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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민주주의
    목차Ⅰ. 서론Ⅱ. 전자민주주의의 개념과 등장 배경1. 전자민주주의의 개념2. 전자민주주의의 등장배경Ⅲ. 전자민주주의의 성공을 위한 조건1. 정보공유의 확산2. 시민의 정치참여 확대Ⅳ. 전자민주주의의 한계Ⅴ. 결론Ⅰ. 서론21세기는 지식사회 또는 정보화 사회라 불린다. 농업사회에서는 풍요한 자연자원이, 산업사회에서는 공업생산력이 부(富)의 원천이었듯이 정보사회에서는 지식과 정보가 부(富)의 원천이 된다. 이러한 정보화 사회로의 변화는 우리생활 전반에 걸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서 지속적인 변화가 발생하고 있으며 그 변화 속도 또한 빠르다. 나아가 정보화는 우리의 생활양식과 사고체계에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관공서에 직접 갈 필요 없이 인터넷으로 필요한 서류를 발급 받을 수 있고 인터넷 쇼핑몰이 발달함에 따라서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굳이 시간을 내서 쇼핑하러 나갈 필요 없이 가정에서 인터넷을 이용하여 간단히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정치에 있어서도 이러한 변화가 영향을 주고 있다. 국민들은 대의민주주의체제에 대한 불신감으로 인해서 직접민주주의를 추구하게 되었고 이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말미암아 더욱 부추겨지고 있다.여기서는 전자민주주의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서 등장하게 되었는지 성공하기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을 갖추어야 하며 어떠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 알아보자.Ⅱ. 전자민주주의의 개념과 등장 배경1. 전자민주주의의 개념아직까지 전자민주주의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린 학자는 없지만 아터튼(Arterton)이 ‘원격민주주의(teledemocracy)'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고, 이를 통신미디어의 사용에 의해 실현되는 직접민주주의라고 정의한 것을 구체적 논의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전자민주주의는 뉴미디어와 정보기술(IT)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정치체제로,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보완하기 위한 일환으로 등장하였다. 대의민주주의는 그 동안 산업사회의 기본 이념 역할을 해 왔으나, 국민의 대표들이 주권자인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더 중시하거나, 또는 국민의 이익을 실질적으로 대변하지 못하는 등 여러 부작용이 일어남에 따라 이에 대한 대안으로 나타났다.사이버크라시(cybercracy)·클리코크라시(clickocracy)·e-데모크라시를 비롯해 텔레데모크라시(teledemocracy)·테크노폴리틱스(techno politics)·인터넷민주주의 등 여러 명칭으로 쓰이고 있어 확실한 용어로 정착되지는 않았으나, 의미는 모두 같다.일반 국민들이 인터넷을 통해 직접 정치과정에 참여함으로써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직접민주주의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한편, 궁극적으로는 정부가 사라지고 없는 새로운 세기의 정치 이념을 지향한다. 인터넷을 통한 여론 수렴, 선거 캠페인 및 홍보, 온라인 투표, 사이버 국회, 전자공청회, 정책결정에 따른 시민의 참여 및 토론을 비롯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나 정책 등을 인터넷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련의 정치적 행위 등이 모두 전자민주주의에 포함된다.)2. 전자민주주의의 등장배경전자민주주의가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여기서는 새로운 정보기술의 등장과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불신 두 가지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첫째, 새로운 정보기술의 등장으로 전자민주주의가 나타났다고 보는 입장이 있다. 최근의 정보기술의 발전에 의한 인터넷의 출현과 정보인프라 구축 등은 새로운 민주주의 모형인 전자민주주의를 탄생시켰다. 상호작용의 특성을 가진 새로운 정보기술의 출현은 투표와 정책결정과정 등에 있어 국민의 직접참여를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정보기술에 있어 대표적인 것으로 인터넷을 들 수 있다. 기존의 신문, 라디오, TV 등의 매체가 일대 다수의 의사소통에 의존한 반면 인터넷에 의한 가상공간에는 많은 정보를 보관, 공급 및 유통 할 수 있으며, 다수와의 의사소통 및 활동이 가능하다.) 이러한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투표행위에 제한되어있던 정치참여의 장이 정치적 의견의 개진과 정치토론의 참여로 대폭 확대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 20년 동안의 전자투표 실험과 선거에 있어 전자우편방식에 의한 투표는 투표율 자체를 평균의 2배에 이르게 하였다. 2005년 10월 30일 스위스 취리히 칸톤의 뷜라흐 시에서는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투표가 세계 최초로 실시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18대 국회의원 선거에 전자투표를 도입해서 전자투표 시스템이 마련된 장소에서 터치스크린 방식의 투표를 하는 실시하여 정보기술을 통한 전자민주주의의 실현에 노력하고 있다.둘째,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들 수 있다. 