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요한 계시록의 연구성경의 개요를 크게 구분하여 본다면 창조, 타락, 구속, 재림, 심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을 성경 말씀을 통하여 개요를 구분한다면 창세기, 로마서, 요한 계시록으로 살펴 볼 수 있다. 물론, 모든 성경은 중요하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창세기와 로마서는 잘 알고 있다. 창세기는 성경의 첫 번째 나오는 말씀으로 성경을 일독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읽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더러는 작심삼일로 인하여 포기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읽는 부분은 창세기이다. 첫 번째 나오는 성경말씀이기도 하지만, 다이나믹한 역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로마서는 많은 신학자들이 연구하고 바울의 기독론의 정수인 로마서를 해석하여 강해하고 있기에, 로마서의 내용은 널리 알려져 있다. 심지어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파워 로마서」란 책은 한국 기독교 신앙인의 필수 도서라고 할 만큼 많이 읽혀졌다. 그만큼, 로마서의 대한 관심은 고조된 것이다.하지만, 요한계시록은 앞서 말한 창세기와 로마서만큼의 이해를 갖지 못한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요한계시록이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잘못 해석하여 이단으로 빠지게 된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애초부터 이에 대한 접근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교회조차도 이에 대한 교육에 대해서 주저한다. 이를테면, 666 이라는 짐승의 숫자와 마지막 심판이라는 말들이 너무나도 강력하게 자극하기에 이 부분에 대해 교육하기를 주저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다루고 있는 말씀이기에 신앙의 완전한 이해와 성숙한 모습을 갖기 위해서는 요한계시록의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서 본인은 요한계시록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요한계시록이 쓰인 이유와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조명하도록 하겠다.Ⅱ. 요한계시록에 대한 이해(1) 요한계시록에 대한 오해사실 요한계시록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계시의 성격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세상 많은 사라들분이심을 간과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런 하나님의 성품을 생각한다면 요한계시록 역시 우리에게 소망의 말씀이요 기쁨의 말씀이 되어야 하겠다.둘째, 많은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이 미래에 대한 시간표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종말에 대한 오해를 가지게 한다. 지난 1999년 종말론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도피하게 되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은 현실을 충실히 하여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다. 즉, 이런 관점에서 요한계시록은 미래에 대한 시간표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책임으로 이해해야 한다.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도와주는 책이 요한계시록임을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셋째, 앞선 2가지의 오해로 많은 교회에서는 요한계시록의 교육을 주저하게 되었고, 금서(禁書)로서 사람들에게 여겨지게 되었다. 본인은 요한계시록을 잘못 읽으면 이단에 빠지기 쉬우니 읽지 말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분명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 말씀을 주신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들은 요한계시록에 대한 교육을 주저하는 교회들은 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성도들을 양육해야 할 필요가 있다.넷째, 성경 66권 중, 요한계시록은 나머지 64권과는 별개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65권의 말씀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말씀으로 생각하는데, 분명 이 요한 계시록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한 말씀임을 우리는 잊어선 안 된다.위와 같은 요한계시록에 대한 고정관념과 오해를 요한계시록의 이해를 통하여 바로 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연구함으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도록 하겠다.(2) 요한계시록 이해에 대한 접근 방식성경 66권에 기록된 말씀의 주제는 단연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즉, 우리가 죄를 지음으로 타락하여 하나님과 멀어졌고, 가까이 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 가운데 보내셔서 우리의 것을 드러낸다)라는 용어를 통해 요한 계시록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사도요한인데, 이를 증거하는 내용은 요한계시록 1장 1절과 4절에 나타나있다. 또한, 이레네우스, 테르툴리아누스, 오리게네스등과 같은 교부들의 지지가 그의 저작설을 뒷받침해준다. 요한계시록이 쓰여진 곳은 에게 해의 밧모 섬으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 때문에 밧모섬에 유형당해 있었는데, 어느 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요한에게 나타나신 예수께서는 본 바를 기록하여 교회들에게 보내라고 분부하였고, 요한은 이를 기록하였다. 그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이다.(2) 요한계시록의 시대적 배경A.D. 95~96년경, 도미티안 황제 말기에 기독교 박해가 로마 제국 전체로 확산되었고, 요한이 이때 유배되었다는 유세비우스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 해준다. 당시 기독교는 로마의 핍박에 많은 고통과 고난을 받았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요한은 고난 받는 교회를 위하여 이 요한계시록을 썼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아시아의 7교에 대한 서신이 포함된 것이다. 사실 기독교의 역사는 박해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기독교는 믿음을 지켜갔고 이것은 곧 교회의 성장과 깊은 연관을 맺는다. 