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김기덕(김기덕 감독은 여성주의자들에게 비판받아 마땅한가)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목차들어가며기억의 편린사람 김기덕여성주의자들의 시선본론1)나쁜남자2)수취인불명3)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4)빈집마치며..들어가며기억의 편린나는 중학교 시절에 죽도록 미운 친구가 하나 있었다.어차피 남중학교에서 우위는 깡있고 힘이 좋으면 그만 이었지만 그 친구는 말로 미운 짓을 샀다. 내 주변에서 논리적인 독설로 나를 아무말도 못하게 만들곤 했었다.어느 날 꿈 속에서 그 친구를 보게되었는데 난 서스럼없이 그 친구 뒤로 다가가 그 친구 등에 식칼을 푹 찔러 담갔다. 앞 뒤 정황없이 꿈은 그렇게 끝났다. 식은 땀으로 범번된 그 새벽년에 그 어떤 것보다 내 자신이 너무나 무서워 소리내어 울었던 기억이 난다.그 잊혀졌던 편린 같은 기억이 한일월드컵이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겨울의 문턱에 다시 되살아났다. 그 것이 내가 처음 접한 김기덕감독의 작품, "나쁜남자"였다.스크린 앞에서 나는 죄지은 쥐죽은 듯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김기덕감독은 나의 눈과 귀를 매개체로 하여 내 안의 억눌르고 살고 있던 중학교 시절의 괴물과 이야기 하고 있었다.나는 다른 영화들과 달리 독특하게 반응하고 있었다.사람 김기덕얼마전 초 여름이 시작 될 무렵 김기덕의 12번째 작품 "활"이 개봉되었다.워낙 소리소문없이 작업하고 지방극장을 위주로 전용관의 형태로 개봉한터라 언론의 이슈도 없었고 흥행에도 실패하였다. 2001년 직접 제작사로 까지 나서서 그 만의 독특한 마케팅 형태를 보여주지만 이번 영화에 있어서는 아쉽게도 언론과 관객의 관심을 받지 못 한 듯 하다. 하지만 어쩌면 혹독한 비평속에서 관객이 걸러지기를 바랬을 수도 있는 노릇이겠다.김기덕 자신은 이를 제도권이 비제도권에 대해 갖는 불안이라고 부른다.그는 홍상수 이창동 등 지식인 취향의 감독과 자신 사이에 선을 긋고 각각 제도권과 비제도권이라고 명명했다. 이념이나 미학의 차별성을 천명하는 의미도 있겠지만, 생은 한국에서 흔히 영화감독이 되는 몇 가지 경로들과 다르게 시작되었다. 영화에 대한 제도권 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며 연출부 생활을 한 적도 없고 소위 말하는 영화광과도 거리가 먼 그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누구보다도 자유롭게 영화의 대지에 불시착할 수 있었다.또한 그의 전 작품은 카메라로 쓰여 진 한 편의 자서전이다. 김기덕은 자신이 만드는 모든 영화들이 김기덕의 전체 영화를 구성하는 하나의 시퀀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데뷔작인 <악어>는 그의 삶과 경험의 총체이며, 이후로 계속 이어지는 김기덕 표 영화 만들기의 신호탄일 수밖에 없다. 또한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된 잔혹성은 그가 삼십년 이상이나 체험한 삶의 잔혹함으로부터 잉태된 것이다.그는 <악어>에서 신흥 자본주의 국가인 한국의 번영이라는 메타포를 갖고 있던 한강의 의미를 뒤집어, 번영과 질서의 이면에 어떤 비정상의 세계가 있는지, 그리고 이 한강에서 살아가는 악어의 생존이 얼마나 위태로운 착취의 위계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보여준다. 원래 악어 두 마리라는 제목을 갖고 있었던 <야생동물 보호구역>은 유럽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온화한 도시로 알려진 파리조차 북한군 출신 홍산(붉은 산)과 남한에서 온 얼치기 화가 청해(푸른 바다)와 같은 야생동물들에게는 안전한 보호구역이 아니었다고 말해준다.여성주의자들의 시선인터넷 상의 김기덕 감독의 자료를 찾아다니던 중 유난히 여성주의자들의 도마질을 당하는 글들이 너무나 많았다. 여성주의자들의 말처럼 하나의 작품이 여성들에게 행하여지는 무수한 권력들의 폭력에 일조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또한 과연 김기덕 감독의 여성들을 보는 시각들이 창녀로 밖에 보여지 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였다.간단한 몇 가지의 여성주의자들의 소리를 들어보도록 하겠다.제목 : 김기덕이 왜 비열한 놈이냐면 올린이 : 아수라비주류의 인간이 겪는 소외와 상처를 드러내는 척하면서 만만한 대상인 여성을 착취하고 학대하기 때문이다.나는 한국이라는 사회이기때문에 이런 영화가 버젓이 개봉관에 걸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서 한기만의 또 다른 사랑방식이 성립된다. 한기는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은 선화를 증오하지만, 잠자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머리칼을 쓸어내려 주고 다른 매춘여성을 대하는 것과는 달리 선화의 몸에는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한다. 그는 사랑과 증오가 드라마틱하게 공존하는 모순을 전제로 선화를 감싸고 있었던 것이다.매춘은 필요 감독의 위험한 철학여기서 김기덕 감독이 보여주는 인간의 다양한 사랑방식에 대해서 나는 공감한다. 그렇다. 사랑하는 방법은 다양한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런 방정식을 성립하기 위해 정당화시킨 무자비한 폭력과 선화의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신체포기 이다. 어쩌면 감독은 이 영화에서 비춰진 사창가의 모습을 통해 우리나라의 매춘현실을 고발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건의 발단 부분에선 흰옷을 입고 수줍은 미소를 띠며 너무나 순수하게만 비춰졌던 한 여대학생이 갑자기 지갑을 훔쳐 달아나는 것과, 나중에 다른 방법 없이 신체포기각서를 작성하며 돈을 갚으려 했다는 것은 아주 성급하고 비현실적이며,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마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인 것이 사실이다.또한 선화를 둘러싸고 지속되는 깡패들 사이의 폭력. 사랑은 쟁취이고 고로 폭력이 개입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오묘한 심리를 주입하는 것 마냥 감독은 칼, 벽돌, 깨진 유리등을 사용해 깡패의 폭력적인 자아를 정당화한다. 또한 맞아도 찔려도 감옥에 들어가 사형선고를 받아도 죽지 않고 계속 살아나는 한기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냥 단순한 나쁜 남자의 불멸인가? 아니면 죽지 않는 나쁜 남자를 영웅화시키는 심리인가?따라서 이 영화는 관객의 도덕을 흐트려 놓고, 폭력과 매춘은 사랑이라는 미명아래 반복되고 닳지 않으며 어쩌면 한 방식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감독의 위험한 철학이 새어나온다. 다시 말해 폭력과 매춘은 악(惡)과 강제가 아닌 필/요/로 비쳐지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인 것이다.깡패가 무슨 사랑이야, 깡패가 무슨 사랑이야!이것은 한기가 자신의 , 이것을 본 본 정태가 자수를 하는 바람에 한기는 감옥에서 풀려난다.한기는 선화를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보낸다. 그러나 둘은 바닷가에서 재회한다. 한기는 트럭을 타고 다니며 자기의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판다. 