영국에서 근대적 의미의 민주주의가 태동한 이래로 민주주의는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였는데 이것은 개인이 자유와 평등을 확보하고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지속적 활동의 결과였고, 이는 정치 결정에 참여하는 유권자의 수가 시간과 함께 증가하는 또 하나의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민주주의는 대의제를 채택하여 국가 행위를 결정하는 의사 결정권을 일정한 대표자에게 넘겨줌으로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차선의 대안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차선책의 대안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인 주권재민의 사상을 망각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투표를 통하여 일단 대표자에게 의사 결정권을 맡긴 이후에는 일반의 유권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게 되었다. 차기 선거 때까지 유권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다. 이러한 대의저의 위기적 상황에서 직접민주주의를 다시 실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전자민주주의가 대두하게 되었다.Ⅲ. 전자민주주의의 성공을 위한 조건1. 정보공유의 확산전자민주주의 구현을 위한 첫 단계라 할 수 있는 정보공유의 확산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기술 및 사회제도적 요건이 구비되어야 한다.)우선 기술적 요건을 살펴보면 , 정보통신 인프라가 구축 되어야 한다. 이러한 면에 있어서 한국은 잘 갖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2006년 기준 한국은 인터넷유저가 3440만이고 인터넷 보급률 70.5%로 세계1위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소득, 교육, 그리고 지역간의 정보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다음으로 정보공유의 확산을 위해서는 네트워크의 안정성과 신뢰성이 확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아직까지 온라인 투표시스템의 안정성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에 전자투표를 도입하되 온라인으로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직까지는 해킹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못한 탓이다.이상의 기술적 요건과 더불어 , 정보공유의 확산을 위해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사회제도적 요건들을 갖추는 것이다. )전자민주주의 구현을 위해서는 두 가지 성격의 정보) 모두에 대한 효율적 접근이 가능하여야 한다. 그러나 권력 감시에 필요한 정보의 공유 여부는 정부의 공개 의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보공개제도는 도입된 지 10년째를 맞고 있지만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외형적인 면에서는 주목할 만한 성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시민들에게 정보공개의 문턱은 높기만 하고 정부의 비밀주의 행태도 여전하다.다음으로 정보 접근이 용이해야 한다. 정보통신기술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시민들의 범위가 확대되어야 한다. 사이버 공간에서 정보습득, 정책토론, 온라인 투표 등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의 인터넷과 컴퓨터 사용능력이 요구된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도시지역과 농촌지역, 젊은 사람과 노인들의 인터넷 사용능력이 크게 뒤떨어지는데 이는 결국 계층 간 정치참여의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것이 문제가 된다.정보컨텐츠가 질적으로 향상 되어야 한다. 인터넷상에서 얻을 수 있는 정치관련 정보가 급격히 증가한 것은 사실이나, 정보의 양적 증대가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증가시키지는 않는다. 이러한 정보범람의 상황에서는 정보의 체계적인 전달과 신뢰성이 매우 중요하다. 전자민주주의 구현을 위해서는 국가정책과 관련된 정보와 통계자료들이 체계적으로 제공되고 항상 갱신되어야 한다.2. 시민의 정치참여 확대위의 기술적 ? 사회적조건과 더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정치 참여다. 이를 위해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정당은 시민정책 토론방을 마련해서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해야 할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정부기관 홈페이지에 시민참여를 위한 자유게시판을 운영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구실을 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시민들의 정치토론과 정부의 여론수렴 이라는 본래의 취지를 잘 살려야 할 것이다. 지금 현재도 자유게시판이나 토론방이 운영되고 있으나 실제로 이것이 정책에 반영되지는 못하고 있다. 정치토론의 결과물을 정책에 반영하고자 하는 정부와 정치인의 의지가 있어야할 것이다.또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서 선거 ? 정치관계법위반행위신고, 예산 낭비 신고, 사이버 감사실을 운영해서 부정 ? 불법행위 신고를 받고 있다. 시민단체인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에서도 선거부정행위고발, 부정선거현장제보를 받고 있다. 언론에서는 선거가 되면 홈페이지를 통해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사회과학| 2007.10.24| 8페이지| 1,000원| 조회(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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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프리카의 민족주의
