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인류는 문명이 잉태된 문명 발상지인 4개강을 중심으로 풍요로운 결실을 얻게된다. 나일강의 좁은 범람원과 델타를 무대로 번성 하게 된 이집트,' 노아의 방주'전설을 낳게한 홍수가 기름진 토지를 가져다준 메소포타미아문명, 뛰어난 도기계획과 교역으로 번영한 인더스 문명, 기름진 황토로 농경생활과 정착생활이 발달할 수 있었던 황하문명, 이에 따라 사회와 국가가 이루어졌고, 치산치수가 통치의 기본이었던 인류의 지혜를 체험해 보도록 한다.수량이 풍부하고 지류가 잘 발달된 뛰어난 자연 환경조건으로 발달된 한강유역도 문화유적지를 통해 문명의 발달상을 비교해 볼 수 있을것이다.고대의 4대 문명은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 문명, 황하 문명을 말한다. 이 중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이 문명이 보다 일찍 문명의 단계에 들어섰다. (B.C 3500년경)4대 문명의 발생지들은 모두 북반구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큰 강을 끼고 있었다. 또한 대부분이 온대 기후에 속해 기후가 좋고 기름진 토지를 지닌 지역들이었다.지금의 중동 지방은 주로 사막으로 덮혀 있지만, 당시의 기후나 토양은 오늘날과 매우 달랐다. 6, 7쳔 년 전에는 중동 지방의 기후는 현재보다도 더 온화했고 강수량도 많았다. 또한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도 오늘날처럼 대부분의 지역이 사막이 아니라 푸르고 울창한 숲으로 덮혀 있었다.북부 아프리카의 나일강, 서남 아시아의 유프라테스강, 인도 반도의 인더스강, 중국의 황하 유역은 오랜 옛날에 문명이 발달했던 곳이다. 이들 강 유역에서는 이미 약 5,000년 전에 왕국을 세우고, 달력과 문자를 사용하는 등 발달된 문명을 이룩하였다.?. 고대 문명이 일어났던 곳의 공통점* 강 유역 : 4대 문명 발상지는 황하, 나일 강, 유프라테스?그리스 강, 인더스 강 유역으로 모두 큰 강이 있다. 강 유역에 처음 문명이 발생하게 된 이유는 강에서 생활에 필요한 여러 물자를 얻을 수 있으며, 강 유역에는 기름진 평야가 많기 때문이다. 홍수로 강물이 넘치거나 농사에 한 종교 개혁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수도를 중부 이집트의 알-아마르나로 옮기고 신도시 아케타텐(아텐의 지평선)을 건설하였다.신 왕국시대에 누렸던 영화는 1922년 발굴되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왕가의 계곡'에서 출토된 화려한 부장품들, 그중에서도 파라오 시신의 얼굴 덮개인 '투탕카멘'의 황금 가면 등으로 확인된다. 제19왕조는 람세스 1세부터 시작한다. 그의 뒤를 이은 세티1세는 훌륭한 군사 지도자로 아시아의 지배자가 된 히타이트 왕국을 무력으로 압도하고, 나일 삼각주로 들어오려는 리비아 인들에게 효과적으로 대처하였다. 3대 군주 람세스 2세는 66년간 이집트를 다스린 위대한 왕이었다. 평화 조약과 혼인 동맹을 맺는 등 히타이트족과의 오랜 적대 관계를 청산하는데 성공하였다.제20 왕조의 오랜 평화시대가 가고, 왕권이 몰락하고 사제들이 정치를 농단하고, 외세의 침입을 받는 제21-25왕조가 이어진다. 제3중간기라고 불리는 이 혼돈과 좌절의 시기에는 리비아 계 군주들이 통치하고 누비아 인들이 상 이집트 전역과 중 이집트의 멤피스까지 약탈하며, 이디오피아 군주들과 앗시리아 인들의 지배를 받게 된다.