요한계시록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승리를 얻은 교회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 결국, 사도요한은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고난을 통과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십자가를 지나서 승리를 얻는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도미티안 황제의 핍박을 받고 있는 교회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3) 요한계시록의 주제와 목적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계 17장 14절)요한계시록은 어린양의 승리와 예수그리스도안에서 교회의 승리를 주제, 목적인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핍박을 받는 교회들에게 이 말씀을 통하여서 위로와 용기를 주려고 한 것이다.(4) 요한계시록의 특징요한계시록은 언뜻 보기에 신약 성경의 다른 어떤 책과도 유사하지 않음을 발견 할 수 있다. 그것은 요한계시록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너무나도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요한계시록의 특징을 아는 것은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데 중요하기에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다.요한계시록은 크게 3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시작 하는 부분에서 어느 정도 보여주는 묵시 문학적인 요소와 1장 3절, 22장 6~7절 등을 통해 예언서 의 특징을 지니는 것과 소아시아 지역의 7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하여 서신서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즉, 요한계시록은 묵시문학, 예언서, 서신서롤 그 특징을 구분할 수 있겠다.Ⅳ. 요한계시록의 구조(1) 요한계시록의 개요Roy R. Matheson에 의하면 요한계시록은 크게 4가지 주제를 지닌 부분으로 나눠 질 수 있다.1) 교회 안에서의 예수 (계 1장 9절 ~ 3장 22절)2) 우주 속에서의 예수 (계 4장 1절 ~ 16장 21절)3) 재림의 예수 (계 17장 1절 ~ 21장 8절)4) 완성의 예수 (계 21장 9절 ~ 22장 5절)이러한 골격이외에도 재앙들을 중심으로 구분하여 계시록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한 구조는 다음과 같다.1) 머리말 (1장){{2) 7교회의 편지(2~3장){{사잇말 하늘 보좌와 예수(4~5장){{{3) 일곱 봉인에 담긴 심판(6장){{사잇말 144,000인의 성도(7장){{{4) 일곱 나팔 (8~9장){{사잇말 두 증인(10~11장){{{5) 용과 짐승들(12~14장){{사잇말 마지막 추수(15장){{{6) 일곱 대접의 재앙(16장){{사잇말 큰 음녀와 바벨론의 멸망{7) 천년 왕국 등 여러 환상들(19~20장) (17~18장)8) 새 하늘과 새 땅(21~22장)(2) 요한계시록의 골격요한계시록의 1장은 서론으로 교회를 주관하시는 주님을 묘사하고 1장 8절 알파와 오메가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계 1장 7절)요한계시록의 4장은 하늘의 예배를 다룬 말씀이다. 또한 5장은 인을 떼기에 합당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데 바로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사자 같고, 송아지 같고, 얼굴이 사람 같고,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 동물들, 그리고 모든 만물이 경배를 드린다.....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계 4장 8절 하반절)...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계 5장 13절 하반절)....이렇게 먼저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다루면서 강조하고 있다. 이는 후에 나올 환난과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이것을 잊지 말라고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고, 우리의 싸움은 이미 승패가 갈린 싸움으로 믿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승리하였음을 각인시키려고 한 것이다.이 말씀 이후에 6장부터 16장 까지 요한계시록을 어렵게 생각하는 가장 주된 이유인 심판에 대해 나오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심판은 앞서 말한바와 같이 더 이상 믿는 자에겐 어떠한 두려움의 시기가 아닌 믿는 자들에게는 하늘의 소망을 품는 시간인 것이다. 그래서 고통과 고난 속에 처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이 요한계시록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요한계시록의 심판에 대한 구조는 한 가지 공통된 전개를 지닌다. 즉, 3가지의 심판이 있는데(7인의 재앙, 7나팔의 재앙, 7대접의 재앙), 각각의 심판은 7단계의 절차를 지닌다. 그런데 항상 6단계 이후에 삽입구가 있다. 그 삽입구는 다름 아닌 위로의 말씀과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다. 뿐만 아니라, 이 심판을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즉,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열방의 회개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그래서 7봉인의 재앙에서는 세상의 1/4을, 7나팔 재앙에.
《책 소개》바울 복음의 기원, 김세윤 지음 (도서출판 엠마오, 1994)《저자 소개》서울 대학교 문리대 출신. 영국 Manchester 대학(Ph.D.)을 졸업하였으며, 독일 Tubingen 대학 Humboldt 연구 교수, 미국 칼빈 대학교 및 신학대학원 교수, 아세아연합신학대학 교수,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 및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미국 Fuller 신학대학원 교수로 있다.Ⅰ. 서론신약시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 이후 기독교는 큰 변화를 갖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주신 선교의 사명 때문이다.“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8장 18~20절)”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 즉 사도들에 의해 점점 복음은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예루살렘에서 온 열방으로 확산되었다. 물론, 이러한 확산이 있기까지는 오순절, 기독교의 많은 핍박 등의 사건이 있었다. 이런 초기 사도 시대의 복음 확산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이름은 우리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바울이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보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바울은 누구인가?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다니면서 가르침을 받은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사람들의 선봉이었다. 