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1근·현대의 정치·경제..PAGE:2목차· 머리말I. 근·현대사의 시대구분 논쟁 - 1.남한의 시기구분론2. 북한의 시기구분론II. 근·현대사의 정치 연구동향III. 근·현대사의 경제 연구동향Ⅳ. 한국 전쟁의 기원Ⅴ. 식민지 근대화 논쟁· 맺음말..PAGE:3Ⅰ. 근·현대사의 시대구분 논쟁남·북한의 근·현대사 시기구분론을 비교 검토하는 작업은 무엇보다 남·북한 ‘학문의 분단’을 극복하기 위하여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역사연구의 모든 노력은 시대구분에 귀착한다.”는 말이 있듯이 시대구분은 역사 전개과정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기초적인 과제이자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되며 그 만큼 어려운 작업이기도 하다. 시대구분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은 역사를 인식하는 태도나 방법론 사관의 문제와 직결되며 현실적 실천적 차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배항섭,「근·현대 시기구분 어떤 차이있나?」,『남북역사학의 17가지 쟁점』,역사와 비평사)..PAGE:41. 남한의 시기구분론1) 해방 후 1970년대까지해방이후 1950년대까지의 역사학은 여전히 식민사학의 인식 틀을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시대구분 역시 식민사학의 구분법을 그대로 답습하는 형편이었다.· 이병도 『국사대관』(1945)상대사 - 중세 - 근세 - 최근으로 시기구분하고 있으며 최근의 기점으로 1910년의 ‘한일합방’을 잡고 있다. 이는 1946년 미군정청이 진단학회에 위촉하여 편찬한 『국사교본』의 시대구분인 상고 - 중고 - 근세 - 최근과 동일한 것이며 진단학회에 편찬한 『한국사』(전7권)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기구분은 한국사의 발전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와는 거리가 멀며 왕조별 시대구분을 시간의 원근에 따라 재편성한 정도의 것으로 식민사학의 시기구분에서 벗어나지 못한 서술 체계이다...PAGE:5남한의 역사인식이 식민사학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연구방법론에 입각한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60년대의 4월혁명과 6·3사태를 겪으면서 민족의 재발견 이후부터이다. 식민사학에 대한치적으로는 국민주권국가의 수립을,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를 추구하였던 시기로 이해하여 근대사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통일된 이후에는 개화기와 식민지시기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로서의 ‘현대사’라 할 수 있는 분단시대는 모두 통일 민족국가의 수립과정으로서의 근대로 인식되어야 하고 통일 이후의 시대가 현대가 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다.정창렬근대의 개념을 한국 주민집단이 외래 자본주의의 침략에 대항하여 스스로 근대 민족으로 결집형성확립되어가는 과정으로 근대사는 민중을 주체로 하는 민족해방의 쟁취과정으로 규정하였다. 그는 근대의 점을 외래 자본주의의 침략에 대해 우리 민족이 주체적으로 대항하기 시작하는 개항으로 잡았으며, 종점은 한국 주민집단이 근대 민족으로서 자기 확립을 마무리하는 통일로 설정하였다. 그의 시대 구분론에는 식민지 종속사회의 근대와 제국주의 사회의 근대는 질적으로 달라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으며, 한국 근대 사회의 성격을 식민지 반봉건 사회와 연결시키는 이해방식이 이론적 배경을 이루고 있다.신용하근대의 시점으로 중세 사회를 극복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수립하려는 흐름이 시작된 1850년대 말~1860년대 초를 잡고 있다. 근대의 종점으로는 해방을 설정하고 해방이후는 “식민지 시대를 벗어났으며 반봉건의 요소가 극복된 현대 고도자본주의체제”라는 데 근거하여 현대사를 볼 것을 주장하였다...PAGE:11의의 및 한계식민지를 경험했고 또 현재는 분단되어 서로 다른 두개의 체제가 양립해 있는 한국사의 특수성을 고려할 것과 남·북한의 전체를 포괄하는 시기구분이 요청된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으며 사회구성사적 관점을 적극적으로 고려한 시기구분론도 제기 되었다.1980년대의 시기구분 논의는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인식의 심화와 더불어 보다 과학적인 방법을 모색해 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으며 남북한 전체를 포괄하는 분단극복의 역사인식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시기구분논의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문제제기나 시론의 수준에서는 사회주의 건설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인민들에게 혁명투쟁의 전통을 선전하기 위해 역사연구가 일찍 시작되었다. 