두 사람이 탄 빨간 트럭이 바닷가 마을을 벗어나 또 다른 운명의 공간을 찾는다.-분석-명동의 백화점 앞에서 한기와 선화가 만나는 장면이 있다. 한기는 선화에서 강압적인 키스를 한다. 이 장면에서 보여 지는 것은 강압적 권력이라는 느낌보다도 목에 난 큰 상처에서 보여 지는 그 과거에 대한 폭력에의 저항의 표시로 생각할 수 있겠다.선화가 사창가에 길들어가는 면을 볼 수 있다. 어린아이가 순수를 잃고 사회에 적응 해 가듯이 선화 역시 사창가에 길들어지는 것이다. 우리 역시 억압적인 사회통념을 당연시 여기게 되고 미국적인 자본주의에 길들여지는 모습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닐까?한기가 선화를 놓아주려하지만 선화는 떠나지 않는다. 나의 경우를 살펴보면 미국을 반대하고 폭력적인 구조의 모순보며 한탄하지만 토익 점수가 오르지 않아 밤 잠을 설치고 취업걱정에 계절학기로 학점을 채우고 있다. 이 모든 사회에 얽매임을 버리고 떠나는게 옳은 선택일 수 있겠지만 두려움이 먼저 앞서 다시 펜을 들 수 밖에 없다. 단지 무능력한 창녀로서의 여성으로 보는 시선보다 그 안에 비유를 알 아 채는 것이 옳은 듯 하다.마지막으로 한기와 선화는 이동하면서 성매매를 시작한다. 왜?한기와 선화를 보면서 나를 볼 수 있었다. 한기는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무의식이라는 괴물이었고 선화는 사회통념에서 비춰지는 천한 이미지로 표현된 사회에 쉽게 타협하며 적응해가는 나의 의식부분을 말하고자 하는게 아닌가 싶다. 마지막 해변 장면에 있어서는 무의식과 의식 부분과의 교류를 뜻하며, 영화 속에 성매매라는 비유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면서 현실세계에서의 구원을 말하고자 하는 듯 하다.성매매라는 소재를 통해 극도로 천하고 불편함을 유발해 내었지만 그 안에 감독의 메시지를 골라 낼 수 만 있다면 예전에 처음 접했을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장면들로 영화 속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영화 시작과 함께 동물들을 다치게 하지 않았다고 자막이 나오지만 개를 잡는 장면이나 어머니의 가슴에 새겨진 문신을 도려내는 장면 등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이 그의 전작들과 조금 다른 것은 과거의 시간으로 날아가 1970년대라는 시간의 공기를 잡아내고 개발독재 시대의 변방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영화 속 에서 시간과 공간을 지우고 두 사람의 등장인물로 영화를 끌고 갔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물론 모든 창작물이 작가 자신의 자기 고백이지만 이 작품이야 말로 감독의 가장 내밀한 자기고백인 것 같다.3)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시놉시스-사계절에 담긴 인생의 사계천진한 동자승이 소년기, 청년기, 중년기를 거쳐 장년기에 이르는 파란 많은 인생사가 신비로운 호수 위 암자의 아름다운 사계(四季)위에 그려진다.봄... 업 : 장난에 빠진 아이, 살생의 업을 시작하다.만물이 생성하는 봄. 숲에서 잡은 개구리와 뱀, 물고기에게 돌을 매달아 괴롭히는 짓궂은 장난에 빠져 천진한 웃음을 터트리는 아이.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승은 잠든 아이의 등에 돌을 묶어둔다. 잠에서 깬 아이가 울먹이며 힘들다고 하소연하자, 노승은 잘못을 되돌려놓지 못하면 평생의 업이 될 것이라 이른다.여름... 욕망 : 사랑에 눈뜬 소년, 집착을 알게 되다.아이가 자라 17세 소년이 되었을 때, 산사에 동갑내기 소녀가 요양하러 들어온다. 소년의 마음에 소녀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 차오르고, 노승도 그들의 사랑을 감지한다. 소녀가 떠난 후 더욱 깊어가는 사랑의 집착을 떨치지 못한 소년은 산사를 떠나고...가을... 분노 : 살의를 품은 남자, 고통에 빠지다.절을 떠난 후 십여 년 만에 배신한 아내를 죽인 살인범이 되어 산사로 도피해 들어온 남자. 단풍만큼이나 붉게 타오르는 분노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불상 앞에서 자살을 시도하자 그를 모질게 매질하는 노승. 남자는 노승이 바닥에 써준 이다.
- The People VS.Larry Flynt -제작진과 출연진-- STAFF --감독 : 밀로스 포먼제작 : 올리버 스톤각본 : 스코트 알렉산더 & 래리 카라제프스키촬영 : 필립 로셀롯음악 : 토마스 뉴만-- CAST --우디 해럴슨 : 래리 플린트 역코트니 러브 : 알시아 리저 역애드워드노튼 : 알란 아이삭맨 역본 스토리에 앞서 - 감독과 주연배우의 소개감독 : 밀로스 포먼체코 태생으로 프라하 영화학교를 졸업한후, 1963년 데뷔작인 '블랙 피터'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미국에 망명하여 1975년 켄 케이시 소설을 원작으로 한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를 연출하여 아카데미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등 5개부문을 휩쓸면서 세계적인 감독으로 부상했다. 그 후, 1984년 '아마데우스'를 감독하여 아카데미 8개부문을 석권하여 또 한 번 실력을 과시했다.우디 해럴슨 : 래리 플린트 역영화마다 독특한 캐릭터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는 성격파 배우. 올리버 스톤 감독의 '킬러'에서 진짜 킬러로 의심받을 만큼 광기로 번뜩이는 눈빛의 킬러역으로 전세계의 비평가들과 관객들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데뷔작은 '와일드 캣', '덩크슛'과 '머니트레인'에서 웨슬리 스나입스와 환상의 콤비를 이루었고, '은밀한 유혹'에선 데미 무어와 로버트 레드포드의 상대역으로 열연해 호평을 받았다.코트니 러브 : 알시아 리저 역연기자로서보다 그룹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의 미망인 혹은 록그룹 홀(Hole)의 리더로알려진 코트니 러브는 10대 후반부터 미국 전역은 물론 일본과 타이완을 순회하며 연주활동을 펼친 재능있는 뮤지션이다. 영화 데뷔작은 '시드니와 낸시'. 그밖에 '바스키아트', '필링 미네소타'에 출연했다.스토리 전개1952년 켄터키의 산골마을. 어린 래리와 동생 지미는 밀주가 가득 담진 수레를 힘겹게 끌며 산비탈을 오르고 있다. 산 중턱의 오두막에 사는 주정뱅이 영감은 래리와 지미의 단골이다. 플린트 형제는 아직 술맛을 알지 못했지만 술이 돈이 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 알시아와의 첫 만남. 그리고 그즈음, 래리는 의 손님들이 점점 따분해 한다는 것을 알고, 홍보용으로 알시아와 같은 기막힌 대서들의 나체 사진을 실은 를 제작한다. 그의 판단은 적중했고, 래리는 이 뉴스레터를 월간지 로 만들어 전국에 배포한다. 그러나 엄청난 돈을 들여 제작한 허슬러는 계속 반품이 된다. 서점의 상인들이 아예 진열대에 늘어 놓지도 않았으며 오하이오주에서 래리를 음란물 간행죄로 고소까지 한다. 바로 이때 뜻밖의 행운이 찾아온다. 재클린 오나시스의 나체 사진을 허슬러에 게재하게 된 것이다. 허슬러의 판매 부수는 순식간에 2백만부를 뛰어넘어, 래리는 백만장자가 된다. 그러나 가 유명하게 되면 될 수록 보수주의자들의 반대도 점점 거세지고, 마침내 래리는 음란물 간행죄로 고소되어 철창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그리고 그 때, 그의 평생의 법정 싸움을 함께 해줄 신출 변호사 앨런 아이삭맨(에드워드 노튼)을 만난다. 아이작맨은 "나도 당신의 잡지는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죠."라며 래리의 변호를 승락한다. 법원을 집 드나들 듯이 하던 래리. 