이런 그가 어떻게 열방을 향한 복음 전파에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일까? 무엇이 그를 변하게 한 것일까? 그가 선포하는 복음의 기원은 과연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가?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김세윤 박사의 『바울 복음의 기원』은 우리에게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사실, 이 책은 기존의 바울과 바울 복음에용은 바울의 회심을 통하여 일어난 바울 자신의 많은 신앙적인 변화 등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바울의 회심의 사건, 즉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건을 집중적으로 고찰함으로 바울의 신앙과 가치관의 변화를 이해하고, 그 후 바울이 제시한 복음의 요소를 살펴본다면 바울 복음의 기원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이 제시한 복음의 요소, 즉 복음의 계시, 기독론, 구원론 등에 대해 김세윤 박사는 자세히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바탕과 선지식을 가지고 어떤 내용이 우리에게 펼쳐지는지, 바울의 복음이 어디서부터 기원하였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바울의 회심(1) 바울의 회심바울의 회심은 그의 생애와 사상에서 어떤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가? 바울은 그 자신이 자신의 경험에 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한다. 이러한 점에서 G. Bornkamm은 바울의 회심이, 다메섹 도상의 경험이 그의 생애와 사상의 중심에 놓여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지만, 김세윤 박사의 『바울 복음의 기원』에서는 바울의 회심이 그의 사상에 중심에 있다고 논박한다. 이러한 주장을 피력하기 위해 9가지의 근거를 내놓았다. 그 중,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첫째, 바울 자신이 그리스도께로 회심하고 사도직으로 부르심을 받은 경험이 비록 짧은 구절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본문에 들어 있는 서신서가 바울이 보낸 편지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둘째, 바울은 다메섹에서의 회심사건 이전에도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을 다하였다. 그러나 그 열심은 율법에 의존한 분별없는 열심이었다. 하지만, 회심이후에 바울은 그리스도를 체험함으로 율법의 완성인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얻었고, 이것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이다.셋째,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사도의 소명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직분을 맡게 되었다.넷째,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그에게 비추신 하나님의 빛과 창조 때의 하나님의 빛을 비교하였다.“어두운데서 빛이 비취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에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원수였었다. 하지만, 이후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바울의 회심사건은 중요한 사건이다.여섯째, 하나님은 바울에게 복음의 계시분만 아닌 복음의 일꾼으로도 삼으셨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명분을 세웠다.일곱째,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는 일꾼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도의 사명 때문이었다. 사도바울이 전파한 복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이밖에도 몇 가지 더 주장한바가 있는데, 이를 통해서 다메섹 사건이 바울에게 있어서는 엄청 중요한 사안들인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바울 복음의 기원에 있어서 무척 중요한 전제이다. 바울의 회심을 통한 변화로 인하여 바울은 세계관이 바뀌었고 신앙관이 바뀌었다. 이것은 결국, 바울복음의 기원의 기저가 되는 부분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이다. 바울의 복음은 이 회심의 사건 이후에 등장하는 것이다. 즉, 회심 이전의 바울은 율법에 매인 사람이요, 복음의 올바른 진리를 파악하지 못한 사람이었으나, 다메섹 사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현현으로 율법의 완성인 복음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게 되었고, 이러한 복음을 전파함으로 온 열방에 복음이 전파된 것이다.그래서 이 『바울 복음의 기원』에서 전제하는 것은 바울의 삶에 있어서 회심과 다메섹 사건은 아중 중요한 사건임을 말하는 것이다.(2) 회심전의 바울바울의 삶에 있어서 회심이 중요한 사건이요 구분점일 때, 바울의 회심전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바울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그러한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바울은 자신이 이스라엘인이며 베냐민 지파 출신으로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육을 따른 바리새인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회심 후에도 동일하다. 그리고 바울은 디아스포라 유대인 출신으로 로마 시민이었고, 헬라 문화와 히브리어를 잘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기독교 교회를 핍박하는 것은 율법과 조상들의 전통에 대한 ‘열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래서 율법에 대해 무 거주하는 헬라파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히브리파’ 그리스도인들은 전통을 잘 따르는 듯이 보인 반면, 헬라파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예루살렘의 헬라파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으로 흩어졌을 때, 그들의 뒤를 추적하여 다메섹에 이르게 된 것이고 그것은 그의 생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순간에 이르는 계기가 된 것이다.(3) 다메섹 사건과 사도의 소명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던 중, 홀연히 하늘에서 비춰진 빛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였고, 그 사건 이후 회심을 통한 신앙의 변화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회심이 너무나 극적으로 이루어졌기에 많은 학자들이 바울의 회심에 대한 심리적인 준비를 규명해 보려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받아들이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바울의 회심은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과 동류의 것으로 간주되어 바울이 그리스도 부활의 증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생각하게 한 것이다. 