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성령론◈들어가며개혁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칼빈의 신학중 성령론을 조명하며 성령은 누구이며 성령의 사역과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세미나를 통해 성령에 대한 생각이 우리의 영속에 가득차기를 소망하며 발제를 진행하고자 한다.◈칼빈의 성령론1.성령은 누구신가? -‘삼위일체’라는 말이 성서에 표기되어 있진 않지만 칼빈은 성부, 성자, 성령이 본질에 있어서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칼빈은 성서에 나타난 성령을 ‘하나님이다.’라고 하였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 제 3권에서 성령을 삼위일체의 체계안에서 성서가 증거하는 성령이 하나님이신 것을 증명하고 있다.1) 칼빈이 증명한 것은 성령의 신명(神命)이다. 성자가 인격적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마1:21.25)라는 이름을 가진 것처럼 성령도 인격적 존재이므로 ‘보혜사(파라클레토스;요16:7)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5장에 아나니아가 성령을 속였을 때 베드로는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라고 책망했다는 것이다.2)하나님의 속성이 성령에게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속성이 성자에게 사용된 것처럼 성령에게도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영원성, 전지성, 편재성, 생명과 진리의 영 등이 바로 그것이다.3)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사함 받지 못한다. 성부 하나님을 훼방하는 죄를 용서함 받을 수 없듯이 성령을 훼방하는 죄도 용서함을 받을수 없다.(마13:31-32)4)장래 일을 알려주신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진리의 영이 오시면 장래 일을 알게 하신다’고 하셨다(요16:13). 5)창조에 참여하셨다(시33:6). 6)마28:19절에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에서 이름을 단수로 사용함으로 삼위가 한 하나님임을 선포했다고 지적한다.2.칼빈이 주장한 성령의 사역칼빈은 성령의 사역과 관련해 4가지 주제를 기술하며 성령의 사역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직접적으로 관계한다는 것을 주장했다.1)말씀과 의 주권적 선택의 은총에 의해서 ‘믿어지는 믿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칼빈이 주장하는 믿음은 그 정의와 속성이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평범한 찬동이나 결단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다만 칼빈은 믿음이 무지(無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관한 지식(요17:3)과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을 아는 지식에 믿음이 있다고 강조하였다.이 믿음은 신앙과 말씀이 동시에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칼빈은 바울의 예를 들어 믿음이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이며 이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얻는다고 했다.그러나 이 하나님의 말씀은 죄로 타락한 인생이 깨달을수 없기에 성령과 말씀과의 관련성이 설명된다. 칼빈은 믿음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인애를 아는 지식과 그 인애의 신실성에 대한 확실한 신념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신성불가침의 진리라고 확신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믿음의 지식은 이해가 아니고 확신이라고 주장한다.칼빈은 그러므로 믿음은 성령에 의하여 우리의 마음에 계시되며, 말씀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며 우리의 믿음에 효과를 나타낸다고 한다.따라서 사람은 성령이 없이는 믿음을 가질수 없다는 것이다.3)성령과 회개회개는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인간이 하나님의 현실로 방향을 돌리거나 복귀시키는 용어이다. 따라서 정적(static)이기 보다는 동적(dynamic)인 개념이다.칼빈은 누구든지 먼저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 전에는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용인하지 못한다고 했다.회개는 육신을 죽이는 것과 영적 소생이다. 즉 십자가에의 참여는 옛 사람의 끊임없는 죽음을 의미하며 그의 부활에의 참여는 하나님의 의를 좇는 새로운 삶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칼빈은 ‘죽임’과 ‘살림’은 회개의 구성 부분이라고 정의한다. ‘죽임’은 우리의 옛 사람이 그의 힘으로 십자가에 못박힐 때 죄의 몸이 없어지고 부패의 본질은 활기를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롬6:5-6) ‘살림’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는 힘으로 얻는 새 생명인데, .◈마틴 로이드 존스의 성령론1. 성령과 신자와의 관계로마서 8장 9-11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단정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그리스도인이라면 성령이 필연적으로 그 안에 있다는 것이다. 즉, 신자 안에는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이 거하신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을 떠나실 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 16:7)”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 가시면 대신해서 성령님을 제자들에게 보내시겠다는 것이다. 많은 신자들이 성령님을 일종의 세력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분이신 인격체시라는 것이다.우리는 로마서 8장 9-11절을 근거로 하여, 이 성령님과 우리 신자들 간에 어떤 관계가 성립 되는가 살펴보고자 한다.첫째, 이 구절은 말하기를 그리스도인은 ‘육신에 있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아무리 많은 죄를 짓는다 할지라도 그는 다시 ‘육신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결코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그런 상태에 있지 않다. 그의 처지가 어떠하다 할지라도 그는 그리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이제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도 세상에 살고 있지만, 더 이상 세상풍속을 따라가지 않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간다는 것이다.둘째,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말씀하고 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때때로 사단은 우리가 실패했을 때 우리를 정죄하고 실망하도록 노력한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내주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잘 나님의 자녀라고 확신할 수 있다. 