    1. 아프리카 민족주의의 기본 성격아프리카 민족주의는 사하라 사막을 경계로 하여 남북으로 갈라져서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인의식에 의한 민족주의 즉 블랙 내셔널리즘(black nationalism)과 북아프리카 민족주의 간에는 직접적인 결합과 유대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북아프리카 민족주의는 회교적 영향에 의해서 아랍 제국의 민족주의 즉 아랍주의(Arabism) 또는 아랍민족주의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아프리카 민족주의는 서남아시아의 연장이라는 지정학적 기초에 입각하여 동화정책(assimilation)을 추구한 프랑스 식민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의 세 식민지가 민족주의 통일전선을 조직하여 소위 마그레비즘(Maghrebism)이라는 독자적인 발전과정을 취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1945년 3월에 결성된 아랍연맹(Arab League)을 중심으로 회교권이라는 종교적 기초위에 아시아, 아랍 국가들과의 결속 및 유대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되었다. 원래 북아프리카 민족주의와 사하라 남쪽의 흑인민족주의 사이에는 공통적인 존립기반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전후 아프리카에 출현한 새로운 민족주의는 상호의존성과 연대성을 강화하면서 전개되었다. 서구적 식민통치를 반대, 대결하면서 대두된 아프리카 민족주의는 아시아 민족주의와 마찬가지로 반역과 저항의 민족주의였다. 이러한 민족주의는 식민지 민족주의였으며, 식민지 제국주의적 지배와 자본주의적인 경제적 수탈, 기독교의 종교적 문화적 침투 등에 대항하여 아프리카 인의 정치적 각성이 이루어지고 다양한 형태의 정치운동과 민족해방운동이 일어났다(반제국주의적). 이 같은 운동들은 공통적으로 외국인의 지배와 밖으로부터 오는 도전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난 것이며 각 운동 간에는 상호연관성이 있으며 자본주의가 침투해서 확산되어 가는 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2. 아프리카 민족주의의 생성원인아프리카 민족주의의 생성요인은 학자에 따라 또는 파악하는 입자에 따라 다양하지만 여기에서는 대내적 요인과 대외적 요인으로 대별하여 고찰하기로 한다.1) 대내적 요인대내적으로 서구의 식민주의는 극히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아프리카 식민지에 근대문명을 도입하였다. 이 근대화로 아프리카 사회에 다음과 같은 변화를 일으켰다.첫째, 경제 ? 사회적 측면에서 볼 때 서구 식민지 통치국은 식민지 경제체제를 자급자족경제로부터 화폐경제로 변화시켰다.둘째, 종교적 ? 교육적 측면에서 볼 때 식민지 통치국이 보급한 서구식 교육과 기독교는 아프리카인들에게 인간의 평등과 자유주의사상을 가르쳐 주었다.셋째, 정치적 측면에서 볼 때 식민지 통치국은 식민지역내에 있는 여러 통치적 정치체제를 통합하고 중앙집권화된 단일정부를 수립하였다.이러한 서구열강의 식민통치의 결과는 아프리카 민족주의 발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2) 대외적 요인아프리카 민족주의 발생의 대외적 측면에서 결정된 계기가 된 것은 2차 세계대전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아프리카 민족주의의 형성에 미친 영향으로 다음 몇 가지를 지적할 수 있겠다.첫째, 민족자결주의와 민주주의 정치사조의 영향이다. 아프리카 민족주의 지도자들은 식민지 통치자에게 자국에서 실시하는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원칙’을 식민지에도 적용할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둘째, 국제정치의 구조적 변혁, 즉 동서 냉전을 들 수 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양진영의 대립 와중에서 아프리카인들의 민족적 투쟁이 승리할 수 있었다.셋째, 아시아 식민지역에서 일어났던 민족주의 운동에 자극받아 아프리카사회에 있어서도 민족주의 운동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증대되어 아프리카인의 정치의식을 앙양하였기 때문이다.넷째, 식민지국의 쇠약과 식민지의 국제감독화의 영향도 컸다.이상에서 흑아프리카 민족주의 발생의 중대한 여건을 대내적 측면과 대외적 측면에서 각각 열거 하였다. 이 요인들은 그 어느 것이 더 중요한 변수였다고 하기 어렵고, 대내외적 제변수간에 상호 회귀적 효과가 작용함으로써 민족주의운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3. 아프리카 민족주의의 전개과정(범아프리카주의)범아프리카주의는 1900년에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흑인들의 불평등한 인종차별을 거부하자는 의도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범아프리카주의는 아프리카 대륙으로 흘러들어가 아프리카의 독립에 관한 민족주의적 성격을 띠어 현재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사하라 이남의 불랙아프리카는 식민시대를 겪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민족이라는 개념보다는 부족개념이 훨씬 강하였기 때문에 반식민주의 저항운동이 그다지 조직적이거나 지속적이지 못하였다. 또한 서구제국주의 국가들도 쉽게 정치적 조작과 탄압으로 싹트는 저항의식을 제거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범아프리카주의는 아프리카 대륙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민족주의가 형성되고 서구제국주의에 대한 조직적인 저항운동을 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현재 아프리카가 있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개념 : 1900년 런던에서 개최되었던 범아프리카회의에서 헨리 윌리엄(Henry Sylvester William)이 범아프리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흑인들이 세계 도처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에 대한 흑인들의 각성을 촉구하고 흑인의 개성을 발화시킴과 동시에 연대성을 형성하고자 했다. 