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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巫)에 대한 이해
    목 차1. 무교의 정의 2. 무교의 역사 3. 무의 구조 4. 무당의 종류 5. 무의 유형 6. 굿의 모습 7. 무교와 한국의 종교문화 8. 결론무교의 정의무속은 한반도와 남만주에 살았던 부족들의 종교로서 일반적으로 샤머니즘으로 알려져 있음 샤만은 일반 사람들을 대신해서 복을 빌고 질병을 치료하며, 죽은 사람의 혼을 위무하는 일을 수행함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풀 수 없는 큰 문제를 직면했을 때, 무당의 중재를 빌려 신령들의 도움을 청하는 종교임무교의 정의무당: 신령과 인간의 사이에서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고, 인간의 이익을 신에게 대변하는 존재임무교의 정의굿 : 일정한 판이 벌어져 신령과 무당 신도가 서로 어우러져 맺힌 것을 풀고,우주를 이루고 있는 중요한 두 요소인 천체와 인간계가 다시금 조화를 찾게 됨. 巫 = 天 + 地 + 中 + 人人 = 하늘 + 땅 + 중재자 + 춤추는 모습 = 신령계 + 인간계 + 무당무교의 역사신교: 정기적으로 큰 축제를 가졌는데, 그것은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와 같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제천의식임 선사, 삼국은 제정일치 사회로써 무당은 정치적 수장(왕)과 같은 사람으로 여김. 대개 추수를 기원하거나 감사하는 농경제의적 성격을 가졌으리라 보이며 그 이후 한국인의 종교제의의 원형무교의 역사고려-조선 고려로 넘어오면 팔관회와 연등회가 국가적 종교행사로 자리하게 됨 이 두 행사는 겉으로는 불교행사인 것처럼 보이나 그 내용은 기실 예로부터 전해오던 무(巫)의 축제전통을 이은 것임무교의 역사근대화․서구화라는 국가경영이념 앞에 전통문화와 종교는 맥없이 허물어져가며, 굿과 무당은 단지 미신을 조장하는 근대화의 걸림돌로 인식될 뿐임 1960년= 시작된 전국 및 각 도 단위의 민속예술경연대회와 무형문화재 제도는 굿을 전통문화로 인식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 1980년대 이후= 굿과 그 문화에 정통한 많은 큰 무당들이 세상을 뜨면서 뛰어난 기예와 법도가 끊어지게 되었으며, 학습이 덜된 선무당이 많아지면서 굿과 무당의 세계가 위축․변질되고 있음무의 구조신령(신적존재) 무당(사제) 단골(신도)무당의 종류강신무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무당이 강신무에 해당함. 내림굿(성무의식)을 통하여 강신(신을 자신의 몸에 직접 받아들이는 일)으로부터 얻은 영력으로 미래사를 예언하고, 굿을 할 수 있는 강력한 무속인임무당의 종류세습무 혈통을 따라 사제권이 대대로 계승되는 무당임. 영력과 관계없이 제의를 집행하는 사제의 구실이 주 임무임. 강신의 체험을 통하지 않아 집안에 신단(神壇)을 만들어 봉안하지 않으며 현재는 거의 없어져가는 추세임.무의 유형무당형 강신체험을 통해서 된 가무로써 굿을 주관할 수 있음 영력에 의해 점을 치며, 예언할 수 있음. 중부와 북부에 분포되어 있는 무당, 박수가 무당형에 속함무의 유형단골형 혈통에 따라 대대로 사제권이 계승되어 인위적으로 무당이 된 세습무임 기예를 배우고 익혀 신을 향해 일방적인 가무로 굿을 주관함 호남지역과 영남지역에 주로 분포되어 있음. 강원도지역의 화랭이와 진도의 씻김굿을 주관하는 당골네가 그 대표적인 예임무의 유형심방형 제주지역에 주로 분포하며 무당형과 당골형의 중간형으로 영력을 중시함 신에 대한 인식이 확고하나, 신이 직접 몸으로 강신하지 않고, 굿을 할 때 영통이 없이 무점구들을 통해 신의 뜻을 물어 전달함. 하지만 현재에는 강신무와의 혼합으로 점점 무당형이 되어가고 있음무의 유형명두형 어린아이 죽은 혼신이 몸에 실려 점을 치는 강신무임. 어린아이의 목소리나 휫바람 소리등으로 혼을 부르며 영력이 뛰어나지만 굿을 주관하기 어렵고 귀신의 장난에 무 자신도 모르게 휩쓸리기 쉬운 무의 형태임. 전국적으로 산발적인 분포를 보이며 명두, 태주, 동자, 선녀등으로 불리움굿의 모습작두타는 모습무당이 춤추는 모습굿의 모습굿의 악기거리에서의 굿굿의 모습무교와 한국의 종교문화한국인의 놀이: 신들림과 신명의 한판 우리민족의 신명 기질에서 그 모습의 형성 신바람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그 답은 무교에 있다.무교와 한국의 종교문화굿을 통하여 부조화를 조화로써 바꾸려 함 인간, 자연, 신령계의 포괄적인 세계관 종교의식은 음주가무를 통한 매개체적인 역할을 함.무교와 한국의 종교문화유교속의 무교 유교는 종교성이 약하기 때문에 인생의 수없이 다양한 국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에는 역부족 유교 문화의 중심에서 배제된 그러면서도 유교와 냉정한 이성보다는 무교의 뜨거운 열정을 좋아하는 감수성이 예민한 여성들이 무교에 몰린 것은 당연한 이치임.무교와 한국의 종교문화유교의 제사는 철저히 여성을 소외시키는 종교의례로 유명함 어린이도 포함되지만 특히 불행한 죽음을 당한 영혼은 무교가 앞장서서 죽은 영혼이나 그 가족들을 쓰다듬어 줌. 이렇듯 무교는 유교가 성하게 대접받던 시대에 박해를 받으면서도 유교의 보완적인 역할을 적절히 수행하며 민중들의 삶에 따뜻한 위로가 되었음무교와 한국의 종교문화기독교 속의 무교 어떤 학자들은 부흥회의 이런 시끌벅적한 모습에서 무교의 영향을 찾으려 하며, 마치 굿판과 같다는 것임 우리나라의 몇몇 교회에서는 병 고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한 교회 사업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음무교와 한국의 종교문화무교의 영향으로 보이는 것은 병의 원인에 대한 해석임. 병의 발병 자체가 귀신의 탓이라고 돌리는 것은 무교의 그것과 여간 흡사한 게 아님.결 론한국종교사의 특징이 되는 다종교 공존도 그 배경은 바로 무라고 볼 수 있음 공존의 성격이 고루 어우러짐에 있는데, 이 조화성은 곧 무의 본질이다. 한민족에게 다종교 공존의 조화의 원리를 제공하였고, 그 뿐만 아니라 음주가무와 신들림의 종교문화를 그 체질로 가꾸었음결 론오늘날의 무는 퇴화된 모습이며, 신들림과 음주가무 어느 것이나 신명이 떨어지고 세속화 물질화 되어 있음 현대종교에서는 다종교 공존이 난립으로 바뀌어 가치의 혼란이 극심한 상황에서 무가 다종교 공존의 바탕음 그 조화정신의 근원이었음을 바로 깨달아 조화를 회복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임결 론종교로서의 모든 요소를 갖춘 순전한 종교 한국의 무속은 한국의 종교들 가운데 가장 본질적이고 오래된 종교 전통임 재래 풍습 혹은 민간 신앙적 관습 정도로 보거나 더 나쁘게는 미신으로 매도해 버리는 것은 공평치 못한 일임Thanks you very much~!!{nameOfApplication=Show}