중생한 사람에게만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 속에 하나님을 아는 더 큰 지식을 소원하게 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더 크게 바라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언제나 하나님을 위한 자기의 사랑이 부족하다는 것을 늘 염려하고, “주님, 내 사랑이 약하고 연약해서 늘 걱정입니다. 부족한 저를 도와주세요.”라고 고백하게 된다. 아울러 자기 죄를 더욱 더 깨달으며 괴로워하게 되고 죄와 악과 유혹이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 더욱더 예민해져 간다. 그래서 그는 날마다 더욱더 하나님의 의와 거룩함을 사모하며 실행에 옮기고자 애를 쓰게 되는 것이다.3. 성령세례가 주어지는 때우리 영으로 더불어 증거 하시는 이 성령의 증거에 관해서 생각해야할 다음 문제는 언제 성령세례를 받게 되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중요한 문제이다.성령님의 평범한 사역과 성령님이 임하시는 때를 동일시하는 사람들은 그런 일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생할 때에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성령의 세례’는 무의식적으로 중생할 때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 일이 그리스도인이면 누구에게나 일어난다고 말해야 한다. 또한 그것은 중생하는 순간에 일어난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성령의 인침에 관해서도 같은 것을 말한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령의 세례를 받았으며 또한 성령에 의해서 인침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일 리가 없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사도행전 2장에서 보듯이 제자들은 이미 그리스도인들이었으나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성령세례는 분명히 체험적으로 누구나 알 수 있도록 받게 되는 것이다. 제자들은 성령세례를 받기 이전에도 예수님께서 이미 깨끗함을 받았다고 인정받았다. 그들은 성령세례를 받기 이전에 이미 그리스도인들이었다. 또 다른 예를 든다면 다음과 같다. 빌립이 이미 전도한 후에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로 내려갔다는 것을 알려주는 내용이 사런데 어떻게 그것이 비체험적일 수 있겠는가?둘째, 성령세례는 큰 기쁨과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인도하는 체험이다. 이 사실을 빠뜨리고 이 체험을 말하는 곳이 성경에는 전혀 없다. 사도행전 2장에서 명백하게 나타난다. 누구든지 성경상의 인물들 속에 있는 넘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셋째, 성령의 증거는 은사나 현상을 동반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오순절 날의 제자들의 경우에서는 분명히 매우 큰 은사들이 동반되어 나타났다.넷째, 매우 중요한 요점은 이 체험의 정도에 관계된다. 어떤 사람은 체험의 강도가 매우 강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체험의 강도가 비교적 약할 수 있다. 그러나 성령세례를 받는 사람은 모두 이를 느끼게 되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다는 것이다.그러면 성령세례가 누구에게 주어지는가? 저자는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세례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사도들이나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신약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성령세례가 주어졌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휫필드는 그의 일기에서 “성령이 오셔서 이런 증거를 하실 때마다 어떤 심상치 않는 시련과 어려움이 찾아온다는 징조라고 느끼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일은 개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어떤 단체나 국가에게도 일어난다. 우리는 여러 나라들이 전쟁과 큰 재난이 닥쳐오기 바로 전에 종교적 부흥을 만났다는 것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한국에서 일어난 전쟁이 있기 전에 큰 부흥이 있었다. 동부 아프리카에서 일어났던 마우마우재난 바로 직전에 그런 일이 확실히 있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특별한 방식으로 시련을 통과하도록 하기 위해 자기 사람들에게 힘과 위로를 주기위해 성령세례를 주는 것이다. 아울러 성령세례는 사단의 공격과 시험을 이겨낸 성도들에게 주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어떤 특별한 충성심과 능동성을 보일 때에도 일어난다.4. 성령과 말씀에베소서 6장을 보면 성도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마귀를 대적해서 승리를 거둘 수다.
요한계시록 9~11장 주석9장 : 다섯째 나팔과 여섯째 나팔다섯째 나팔 : 지옥(地獄)에서 나는 연기 9장 1-12절다섯째 나팔과 여섯째 나팔은 그 형태로 인해서도 처음의 네 나팔과 구별된다. 그것들은 좀 더 길게 매우 상세히 보도된다. 다섯째 나팔에 관한 보도는 그 자체가 주목될 정도로 통일성을 잃고 있다. 재앙은 9장 1-6절에서 빠짐없이 묘사된다.[1절] pp. 221- 222.별의 떨어짐이란 주제를 통해 다섯째 나팔은 앞에 나온 네 나팔과 비슷해진다. 그러나 여기서 그 주제는 근본적으로 달리 적용된다. 처음의 네 나팔들은 본래 재앙이 아니었다. 그것을 묘사할 때 이집트에 내린 첫 번째 재앙과 일곱째 재앙이 영향을 끼쳤을는지 모르지만 오히려 그것은 화산폭발과 같은 한정된 범위의 자연의 파국에 대한 묘사다.별의 떨어짐은 신화에 있어서는 천사들의 몰락으로 해석된다. 하나하나의 별이 떨어진 다음에는 지옥의 고관들로 변한다는 사실이 미리 예시되고 있지만, 이점은 12장 9절에서 보다 광범위하게 설명된다.원칙적으로 생각해 볼 때 하나님에 대한 악마들의 이 싸움은 9장에서 재앙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사탄은 하나님의 허락으로 그의 힘을 소유하기 때문에 악마들의 군대로 하여금 인간들과 대적하도록 지휘한다.[2절] p. 222.여기서는 넷째 나팔과의 연관도 엿보인다. 연기는 협곡에서 나와 공기와 빛을 어둡게 한다. 출애굽기 19장18절에서도 이와 비슷한 표현이 나오지만 ‘신 현현’ 보도로는 간주될 수 없다.[3절] pp. 222-223.첫눈에 하나의 연기구름처럼 보였던 것은 좀 더 자세히 관찰해 보면 메뚜기 떼로 드러난다. 요엘서에서 메뚜기 떼는 주의 날을 표시 하는 비유이고 이 날이 가까웠다는 것을 나타내는 하나의 징표이다. 요한은 요엘의 예언이 성취됨을 본다. 그래서 그는 주의 날에 성행하는 묵시문학적인 메뚜기 재앙을 생각한다.동시에 메뚜기들은 구약성서에서 여러 번 인류를 위협하는 독 있는 야생 동물 및 지하세계의 동물들의 속성들을 취하고 있다. 그것은 ‘불을 뿜으행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왜냐하면 독일말로는 그에 상응하는 이중의미의 낱말이 없기 때문이다. 날개 소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요엘2:5절에 의하면 마차의 덜거덕 거리는 소리와 비교된다.[10절] p. 224.