그러나 그의 사업은 번창하고 알시아와 결혼도 했다. 모든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던 중, 미국 국민이 존경하는 유명한 목사 제리 포웰이 허슬러에서 어릴 때 어머니와 근친상간을 했다는 등의 풍자 광고가 실리자, 제리 포웰은 래리를 명예 훼손죄로 고소한다. 이에 래리 또한 맞고소를 한다. 무단으로 자신의 광고 사진을 사용했다며. 그리고 그의 변호사 아이삭맨은 수정 헌법 제1조를 근거로 여론을 유리하게 만들어간다. 재판을 끝내고 나오던 래리와 아이삭맨은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에 의해 쓰러지고 하반신 불구가 되나 범인은 끝내 잡지 못한다. 분노한 래리는 이 사건을 보수적인 정부기관이 연루된 것으로 보고, 정부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한다. 래리는 법정에 성조기로 된 기저귀를 차고 나오거나, 별 상스런 말들이 찍힌 T-셔츠를 입고 나오는 등 기행을 일삼는다. 벌금이 부과되자 스트립 걸들을 앞세워 쓰레기 봉투에 담긴 위해 수정 헌법 1조가 존재한다."“"래리는 LA에 살며 29개의 잡지를 출판한다. 현재도 휠체어에 의지한다. 저격범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알란도 LA에 살며 현재도 래리의 변호사다. 파웰은 가장 존경받는 미국 성직자 중 한 명이다. 찰스 키팅은 링컨 금융대출 스캔들의 핵심인물이었으며, 그의 비리로 인해 미국인은 20억 달러 조세 부담을 안았다."래리 플린트, 미국, 그리고 짧은 내 생각 - 동전의 앞면살인은 불법이다. 그러나 살인을 찍은 사진을 에 실으면 퓰리처상을 받는다. 섹스는 합법이지만 그걸 사진으로 찍어 잡지에 실으면 감옥에 간다. 살인과 섹스 중 어느 것이 더 유해한가.이 그럴 듯한 말은 세계 굴지의 포르노잡지 의 발행인인 래리 플린트의 말이다. 그리고 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의 광고문구이기도 하다. 밀로스 포먼이 감독하고 올리버 스톤이 제작하고 우디 해럴슨과 코트니 러브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이 영화를 내가 보게된 건 이 영화를 만든 그 화려한 면면들 때문이라기보다 광고문구로 쓰인 래리 플린트의 매혹적인 선동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래리 플린트라는 인간은 타고난 선동가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곰곰이 듣고 있다보면...“나는 미국의 3등 시민이다. 나의 권리가 보호받으면 다른 모든 사람들의 권리는 자연히 보 호받는 것이다. 나의 죄는 나쁜 취향을 가졌다는 것뿐이다. 남성과 여성은 신이 창조했다. 남성과 여성의 성기도 신이 창조했다. 그러니 그걸 찍어라. 전쟁과 섹스 중 어느 것이 더 부도덕한가!”이런 말을 할 줄 아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뭘해도 성공했을 것이다. 단지 그가 포르노에 대한 강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포르노로 성공했을 뿐, 다른 일을 했어도 그는 백만장자가 되었을 것이다.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말재주도 다 보통 이상이다. 먼저 제작자인 올리버 스톤의 말을 들어보자.“래리 플린트를 영화로 옮기는 일은 아주 거북하지만 매력적인 작업이었다. 난 래리 플린트 에 대해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는데, 아마 포르노산업에 잘 살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자유스럽기 때문이다.”다음은 래리 플린트 역을 맡았던 우디 해럴슨의 말.“처음 영화에 대한 제의가 들어왔을 때 솔직히 '누가 이런 저속한 놈에 대한 영화를 만들려 고 하는 거지!'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포먼 감독이 영화의 내용과 장점에 대해 많은 얘길 해줬고 직접 래리를 만났을 때 그가 탁월한 유머감각을 지닌, 기대 이상의 사람이란 걸 알 았다. 래리 플린트나 나는 둘 다 세상에서 성공한(혹은 실패한) 백인 쓰레기 쾌락주의자들 이다. 내 말은, 나는 그와 닮은 구석이 있다는 거다. 난 그가 한 일들을 꽤 존경한다.”참 탁월한 말재주들이다. 래리 플린트도 그의 삶을 영화로 만든 사람들도. 그러니 래리 플린트가 결국 대법원까지 가서 승소판정을 받고,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구속당하거나 상영불가판정을 받기는커녕 베를린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기까지 하는 것 아니겠는가.우리는 어떤가. 마광수씨가 구속되어 유죄를 선고받고 실형을 살고 나왔으며 만화가 이현세씨도 결국 유죄를 선고받고 출판을 중지하기에 이르렀다. 라는 보다 덜 노골적이고 조금은 우아한(?) 포르노잡지의 한국판을 내려다가 발행인이 구속된 적도 있다. 우리에게는 미국의 수정헌법 1조와 같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복음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내 생각으로는 마광수씨도 의 발행인 이현세씨도 래리 플린트만한 언어적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백만장자가 못되었다고 생각한다.세상에 훌륭한 말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좋은 말들을 한 마디도 제대로 못하고 당하고 마는가. 재능이란 의지나 신념의 다른 표현일텐데, 다시 말해서 그들은 래리 플린트만한 신념이나 의지가 없었던 거 아닐까.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나는 포르노를 미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포르노도 만들 수 있고,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같은 3등시민, 쓰레기 쾌락주의자들의 권리가 보호받으면 우리 같은 선량한 시민의 권리는 당연히 보호받을 수 있다. 그들이 그런 걸 표현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1등이나 2등 시민가 없다. 정말이지 포먼의 말대로 이 영화는 끝까지 포르노를 미화하지 않는다. 적절한 거리를 두고, 안전하게, 포르노도 볼 수 있고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쁜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도 보호되어야 한다, 마침내 미국의 위대함은 그런 자유가 보호된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이제 더 이상 미국을 아니꼽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이런 뻔한 이야기를 안전하게 극적인 논리를 갖춰 그럴듯하게 전하고 있는 이 영화가 별 재미는 없어 보인다. 밋밋하다.아주 적당한 수위로 이야기하고 있어서 그러니 심의에 걸릴 이유도 없었다. 3등시민의 영화가 아니니까. 2등시민도 아니고, 저건 말할 나위 없는 1등시민의 양질의 영화다.나는 이 영화가 한국의 공윤을 아무 탈없이 통과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들려준다는 미세한 차이로...래리 플린트, 미국, 그리고 짧은 내 생각 - 또 다른 뒷면미국이라는 자유의 테두리 안에 살아가는 래리 프린트의 이런 행각도 과연 평범한 미 중산층에게 가능할까?결론부터 얘기하자면 'NO'다.현대사회처럼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에는 표현수단을 가지지 않은 사람, 즉 보통사람이 그 자유를 누리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변호사를 살 돈이 있거나 떠들어댈 마이크를 쥐고 있는 사람이나 그런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래리 플린트는 라는 잡지의 거대자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문제를 일으키고 싶어하는 개인적인 취미활동이기도 했겠지만...그러니 이 영화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히 말하자면 래리 플린트의 자유가 아니라 래리 플린트 상업의 자유일 것이다. 따라서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이러한 점들을 모른척하고 들여다보면 편한 법정드라마 형식을 통해 래리 플린트의 기행을 좇고 있는 이 영화는 그저 '성공한 미국인 래리 플린트'의 이야기일 뿐이다.그도 그럴것이 잡지를 비롯한 포르노산업처럼 미국적이고 드라마틱한 것이 없다. 영화 소재로 그만이다. 포르노는 2차 대전 중 미국에서 탄생해 엄청난 성장가도를 달려온 생말이다.
