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역별 12 차 5 개년 규획의 종합평가차 례 도입 지역별 11 차 5 개년 규획 기간의 주요경제지표 비교 연평균 경제성장률 주민소득 연평균 증가율 지역별 12 차 5 개년 규획의 주요내용 경제성장 신흥전략산업육성 삶의 질 개선 요약 및 시사점1. 도입 ■ 중국의 31 개 성 ( 省 ) 급 지방정부는 2011 년 1~2 월 개별적으로 개최된 지방양회에서 12 차 5 개년 규획 요강 ( 이하 12•5 규획 ) 을 심의한 후 최종안 발표 . [ 지역별 12.5 규획 내용 작성 순서 ] 1. 도 입■ 11.5 규획 기간 중국 중앙정부의 연평균 경제성장률 목표는 7.5% 였으나 , 지역별로는 이보다 높은 목표치를 책정 , 초과 달성함 . 연평균 GRDP( 지역내총생산 ) 성장률 목표치 또는 실적치를 밝히지 않은 헤이룽장성과 산시성을 제외한 29 개 성 / 시의 11.5 규획기간 연평균 GRDP 성장률 목표치 평균은 10.1% 로 , 중앙 정부의 목표치인 7.5% 보다 높았음 . 또한 , 중국 전체의 11.5 규획 실제 GRDP 성장률이 11.2% 인 데 반해 , 29 개 성 / 시의 평균 GRDP 성장률은 13.2% 였으며 , 29 개 성 / 시 모두 목표치를 초과 달성했음 . 2 . 지역별 11 차 5 개년 규획 기간의 주요경제지표 비교 연평균 경제성장률■ 11.5 규획기간 동안 모든 지역이 주민소득 연평균 증가율 목표를 초과 달성했으며 , 특히 농촌주민소득과 닝사회족자치구의 성장이 두드러짐 . 집계 가능한 23 개 지역 데이터를 토대로 산출한 전체 평균 목표치는 도시주민소득이 7.7% 로 농촌주민소득의 6.8% 보다 0.9% 포인트 높았음 . 그러나 실적치의 경우 , 도시주민소득이 3.4% 포인트 초과 달성 한 데 반해 , 농촌주민소득은 4.1% 포인트 초과 달성 해 농촌주민의 소득증가율이 더 높았음 . 주민소득 연평균 증가율3. 지역별 12 차 5 개년 규획의 주요 내용■ 중앙정부의 「 12.5 규획 요강 ( 초안 ) 」 에서는 2011~15 년간 중국 국내총생산 (GDP) 연평균 성장률을 7% 로 하향 조정하였으나 , 지역별로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목표치를 책정하였음 . 중국 중앙정부는 연평균 경제성장률 목표를 11.5 규획 기간의 7.5% 에서 12.5 규획 기간에는 7% 로 하향 조정하였으나 , 지역별로는 상황에 따라 경제성장률 목표치 를 8~13% 까지 다양하게 책정하였음 . 경제성장[ 성별 12.5 규획기간 경제성장률 목표치 분포도 ] 1 0 % 미 만 1 0 % 1 0 % 이 상 (1 0 % 포 함 )■ 그러나 지역별 연평균 경제성장률 목표치가 중앙정부의 목표치보다 높다는 사실만으로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정책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단정 지울 수는 없음 . 헤이룽장성을 제외한 30 개 성 / 시 중에서 12.5 규획 기간 연평균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11.5 규획보다 낮추거나 같은 수준을 유지한 지역 이 18 개 에 달해 상향 조정한 지역 수보다 많음 .[ 성별 12.5 규획기간 경제성장률 목표치 분포도 ] 하 향 조 정 상 향 조 정 현 상 유 지■ 경제성장과 관련해 모든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경제발전방식의 전환 , 내수시장확대 , 지역균형발전 등을 다루고 있으나 , 구체적인 지역 이슈에는 차이가 있음 . 상대적으로 경제가 발달한 지역 에서는 대체로 경제구조조정이나 소득분배구조 개선 등 질적 발전 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 중 , 서부지역과 같이 미발달 지역 에서는 여전히 고속성장을 중시 함 .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성 / 시별로 지역 내 또는 지역간 경제권 형성계획을 마련하고 있음 .[ 지역별 12.5 규획 주요 과제 ] 인구증가억제 / 교통체증완화 서비스업 중심의 산업구조 조정 경제성장률 목표 하향조정 / 질적발전 추구 / 범 주강삼각주지역의 경제발전 추진 고속경제성장 중부 6 개성 : 고속성장 / 지역발전전략 추진 서부지역 : 인프라 건설 / 경제가 발달한 지역과의 원활한 경제교류 / 산업이전■ 중국정부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7 대 신흥전략산업을 강조함에 따라 모든 지역에서 관련 산업육성계획을 경쟁적으로 12.5 규획에 포함시켰음 . 중국중앙정부는 2010 년 10 월 「신흥전략산업 육성 및 발전에 관한 결정」을 발표 . 7 대 신흥전략산업에 대한 재정지원 , 세수혜택 , 투 · 융자 활성화 등을 약속한 바 있음 . 