메뚜기들이 생각된 것이 결코 아니라 오히려 전갈의 꼬리를 가진 말이 생각된다. 이 구절은 19절에 대한 하나의 중복귀절이다.[11절] pp. 224-225.로마이어는 그 “메뚜기가 왕이 없다.”는 잠언 24장 62절에 의하여 그 메뚜기는 왕이 없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러나 요한은 그것이 실제의 메뚜기가 아니라는 점을 암시하기 위해 메뚜기를 뜻하는 낱말을 처음부터 남성형으로 사용했다.아바돈은 70인 역에서 ‘아폴레이아’ 로 재현되고 있다. 헬라어 이름 ‘아볼루온’은 이를 모방한 것이다. 여기서 아폴론이란 이름으로 연상되는 바가 의도적으로 선택되었는지의 여부는 판단할 수 없다. 어쨌든 그 두 이름은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이루어졌다.[12절] p. 225.마지막 세 나팔들은 ‘재앙’으로 고지되었다. 이러한 고지가 이루어진 것은 나팔환상에 하나의 깊은 단절을 가져다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묵시록의 사건 경과에서 보는 확언도 하나의 단절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여섯째 나팔 : 불의 군대(軍隊) 9장 13-21절여섯째 나팔은 다섯째 것과 매우 비슷하다. 악마의 군대에서 연기가 변화된 것과 똑같이 여기서는 불꽃이 그렇게 된다. 그래서 그 두 환상의 유사성이 이루어진 것이다.[13절] p. 226.“나는 한 음성을 들었습니다.”에서 ‘한’이라는 낱말은 요한묵시록의 언어용법에 따르면 부정관사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내 의견 즉 더 많은 동협음으로 말한다는 것을 의미 할 수도 있다. 제단이 ‘금제단’으로 표시되는 것으로 보아 그것은 성도들이 기도를 올리는 제단(음향단) 일 것이다.제단에서 나는 음성은 대답의 성격을 가졌을 것이다. 그 음성은 제단아래 있는 순교자들의 복수의 외침에 답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음향단에서 울려 퍼진 모든 성도들의 기도에 대답한다.[14절] p. 그들은 해를 입힌다.[20절] p. 227.이러한 문맥에서는 그들이 손으로 만든 작품들 가운데 우상들이 생각되고 있다.[21절] p. 227.이 환상은 인간들이 회개할 의사가 없다는 것으로 이야기로 끝난다. 그것은 두 증인들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회개를 설교한다는 사실에 대한 근거가 된다.10장과 11장 예언(預言)의 끝 p. 229.주(主)의 천사(天使)를 통한 하나님의 ?? 10장 1-7절종말 사건의 진행에 있어서 두 장의 의미는 이중적인 방식으로 말할 수 있다. 종말이 임할 수 있도록 반드시 일어날 일련의 사건이 있다는 것이다. 본래 종말사건들이 하나님에 의해 유의회적으로 확정되었다는, 그리고 그 사건이 정해진 순서에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는 확신이 있다.10장과11장을 읽을 때 염두에 두어야 할 또 다른 관점은 역사적인 특히 종말사적인 사건에 있어서의 예언의 작용이다. 다름 아닌 종말사에 있어서는 예언자의 전권이나 예언자 개개인의 행위가 하나님의 권위 하에 있다는 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예언자의 활동의 일부만이 서술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언자는 그의 활동을 통하여 역사를 그 목표로 이끌어가며 또 역사는 이러한 행위 없이 종결될 수 없다. 그러므로 예언자의 말과 행위는 역사에 대한 해석일 뿐만 아니라 역사를 지배하기도 한다.[1절] p. 230.지금까지 이미 천사에 관해서 언급되었으므로 새로 등장하는 천사는 “다른”이란 말로써 소개된다. “구름에 쌓여”. 그 천사는 구름에 둘러싸여 있다. 구름은 그를 가리면서 그를 보이게 한다.“그의 얼굴은 태양과 같았으며”. 이 말이 1장 16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나타남을 말할 때 언급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빛이 천사의 얼굴에 비쳐 반사된 것이다.얼굴에 빛이 비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에게 반영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 곁에 있던 천사를 의미한다.이 천사는 구름, 불기둥과 무지개를 통하여 신 현현의 실체로 표시된다. 다시말해서 그것은 하나님이 지상에서 자기를 드러내는 실체다.[2절] p 이해될 수 있다.[5-7절] pp.233-235.어째서 그 예언자는 일곱 천둥이 말한 것을 인봉해 두어야 하는가? 그것은 예언자 자신만이 알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언자가 말한 내용은 증거의 성격을 가진다. 그리고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비밀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좀 더 후에 하나님의 비밀이 드러났을 때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주께서 이미 그것을 이전에 전달했음을 알게 된다.7절은 하나님 자신만이 알고 있는 미래에 관한 것임을 시사하며, 그것은 확실하다. 일곱 번째 나팔은 아직 울리지 않았지만, 그것이 울리기 시작하면, 그 때엔 더 이상 시간이 없고 하나님의 은밀한 결심이 실현된다.그러므로 우리가 일곱 천둥의 인봉된 계시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일곱째 나팔”이 울릴 때 일어나리라고 기대되는 사건들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일곱 천둥이 말한 내용은 죽은 자의 부활이다. 아마도 바울의 말로 추론해 보건데, 이러한 부활이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가 문제이다. 이 비밀은 예언자들에게만 경시되었다. 7절은 그것을 알게 되면 기쁜 비밀임을 우리에게 말한다.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다”나 “경시하다”라는 동사는 쓰이지 않고, 오히려 “복음을 전하다”라는 동사가 분명히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비밀은 아모스 3장 7절)에서 예언자에게 전달된 재앙이나 액운일리 없고 기쁜 소식임에 틀림없다.예언자(預言者)들의 소명(召命) 10장 8절 - 11장 2절[8절] pp. 235-236.예언자를 부르는 하늘의 소리가 활동할 때마다 희랍어 문법에 특별히 심하게 저촉되고 있다. “나팔소리 같은 음성을 내가 들었다.” “하늘로부터 들려온 그 음성이 다시 내게 말했습니다.” 문법에 저촉되는 표현은 고의적인 것이다. 이 문장을 정확한 것처럼 번역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들려온 그 음성이 다시 내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이것은 하늘의 소리일 것이다. 그가 다시 예언을 해야 한다는 것을 그에게 설명한다.[9절] p.236.예언자가 그 두루마리를 먹어야 한다는 것은, 천사가 막대를 주는 자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예언자는 성전을 측량하기 위해 측량대를 가지고 있다. 에제키엘서 에서는 하늘 성전의 치수를 정확하게 재기 위해 예언자가 측량막대를 가지고 있지만, 이 귀결절에서는 그런 뜻이 아니다. 즉 성전 구역의 일부가 측량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이방인에게 주어졌다고 하므로 여기서는 이미 하늘의 성전을 말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예언자에게 주어진 이 측량의 임무는 아마도 “다시 예언하라”는 명령의 수행에 속하는 것 같다.10장의 끝부분과 11장은 예언에 관해 상세히 다루고 있다. 이 부분은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신앙을 주안점으로 삼고 있는데, 여기서 그것은 맞아 죽은 예언자의 부활로 묘사된다.예루살렘은 이방민족들에게 서로 상반되는 종말론적인 의미를 가진다. 