    인문/어학| 2007.01.11| 27페이지| 1,500원| 조회(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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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에서의 구원
    1. 기독교기독교는 예수님의 일생과 인격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써, 사람을 죄와 죄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하는 “구원의 종교”이다. 먼저 구원은 구원이나 해방으로 번역되는 영어 단어인 salvation은 ‘치료하기 위해 바르는 연고’를 뜻하는 salve와 같은 어원에서 파생된 말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또한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의 의미는 범죄 하여 하나님의 자녀 권세를 잃어버린 채 죄 가운데 사는 인간이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대속의 피로 인하여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 권세를 얻고 영생을 소유한 천국백성으로 이 세상에서 청지기의 삶을 살다가 궁극적으로 본향인 천국으로 가게 된다는 것으로 이 사실을 믿는 자에게만 영생의 구원이 있다는 것이다.구원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천국이다. 오랫동안 일반적인 기독교에서는 구원과 내세(천국)가 밀접하게 연결되어서 이해되었다.내세 중심적인 구원 이해는 기독교인들의 삶과 행위의 근본적인 동기를 제공한다. 믿음, 주일성수, 예배나 기도, 헌금 등의 모든 행위의 중심에는 천국에 가기 위한 목적이 깔려 있다. 주일성수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인데, ‘주일에는 꼭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말로 이해되었다. 게다가 예전에 많이 들었던 예화는 그것을 천국과 연결시킨다. 주일에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천국에 올라가는 사다리 중에서 가로대가 하나씩 빠지게 되어 많이 결석하면 천국에 올라가기 어렵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있다. 헌금은 천국에서 자기가 거할 집을 짓는 데에 쓰이는 돈이라고 강조하면서 많은 액수의 돈을 바칠수록 천국에서 더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다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일반적으로 천국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는 다른 세상, 이 세상에서의 삶을 다한 후에 가는 다음의 세상, 미래의 세계를 말한다.또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생활의 기준을 자신에게 두지 않고 하나님께 두기로 결심함으로써 삶과 죽음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주하고 하나님이 예비한 풍성한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또한 중생(重生)과 구원의 확신에서의 거듭남이라하면 회개(悔改)와 믿음은 외적인 표현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인 반면에 거듭남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심령 속에서 일으키시는 내적인 변화인 것이다. 또한 거듭남은 인간의 세속적인 감정, 사고, 의지의 방향을 돌이켜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일치시키고 하나님의 견지로 돌아오게 하여 그로 하여금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는 것이다. 즉 이러한 거듭나야 한다는 말은 죄를 회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듭남은 인위적인 방법으로가 아닌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되는 것이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에 아무도 해치지 못한다.이러한 기독교의 구원관의 특징을 보면, 첫째 기독교의 구원은 성도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오직 믿음으로 영생을 선물로 받는 철저한 신앙구원이다. 둘째는 기독교의 구원은 내 힘과 적선과 고행으로 구원 얻는 자력구원이 아니라 성부하나님의 사랑과 선택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와 성령님의 이끄시며 도우시는 역사로 인하여 구원 얻는 타력구원이다. 마지막 셋째로는 기독교의 구원은 고행이나 수련의 과정을 거쳐야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소유하게 되는 즉각적인 구원이다.즉 이렇듯이 기독교의 구원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계신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며 불교나 유교의 구도정신과 다른 것은 기독교의 구원은 하나님의 주도적인 은총의 행위에 근거한다는 점에 있다. 인간은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타락함으로 인해서 스스로 구원할 수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한다. 인간이 본래 창조의 목적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길은 기독교 신앙에 의하면 인간 스스로가 선행이나 자기 수행을 통해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이 점에서 기독교의 구원론은 신 중심적이라고 할 수 있다.2. 불교불교에서는 자기 수양을 충실히 하면 누고로 순수해진 부동의 자세가 이루어진 선정의 단계와 선정을 통하여 얻게 된 고요하고 평안한 마음에 평소에 감추어 있던 비밀과 원인을 깨달을 대오각성이 이루어지는 지혜의 단계를 단계적으로 거쳐서 이루어지는 점진적인 구원이다.