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건축 양식의 역사는 오랜 시간 동안 서로 다른 지역의 이념, 취향, 조형적 목적, 건축적 사고 방식들 속에서 형성되었다. 건축물은 근본적으로 자연으로부터 인간의 안전, 보호, 편리함을 위해 존재해 온 이래 점차 장식이나 개인적 특성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안전, 보호, 편리함을 위해 존재해 온 이래 점차 장식이나 개인적 특성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필수 불가결한 요구의 역사가 되었다. 현대 20세기의 건축 역시 하나의 양식으로 정착하기 위해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금세기의 건축은 지난 건축양식에 대한 거부 또는 부활의 과정을 겪었지만 과거로부터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양식은 우리가 인식하게 되는 조형적 특성중 주어진 어떤 ‘방식’을 규정하는 역사적 특성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재의 건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유럽의 건축양식들을 사조별로 정리해보았다.우선 유럽의 건축양식은 크게 고대, 중세, 근세, 20세기 건축으로 나뉘게 된다. 또 고대건축은 그리스, 로마건축 그리고 중세건축은 초기기독교, 비잔틴, 사라센, 로마네스크, 고딕건축, 근세건축은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근세과도기 건축, 마지막으로 20세기건축으로 나뉘게 된다. 이제부터 이러한 유럽의 건축양식을 자세하게 알아보겠다.1.고대건축가.그리스 건축(Greek Architecture)많은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졌던 그리스 반도는 서로 다른 문화 환경적 차이를 보이면서 다양한 철학, 종교 , 예술, 건축적 특징을 만들어 갔다.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아테네는 개방적인 민주사회를 대표하는 최초의 도시국가로서 이성의 힘을 존중하고 수학적인 개념을 철학의 기본으로 삼는 등 실증되고 논증되지 않은 것은 진리로 보지 않는 자연관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이성적 질서의 추구는 기하학으로 결실을 맺게 되는데 당시 유클레이데스 기하학은 오늘날에도 수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정리로 평가되고 있다. 이와 같이 기하학상의 놀라운 발전은 그리스의 주요 신전과 건축물 등에서 뛰어난 비례체계를 이루게 되며팔레스트리나(Palestrina)의 포르토나 프리미게니아 신역(Santuary of Fortuna Primigenia) 등이 있다. 신전이나 신역의 건축에 있어서 로마인은 높은 기단, 축선, 정면성, 신전 후벽을 늘리는 등의 기법을 에트루리아와 고대 이탈리아의 건축전통으로부터 계승했다. 또한 이들은 주주랑에 의한 구형의 신역, 주주식의 신전 평면, 오더의 구성 및 그 세부 의장, 대리석조의 건축을 그리스 헬레니즘 건축으로부터 계승했다. 건축재료는 콘크리트라는 새로운 재료의 출현이 있었다. 로마의 콘크리트는 컴파니아 지방의 포졸란으로 불리는 화산재, 석탄, 돌과 연와, 물을 혼합시켜 만들어졌다. 따라서 현대의 소성 시멘트가 아닌 천연 시멘트로 된 콘크리트였다. 이것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명확치 않으나, 기원전 3세기에 이미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기원전 2세기 이후에는 널리 사용 되었다. 로마의 콘크리트는 그 표면에 응회암과 트레버틴등의 석재나 연와재 등에 의한 표층을 갖는다. 따라서 이 새로운 재료는 공화정 시대에는 석조벽의 대용으로 사용되었으며 재료 자체가 지닌 새로운 조형미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3황제시대에서 아우구스투스 시대(기원전 43년-기원 14년)이 시대에 로마인은 그리스 헬레니즘 건축으로부터 습득한 건축을 그들 스스로 소화하여 고전주의 건축을 확립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로마식의 코린트 양식 오더의 확립이며 황제 포럼과 아우구스투스 포럼이다. 공화제 말부터 코린트 양식 오더가 자주 사용되었다. 로마인은 그리스 헬레니즘의 코린트 양식 오더를 기초로 하여 코니스와 브리이즈 사이에 S자형의 로마형 코린트 양식으로 불리우는 오더를 만들어냈다. 그에따라 코니스의 처마 돌출부와 높이는 커지게 되었고 그 아래 처마 앞 장식이 붙게 되었다. 동시에 프리이즈(Frieze)면을 중심으로 장식이 화려해졌다. 이러한 장식은 기원전 2세기 경부터 헬레니즘 세계에서 부분적으로 달하기 시작하였고, 포럼 로마눔의 카스토르와 포르룩스 신전, 콩코르디아 신전에해 하중은 네 모서리로 집중되며 그 이외의 부분은 구조적으로 해방되기때문에 큰 개구부를 얻을 수 있게 되어 그 결과 돔의 거대한 공간 안으로 밝은빛을 끌어들일 수 있게 되었다.(2)비잔틴 건축의 대표적 건축물1성 비탈레 성당(기원 526-547년)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라벤나 수복을 기념하여 처음으로 만든 교회로서 로마의 교회양식을 상당부분 받아들였으나 결국은 비잔틴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로마 건축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내부를 보면 알 수 있는데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별궁 모습과 유사함을 볼 수 있다. 또한 성 코스탄자 교회와 로마판테온의 기둥양식 등이 영향을 주었다.2성 소피아 성당(기원 532-537년)'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인 성 소피아 성당은 세계의 3대 건축물로 손꼽힐 만큼 뛰어난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대형 돔에서 펜덴티브로 펜덴티브에서 반돔에 이르는 힘의 흐름이 중간에 중단됨이 없이 부드럽게 처리되어 있다. 