한편으로 예루살렘은 종말ㄹ전쟁이 일어날 장소요 그 목표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지막 때의 예배장소이다. 두 가지 대망, 특히 둘째 대망과 결합된 확신은 지상의 예루살렘에 천상의 예루살렘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야곱은 “예수의 문”이라는 말로 “예수는 그리스도시다.”라는 명제를 표시했다.여기서 ‘문’의 개념을 해명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인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이미 위에서, 어떤 구역에로 들어가기 위한 문이 그 구역을 위해 서 있다는 것, 따라서 지옥의 입구가 지옥을 위해, 하늘 문이 하늘나라를 위해 세워져 있음을 밝혔다. 그래서 예수의 문에 관한 문제는 결과적으로 어떻게 사람들이 예수의 설교가 끝난 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겠는가 하는 문제로 되돌아간다.우리는 이러한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자료를 가지고 있다. 본문에 의하면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이 지성소를 제외하곤 이방인의 손에 있다고 한다.이러한 상황에서는 이미 소명을 받았던 예언자가 다시 소명을 받는다. 시간의 종말에 일어날 귀환은 여러 가지 예언자들에 의해 기대되고 있다.두 증인(證人)11장 3-14절[3절] p. 244.그것이 둘이라는 것은 (여기서 그 둘은 귀환한 예언자와 마지막 때의 예언자로 구분될
안디옥 사건과 바울의 이신칭의 복음역사적으로 갈라디아서에 기록된 안디옥 사건은 바울의 이신칭의 복음뿐만 아니라 1세기의 유대 기독교의 상황과 관련하여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였었다. 최근의 신약 학자들은 안디옥 사건이 유대 기독교와 역사적 바울을 이해하려고 할 때 반드시 조심스럽게 검토해야 할 핵심적 부분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인정한다.필자는 안디옥 사건에 관한 최근의 논의들을 염두에 두면서 갈 2:11-21에 나타난 예루살렘의 유대 기독교인들의 주장들과 그 주장들에 대한 바울의 신학적 답변을 주석학적으로 살피고자 한다.갈라디아서에 따르면, 바울은 적어도 두 번 정도 예루살렘을 방문하였으며, 두 번째 방문에서 그는 이제까지 자신의 이방선교 사역이 헛된 것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기둥’ 사도들에게 자신의 복음을 제출하였다. 이것은 그가 그의 사역 초기에 예루살렘 사도들의 복음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2:11 이하의 이야기에서 바울은 이방인들과 함께 먹는 문제와 관련하여 베드로와 의견을 대립하게 되는 사건을 설명한다.그가 처음부터 갈라디아인 들에게 전한 복음도 다메섹 도상에서 계시로 받은 그의 이신칭의 복음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게 되었다.안디옥 사건의 개요(갈 2:11-14)[ 11절]바울이 갈라디아인들 에게 안디옥 사건을 부각시킨 것은 아마도 그것이 갈라디아의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사건이었던 것 같다. 그가 안디옥에서 공개적으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적 인물을 면책한 것은 그가 베드로와 단순히 동등한 관계에 있다는 것 이상의 것을 갈라디아인들 에게 보여준 것이다. 바울과 예루살렘 사이에 예전과 다른 모종의 중요한 변화를 초래케 만든 사건이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발생하였다.바울이 안디옥에 온 베드로를 면책한 것은 어떤 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베드로가 이미 합의된 선교영역 구분을 망각하고 이방 기독교의 중심지이며 바울의 선교 영역인 안디옥까지 침입해 들어왔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베드로에게 “책망 할 일이 있었기”때문이었다.많은 주석가들은 갈 2:1-10의 회합이 행 15:6-29에 묘사된 예루살렘 회의와 동일한 것으로 주장하지만 전자가 후자보다 선행하는 어떤 회합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렇다면 안디옥에서 바울이 베드로를 면책한 것은 이들 두 회의들 사이에 발생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11-14절의 사건은 아마도 바울과 바나바가 구브로와 남갈라디아 지역을 선교하고 안디옥에 귀환하였던 시기에 발생했던 것으로 보인다. 라이트푸트와 같은 학자들은 바울의 면책이 행 15장의 예루살렘 회의가 끝난 직후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 돌아와 머물던 기간에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한다.[ 12절 ]어떤 학자들은 본 절에서 언급된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4절에서 이미 언급된 “거짓 형제들”과 관련된다고 주장한다.4절의 “거짓 형제들”은 분명히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에서 바울과 기둥 사도들 사이에 합의된 사항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바울의 할례 없는 복음을 인정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할례를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로 생각했기 때문에 헬라인 디도가 할례를 받도록 강요하였었다. 바울은 비록 이들을 “할례자들”로 부르기는 하지만, 이들이 안디옥의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할례를 구원의 필수적 조건으로 강요한 것 같지는 않고 단지 베드로와 같은 유대 기독교인들이 이방 기독교인들과 식탁교제를 나눈다는 사실을 문제 삼은 것으로 보인다.안디옥 논쟁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 할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주후 1세기 중엽에 유대교가 직면하였던 사회- 정치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팔레스틴 안과 밖을 막론하고 이 시기를 살았던 많은 유대인들은 그들의 종교적 신앙과 민족적 독특서이 점차 위협을 받고 있었다고 생각하였다.또한 부정한 음식에 관한 율법을 순종하는 일은 단순히 계명의 순종이라는 차원을 지나서 유대인들의 종교-사회적 자기 정체성을 지키는 일과 깊이 연루되어 있다. 마카비의 반란을 묘사하는 글에서 음식 먹는 문제는 핵심적 이슈 가운데 하나로 발견된다.바리새 유대교의 두드러진 특징들 중의 하나는 식탁교제에 두어지는 제한들을 보다 세밀하게 정의하려는 태도에 있다. 식탁교제에 제한을 가하려는 바리새인들의 태도는 정결의식과 관련이 있는데, 그들은 성전의식을 규정하는 정결법들을 그들의 일상생활에까지도 적용하고자 하였다.음식에 관한 이런 바리새적 규정들과 행습들의 영향은 단지 바리새파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고 일반 유대인들의 사고의식에도 발견된다. 디아스포라 출신인 바울이 바리새인 시절에 다른 많은 동년배들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조상들의 유전에 열심이었다는 그의 진술에서도 증언되는 것이다.예루살렘 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안디옥 교회는 비록 많은 이방 기독교인들을 받아들인 교회이지만, 그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하는 개종자들 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며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와 권위 아래 있어야 할 안디옥의 유대기독교 공동체에 불과하였다. 