즉 부족주의의 대안으로 아프리카 민족주의를 형성시켜 백인의 인종차별을 거부하고 반면에 흑인들의 국수주의도 견제하며 오직 인간의 절대적 평등과 인간개성의 존중 그리고 범니그로)적 평등을 추구하고자 했다.발전 : 범아프리카주의는 크게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1단계는 1900-1945의 시기로 이때는 미국이나 서인도제도 등 세계에 흩어져 있던 아프리카 흑인들이 중심이 되어 흑인의 평등을 주장하였다. 2단계는 범아프리카주의 운동이 아프리카 대륙내로 들어와 민족주의적 자유화 투쟁이 전개되는 등 보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이며, 적극적인 성격이 나타나게 된다.범아프리카 회의(1900, 런던) : 영, 미, 서인도 거주 흑인 30여명의 지식인들이 참여하여 아메리카에 거주하는 흑인들을 영국인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아프리카인의 권리보호에 대한 탄원서를 채택하였다. 여기에 참여하는 지식인들은 대표적으로 미국출신 두보아(Du Bois)박사, 자메이카 출신의 가베이(Marcus A. Garvey) 트리니다드 출신의 윌리엄(Henry Sylvester William)과 패드모아(George Padmore) 등이다. 또한 이 자리에서는 영국에게 식민지에서 토지, 경제문제에 관해서 아프리카인에게 우선권을 요구하였으나 실정에 반영되지는 못했다.제1차 회의(1918, 파리) : 57명이 참석하여 정치의식 고취의 정치적 성격이 강했다. 파리평화회의에 불만을 느끼고 아프리카 원주민의 정치참여권과 사회 경제적 복지향상을 요구하였으며 특히 구독령 식민지가 다시 식민지로 복귀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국제사회(영국, 프랑스)가 위임통치해 줄 것을 국제연맹에 청원하였다.제2차 회의(1921, 런던, 브뤼셀, 파리) : 113명이 참석하여 인종이나 피부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을 동일한 문명인으로 인식할 것을 요구하는 두보아 박사가 기초한 "세계에 대한 선언(Declaration to the World)을 채택하였다.제3차 회의(1923, 런던, 리스본) : 아프리카 각국 정부 내에서 아프리카인의 역할과 토지 및 자원에 관한 권리 등에 대한 결의문을 채택하였다.제4차 회의(1924, 뉴욕) : 208명이 참석하였으나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후 두보아 박사는 제5차 회의를 최초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개최하려 하였으나 1929년 세계공황으로 재정문제에 부딪쳤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범아프리카주의는 정체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이후 1945년에 개최되는 제5차 회의는 아프리카 민족주의로 전환되는 중요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 이 회의는 이전의 회의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의제, 주도인물 등 기존의 미시적인 개념에서 아프리카 대륙이라는 거시적인 개념으로 변화하게 된다.제5차 회의(맨체스터, 1945) : 범니그로적 연대성에 입각한 아프리카 흑인의 동시적 해방을 주장하였으며 주도인물들은 기존의 미, 서인도제도의 흑인에서 아프리카 대륙의 흑인으로 바뀌었고 기존의 온건성향에서 과격, 급진적이며 지식층에서 아프리카인 전체계층으로 범위가 확대되었다. 주도인물로는 가나의 은쿠루마, 나이지리아 아지키웨, 케냐의 케냐타, 말라위의 반다, 이디오피아의 마코넨, 탄자니아의 니에레 등이며 참여계층은 급진적닌 젊은 아프리카 정치인, 노동자, 농민, 학생 등이다.또한 중심주제는 과거의 평등이나 인간존중이 아니라 독립으로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정치행동이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식민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을 위해서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자주적 각성과 단결하자는 강력한 선언문을 채택한다.(Declaration to the Colonial People)
    사회과학| 2007.06.07| 4페이지| 1,000원| 조회(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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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승희 사건에 대한 사회문제의 이론적 관점으로의 접근
    ※ 구조기능주의의 관점① 사회병리학의 관점사회병리학의 관점에서는 사회의 조직과 기능이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상호의존적이라고 하는 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다. 사회유기체의 정상적인 운용을 방해하는 사람이나 상황들은 모두 사회문제라고 보는 시각이다. 이러한 방해 혹은 장애요인은 일종의 질병 또는 병리상태로 취급한다. 사회병리론 입장에서 사회문제의 원인은 사회화의 실패에서 찾는다. 사회화에 실패해서 도덕적 기준에 이탈한 경우는 병들고 나쁜 것이라고 간주한다. 