이 사건은 바울 존재에 있어서 엄청난 영향을 준 사건이다.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복음 전파의 사명을 주심으로 사도의 소명을 갖게 되었다고 주장한다.“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를 말미암은 것이라(갈 1장 11~12절)”Ⅲ. 바울의 복음(1) 계시바울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주장하였다.(갈 1장 12절) 바울의 이런 주장은 복음의 진리, 즉 하나님의 구원사로서 그리스도를 사람의 선포로 말미암아서가 아닌 그의 아들을 자기에게 나타내 보이신 하나님의 계시로 말미암아 인식하였다는데 있다. 그래서 바울이 그의 복음을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아 직접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그의 복음의 기원의 출과 최종적인 구원 사이에 가교를 놓는데, 최종적인 구원의 첫 열매요 보증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선취적 계시를 선포하는 복음은 재림 때 까지 비밀로 남아 있다. 그래서 바울은 비밀의 개념을 복음과 그 내용인 그리스도에게 적용하였다.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가 감추어져 있었으나(고전 2장 7~9절), 성령을 통하여 바울과 그의 동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계시하셨다는 것이다. 즉, 바울은 다메섹 사건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의 계시를 받았고 이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완성됨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복음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위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으로 계시를 받은 것이다.(2) 기독론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받은 복음을 무엇보다도 먼저 기독론적으로 정의 내리는데,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바울의사도적 선포의 주제는 ’주(主, Lord)‘이며,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다.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부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신 분으로 고백했던 다윗 계열의 메시아라는 의미에서만 아니라, 더 나아가 깊은 의미로 그가 태초부터 하나님과 친근한 관계에 있으면서 창조 때, 하나님의 대리자로 행동하셨고, 우리를 죄와 율법에서 구속하시기 위하여서 하나님에 의하여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은 분이라는 의미로 고백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아들이야말로 바울 복음의 기원이요, 정수인 것이다.“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 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장 2~4절)““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것이다.
Ⅰ. 서론(존 위클리프가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 설명하고 연구 목적을 설명해라.)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4-1384)에 대해서 연구하려면, 그의 사상인 청교도 주의를 알아야 한다. 그는 청교도 주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에는 청교도 주의의 기원과 특징, 사상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Ⅱ. 청교도 주의ⅰ) 발생 배경Puritanism 즉, 청교도 주의는 한가지 운동으로부터 연유된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청교도 주의를 정의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최근의 역사학자들은 청교도 주의에 대해 그것의 기원과 발달 과정 등을 탐구함으로써 그것의 현상을 정확히 기술하는 것을 통해 청교도 주의의 정의와 성격을 찾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청교도 주의는 16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후에 미국으로 퍼져 나간 특정의 역사적 운동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초기의 미국 문화 형성과 미국 식민지 시대의 전반인 17세기를 신앙의 시대 라고 칭할 수 있을 만큼 그 영향력이 컸다.청교도 주의의 기원은 위클리프와 그의 추종자들이 1371년경에 벌였던 롤라드(Lollards) 운동과 16세기초에 유럽에서 일기 시작했던 종교개혁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운동은 엘리자베스 여왕 때에 카톨릭 교회와 거의 다를 바 없는 성공회를 중심으로 개혁하려는 동기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영국은 헨리 8세때 부터 공식적으로 신교도 국가였다. 그러나 16세기말부터 많은 영국인들은 영국의 교회가 타락하였고 또한 너무 많은 구교도적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엘리자베스 여왕(1558~1603)시절에는 이러한 추세가 절정에 이르러 구교도의 의복과 예식들이 영국 교회를 물들이고 있다고 거칠게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영국 교회가 청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들의 명칭인 청교도들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종교적인 이유 외에도 남녀노소 많은 영국인들이 복잡한 도시에 발달과 계속 증가하는 방랑거지들과 치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래서 그 원인과 결과 및 해결책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지만, 인간의 완전성은 하나님의 완전성과는 달리 조건적이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유지하고 그의 명령에 순종할 때에만 완전성은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런데, 교활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져버렸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불순종했기 때문이다.인간의 범죄의 결과로 인해 이 세상에 사망이 들어오게 되었다. 가장 심각한 사망은 육체적인 것이기보다는 영적인 것이다. 즉, 죄를 지음으로 인간은 하나님과 영적으로 영원히 분리 되었다는 것이다. 이 인간의 최초의 죄, 즉 아담의 죄는 자손들에게까지 전가가 되는 저주였다. 아담의 죄는 후손들에게 전가가 되었고, 결국 아담의 후손들은 모두 죄 아래 있게 되었다.범죄한 인간은 원죄아래에 있기에 전적으로 무능력해졌다. 