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I. 서론-소개II. 본론1. 근대 경제학 이전의 변천(1) 원시사회의 경제(2) 공납제사회의 경제(3) 고대 노예제사회의 경제(4) 중세 봉건제사회의 경제(5) 자본제로의 이행(6) 중상주의(merchantilism)-시대적 배경, 내용 및 특성, 주요 학자의 활동(7) 중농주의(physiocracy)- 시대적 배경과 내용 및 특성2. 근대 경제학의 변천(1) 한계효용학파(2) 신고전학파(3) 미국 제도학파3. 현대 경제학의 변천(1) 케인즈학파(2) 통화주의학파(3) 새고전파(4) 공급중시학파4. 주류경제학과 비주류 경제학A. 주류 경제학의 변천(1) 고전학파(classic school)- 시대적 배경과 내용, 주요 학자(2) 케인즈 학파(Keynesian school)- 시대적 배경과 내용, 주요 학자(3) 신고전학파(neo-classical school)- 시대적 배경과 내용, 주요 학자(4) 합리적 기대가설- 시대적 배경과 내용, 주요 학자(5) 공급중시경제학- 시대적 배경과 내용, 주요 학자B. 비주류 경제학의 변천(1) 역사학파(historische Schule)- 시대적 배경과 내용, 주요 학자(2) 마르크스 경제학파-시대적 배경과 내용, 주요 학자- 시대적 배경과 내용, 주요 학자(3) 사회주의경제학-시대적 배경과 내용, 주요 학자(4) 제도학파(institutional school)- 시대적 배경과 내용, 주요 학자(5) 스톡홀름학파-시대적 배경과 내용, 주요 학자III. 결론-주류와 비주류를 분석한 후의 주관적인 견해로써 비판I. 서론(소개)이번 리포트는 시대적 흐름에 따른 경제학의 변천뿐만 아니라 각 시대적 배경의 내용 및 특징, 그리고 그 시대의 주요학자들의 활동 등에 착안하여 인류의 경제학의 흐름을 알아보기로 하겠다.II. 본론1. 근대 이전의 변천⑴ 원시사회의 경제원시시대에는 자연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하여 집단적인 생활을 영위하였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반드시 집단으로서만 존대했기 때문에 개인은 집 최초로 도식화하여 보여주는 「경제표 Tableau economigue」(1758)이다. 베르사유궁전 안에 있는 ‘중(中) 2층의 회합’이라는 모임을 마련하여 유물론 철학자 디드로?달랑베르, 프랑스에 체류중이던 A.스미스 등 당시의 지식인들과 시국의 관심사, 특히 농업문제에 관한 토의를 갖기도 하였다. 또 디드로와 달랑베르가 편집하는 《백과전서》에 〈소작인론〉(1756) 〈곡물론〉(1757)을 게재하기도 하였다.경제학분야에서 가장 큰 공헌은 《경제표 Tableau conomique》(1758)의 작성을 들 수 있다. 여기에서 농업만이 부(富)를 창조하는 유일한 부문이며 상업과 공업은 비생산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지주계급 ?생산적 계급 ?비생산적 계급으로 구성되는 사회를 상정(想定)하고, 그 속에서 상품과 소득의 순환을 통하여 농업자본의 재생산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하나의 도표로써 표시하였다. 중농주의의 체계를 확립하는 한편, 국내시장의 확장을 위하여 자유방임정책의 채용과 세제개혁을 주장하였다.② 미라보(Marquis de Mirabeau) [1715.10.5~1789.7.13]: 페르튀 출생. 정치가 H.미라보 백작의 아버지로서, 처음에는 군인이 되었으나, 퇴역 후 파리 교외 비뇽의 영지(領地)에서 경제학 연구에 몰두하였다. 1756년 인구 증가와 부(富)의 증진의 관계를 분석한 저서 《인간의 벗 L‘Ami des hommes, ou trait暴 de la population》을 발표하여 성공하였다. 이로 인해 그는 ?인간의 벗?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 후 중농주의자 F.케네의 영향을 받고 그의 친구이자 제자가 되었다. 1760년 당시의 징세방법을 비판하고 과세체계의 개혁을 주장한 《조세론 Th暴 orie de l’imp惠t》을 저술, 고발당하여 투옥되었으나 케네의 노력으로 석방되었다. 이어 케네의 경제이론을 충실히 전개한 《농사철학 Philosophie rurale》(1763)을 출간하였는데, 제7장에서 유명한 케네의 ?경제표?를 해설하여 중농주의 창출한다'는 '세의 법칙'을 전제로 해왔기 때문이다. 공급이 바로 그만한 크기의 수요를 창출한다면 수요의 부족이란 있을 수 없고, 따라서 이로 인한 불완전고용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케인스에 의하면 세의 법칙은 현실경제사회에서 타탕성을 가지는 법칙이 아니다. 수요와 공급이 언제나 일치하기 위해서는 저축과 투자가 언제나 일치해야 하는데, 저축과 투자는 담당자와 동기가 서로 다르므로 반드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이러한 점에서 케인스는 고전학파의 경제이론을 반박하여, 영과 완전고용 사이에 무수히 존재할 수 있는 고용의 균형상태 중의 하나에 불과한 완전고용만을 유일의 균형상태로 가정하는 고전학파 경제학은 하나의 '특수이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고, 완전고용과 함께 불완전고용까지를 가정하고 있는 자신의 경제학이야말로 '일반이론'이라고 강조하였으며, 완전고용을 위해서는 조세정책 ?화폐정책 ?금융정책 ?