이처럼 사회병리론은 개인의 부적응과 제도의 실패가 원인이라고 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조승의 문제를 바라보면 조승희는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면서 큰 문화적 충격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한국의 문화에서 미국의 문화에 적응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새로운 사회의 문화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고 사회화에 실패 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은 그 이후의 그의 행보를 봐서도 알 수 있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했고 왕따를 당했으며 같은 여학생을 세 차례나 스토킹 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조승희 개인의 사회화의 실패와 더불어 사회 부적응자를 다시 교육시켜서 양지로 이끌어 내려는 제도가 미흡한데에도 문제가 있다. 미국에는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모여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제대로 사회화 시키지 못하고 있는 미국제도 자체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② 사회해체론의 관점사회해체론에서는 사회문제를 개인의 행위가 아닌 사회구조와 연결시켜 파악했다. 그리고 인간의 사회적 행위를 통제하는 사회적 규칙의 중요성에 주목했다. 기존의 규범이 사회를 통제 할 수 없으면 사회는 해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규범이라는 것은 종교, 도덕, 관습, 법(헌법, 법률, 명령, 조례)등이 해당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조승희 사건을 바라보게 된다면 정보화 사회의 발달과 더불어 나타나게 된 부작용이 인간존중 정신의 약화, 개인주의이다. TV나 영화와 같은 대중 매체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을 여과 없이 방송하고 있으며 온라인 게임도 서로 죽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등 인간 생명존중 정신을 해치는 문화가 급격히 발달하게 되었다. 이렇듯 인간존중정신의 약화로 인해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은 죽이면 안된다는 우리 사회의 도덕, 윤리의 약화로 조승희의 행동에 대한 규제력이 약화 되었고 결론은 이러한 끔찍한 참사가 발생했다는 것이다.③ 일탈행위론의 관점일탈행위론에서는 사회문제를 사회적 규범으로부터의 반복된 체계적인 이탈 또는 사회적 기대의 예상 못한 파괴라고 본다. 여기에서 사회적 규범으로의 이탈이란 문화와 사회조직 간의 긴장상태에 대한 개인의 반응 또는 패턴화한 적응양식을 뜻한다. 이에 비추어 이 사건을 분석해보면 인종차별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행한 불법적인 행위를 한 것이 일탈행위가 된다. 그는 백인의 인종차별을 심하게 겪었다. 사건이후 공개된 동영상에서도 드러난다. “내게 피를 흘리게 하고 나를 궁지로 몰아넣었으며 결국 내가 이 선택밖에 할 수 없게 만들었다.” , “너희는 나를 괴롭히면서 즐거워했다. 너희의 즐거움을 위해 나는 머리에 암 덩어리가 있는 것처럼 아팠으며 심장은 갈갈이 찢어졌고 아직도 내 영혼을 갉아먹고 있다.” , “누가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아? 목구멍으로 쓰레기를 넘기는 기분, 자기 무덤을 파는 기분이 어떤 기분인지 알아? 양쪽 귀까지 입을 찢기는 기분이 어떤지 알아?” 이러한 대목에서 볼 수 있듯이 인종차별 왕따에 대한 강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고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선택한 행동이 이러한 참사를 불러 온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행위가 일탈행위로 규정지어 질 수 있다.③-① 문화전달론의 관점문화전달론에서는 범죄와 비행을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바라보고 패턴화된 범죄문화와 비행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문제가 반복해서 발생한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면 미국에서는 총기난사 사건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사건이 일어난 전례가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미국에서는 총기사건이 미국 청소년의 범죄문화로 패턴화 되었고 이 사건도 그중의 일부로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갈등주의 관점① 네오 마르크스주의 갈등이론네오마르크스주의이론을 사회문제에 적용시킨 것을 네오마르크스주의 사회문제이론 또는 비판이론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제반원인들 보다는 문제로 규정되는 과정, 즉 범죄통제 매자본주의의 의해서 프롤레탈리아 계급과 부르주아 계급으로 나누어지게 되고 국가나 형법은 모두 부르주아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 이러한 부르주아적 통제에의 처벌의 결과로서 범죄가 일어난다고 보는데 실제로도 조승희의 집은 우리나라에 있을 때부터 부유하지 못했고 셋방을 사는 가난한 집이었다. 미국에 이민을 간 뒤에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부모님은 세탁소에서 일을 도와가며 살아가는 형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승희는 백인들로부터 왕따라는 억압을 받았다. 이러한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으로 택한 것이 이러한 참극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실제로 그가 언론기관에 보낸 영상물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단지 원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게 너희는 얼마나 많았던지. 벤츠 자동차로도 부족했어? 이 새끼들아! 금목걸이가 부족했냐? 이 속물들아! 보드카와 꼬냑으로도 부족했냐? 넌 모든 걸 가지고 있었어.'여기에서 보는 것과 같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백인들의 자신에 대한 억압에 대한 처벌의 결과로서 이러한 범죄가 일어나게 된다.