인간의 죄의 저주 아래 있게되므로 잘못된 원리로 살게 되고 전연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없게 되며 구원을 받기에 알맞은상당한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범죄한 인간이 죄에서 구원받으려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그를 나의 구주로 믿는 도리밖에 없다.셋째, 인간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성취되지만, 그것은 성부이신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은총에 순응한 순종적 행위라고 개혁주의자들은 대부분 주장한다. 다시 말해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섭리에 의한 것이고 그리스도는 그 뜻에 순종해서 그것을 이룩했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구원의 서정에 있어서 최우선적 과정은 예정이라고 할 수 있다. 구원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로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 선택을 예정하셨다. 그리고, 죄인을 인도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는 하나님의 사역의 시작을 부르심이라 말한다.하나님은 지으신 만물을 통해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부르시기도 하고, 구원을 받을 사람들을 특별히 선택해 부르시기도 한다. 구원을 이루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중생 즉 사람이 거듭나는 일은, 하나님으로부터 그들 모두는 소명을 받아 하느님의 일을 지상에서 수행하게끔 되었다고 믿는 것이다. 이 직업 윤리(Work Ethic)는 그 시대에 팽배하고 있던 게으름 과 나태함을 배척하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더 나아가서 그들의 개인적인 구원에 급급치 않고 다른 사람의 이익은 물론 이교도에 대한 사회적·종교적 책임까지도 그들 자신이 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사회적·종교적 개혁은 일치한다고 생각했다.두 번째로 계약·예정설은, 인간은 자발적으로 하느님과 언약 또는 계약을 맺었으며 자신 들이 맺은 언약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구원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 계약 이 론은 교회와 사회의 민주적인 제도 형성에 큰 역할을 했지만 하나님이 부여한 인간의 소명을 그들이 교회와 맺은 계약에 따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의식 속에, 타락하기 쉬운 자 신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강력한 중앙 통제 정부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데 쓰이기도 하였다.인간은 누구나 원죄를 지었기 때문에 타락할 수밖에 없다는 원죄설 역시 중앙집권적인 통 제 정부의 필요성을 부추겼다.4 청교도들의 생활과 의식Puritans는 교육자 양성을 위해 1636년 하버드 대학을 설립하였다. 근본적인 그들의 교육목적은 일반 신도들의 교리 이해와 종교적 원리, 그리고 사회적인 규율간의 적절한 조화였으며 이는 미국 교육의 기초가 되었고, 1642년에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교육을 최초로 실시하였다. 청교도 사회에서는 이상적인 공동체 건설에 방해되는 일들은 엄격히 금지되었으며각 가정에서 책임지는 사람은 아버지로서, 부권 위주의 가부장적 사회였다. 청교도들의 공공생활 중심부는 읍민회(Town meeting)였으며 이 읍민회는 교육과 정치적인 활동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었다. 어린아이들의 교육은 물론, 정치적인 결정을 내리는 사람의 임명까지도 읍민회가 담당하였던 것이다. 청교도 사회에서의 목사의 위치는 가히 절대적이었다. 청교도 사회는 성서가 지배했고 성경의 설교 다음으로 설득력 있는 권위는 바로 목사의 설교였던 잠정적 존재 그리고 하나님 안에 영원히 내재하는 최고의 지성적 존재에 이르는 여러 단계의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였다.위클리프의 철학사상 가운데 특이했던 것은 영원한 존재의 속성이 하나님의 영원한 원형에 속한 것으로 생각한 점이다. 그것들이 하나님의 존재와 분리될 수 없으므로 비록 형식에 있어서는 아닐지라도 본질적으로 신 존재의 일부이다. 또한 하나님 속에 원형의 실재가 있다고 믿어 위클리프는 하나님의 존재가 원형의 실재를 포함한다고 하는데 까지 나아갔다.위클리프에 의하면, 모든 존재들이 하나님 존재의 일부라면 그것들은 이미 시간 밖에 존재되었고 따라서 영원하며 불멸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존재의 상호 연관설은 위클리프로 하여금 汎神論에 접근하게 하였다.위클리프는 자신을 공격하는 많은 학자들에 대항하면서 피조물과 창조주와의 관계를 정립시키고 있었다. 즉 피조된 개별자를 하나님의 존재와 필연성에 연결시키고 있으며 하나님을 포함하여 모든 사물과 존재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은 영원하다고 하였다.또한 위클리프는 모든 존재의 영원성을 주장하면서 그의 철학작품 전체를 통하여 현존하는 모든 사물은 과거, 현재, 미래 구분 없이 하나님 안에 존재한다는 원리를 발표하였다. 그리하여 모든 존재하는 사물은 어느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참으로 존재하기 전, 그것은 반드시 원형을 통한 하나님 안에서 지성적 존재의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것은 필연적이며 영원하고 불멸하다는 것이다.{) 이런 사상은 영국 동부의 Camelite수도승인 존 케닝함(Kenningham)과의 논쟁에서 명확하게 나타 나고 있다.위클리프는 신과 인간과의 상호관계를 측정하는데 있어 동일한 시간개념으로는 인식이 불가능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는 영겁의 시간과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특정한 시간으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그는 전자의 시간을 듀레이토(duratio)라 하며 후자를 템프스(tempus)라고 불렀는데 이 두 종류의 시간은 상호 연결되어 있고 어느 경우에도 완전한 독립이회내 여러 분야로 파급되어 갔던 것이며 특히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대두된 Wyclif의 철학사상과 교회와 교리에 대한 개혁의지는 당시 농민봉기와 사회개혁에 도화선 구실을 하였던 것이다.ⅱ) Wycliffe의 개혁사상1 정치적인 측면의 개혁사상Wycliffe의 정치개혁 사상은 중세 말의 교회 권위와 교황권의 횡포 그리고 봉건귀족에 의한 봉건반동에 항거하는 저항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는 잘못 사용되고 있는 일체의 교회 재산들을 정부에서 몰수하여 이것을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구제 및 기타 사회복지를 위한 유용한 목적들에 사용하는 것이 정부의 도덕적 책임임을 역설하였다.{) 그에게서 이러한 정치성향을 엿볼 수 있게된 것은 1374년 7월에 브뤼즈에 파견된 국왕 사절단의 일원으로, 교황과 영국왕 사이의 논쟁거리에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보여주고 있다.Wycliffe가 다루었던 내용 중 가장 중요한 관점은 소유권의 이론 에 관한 것이었다. 곧 진정한 소유권 은 단지 신에게만 속한 것으로 인간은 지상에서 그의 대리인으로 행동한다. 