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유전자가 존재하는가?-Roger Kornberg와 Arthur Kornberg 그리고 우리나라 노벨상 수상전략과목명 :프론티어생명과학학 번 :학 과 :이 름 :2006년 10월 14일 세포 내 유전자(DNA)에서 유전정보전달물질(RNA)로 유전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을 규명한 공로를 인정받아 로저 콘버그 교수가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업적을 1992∼1994년 로저 콘버그 교수의 실험실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한 연세대 생화학과 김영준 교수는 “로저 콘버그 교수는 암 심장병 염증 등 전사 과정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발생하는 각종 질병을 연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그 소식은 그의 아버지에게 47년 전 기억을 더듬게 하였다. 1959년에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아서 콘버그 교수기 때문이다. 당시 12세였던 그는 아버지가 노벨상을 받는 것을 보고 유전자 연구를 결심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유전학의 시초를 확립하고 아들은 한 단계 발전시켜 성장날개를 단 셈이다. 유전정보 전달 연구를 통해 역대 6번째로 노벨상을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수상한 영광을 누렸다. 나는 어떻게 노벨상 부자(父子)수상이라는 대단한 업적을 세울 수 있는지 궁굼하였다. 과연 노벨상이 부자(父子)가 모두 받을 수 있을 만큼 쉬운 일인가? 아님 그런 유전자라도 존재하는 것인가? 우선 부자(父子)를 비교해보면 아버지는 열정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성격인데 반해 아들 로저 콘버그 교수는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이라고 한다. 성격도 전혀 다른 부자(父子)였지만 피는 못 속이는 것일까? 나는 이렇게 가족이 수상할 수있는 이유를 학문적인 되물림과 가족 공동 연구의 힘에서 찾았다. 게다가 콘버그의 아들인 가이 콘버그 역시 스탠퍼드대에 재학 중이다. 3대가 한 대학에서 연구와 공부를 하고 있다. 부전자전은 계속 될 것인가? 스탠퍼드대의 명예를 건 3대의 행진이 주목된다.이번 레포트를 쓰면서 비록 부자(父子)수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노벨상을 수상 할 수 없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역대 화학 및 생리의학상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연구 업적들을 정리해보니, 첫째 기초연구에 필수적인 연구방법이나 연구에 필요한 기기의 원리나 기기를 발견하고 그 수단을 통하여 과학의 발전에 큰 파급효과를 얻게 한 연구자, 둘째 물질의 현상이나 특히 생체현상의 이해를 위한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연구업적을 이룩한 자, 셋째 새로운 이론이나 예측으로 미래에 중요한 학문분야를 개척한 업적의 공로자들에게 노벨상들이 수여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은 해외에서 연구한 학자들이 국내에 들어와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기 보다는 교육 및 연수과정에서 연구했던 과제를 계속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을 꿈꾸는 한국인에게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것은 교수님이 강의시간에 말씀하신 블루오션전략이다. 교육면에서 보면 선진국에 비교하여 창의성이 뒤지는 것도 문제이다. 따라서 우리 교육의 방향이 입시위주의 교육이 아니라 창조성의 향상을 위한 교육이 되어야 한다. 요사이 초, 중등 학생들이 깊이 생각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들었는데, 초, 중등교육에서 학생들이 궁금증을 가지게 하고, 의문이 있으면 질문하고, 토론하는 교육으로의 획기적인 전환이 시급히 필요하다.