    사회과학| 2007.05.10| 2페이지| 1,000원| 조회(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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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FTA의 긍정적인면과 부정적인면 평가A좋아요
    ※ FTA의 장점① 수출이 우리나라의 GDP에 60%를 형성하고 그 중에서도 대부분은 철강, 조선, 건설, 화학, 자동차, 전자 산업 등으로 자본재-중공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분야에서 관세의 장벽이 없어지고 단순히 운송비만을 계산한 가격으로 판매가 된다면 우리로서는 경쟁력에서 우의를 점할 수 있게 된다.② 뿐만 아니라 이러한 경쟁력의 우의와 수출의 성장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우리의 방식을 전달하는 것으로 우리의 규모 경제가 갖는 시스템 지배성을 구축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FTA의 단점① FTA 체결 자체가 체약국간 무역자유화를 의미하므로 경쟁력이 취약한 기존 국내생산업자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게 된다.② 무역전환효과로 말미암아 자원의 비효율적인 배분과 소비자후생의 악화가 초래될 수 있다. 역외국에 부과하는 고관세는 역외국 비교우위상품이 역내에 수입되는 것을 막아 역내국 주민의 후생을 악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함으로써 무역자유화의 이익을 일부 상쇄할 수 있다.③ 취약산업에 고용되었던 생산요소들의 산업간 이동이 순조롭지 못할 경우 협정이행 초기에 실업과 같은 경제구조의 조정비용(adjustment costs)이 발생할 수 있다.※ 한?미 FTA의 긍정적인 면1. 세계 최대시장의 안정적 확보 및 통상마찰 완화- 관세 등 각종 장애물로 막혀있던 양국간 무역로가 시원하게 뚫리게 되면 우리 수출이 증 가하게 됩니다. 섬유?의류?가죽?신발?자동차?전자 등 경쟁우위에 있는 산업분야를 중심으로 수출이 늘어나면 우리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한미 FTA로 인해 중?장기적으로 (7~10년) 국내총생산(GDP)은 7.75%(352억 달러), 후생 수준은 6.99%(281억 달러)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FTA 체결시 미국 바이어 60%가 한국제품의 수입을 늘리겠다고 응답* 중국 제품 대신 한국 제품을 사겠다는 응답도 36%(KOTRA)* 칠레의 경우 FTA 체결(2004) 이후 대미수출 37% 증가 (전체 수출증가율 25%)2. 우리 경제?사회 시스템 전반을 업그레이드하여 국가경쟁력을 제고하는 계기가 된다.* 기술인력 교류확대와 첨단 R&D 센터 유치 등을 통해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촉진, 미국의 원천기술과 우리나라의 생산기술간 시너지 효과를 유발한다.3. 일본, 중국, 인도 등 여타 FTA 추진도 가속화하는 계기로서 한국이 세계시장의 허브 (Gateway)로 발돋움하는 주춧돌이 된다.4. 서비스시장 개방, 안보리스크 완화, 대외신인도 제고 등으로 외국인투자 증대에 기여, 일 자리 창출이 가능해 진다.- 최근 5년간 새롭게 생겨난 일자리의 약 52만개는 외국인 투자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한미 FTA는 정보통신?항공?금융 등 첨단 고부가가치 산업과 전문분야 를 중심으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직접적인 효과를 기대* 멕시코의 경우 1992년 미국과 FTA를 체결한 이후 외국인 투자 대폭 증가연평균 외국인투자액 : 40억 달러(1984 ~ 1993) ? 152억 달러(1994 ~ 2004)5.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물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되고 서비스의 질을 개선함으로써 국민의 삶의 질 향상 (소비자 후생 증대)- 고품질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 업체들과의 경쟁을 통해 우리 나라 서비스산업의 수준도 한 차원 높일 수 있는 계기6. 개방과 경쟁을 통해 생산성을 제고하고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제2의 장기 성장전략?