모든 정의로운 인간은 소유권에 참여할 동등한 권리를 지닌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유재산을 금하는 더 높은 법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이 점에 관해서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미움을 받았지만 영국 국민들이 볼 때는 애국자임에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위클리프는 교황청의 신학적 오류뿐만 아니라 영국 국민의 돈이 로마로 빠져나가는 것을 반대하였고 동시에 교황청의 내정간섭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분명한 의사표시를 국민을 대신해서 표현해냈기 때문이었다.그는 또한 국민에 대한 복지와 부의 분배문제 등에도 관심을 기울여 국왕과 국가의 도덕성을 강조하며 한때 공산제적 공동사회를 꿈꾸기도 하였다. 하지만 현재의 불완전한 세상에서는 정치적 권위 및 재산의 개인소유가 불가피함을 인정하면서 교회의 재산도 국가가 유용하게 관리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것이라고까지 하였다.위클리프의 이와 같은 일련의 정치적 행위 또는 교회 재산에 대한 그의 사상은 교회재산을 탐내는이었다.
< 목 차 >Ⅰ. 바리새파의 의미와 기원1 기원2 명칭Ⅱ. 바리새파의 역사1 하스모니안 시대(주전 142~63년)2 힐카누스 시대(주전 134~105년)3 알렉산더 얀네우스 시대(주전 103~76년)4 헤롯 시대(주전 37~4년)Ⅲ. 바리새파의 성격1 구성 계층2 가입 및 의무 규정Ⅳ. 바리새파의 특징1 율법2 정결법3 부활4 메시야 사상Ⅴ. 바리새파의 사상적 특징1 율법2 정결법3 부활4 메시아 사상Ⅵ. 바리새파와 다른 종파들과의 관계1 사두개파2 엣세네파Ⅶ. 신약성경에서 나타나는 바리새인1 마가복음에서 나타난 바리새인2 마태복음에서 나타난 바리새인3 누가복음에서 나타난 바리새인4 요한복음에서 나타난 바리새인5 사도행전에서 나타난 바리새인Ⅷ. 일곱 종류의 바리새인Ⅰ. 바리새파의 의미와 기원1 기원바리새파는 마카베오 시대의 하시딤 운동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J. Jeremias, 『예수시대의 예루살렘』, 한국 신학 연구소 번역실 역(서울: 한국 신학 연구소, 1988), P 331물론 이들의 사상의 기원과 내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빌론 포로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자료상으로 바리새파란 특수한 당파의 이름은 마카베오시대에 가서야 나온다. 즉 주전 167년 마카베오 반란이 시작될 무렵에 하시딤( 경건한 자 )이 출현하는데, 이들은 율법에 대한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안티오쿠스 4세의 헬레니즘화 정책에 반대하여 마카베오 운동에 합세했던 경건한 자들이다. 따라서 이들 하시딤을 바리새파의 선조로 이해할 수 있다.{) Bo Reicke, 『신약성서 시대사』, 번역실 역, (서울: 한국신학연구소,1986), p174-175 재인용물론, 바리새파 자신들의 전승에 따르면 그들은 에스라 시대를 자신들의 그룹의 이상과 열망의 형성기로 간주했으나 마카비 혁명이 일어난 후에야 비로소 유대인 사회내에서 응집력을 갖게 된다{) H. C. Kee,『신약성서의 이해』, 서중석 역, (서울:한국신학연구소, 1990), P82 재인용.바리새파는 논리적이면서도 일관성 있게 하였다.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위에 제우스신을 위한 제단을 설치했는데, 이 사건은 유다인들의 기억속에 멸망의 가증한 일 로 여겨졌고, 이에 대한 반격으로 주전 167년 마카베오 형제를 주축으로 봉기가 일어났다. 여기에 대한 승리로 주전 162년 종교적 자유를 획득했고, 주전 597년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 처음으로 다시 독립국가를 세우게 되었는데 이것이 하스모니안 왕국이다. 마카베오 혁명을 전후로 등장한 바리새파는 하스모니안 왕조의 영향을 받으면서 하나의 당파로서 조직이 강화됫고, 그 왕조와의 연합, 혹은 충돌을 통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 시켰다.2 힐카누스 시대(주전 134-105년)바리새파가 요세푸스의 저작물에 의해 처음 등장하게 된 때는 힐카누스 1세 때이다. 바리새파는 자신이 바리새파의 제자라고 여긴 힐카누스 1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주전 109년 힐카누스 1세와 그의 아들들이 사마리아를 정복하게 된 사건은 율법에 충실한 자들인 바리새파의 반발을 유도했다. 힐카누스는 사두개파 사람들에 접근하면서 자신이 관계하던 귀족 계층을 바리새파에서 사두개파로 바꾸게 되었다. 이 당시 바리새파의 정치적 위치는 영향력 있는 귀족 계층이었고 사두개파는 같은 계층의 라이벌이었다. 바리새파는 모세의 율법에 기록되지 않은 조상 전래의 수많은 규칙들을 백성들에게 부과하여 지키도록 하였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사두개파는 이 규칙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리새파는 대중들의 지지를 획득 할 수 있었던 반면에 사두개파는 부자들에게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3 알렉산더 얀네우스 시대(주전 103-76년)바리새파는 알렉산더 얀네우스 통치시기와 그의 아네 알렉산드라 통치시기 동안에도 정치적으로 영향력있는 그룹으로 활동하였고, 때로는 통치자들에게 반대하는 그룹들과도 연합하여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얀네우스가 임종 때 그의 부인 알렉산드라에게 바리새파 사람들의 편에 설 것을 충고하였고, 그리하여 바리새파는 종교적인 귀족들과 세속적인 귀족들로만 구성이론으로서 바리새인들을 종교적인 학자 그룹으로 보면서 유대교 공동체의 최고 권력을 행사하던 전통적인 지도자들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이것도 정확하지 않다. 비록 몇몇 바리새인들은 지배 계층에 속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하급 관리나 관료, 교사등의 역할을 담당했다. 즉 정확한 표현으로는 귀족 계층으로 볼 수 있으며 이들은 백성들의 생활 양식에 영향력을 미치는 후원자(patron)로서의 역할을 담당했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는 보다 강한 세력을 얻고자 노력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은둔적인 단체라기보다는 개방적인 활동을 하였음을 보여준다.한편 바리새인들은 지리적으로 매우 폭넓게 나타나고 있다. 요세푸스와 같이 마태나 요한복음은 예루살렘에서 강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는 바리새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반면에 갈릴리라는 외진 곳에서 영향력을 끼치던 바리새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누가복음의 기록이나 바울 서신에서는 이들의 영향력이 팔레스타인 지방을 넘어서 이방 디아스포라 지역의 유대인들에게까지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신약시대의 바리새인들은 그 영향력의 정도는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지만 전체 유대인의 생활 속에 폭넓게 자리 잡고 있었음에는 틀림없다.결론적으로 바리새파는 종교적인 제의 그룹으로서 종파적인 성격을 지닌 내면적인 경건 단체라기 보다는 당시 유대 백성들의 삶의 직접, 간접적으로 지배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가진 사회 운동 단체이다. 비록 당시의 사회적 구조가 종교와 정치를 구분하기 힘든 복잡한 사회였고, 이들이 나타나는 양상도 매우 다양한 모습을 지녔지만 역사자료에 나타나는 이들의 관심사와 행동, 그리고 사회적 위치와 역할들은 백성들의 생활과 연결된 매우 사회, 정치적 성격을 지녔다고 보아야 한다.2 가입 및 의무 규정바리새파 공동체의 가입규정은 매우 엄격한 편이었다. 