서론 : 장미는 절대로 쓰레기통에서 피지 않는다.[5.18].광주를 생각나게 하는 그 날은 또다시 지나갔다. 새삼스러이 광주에서 일어났던 참상들을 되새김질했던 언론은 전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광주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축제가 끝나면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지는 축제 의상처럼 광주는 다시 역사의 한 구석으로, 빛바랜 흑백 사진 몇 장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다.나는 의구심을 느꼈다. 광주가 그렇게 가벼운, 한낱 이벤트에 지나지 않는 건가? 오월 중순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광주가 나오고, 민주주의가 나오고, 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던 독재자 전두환의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18일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들 광주에 대해 입을 다문다. 땅에 묻힌 민주주의를 위해 죽은 수많은 영혼들이 하늘을 떠돌아다니는데도, 피비린내 나는 학살의 주범인 전두환은 마치 개선장군처럼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여유 있는 웃음을 짓고 있음에도.[아무도 광주를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그런 일련의 현상들을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비단 광주뿐만이 아니다. 민간인 학살도 의문사도 역시 모두들 생각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짐짝 으로만 인식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들을 미련한 사람들 로 손가락질 하며 외면하기에 급급했었다.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모두들 당연하게 여기는 말일수도 있겠으나 뚜껑을 열면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독재와 그에 항거하는 민주화 세력의 싸움, 그리고 무자비한 탄압과 인권 유린으로 얼룩졌던 나라. 정치적 이해관계로 살아난 옛 탄압의 주체들이 다시 개선장군처럼 고개를 당당히 펴고 오리발을 내미는 나라. 그 탄압의 주체들에게 진상 규명을, 사죄를 강력히 요구하지 않는 나라. 민주화를 위해 용감히 싸운 사람들을 한낱 이벤트 소품으로 전락시키는 나라! - 그것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의 실체였다. 그런 과거를 경험했음에도 아렌트의 말처럼 정의 없는 동정 에 너무나 익숙한, 과거를 너무나 쉽게 용서하고 망각하는 우리들과 그런 우리들의 앞에 펼쳐질 미래. 나는 그 미래의 전포섭하는 데에도 소기의 효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보련의 실상은 단지 좌익세력을 포섭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민족주의자들을 비롯한, 즉 이승만 친미 독재에 반하는 인물들도 자연스럽게 좌익 세력으로 몰아 보련에 강제로 가입시켜 그들의 활동을 통제하려는 목적 또한 지니고 있었다. 결국 보련은 1년 전, 즉 1948년 공포된 국가 보안법과 함께 반체제적 인사들을 통제, 탄압하고 이승만 정권을 비호하는 충실한 비호자였던 것이다. 한국 전쟁기 보도 연맹원 학살의 비극은 이미 보련의 설립 과정에서부터 복선처럼 깔려있었던 것이다.보련 확대의 과정-강제 가입의 시점에서그렇다면 그 보련의 구성원들은 전부 위에서 언급한 좌익 사상가, 혹은 반체제적 인사들 뿐 이었을까? 1960년 민간인 학살 진상조사 특위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보련 중앙 본부가 각 지방행정단위에 할당량을 부여, 좌익 사상과는 무관한 민간인들도 강제로 가입시켰다는 증언이 있었다. 1960년 6월 5일의 증인 신문 속기록을 보자.(중략)증인(오용수) : (중략) 좌익계에 있던 사람들이 농민조합 이란 걸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농민이 좋다고 그러니까 들었습니다만, 나중에 좌익계열이라 해서 총 퇴진을 했습니다. 그런데 과거에 농민조합에 들었던 사람을 전부 강제로 보련으로 가맹이 되었습니다.(중략){) 끝나지 않은 전쟁 국민 보도 연맹 (김기진 저, 역사비평사) 82쪽할당량을 채우기 위해서 억지로 맹원을 만들려 하니 자연히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가입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좌익 사상을 알건 모르건 위에서처럼 농민, 어민 조합에 멋모르고 가입한 경력이 있거나 야산대와 접촉한 경력이 있는 자, 심지어 좌익성 발언이 있던 모임에 참석한 사람까지 가입시켰다. 또한 어떤 단체에 소속된 사람일 경우 그 단체를 탄압하거나 우익 단체들의 폭행 등 우회적이고 타율적, 수동적인 방법으로 가입이 이루어진 사례도 있다. 또한 좌익 사상과 무관한데도 불구하고 자율적으로 가입한 사례역시 있는데, 이는 비료나 양식을 타기 위해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부르짖는, 진상 조사가 한창이던 당시 증언자였던 백씨의 피맺힌 절규. 이 절규를 들어야할 자는, 그리고 미안하다 라고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물론 이승만 독재 정부가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 할 것이지만,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들의 피울음과 그들이 묻혔던 산천과 푸른 별의 증언을 외면하고 말았던 우리들 역시 그 죄의 무게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1959년의 이카루스-조봉암의 법살[옥중에서 밀랍과 깃털로 날개를 만들어 이카루스의 등에 매달아 준 후, 그의 아버지 데달루스는 높이 날지 말 것을 경고했다. 뜨거운 태양 빛에 밀랍이 녹아 추락할 것을 염려해서였다. 그러나 이카루스는 높이 비상하였고, 태양의 빛에 밀랍이 녹아 결국 그는 검푸른 바다로 추락하고 말았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1950년대에 활동했던 그 누군가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하다. 죽산 조봉암. 진보의 날개를 달고 날아올라 1959년 7월 31일 처형당함으로써 끝난 그의 비상. 그는 왜 추락해야 했을까?