* 한미 FTA는 세계 최고와 당당히 겨루어 일류 국가로 도약하겠다는 시도* 누구의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오랜 고민 끝에 주도적으로 성사시킨 것* 우리의 모든 역량을 결집하여 한미 FTA를 우리 경제?사회 시스템 전반을 선진화시키는 계기로 활용할 필요7. 한?미 FTA효과를 각 분야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한?미 FTA가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 미칠까 자료: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F),2004년 실적치 기준실질GDP대미무역수지생산고용단기효과0.42% 증가(29억 달러)흑자 감소42억달러0.61% 증가8조5000억원0.51% 감소5만5000명장기효과1.99% 증가(135억 달러)흑자 감소51억달러1.94% 증가27조원0.63% 증가10만4000명제조업 생산제조업 고용농업 생산농업 대미 수입단기효과0.79% 증가3조3000억원1.27% 증가4만명6.2% 감소6조원189% 증가2조원장기효과4.53% 증가18조7000억원6.52% 증가20만8000명
    경영/경제| 2007.05.10| 2페이지| 1,000원| 조회(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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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광림 시집 상심하는 접목 분석
    Ⅰ.서론전쟁은 결국 일어났다. 그리고 끝이 났다. 전쟁이 쓸고 간 자리에는 절망만이 남았다. 많은 사람이 죽고 많은 사람이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서로 죽이고 또 죽였다. 전쟁은 인간의 살인을 방관한다. 아니 더욱 부추긴다. 많이 죽이면 상을 받고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이렇게 전쟁은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여기게 만든다. 또한 전쟁은 이렇게 사람들의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전쟁은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만든다. 한국전쟁 같은 경우는 통일을 위한 수단으로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감히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섰다. 또한 한강의 기적으로 오늘날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김광림의 시집 『상심하는 접목』에서 뽑은 시들을 비극의 시, 부활의 시, 평화의 시의 세 가지로 분류했다. 그러면 이러한 시를 살펴보자.Ⅱ.본론1. 상실의 장전쟁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앗아간다. 우리의 목숨이나 사랑, 우리의 마음을 병들게 한다. 이렇게 우리의 몸과 마음 모두를 앗아가는 전쟁을 표현한 시를살펴보자.일없이 부러진 가지를 보면/ 그 다음의 가장귀가 안 됐다.요행(僥倖)히도/ 전쟁에서 살아 남았을 땐/ 우리는 어쩌다 애꾸눈이 아니면 절름발이이었고다음엔 찢기운 가슴의/ 어느 모퉁이가 허물어졌을 것이다.몇번째나 등골이 싸느랗게 휘여졌다가는/ 도루/ 접목(接木)같은 세월을 만났다.새털의 악보(樂譜)를 타고 / 하야라니 나리는 것은/ 눈보란가./ 꽃보란가.꽃도 무너지면 두려운 것./ 요즈막엔/ 사랑도 목을 졸라대는/ 미안한 기별의/ 나날이다.그것은/ 의/ 꺼진 가슴들이 뿜어 올린 옹굿싹이 아니면아름다움을 넘어 선 인간들의 녹색(綠色) 눈방울이 먹물져 가던/ 내일의/ 황혼(黃昏)이다.그리고/ 꽃이 열매의 협주(協奏)를 잃어버린/ 다음의 나의 나무들에게 인사하는 계절(季節)이 문안(問安)처럼/ 묻었을 뿐이다.지금도/일없이/ 부러진 가지를 보면/ 그 다음의 가장귀가 안 됐다.-상심(傷心)하는 접목(接木)-전쟁은 많은 사람을 죽게하고 또한 살아남더라도 애꾸눈 아니면 절름발이로 만든다. 또한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 시인은 이러한 것을 나무에 비유하고 있다. 나무에서 부러진 가지는 사람의 다리가 부러진 것에 비교가 된다. 사람과 나무의 동일시를 하고 있다. 등골이 싸느랗게 휘어졌다는 것은 전쟁이 주는 고통이 심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끝내는 전쟁을 이기지 못하고 가지가 부러진다. 