기원전 663-332년의 후기왕조 시대는 이집트를 지배하던 앗시리아 인들을 무찌른 하 이집트 델타 지역 사이스의 왕자 프삼티크 1세의 제26왕조로부터 시작된다. 2대 군주 네코의 시대에는 상업이 발달하고 해군력이 증강되었으며, 나일 강과 홍해 사이에 운하가 건설되었고, 특히 이집트와 그리스 사이에 교역이 발달하며, 많은 그리스 인들이 상인으로서, 왕가의 용병으로서 이집트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제27왕조 시대에 페르시아의 군준 캄비세스 2세가 이집트를 정복하고 총독을 두어 다스렸으나 이집트인들은 복종하지 않았다. 외세의 강점에도 불구하고 건축과 조각과 문학이 흥성했다.페르시아 군주들의 암살, 사망, 아테네와의 마라톤 전투에서의 패전등을 계기로 델타 지역에서 끊임없이 반 페르시아 봉기가 일어났고, 그때마다 무자비하게 진압되었다. 제28왕조를 연 사이스 출신 아미르타에과학 기술나일 강의 범람 시기를 알기 위해 천문학과 태양력이 만들어졌고 범람 후의 경지 측정의 필요성에서 기하학이 발달하였다. 또한 신전의 축조 과정에서 건축술, 지렛대, 도르래의 원리가 이용되었다. 수학에서는 10진법이 사용되고, 미이라 제작 과정에서 외과 의학이 발달하였다.?.피라미드와 스핑크스피라미드피라미드는 초기왕조시대의 마스타바에서 발전된 것으로, 제18왕조 초에 왕묘가 암굴묘(岩窟墓)의 형식을 취할 때까지 계속된다. 최성기는 제3∼5왕조로 '피라미드시대'라 부른다. 최고(最古)의 피라미드는 사카라에 있는 제3왕조 제2대 조세르왕의 '계단식피라미드'로 재상 임호테프가 설계한 것이다. 처음에는 한 변이 63m인 직사각형 석조 마스타바로, 중앙에 깊이 28m의 수혈(堅穴)을 파고 그 밑에 매장실을 만들었다. 그러나 확장공사가 시작되어, 결국 마스타바를 6단 포개 놓은 모양의 밑변 109×126m, 높이 62m의 계단 피라미드가 완성되었다. 이것은 종교적으로는 헬리오폴리스를 중심으로 예로부터 존재했던 태양신 숭배가 피안(彼岸)의 신앙과 결부된 결과로, 계단은 죽은 국왕이 하늘로 올라가기 위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태양신과의 결부는 후의 정통 피라미드의 출현으로 한층 긴밀해졌다. 피라미드 그 자체는 왕의 미라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다. 그러나 음식물과 가지각색의 물품을 진열하여 제사를 지내는 장소도 필요했다. 그래서 피라미드 북측에 장제전(葬祭殿)이 건조되고, 다시 동쪽에 세드제(祭)의 의식을 행하는 신전·소신전·중정(中庭)이, 남쪽에는 제단이 있는 대중정이 축조되고 그것들을 높이 10m, 동서 277m, 남북 545m의 사가거형의 주벽(周壁)으로 둘러 장대한 묘소를 형성하였다. 이것들을 '피라미드 복합체'라고 부른다.측면이 평면인 정통 피라미드는 제4왕조로 들어와 출현한다. 초대인 스네프루왕(BC 2600∼?)은 3개의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메이둠의 것은 현상이 2단탑의 모양이나, 본래는 8단의 계단 피라미드를 만들고, 단의 부분을 메워서 정통 피라미드로아법)에 큰 영향을 끼쳤다.지금은 텔 엘 무카이야르이다. 1854년 J.E. 테일러가 발견하였다. 우바이드기에서 페르시아 시대에 이르는 각 시대의 유적 ·유물이 밝혀졌으며, 최고 주민은 BC 4000년경까지 소급된다. 우바이드기 후반에 2.4 m 두께의 홍수층이 있는데, 울리는 이것이 수메르지방 일대를 덮치고 뒤에 길가메시 서사시에 반영된 대홍수라고 생각하였다.울리는 ‘왕가의 묘지’로 일컬어진 지구에서 약 2천기를 발굴하였으며, 왕묘는 그 중 16기이다. 모두 지하에 석조로 만들어졌으며, 호화로운 부장품과 다수의 순사자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왕 슈브 아드 묘에는 정교한 금 ·은세공과 보석을 여기저기 박은 머리장식품 ·빗 ·귀걸이 ·가슴장식품 등을 여왕의 시체에 장식하였고, 28명의 성장(한 시녀를 매장하였다.