孔子의 天命 사상목 차Ⅰ. 서론Ⅱ. 본론1. 공자의 시대적 배경- 천하무도2. 천(天)이란3. 천명(天命)4. 공자의 천명관5. 공자의 천인합일6. 유가의 천명사상7. 천명에 의한 정치Ⅲ. 결론참고문헌Ⅰ. 서론고전 중 동양의 으뜸가는 경전이 바로 이다. 는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 및 일본에서도 으뜸으로 쳤던 경전(經典)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동양의 대표적 고전이다.는 한마디로 추려 말하면 공자(孔子)의 언행록(言行錄)이다. 제자들과의 문답(問答)도 많이 끼여 있으나 그것도 넓은 의미에서 공자의 언행의 일부다.수천년간을 두고 동양의 정통(正統)의 자리를 지켜온 유교(儒敎)는 제 一의적으로 신(神)에 대한 신앙을 주장하는 그리스도교와는 달리 인간 정신(精神)의 계발과 앙양을 더욱 중요시하고 있다. 유교도 중국 고대의 천도사상(天道思想)을 높이고 그 궁극적 정신계발의 경지에 가서는 종교적인 차원에까지 올라간다고 하겠다. 그러나 유교에서 제 一의적으로 내세운 가르침은 어디까지나 현세적 존재로서의 자기의 인격적 수양이다.?신(神)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의 정신을 더욱 닦아 높이면 신의 경지, 천상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세를 망각한 내세에서 구원받기를 원하기에 앞서 우선 현세를 바르게 살라고 주장한다. 타력적인 신의 권위나 사랑의 섭리에 따라 인류사회가 구제되기를 기다리기에 앞서 우선 인간들이 서로 사랑하는 인류애(仁)를 실천하고 사회질서(人倫)로써 바로잡고 또 자연과 인간 물질과 정신의 조화로써 영원한 발전의 길(中庸之道)을 걷기를 가르쳤다.?또 인간 사회를 다스리는 정치적 원동력을 힘이나 법에서 찾지 말고 천도(天道)를 바라보는 문화적 제도인 예(禮)와 진선미(眞善美)의 조화의 극치인 자연미의 감화력을 지닌 악(樂)을 가지고 정치와 제사를 일치시킨 과 또 정치를 감화나 교육으로 이끄는 의 이상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력이나 법의 구속을 가지고 다스리는 것은 패도정치(覇道政治)라 하여 이를 배척했고 어디까지나 천도(天道) 형벌에 의존하여 통치하였다.周初의 지배계층은 그 수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긴장감에 의한 도덕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西周 말에 이르면 일부다처제로 인한 귀족의 수적 증가는 당시의 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주초의 왕과 제후 등 소수귀족이 접어들면서 향 대부 등의 하급 귀족까지 파급된 사치와 향락 때문에 백성들은 극심한 고초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귀족들은 자신들의 신분적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이전보다 훨씬 더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고 착취하였다. 그들은 언제든지 마음 내키는 대로 수탈을 자행하였으며, 매질을 가하고 죽이기도 하는 등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를 만연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족의 수탈이 너무 지나치면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사실 이외에는 귀족들의 횡포를 견제할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지배계층의 과도한 수탈 때문에 백성들은 수시로 반발하였으며 그에 따라 형벌은 일상화되고 갈수로 더욱 가혹하게 집행되었다. 제의 경우 발을 자르는 ?刑이 너무 흔하게 집행되어 그 벌을 받은 사람을 위해 제작된 특수한 신발이 踊이 보통 신발보다 비싸게 판매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또 잦은 전쟁은 백성들의 삶을 극도의 궁핍 속에 몰아넣었다. 오랜 전쟁의 결과 식량이 바닥 난 宋의 백성들이 자식들을 바꾸어 잡아먹은 사건은 이 시기의 참담한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다.)위와 같이 예의 몰락과 도덕적 타락을 공자는 천하무도로 보고 있다. 공자가 자신이 처한 춘추전국시대의 시대상황을 진단한 말 가운데 총체적이며 상징적인 표현은 天下有道와 天下無道라는 두 가지 상황인식으로 보여 진다. 천하유도란 禮樂征伐이 천자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의미하고, 천하무도란 예악정벌이 제후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극히 간단한 내용이다. 