재정정책 등을 통한 정부당국의 인위적 간섭에 의해 유효수요를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케인스의 일반이론은 주로 1930년대의 자본주의 경제의 병폐인 불완전고용, 즉 불황을 주로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데서, '불황의 경제학'이라고 평하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의 주축을 이루는 유효수요 이론은 불완전고용뿐만 아니라, 완전고용하의 경제분석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고, 또 인플레이션 분석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케인스가 자신의 이론을 '일반이론'이라고 부른 것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일반이론》은 경제이론면에서 케인스 혁명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세계의 많은 나라의 경제정책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함으로써 많은 새로운 경제정책을 수립하게 하였고, 이 이념은 국제기구에서도 구체화된 바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⑵ 통화주의학파케인즈정책을 유일한 정책기조로 하여 총수요관리정책을 실행해 오던 중 1960년대 후반부터 주요국가에서 격렬한 인플레이션이 진행되어 경제적 불안이 심화되어 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rinciple of Population》(1798)을 집필하였다. 1805년 동인도대학 경제학 및 근대사 교수를 지냈다. 《인구론》은 빈곤과 악덕의 근원이 과잉인구에 있으며, 이는 사회제도의 변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냉엄한 자연법칙의 결과라고 하여 프랑스혁명의 영향을 받은 고드윈 등의 사회비판에 대한 반론으로 쓰여졌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나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므로 인구와 식량 사이의 불균형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여기에서 기근?빈곤?악덕이 발생한다고 하였다.이러한 불균형과 인구증가를 억제하는 방법으로 기근?질병 등으로 인한 사망과 같은 적극적 억제 외에 성적 난행을 막고 결혼을 연기하여 출산율을 감소시키는 등의 도덕적 억제를 들고 있다. 인구론의 특징은 인구를 자연법칙으로서 파악하는 점에 있으며, 후에 마르크스의 상대적 과잉인구론에서 비판을 받기는 하였으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당시 그의 논적(論敵)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공통된 사고방식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노동자계급의 빈곤을 사회개혁의 방법이 아닌 도덕적 억제로 인구를 조절함으로써 해결하려는 맬서스주의 또는 인위적인 산아제한 등 출생률을 저하시킴으로써 해결하려는 신(新)맬서스주의로 발전하였다. 경제학 분야에서는 이론적으로는 차액지대론(差額地代論)과 유효수요의 원리를 전개하고 과소소비설(過小消費說)의 입장에서 공황 발생의 가능성을 주장하여 일반적 과잉생산에 따른 공황의 발생을 부정하는 D.리카도, J.P.세, J.밀 등과 대립하였다.정책적으로는 지주의 이익보호를 위하여 곡물법의 존속 및 곡물보호무역정책을 주장하여 산업자본가의 이익옹호의 입장에 있는 자유무역정책과 대립하였다. 판로설(販路說)에 대한 비판이나 유효수요의 원리 등은 후에 J.M.케인스를 통해 재평가되었다. 주요저서에 《인구론》 외에도 《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1820) 《경제학의 제정의:Definitions in Political Economy》(27) 등이 있다cal synthesis)의 경우에는 경제적 복지의 달성수단으로서의 사기업제와 경쟁의 유효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생각된다.1970년대 이후 자주 쓰이게 된 신고전파비판의 경우 신고전학파의 구체적인 범위는 명확한 것이 아니지만, 한계혁명 후 미시적 가격이론 중심의 종래의 근대 경제학이 불가역적(不可逆的)인 시간요소나 불확실성을 무시 내지 경시하고, 원자론의 입장에 서서 소비자 주권을 절대시하며, 경제생활의 역사적 ?사회적 성격을 무시 내지 경시하고 있는 측면 등이 비판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처럼 신고전학파는 매우 다양한 뜻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 의미 ?내용은 단일의 것을 상정할 것이 아니라 전후관계에서 미루어 판단되어야 한다.신고전학파의 주요 학자① Alfred Marshall [1842.7.26~1924.7.13]: 런던 출생. 신고전학파(新古典學派)의 창시자이다. 처음에는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하였으며, 후에 형이상학(形而上學)과 윤리학 연구를 거쳐 경제학을 연구하였다. 1885년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 교수가 되었다. 영국경제학계의 지도자로서는 물론, 왕립위원회(王立委員會) 위원으로서도 학문과 정책면에 공헌하였다. 1908년 A.C.피구에게 교수직을 물려주고 은퇴하였다. 케인스 ?피구를 비롯하여 수많은 제자를 양성, 신고전학파(케임브리지학파)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졌다. 주요저서로는 《경제학원리 Principles of Economics》(1890) 《산업과 무역 Industry and Trade》(1919) 《화폐 ?신용 및 상업 Money, Credit and Commerce》(1923)의 3부작이 있다.마셜은 빈곤의 여러 원인을 연구하고 극복을 통하여 인간사회의 진보 가능성을 추구한다는 데에 경제학의 과제를 두었다. 경제이론의 기초에 스펜서식의 사회유기체를 도입하였으며, 경제학자의 메카는 경제동력학이 아니라 경제생물학이라고 하는 사회관을 이론의 기초에 두었다. 가치론에 있어서는 고전학파의 생산비설(生産費說)과 제번스의 한계효용학설(限界效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