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장식된 하프, 7현금, 2마리 당나귀가 끄는 썰매, 황금그릇 등 다수가 출토되었다.BC 500년경에 신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왕비 아미티스를 위하여 수도인 바빌론에 건설한 정원인데, 실제로 공중에 떠있는 것이 아니라 높이 솟아있다는 뜻이다.왕궁의 광장 중앙에 토대를 세우고 그 위에 계단식 건물을 세웠고, 오늘날의 30층 빌딩 정도의 높이었다고 한다. 7대 불가사의 중에 드는 이유는 비가 거의 오지 않는 바빌론에서 이렇게 큰 정원에 물을 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왕은 정원의 맨 위에 커다란 물탱크를 만들어 유프라테스 강의 물을 펌프로 길어 올리고 그 물을 펌프로 각 층에 대어줌으로써 화단에 적당한 습기를 유지토록 하였으며 또한 그때그때 물뿌리개를 이용하여 물을 공급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방에 물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 방 위에는 갈대나 역청을 펴고 그 위에 납으로 만든 두꺼운 판을 놓았기 때문이라 한다.현대 수학에서 0은 두 가지의 기능을 갖고 있다.첫째로 52와 502를 구별할 수 있게 해준다. 숫자의 위치가 자릿수를 의미하는 이런 표기법에서 0은 '비어 있는 자리'를 나타내고 으며 신들은 그 중요성, 영향력, 권력에 의해 서열이 정해져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것이 우주의 4대 영역을 지배하고 있는 신, 즉 하늘의 신 '안', 대기의 신 '엔릴', 물의 신 '안키', 대지의 여신 '닌후르사그'였다. 이 넷은 지고의 신으로서 우주의 모든 것을 계획적으로 창조하고 그것들을 자기들이 자손인 모든 행정관적인 신에게 관리케 했다.신들과 연결된 많은 신화가 있는데 이것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근엄하고 순수한 인생관으로부터 해방시켜 마음의 안식을 주기 위해서 필요했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은 불가해한 신의 노여움 앞에서는 그야말로 무력하며 인간의 생활은 불안과 위험에 둘러싸여 있다고 숙명론자처럼 믿고 체념하고 있었다. 인간은 신과의 관계에 있어서 종속적인 입장에 놓여 있었으므로 어떤 일정한 계기에 종교의식에 참가함으로써 신을 찬양하는 것은 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종교는 메소포타미아인의 생활에서 분명히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장려한 신전, 인상적인 조각, 장식적인 석비와 장식판, 아름다운 상감세공, 매력적으로 새겨진 원통형의 인장은 종교에서 생겨났고 그 영향 밑에서 발전했다. 매우 인상적인 그 의식은 수 천년에 걸쳐 고대세계의 대부분에 영향을 미쳤다.그리고 무엇보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은 강대하고 불가해한 자연의 힘이 인간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던 고대에 있어서는 종교 가타미아 사람들의 생활에 장래의 전망과 질서를 부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사회메소포타미아는 셈(Sem)족의 문명이다. 특히, 수메르 인의 문명이 토대가 되었고 아카드?아무르 인들의 문명이 가미되었다. 화폐는 쓰이지 않아서 물물 교환이 이루어졌다.인더스 문명B.C 3000년기 중엽부터 약 1000년 동안 인더스 강 유역에서 청동기를 바탕으로 번영한 고대 문명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을 받은 듯 하다. 이 지방의 자연환경은 오늘날보다는 습윤(濕潤)하였다고 생각된다. 인더스문명의 인장(印章)에 나타나있는 동물에는 범?물소?코뿔소?코끼리이다.