불교의 구원과정을 요약하자면 전생의 출생을 알고 행위에 대한 인과응보의 법칙을 알고 사성제(불교의 4가지 거룩한 진리 즉, 모든 삶이 번뇌와 고통이라는 고의진리와 번뇌의 원인에 관한 집체와의 진리와 번뇌에서의 해탈에 대한 멸체의 진리와 8정도에 의하여 열반에 이른다는 도체의 진리)를 발견하고 팔정도) 즉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 (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를 행함으로 더 이상 윤회가 없는 열반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사성제에서의 먼저 고성제를 보게 되면 이 세계의 모든 존재들이 처해 있는 불완전한 현실과 그 불완전한 존재를 유지하면서 겪게 되는 고통과 노력을 고(苦)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개체들이 자신을 유지하려고 애를 써도 이미 살펴본 것과 같이, 모든 존재들은 실체가 없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개체들이 스스로를 유지하려고 힘을 들이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이렇게 힘들이는 모든 존재는 마치 병이 든 것 같다고 하는 것이다. 이 고(苦)를 ‘괴로움’이라고 하여 오직 인간의 감정만을 표현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모든 존재의 모습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집성제를 보게되면 그러면 왜 이렇게 모든 존재들이 고(苦)의 상태에 있는가? 존재하려고 힘들이는 것은 갈애(渴愛)에서 오는 것이다. 이 갈애로부터 번뇌가 생기게 된다. 갈애가 있기 때문에 윤회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을 무명(無明)이라고 한다.무명에 의해 고(苦)가 발생하는 과정을 열두 가지의 인과의 고리로 설명한 것을 12연기라고 한다.) 인간의 감정, 욕망, 질병, 충동, 노쇠, 질병, 죽음 등은 하나의 현상이다. 이 현상은 어떤 원인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다 완전한 평화와 완전한 지혜를 갖고 인간을 구속하는 모든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또한 열반에 이른 사람은 세속의 일상사로부터 벗어나 현실 생활과 세계에 대해 무관심하고 초연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도 옳지 않다. 열반에 이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으로서 이웃의 고통과 슬픔에 함께 아파하고 그들의 행복과 해탈을 위해 노력한다. 마지막으로 도성제-팔정도에서는 그러면 이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하는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그 길은 부처님 자신이 발견하여 걸어갔던 길로서 여덟가지 거룩한 길 팔정도이다. 팔정도는 깨달음 이후의 부처님의 삶을 표현한 것이며 동시에 깨달음을 이루려는 사람이 따라가는 길입니다. 이 길은 비밀스러운 길이 아닙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그리고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지식이 많거나 적거나 그 누구나 갈 수 있는 보편적인 중도(中道)의 길입니다.3. 유교유교가 궁극적으로 성취하려는 것이 단지 자아실현(自我實現))이라고 할 수 있고, 인간이 빠져있는 죄나 타락의 상태를 전제하지 않기 때문에 유교의 구원론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유교의 근본적인 도덕의 목표는 예(禮)와 관련이 있다. 이 예(禮)는 개인이 실천할 도덕 질서가 아니라 절대자인 하늘(天)이 우주와 만물을 운행하는 모든 도리(道理)를 가르킨다고 본다. 하늘의 이치인 예(禮)는 인간의 문화, 정치, 인륜적 생활 속에서 실천되어야 할 인간 생활의 원리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그러기에 유교의 구원관의 특징을 보면, 첫째, 신앙의 대상이 분명치 않고 실천도덕을 중시한다.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의 가르침이나 경전이 되는 사서오경)의 내용을 살펴보면 뚜렷이 누구를 신앙하는 종교가 아니라 사람들 스스로가 일상생활에서 실천도덕을 완성하는데 그 목표가 있을 뿐이다. 둘째는 유교에는 구원신앙이 아닌 현실 신앙이다. 일상생활에서 윤리적 실천만을 강조하여 인간의 가장 큰 고민인 죽음의 문제와 죄에서 구원에 대해 아무런 해답도 주지 못한다 할 수 있이론적으로 집대성한 책은 317년 갈흥이 지은 포박자)이다. 포박자에는 신선이 되는 구체적인 지침과 설명이 나오게 된다. 이러한 신선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구원의 평등성과 평등사회를 지향한다. 이러한 신선이 되려면 먼저 욕심을 없애고 선행을 많이해야 한다고 한다. 최고의 선인인 천선(天仙)은, 곧 하늘로 날아올라가는 신선이 되려면 1200번의 선행을 해야하고, 중간인 지선(地仙)은 명산에 노니는 신선인데 300번의 선향을 해야한다. 이처럼 신선은 먼저 도덕적 정화를 한 다음에야 가능한 것으로 보고있다.신선사상을 보게 되면 내단과 외단을 볼 수가 있다. 내단은 신신수련을 통해 금단을 우리몸 가운데서 만들어 가려는 사상을 말하며, 외단은 광물질을 원료로 하여 금단(金丹)이라는 약을 제조하고 복용함으로써 신선이 되려는 것을 말한다. 금의상징성을 잠깐 보면 금은 변하지 않는 불멸의 성격을 인간이 획득한다는 뜻으로써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외단법은 점차사라지게 되었다. 이유는 도교가 성행을 하던 당나라 초기 임금중에 7~8명이 금단을 마시고 수은 중독으로 죽었다는 사실이 역사 기록에 까지 남았기 때문에 이러한 위험성 때문에 점차사라지게 되고 도의 원기를 인간 몸 안에서 찾는 내단법이 발전하게 되었다.이러한 신선을 왜 지향하고 또한 바라는지 신선의 특징을 살펴보면 포박자에서 보이는 바에 의하면 신선은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고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으며 더위나 추위도 전혀 느끼지 않고 얼굴이나 모습을 변하게 한다든지 모습을 은폐하는 등 여러 가지 능력과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되었는데 그중 가장 큰 특징은 영원히 죽지 않고 하늘에 올라 다닐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으로 볼 수가 있다. 즉 이러한 신선은 중국인들이 기원전 4세기경부터 오늘날까지 신선에 대해서 계속해서 강하게 동경하게끔 하였고 결코 신선이 영원히 죽지 않는 젊은 상태로써 보통의 인간으로서는 아무리 해도 결코 충족되지 않는 여러 가지 소원을 전부 실현 가능하게 할 라한다.