전쟁을 겪고 몸이 성치 않은 사람과 접목을 동일시하면서 시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육월(六月)은 변덕쟁이/ 수국(水菊)이 피던/ ............달.쫓겨난 새댁의 개나리 봇짐에서 끌러진 사월(四月)/ 사월(四月)은 눈물같은 자락이 새푸른 마음씨로 돌아 섰다가/ 부끄러이 옮아 가던 시절(時節).너의 얼굴에 돋아나던 상처(傷處)가/ 육월(六月)의 신호등(信號燈)처럼 아롱지다 꺼지고/ 다음엔/ 자비(慈悲)롭지 못한 세월의 표백(漂白) ──그것은 검문(檢問) 당한 동심(童心)/ 화(花)가 질 때가난이야 노상 쪼그리고 앉아서 천대(賤待) 받던/ 불두(佛頭)/ 화(花).앉은뱅이를 업고 달아나던/ 이야기며육월(六月)은 변덕쟁이/ 수국(水菊)이 피던/ ............달.계절에 앞서서 나리는 장마 비에 잃어버린 것은 단맛./ 수밀도(水蜜桃)의 껍질처럼 밀리던 화상(火傷)이욕(辱)되게 젊어서 기맥히던/ 질식(窒息)되게 담배 피던 전쟁(戰爭)나의 목숨을 아프게 박아 주던/ 나의 삶을 짙으게 문지르던/ 너의 어기찬/ 뿌리와/ 잎새.그리고/ 나의 마지막 가장 소원이던/ 다다른 가지끝에/ 여므는 꽃망울/지금의/ 나는/ 살아서 있는가.풀잎의 근지러운 탄흔(彈痕)을 치료(治療)하는/ 녹색(綠色)의 손길이 바쁘게 닿으며/ 오늘도/ 꿀 묻은 벌집만 생각하는 접목(接木).육월(六月)은 수국(水菊)처럼/ 육월(六月)은 못나서/ 육월(六月)은 변덕쟁이 수국(水菊)이 먹은 달.-수국(水菊)이 피던 유월(六月)-유월은 6.25전쟁이 일어난 달이다. 그리고 유월은 수국이 피어나는 달이다. 전쟁은 포탄과 총으로 인해서 숨이 막힐 듯한 포연들을 뿜어낸다. 그로인해 다치면 수국의 뿌리와 잎새를 가지고 상처를 치료하고. 여기서 나의 마지막 가장 소원이던 다다른 가지 끝에 여무는 꽃망울 은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는 화자의 심정을 나타내는 듯하다. 그리고 화자는 자신이 살아있는가 묻는다. 이것은 전쟁 상황 속에서 자신의 실존을 자각하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유월은 수국이 피게 하는 달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전쟁의 참상을 맛보게 하는 그런 변덕쟁이라고 화자는 말하고 있다.2. 부활의 장이 부분의 시는 전쟁을 통해서 잃어버린 우리의 목숨이나 사랑을 다시 부활하기를 바라는 시를 보자.목숨도 사랑도 어느 가지 끝에서 머므는 이파리도/그리고눈속에 떨구어 둔 몇방울의 고운 핏빛이 피어 올리는/꽃이라든가꽃을 위하여/어리석은 사월(四月)의 땅이여 근지러운 몸뚱아리.지금은 못견디게 부러운 그리운 것의 자습시간(自習時間)이다.어느 해 봄이든가. 가을이든가.혹은 장미(薔微)잎의 가시와 포도(葡萄)넝쿨의 어려운 비교학(比較學)에서사흘째./또는 /일주일(一週日)알맞게 째이는 날.........상심의 갈빗대./찍힌 꽃심지.一九五 年 〈코리아〉의 봄맞이처럼이나/언제나 벅차게 언제까지나/꽃은〈에덴〉의 동산(東山)에서 피고 질 것이라면꽃을 태우는 전쟁(戰爭)이나/봄을 타는 사랑이나처음으로 알몸으로 만나는/너나 나나/너와 나의과수원(果樹園)을 짓든가/양(羊)을 치든가달을 배든/알을 품든/개미집에 웅크리는그러면 사월(四月)의/엽맥(葉脈)이며 가장귀에그리움을 배우는 볼우물, 눈웃음, 발돋움의/참말이지 너와 나의아까운 목숨, 아까운 사랑이 이제금 다시 피어나는 것 뿐이다.-부활(復活)의 장(章)-이 시에서는 제목 그대로 전쟁으로 인한 상처들이 다시 치료되어서 새로운 것으로 부활하기를 바라는 내용이다. 전쟁으로 인해서 우리들은 많은 것을 잃었다. 무엇보다 귀중한 목숨과 사랑을 말이다. 시에서 화자는 꽃을 태우는 전쟁이나 봄을 타는 사랑이나 이제 다시 피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전쟁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그렇게 죽어간 아까운 생명들이 다시금 꽃처럼 피어나기를 시인은 바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부활하기를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3. 평화의 장이 시집에서는 다른 전후 시집에 비해 이러한 특징을 가진 시가 많은 것 같다. 그중에 대표적인 시 한편을 살펴보자.
    인문/어학| 2007.05.01| 4페이지| 1,000원| 조회(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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