1947년 조선력사편찬위원회가 조직된 이래 사회주의 건설과업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진행된 북한학계의 한국사연구는 당사상 정책의 변화에 따라 세시기로 구분될 수 있다. 제 1기는 1945년 해방에서 1950년대 초까지, 제 2기는 1950년대 초반에서 1960년대 중반까지, 제 3기는 1960년대 중후반에서 현재까지의 시기이다...PAGE:15제 1기『조선민족해방투쟁사』에서 개항 직전에서 1949년까지를 백남운, 최창익 등이 ‘유일한 과학적 역사관인 맑스-레닌주의’에 입각하여 공동집필한 것이다. 그러나 집필자들의 성격이 다양했던 만큼 시기구분의 기준이 뚜렷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다만 시기구분의 논쟁에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제기된 대원군 집권기의 민족투쟁, 개항, 31운동, 815등을 중요한 의미를 지닌 역사적 사건으로 기술하고 있을 따름이다.1952년 맑스-레닌주의의 원리와 소련의 모범을 그대로 본받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현실에 맞게 창조적으로 적용할 것이 강조되고 사대주의와 교조주의, 민족허무주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주체적이고 과학적인 한국사상을 확립하려는 새로운 경향이 대두되었다...PAGE:16제 2기계급 투쟁설계급 투쟁설 역시 세계사적 관점에서 볼 때 근대는 자본주의 사회이며, 현대는 사회주의 사회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원시 공동체적 토지소유의 붕괴이래 전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였다”는 공산당 선언의 명제를 근거로 계급투쟁이 생산양식 및 계급관계의 변화발전을 집중적으로 체현하고 있을 뿐 아니라 토대와 상부구조의 상호 작용을 가장 적절하게 반영한다는 논리에 입각하고 있다...PAGE:17계급 투쟁설의 근대사의 시점과 종점에 관한 두 가지 견해근대의 시점- 1866년(병인양요)을 근대사의 시점으로 설정하는 근거로는 그것이 민족운동의 출발점이었고 1876년의 개항도 1860년대부터 전개된 민족투쟁(병인양요, 신미양요, 1945년은 식민지 시대를 종결하고 사회주의 시대를 여는 전환점이었다는 의미에서 각각 근대사의 시점과 종점으로 결론지어졌다...PAGE:21의문점 및 한계첫째, 근대를 자본주의 사회에 상응하는 시대로 설정하면서 1866년을 근대의 시점으로 잡고 있는 점이다. 이것은 사회경제설 스스로가 계급투쟁설이 제시한 1866년 시점설에 대해“1866년은 사회경제 구성상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다.”고 비판했던 사실과 정면으로 배채되기 때문이다. 시대구분의 원칙이 사회경제설로 정리되었다면 오히려 1866~76년을 결합하여 이해하면서 1876년을 시점으로 설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두 번째로 1866~1945년을 근대로 보는 시대구분이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 자체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 하더라도 세계자본주의 지배하에 종속적으로 편입됨으로써 자본주의-제국주의의 세계사적 규정성이 관철되고 있는 시기를 식민지 종속국의 민족사에서 근대로 파악하는 관점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끝으로 “북한에서의 역사전개 과정이 전체 한반도의 발전방향을 규정한다”는 논리는 어쨌거나 지나치게 ‘북한 중심적’인 인식이라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PAGE:22제 3기:주체사상과 시기구분제 3기에 해당하는 시기는 주체사상이 확립,체계화 되는 시기이다. 주체사관에서는 역사의 본질을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시기구분의 기준을 ‘역사의 동력인 주체와 혁명의 성격’에 두고 있다. 주체사관은 우리나라의 근대를 반침략 반봉건의 부르주아 민족운동으로 규정하여 근대사의 시점을 1860년대의 반침략 투쟁으로 설정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부르주아 민족운동이 단순한 반침략 운동이 아니라 합법칙적 역사발전의 산물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반봉건 부르주아 개혁운동과 결합되어 있음을 밝혀야 했다. 