?지구?태양계에 속하는 행성 중의 하나. 대기에 둘러싸여 있고 산소와 물이 있어 생물이 번성할 수 있다. 지구의 질량은 태양계 행성 중 목성·토성·해왕성·천왕성 다음으로 크다. 태양까지의 평균거리는 약 1억 5000만 ㎞(1AU)이며, 금성과 화성 사이에 위치한다. 지구는 완전한 구가 아닌 회전타원체에 가깝지만 적도 반지름 약 6378㎞, 극 반지름 약 6357㎞로 그 차는 약 20㎞에 불과하여 편평도는 매우 작다. 현재는 인공위성 관측 등에 의해 지구의 모양이 보다 정밀하게 밝혀지고 있다. 지구는 암권·수권·기권으로 크게 나뉘며 그 밖에 생물권을 설정하기도 한다. 암권은 고체로 된 부분으로 지구의 주요부분을 차지하고, 핵·맨틀·지각 등으로 나뉜다. 수권은 대양·호소·하천 등 물로 이루어진 부분을 말한다. 지하수도 수권에 포함되므로 지표 가까이에서는 암권과 수권이 섞여 있는 셈이다. 대기로 이루어져 있는 기권은 천체로서의 운동을 암권·수권과 함께 하기 때문에 기체이지만 지구에 포함시킨다. 다만 지구의 크기는 보통 암권·수권만으로 결정된다. 이들 각 권은 서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 수권을 조성하는 물이 수증기가 되어 기권으로 이동하듯이 그 구성물질의 어떤 것은 다른 권으로 이동한다. 생물권도 이들 각 권의 일부와 겹쳐 있다. 자연과학 가운데에서 학문분야의 차이에 따라 지구에 대한 견해가 다르게 나타난다. 다른 천체와의 관련성을 고려하는 천문학적 관점, 지구 내부에서 표층부까지의 전체 모습을 탐구하는 관점, 지구의 표층부에 있는 암석을 통하여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을 알아내려는 관점, 지하자원 생산의 장으로 보는 관점, 현재 및 과거에 생물이 사는 생활환경으로서 지구를 보는 관점 등이 있다. 이것들을 종합한 것이 자연과학적인 지구의 모습이다.지름1만 2800Km태양과의 거리1억 4960만Km자전 주기24시간 56분공전 주기365.25일이동 속도초속 30Km위성1개?지구의 기원?지구의 기원에 대해서는 예로부터 여러 설이 있었다. 그러나 지구의 기원을 생각할 때 태양계 설과, 태양계의 행성이 저온상태의 우주진과 가스덩어리에서 발생하였다고 하는 C.F.바이츠제커 와 O.Y.슈미트의 저온기원설 등이 있다.?고온기원설-지구를 형성한 물질은 원래 태양과 마찬가지로 뜨거운 상태에 있었으며, 중력의 작용으로 응집되어 구형을 이룬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거운 금속인 철 ·니켈은 중심부에 모여 지구의 핵이 되었고, 가벼운 규산염은 맨틀을 만들었으며, 그 후 지구의 온도가 내려가자 지구 표면에서는 그 일부가 냉각 ·고결되어 지각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지각은 서서히 수축되어 주름살을 형성하며 바다와 육지가 만들어졌다.지각의 두께가 불균일한 것은 맨틀의 대류과정에서 불필요한 찌꺼기가 암석의 정출작용을 통하여 지구표면의 특정지점으로 집중 분출되었기 때문인데, 이로써 대륙이 형성되었다. 이 가설의 최대 난점은 물과 산소 ·질소 가스 등이 왜 높은 온도에서 외부로 흩어지지 않고 지각 내에 잔류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또 맨틀의 열전도도로 보아 지구와 행성계의 나이 45억 년 동안에 어떻게 지구가 수십만 ℃에서 지금의 온도로 냉각되었는가 하는 점이다.?저온기원설-태양을 둘러싼 두터운 가스와 우주진의 덩어리가 중심에 있는 태양의 중력과 가스 내부의 마찰과 열의 방출로 점차 냉각되어 태양의 자전면 내로 집중된 원반상태, 말하자면 토성의 고리와 같은 상태를 가정한다. 그 후 이 원반은 몇 개의 고리로 분리되어 보데의 법칙에 따른 분포를 나타내기에 이르렀다. 이중에 태양에서부터 세번째의 고리가 내부의 마찰과 인력에 의하여 한 점으로 집중되어 원시지구를 형성한다.