2004년 노벨화학상 수상자Aaron Ciechanover과목명 :프론티어생명과학학 번 :학 과 :이 름 :작년 9월 우리 학교 백주년 기념관에서 Aaron Ciechanover가 연세노벨포럼에 초청되어 초청 강의를 하였다. 매주 노벨상 수상자에 대해 리포트를 쓰다보니 점점 노벨상에 흥미를 갖고 그들이 어떤 일을 하여 수상하였지는 또 어떤 사람인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올해도 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을 학교에 초청하여 학생들이 직접 만나보고 강의도 듣고 많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Aaron Ciechanover는 유태인이고 이스라엘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법률사무소에서 사무원으로 일하고 어머니는 영어교사였다. 어릴때 그의 부모님은 Aaron Ciechanover에게 열심히 공부하도록 독려를 하였고, 그는 자서전에서 그렇게 어릴 때의 모습을 그렇게 회고하고 있다. 어릴때부터 형제들과 산에 올라가서 꽃을 모으고 11살 때 현미경을 사서 양파의 상피를 관찰하였다. 그가 어릴 때부터 생물학에 빠졌다는 것은 어찌보면 현미경을 사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하면서 부터가 아니였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어릴때 현미경을 선물 받았지만, 장난감 정도로 생각해서인지 채 한달이 못 가고 실증내었던것 같다. 그의 자서전을 읽으며 어릴때 Aaron Ciechanover처럼 여러 가지 실험도 해보고 관찰도 해서 좀더 생물에 대한 관심을 일찍 가질 수도 있었을껄 하는 후회가 되었다.그는 다른 이스라엘 인과 마찬가지로 군대에 갔는데 그는 기쁘게 군생활하였다고 하였다. 나도 군대를 갔다 왔지만 그가 기쁘게 군 생활 하였다는 것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의사로 복무를 하여서 자기의 전공분야를 계속 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반면에 나는 군대에서는 전공과는 거리가 먼 행정 일을 맞아서 하였다. 물론 군 생활이 나에게 도움된 것도 많다. 하지만 제대 후에 다시 공부를 하려고 하니 처음에는 잘 적응도 안 되고 머리가 텅 비어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 시간낭비만 낭비하다 온 것 같은 생각도 약간은 들었다. Aaron Ciechanover를 보면서 차라리 대학원을 가서 공부하던 것을 계속하면서 전문 연구 요원으로 대체 복무를 하였으면 더 좋았을 수도 있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Aaron Ciechanover은 단백질의 분해과정에 대해 연구하였는데 이는 그 당시 과학자들이 전혀 관심을 않가지는 분야였다. 만약에 그가 남들이 관심가지고 연구하는 똑같은 분야에 대해 연구하였다면 2004노벨상 수상자에 뽑히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교수님이 말씀하신 블루오션적 사고를 가지고 연구하였기에 노벨상 수상이 가능하였던 것이다. 그의 연구 업적은 자궁경부암과 낭포성 섬유증등 난치성 치료제 개발이 가능해졌다는 평가다. 이번 리포트를 쓰면서 다시 한번 블루오션적인 사고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남들이 한다고 해서 무조건 따라하는 것 보다는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분야를 연구하는 것이 노벨상수상에 좀더 근접할 수 있는 전략이 아닐까 생각한다.