    인문/어학| 2006.11.07| 6페이지| 1,500원| 조회(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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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종교에서보는 창조, 마음, 악
    1. 창조1. 기독교기독교의 창조는 하나님에게 있다. 성경은 제일 첫머리 부분에서 우주에 대하여 가르치기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창1:1)고 하였다.하나님은 신이신데 그의 존재하심과 지혜의 권능과 거룩하심과 공의와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무한 무궁하시며, 불변하시다.”라고 밝히고 있고, 성결교회의 고백을 보면 “하나님은 우주에 유일무이하시니 유형무형의 만물을 한결 같이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며, 섭리하시며, 보호하신다. 진실하시고 영생하시어 권능과 지혜와 인자하심이 한이 없으시다. 이 하나님의 일체 안에 동일한 본질과 권능과 영생으로 되신 삼위(The Three Persons)가 있으시니 곧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감리교회의 견해는 “오직 유일하시고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는 육체, 지체, 정감이 없으시며, 무한한 힘과 지혜와 양선을 가지신 분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창조자, 보존자이시다. 이 하나님의 유일성 중에 본질, 힘, 영원성에 있어 동일한 3위 위격이 계시는 데 이는 곧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시다.”라고 하였다. 기독교에서는 바로 하나님만이 유일신이며 또한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개념으로 분명하게 내리고 있고 인간과 온 우주의 창조자이자 지배자임을 기독교에서 볼 수가 있다.2. 불교불교는 창조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히려 창조론을 배격한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를 모르지 때문이다. 불교에서의 진리의 관념은 창조론과 아주 다르기 때문이고 어쩌면 아예 서로 원수로까지 확대 해석할 수 있다. 그만큼 불교의 자아(깨달음)와, 하느님과의 창조론(사랑)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 불교에서의 진리는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출발함을 보고, 창조의 진리는 하느님의 발효력인 말씀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서로 맞추려고 하여도 맞을 수가 없다는 견해인 것이다. 그 예로 불교의 자아는 신을 인정하기 않는 무(無)이고 하느님의 말씀(창조)은 충만한 상(력을 얻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며, 실행과 건전한 윤리에 이르는 정로(正路)요, 행복과 번영으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지침이다.”라고 밝히고 있다.이와 같이 이슬람에서는 바로 유일신은 하나님(알라)뿐이며 오직 그분 외에는 어떤 신도 존재치 않는다는 유일성을 나타내며 그분만이 참 신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각각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유일신 알라를 신으로 정의하고 표현한 반면, 일반적인 정의에서는 다양한 개념으로서 나타내는 것을 보게 된다.4. 힌두교(브라하마)힌두교의 창조의 신이며 4개의 머리와 4개의 팔을 가지고 있다. 학문과 예술을 관장하고 체계적이며 질서를 창출 한다. 브라흐마는 비슈누 신의 배꼽에서 탄생되었다. 연꽃을 상징하는데 그것은 연꽃의 질서적인 창조와 확장을 뜻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옛날이야기가 있는데 브라흐마가 창조를 하려하는데 창조가 되질 않았다. 그래서 그의 스승인 나라야나(Narayana: 비슈누 신의 화신)에게 가서 창조가 되질 않는다고 하였다. 그의 스승은 명상을 하라고 하였다. 모든 창조는 고요에서 시작된다고 하였다. 그는 수많은 시간동안 명상을 하였지만 창조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스승은 더욱 깊이 몰입하라고 하였다. 더욱 고요의 시간을 가졌다. 어느 순간 창조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창조의 빅뱅(Big Bang)은 거대한 기쁨과 희열을 견디지 못하고 일어난 결과이다. 인도에는 브라흐마 신의 사원은 많지 않다. 비슈누 신의 사원안에 포함시켜 버렸는지도 모른다. 브라흐마 신은 인도의 최고 경전인 4개의 베다(Veda)인 , , , 베다를 상징한다. 그래서 네 머리와 몸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의 부인은 사라스와티(Saraswati) 여신이다. 창조주인 브라흐마는 어둠(타마스tamas), 기(라자스rajas), 선(사트바satva)이라는 세 가지 기본 요소로 이루어진 여러 종류의 몸을 가지고 있다. 브라흐마는 세상을 창조하고 아주 여러 차례에 걸쳐 세상을 재창조했다. 현재의 세상 이전에 얼마나 많은 세상이 있었하게 되었다. 그러자 '선조 영령들'이 태어났다. 이 영령들은 낮과 밤이 만나는 동틀녘과 해질녘에 나타난다. 그 다음 브라흐마는 세번째 몸을 벗어 던지고 네번째 몸을 취했다. 네번째 몸은 그의 마음에서 발산되는 기(氣)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의 마음에서 발산되는 생각들과 함께 사유하는 피조물, 인간이 창조되었다. 그때 브라흐마는 이 몸을 버렸고, 이 몸은 달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달빛 아래서 노래하고, 춤추기를 좋아한다.5. 유교유교는 천지개벽의 창조론과 만물생성의 진화론을 아울러 포섭하고 있다. 우주에는 대통일의 이치가 상대세계의 만물을 통일하여 주관한다. 우주는 하나의 기(氣)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생성변화작용에 의하여 하늘 땅과 만물이 생겨나왔는데 현상만물의 유전변화 속에는 태극(太極)의 원리가 있다. 따라서 물질이 있으면 반드시 법칙이 있으므로(有物有則) 자연법칙은 천리(天理)로 존중하여 순리로 하면 생존하고 역리로 하면 멸망한다는 논리를 정리하였다.6. 유대교구약성서를 성전으로 하는 유대인의 민족종교이다. 천지 만물의 창조자인 유일신(여호와)을 신봉하며 유대인을 신의 선민으로 자처하고 메시아의 지상천국 건설을 믿는 종교이다. BC 538년 바빌론의 포로로부터 해방된 뒤 예루살렘 신전을 중심으로 성립된 엄격한 율법적 일신교이다. 그들의 신 여호와는 유일, 절대의 신이며 창조주로서 전 인류를 지배하는 존재라 하였다.2. 마음1. 불교불교는 마음의 종교라 한다. 한국의 불자들은 ‘마음 깨쳐 성불한다.’거나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었다(일체유심조).’라는 말에 익숙하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불교를 심학(心學)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불교하면 불상에 절하고 향피우고, 부처님께 절하고 환생이나 내생 천국 지옥 이런 것만을 떠올리게 되는데 선불교 보면 그러한 것은 별로 중요시 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불교사상의 핵심요지는 깨달음인데 참나를 깨닫기 위한 방편으로 부처님께 절하고 향 사르고 그러는 것이다. 도는 첫걸음은 자신을 벌레보다 못한 존재고, 자기 마음 가운데 형성된 그 모두가 일단은 우리인 것이다. 