그리고이 거대한 규모의 대형 돔 밑부분에는 띠와 같은 클리어 스토리 창이 설치되었으며, 이로써 돔과 펜덴티브 사이의 간격이 거의 연결됨이 없이 대형돔이 공중에 떠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또한 클리어스토리의 개구부로부터 들어오는 빛은 실내에 무한한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이와 같이 동 로마제국의 건축능력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이 건물은 특성상 다음의 몇가지 점에서건축역사상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첫째 구조적으로 보았을 때 고대 로마의 두 개의 대표적 건축공간인 막센티우스의 바실리카와 판테온을 하나로 통합시키고 있다는 점, 둘째 공간적으로 보았을 때 바실리카의 장축적 개념과 중앙집중적인 배치를 최초로 완벽하고 성공적으로 결합하고 있다는 점,마지막으로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성 코스탄자 교회로부터 비탈레 교회와 바쿠스 교회를거치는 발전도상에서 진정한 절정에 이르고 있으며 그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3베니스의 성 마르코 성당(기원 1042-1085년)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한 비잔틴 전반기의 교회당에 이어 바 고딕 건축을 로마네스크에 뒤이은 단순히 하나의 건축적 경향이 아니라 그것과의 경쟁 관계로 보았으며 로마네스크 양식을 강하게 부정하는 건축적 의도를 보여주었다.전체적인 건물의 특징은 이성과 신앙심을 중세적으로 종합한 표현 즉, 이성은수학적 비례의 모습으로 건물 각 부분들간의 완벽한 조화의 관계를 제공해 주며 신앙심은 성 드니 성당의 내부에 지극히 신성한 창을 통해 들어온 신비로운빛으로 충만하게 해준다. 충만한 빛과 부분들간의 조화는 초기 고딕 건축이 가장 우선적으로 추구했던 미적 가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노틀담 성당의 뛰어난 부분은 서측 정면인데, 피어를 사용하여 정면을 3부분으로 나누는 디자인은 성 에티엔느 성당의 디자인을 모방한 것이다. 이 탑은 네이브의 지붕상부로한 층만 올려져 있는데 지붕의 모습이 트레이서리의 스크린을 통해 투시된다.2전성기 고딕 건축초기 고딕 건축이 로마네스크 시대의 전통을 유지한채 발전했다면 13세기 전반부터는 고딕 건축의 고전적 형식이 점차 완성되어갔다. 샤르트르, 랭스, 아미앵의 성당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들 건축은 처음부터 플라잉 버트레스를 정교하게 사용함으로서 트리뷴을 통한 보울트 천정의 추력을 지지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그로인해 대형 아케이드, 트리폴리움, 고창으로 된 3층 구성의 입면을 만들어 낼수 있었다. 그 결과 스테인드 글라스의 고창의 면적을 대폭적으로 확대시킬 수 있었으며 신비한 빛을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어 장엄한 미사전례를 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상과 같이 구조적으로 커다란 발전을 이룸으로써 슈젤이 꿈에서 보았던 교회공간을 실현할 수 있었다. 이후 고딕 건축의 기술적 발전은 신랑 천정고를 높이는 방향으로 옮겨간다.3후기 고딕 건축건축장식을 주제로 하여 발전한 영국의 고딕건축에서 영향을 받아 프랑스에서도 14세기 후반부터 화염식 고딕 건축이 등장한다. 보울트의 리브가 복잡화되고 고전기의 고딕 건축에서 보았던 구조와 의장의 상관관계가 거의 없어지며 리브와 반곡점이 있는 곡선으로 장식된 트레이서리 창 신체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전체 광장은 인간의 형상을 추상화하며 긴 경사로는 다리를 나타내고, 원로원의 건물은 머리, 측면의 두 건물은 팔, 타원은 몸통, 타원속의 기마상은 배꼽 등을 나타낸다. 조각적으로 디자인된 미켈란젤로의 건물은 인간의 육체중 특히 근육적 특징에서 형태를 추출했다고 볼 수 있다. 성 베드로 성당에서 미켈란젤로는 브라만테의 집중식 평면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거대한 공간을 무리없이 처리했으며 외관에서는 브라만테의 배치에서탈피하여 중앙집중식과 축선상의 배치를 통합했다. 외부의 측면과 후면은 미켈란젤로의 원래 설계대로 시행되었는데 거대한 코린티안 오더의 필라스터는 육중한 상층부를 지지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창문과 니치들은 벽으로 통합되었다. 미켈란젤로의 성 베드로 성당은 브라만테의 가벼운 건축구법과는 달리조각적인 특성을 띄고 있다.-프랑스의 르네상스 건축초기부터 통일 왕국을 이루었던 프랑스는 15세기말-16세기에 함부르크 가문의 신성 로마황제와 함께 이탈리아 정치에 개입하였으며 몇개의 도시국가를 통치하기도 했다. 이러한 접촉을 통해서 프랑스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군사력으로는 이탈리아를 지배할 수 있었으나 문화적으로는 이탈리아를 능가할 수 없었기 때문에 프랑스 지식인들의 이탈리아 문화에 대한 동경은 강했다. 그러나 고딕 건축이 융성했던 프랑스의 풍토에서는 결국 르네상스양식이 넓게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르네상스의 영향은 왕가와 그 주변에만 한정되었으며 종교건축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국왕은 로와르강 유역을중심으로 궁전을 지어 생활하고 있었으며 프랑스 르네상스 건축은 대부분 왕과 귀족의 궁전에서 나타났다. 프랑스 르네상스 건축의 기초가 되었던 이탈리아 양식은 상당부분 편향된 형태로 프랑스에 전해졌다. 초기에 강력했던 밀라노 등 북 이탈리아의 도시는 르네상스의 중심이 아니었으며 그 건축물 또한 지방양식에 지나지 않았다. 후에 로마나 피렌체 등에서 초대된 이탈리아인 건축가들은 이미 르네상스 말기 매너리즘 시대의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