붉은 역병, 매카시즘과 친일 기득권 세력1940년대 후반, 미국은 반공주의라는 역병이 만연했다. 훗날 매카시즘으로 명명된 그 역병은 흡사 중세의 마녀 사냥처럼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관료들을 용공, 공산주의자로 뒤집어 씌워 보수 언론과 협공을 가해 그들을 내몰았다. 좌우 이데올로기의 최전선이었던 해방기의 한반도 역시 그 역병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시대적 혼란을 틈타 친일에서 친미로, 과거 일제 식민 세력에서 지금의 미군정을 등에 업은 이승만의 극우 독재체제로의 편입에 성공한 수구 기득권 세력 즉 친일파 들은 매카시즘의 역병을 더욱 부채질해 그들에 반하는 민족주의세력을 공산주의자, 소위 빨갱이 로 몰아 붙여 거세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과정에서 등장한 국가 보안법 은, 말 그대로 민주주의를 단숨에 집어삼킨 초헌법적인 괴물이자 과거의 친일 친미파, 즉 극우 독재 세력의 충실한 비호자였다. 1950년 발발한 한국 전쟁은 그으며, 진보당 전 피고는 국가보안법에 저촉된 혐의가 없으나 ...... 조봉암 피고는 대남간첩 양명산에게서 돈을 받는 등 간첩활동을 했다. {) 한국 현대정치의 악몽-국가폭력 (책세상), 95쪽결국 간첩 혐의를 풀지 못한 조봉암과 양명산에게는 사형이, 다른 진보당 간부들에게는 무죄가 선고되었다. 물론 조봉암은 포기하지 않았고 재심을 청구했으나, 당연히 재심은 기각되었다. 그리고 재심이 기각된 그 다음날 즉 1959년 7월 31일의 아침, 비밀리에 그리고 신속하게 조봉암에 대한 처형이 이루어진 것을 끝으로 진보당 사건은 그 막을 내리게 된다.이 일련의 사건에서, 네 가지의 의문점이 발견된다. 첫 번째, 1심에서 조봉암에게 내려진 5년형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형은 왜 그 이후 사형이라는 극형으로 훌쩍 뛰어 올랐을까? 5년형을 내렸던 1심과는 달리 다른 재판에서는 단지 간첩죄라는 죄가 하나 추가된 것뿐이었다. 두 번째, 결국 평화통일론을 필두로 한 진보당의 당론이 그릇된 것이 아니었고, 다른 간부들은 전부 무죄를 선고 밭았음에도 왜 조봉암은 끝내 죽어야 했는가? 셋째, 1심이 끝난 후 양명산은 협박과 회유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허위진술을 했다고 양심선언을 했음에도, 그래서 간첩혐의가 허구란 것이 밝혀졌음에도 왜 그 두 사람은 간첩죄의 멍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는가? 넷째, 왜 재심 기각 다음날 허겁지겁 형을 집행했는가?그 네 가지 질문을 종합해 보면, 답은 오로지 하나뿐이다. 진보당 사건은 속내가 빤히 들여다보이는, 이승만을 위협하는 정적인 조봉암을 제거하기 위한 조작극이었다는 것. 또한 조봉암의 제거를 통해 당수가 사라진 진보당을 소멸시키고, 그동안 진보당이 진행시켜 왔던 각종 혁신주의 개혁을 무(無)로 돌리는 것. 그것이 제기된 네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자 진보당 사건의 유일무이한 목표였던 것이다.결론-이카루스를 위한 레퀴엠조봉암의 처형은 한국 근현대사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앞서 말 한대로 당수가 사라진 진보당은 소멸되었고 그들이 추구했던 개혁은 한줌 반국가 단체로 지목되었던 인혁당. 그 엄청난 폭탄이 터진 후 한 차례 검거의 폭풍이 휘몰아 쳤다. 그 후 수사가 시작되었으나 수사는 난향을 겪게 되었다.처음에는 당 명칭만 봐도 그렇지만 굉장한 사건으로 알았다. (중략) 하나씩 나누어 분담수사를 하고, 매일 한번씩 부장 방에 모여 수사 진전 상황을 보고하는데, 초기부터 문제가 생긴 게 물증이 하나도 없다는데 1차 봉착했다. 보통 조직범죄의 경우 자기들끼리 뭘 하는 사진이 있다든가, 안 그러면 공작에 의해서 녹음을 해 놓는다든가 정당의 강령을 공작원들이 입수해 온다든가 이런 게 있어야 되는데, 그게 하나도 없었다. 순 말로만 갖고 수사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사법살인 1975년 4월의 학살 (천주교인권위원회, 학민사) 294쪽.인혁당 사건이 문제가 된 것이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었다. 심증은 있으나 그것을 뒷받침할 물증은 전혀 없다는 것. 결국 1차 인혁당 사건은 6.3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급조된 사건이었다. 이는 그 당시 검거된 사람들의 출신 성분으로도 잘 알 수 있는데, 당시 학생운동의 구성원이나 과거에 그런 경력이 있던 사람, 혹은 지식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당시 사회에 비판적인 메스를 가할 수 있는 사람들 이었다.이번 사건은 6.3계엄사태를 합리화하기 위해 엉터리로 조작된 것이며, 이러한 엉터리 조작에만 여념이 없는 중앙정보부는 이번 기회에 아주 없에 버리는 것이 좋지 않겠소. {) 위 책과 동일, 165쪽.그런 추궁 속에서도 정부는 인민혁명당은 정부전복을 목적으로 학생 데모를 조종한 단체라는 의견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정부의 발표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힌 문제가 또다시 수면으로 떠올랐으니 피고인들이 물고문이나 전기고문을 당했었다는 진술, 즉 고문 의혹이었다. 피의자중 한명이었던 전씨의 경우 사지를 묶인 채 뒤로 누워진 상태에서 물고문을 당했다. 수사관들은 인민혁명당 조직 보따리를 내놔라 라고 윽박지르며 물고문을 했는데 전씨는 그 후 기침을 할 때마다 피가 나왔다. 고문의)
자연환경 보호 사례-지율 스님의 천성산 도롱뇽 소송사건과 관련하여....-1. 서론인류의 역사 발전과정은 환경에 대한 인간의 끊임없는 도전과 정복, 개발의 과정이었다. 특히, 근대 이후 급속히 진행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인류는 환경을 이용 대상으로 여기고 무분별하게 개발하고 오염시켜 왔으며, 그 결과 인간과 환경의 유기적인 균형 상태는 붕괴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오늘날 인간의 '삶의 질'은 심각한 위협을 받기에 이르렀다.현대의 여러 가지 혹독한 환경적 결과는 급속한 기술적 진보가 주된 원인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환경에 대한 가치관, 또는 윤리 의식의 결여와 안이한 태도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기술적, 정치적, 또는 법적인 측면에서의 개선만으로 궁극적으로 이러한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하나밖에 없는 지구를 잘 보존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1970년대까지만 하여도 경제 부흥을 위한 개발이 우선 과제였기 때문에 환경을 어느 정도 파괴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기는 풍조가 만연하였다. 경제 발전을 위해 개발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사는 터전은 파헤쳐지고 심각한 오염이 진행되었다.이제 경제 발전을 위해 앞만 보며 달려왔던 우리는 자연과 생태계 파괴의 심각성을 깨닫고 그 해결책을 도모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인간편의 중심의 개발위주의 정책은 오늘날 까지 이어졌고 이러한 문제의 연장선상으로 현재의 천성산 도롱뇽 소송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천성산에 고속도로를 뚫어 국가의 이익에 부응해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과 천성산의 생태계(도롱뇽)를 보호해야 한다는 지율스님의 주장이 대립되어 법적 공방까지 간 가운데 이 문제를 통해 자연환경 보호의 중요성과 이 문제에 대한 법적 문제점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2. 