우리들은 이 생각 저 생각이 들끓는 생각 가운데 매달려 살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굉장히 혼란하다고 그러는 것이다.2. 유교사람답게 사는 길을 밝히고, 인간본래의 의미를 찾아서 행복이 넘치는 대동세계를 건설하는 것을 이상으로 하는 유교의 진리는 공자(孔子)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공자는 인간의 본성이 어질다는 인(仁) 사상을 기초로 하여 인도주의를 주장하였다. 인은 사랑의 원리요, 착한 마음씨로서 모든 사람이 본디 타고난 고유한 인간성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늘 땅 사이의 만물 가운데서 가장 신령한 존재이고, 가정과 나라 및 세계를 경영하는 중심체이다. 또한 인간다운 삶은 바로 이 인간성을 밝혀서 지혜롭고 착하고 용기있는 인격을 갖추어 자연법칙에 투철한 하늘 땅의 도덕을 지키고, 사회질서에 철저한 인생의 윤리를 실천하여 행복한 가정, 밝은 사회,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는데서 인간의 본의(本義)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유교에서 보는 마음은 인간의 마음 본성자체는 선하다는 데에서부터 출발을 하게 된다.3. 기독교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 고후 4:18이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영속적인 가치를 지니는 모든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으며 영원하다고 단언한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하나님의 임재의 빛에 비추어볼 때 거의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은 남자의 힘이나 여자의 아름다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신다. 그분은 오직 우리의 마음 상태를 중요하게 보신다. 마음 이외에 인간의 다른 것들은 내적인 영원한 존재의 거처를 상징한다는 점에서만 중요하다. 삶의 문제는 영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삶의 본질이 영적이기 때문이다. 내적인 생명의 문제가 해결될 때 삶의 다른 문제들도 해결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당신의 외적인 문제를 바로잡는 데 투자하는 시간의 절반을 투자하여 당신의 마음을 바로 잡으라. 그러면 그고 있으며, 알라를 믿음으로써 마음의 평온이 찾아오고 마음의 안정이 되어 진다고 믿어오고 있다. 또한 이슬람 신앙의 요소를 보게 되면 다음의 셋으로 분석이 되는데 첫째는 ‘지(知)’인데, 이것은 알라의 계시를 잘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언(言)’인데, 마음으로 알고 또한 믿는 바를 말로 표현하는 일이다. 셋째는 ‘행(行)’인데, 이슬람교도로서의 의무를 열심히 실행하는 일이다.3. 악1. 기독교창세기 3장에 따르면 인간이 고통의 책임자로 등장한다. 사람이 마음을 잘못 먹고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행동을 했고, 그런 인간의 악에서 고통이라는 악이 비롯되었다. 악의 문제에서 인간이 중요한 문제로 등장한다. 다시 말해서 악은 하나님 책임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고통과 고난을 운명적으로 끼고 살도록 세상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창조 원리에 폭력과 악은 없었다. 원래는 보기에 좋은 아름다운 세상인데 사람이 마음을 잘못 먹어서 세상이 어지럽게 되었고, 치열한 생존경쟁과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고통스런 세상이 되었다. 여기서 하나님은 사람이 자유로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기대한 책임, 다시 말해서 인간에게 희망을 가진 책임이 있지만, 그 책임은 악을 도모했기 때문에 져야할 책임은 아니다. 그리하여 '좋으신 하나님'의 관념은 유지된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희망 때문에 악의 가능성은 우주 원리에 처음부터 내재해 있지만, 악의 필연성이 우주의 원리는 아니다. 악의 가능성은 자유를 위해 필연적이요, 따라서 악의 가능성은 인생의 영광이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에서 생긴 것이요, 악을 행할 수도 있는데 선을 행할 때 영광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사람의 마음이 부패하여 악의 가능성이 악의 필연성이 되었다. 리쾨르는 아우구스티누스를 따라 사람이 죄짓지 않고 살 가능성이 없음을 인정한다. 리쾨르가 헤겔보다 칸트를 더 좋아하는 것도 칸트가 인간의 근본악을 심각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악의 문제에서 책임자로 등장하면서 주체로 등장한다. 그다.
    인문/어학| 2006.10.27| 8페이지| 1,500원| 조회(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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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양오행설과 신선사상
    음양오행설과 신선사상1. 음과 양의 말뜻음양오행설은 도가의 사상이나 신선설과 나란히 도교사상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음양오행설이라고는 하지만 발생학적으로 볼 때에는 음양설과 오행설은 별도의 것이다. 오행설은 중국 고대의 세계관이면서 서로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따로 설명한다. 우선 도교와 음양설을 연결시켜 말해 보면 도교에서는 음의 기운을 배제하고 양의 기운을 숭상한다. 음양설에서는 짝수를 음, 홀수를 양으로 보는데 도교에서는 음 보다도 양, 그중에서도 양 중의 양이라고 하는 아홉이라는 숫자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를 들어 『운급칠첨』권2권에 보면 혼돈에서부터 한 기운이 생겨난 다음 99만억 99만 년이 흘러 세 기운이 화생했는데 세 기운의 사이는 각각99만악 99만 년 이었다라든가 하는 것과 또한 노자가 81년간 모태에 있었다는 설화나 노자가 태어나자마자 아홉 걸음을 걸었다는 것 등은 모두 숫자 아홈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음양설의 영향으로는 음을 북쪽과 죽음에 양을 남쪽과 삶에 보고, 도한 악신을 음에, 선신을 양에 귀속시키는 것이나, 혼백을 음양에 따라 구별하는 것도 모두 음양설의 영향이라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즉 도교의 음양설이 언제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는 없지만 음과양의 글자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다. 또한 음을 어두운 것, 양을 밝은 것으로 보는 설과 음지와 양지로 보는 설도 있다. 또한 토오도오아끼야스는 문자의 어원적 연구를 한사람으로써 원래 음은 습기가 차있고 가려져 있는 그늘의 언덕이라는 뜻인데 양과 대비하게 된 이후부터는 달이나 어둡게 막혀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되었다고 한다. 한편 양은 습기가 없고 태양빛이 비치는 약간 높고 평평한 땅의 의미로 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음과 양을 보게되면 어두움과 밝음이라는 의미가 원래의 뜻이었다고 바도 그다지 틀림이 없을 것 같다.2. 