Nature's Gift to Science-C. elegans 연구의 개척자 Sydney Brenner과목명 :프론티어생명과학학 번 :학 과 :이 름 :프론티어 생화학은 전공탐색과목이라 그냥 교양과목 정도로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Scientist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해 주었다. 이 수업을 통해 내가 느낀 Scientist는 자신의 분야의 첨단에 서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당당하게 개척하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주 노벨상 수상자들 가운데 단연코 Sydney Brenner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C. elegans를 1974년 실험실로 처음으로 가져온 인물이다. 즉 Sydney Brenner를 C. elegans 연구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다. C. elegans는 신경발달을 포함한 동물성 발달 연구를 위한 모형 유기체로서 대량으로 번식시키기 쉽고 1밀리미터의 크기의 회충이라서 유전 분석도 비교적 쉬워서 대단히 중요한 실험동물이다. 그는 2002년 12월 노벨 강연에서 "Nature's Gift to Science" 이라고도 표현했다. 이 C. elegans를 연구한 3명의 과학자가 2002년 노벨상의 연구로 생리의학상을 받은 것을 보면 그 중요성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Sydney Brenner의 성장과정을 보면서 전형적인 천재의 모습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5살 때 초등학교 1~3학년과정을 마치고, 4학년으로 월반하였고 Germiston 고등학교를 10살 때 들어갔다. 15살에 Witwatersrand 대학을 들어갔다고 하니 얼마나 똑똑하고 총명하였는지는 굳이 부연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그는 천재라고 해서 독단적으로 연구하거나 실험 하지 않았다. 항상 열린 마음으로 다른 과학자와의 협동을 통해서 새로운 분야를 헤쳐 나갔다. 강의 시간에 교수님이 2002년의 수상자 3명의 관계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던 것을 되새기니까 Sydney Brenner가 협동을 통해 새로운 분야를 헤쳐 나갔다고 하는지 확실하게 느껴졌다. 여기서 나는 이시다 도라오, “우리도 도전하자 노벨상”책에서 본 내용 중 노벨상을 타기 위해서는 열심히 연구에 몰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관계가 더욱더 중요하다는 말이 언뜻 떠올랐다. 노벨상의 수상에는 스웨덴 왕실과 과학계의 입김이 작용하고 특히 이미 노벨상을 수상한 이들의 영향은 크다는 내용이였다. 만약 Sydney Brenner가 독선적인 사람 이였다면 그의 업적이 아무리 뛰어났다 하더라도 노벨상 수상자의 이름에서 빠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Sydney Brenner에 대해 조사하면서 Scientist의 자질 중에 개방적인 사고 즉, 협동하는 자세도 그 어떤 자질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Sydney Brenner처럼 천재라고 불릴 정도의 성장과정을 거치지는 않았지만, 프론티어 생화학 시간을 통해 배운 과학자에게 필요한 자세나 자질을 두루 갖추어 멋진 Scientist가 되고자 노력해야겠다.
Aguaporin의 발견은 뜻밖의 발견이다-Peter Agre의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Aquaporin 발견과목명 :프론티어생명과학학 번 :학 과 :이 름 :Peter Agre는 혈액에서 Rh_Factor의 분자의 일치를 조사하다 우연히 aquaporin을 발견한 것 같지만, 그의 성장기부터 자세히 살펴보면 우연히 아니라 당연히 그이기 때문에 발견하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의 자서전에서 보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연구하는 것이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지 아버지를 통해 알았다고 하였다. 그의 아버지 Courtland Agre는 미국에서 유명한 화학자였고 매우 열정적인 사람이였다. 그런 아버지를 둔 Peter Agre는 당연히 아버지를 자신의 우상으로 생각하며 자신도 그런 삶을 살기위해 열심히 매진하였다. 물론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말씀하신 것처럼 사춘기 시절 사고를 쳐서 고등학교에서 쫒겨나고 야간 고등학교를 다닐 정도로 방황도 하였지만, 정신차리고 공부하여 아버지가 있는 대학을 거쳐 존스 홉킨스 의대까지 들어갔다. 이렇게 그가 다시 도약하여 의대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우상인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아버지가 항상 그를 챙기고 감싸준 것은 아니였다. 그와같은 대학에 아버지가 화학교수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첫 화학과목을 “D”학점 받은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의 형제 역시 둘다 의사라고 한다. 이 또한 아버지가 그들의 역할모델로서 모범이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는 이런 그의 아버지를 보며 미국판 ‘맹자 어머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어릴 때부터 이런 자신의 우상이 되어주었던 아버지가 있는 Peter Agre가 부러웠다.