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지금 유아교육학과 이전에 불문학과를 졸업한 학도로서 여왕 마고 는 프랑스의 역사 라는 과목을 통해 수업시간에 본 적이 있다. 그때도 영화 감상문을 내기 위해 수업시간에 감상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여러 번 본 기억이 있다. 이번 세계의 역사 레포트를 위해 다시 여왕 마고 라는 영화를 봤을 때 처음 봤을 때 느꼈던 충격적인 장면은 여러 번 봄으로써 그 당시의 종교 다툼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 관계를 좀 더 쉽게 이해되지 않았나 싶다. 한 번 봐서는 여왕 마고 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그 관계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번에 다시 보면서도 우선 영화의 배경이 되는 16세기 종교 전쟁 관계와 왕의 서열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알 수 있는 권력 투쟁 등 그 안에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미리 접해 보고 이 영화를 감상함으로써 어느 때보다도 지루하지 않고 다시 한번 영화에 심취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Ⅱ. 본론1. 여왕 마고 의 시대적 배경과 줄거리독일에서 일어난 종교 개혁은 1520년경부터 프랑스에도 파급되기 시작하였다. 프랑스내에서는 신구 양파의 종교 분쟁이 심해졌고, 16세기 후반에는 8차례나 종료전쟁(위그노 전쟁 1562~1598)이 일어났다.{ 다니엘 리비에르, 그림으로 보는 프랑스의 역사, 까치16세기 프랑스는 카톨릭을 믿는 프랑스와 개신교를 국교로 하는 나브르로 나뉘어져 있었다. 프랑소아 2세의 뒤를 이어 그의 동생 샤를르 9세가 프랑스 왕위를 계승하였다. 영화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샤를르 9세가 프랑스를 통치한다기 보다는 그의 어머니인 까뜨린느 드 메디시스가 왕의 조정자이며 실제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1562년부터 시작된 프랑스 종교전쟁으로 프랑스는 많이 피폐해져 있었다. 까뜨린느는 종교적인 문제에 있어서 우위 뿐만 아니라 자기 아들로 하여금 차례로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온갖 음모를 꾸민다. 까뜨린느는 위그노(프로테스탄트)라는 프랑스 내의 개신교들로 하여금 제한된 범위 안에서 종교적 자유를 부여하나 그것은 위그노에게나 카톨교 신자들에게나 모두에게 불만을 안겨주게 되고 결국 그것은 장기간의 복잡한 투쟁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오랫동안의 격렬한 전쟁을 하게 된다. 영화의 화려한 배경이 되고 있는 나브르의 왕 앙리와 까뜨린느의 딸인 마고의 결혼식은 이런 전쟁의 휴전조약을 굳게 하기 위해 성립된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까뜨린느의 무서운 음모가 숨어있었다. 나브르의 콜리니 제독을 죽이려 하나 실패하자 위그노의 분노와 증오에 위협을 느끼자 결혼식에 초대된 개신교자들을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에 새벽 종소리를 신호로 해서 모두 죽이게끔 아들에게 명령하도록 지시한다. 그로 인해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무덤을 만들 정도로 결혼식에 온 프로테스탄트 2000명과 근처에 있던 8000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처참히 죽는다. 까뜨린느는 자신의 아들의 왕위를 위해 앙리를 암살하려고 하나 비소 묻힌 책을 오히려 왕(샤를르 9세)이 읽으면서 점점 독소로 인해 죽어간다. 사냥에서 믿음을 보여준 앙리에게 샤를르 9세는 나브르로 도망치게 도와준다. 나브르로 간 앙리는 자신의 목숨을 지켜준 마고를 살리기 위해 마고가 마지막으로 사랑한 연인 라몰르를 보내고 라몰르는 그 와중에 잡혀 단두대에서 사형을 당한다. 영화는 자신이 사랑한 사람의 머리를 싸서 나브르로 떠나는 마고의 모습으로 끝난다. 샤를르 9세가 사망한 후 까뜨린느가 총애하던 앙리 3세가 즉위하게 된다. 그러나 종교 전쟁 와중에 앙리 3세는 살해되고, 앙리 4세 즉 마고의 남편이자 나브르의 왕이 프랑스의 왕위를 차지하면서 부르봉가 시대가 열린다.