음양설의 기원과 전개음과 양은 이와 같은 의미로써 명확하게 사용했던 시기는 아직 확실히 자가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에 사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좌전에서는 음과양, 바람, 비, 어두움, 밝음을 합해서 하늘의 여섯 기운이라고 했다. 즉 이 좌전의 시기에는 음의 기운이 강하면 감기에 걸리고 양의 기운이 강하면 열병에 걸린다 하여서 추위와 더위의 근본이 되는 기운으로 생각을 했었다. 또한 하늘이 모든 것을 지배하면서 만물을 생성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음양을 만물을 만들어내는 힘을 가진 두 기운으로 간주했고 또한 이러한 만물과 여러 가지 현상이 존재하기 이전에 이미 두 기운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소위 말하는 음양설이 성립되었던 것 같다. 따라서 도가가 일원론에 의거한다면, 음양설은 이원론이 되고 음양은 단순히 대립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서로 보충하고 도와서 사물을 생성하는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음양설은 일반적으로 주역의 원리를) 형성하고 있다고 열려져 있다. 이와 같이 음양의 관념은 주역세서 받아들여진 이후로 고도로 발달하여 만물을 생기게 하는 힘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음양을 주장한 학파는 음양가인데)그들은 후에 오행을) 더해서 천도(天道)와 우주의 구조를 설명했다. 이것이 음양오행설이다. 이렇게 명암(明暗)의 의미 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음양을 만물을 생성, 발전시킨다는 개념으로까지 발전시킨 것은 음양가들이었다.3. 오행설의 기원과 발전오행설은 기원전 5세기 말에 생겨난 것으로 되어있다. 그 당시에 이미 목, 화, 토, 금, 수를 오행으로 보고 있었지만 그 이전에 이 다섯요소 보다 먼저 주장된 것으로서 오재(五材)라 해서 다섯가지의 재료가 있어 이것이 오행의 기초가 되었던 것 같다. 또한 인간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라는 관념으로 인식되었던 오행이 만물, 시간, 역사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을 가지게 된는 것은 음양가 중에서 특히 기원전 4세기 후반에 제후들 사이에서 인기를 모았던 추연(鄒衍)의)힘에 의한 것이었다. 또한 오행설의 발전은 시령(時令)이라는 관 들면 봄에는 무엇을 행해야하고 가을에는 무엇을 하지 않으면 정해진 규칙과 같은 것으로 이것에 어긋나면 정치에 까지도 어려워진다고 생각을 하였다.4. 상승설(相勝說)과 상생설(相生說)즉 추연은 이와같이 오행을 갖가지 사물과 상응시켜 무리하게 다섯 가지로 나누는 따위의 기초를 만드는 한편, 오행 상호간에는 순환의 관계가 있다는 법칙을 주장하였다. 즉 목(木)은 토(土)를 이기고, 금(金)은 목을, 화(火)는 금을, 수(水)는 화를, 토는 수를 각각 이긴다는 설이다. 즉 저마다 다른 것을 이긴다고 하기 때문에 이 설은 오행상승설(五行相勝說)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래서 이 원칙으로 4계절의 변화로부터 자연계와 인간계의 모든 것의 변화를 설명하려고 시도했었다. 즉 이러한 오행설은 새롭게 왕조를 일으키거나 혁명을 하는 겨우에 많이 쓰였다. 또한 기원전 1세기 말경이 되자 상승설과는 별도로 목은 화를 생(生)하게 하고, 화는 토를, 토는 금을, 금은 수를, 수는 목을 각각 생한다는 걸이 주창되기 시작하였는데 이 설은 생한다고 하는 것 때문에 오행상생설(五行相生說) 이리고 불리웠다.원래 음양오행설은 우주와 자연이 이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었지만, 점차로 인간의 행위나 생활이 우주와 자연의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식으로 바뀌어 설명되었다. 그 결과 음양오행설은 천계(天界)와 인간계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천인감응(天人感應)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다.5. 신선에 대한 동경우리가 선인(仙人)이라고 부르는 존재를 중국에서는 보통 신선이라고 부른다. 중국인들은 오랜 전국시대부터 20세기인 오늘날까지 끊이지 않고 신선사상을 대단히 칭송했으며, 불로불사를) 체득하여 하늘을 날 수 조차 있다는 신선에 대해 가없는 동경심을 계속해서 갖고 있었다. 또한 중국인들은 수, 복, 귀(貴), 강녕, 자식 많은 것 등등 이른바 다섯 가지 복 가운데 가장 먼저 수명을 들고 있는 것은 중국인들이 얼마나 장생하는 것을 바라는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즉 이러한으로서 앞으로 소개할 북경의 백운관(白雲觀)에서는 해방 전까지는 음력 1월19일 밤에 신선이 내려온다고 믿고 있었다. 단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 가는 알 수가 없지만 만일 한번만이라도 그 신선을 만날 수 있으면 병이 낫고 장생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날은 몹시 붐비곤 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중국인들이 기원전 4세기경부터 오늘날까지 신선에 대해 계속해서 강하게 동경해 왔던 것은 신선이 영원한 젊은 상태로 죽지 않는 것, 즉 불로불사인 것, 보통의 인간으로서는 아무리 해도 결코 충족되지 않는 여러 가지 소원을 전부 실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고 현세에서의 쾌락이 그래도 영원할 수 있다는 것 등이 그 원인이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6. 신선설의 기원제의 위왕과 선왕, 연의 소와 때 기원전 4세기 초부터 기원전 3세기 초까지 사람들을 보내어서 바다 가운데에 있는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州)라는 삼신산(三神山)을) 찾기 시작했다. 또한 이 삼신산에는 많은 신선들과 불사약이 있는데 그곳에 세워진 궁전은 모두 금은으로 만들어지고, 살고 있는 새나 동물은 모두 하얀색이라고 한다. 또한 멀리서 보면 구름과 같이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삼신산은 물 밑에 있는 것처럼 거꾸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을 잘 보려고 하면 바람이 불어와 배를 딴 곳으로 보내버리기 때문에 그곳에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제후는 하나도 없었다.7. 신선의 특성『포박자』)에서 보이는 바에 의하면 신선은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고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으며 더위나 추위도 전혀 느끼지 않고 얼굴이나 모습을 변하게 한다든지 모습을 은폐하는 등 여러 가지 능력과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죽지 않고 하늘에 올라 다닐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성이다. 또한『사기』나『초사』등 기원전2세기 이전의 저서에는 신선이 선(僊) 혹은 선인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사기』에는 선으로 하늘로 올라간 사람이라고 적혀 있고, 『미를 가졌던 것으로 보아 신선은 원래 ‘하늘을 나는 사람’ 이라는 의미를 가졌던 것 같다.또한 중국인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었다고 하는데 『예기』에 의하면 사람이 죽으면 지붕에 올라 죽은 사람의 이름을 불러서 돌아오게끔 했는데 그래도 소생하지 않으면 입에다 생쌀을 집어넣은 상태로서 시체를 온전히 보존하고 살아있을 때와 같이 식사를 받치고 제사를 지내었다고 한다. 즉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장생을 바랬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바람에 응해서 나타난 것이 신선설일 것이다. 