류로 인해서 생긴 온도분포를 평균) 온도차에 관한 평균 값이다. 열수수 식에 의하여q = W Cp (t2-t1)이며 A= DL이기 때문에hi = W Cp (t2-t1) / D L ( t)av ( 2.2 - 41 )식 (2.2-41)이 양변에 D/k를 곱하면 좌변은 Nusselt 수가 되며 다음과 같다.Nu = hiD / k = 1/ WCp/kL (t2-tl)/( t)av = Gz t2-t1/ ( t)av ( 2.2 - 42 )여기서 Gz=WCp/kL은 그레쯔 상수(Graetz number)라 하며 유량과 Tube의 길이에 영향을 받는 무차원 수이다. 난류의 경우는 이 계수가 Tube의 길이에 관계가 없으며, 대수 평균온도가 사용되고 있으나 층류의 경우는 Tube의 길이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hi 1/L) 대수 평균온도는 의미가 없고 산술평균이 더 편리하다. 따라서( t)av = (tw-t1)+(tw-t2) / 2이며 이를 식(2.2-42)에 대입하면hi D / k = 2 Gz / * t2-t1 / (tw-t1)+(tw-t2) ( 2.2 - 43 )한편 원관에 대해 반경이 R이고 평균온도가 t2인 무한 긴 원통으로 생각하고 풀면 다음과 같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