{ 하인리히 만, 앙리 4세, 미래 M&B마고와의 결혼식 이후 살기 위해 카톨릭을 개종했던 앙리는 나브르로 가서 다시 개신교로 개종하나 프랑스의 왕 앙리 4세가 되기 위해 그리고 반대세력을 융화하기 위해 그는 다시 카톨릭으로 개종하게 된다. 그리고 프로테스탄트들에게 종교적 자유와 권리를 부여해 주기 위해 낭트칙령을 공포하게 된다.2. 16세기 종교와 권력투쟁8차례의 종교전쟁을 치뤘던 16세기 프랑스는 종교적으로 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의 대립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 뒤에는 무서운 그들의 권력다툼이 숨어있다. 영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아들이 3명이면서도 왕위가 위그노인 앙리에게 돌아갈까바 그를 죽이기 위해 불을켜는 까뜨린느는 앙리를 죽이려고 수를 쓴 비소의 독극물이 묻힌 책을 앙리의 방에 갖다 놓으나 결국은 샤를 9세가 그 책을 읽음으로써 피땀을 흘리며 아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본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종교적 평화, 가문의 평화를 위해 그 일은 개신교 사람들이 했다는 식으로 자식을 위로하게 되는 모습을 영화를 통해 볼 수 있다. 까뜨린느의 종교적 명분은 결국 자신들의 아들들을 왕위에서 지키려는 것이었다. 나바르공과 왕녀 마고 드 발루와의 결혼식에서 초대된 위그노들을 종교적 평화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수천명을 학살하게 된다. 이것이 곧 4차 종교 전쟁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겉으로는 종교적 화해를 위한 조약이었지만 결국 개신교를 인정하지 못하는 까뜨린느는 더구나 자신들의 아들들의 자리에 불안을 느껴 앙리의 죽음을 노려 수천명의 위그노를 살해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위그노의 조직적 무장이 시작되고 내전이 장기전 양상을 띄게 된다. 8차 종교전쟁 또한 권력과의 다툼으로 인한 전쟁이었다. 앙리 3세와 그의 동생 프랑스와 달랑송의 권력다툼 속에서 결국 종교를 뒤로한 권력적 욕심에서 어머니의 바램에도 불구하고 아들들의 몰락과 죽음에 이어 결국은 그렇게 우려했던 앙리 드 나브르 즉 마고의 남편이자 나브르의 왕인 앙리 4세가 즉위하게 된다. { 프레데리크 들루슈, 새유럽의 역사, 까치종교적 이유를 뒤로한 채 왕가에서 일어난 권력적 다툼뿐만 아니라 카톨릭과 개신교 사이에서 일어난 종교적 다툼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시대의 모든 종교 전쟁은 그들 자신들의 종교에 기반하여 행해진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떤 종교도 그들의 원수를 인정하고 사랑하라고 주장한다. 특히 그 당시 프랑스인들이 믿었던 카톨릭과 개신교는 더구나 그 교리를 믿는다고 할 수 있다. 포용과 용서와 사랑을 믿는 그들이라 하지만 특히 카톨릭의 경우 영화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자신들의 종교적 권력을 위해서 서슴없이 부녀자들과 개신교도들을 모조리 살육하고 무덤을 쌓을 정도로 그들을 죽이고 또 버리는 모습을 보고 어떤 것이든 자신들의 우위를 지키기 위해 행하는 행동을 한다해도 살인만큼은 용인될 수 없는 행위라 생각한다. 카톨릭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교도들도 자신들의 입지를 위해서 전쟁을 통해 프랑스를 빼앗아 정복하려고 했다. 이 안에는 위에도 말했듯이 그들의 왕위계승문제가 결합되는 것이다. 실제로 자식이 없는 앙리 3세가 죽은 이후로 이 문제는 종교전쟁(8차 종교전쟁)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제일 가까운 친척이자 왕녀의 남편인 앙리 드 부르봉에게 왕의 자리가 돌아갔으나 개신교인 그는 카톨릭교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게 되고 결국 그는 다시 카톨릭교로 개종하게 되고 왕이 됨으로써 낭트칙령을 발표함으로써 개신교의 종교적 신앙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하인리히 만, 앙리 4세, 미래 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