야고보는 최근의 안디옥 사태에 관한 염려스러운 소식을 듣고 자신의 사람들을 파견하여 할례도 받지 않고 유대인들의 음식법이나 정결의식도 지키지 않는 이방인들과 식탁교제를 나누는 베드로와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추궁하려 했을 것이다.[ 13절 ]“남은 유대인들”은 여기서 안디옥 교회의 유대 기독교인들을 지칭한다. 15절의 표현에 따르면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유대인들”이었던 사람들로서 안디옥 교회의 이방인들과 같이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하던 기독교인들이었다.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온 야고보의 사람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이방 태생의 동료 기독교인들과 함께 식탁교제 하는 일을 기쁘게 생각하였음이 분명하다.그러나 야고보의 사람들이 도착하자 베드로는 방금 전에 이방 기독교인들과 함께 식사하던 행위가 마치 불법적인 것이거나 잘못된 것이라도 한 것처럼 그들과 교제하던 자리에서 피하여 물러갔다.안디옥 사건의 설명부분 뒤에 따라 나오는 신학적 논의들이 바울이 게바를 공중 앞에서 꾸짖을 때 실제로 발언한 내용인지, 아니면 그가 후에 갈라다아인들에게 안디옥 사건을 설명할 때 덧붙인 해설인지 확실하게 결정하기가 어렵다. 사건설명과 신학적 해석이 서로 뒤섞여 있어서 그것들 간에 구분 짓기가 거의 불가능하다.안디옥 사건과 직접 관련된 바울의 분명한 진술은 14절 하반절에 기록된 질문뿐이고, 2장 나머지 부분에서 직접적인 대화체 말투가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그가 베드로에게 한 말이 실제로 여기서 인용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이신칭의 복음의 신학적인 함축들 (갈 2:15-21)[ 15절 ]바울은 여기서 자신을 포함한 유대 기독교인들을 “본래 유대인”, 즉 “날 때부터 유대인”인 사람들로 부름으로써 그들의 신분을 정의한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으로 자신들이 이방죄인들과는 다르며 또한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유대적 전망에서 볼 때, 이방인들은 율법과의 관계에서 보든지 아니면 의식적인 관점에서 보든지 “죄인들”로 취급될 수밖에 없었다.안디옥에서 베드로와 나머지 유대 기독교인들이 이방 기독교인들과 식탁교제를 기치한 것은 이방 신자들이 비록 예수를 메시아로 신앙한다 하더라도 음식법이나 정결의식과 같은 유대인들의 관습을 받아들임으로써 “유대인처럼 살지” 않으면 그들을 아직 언약적 의의 울타리 안에 있다고 간주할 수 없으며 따라서 죄인들인 그들과 진정한 교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함축하는 것이다.유대인들은 마치 사람의 구원이 그가 행한 성행과 악행의 수효를 저울질하여 많은 쪽에 의해 결정되는 것처럼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미래에 대한 확고한 소망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이러한 유대교의 구원론은 이방인들, 또는 할례와 율법의 멍에를 받아들임으로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에게 조차도 확실한 소망을 보장하여주지 못했다고 주장되어왔다.[16절]바울이 그의 유명한 이신칭의의 복음을 개진하게 된 것음 음식법과 정결의식에 근거하여 유대 기독교인들이 이방 신자들과의 사회적 접촉에 제한을 두려는 역사적 상황과 같이 관련되어 있다. 바울의 신학에 대한 많은 해석들의 주된 약점 중에 하나는 초대기독교 내의 논쟁들이 지니고 있는 인종적이고 민족주의적 차원들을 올바로 파악하지 못한 데 있다.시편과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언약적 성실성, 언약백성인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지칭한다. 이 경우에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기시는 것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에 근거해서 그들에게 호의로운 판결을 내리고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전격적으로 받은 신적인 계시의 복음에 비추어 볼 때 이런 것들은 인간적인 전승에 불과하고 따라서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근본적인 과계를 규정하는 기초가 될 수가 없다.새로운 메시야 시대에는 하나님의 계시가 요구하는 새로운 삶의 방시기 요구된다. 그것은 ‘믿음’과 ‘성령’에 의해 움직여지는 삶의 방식이다.[ 17절 ]17절의 첫째 문장이 질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사실적 진술인지에대해서 주석가들 사이에 의견이 갈려 왔다.이러한 질문은 바울의 가르침이 결국은 도덕폐기론으로 인도할 수밖에 없다는 폭넓게 유포된 의구심을 반영하는 만큼, 바울이 그에 대해 조심스럽게 답변하는 일이 주요하다.[18절]본 절에서 바울은 단수 일인칭 대명사 “내가”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베드로를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일을 피해 보려는 문체상의 기교임이 분명하고 또한 19-20절에서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인 신자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나’의 용법을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따라서 유대인들이 이방인과 식탁교제를 하기 위해서 율법을 포기했다는 사실은 유대적 전망에서 볼 때는 죄가 되지만, 율법에 대해서 죽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죄가 되지 않는다. 비록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과 식사함으로 율법의 관점에서 죄인들로 불리워진다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도록 부추기는 ‘죄의 종’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바울의 전향과 소명바울의 전향바울의 위치그리스도교에 있어서 바울이 끼친 영향은 압도적이다. 바울의 편지들의 씌어진 것은 대체로 기원후 50-60년 사이이다. 복음서들이 씌어진 것이 대체로 기원후 70-90년 전후인 것을 생각하면 그리스도교 안에서 그의 영향이 상당히 빨리 퍼져나갔음을 짐작할 수 있다.교회사를 보면 복음서보다는 바울의 편지들이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교권은 비록 복음서를 읽더라도 바울의 편지들을 읽고 거기서 안경을 얻어 읽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바울이 신약성서 전체를 이해하는 데 표준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인 것이다.사울은 어떤 사람인가‘바울’은 로마식 이름이고 ‘사울’은 히브리 이름이다. 사도행전은 전향 이전의 그를 ‘사울’ 이라고 하고, 그 후의 그를 ‘바울’이라고 한다. 그러면 사울은 어떤 사람인가? 우리는 사울에 대해 아는바가 별로 없다. 바울 자신의 출신과 그가 한 일에 대한 몇 차례의 짧은 발언과 사도행전에 간접적으로 반영된 몇 구절이 사울을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율법에 따르면 이스라엘 사람은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게 되어있다. 