공자의 천하무도에 대한 견해는 천자와 각 제후 간, 어버이, 부부, 자식들 간의 각 도리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사회체계질서가 무너져 혼란의 상태가 이어진 것을 진단하여 천하무도의 결과만 초래된다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다의 합리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보다 이성적으로 啓明되고 도덕적으로 성숙되어서 진정한 의미의 질서와 평화가 정착된 인간적 사회의 실현일 것이다. 이러한 공자의 이상은 그가 天을 믿는 한에 있어서 확고한 불변적 믿음일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자기의 사명을 자각하고 부단한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실현되지 못하자 현실 역사의 과정이 합리적이지만은 않을 뿐만 아니라 설사 장기적 안목에서는 합리적이라고 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불합리하고 불가결한 측면이 있고, 또한 그러한 이상의 실현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역사현실 속에서 자기의 이상이 실현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최후까지 그 이상을 포기하지 않고 자기의 능력이 닿는 한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 보다 장기적 안목에서 교육을 통한 이상의 실현을 추구함으로써 ‘盡人事待天命’을 몸소 실천하였다.)종교의 주제에 대한 『논어』의 대다수의 논의는 조상의 영령들과 자연의 귀신들을 다루는 구절을 중심으로 한다. 여기서 중심적인 종교적 술어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하늘’이다. 하늘은 무엇보다 도덕 질서의 원천이며 인간 규범 질서의 보호와 유지에 관계하는 우주적 도덕의지를 상징한다. 하늘은 그가 갖는 자연의 항구적이고 순환적인 양식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미 자연적 질서 속에 내재하는 것으로 생각된 것 같으나 자신을 지배하는 규범들을 어길 수 있는 치명적 능력을 가진 인간적 질서화의 관계에서 하늘은 실제로 인간사의 과정에 개입하며 주나라에 천명을 허락하는 것과 같은 특별한 결정을 내린다. 『논어』의 천(天) 개념은 수많은 구절들 속에서 인간적 질서 전반뿐만 아니라 공자 자신의 임무까지 관계하는 의식적 존재로 취급되고 있다. 또한 공자의 주장)을 통해서 초점이 하늘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공자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공자가 인간으로서 하늘을 본받기를 갈망함을 알 수 있다.언어는 존재와 당위 사이의 불일치가 개인 질서와 전체로서의 사회 질서 모두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공자는 자신이 나이 50세 에 천명을 알았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평생 70을 산다고 가정을 하였을 때, 공자가 천명을 안 50의 나이는 전체 일생의 반을 훨씬 넘은 나이가 된다. 50의 나이 정도면 사람은 지나온 과거를 돌이켜 현재의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시간대에 서 있게 된다. 만약 사람이 이 50의 나이에 이르면서 공자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과거 자신의 생활이 성실하였고, 자기반성이 충실했다면, 50의 나이를 가진 자신의 현 위치와 미래에 대한 판단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곧 물리적인 차원에서 생명이 남은 시간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의 범위와 내용이 결정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천명을 안다는 것은 자기로부터 시작하며, 그것은 자기반성이라는 행위로 이어지게 된다. 이 자기반성은 철저한 修己로부터 시작된다. 자기반성이란 과거를 돌이켜 잘잘못을 생각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현존의 자기에게 엄격해야 한다. 이 자기 반성은 자기에 대한 엄격함과 성실함을 잃게 되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가식적이며 요식적인 행위가 된다. 이 자기반성은 자신의 설 바를 제시해 준다.) 