이에 근대의 시점을 전후한 부르주아 민족운동 및 자본주의적 관계의 발생, 발전에 관한 연구가 추진되었다...PAGE:23주체사관의 시대구분 기준에 따르면 현대사는 ‘역사의 주체인 인l Kolko- 북한의 선제 공격을 인정하면서도 북한군의 진격의 속도가 매우 빨랐다는 것을 지적하여 이것은 남한군의 고의적인 퇴각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이승만은 북한의 남침을 이용하여 남한의 붕괴를 막기위해 미군이 투입되도록 유도하였다고 설명했다...PAGE:28그 밖의 학설⑴ 북한측의 주장.한국전쟁의 한쪽 당사자인 북한측은 남한의 이승만 정권이 미국의 명령을 받아 북침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여러 가지 문서와 이론을 종합해서 검토해 볼 때, 북측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고 오히려 북한 자신의 남침을 합리화하려는 주장에 불과하다고 하겠다.⑵ 지역 정치설.이 해석은 한국 전쟁을 동북 아시아의 지역적인 상호 관련성을 중시하고 있다. 즉, 소련이 최소한의 위험부담으로 독자노선을 걸으려는 중공을 자국의 영향력하에 복속시키고 일본에서의 미국의 지위 강화를 좌절시키려는 의도에서 북한의 남침을 지지, 후원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들은 북한의 남침을 철저한 소련 영향아래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George F. Kennan, Charles S. Bohlen, Adam B. Ulam같은 사람들은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전반적으로 그 지위를 강화하려고 했고, 소련은 그것을 막기 위해 한반도를 선제 장악하려는 의도에서 이루어 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Wilbur Chaffee, Harrison Salsbury, Edgar Snow등은 소련이 중공을 자국의 영향력하에 두려는 의도에서 한국전쟁을 이용했다고 주장하였다.이러한 주장은 중공과 북한간의 관계를 너무 경시하고 있다는 맹점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전쟁 당사자의 국내 요인을 무시하고 있다. 따라서 남북한 양 적대 정권간의 대결의 격화 과정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PAGE:29⑶ 북한 지도자의 권력투쟁설.북한 지도자들간의 권력투쟁이 남침과 관련있다는 이 해석은 당시 북한의 최대 파벌인 김일성파와 박헌영파 사이의 권력투쟁에서 박헌영이 김일성을 제압할 목적으로 남한 내의 게릴라
♣ 목차들어가며Ⅰ. 포디즘과 그에 따른 노동의 변화1. 포드의 일관조립작업2. 테일러 주의와 포디즘의 한계3. 포디즘의 위기Ⅱ. 유연생산 조직 체계1. 유연생산방식의 등장2. 유연생산방식의 개념3. 도요타의 유연 생산방식4. 노동의 유연성5. 포드의 대량생산 방식과 도요타의 유연생산 방식의 비교나오며들어가며현대는 정보화 시대이다. 이러한 정보화 시대의 도래는 향후 보다 새롭고 정교한 소프트웨어 기술들이 거의 인간이 필요없는 문명의 세계로 몰아가고 있다. 기계는 농업, 제조업, 서비스업에 있어서 신속하게 인간 노동을 대체하고 있으며 21세기 중반 까지는 거의 완전히 자동화된 경제를 약속하고 있다. 모든 국가들은 기계에 의한 인간 노동의 대대적인 대체 때문에 사회적 과정에 있어서 인간 존재의 역할을 재고하게 될 것이다. 대량적인 공식적 고용이 부재한 사회에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의 기회와 책임을 재 정의하는 것이 다가오는 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될 것이다.사람들은 장차 경제가 호전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만 전 지구상의 노동자들은 일자리 없는 호전이 어떤 것일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매일매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어가고 있고 수익이 계속증가하고 있다고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동시에 대량의 해고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에는 신기술이 특정부문의 노동자들을 대체하면, 대체된 노동력을 흡수하는 새로운 부문이 항상 출현해 왔다. 오늘날 농업, 제조업, 서비스업이라는 경제의 전 부문이 기술 대체를 경험하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을 실업자의 대열로 몰아내고 있다. 출현하고 있는 유일한 부문은 기업가, 과학자, 기술자, 컴퓨터 프로그래머, 전문직, 교육자, 컨설턴트 등 소수의 엘리트들로 구성된 지식부문이다. 