신흥정략산업육성지역별로 기본적으로 3 개 이상의 산업을 육성할 계획이며 , 특히 6 개 산업을 목표로 한 지역이 13 개로 가장 많고 , 5 개 이상의 산업을 육성할 계획인 지역이 전체 31 개 지역 중 약 75% 를 차지함 . 신에너지와 신소재 산업 첨단장비제조 그린카 산업 신에너지 그린카 차세대 IT 기술 신에너지 신소재산업[7 대 산업 선호도 ] 세부업종 : 태양광과 풍력에 관심 세부업종 모두에 고른 관심 세부업종 : 사물 인터넷 신형 디스플레이 업종 세부업종 : 항공기 해양자원 개발 세부업종 : 전기자동차 하이브리드자동차 분야■ 국가 12.5 규획의 핵심내용 중 하나인 민생안정에 대한 지역의 관심도 고조되면서 소득증대 목표치를 상향 조정하였음 국가 12..5 규획에서는 주민소득 연평균 성장률을 GDP 성장률과 같은 7% 로 책정하였으나 , 지역별로는 모두 이보다 높게 책정했음 . 《 지방의 주민소득 연평균 증가율 목표치 평균 변화 》 도시주민소득 농촌주민소득 11.5 규획 7.7% 12.5 규획 10.3% 11.5 규획 8.8% 12.5 규획 13.5% 삶의 질 개선지역별로는 8~15% 를 목표로 하고 있음 산시성 은 도시주민 1 인당가처분소득 연평균 성장률 목표를 14%, 농촌주민 1 인당 순소득 연평균 성장률 목표를 15% 로 정해 전체 지역 중 최고치 기록 권역별 로는 도시주민소득의 경우 동북지역 의 평균 목표치가 11.7% 로 가장 높고 , 농촌소득의 경우 서부지역 의 평균 목표치가 11.9% 로 가장 높았음 . 모든 지역에서 12.5 규획기간 주민소득 목표치를 11.5 규획기간보다 상향 조정하거나 동일한 수준을 유지하였음 . 베이징 , 허베이 , 광동성 등은 GRDP 성장률 목표치를 낮추고 , 주민소득 성장률 목표치를 높임으로써 경제성장과 주민소득증대가 비슷한 속도를 맞추도록 하고 있음 . 산둥 , 저장 , 푸지엔 , 산시성 등은 GRDP 성장률보다 주민소득 성장률을 더 높게 책정함 .특히 농촌주민 1 인당 순소득 연평균 성장률 목표치의 상향 조정이 두드러짐 . 이는 농가소득 증대를 통해 도 . 농간 소득격차를 완화하는 한편 , 농촌주민의 소비능력을 향상시켜 내수시장 확대에 활용할 의도로 볼 수 있음 . 또한 주민의 행복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지역별로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졌음 . 충칭시는 중국 최초로 지니계수를 규획에 포함시키면서 기존의 0.42 에서 0.35 까지 낮출 계획임 . 광둥시는 ‘ 행복한 광둥 ’ 을 캐치프레이즈로 걸고 주민행복지수에 기반한 공무원 평가체계를 개발 중이며 , 충칭시와 산둥성 등도 ‘ 행복 ’ 을 강조함 .4. 요약 및 시사점 [ 지역별 12.5 규획의 특징 ] 4 . 요약 및 시사점중앙정부의 12.5 규획 내용 대부분 반영 ■ 중국 중앙정부의 12.5 규획은 산업구조조정을 통한 경제의 안정적 성장과 민생안정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 각 권역 및 성 / 시의 12.5 규획 내용도 중앙정부의 기조를 전체적으로 따르고 있으나 , 실현가능 여부에 대해서는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음 . 지역별 12.5 규획에서는 중앙정부와 마찬가지로 산업구조조정 , 내수시장확대 , 지역균형발전 , 도시화 , 신흥전략산업의 육성 , 민생안정 , 대외개방확대 등의 내용을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음 .지역별 상황에 따른 탄력적 경제성장률 목표치 제시 ■ 경제성장의 경우 , 중국 연평균 GDP 성장률 목표치가 7% 인 데 반해 지역별로는 8~13% 범위에서 지역별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책정하고 있으므로 우리 정부 및 기업은 중앙정부의 정책기조와 함께 지역별 정부 정책 및 목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함지역의 경제성장 목표 달성률은 해당 지역 관료의 인사고과와도 직결되고 , 서부지역과 같이 경제의 양적 성장이 여전히 요구되는 지역도 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높은 목표치 책정현상은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으나 , 그 책정범위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을 것임 .7 대 신흥전략산업 육성 계획 포함 ■ 중국 중앙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7 대 신흥전략산업의 경우 , 모든 지역이 경쟁적으로 12.5 규획에 포함시키고 있으므로 이 지역에 진출을 모색하는 우리 기업은 옥석을 가리는 노력이 필요함 . 