지망자들은 가입하기에 앞서 한달 내지 일년간의 시험기간을 거쳐야 했으며 이 시험기간 동안 정결 규정을 엄수할 수 있다는 신뢰성을 입증해 보여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시험기간을 거친 다.{) 바리새파 , 『기독교 대백과 사전』, P 1109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은 모든 점에서 이스라엘의 운명 즉, 구원사를 결정하시지만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도 역시 율법을 엄격하게 준수함으로써 그들 자신의 성화와 완성에 기여해야 한다 고 주장하였다.2 정결법바리새파의 사상은 정결이란 초월적 개념을 그 특색으로 삼고 있다. 즉 그들의 사상의 기본 이론은 계시 및 사회와 긴밀히 관련을 맺고 있는 정결 준수의 체제로 형성되었다. 이 정결 준수는 계약 사상의 실현을 위한, 종교적으로 진보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사회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곧 하나님은 성서와 전승들과 율법학자들을 통해 정결의 규범들을 계시했으므로 바리새파인들은 이 계시를 밝히고 사회의 유익이 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정결 의식에 관한 여러 규정들을 확대하였고 이것들을 진정한 종교생활의 조건이며 참된 근거라고 생각하였다.{) M. Simon, 『예수시대의 유대교 종파들』, 박주익 역,(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0) P 47그리고 이러한 계명의 다양성을 견딜 수 없는 멍에라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신의 은총의 다양성을 드러낸다고 보았고 관습에 대한 철저한 시행을 통해 유대교의 생존을 보증하였다.3 부활부활은 바리새파 사람들의 교리의 중요한 항목 가운데 하나인데 그들은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개파와는 달리 부활을 믿었으며 인간이 이 세상에서 행한 행위에 따라 상을 받거나 처벌될 내세의 존재를 믿었다.{) 바리새파, 『기독교 대백과사전』, P 1110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고 세계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에 그의 능력은 죽음에 제한 받지 않는다고 보았다. 요세푸스는 부활에 관한 바리새파의 가르침에 대해 그들은 영혼은 죽지 않을 힘을 가지고 있으며, 선하게 산 자들과 악하게 산 자들에 대한 보상 또는 형벌이 저승에서 있다고 믿는다. 악한 영혼들은 모두 영원히 감금되고, 반면에 선한 영혼들은 새로운 삶에 쉽게 참여하게 된다 고 말했으며 다른 말로는 그들은 모든 영혼은 죽지행위는 우리의 능력 안에 있는 것으로 우리 자신이 선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우둔함으로 인해 악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지금부터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엣세네파의 관계를 살펴보도록 하겠다.1 사두개파그들의 명칭에 대한 어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그 이름이 쿰란의 사독의 후손들 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솔로몬 시대의 대제사장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은 아주 가능한 일이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실제로 대부분이 제사장 계급 출신들이다. 그들은 귀족 계층을 대변했으며, 일반 백성들과는 거의 접촉이 없었으며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았다.역사적으로 하스몬 왕조시기부터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은 서로 다투어 종교의식 행사를 주관하였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의 적대관계를 형성하는 주요한 원인이 그들의 종교상의 차이로 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모든 면에서 바리새파 사람들은 과거를 대변했다. 그들은 종교에서는 물로 정치에 있어서도 보수적인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사두개파 사람들은 기존 질서를 뒤엎으려는 경향을 가진 어떤 운동들에 의존하려는 세력들에 대해서 적대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로마인들이 그들의 종교적 행위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허용한 이후로, 사두개파 사람들은 정복자들과 완전히 야합하였다.{) M. Simon, 『예수시대의 유대교 종파들』, 박주익 역,(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0), P 34그러나 확실한 것은 사두개파 사람들은 어떠한 예배의식적 또는 교리적인 개혁도 반대하였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근본적으로 대립되었던 것이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성서의 해석을 좋아하지 않고 문자적 율법을 엄격히 주장하였다.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의 근본적인 차이는 교리상의 차이이며 이 차이가 결국 두 종파의 대립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2 엣세네파엣세네파는 그들이 했던 것만큼 대중 생활에서 활약하지는 못했지만, 유대 종교와 기독교 기원에 관한 큰 관심과 중요성을 갖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엣세네파의
Ⅰ.『Ormulum』이 무엇인가?Ormulum는 앵글로색슨 운문안에 아우구스지노 수도회의 Orm이 13세기 전반에 복음서 의역한 것이다.. 저자인 Orm또는 Ormin의 이름에서 유래가 되었다. 문학적 가치는 적지만 철자법 고안, 당시 영어 발음을 알려주는 단서로서 영어사적으로는 중요한 작품이다. 복음서와 내용은 비슷하지만 음을 정확하게 기록하기 위하여 독특한 철자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어학적으로 중요하게 간주된다. 13 세기는 긴 교훈적인 시의 인기속에서 라틴어 혹은 프랑스어를 교육받지 못한 이들을 위한 도덕적인 지시나, 성자의 삶, 또는 성경 설화를 선물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이것들의 특이한 점은 Ormulum, 즉 영국 북쪽에 Augustinian 교회법규인 Orm에 의한 것이다. 20,000개의 쓰여진 행은 rhyme을 갖추진 않았지만 고정된 2행 연구의 운율안에서 배열되어졌다. 그 일은 영어 철자법을 체계화하고 형식화하기 위한 그의 노력을 보여 준다. 또 Orm의 자서전에 보존되어 있는 글들이 주로 흥미롭다.다른 성경적 설화는 창세기, 출애굽기, 야곱과 요셉, 그리고 제목으로 제안하는 그의 주제인 Cursor Mundi인데, 이 것은 모두 세계의 역사다. 특별히 인기 있는 작업은 남부 영어의 전설이다. 이것은 성자의 삶의 잡다한 모음으로 시작됐으나 후에 교회 흐름의 순서대로 재편집되고 재배열됨으로 확대되었다. 그 구전설화는 14세기 Robert Mannyng's Handlyng Synne와 함께 이어졌는데, 무미 건조할 고백의 소책자는 사실적인 이야기의 삽입에 의해 단조로움을 덜었고, the Pricke of Conscience과 신학의 요약은 Richard Rolle의 작으로 생각되어진다.Ⅱ. 왜 썼는가?