나는 프론티어 생화학이라는 과목을 듣기 전에는 보통의 우리나라 사람과 마찬가지로 노벨상에 관해 관심이 없었다. 예전에는 과학을 배우더라도 항상 오래된 법칙이나 원리를 외우곤 하였는데 프론티어 생화학 강의를 계기로 현재 과학계에서 가장 최신 업적나 혁신적 발견에 대해 공부하게 되면서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최신 과학계의 업적들을 알아 가는데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Peter Agre처럼 새로운 것을 배우고 연구하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알게 되었다. 이번에 Peter Agre에 대해 조사하며 그가 2005년에 부산대에서 특강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노벨상 받은 Peter Agre란 사람이 와서 강의를 했나보다 이렇게 생각 했겠지만, 이제는 이 뉴스를 보고는 2005년이면 내가 부산에서 군 생활하고 있을때 였기 때문에 진작 노벨상에 관심을 가지고 그런 자리에 가서 Peter Agre도 실제로 만나보고 특강도 들어 볼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2005년 3월 한국을 찾은 Peter Agre는 부산대에서 한 특강에서 "2003년 노벨 화학상은 염(이온)과 물이 어떻게 우리 몸의 세포 안팎으로 수송되는가를 발견한 두 명의 과학자에게 돌아갔다"며 "이 발견은 신장이 어떻게 소변으로부터 물을 회수하고, 신경세포 속의 전기적 신호가 어떻게 생성되고 전달되는가를 기본적인 분자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해 줬다"고 말했다. Peter Agre 박사는 "이는 신장.심장.근육 그리고 신경계통의 많은 질병들을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노벨의 유서에 관한 에피소드(‘죽음의 상인’에서 전 세계 과학의 후원자로 )과목명 : 프론티어 생화학학 번 : 0430069학 과 : 이 학 계 열이 름 : 이 석 원본 리포트에서는 노벨이 왜 어떤 계기에 의해 자신의 거의 모든 재산을 노벨상을 만드는데 사용하도록 유언을 남겼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먼저 노벨이 죽고 난 후 유서의 공개로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다. 유서를 쓸 당시 변호사의 상의는 물론이고 스웨덴과학 아카데미와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동의도 구하지 않았다. 유산상속자들의 사이의 논란과 그의 재산의 90%를 운용하라고 지정해 놓은 노벨재단도 설립되어 있지 않았고 스웨덴의 국적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8개국에 흩어져있는 그의 재산을 다시 모으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유언의 집행자였던 당시 26세의 라그나르 솔만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노벨재단과 노벨상은 만들어지게 된다.노벨은 자신이 죽기도전에 자신의 죽음에 대한 기사를 접하게 된다. 1888년 노벨의 친형 루드비그 노벨이 프랑스 칸에서 사망했다. 그런데 당시 한 신문이 이것을 알프레드 노벨의 사망으로 혼동해 "죽음의 상인, 사망하다"라는 제목의 부음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를 본 알프레드 노벨은 충격에 휩싸였다. 당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총 350개 이상의 특허권을 가지고 있었고 폭탄 제조공장과 탄약 제조공장을 포함해 90여 개가 넘는 사업체를 거느린 당시 굴지의 기업인이자 과학자였다. 하지만 노벨은 자신이 평생 독신으로 고투하며 살아온 삶이 결국 사람들에게 '죽음의 상인'으로밖에 기억되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접하고서 도저히 그대로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7년 동안 "나는 죽어서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를 고민한 끝에 결심했다. '죽음의 상인'이 아니라 '인류에 수여되는 최고로 가치 있는 상'의 창설자로 기억되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던지기로 말이다.노벨이 노벨상이 만들어진 에피소드에 대해 알아보면서, 나도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죽어서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에 대해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내가 군생생활 중 항상 전역하고 이제 복학해서 어떻게 남은 대학교생활을 할 것이며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될지에 대해서는 정말 생각을 많이 해 보았지만, 죽어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 될지에 대해서는 정작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삶의 방향에 대해 아직까지는 불안 했던 나를 흔들어 깨우는 질문이였다. 얼핏 보기엔 '기억'이란 단어 때문에 과거 지향적인 물음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실은 너무나 현재진행형이며 곧 다가올 미래와 결부된 물음이다. 제대로 살고자만 한다면 누구나 피해갈수 없고 생각해봐야 하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