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성이란?세포형태학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구별은 전신의 세포 속에 있는 염색체의 차이에 있다. 사람의 염색체수 46개 중, 2개가 남녀 각각 다르며, 남성은 XY, 여성은 XX인 점이 생물학적인 차이점이다. 이것이 여성의 특유한 신체를 형성하는데, 외부적인 성징(性徵)을 제외하고 전신의 체제와 기능상으로 남녀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체격은 대략 남자가 16세, 여자는 14세가 되면 성적 발육이 완료되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비교하면 여성은 남성보다 약간 작고 체력은 남성에 비해 약 80 %밖에 안 된다. 지능은 체력과 같이 사회적 습관이나 교육 등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므로 구미 각국에서는 남성보다 다소 떨어지는 정도이고,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는 그 차가 크다. 그러나 이것은 천생, 즉 타고난 바탕의 문제가 아니어서 그 차는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은 역사적으로는 매우 뒤진다.평균수명은 어느 나라나 여자가 남자보다 약간(5∼6세) 높다. 출생하는 남녀 수는 여자의 출생 100에 대해 남자는 104∼106으로 남자 쪽이 다소 많다. 그러나 남자는 요절(夭折)하는 비율이 커서 통계적으로는 19세까지 과잉분이 사망하여 20∼40세까지는 남녀 같은 수가 되고 그보다 많아지면 남성의 사망이 증가하여 70∼80세 때의 남녀 생존비는 1:2가 된다. 1부1부제(一夫一婦制)는 사회적 습관이며 자연과학상의 법칙은 아니지만 이상에서와 같이 결혼적령기에는 남녀가 같은 수가 되므로 이것이 민주사회에서 1부1부제를 채택하게 된 기준이라 생각된다.이상은 체제 중 남녀에게 공통되는 것들에 대한 비교였으나, 여성에게만 있는 특유한 것의 하나는 월경과 임신이고, 그 결과로서의 출산과 육아도 역시 여성만의 능력이다. 따라서 노동기준법에 의해 생리휴가, 임신 ·출산휴가를 인정받고 있다. 초경(初經)은 평균 14세라는 통계가 있으나 점차 세계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초경과 함께 성적 발육은 완료되어 보다 성숙한 여성이 된다. 난소 중의 난모세포는 3∼4만이라고 하나, 초경부 문화권에서 행해진 많은 심리학적 조사들에 의하면, 능력과 적성 등에 의미를 부여할 만한 차이가 있다는 결과들이 보고되었다. 즉 남성은 신체의 움직임이 더 빠르고 유연하여, 공간지향성 ·기계에 대한 파악 ·산술적 추리에 더 뛰어나고, 여성은 손재주 ·기억력 ·수의 계산 ·말의 유창도 및 그 밖의 언어와 관련된 능력 등에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조사결과로써 타고난 능력이나 적성의 차이를 규정짓기는 어렵다. 왜냐 하면 이 조사방법을 보면 피조사자에게 질문을 하거나 문제를 풀게 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경우 필연적으로 ‘타고난 능력’뿐만 아니라 그가 겪은 경험들도 또한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때 여기에 나타난 차이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② 성격상의 차이 : 많은 조사 결과들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그 능력에서보다는 ‘삶에 대한 일반적 지향’에 더 크게 나타난다고 지적하였다. 올포트 버논(Allport-Vernon)의 가치조사에 의하면 남성은 이론적 ·경제적 ·정치적 가치에 더 높은 비중을 두는데, 이는 남성이 추상적 개념 ·실제적 성공 ·권력 등에 대한 지향이 여성보다 강함을 보여준다. 여성의 경우는 심미적 ·사회적 ·종교적 가치에 더 높은 비중을 두는 것으로 나타나, 이는 예술 ·종교 ·사회복지 등에 대한 지향이 남성보다 강함을 보여주는 것이다.베넷과 코헨은 남성적 접근과 여성적 접근의 차이를 다음과 같은 5가지 일반원칙으로 요약하였다.첫째, 남성의 사고는 여성의 사고보다 강도가 약하다.둘째, 남성의 사고는 자아지향적인 반면 여성의 사고는 환경지향적이다.셋째, 남성의 사고는 상벌이 자아의 적합 ·부적합의 결과로서 결정되리라고 예상하는 반면, 여성의 사고는 상벌이 환경의 우호성이나 적대성의 결과로써 결정되리라고 예상한다.넷째, 남성의 사고는 개인의 성취를 위한 욕망과 연결되어 있는 반면, 여성의 사고는 사회적 사랑이나 우정에 대한 욕망과 연결되어 있다.다섯째, 남성의 사고는 경쟁적 사회에 대한 악의적이고 적대적인 행동에 가치를 부여하라고 많은 사회학자들은 주장하고 있으며, 여성해방론자들이 이에 동조한다. 즉 대부분의 사회에서 어린 소녀들은 가족과 같이 살면서도 오빠나 남동생과는 다른 문화 속에서 키워지며 다른 대우를 받는다. 즉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장난감이 주어지며, 다른 놀이를 배우고, 많은 경우에 다르게 행동하도록 배운다.아버지와 어머니의 퍼서낼리티의 차이 자체도 어린이가 성역할의 개념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되며, 해당 문화권 내에서 각 성(性)에 기대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모델을 제공한다. 즉 어린이는 동일시(identification)를 통하여 성역할(sex role)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성역할의 이론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생물학적 요인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 문화적 ·사회적 요인으로 결정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여성해방론자들은 여성이 오늘날 왜 의존적 ·종속적 위치에 처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이론의 근거로 삼고 있다. 