그리고 점차 그 크기가 커지며 안정된 구형으로 변했다. 지구 내부에서는 중력 또는 압력의 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변환되고(보일-샤를의 법칙과 비슷한 작용에 의해), 방사성원소의 붕괴로 생긴 열에 의해 내부온도가 점점 올라갔다. 이 때 순수한 철과 니켈은 규산염이나 산화물에 비하면 그 비중이 큰 데다 더 낮은 온도에서 융해되므로, 아직 용해되지 않아 굳은 상태인 규산염 상태의 물질 속으로 낙하하여 지구중심에 모생하여 이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은 약 1억 년이 걸렸다고 추정된다. ?지구의 탄생과정?지구가 형성될 무렵 태양계에는 수많은 운석들이 충돌하고 있었다. 이 운석들의 충돌 집적으로 미행성이 형성되었고, 이런 미행성들이 100억개 정도가 성운의 중심주위를 회전하며 떠돌고 있었다. 지구는 이런 미행성들이 서로 충돌하고 합체되어 성장하였다고 생각된다. 처음에 미행성은 온도가 매우 낮았으나 내부의 방사선 물질이 붕괴되어 열이 발생하고 온도가 상승해갔다. 온도의 상승으로 구성물질이 부분적으로 융해가 일어났는데 이 융해로 말미암아 철 니켈 등의 무거운 물질은 중심부로 침강하고 규산염 등의 가벼운 물질은 표면으로 상승하게 되었다. 중심으로 하강한 철 니켈 등이 핵을 형성하고 표면으로 상승한 규산염 등은 지각을 형성하였다. 지각과 해양 및 대기의 변천과 더불어 생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역사는 지각을 형성하는 암석 속에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이것을 과학적으로 해명함으로써 지구의 역사를 알게 되었다.?원시 지구 대기의 형성?원시 지구가 현재 크기의 행성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1억년도 채 걸리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 1억년 이내의 시간에 일어난 사건들은 원시 지구에 대기와 바다를 만드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반경이 현재의 1/2 정도에 달한 원시 지구에는 평균하여 1년에 1,000개 이상의 미행성이 충돌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면서 지구의 부피가 커졌으며, 지구의 중력도 점점 더 강해지게 되어 미행성을 잡아당기는 힘도 증가했을 것이다.그 결과 더 많은 미행성의 충돌이 일어났을 것이다. 더욱이 충돌하는 미행성의 속도는 매초 수 km에서 수십 km라는 상당히 빠른 속도이다. 이에 따른 충돌이 일어날 때 미행성 및 원시 지구의 지표에 포함되어 있던 휘발 성분은 순간적으로 증발해 버린다(충돌 탈가스 현상) 이러한 일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반복되고, 증발한 가스는 끊임없이 지표 위를 떠다니고 그 농도는 점차 증가한다. 결과적으로 어떤 시기에 원시 는 것뿐만 아니라 다량의 충돌 에너지를 지표에 발산시키고, 이 에너지는 열 에너지로 전환된다. 원시 지구의 형성시, 방출되는 에너지의 총량은 지구가 46억년 동안 내부에서 발생시킨 열 에너지(주로 방사성 에너지)의 10배 이상에 달하는데, 그 원천은 거의가 미행성의 충돌 에너지이다. 이 정도의 막대한 에너지가 전부 열로 저장된다고 하면, 원시 지구의 온도는 10,000℃를 훨씬 넘게 되고 물질이 전부 가스로 변하여 거대한 가스 성운이 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한편 만일 원시 지구에 대기가 없었다고 한다면, 이들 열 에너지는 전부 우주 공간으로 도망가게 된다. 결국 미행성의 충돌 에너지가 어느 정도 원시 지구에 저장되는지 그 저장 방법에 따라 지구의 운명은 변하고, 진화의 과정도 달라질 것이다. 