그렇지만 율법에 제정된 대로 모두가 꼭 날짜를 지킬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가난한 자들은 거처가 분명치 않거나 그 외 여러 사정 때문에 그날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바울은 할례 규정을 지켰다. 그것은 그의 집안이 안정된 집안이었음을 말해 준다.할례를 받는 것으로 비이스라엘 사람과 구별된다. 할례는 그 동기가 우선 위생적인 것이었음에 틀림없으나 그것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성이 되는 의무로 만들었던 것이다.또 그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 사람이라고 한다. 히브리 사람이라는 말은 특별히 이방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특수성을 과시할 때 쓰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오랜 전통을 가졌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이고 어떤 상황에 처해서도, 가정이나 사회생활에서 민족의 순수성을 잘 지켜 왔다는 표시로 쓰인다.바울 당시에 바리새인의 숫자가 도합 약 4천 명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런데 바울이 헬레니즘 영역의 도시 사람인 것은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다. 이혼문제에 대한 언급 등은 헬레니즘 사회 제도를 반영하며 경기, 무기, 건축 등의 비유를 즐겨 쓰는데도 반영되는데, 이것은 농경 언어를 쓰는 예수와 대조적이다.다소에서 난 사울, 즉 그는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이라는 말이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변화무쌍한 그들이 역사 속에서 강제로 또는 자발적으로 이방 땅에 분산되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알레산드리아를 위시해서 로마에까지 퍼져나갔다. 그들은 고향을 떠난 비애와 향수도 있었지만, 이방 땅의 문화에 접함으로써 폐쇄적인 유대교를 개방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이방 땅에 살았으므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 지역의 문화적 영향을 받는 면도 있으나 반면에 바로 이방인들과 섞여 살기 때문에 자신들의 주체성을 고수하기 위해서 오히려 자기 민족의 전통에 철저한 면도 가지고 있었다.만일 우리가 사울이 이방인에게 율법을 전파하는 전도자였다는 전제를 갖는다면 왜 그가 특히 할례 문제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했던가를 추측해 볼 수 있다. 바울은 자신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으나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끝까지 맞서 싸웠다. 그것은 바로 할례가 유대교를 전파함에 있어서 가장 큰 난제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리스도교를 통하여 율법에서의 자유를 터득한 그는 이방인에게 애훼의 도(道)를 전파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제거되었다는 환희를 경험할 수 있지 않았을까?그리스도교 박해사울은 자신을 소개하는 말끝에 “열심에 있어서는 교회를 박해했다.” 고 한다. 이것은 그가 그리스도교 박해에 온 정력을 다 쏟았다는 것이다.그의 선포의 골자는 하나님 나라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증거는 악마가 지배하는 세대는 지나가고 있다는 것인데, 그가 귀신들린 자 또는 병자들을 치유하는 것은 바로 사탄과의 투쟁이라고 했다.그런데 유다의 상부 층에서는 이 운동을 또 하나의 거짓 메시아운동이라 보았다. 하기는은 무산되곤 했다.사도행전 6장에, 교회안의 두 계파의 긴장이 노출된다. 열두 사도들이 교인 전체를 모아 놓고,“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먹이는 일에 치중하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그러니 형제들이여, 여러분 가운데 믿을 만하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아내시오 그러면 그들에게 이 일을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섬기는 일에만 힘쓰겠습니다.”라고 제안하므로 회중들이 일곱 사람을 뽑았는데, 이상한 것은 이름을 보아 저들이 모두 헬레니스트들 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추천된 사람들은 먹이는 일에 치중한 것이 아니라 사도들과 다름없는 복음 전파의 일선에 나섰던 것이다.예루살렘에서 스데반을 처형할 때 사울이라는 청년이 그 현장에서 옷을 지키고 있었다. 이 기사에서 증인들의 옷이라 했는데 유다 전통에 보면 예수의 경우처럼 피고의 옷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때에 대한 회상이 사도행전 22장20절에 다시 반복된다.그리스도교를 근절하려는 열심에 찬 청년 사울이 아직도 그리스도교들에 대한 태도를 분명하게 결정 못한 유대 상부와 접선하여 자신에게 저들을 근절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도록 요청했을 가능성이 크다.그리스도교는 두 갈래로 나뉘어졌고, 그 결과 헬레니스트들은 이방에 흩어졌는데, 안디옥 교회가 그 중심적 역할을 했다. 한편 이방 교회에서 급속도로 그리스도론이 발전되었는데, 그것은 스데반에게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리스도론의 핵심을 말한다면 그리스도 사건은 바로 유대 율법의 끝이며, 그러므로 구원의 길은 ‘율법의 지킴’으로부터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대치되었다는 것이다.예수를 만남사울은 역사의 예수를 만난 일이 없다. 그것이 바로 사도권을 주장하는 그에게 큰 약점이었다. 사도들은 예수와 더불어 살았던 제자들로 그 직계성을 내세우며 동시에 그의 부활의 증인으로 자부했다. 그러므로 역사의 예수를 모르는 바울의 사도권 주장을 거부한 것이다. 그런데 사도행전에는 이 사울이 신비한 경험을 통해 예수를 만났다는 이야기가6, 26:12-18)놀라운 것은 이런 중요한 사건이 바울 자신의 편지에서는 직접적으로 서술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단지 몇 곳에서 이 특수한 경험과 관련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발언을 찾아 볼 수 있는데 그것들도 그 사건 자체를 말하려는 데 중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주장에 곁들여져서 한 것일 뿐이다. 일단 바울 자신의 말들과 사도행전의 이 이야기들 간에 놓인 거리를 좁혀 보자.먼저 바울의 전향과 다마쿠스가 직접 관련이 있다는 것은 입증된다. 갈라디아서 1장 17절에서 그는 이 사건 이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않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쿠스로 돌아왔다고 말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다시’라는 말이다. 그것은 그가 전향 후 다마쿠스에서 직접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그리로 왔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그는 다마쿠스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는다.한편 16절에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을 계시 받았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계시(apokalypsis)”라는 말은 ‘열어서 보인다’는 말로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 보인다는 뜻이다. ‘보인다’, ‘드러내 보인다’라는 말은 그것을 받는 사람의 편에서 보면 수동적인 것으로 주체는 어디까지나 보여 주는 이이다. 