그래서 『中庸』에서 군자는 현재 자기의 위치에 따라 행동을 하고 그 밖의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사람이 자신의 설 바를 안다는 것은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가 관계 맺는 세계와 그 세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반성의 행위는 곧 군자의 세계관을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자기반성을 통해 알게 되는 천명이 반성하는 자의 주관적인 것이 아닌 보편적 성격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반성이라는 행위가 자기로부터 출발하여 타인에게 이르는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엄격한 자기반성을 통해 알 수 있는 천명은 곧 인간의 안에 있는 것이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천명은 인간의 밖에서 존재함으로써 인간이 수동적으로 받고 따라야 할 것이 아니다.천명은 적으로 쉽게 체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공자자신도 50이 되어서야 비로소 천명을 알았다고 하였다.본래 중국의 상고시대 사람들은 모든 사물과 인간이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천 또는 상제의 뜻에 의해 지배된다고 보았다. 주초 역시 인간들은 독립적 지위를 갖지 못하고 천에 의존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았으며 주대 말기에 비록 천의 도덕성에 대하여 회의했지만 여전히 인간의 역량에 대한 자각은 미비했다. 그러나 춘추시대에 이르러 인간의 역량에 대한 자각이 고조되었고 더 나아가 공자에 이르러서는 인간의 심성 속에 내면화된 천도를 구현하는 실천적 주체로서의 인간을 발견하고 사상의 출발점을 ‘人’으로 삼게 된 것이다.) 공자는 천과 인이 합일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그렇다면 천과 인이 합일 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공자가 말하기를 “천이 나에게 덕을 주었는데 환퇴가 나를 어찌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즉, 인간의 성품은 본래적으로 천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으로, 사람과 짐승이 다른 이유는 바로 인간의 본성이 하늘과 상통한다는데 있다. 따라서 인간은 하늘의 덕을 부여받아 자신의 근본적인 덕성으로 삼는 것이다.) 이같이 ‘덕’을 매개로 하는 천사상은 서주이래 전개되어온 사상으로 서주시대에는 덕이 정치적 이해로 사용되었으나, 공자에 이르러서는 인류의 행위와 활동의 준칙으로서 인식되면서 공자는 그것의 실현태로서 ‘덕’을 제시한 것이다. 즉, 공자는 하늘의 근본적인 덕성이 인간의 심성 속에 내재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천과 인간은 하나가 될 수 있다고 공자는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그러한 자리에 나아갈 수가 있을까? 공자는 이에 대하여 “하늘을 원망하지 말며 사람을 탓하지 말고 아래서 배워서 위에서 達한다.”라고 한다. 즉, ‘下學而上達’하여야 가능한 것이다. 程子는 ‘하학상달’을 “대개 아래로 인간의 일을 배우면 곧 위로 천리를 통달하게 된다.”고 해석하고 있으니, 하학하여 상달한다는 것은 공자의 학문하는 방법으로서 구체적으로 비근한 사실로부터 출발하여 높은 진
- 자이나교 -- 목차 -Ⅰ서론1. 인도문화의 전개2. 인도종교와 문화3. 육사외도Ⅱ 본론1. 자이나교의 창시자와 그기원2. 자이나교의 기본가르침1)인본주의적성격2)이원론적 셰계관3)업의교리4)인식론5)다면적이론3. 자이나교가 지향하는 삶4. 자이나교의 발전사1) 공의파2) 백의파5. 자이나교의 신봉자의 숫자와 국가6. 자이나교의 특징Ⅲ 결론참고문헌Ⅰ서론1. 인도문화의 전개인도의 종교사에서 불교를 빼놓고는 인도종교를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불교의 개조인 붓다(Sakyamuni Buddha)가 출현하였던 기원전 6세기 무렵의 갠지스 강 중류지방은 사회적으로 크게 변화하고 있었다. 당시 인도는 강대한 신흥왕국의 출현과 도시의 형성 등으로 급격한 정치 사회적 변화가 일어났고 이에 따라 종교 사상계 또한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인도의 고대문명은 기원전 3000년경부터 시작하여 대략 1000년 동안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른바 인더스 문명으로 불리는데 오늘날 인더스강 유역의 하라빠와 모헨조다로 등 도시 유적들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 고대문명은 문다족, 드라비다족 등을 비롯하여 일찍부터 인도대륙에 살아온 여러 종족들에 의해 이룩되어 왔다. 그러나 이후 인도의 문명은 코카서스 지방으로부터 인더스강 상류의 펀잡지방에 침입해 온 아리야인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아리야인들은 기원전 16에서 13세기 무렵 인더스 강 상류의 펀잡지방에 침입하여 기원전 11에서 9세기 무렵에는 이미 갠지즈강 상류지방으로 이주하였는데 시대가 흐름에 따라 계속 동방으로 진출하여 기원전 5세기 무렵에는 갠지스강 중류지방에 정착하였다. 