여기서 원시 대기의 존재가 지표 온도의 결정 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원시 대기의 양?원시 지구의 반경이 현재의 20%에 달하면 미행성의 충돌 탈가스에 의한 수증기 대기의 형성이 시작되고, 원시 대기의 양은 금방 증가한다. 반경이 현재의 35% 정도가 되면 대기의 증가율은 급격히 커지는데, 이것은 지표 온도가 900K를 넘기 때문으로 탈가스의 비율이 증가하는데 기인한다. 다시 원시 지구가 성장을 계속하여 현재 반경의 45% 정도가 되면 대기량의 증가는 절정에 이른다. 이것은 지표 온도가 암석이 녹기 시작하는 온도에 도달하기 때문이다.암석이 녹아서 지표에 일단 마그마의 바다가 형성되고 나면, 그 압력에 따라 수증기가 마그마에 흡수된다. 따라서 대기 중의 수증기의 양은 일정 수준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 대기량이 일정하게 되면 지표 온도도 일정하게 되어 거의 변하지 않는다. 원시 지구의 반경이 현재 반경에 가까워지면 지구의 성장률은 극히 저하된다. 단위 시간당 지표에서 방출되는 충돌 에너지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결국 지표 온도는 하강하고 마그마의 바다 역시 점차 굳어진다.현재 알려진 이러한 원시 대기 형성의 모델로 계산할 때, 그 최종적인 수증기 대기의 양은 1.9x10 행성에 바다가 보이게 된 것이다.?비?형성기의 지구를 외부에서 바라다보았다면, 지구는 두꺼운 원시 수증기 대기의 구름으로 둘러 싸여 한층 밝게 빛났을 것이다. 구름이라 해도 그것은 대기의 최상부층에 존재하는 것으로, 그 내부는 80%에 가까운 수증기의 대기가 있음에도 매우 건조하다. 왜냐하면 대기층의 온도가 물이 액체로 존재하는 임계 온도보다 높기 때문이다.원시 지구의 형성이 거의 끝날 무렵이 되면, 격렬한 미행성의 충돌도 종료하게 되고 지표에서의 충돌 에너지의 방출도 줄어든다. 원시 대기와 지표는 서서히 냉각하기 시작하는데, 그 냉각 방법은 태양으로부터의 입사광이 어느 정도 대기의 하층까지 도달하는가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태양광이 100% 지표에 도달한다면 지표 온도는 결코 내려가지 않고 대기의 대부분은 고온의 건조 상태를 유지한다. 이런 경우 수증기는 비로 되어 지표에 내리는 것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바다의 형성도 없었을 것이다.다시 말해서 원시 지구를 덮고 있던 두꺼운 수증기의 구름은 지상으로부터 수백 km 상공에 위치해 있었으며, 지표의 마그마의 바다가 고온이기 때문에 쉽게 지표 가까이 내려올 수 없었다. 그 높이는 약 400km 정도였을 것이다. 그 원시 대기의 구름으로부터 지표에 이르는 내부의 대기층은 뜨겁고 건조하다. 혹 대기의 최상층에서 비가 내렸을지도 모르나 도중의 건조한 대기로 인해 지표까지 도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두꺼운 구름의 표면은 태양으로부터의 강한 자외선에 노출되고 수증기는 점차 수소와 산소로 분해된다. 분해된 수소는 가볍기 때문에 우주 공간으로 도망가게 된다. 만일 이러한 상태가 오랜 기간 계속된다면, 수증기는 언젠가는 완전히 분해되어 버리고 지구에 비가 내리는 일은 영원히 없었을 것이다.그러나 이때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광분해에 의한 막대한 수증기의 손실이 있기 이전에 지구가 냉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행성의 충돌이 거의 끝이 나고, 따라서 충돌 에너지에 의한 지표에서의 열 방출도 종국을 맞게 된다. 지표를 덮고 있던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