그런데 희랍에서는 이런 종교적적 의미로 이 말을 쓰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았다.그러나 바울은 이런 의미로 말하지 않는다. 그는 ‘아들의 계시’가 자신의 노력의 결과 즉 탐구나 수도의 과정을 통해 얻어진 것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는 ‘아들을 보여 주었다’ 는 것을 강조하는 데 중점을 두지 않고 자신이 이방인에게 사도로서 복음을 선교할 수 있는 권한, 즉 사도의 특권을 주장하는 데 중점을 두면서 이것을 그 뒷받침으로 삼는다.고린도전서 9장 1절에서 바울은 “내가 사도입니까?” 라는 말에 이어 “내가 우리 주 예수를 보지 못했습니까?” 라고 묻는다. 이것은 다마쿠스 도상의 그 사건을 말하는 것인가? 그런데 이 말에서도 어떻게 예수를 보았는가 하는 내용에 대해 그는 부활한 예수를 본 사람들을 열거한 후에 “그리고 맨 난중에 달이 차지 못해서 난 자와 같은 내게도 나타나셨습니다(8절)” 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도 그 구체적인 사실에 대한 서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부활의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것이므로 다마쿠스 도상의 그 경험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이렇게 바울 자신은 그 장면을 사도행전에서처럼 서술하지는 않는다. 또한 바울은 끝끝내 자신의 사도권 을 문제 삼는 사람들에게 그가 누구보다도 고난을 겪었고, 누구보다도 교회를 사랑한다는 말을 한 다음에 자신이 낙원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특수한 경험을 했음을 잠깐 비치면서 그것이 제 삼자의 이야기인 양 전할 뿐 아니라 그런 것을 자랑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것임을 자인하며, 그런 것을 계속 의식하면 오히려 자신의 약함밖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한다.전향그가 전향한 때는 빨라야 기원후 31년이고 아무리 늦게 잡아도 기원후 33년을 넘지 않는다. 30-31년이 일반적인 견해인데, 그렇다면 바울의 전향은 아무리 늦게 잡아도 예수가 처형된 지 2-3년 안에 일어난 사건이 된다. 이것은 충격적인 사실이다. 그때에는 예수의 적대자들, 방관자들, 그를 처형한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구경한 사람들, 그 자리를 도망친 사람들 할 것 없이 거의 다 생존했음에 틀림없는 시기이다.그 짧은 기간에 역사의 인물인 예수가 예배의 대상인 ‘그리스도’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기적이란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적당한 말이 없다.바울은 무엇에서 무엇으로 전향했는가? 우리는 이미 그가 ‘율법에 의한 구원’ 이라는 유대교의 도그마에서 예수에게로 전향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그러면 바울에게 예수의 사건과 그 민중의 주장이 어떻게 수용될 수 있었을까? 어떤 면으로 보든지 예수를 그와 견줄 수는 없다. 신분으로나 교육 수준 도는 그 체제에서 ‘완전’ 이라는 시각에서 볼 때 예수는 바울에게 비교도 되지 않는다. 예수는 유다 사회에서 이방인의 땅이라고 멸시받는 갈릴리 출신이다. 어떠한 정규 교육도 받지 못했고, 바리새
갈라디아서 2장 11-14절 주석갈 2장 11-14절 / (개역개정)11절 :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책망하였노라12절 :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13절 :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14절 :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안디옥 교회의 설립배경안디옥 교회는 누가 언제 설립하였는가? 사도행전 저자 누가는 안디옥 교회 설립과 관련하여 사도행전 11장 19-26절에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스데반의 일어난 환난으로 인해 흩어진 자들이 안디옥 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 데 그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여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1.안디옥 교회를 설립한 것은 바나바가 아니라 핍박으로 인해 일찍이 흩어졌던 사람들이란 사실이다.2.처음부터 안디옥 지역에 살던 헬라계 유대인들과 헬라어 권에 있던 이방인으로 구성된기독교 최초의 혼합교회 였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오직 유대인 크리스천들로만 구성되 어졌던 예루살렘 교회와 확실히 차이를 보여준다.3. 당시 세 번째로 큰 도시로 알려진 안디옥지역에서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이 유대인들과 구별된 이름, 곧 그리스도인 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베드로와 줄곧 논하여 왔고,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 증명해 왔다. 즉, 처음에는 사도들과 만나지 않았던 것으로 말하고(1:11-24), 다음은 사도들과 대등으로 대면하며, 그들의 공적 인정을 받은 것으로 증명했다. 이제 그는 일보 나아가 사도중 머리인 베드로를 책망한 사건을 들므로 자신의 사도권이 베드로의 것보다 하등에 떨어지는 것이 아닌 것을 강하게 입증하는 것이다.)바울의 베드로 책망베드로의 행동은 안디옥 교회의 유대인 크리스천들에게도 지금까지 이방인 크리스천들과 한 교회 안에서 거리낌 없이 교제해 왔던 그들의 행동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도록 하는 계기를 주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안디옥 교회의 평화가 순식간에 깨어지고 교회의 혼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바로 이와 같은 상황, 곧 바울이 2장14절 초두에서 베드로의 면책이유로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바울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베드로를 다음과 같이 공개적으로 책망하였다.“네가 유대인으로서 이 안디옥에 와서 유대인처럼 생활하지 않고 오히려 이방인 크리스천들처럼 생활하다가 이제 예루살렘으로부터 유대인 크리스천들이 왔다고 해서 이방인 크리스천들과 교제를 끊음으로써 이방인 크리스천들이 유대인처럼 생활하지 않는 이상 참된 교제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외식적인 행동을 하느냐? 너는 네 편의에 따라서 유대인이면서도 이방인처럼 생활하기도 하였는데 왜 이제 이방인들을 억지로 유대인들처럼 생활하도록 강요하느냐?(갈2장14절)”바울은 베드로가 그 자신이 확신하고 있는 그 복음의 진리와 일치하지 않는 일관성 없는 행동 그리고 상황 주의적이며 위선적인 행동을 하고 있음을 특별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주 석11절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여기서 베드로의 행위가 명백하게 잘못된 것으로 드러나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사실로 더욱 뚜렷해진다.'면책하였노라'의 헬라어 '아네스텐'(?ν?