비록 이 부문이 성장하고 있지만 정보통신 기술 발달로 인한 혁명의 와중에서 해고될 수억명 중 단지 일부분이라도 흡수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이러한 현실적 상황을 음미해 보고 대표적인 산업생산 체계에 있어 대 이동에도 적용되었으며 포드는 이 일관 작업방식으로 작업자들이 작업 대상을 찾아 걸어가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 같은 작업체계의 원리는 포드의 다음과 같은 주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부품을 제자리에 놓는 사람은 그 부품을 고정 시키지 않는다. 볼트를 설치하는 사람은 암나사를 설치하지 않고 암나사를 설치하는 사람은 암나사를 조이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지금까지 포디즘의 형성배경과 그 특징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았다. 포디즘은 단지 노동관리 방법을 나타낼 뿐 아니라 특별한 상황을 이용해 경제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소비사회로 변화되는 시기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표준 가격대의 자동차를 생산하여 대량소비 제품으로 확산 시킨다는 포드의 생각은 당시에는 파격적이었다. 포디즘은 최저임금의 상승을 통해 생산과 대량소비를 연결시키려하였으며 이러한 효과는 다른 산업분야에도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다.그러나 이러한 결합은 동시에 결점을 드러내게 되었다. 연속생산의 규모는 통합된 자동화가 조건이 된다는 데 그 문제가 있다. 안정된 시장에서 일정불변의 대량생산품을 팔아야하는 문제를 갖게 된 것이다. 따라서 제품에 대한 수요는 너무 많은 변동이 있어서는 안되고 기복도 많아서는 안된다. 경제가 팽창되는 시기에 새로운 시장이 발전되고 이와 관련하여 통합 자동화는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수요가 줄거나 회사들 간의 경쟁효과로 수요가 다양화되면 이러한 해결책은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결국 재고품이 쌓이고 회사들 간의 경쟁으로 다양한 제품이 나오게 되면서부터 대량생산은 결국 변화의 길을 모색해야 되게 되었다. 즉 포드주의의 도입으로 유발된 경제성장은 결국 대량 생산에 기초한 경제체제와는 분리시킬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인 것이다.2.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의 한계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는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60년대 말부터 공장, 은행, 보험회사에 적용되기 시작한 노동의 과학적 관리론과 특히 대량생산공장에 일관작업이 확장되면서 70년대 중반에는 이 두 이론에 대한 의 재창출 과정이라는 운동과 함께 노동조직 형태는 세분화된 반복적인 작업에 대한재검토로 제시되었다.이 과정에서 직무재조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전 조직이 지니고 있던 엄격함을 타개하기 위하여 실시된 여러 가지 실험은 다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들 연구는 단조로운 작업을 타파하려는 문제점과 노동자들의 직무만족도, 노동자들에 관련된 문제점을 제시하면서 이에 따른 해결책으로 직무풍요?직무확대?반자율적 집단의 세 가지 직무 재조직을 실천방안으로 제시하였다. 원칙적으로 이 세 가지 직무 양식은 수직적, 수평적 분업형태에 일치하는 것으로 작업풍요는 수직적 분업에 목표를 두고 있고, 직무확대는 수평적 분업을 의미하여 반자율적 집단은 위의 두 가지 원리를 결합한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3. 포디즘의 위기요컨대 미국의 지배적 제국주의적 지위와 그러한 지배하에서 발전, 유지된 전후의 번영을 기반으로 하는 포드주의이라는 생산 양식은 내포적 자본축적전략에 기반하며 이러한 전략은 본질적으로 노동 과정의 테일러주의적 재조직화에 의존한다.포드주의의 확립이 가져온 자본 수익성의 장기적 안정은 점차 역사적, 사회 구성체를 구성하고 있는 기존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구조 내에서 전반적인 이윤의 저하라는 상쇄 경향을 나타내기 시작한다.포디즘은 다음과 같은 위기를 겪게된다. 첫째, 테일러주의적 작업조직의 위기: 기존의 테일러주의적 작업조직이 갖고 있던 생산성의 잠재력이 고갈이 되기 시작한다. 즉, 노동의 강화, 탈숙련화, 단조롭고 소외된 노동의 증가 등 생산의 중심부에 있던 테일러주의적 대량 노동자가 자본주의적 이윤을 안정화시키지 못하는 데서 위기를 맞게 된다.둘째, 노동조합의 상대적 강화: 임금소득자들의 중앙집중화된 노동조합이 강화되기 시작한다. 이를 통하여 노동자들은 실질임금수준의 하락을 저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적 지위를 보장받게 된다.