이와 함께 이 지방에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현저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먼저 당시 존재하고 있던 군소부족이 점차 통합되어 강대한 국가체계가 형성되었다. 초기불교 경전에 의하면 16대국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 가운데서도 특히 강성했던 나라는 마가다, 코살라, 밤사, 아완띠 등이었으며 전제적인 국왕이 통치하는 군주정체의 최상위에 두고 있지만 초기불교의 성전에는 거의 대부분이 왕족, 바라문, 서민, 노예의 순서로 나타난다. 즉 바라문과 왕족의 위치가 바뀌어져 있는 것이다. 원래부터 바라문의 세력은 농촌사회를 중심으로 뿌리깊게 잔존해 있었지만 도시를 중심으로 한 사회에서는 옛날의 권위는 더 이상 지켜지지 않았다.2. 인도 종교와 문화인도는 종교와 문화, 삶의 구분이 모호하다 싶은 정도로 종교적인 나라이다. 인도의 모든 국민이 종교적으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인도인 대부분이 신봉하는 종교는 힌두교이다. 힌두교는 통합 종교라고 흔히들 얘기한다. 인도에서는 많은 종교들이 태어났다. 리그 베다와 브라흐마나, 우파니 샤드가 있었고 수많은 신들이 존재한다. 이것을 통합한 것이 힌두교이다. 힌두교는 다른 종교에게 배타적이지 않고 되려 다른 종교를 포용한다. 참으로 신기하게 여러 종교들을 끌어안아 거대한 사상의 종교로 발전한 것이다.그러나 리그베다와 브라흐마나, 우파니 샤드 등 그런 거대한 흐름에 도전하는 새로운 종교운동도 있었다. 불교와 자이나교 등이 그것인데 인도에서 정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베다의 권위를 인정해야만 한다. 그런데 불교와 자이나교는 오히려 베다의 권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먼저 자이나교를 살펴보자면 베다가 제시하는 희생제의를 거부하고 카스트 제도의 불평등을 지적했다. 또한 금욕주의와 비폭력주의, 아힘사의 종교라 불리기도 한다. 금욕주의란 일체의 욕망과 집착을 갖지 않는 것이다. 자이나교의 창시자 마하비라는 12년 간의 고행 끝에 인간의 모든 욕망을 정복한 지나(jina)로 알려졌는데 그의 가르침이 자이나교의 핵심 사상으로 발전하게 된다.자이나교의 가르침은 우파니샤드가 세계를 일원론으로 보았다면 세계를 이원론으로 파악하였다. 우파니샤드에서 브라흐만과 아트만은 같다. 본질인 아트만이 우주의 근원인 브라흐만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이나교에서 세계를 영혼인 지바와 물질인 아지바로 구성되어있다고 보고 모든 사물은 지바와 아지바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사상계를 이끌어갔다. 이러한 자유사상가는 많았으나 특히 이 6명이 유명하다.(1) 아지타 케사캄발린감각적 유물론(唯物論)자이며, 단멸론(斷滅論)자이다. 그에 의하면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4원소만이 참 실재(實在)이며 그리고 이 원소들이 존재하고 존재하고 활동하는 장소로서 허공이 인정된다. 인간은 위의 4원소만으로 되어있으므로 죽으면 모든 것은 원래되로 돌아가며 5관(五官)의 능력은 허공으로 되돌아간다. 현자(賢者)도 우자(愚者)도 신체의 죽음에 의하여 단멸하여 소멸한다. 사후(死後)에는 아무것도 없고 영혼도 남지않는다. 따라서 현세도 내세도 없고 또 선악의 업(業)의 과보(果報)를 받는 일도 없다. 포시(布施)도 제사도 공희(供犧)도 무의미하다. 이와 같이 그는 인식론에 있어서는 감각론, 실천에 있어서는 쾌락론이라고 하는 순세파(順世派)의 입장을 취했다. 아지타의 논리는 사람이 죽어서 화장하면 사원소는 모두 본래되로 돌아가기 때문에 죽기전에 잘 먹고 잘 노는 현실적 쾌락 밖에는 인생의 목적이 없다고 한다. 제사, 기도, 교육, 종교, 도덕 등 일체의 윤리적 엄숙주의를 반대한다.(2)파쿠타 카챠야나유물론적 7요소(要素)설을 주장하였다. 인간의 7구성요소로서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4원소와 고(苦), 낙(樂), 생명(生命)을 내세운다. 각 요소는 상주부동(常住不動)하여 서로 영향, 작용하지 않으며 칼로 목을 잘라도 이것으로서 생명을 빼았지는 못하고 다만 칼이 7요소 사이를 통과 할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도덕상으로는 쾌락론에 선다.(3)푸라나 캇사파도덕 부정론(否定論)자였다.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한다 하여도 선(善)이나 악(惡)이 되지 않는다. 