즉 신선의 특성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 보다는 죽지 않는 것이 가장 첫 번째에 해당이 되어야 할 것이다. 즉 땅위에서 자신의 목숨이 한없이 연장되는 것, 이것이 신선설의 입장이다. 또한 일반인들에게도 그러했겠지만 당시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괘락을 만끽하고 있었던 제후들은 영원히 그 쾌락이 계속되는 것을 강하게 바라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8. 진시황과 신선사상신선설에 대한 진시황의 집착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곧 신 또는 신선에 마음을 두고 있었던 것 같은데 천하를 통일한 다음해 동쪽으로 순행할 때 태산(泰山)에 올라가 봉선을) 행했다. 그는 봉선을 행한 다음 해안지방을 여행하게 되는데, 가는 도중 명산, 대천, 팔신(八神)을 제사 지냈다고 한다. 아마 선문(羨門)등의 신선을 만나려 했던 것 같다. 또한 당시 삼신선에 신선이 있다라든가 또는 신선이 불사약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제왕에게 아뢴 병사들이 산동지방에 많이 있어서 진시황이 그들의 말을 믿은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서불 이하의 방사들에게 재계하게 한 뒤 동남, 동녀 수천명을 거느리고 삼신산에 불사약을 가지러 보냈지만, 그것을 가지고 돌아온 것은 아니기에 결국 진시황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즉 그들을 신선에게 보낸 것은 그 신선들이 가지고 있는 불사약을 얻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것은 당시의 신선설의 내용을 아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즉 당시에는 직접 신선이 지 않는
    인문/어학| 2006.09.29| 4페이지| 1,000원| 조회(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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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교]유교의수행과 이상적인 인간관(세계관)
    목 차Ⅰ. 유교(유학)의 소개 및 형성과정Ⅱ. 유교의 주요인물1. 공자 [孔子, BC 552~BC 479]2. 맹자 [孟子, BC 372?~BC 289?]Ⅲ. 유교의 이념Ⅳ. 유교 수양의 목적Ⅴ. 자기완성의 길- 수기지학(修己之學)Ⅵ. 유교수양의 방법Ⅶ. 유교의 이상적인 인간관 측면1. 군자(君子)와 소인(小人)2. 군자가 되는 길Ⅷ. 유교의 이상적인 세계관 측면Ⅸ. 결론Ⅹ. 참고문헌 및 웹사이트Ⅰ. 유교(유학)의 소개 및 형성과정유학은 동양철학에 속한다. 여기에서 ‘동양’이란 ‘서양’에 상대되는 개념이며, ‘철학’이란 ‘지혜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그러나 유학을 서양 철학적 논리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서양철학에서는 어떠한 가설이나 문제제기에 대해 해답을 이끌어내는 일련의 논증과정, 혹은 그 논리전개 자체를 철학이라고 부르고 있는 반면, 동양철학에서는 그러한 논리의 전개과정보다는 실제적인 체득이나 지식을 통한 인격완성에 학문의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즉 동양철학에는 자신의 몸으로 직접 체득한 것, 그것이 바로 참 진리이며, 그것만이 자신에게 진정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믿음이 깊이 배어 있는 것이다.즉 이러한 유교의 형성과정을 살펴보면 공자(孔子)에 의해 개창되어 한자문화권에서 수천 년 동안 주류를 이루었던 종교·철학사상이다. 공자는 스스로 “전술하기만 하고 창작하지 않았다”고 겸손하게 말하였지만, 그 이전의 문화를 집대성하고 체계화시킴으로써 유교의 기초를 정립하였다. 공자 이후 유교는 공자가 가르친 “옛 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알아내는” 방법에 따라 시대적 변화에 조응하여 그 가르침을 보완하는 역사를 이루게 된다.Ⅱ. 유교의 주요인물1. 공자 [孔子, BC 552~BC 479]중국 고대의 사상가·유교의 시조. 최고의 덕을 인이라고 보고,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 수양을 위해 부모와 연장자를 공손하게 모시는 효제의 실천을 가르치고, 이를 인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또한 공자는『논어』에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나는 타고난 본능적인 측은 지심의 결과 때문이다. 또한 맹자에 따르면 이런 본성은 하늘이 우리에게 부여한 것이라고 말을 하는데 인간은 이런 천도에 순응하고 복종하는 한에서만 오직 인간이라는 자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도덕 원리는 또한 천의 형이상학적 원리이기도 하다. 천이 부여한 인간의 본성은 모든 사물의 이치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인간의 성품은 완전할 뿐만 아니라 만물의 본질을 포함하는 일종의 소우주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본성의 극진한 계발을 통하여 천을 알 뿐만 아니라 천과 합일될 수 있다.Ⅲ. 유교의 이념유교의 사상가들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사회를 관찰하면서 이 세계가 어떠한 원리에 의해 규정되는가에 대해 많은 논의를 해왔다. 이는 특히 존재는 어떻게 생성되며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사물은 어떻게 운동하며 그 운동은 어떻게 가능한가? 라는 질문과 관계가 있는데, 이들은 자연의 변화 속에서 그 답을 찾고자 했으며, 그것을 도덕적 관점에서 규정하고자 했다. 자연 속에는 온갖 변화가 다 숨어 있지만 크게 보면 자연의 운동은 끊임없는 탄생의 과정이며, 더욱이 자연은 누구를 속이거나 게으름을 피우거나 욕심을 내는 법도 없다. 정직하고 때가 되면 어김없이 변화를 보여주며 아낌없이 주는 것이 자연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은 지극히 큰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고 지극히 성실하며 지극히 도덕적인 존재이다. 경험할 수 있는 자연 현상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거기에는 항상 도덕성이 숨어 있다. 그리고 변화하는 자연 현상 너머에 그 현상들을 초월해서 항상 도덕성이 존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연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구체적인 자연 현상은 그 본질을 반영하게 되어 있으므로 자연의 도덕성이야말로 모든 현상을 가능케 하는 근거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크게 보면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이며, 꼭 한 부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연과 인간의 구조는 일치하기 때문이다.Ⅳ. 유교 수양의 목적유교 수양의 목적은 자기 자신을 위한 수기(修己))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사랑하는데 있어서는 공자는 묵자의 겸애설이나 기독교와는 달리 차등적 사랑을 주장한다. 그러한 사랑이 자기 가족에서 이웃으로, 또 이웃에서 모르는 사람에게로 점자 확장시켜, 결국 사회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여 모든 이가 그 안에서 편안한 大同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을 하고 있다. 