고대영어의 표준 쓰기 체계를 되살리기 위해서이다. Ormulum뿐만 아니라 Brut, Worcester Fragments, Ancrene Wisse도 마찬가지로 고대 영어의 표준 쓰기 체계를 되살리려고 하였다. 왜 고대 영어의 표준 쓰기 체계를 어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불어의 쓰기 관행(gh, ph, sh, th, wh)을 도입하였다.Ⅲ. 독특한 철자법이 무엇인가?불어 사용으로 영어에는 불어 사용어와 본래의 영어 어휘가 같은 뜻을 표현하는 경우가 생겼다. 그중 하나가 소실 또는 그 뜻을 달리하였다. 대체로 소실은 본래의 영어에 많았다. 고대 영어에서는 파생, 합성어 등의 어형성으로 어휘를 확대하는 관습이 강했으나 중세 영어에서 불어 사용 이후 이 경향이 많이 약화되었다.(1) 철자와 음Norman Conquest 이후에도 고대영어의 전통에 기반을 둔 철자가 계속 쓰였으나 그간의 음변화와 불어 철자의 영향으로 자모음의 소실 또는 첨가가 있었으며 14세기말에는 다음과 같은 단기호 조직을 가9지고 있었다.a, b, c, d, e, f, g, ?, h, i, j, k, l, m, n, o, p, q, r, s, t, Þ, u, v, w, x, y, z이 외에도 몇 개의 2중 음자 또는 3중 음자도 사용되고 있었다. 중세영어시대의 철자는 매우 혼란한 양상을 있고 있었는데 이것은 음변화에서 야기된 것뿐만 아니라 불어의 영향에서 기인된 것이다. 영어에 불어가 차용됨에 따라서 새로운 철자가 도입되었고 영어음이 불어철자의 관습에 따라 표기되기도 했다.(2) 모음변화1 강세음절의 모음변화- 단모음 : 고대영어의 강세음절의 단모음은 비교적 안정되어 있어서 고대영어 /y/, /æ/10)만이 중세영어/i(y)11)/, /a/로 변화하였고 나머지 음은 불변이다.- 장모음 : 고대영어의 장모음 /e:/, /i:/, /o:/12), /u:/는 중세영어에서 변화가 없었으나 /?:/, /?:/, /?/13)는 중세영어에서 /?/, /?/, /?/로 변한다.- 이중모음 : 고대영어에 존재했던 이중모음/ea, eo, ?a, ?o14)/은 중세영어에서 모두 /a15), ?, ?, ?/로단음화했기 때문에 OE에 존재했던 이중모음이 ME에서 없어진 셈이다. 그러나 그 공백을메우기 위해 중세영어에 새로운 이중모음이 발생했다.- 차용이중모음 모음/?/, /?/에서 유래한 증세영어의 장모음 이외에도 그 근원을 달리하는 장모음/?/(/i/+/j/, /?/+/j/, /?/+/j/, /?/+/x/, /?/+/j/)와 /?/(/u/+/?/, /?/+/?/,/?/+/?/, /?/+/x/)가 모음+자음의 결합에서 발생하였다.2 비강세음절의 모음변화- 비강세 모음의 수평화 : 비강세 위치에 있는 OE모음이 중세영어에서 모두 약화되어 /?/음으로 수평화 되었다. 이 변화로 OE의 비강세 모음 /a, e, o, u/18)가 모두 중세영어의 /?/로 되었고이 결과의 하나가 문법구별의상실이다. 이 변화는 어미음절 뿐만 아니라 어두, 어중 음절에서도 일어난다.- 비강세 모음 /?/의 유실(/?/>ø) : 중세영어에 중설화된 /?/는 비록 철자가 로 남는 경우에도음가 유실되어서 발음되지 않게 되었다. 이 변화는 13세기에 발생되었으며 먼저 기능어에나타나기 시작해서 2음절, 3음절로 확대되었다.(3) 자음 . 반모음변화1 고대영어의 장자음의 단일화OE에서는 공조음/m,l,r/, 폐쇄음/p,t,k,g,?,?/, 마찰음/f,θ,s/이 중복된 장자음(mm, pp, ff 등)이 존재하였고 이것은 단자음과 모음간의 어중에서 대립되었다. 그러나 중세영어초기에 이 중복자음이 단일화됨으로써 이 대립은 사라졌고 고대영어의 중복자음에 대해서 중세영어에서는 단자음이 쓰이게 되었다.2 무성자음의 유성화어두에서 무성마찰음 /f,θ,s/는 Thames강 이남의 남부 방언에서 유성음/v,ð19),z/로 변하였고 어중에서 /f,θ,s/는 /v,ð,z/로 변화되어 새로운 음소로 독립되었다. 그리고 14세기 후반에 /?/는 /?/로 변화하였는데 철자 -etch(e) 대신 -eg(e)가 쓰인 것으로 이를 뒷받침한다.3 고대영어의 경구개 마찰음의 변화OE /?/는 어두에서 ME /g/로 되었고(god/?o:d/>/??]:d/) 모음이 후속한 기타 위치에서는 OE/?/는 ME/j/ 또는 /w/로 되어 결국 중세영어 이중모음의제 2요소를 형성하였다.4 자음탈락-l/은 /?/앞에서 14세기부터 탈락하기시작하였다. 기타 음 환경에서도 /l/탈락이 발생했는데 이 경우 선행 모음을 장모음화했다.- /n/ : 이 음은 처음에는 무강세 음절의 어미에서 탈락하기 시작해서 대명사, 부정사, 전치사, 그리고명사, 형용사, 동사 등의 어미에서도 탈락되었다.5 음위 전환1400년 이후 자음+/ri/(/ru/)의 음연결에서 /ri/>/ir/, /ru/>/ur/과 같이 /r/과 모음이 전환했다.6 이분석이분석이란 형태소의 두위와 말미에 있는 /n/(/t/)가 선행(역행적 이분석) 또는 후속(진행적 이분석)의 형태고에 전위되어 새로운 어를 형성함을 말한다.7 음소 /ŋ/의 독립OE/n/은 /ŋ/와 /n/ en 이음을 가지고 있다. 전자는 /g/, /k/앞에 나타났고 /n/은 여타 위치에 나타났다. 중세영어의 굴절어미 소실로 인해 /ŋk/, /ŋg/가 어미 위치에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 경우 /k/는 유지되었으나 /g/는 소실되었다. 이 /g/소실로 /ŋ/는 어미 /n/과 대립하게 되어 결국 /ŋ/는 음소로 독립하게 되었다고대 영어 철자와 발음: Rune (Anglo-Saxon) + Irish Roman Alphabet (+ Roman Christianity)(+ Norman-French gh, ph, sh, th, wh)æ/Æ (ash) [æ]: bæc, gærs ('grass')p (thorn) [θ], [ð]: pæt, purhð/Ð (eth) [θ], [ð]: bað. pað, broðor ('brother'), fæðm('fathom)'), moððec: [k]: 자음 앞: cnawan ('know'), cræt ('cart'), cwellan ('kill')후설(원순)모음 곁: camp ('battle'), lucan ('lock'), acan ('ache'), boc ('book'),cuman ('come'), caf ('quick'), cyning ('king'), cyste ('kiss')[?]: (기본)전설모음 곁: cild ), slægen ('slain'),twegen ('twain')음절말음(coda)으로 전설모음 뒤: dæg ('day'), mæg ('may'), sweg ('sound'), halig ('holy'),manig ('many'), mægden ('maiden'), legde ('laid')[Г]: 어중 모음으로 후설모음 곁: fugol ('bird'), dægas ('days'), dragan ('draw'), fagu ('law'),folgian ('follow'), sorgian ('sorrow'), swelgan ('swallow') --> wcg [?]: ecg -->dgsc [г]: scip, sceap ('sheep'), sceotan ('shoot'), fisc, disc, biscop, scir ('shire'), scacan ('shake')--> shng [ŋg]: strangf [f], [v]: foda ('food'), heafod ('head'), wifmann, drifan ('drive'), cnafa ('boy'), hæfde ('had')s [s], [z]: mus ('mouse'), leosan ('lose')o [o:] (macron): brohton ('brought')y [y]/[u]: fyr ('fire'), fyllan ('fill')ie [i?]: giefu ('gift')ea [æ?]: eall ('all'), heah ('high'), geard ('yard'),eo [??]: heofonum, feorran ('far'), creopan ('creep'), meolc ('milk'), weorc -->[i:]j, q, v 사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x, z ([?] mize 'mercy') 고대 영어 쓰기에서 잘 안 쓰인다. 우리는 상당히 다른 형상을 가지고 있다. 2중 자음은 길이를 가르킨다. (eg. fyllan, sittan, racca).(4) 독특한 철자1 Yogh그 yogh , 손이 쓰여지는 Orm?s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