보부아르가 말했듯이, ‘여성은 여성으로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2. 한국사속에서의 여성남녀는 평등함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차별을 겪어 왔다. 이러한 차별은 교육의 문제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조선시대를 비롯한 대부분의 시대에 여성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더 차별이 심해졌던 것이다. 근대에 이르러서야 평등한 교육을 받게 되기 시작하면서 여성 스스로 인권 상승 운동 등 여러 운동을 펼쳐가며 남성과 비슷한 수준에 까지 이르렀다..(1) 조선조 시대의 여성교육1. 남녀교육의 불균등 (不均等)- 서민여성은 낫놓고 기역자도 몰라 -19세기말, 이 땅에 개화(開化)의 물결을 타고 처음으로 학교가 세워질 때까지 봉건사회의 여성교육은 미미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극히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의 서민여성들은 그야말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문맹들이었다. 이 여파(餘波)가 대명천지(大明天地) 근래까지 국민의 대표를 뽑는 선거에 작대기 기호로 하인들을 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도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한중록의 작가 혜경궁 홍씨도, 아홉 살에 세자빈(世子嬪)간택에 뽑힐 때까지 집에서 받은 교육은 삼촌댁(둘째 아버지의 부인이라 '仲母'라 칭했음) 신씨(申氏)에게서 배운 언문교육 뿐이었다. 그밖에 마음가짐, 기거 동작 등 덕행의 교육은 대가족주의의 가정 분위기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 채득한 것이다.혜경궁 홍씨는 삼간택(三揀擇)에 뽑히는 즉시, 별궁으로 들어가서, 50영리 동안, 비빈(妃嬪)으로서의 예비교육을 받았는데, 소학(小學)부터 배웠다고 했다. 그러면 '글공부'는 어떻게 되는가, 앞에서 말한 것도 그 뜻이지만, 이 경우 '글'이란 한시, 한문고전을 말한다. 한글은 글이 아니라, 언문(言文)이라 낮췄음은 다 아는 바와 같다. 이것을 가르치는 것은 까막눈이나 면하고, 문안 편지나 쓸 줄 알게 하는 목적이다. 이것은 조선조시대 아주 특출한 경우가 아니면 보통, 양반계급의 여성교육이었던 것이다.'소학을 보낼 것이니, 아비에게 배우라'(한중만록)시아버지인 영조는 그렇게 말했지만, 한 달하고도 20일이 넘는 기간동안, 세자빈 후보의 글공부를 맡은 사람은 친정 부숙(父叔)과 남형제들이었다. 한편, '훈서(訓書)'도 병행하여 배웠다고 하는데 이것은 규훈(閨訓)류로 어제(御製)라고 했으니, 영조가 군중전래의 「내훈」을 기초로 다시 엮은 것이다. 「한중록」의 유창한 문장력과 어려운 한자(漢字熟語)의 구사(驅使)는 작가의 넉넉한 학식과 교양을 엿보게 한다. 그가 글 가운데 인용한 중국역대 후비의 고사라든가, 우리 나라 국조사기(國朝史記)의 이야기는 혜경궁의 글공부가 다음해(열살) 입궁한 후에도 계속되어 경서(經書), 사기(史記)까지도 도달했음을 알려준다.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런 특수한 신분의 여인도 7,8세때 한글공부가 전부였다는 실토는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공주의 육대손(6代孫)에 할아버지가 판서(지금의 장관)이었던 집 딸이 이 정도라면 일반 여성들은 어떤 상단으로 배분된다.내외(內外法)이 심하던 시절, 점잖은 남성들의 모임에 끼어 들 수 있는 여인은 그들이 해어화(解語花)라고 반긴 기생뿐이다. 그녀들은 들은 풍월, 얻은 실력으로 시조작가에 기녀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고, 그 중에서 더욱 재주 있는 한 시에도 탁월한 실력을 보였다. 이매창은 전북 부안(扶安) 명기로 한 시집이 있다고 함은 앞에서 이미 거들었지만 훗날 당대의 유명한 시인묵객(詩人墨客)의 소실이 된 죽서(竹西), 운초(雲礎), 지재당(只在堂)등은 역시, 원래는 지방관청의 기생들이었다. 그 나머지, 한시작가 양반 여성들 중에는, 부마(駙馬)의 모친(영수각 서씨)도 있지만 지방에 사는 가난한 선비의 아내도 많다. 그래서 부친과 오라비 3형제가 모두 문과(文科)에 합격한 당대의 명문대가의 딸인 허난설헌같이 처음에는 딸이라고 제외했다가 그 천분을 인정하고 가르친 경우가 신사임당, 안동장씨등 몇몇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오라비들의 어깨너머로 익힌 실력들이다.사임당은 딸만 넷인 집안의 둘째로 태어나 가장 영특했으므로 진사(進士)시험에 합격한 아버지가 이 딸에게 기대를 걸고 글공부를 가르쳤다 하니(이은상 저 '사임당의 생애와 예술') 그의 한문실력은 출가전의 이미 성취한 것이다. 정일당 강씨(姜氏)는 출가한 후 가난한 생계를 위해 일만하는 남편을 보고 공부할 것을 권했다. 그래서 자기는 삯바느질을 하면서 남편의 글 읽는소리를 듣고 그야말로 어깨너머로 배운 실력이라 한다. 글자 그대로,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 총명함으로 공부하는 과정에서 남편을 앞 질렀고, 남편이 조금이라도 탐내는 기색을 보일 때면 '면학에 열심하라'는 충고의 글을 써 보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마침내 당대의 이름난 석학에게 남편을 보내서 사사(師事)시킴으로써 자신도 집에서 간접적으로 그 가르침을 남편을 통해 전달받았다고 본다.처음서부터 부형(父兄)으로부터 교육을 받았건, 어깨너머로 했건, 이같은 여성들은 보통 여성이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이같은 여류문인들이 50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40여명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