셋째, 개입주의 국가의 위기: 국가-기업간의 금융적 연계에 기반하여 기술 및 사회간접자본을 창출하여 수요를 확대시키고자 하는 행정-산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형성된 생산조직 전략이라 할 수 있다.이 유연생산체계는 반드시 전문화된 소량생산형태로의 회귀를 내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일본식 유연생산체계는 대량생산의 자원과 다양성의 제약을 결합시킨 원리에 따르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조직에 대한 적응속도로 결정적인 목표를 구성하는 유연 생산체계에서는 모든 작업 정지 시간을 제거하여 작업시간을 절약하는데 목적을 둔 예전의 작업방식을 추구하지 않는다. 대신 유연생산체계에서는 기술과 조직, 노동력에 유연성을 결합한 혁신체제를 추구한다.1.유연 생산 방식의 등장포드주의의 위기는 새로운 자본주의 축적모델의 등장을 가속화시키게 되었다. 노동과정의 재조직화는 새롭고 보다 유연한 인간과 기계의 결합, 임금 소득자간의 새로운 위계창출 및 작업관계의 체계적인 개별화의 확립을 지향하고 있다. 이것은 노동과정과 작업조직을 통한 테일러주의적 대량 노동자의 파편화와 분화, 생산과정의 취약성 향상, 생산능력의 보다 완전한 활용(지속적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새로운 노동정책은 감독과 지시의 복합적 임무가 부여된 높은 자질의 핵심 노동자군과 동시에 미숙적이고 단조로운 작업이 여전히 잔존하는 형식을 띤다. 새로운 정보처리, 계획 및 조절 기술은 테일러주의를 첨단수준으로 확립하게 만들었으며 이러한 기술은 작업과정의 형성에 있어서 기업의 자유를 향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FMS(Flexible Manufacturing System)은 인간과 기계의 분리와 동시에 지속적 작업으로의 이행, 노동자와 기계의 공간적 분리, 작업장, 임금결정 및 노동계약 조건의 근본적인 개별화와 같은 작업시간의 유연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숙련되고 자율적인 핵심노동자와 그 곁에 새로운 기술에 기반 한 새로운 유형의 대량 노동자가 나타나며 이들은 동일한 노동조건을 가지며 공간적으로 집중, 통합, 종속되지 않으며 고도로 개별화, 유연화, 분절화 된다. 그러나 동시에 기존의 미숙련의 대량 노동자는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생산 전반이나 관리, 서비스 부분의 단기의 생산계획을 세우고 이것을 세분화하여 일정 계획을 만들고 그에 의거하여 각 부분으로의 초기계획을 구성하면, 각 부문은 그 정보에 따라서 각각의 공정에서 가공, 후 공정으로 보내게 된다. 그러나 각 부문은 여러 문제가 있어서 계획대로 생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수요예측의 변화 등 변경 정보가 여기저기서 나와 전·후 공정의 시기적절한 생산을 어렵게 하고 있다.그 결과, 아무리 해도 필요이상의 재고를 가지려 하는 심리를 현장에 발생시키게 된다. 그리하여 '언제, 무엇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후 공정이 「사용한 만큼 전 공정에 가지러 가고, 전 공정은 가져간 양만큼 생산」하는 逆轉의 발상에서 고안된 것이 Just-In-Time을 실현하기 위한 관리 개선의 도구인 "간판"이다.즉, 간판 방식에서는 최종 라인에만 투입 정보를 내고 그에 따라서 후공정이 필요한 것을 전 공정으로 가지러 가는 후 공정 인수방식을 취하도록 하여 전 공정은 가져간 양만큼 만을 만든다고 하는 것이다.그리고 도요다 생산방식에 있어서 중요한 개념으로서, 수요의 변화에 대응하여 작업자 수를 탄력적으로 변화시키는 '少人化'와 작업자의 제안을 통해서 개선활동을 추진하는 '創意 硏究'의 두 가지가 더 있다.4. 노동의 유연성유연생산방식의 실행은 다양한 경제적?사회적 사건 안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1949년 재정적 위기에 부딪친 도요타 자동차 공장은 1천 6백 명에 이르는 노동자를 해고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해면서 대대적인 파업에 돌입하게 되었다. 도요타 공자의 위기 국면은 한국 전쟁의 발발로 인하여 주문이 쇄도하게 되면서 도요타 공장은 50년대 물자의 흐름을 끌어내기 방식으로 운영하는 재고 관리 시스템을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예전의 자동차 공장 노조가 해체되고 사용자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하는 ‘어용조합’으로 전환했다. 1962년부터 도요타 공장은 간판 원리에 따라 운영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70년대에 들어와서는 이 칸반 체제를 부품 공급업체와 하청업체에도 확장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