στεν)이 문자적으로 '대항하다', '저항하다' 혹은 '반발하다'라는 의미로, 베드아가 그것에 대하여 책망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수사학적 관점에서 이러한 표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즉 안디옥에서의 사건을 언급하면서 바울은 면책과 책망 등 아주 강한 어조의 단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2:1-10절에서의 분위기와는 아주 다른 단어들임에 분명하며, 따끔한 맛을 주는 분위기 이다.그러므로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진행하면서 이러한 서술 방향을 설정하게 된 데에는 나름대로의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자신이 베드로에 대해 꾸짖을 수도 있는 위치에 있었음을 보이려는 것이 아니었겠는가?)바울은 사도들 중에서 가장 자신의 지지 기반이었던 베드로가 자기보다는 야고보 쪽으로 더 무게를 두고 행동한다는 점에서 못마땅했을 것이고, 이방 지역에서 지신의 지지자였던 바나바마저도 자신보다는 베드로와 야고보 쪽을 선택한 점에 있어서도 당황스러웠던 것으로 여겨진다. 여러 가지 면에서 자신의 지지 기반이 무너지는 순간을 바울은 대했던 것이다. 이것에 대처해 나갈 수 있는 길을 당시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었으나, 바울은 강경한 태도, 즉 그들에게 격분하는 방법을 택했다.)12절)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본 구절은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일반적으로 행하던 식탁 교제나 성찬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것이 정식 예배였는지 아니면 비공식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임이었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본 절에서 초대교회 당시 유대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방 출신 그리스도인과의 식사를 꺼린 사실이 나와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1) 유대인들은 레 11장에 있는 정함과 부정함에 관한 규례를 철저히 지켜왔고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준수하려 하였다.(민 25장, 31장) 이들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도 그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이방인들이 먹는 음식 중에는 레 11장의 정결 규례에 위배되는 것이 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따라서 유대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방 출신의 그리스도인들과 식사를 함께 하지 않으려 했다.(2)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들을 부연하고 설기까지 했다.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약의 율법이 완성되었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실제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것이며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이며 삶이다. 예루살렘 공의회는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늘어나는 이방 그리스도인에 대해 몇 가지 제한 사항을 제시하고 다른 어떠한 율법의 행위로도 짐을 지우지 않는다는 결의를 한 바 있다(행 15:14-21).“저희가 오매 ...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μετ? των ?θνων συν?σθιεν))베드로가 이방 그리스도인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 사람이 오자 이방인들과 식사를 하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행동의 동기는 예루살렘에서의 자신의 위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은 사랑이나 자기 확신에 의해 나온 행동이 아니라 거짓과 위선의 행동이었기 때문에 바울은 베드로의 외식적인 행동를 책망했다.게바 베드로가 책망 받도록 한 사건은 그가 이방인과 함께 한 식탁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사건을 말한다. 먼저 이 사건의 시기에 대한 논란이 있어 왔다. 베드로의 안디옥 방문이 예루살렘 사도 모임 이전에 있었는지 이후에 있었는지에 대한 논의가 학자들 사이에 있어왔다.그러나 후자라는 설이 더 우세하다고 할 것이다. 1장18절과 21절에서 “그 후”라는 단어를 통해 나타났듯이 그 연속선상에서 연대기 순서에 따라 바울이 자서전적 양식을 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여기에 어려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 베드로의 태도가 두 사건을 통해 완전히 상반되는 모습으로 비추어 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베드로는 안디옥교회를 방문해서 이방인 기독교인들과 함께 그들이 준비한 음식을 먹고 있었던 것으로 서술된다. 이러한 여러 번의 식사를 서술하는 것은 실제로 그러한 사건이 있었음을 의미하면서도 바울이 자신의 논리 전“남은 유대인들도...외식하므로”남은 유대인들(Ο? λοιπο? ?ουδαιοι) 은 명백히 안디옥의 유대 신자들을 가르킨다. 그들이 실제로 예루살렘에서 온 파견단에 의해 제시된 주장의 논리에 설득되었는지 아니면 단지 게바에 대한 순종에서 그들의 바람에 따랐는지 확실히 알 수 있는 방도가 없다. 아마도 후자인 것 같다. 왜냐하면 안디옥 유대인들로서 그들의 이방인들과의 관계는 아마도 예루살렘 유대인들의 이방인과의 관계보다 자유로웠으며, 그들은 아마도 팔레스타인 유대인들보다 민족주의적 성향의 열심당원들의 위험을 덜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베드로의 이러한 행동은 그 자신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있었던 다른 많은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그들로 하여금 이방인들과 함께 나누던 식탁 자리에서 물러나게 만들었다. 그들의 이러한 행동은 “그와 함께 외식했다(συνυπεκ?θησαν)” 라고 표현되는데, 여기서 그는 바로 베드로를 가리키는 것이다. 즉 베드로의 그러한 행동을 외식으로 보았고 또한 그와 함께 했던 다른 유대인들의 행동도 외식으로 보았던 것이다.)“심지어 바나바조차도 저희의 외식으로 잘못 이끌어졌다”‘κα? Βαρναβα?’,(카이 바르나바스: 심지어 바나바조차도) 라는 표현에서 반향 되는 감정이 관심을 끈다. 왜냐하면 바나바는 바울의 대변자(행9:26-28), 안디옥의 조언자(행11:25), 구브로와 남갈라디아 전도에서 존경받는 동료(행13:26)였기 때문이다.주님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 중 한 사람이요 공적인 위치에 있었던 베드로가 한 외식은 유대교의 율법주의와 복음의 자유가 날카롭게 대립되고 있는 초대교회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베드로의 이러한 실수는 단순히 개인적인 외식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심지어 바나바 같은 지도자까지도 외식적인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근거가 되고, 예루살렘 공의회(A.D.49)의 율법 무용론에 대한 결정을 무효화시키는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율법주의에 굴복한다는 위미를 지닌다.여기서 우리는 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