살생, 도둑질, 간통, 거짓말 등의 행위를 저지른다 하더라도 악행을 한 것이 아니며, 제사, 보시, 자기억제, 및 진실한 말을 했다고 해도 선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선악의 행위에 대한 인과응보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독단적 윤리적 회의론자이며, 선악은 사회 관습에있었다고 하나 23조의 파르슈바만이 실재인물이고 마하비라는 그낡은 교리를 개혁했다고 한다. 쟈이나교는 윤회에서 벗어나자면 무살해(無殺害), 불망어(不忘語), 불투도(不偸盜), 불음(不淫), 무소득(無所得)이라는 의 계율에 맞는 엄격한 도덕적 행위를 한다.Ⅱ 본론1. 자이나교의 창시자와 그 기원자이나교는 불교와 마찬가지로 비정통 브라만교에서 발생한 출가주의 종교이다. 불전에서 니간타(Nigantha:尼乾陀)라고 전하는 종교를, 석가와 같은 시대의 마하비라(Mahvra)가 재정비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최고의 완성자를 지나(Jina)라 부르고, 그 가르침이라 하여 지나교 또는 자이나교라는 호칭이 생겼다. 기원은 매우 오래전이라 하나, 교리가 확실히 정립된 것은 교조 마하비라 이후이므로 BCE 5세기부터 시작되었다 보는 편이 타당하다.베다)에 의하면 자이나교의 창시자는 리샤바라고 하는데, 그 이후 BCE 599년에 마하비라가 태어나기 전까지 이미 23명의 지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23대 지나인 파르슈바나타)(BCE 9세기경 탄생)외에는 역사적 실재인물이라는 증거가 없다. 자이나교의 교리에 따르면 자이나교를 일으킨 24명의 티르탕카라(완전히 깨달은 스승: 지나) 가운데 마지막 인물이 마하바라라고 한다.전통적으로 마하비라는 BCE 599년에 태어났다고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학자들은 그가 석가모니와 동시대의 사람으로서 석가모니보다 나이가 어렸다고 추정하면서 그의 출생 연대를 40년 정도 후대로 보고 있다. 그는 석가모니와 같이 왕족으로 태어났는데 자이나교의 전승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 싯단타는 나타(Nata/Jn?t?) 부족의 왕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사제 계급인 브라만 가문 출신이었다고 한다. 마하비라의 부모는 자이나교의 23대 지나인 파르슈바나타의 교단에 속해 있었는데, 마하비라가 세속을 등지고 수도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30세 이전에 이미 단식(sallekhana:자발적인 단식)을 행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파르슈바나타 교단에 입문함으로써 수도생활에 들어가능태(可能態)로 제시된다. 즉 생명·비생명·선·악·누(漏)·박(縛)·차(遮)·멸(滅)·해탈(解脫)이 바로 그것이다. 생명이 외적 대상의 영향을 받아, 물질재료가 생명 속에 누입(漏入)하고[漏], 그것이 물질적 업(業)을 형성하여 생명을 속박한다[縛]. 그리고 외적·내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업물질(業物質)의 누입을 정지시키고[遮], 또한 이 업물질을 멸(滅)한다. 이 멸한 상태가 해탈이다. 해탈에 이르게 하는 덕목(德目)으로는 정견(正見)·정지(正知)·정행(正行)으로 요약되거니와, 구체적으로는 불교의 오계(五戒)에 해당하는 오금서(五禁書:브라다), 신(身)·구(口)·의(意)의 삼업(三業)에 해당하는 삼기율(三紀律:구프티), 오용심(五用心:사미티)이 특히 요구되고 있다.3) 업(카르마Karma)의 교리자이나교는 힌두교와 마찬가지로 업의 교리를 따르고 있다. 다만 힌두교에서는 카르마를 순수한 자연법칙으로 보고 있으나 자이나교에서는 카르마를 마치 옹기에 붙어 있는 진흙처럼 영혼에 붙어 있는 물질의 작은 입자로 본다는 것이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자이나교는 우주가 인간의 형상을 띄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윗 부분은 천상의 세계이며 아래 부분은 지옥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허리 부근에 자리하고 있으며, 인간의 영혼(지바)이 하는 행동에 의해 쌓인 카르마의 무게에 따라 천상으로 올라갈지 지옥으로 내려갈지 결정된다고 본다. 이기적이고 부주의하고 잔인한 행동들은 영혼을 아래쪽으로 가라앉게 만드는 무거운 카르마가 쌓이게 되며, 좋은 행위로부터 증가하는 카르마는 금방 흩어지기 때문에 심각한 결과가 오지 않는다.자이나교는 노력과 수련에 의해서 인간이 업(Karma)을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고행은 영혼을 가볍게 해주므로 이미 쌓여 있는 업을 흩기 위해서는 고통을 자초해서 당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보았다. 즉, 카르마가 지상에서 그들과 결합된 상태(업이 쌓여 무거워진 상태)일지라도 금식과 참회 등 자이나교에서 추구하는 고행을 수련한다면 쌓인 업을 없애고 열반(Nirvana)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