천성산 터널공사 금지 사건의 현황(1) 사건 일지.2002년 6월1일 경부고속철 2단계 대구~부산 착공.12월4일 노무현 후보, 천성산 터널 백지화 공약.03년 2로 공사가 중단되고 노선재검토위가 구성됐지만 기존 관통노선으로 재확정 됐다. 지율스님은 또다시 부산시청 앞에서 35일간의 단식농성에 들어갔고 2003년 10월 울산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지난해 4월 각하와 기각결정을 내렸다.지율스님과 환경단체는 부산고법에 항고했고 지난해 6월 30일부터는 청와대 앞에서 58일간의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철도공단과 지율스님이 공사중단, 단식중단 등에 가까스로 합의하면서 도롱뇽 소송은 법원의 손에 넘겨졌다. 부산고법은 최종 결정에 앞서 지난 15일 공사재개와 6개월간 전문가의 환경조사를 병행하라는 조정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환경단체의 거부로 조정은 무산되고 법원은 29일 공단측의 손을 들어주고 말았다. 그 이후 2005년 2월3일까지 지율스님은 천성산을 지키기 위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고 이를 보다 못한 정부는 지율스님 단식 100일만에 천성산 환경영향평가 공동조사 제안을 받아들여 지율스님의 단식을 중단시켰다.(2) 천성산 고속철 터널공사 중지를 위한 도룡뇽 소송사건1)배경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은 1994년에 발표한 「경부고속철도 부산경남권 건설사업 환경영향평가최종보고서」를 통하여 계획노선 주변에는 특별히 보호를 요하는 동 식물은 없음 으로 보고하였고 이 내용을 근거로 경부고속철도 부산경남권 사업이 전격 추진되었다. 2002년에는 대한지질공학회에 의뢰하여 천성산 지역에 대한 환경실태조사를 재실시하였으나, 환경부고시 멸종위기종 및 보호동식물은 조류의 말똥가리, 곤충류의 꼬마잠자리 단 2종만 발표되었다. 결국 고속철도건설공단에서 진행한 「경부고속철도 천성산(원효터널) 통과 자연변화 정밀조사」는 경부고속철도 부산경남권 사업에 면죄부만 주게 된 것이다.녹색연합이 조사,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말똥가리와 황조롱이를 포함하여 천성산 일원에는 천연기념물 포유류 1종, 조류 10종 등 총 11종이 관찰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천성산 일원은 수질 1급수의 계곡부에서만 서식하는 꼬리치레도룡뇽이 집단적으로 서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또질조사를 철저히 하지 않아 상당수의 환경파괴와 훼손을 낳았다. 중앙환경분쟁조정위와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주민들이 입은 재산상의 피해를 호소하는 민원이 계속 접수되었고, 감사원, 국정감사에서도 고속철공사의 폐갱도 위험요인과 부실이 지적되었다.천성산/금정산의 양산, 부산 구간에 16km 이상의 장대터널이 계획되면서 지하수 누수에 의한 천성산 고층습지의 파괴와 생태계 파괴가 논란이 되고 있다. 환경부가 지정한 자연생태계보전지역 인 이 구간은 터널 노선 구간 중 3개소 이상의 활성단층과 파쇄대, 그리고 수직 상부에 습지가 위치하는 바 터널규정상 공사를 피하라고 주문하는 지역이다. 천성산 구간을 터널로 통과시 그 수직 지상에 위치한 22개 고층 습원과 12개 계곡에 지하수위 하강에 따른 생태계의 파괴가 수반되며, 향후 토사 유출 및 대규모 산사태 등도 예견된다.또 그 당시 대선 후보였던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도 이 사건의 소송을 일으키는 데 한 몫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당시 새천년민주당 대통령후보)은 이렇게 말하였다. 영남인으로 영남의 맥을 끊는 고속철도 건설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느냐? 나를 믿어 달라. 2002년 12월 4일, 노무현 후보는「고속철도 사업을 전면 백지화하고 대안노선을 검토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지금 청와대는, 진입로 공사중지와 공정한 환경영향평가 재실시를 요구하며 단식정진 46일을 넘기고 있는 지율 스님과 도룡뇽 소송인단 25만여명의 목소리에 대해 철저한 침묵만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2)도롱뇽 소송의 경과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관통저지 대책위는 천성산에 서식하는 도룡뇽과 그 대변인 자격으로 지율 스님 등 3명을 지정,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을 상대로 한 고속철 천성산 관통구간 공사 착공금지 가처분신청서를 지난해 15일 부산지법에 제출하였으나, 도룡뇽을 소송당사자로 인정할 수 없다 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곧바로 항소한 뒤 지율스님은 지난 6월 30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하지만 또 다시 부산고등법원 '도롱뇽 소송' 항고심 재의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는 이하의 법적 검토에서 자세히 알아본다.3. 도롱뇽 소송 사건에서의 법적 문제점 검토( 자연의 권리 의 소송 가능성 여부의 문제 검토)(1)머리말2003년 10월 15일,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관통저지 비상대책위원회는 천성산에 서식하는 꼬리치레도룡뇽(이하 도롱뇽 이라 한다)을 원고로 하고 자신들을 도룡뇽의 친구들 이라는 명칭의 도룡뇽 대변인 으로 내세워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을 상대로 고속철도 양산시 천성산 구간 공사착공금지 가처분신청 을 냈다. 공사착공금지 가처분신청의 형태이기는 했지만, 그동안 미국, 일본 등에서 야생동식물을 원고로 내세워 제기된 「자연의 권리」 소송이 드디어 우리 나라에서도 법적 심판의 대상으로 대두된 것이다.동물이 원고가 되어 소송을 제기한다는 사실 자체가 웬지 낯설다. 회사와 같은 무형의 법인에게 법인격을 인정하고 소송상 당사자가 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할 당시에도 일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소송을 담당한 판사조차도 당황스러워 하며 당시의 심정을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단지 법적 사고에서 존재하는 실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법인에게 법인격을 인정하여 소송상 당사자가 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법인이 소송상 권리를 가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그렇다면 동물에게 소송상 당사자가 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자는 발상은 어떤가. 일반인 뿐만 아니라 판사에게 주는 황당함이 무형의 존재인 법인에게 소송상 권리를 인정하자는 발상보다 결코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과연 자연물 자체에게 소송상 권리를 인정할 수 있을까.