또한 인의 또 다른 표현인 愛人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규정을 짓고 있다.2. 의(義)의(義)는 즉 정의로움을 말하는 것이다. 즉 말 그대로 도덕적으로 행해야 할 바를 의미할 뿐만 더 나아가서는 어떤 상황에서 마땅히 취해야 할 바를 가르킨다. 맹자에서 간단한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어떤 이의 형수가 물에 빠졌다고 합시다. 이 사람은 형수의 손을 잡고 구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이렇게 물은 것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외간 여자의 손을 붙잡는 것은 당시의 규범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더구나 상대는 그냥 시정의 여자가 아니라 훨씬 거리를 두어야 하는 형의 아내이니 상황이 더 묘하게 되었다. 이 질문에 맹자는 조금도 멈칫하지 않고 그 상황에서의 의는, 다시 말해 시의 혹은 시중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것이지 외간 여자의 손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평상시의 규범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만일 외간 여자와는 손을 잡지 못한다는 규범 때문에 형수를 구하지 않는 다면, 이런 사람은 금수이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고 맹자는 주장을 하였다.3. 예(禮)예(禮)는 상대편에게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하는 것이며, 또한 군자가 내면적으로 仁을 닦으면서 항상 신경 써야 할 일은 그 인을 어떻게 표현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禮의 구체적인 모습으로써 인간 사이의 관계를 정형화 시키는 규범으로써 삼강오륜을 들 수가 있다.4. 삼강오륜(三綱五倫)유교(儒敎)의 도덕사상에서 기본이 되는 3가지의 강령(綱領)과 5가지의 인륜(人倫)을 말하는 것으로써, 삼강(三綱)에는 군위신강(君爲臣綱),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등 3가지가 있다. 心), 넷째 시비지심(是非之心)등이 있다. 먼저 측은지심은 남을 사랑하여 측은히 여기는 마음 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면 길을 가고 있는데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합니다. 그때,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엇~!! 저 아이를 구해야지" 하고 달려가게 될 것이다. 이때 우리는 측은지심 이라는 용어를 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좀 더 깊게 보자면, 측은지심은 사덕과의) 관계를 볼 때, 인(仁)의 단서가 됩니다. 다음으로 수오지심은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다. 그야말로 이것의 예는 쉽게 생각 할 수 있다. 불의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불의를 보면 아 저건 나쁜 거구나 하면서 느끼고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마음이다. 이것은 사덕과의 관계로 볼 때, 의(義)의 단서가 될 수 있다. 다음 사양지심은 서로 양보하고 공경하고 사양할 줄 아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사덕과의 관계로 보면, 예(禮)의 단서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시비지심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즉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판단 할 수 있는 능력을 한다. 이 시비지심은 사덕과의 관계로 볼 때 지(知)의 단서가 된다.6. 충(忠)충(忠)은 중(中)자 밑에 심(心)자를 붙인 것이다. 글자 모양에서 알 수 있듯이 마음속에 중심을 하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그 반대는 환(患)이다. 환(患)자는 중(中)자를 두 개 겹쳐 놓고 그 아래 심(心)자를 쓴 것이다. 즉 마음속에 중심이 둘이나 되어서 어느 것이 옳은지 모르기 때문에 근심하는 것이다. 이처럼 충은 무엇이 옳은지를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에 전혀 흔들림이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성실할 수 있고, 자기 자신을 제대로 다 발휘할 수 있다.7. 서(恕)서(恕)는 여(如)자 아래 심(心)자를 쓴다. 즉 남의 마음과 같아져 보는 것이다. 내가 배고픈데 저 사람은 얼마나 배고플까. 내가 힘든데 저 사람은 얼마나 힘들까. 이처럼 남의 입장을 생각해 보는 것이 서이다. 물론 이것은 이르지 않는 데가 없게 함으로 정의를 할 수가 있으며 치지는 격물한 다음에야 모든 사물의 이치를 알 수 있음을 말한다. 즉 격물치지에서 말하는 것은 사물(事物)의 이치(理致)를 구명하여 자기(自己)의 지식(知識)을 확고(確固)하게 한다 라고 풀이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 다음 성의는 선을 따르는 각 개인의 마음과 뜻을 성실히 하는 것이며, 정심은 마음을 올바르게 닦아 정한 위치에 두는 것을 말한다. 수신은 몸을 올바르게 닦는 일로 인격의 수양을 말하며, 제가는 집안을 바르게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다음 치국은 라를 바르게 다스리는 것을 말하며 마지막으로 평천하는 위에 대로하면 나라 전체가 평안해 진다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즉 삼강령 팔조목을 순서대로 보게 되면 자기의 몸과 마음을 선(善)의 방향으로 모든 일에 성실히 하면 개인과 가족, 나라 전체가 화평케 된다는 유교의 근본적인 사상이다.10.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자신을 올바르게 수양하면 가정을 잘 이끌 어 나갈 수 있고, 나아가, 나라를 바르게 다스릴 수 있으며, 또한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Ⅶ. 유교의 이상적인 인간관 측면1. 군자(君子)와 소인(小人)공자는 인간은 누구나 하늘로부터 인이라는 본성을 부여받았으나 후천적인 영향으로 어리석고 현명함에 차이가 생긴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는 생지(生知), 학지(學知) ,곤지(困知), 하우(下愚)라는 네 등급으로 나누었다. 생지는 태어나면서 총명함으로써 능히 문리를 자세리 관찰할 수 있는 것이고, 학지는 널리 학문을 닦고 언행과 예절을 바르게 하여 이치를 터득하는 것이고, 곤지는 애써 지식을 아는 것이고, 하우는 자포자기하고 공부하지 않는 경우이다. 이와 같은 등급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자강불식(自强不息))하여 노력하면 천인합일 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공자의 신념이다. 공자는 자신이 쉼 없이 진리를 탐구하며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데 열중하여 식음을 잊을 정도로, 순수하고 진지한 열정의 소유자라고 된다.
    인문/어학| 2006.09.29| 9페이지| 1,000원| 조회(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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