이러한「자연의 권리」 소송은 자연환경이나 생물종 보호 같은 환경관련성을 특징으로 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동물복지법(Animal Welfare Act) 등과 관련해 동물학대의 금지 등을 위한 「동물 권리」 소송과는 성격이 다르다.「자연의 권리」 소송은 주민의 생명 신체나 재산 보호를 위한 전형적 소송유형과는 달리 자연 그 자체를 소송당사자로 해 그 보자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C라는 사람이 A를 상대로 소유권에 기한 방해배제청구권을 행사한다고 하면 C는 당사자적격이 없다는 이유로 판사의 심리도 받지 못하고 법원의 문밖으로 쫓겨나는 소각하의 판결을 받게 될 것이다.그런데 당사자적격이 위에서처럼 명확하게 구분되는 경우도 있지만 다양한 실제 소송과정에서 당사자적격 유무의 판단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가령 어느 지역에 대규모 연탄공장을 건설한다고 해보자. 연탄공장이 건설되어 가동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연탄먼지와 소음으로 인하여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한 공장 인근의 산에 아름다운 산책로가 있었고 이 산책로를 주변 사람들이 자주 이용해 왔는데 연탄먼지와 소음으로 인하여 더이상 산책로를 이용하지 못하여 간접적으로 피해를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기타 경제적 심리적 이익을 잃어버리는 많은 부류가 있을 것이다.이런 경우 어느 범위까지 당사자적격을 인정해야 할 것인가. 과거에는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만 당사자적격이 인정되었으나 최근에는 당사자적격을 확대하여 간접적인 피해를 입은 부류에게도 인정해주는 방향으로 발전해오고 있다. 즉 당사자적격에 대하여 요구되는 요건을 완화하여 환경에 대한 침해는 사람에 대한 침해라는 인간중심적 이론에 근거하여 사람들이 좀더 쉽게 자신의 이름으로 환경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환경 자체를 보호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점이 있다.이 사건에서는 신청인으로 표시된 도롱뇽이 당사자능력을 가지는지의 여부가 문제된다. 도롱뇽이 그 생존권을 위협하는 터널공사착공을 금지하는 가처분을 신청한 것은 도롱뇽 자신이 고유한 생존의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실제로 고속철도 천성산 관통저지 전국비상대책위원회는 천성산 일대에 서식하는 1급수 환경지표종인 꼬리치레도롱뇽의 이름으로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을 상대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소송을 제기한다 고 밝혔다. 만일 도롱뇽이 자연인과 마찬가지로 고유한 생존의 권리를 가진다고것이다.
도시계획사 Report‘고대 문명의 환경사’을 읽고(Ecology in Ancient Civilization)1. 환경과 문명그리스인들이 건설한 가장 훌륭하고도 아름다운 신전이라 일컬어지는 파르테논 신전은 바로 그들이 파괴한 자연 환경의 폐허에 둘러싸여 있으며, 북아프리카에서 번성했던 고대 로마 도시는 사하라 사막속에서 최근에 발굴되고 있다. 한때 번영을 누렸던 메소포타미아의 도시들은 지금 사막 한가운데에 버려진 흙더미 신세에 불과하다. 또한 로마 제국의 멸망은 확실히 자연 환경의 파괴 및 변화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결국 근동지방을 포함한 지중해 연안 지역에는 고갈되고 파괴된 자연환경들 가운데 고대 문명의 폐허들이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이렇게 볼 때, 우리는 문명의 진행 과정과 자연 환경 사이에 깊은 상호 연관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러한 고찰의 과정은 현대 사회의 문제의 뿌리를 밝히는 한편,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들이 자연환경에 대하여 지녀왔던 태도와, 자연환경과의 관계맺음의 방식을 보여주고 반성하게 한다. 이 책의 목적은 바로 환경사의 관점을 취하여 그러한 상호 관련성을 고찰해 보는데 있다. 다시 말해, 생태학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통찰들을 인간 역사 영역에 적용시켜 보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생태학의 주된 관점은 결국 살아 있는 것들과 다른 살아 있는 것들 또는 주위 환경과의 상호 관련성에 대한 탐구이다.이 책에서 다룰 세 가지의 주제 영역은 다음과 같다.1. 환경이 문명의 발달과정에 미친 영향2. 자연환경에 대한 인간들의 태도3. 문명이 자연환경에 미친 영향이다.고대와 현대 세계사이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고대인들의 경우에 자연계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의존의 감정을 지니고 있었고, 실제로도 의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환경 문제들이 고대인들이 직면하였던 것과 유사한 성격을 지닌 것이며, 결국 그것은 자연에 대한 숭배와 호기심, 두려움에서부터 지배하고 이용하려는 태도 까지의 다양래하게 된다. 이러한 신석기 혁명은 인간에게 두 가지 형태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가져다 주었다. 그것은 목자들의 유목생활과 농부들의 정착생활이다.자연환경을 통제하고 변화시키는 인간의 능력은 과 함께 비약적으로 증대되었고, 유목민들에게는 삼림을 파괴할수 있는 힘과 이유가 생기게 되었다. 이들 유목민들이 소유 하고 있는 염소나 양, 소 따위의 짐승들의 식성이나 습성 때문에 숲이나 초원이 파괴되었 으나 이는 전적으로 동물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어디까지나 문제는 그 짐승들을 대량으로 한군데 모아놓고 길러서 증식시키려는 인간들이었다.이 신석기 시대 농경인들의 자연환경에 대한 태도는 그들의 생활양식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듯이 다분히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었으며. 모두 자신들을 자연과 온전히 하나되어 있는 존재로 느꼈으며 인간이 자연이라는 통일된 거대한 전체 속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때문에 아직까지 자연에 대해 경외하는 마음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또한, 당시의 종교 핵심은 생산력과 풍요를 북돋우는데 있었으며, 이는 출토된 당시의 유물로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4.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이집트, 페르시아풍요를 구가하던 사회의 도시들, 사원들, 궁전들, 무덤들이 중동 지방의 전역에 걸쳐서 폐허가 된 채 잠들어 있다. 이를 보면 문명의 흥기는 인간이 주위 자연환경을 이용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의 증대에 발맞추어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문명의 몰락은 주위 자연 환경과의 조화와 균형 상태를 유지하는데 실패함에 따라서 진행되었다. 이 경우에 인간들은 가혹한 생태적 재앙을 겪게 된다. 이 재앙은 기후의 변화에 따라 겪게 된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 자신이 초래한 것이다.메소포타미아메소포타미아 지방의 거의 모든 생명체들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강이 높은 산악 지대에서부터 운반해오는 물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그래서 이 지방에서 일어난 세계 최초의 도시들은 인간들이 이러한 자연 환경과 새로운 관계아의 땅은 황폐화되기 시작한다. 이는 페르시아의 농경지도 메소포타미아에서처럼 염분에 의해 위협당하고 있었으며 야생 동물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점에서, 페르시아로부터 하나의 생태학적인 교훈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것은는 것이다. 덧붙이면, 자연에 대한 좋은 태도는 반드시 자연의 작용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결부되어 있어야하고 자연에 영향을 끼치는 인간의 행위를 통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능력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5. 고대 이스라엘고대 이스라엘은 면적이나 인구면에서 볼 때, 그 자체가 당시의 자연환경에 끼친 영향은 미미했다고 볼수 있으나 저자가 독립하여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의 종교와 그 종교가 내포하고 있는 자연에 대한 태도가 이후의 역사에 끼친 실질적이고 광범위한 영향력 때문이다. 그들의 종교와 사고 방식의 체계는 인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통하여 인간이 자연을 다루는 태도에 직간접의 영향을 끼쳤다.이스라엘이 인류에게 선사한 중요한 것들 가운데 하나가 윤리적인 유일신론이다. 유태인들은 자연을 바라볼 때 다만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움만을 본 것이 아니라, 그들은 자연을 창조주인 신의 힘의 현현으로, 그리고 그의 위대함이 나타난 것으로 보았다. 유태인들은 이러한 신이 창조한 모든 것들을 그 자체로는 좋은 것으로 보고, 관습적으로 부정한 것으로 여기던 동물들도, 이 세계의 질서 안에서 그 나름의 위치를 부여받는 존재로 여겼다. 그 중에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지배권을 부여받았는데, 인간은 모든 피조물들의 주인이 결코 아니며, 그 지배권이란 오로지 하나님의 위임을 받아 행사할수 있는 일종의 대리인으로서의 권리로서 피조물들을 제멋대로 사용할 권리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다만 신의 충실한 부하로서, 오로지 신에 대하여 자신들의 행동을 책임져야하는 처지일 뿐이었다. 그러나 훗날의 서구사상은 그러한 유태인들의 사상적 유산을 상당히 왜곡된 형태로 굴절시켜 계승하였다.유태인들의 사상은 자연결과적으로 자신들의 멸망을 재촉하였다. 그리스의 자연에 가장 직접적이고 큰 영향을 끼쳤던 현상은 바로 삼림의 황폐화였다문제는 나무가 필요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 나무는 어느 시대에서나 연료용으로 애용되었으며,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쓰임새가 많았고, 모든 종류의 건설 작업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자재였으며, 그 유명한 포도주의 숙성에도, 해군력 건설과 증강에도 목재는 늘 필요하였다. 이러한 인간적인 필요 앞에 종교적 금기는 허물어져갔던 것이다. 또한, 목자들은 목초지를 확보할 요량으로 산지의 숲을 태워없애고 그 곳에 가축을 방목하였고 이는 그리스 산지와 언덕에 식물이라고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을때까지 계속되었다.일단 땅이 헐벗게 되자, 지중해 연안에 가을, 겨울, 봄 동안 내리는 비는 자연의 보호막인 나무가 남아있지 않은 무방비 상태의 흙을 휩쓸고 내려갔다. 이렇게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던 생태계를 매우 심하게 변화시켰고, 그 결과 절반정도 숲이 울창하였던 그리스는 오늘날 전국토의 10분의 1도 안되는 땅만이 삼림지대로 남아 있다.사냥도 삼림 개발과 마찬가지로 자연적인 재생산이 가능한 살아 있는 생명체들을 이용하는 일이다. 그러나 삼림과 마찬가지로 동물들도 나무처럼 자연적인 재생산 능력을 넘어서는 정도로까지 과도하게 이용되었다. 야생동물들에 끼친 압력의 총체적인 결과는, 일부 종들의 완전한 전멸이었고, 새로운 종들의 유입이었으며, 생태계의 전반적인 변화였다. 또한 광물자원 채굴과 채석은 그리스 땅에 매우 광범위하고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각종 지하자원의 채굴은 결국 흉한 흔적과 상처들을 땅 위에 남겼을 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토양의 침식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지속적이고 광범위하게 환경에 악영향을 끼친 주 요인은 바로 가축의 방목이었다. 경작에 적합하지 못한 땅의 5분의4정도 되는 지역이 가축들에게 풀을 뜯기는 목초지로 이용되었다. 가장 흔히 방목되는 가축은 양과 염소였는데, 이것들은 자연에는 가장 파괴적이었으나 인간에게는 가장황폐화로 인하여 로마 인들이 감당해야 했던 비용들 중 일부라고 볼수 있다.로마인들이 들짐승을 어떻게 취급하였는지를 살펴보면, 그들의 자연에 대한 일반적인 태도를 잘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착취라고 표현할 수 있을듯하다. 로마의 오락산업은 로마 문화의 다른 어떤 측면보다도 야생동물들에게 많은 피해를 끼쳤고, 지극히 소비적이었다. 야생동물들을 단순히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이 로마의 오락 산업을 지탱해주는 기반이었다. 로마인들의 동물에 대한 수요와 소비는 직업적인 사냥꾼들에 의해 접근 가능한 지역에 서식하던 수많은 동물들이 거의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이러한 야생 동물의 몰락을 기뻐하였다. 사람들을 해치거나 농작물을 망쳐놓는 귀찮은 존재들이 사라지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냥은 문자 그대로 씨를 말리는 사냥이었다. 로마인에게 사냥은 개인적인 스포츠일뿐 아니라 생산, 유통, 판매의 체계를 갖춘 엄연한 산업으로서 이 동물에 대한 막대한 수요는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야생동물들이 멸종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광업 역시 로마인들의 철저한 자연착취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로마인들의 광산 채굴은 자연환경에 많은 생태학적 영향을 끼쳤다. 그들은 지하로 갱을 파기보다는 노천채굴을 선호하였다. 그래서 광산지대의 지표부분이 사라졌고, 결국엔 땅속을 마구 파헤침으로써, 대규모의 토양침식이 일어나기도 하였고, 언덕이 통째로 사라지는 일도 많았다.농업은 로마 인들의 경제 활동 중에서도 가장 광범위하게 전개되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하였다. 두 가지의 주요분야로 나뉘는데, 하나는 가축을 기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땅을 경작하는 것이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로마도 과도한 목축 활동이 여러 가지 문제를 발생시키게 되었다. 가축떼들은 언덕과 낮은 산지의 식물을 말그대로 제거해버렸고, 이로 인해서 토양 침식과 유실은 대규모로 이루어졌으며 삼림벌채등과 맞물려 더욱더 가속화되었다. 또한 경작하는데 있어서도 호누나 늪을 배수시설을 통해서 경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