이들 전략산업은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고 실패의 위험도 높기 때문에 지역마다 자신의 강점을 활용해 해당 산업의 하위 업종으로 세분화시켜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만들지 않고 무작정 자본을 투입하면 오히려 전국적인 중복투자와 과잉생산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음 .주민소득 연평균 증가율 목표 상향조정 혹은 동일수준 유지 ■ 민생안정책의 일환인 소득증대의 경우 , 모든 지역이 국가 기초에 부응하고 있으며 , 이에 따라 새로운 소비영역과 농촌시장이 성할 가능성이 있음 . 모든 지역에서 주민소득 증가율 목표치를 11.5 규획기간보다 상향 조정하거나 동일한 수준을 유지 . 대부분 12.5 규획기간 동안 주민소득율을 2010 년 수준의 2 배로 늘릴 계획임 .4. 요약 및 시사점 토 론 3. 최근 폐막한 전인대에서 12.5 규획의 내용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토론해 봅시다 .감 사 합 니 다{nameOfApplication=Show}
한-미 FTA1. 한-미 FTA 협상 경과 및 일정 )?1989 美 국제무역위원회(USITC)의 보고서 '아태지역국가들과의 FTA 체결에 대한 검토 보고서'에서 미국에게 바람 직한 FTA 대상국가로 싱가폴, 한국, 대만을 꼽으면서 한-미 FTA 체결에 대한 논의 시작? 2001.1 제14차 한미 재계회의에서 양국은 BIT와 FTA의 조속한 체결 촉구? 2001.9 USTR 부대표, 한·미 FTA 체결에 관심 표명? 1999.6 주한 미국상공회의소(AMCHAM)는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한·미 FTA 체결을 촉구하는 서한을 송부함? 2000 미 상원의원인 보커스는 USITC에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도록 요청? 2003.8 "FTA 추친 로드맵" 마련 - 중장기적 과제로 미국 등 거대경제권과의 FTA추진을 상정? 2004.05 USTR 부대표 한-미 FTA 체결에 대한 관심 표명? 2004.11 APEC 계기 한-미 통상장관회담(칠레)에서 FTA 추진 가능성 점검을 위한 사전실무점검회의 개최 합의? 2005.02.03 한-미 FTA 사전실무점검회의 제 1차 회의 개최(서울)? 2005.03.28~29 한-미 FTA 사전실무점검회의 제 2차 회의 개최(워싱턴)? 2005.04.28~29 한-미 FTA 사전실무점검회의 제 3차 회의 개최 (워싱턴)? 2005.05.02 OECD 각료이사회 계기 한-미 통상장관회담 (파리)? 2005.06.03 APEC 계기 한-미 통상장관회담 (제주)? 2005.07.24~28 본부장 방미, 주요 상하원의원 및 업계 설득? 2005.09 미행정부, 한국 등 4개국을 FTA 우선협상대상국으로 선정정부 내부 회의, 외부전문가 자문, 설문 조사 등을 통 한 검토전문가 연구 : 정부 발주 연구영역 포함, 10여개의 국내전문가 연구 및 세미나, 공청회진행설문조사 : 04.11월 전경련(87%),12월 무역협회(75%) 및 한국갤럽(80%),'06.2월 중기협(80%)의 한-미 FTA에 대한 여론 조사 07 한미 FTA 비준동의안 17대 국회 제출? 2008.10.08 한미 FTA 비준동의안 18대 국회 제출? 2009.04.22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통과? 2010.11.30~12.03 한-미 FTA 통상장관 회의 개최 (메릴랜드주 콜럼비아시)- 12.3 추가협상 타결? 2011.02.10 한-미 FTA 추가협상 합의문서 서명 및 교환? 2011.05.04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철회(외교통상통일위원회)? 2011.06.03 번역오류 수정한 한·미 FTA 비준동의안 국무회의 의결 및 국회 제출? 2011.09.16 한·미 FTA 비준동의안 외통위 상정? 2011.10.03 한·미 FTA 이행법안의 미 의회 제출? 2011.10.05 미 하원 세입위 한·미 FTA 이행법안 통과? 2011.10.11 미 상원 재무위 한·미 FTA 이행법안 통과?2011.10.12 미 상·하원 본회의 한·미 FTA 이행법안 통과2. 한-미 FTA 출범 배경)□ 국가 간 교역 증대를 위한 FTA가 세계적으로 급격히 확산되는 추세- 다자간 무역협상인 WTO의 도하라운드가 난항을 겪으면서 지역무역협정(RTA), 특히 양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의 확 산이 가속화· 지리적 근접성이라는 물리적 기준을 초월하여 통상전략 상의 필요에 따라 전세계 국가와 FTA를 체결하는 경우가 증 가· 2006년 3월, WTO에 통보된 300개 이상의 지역무역협정 중 약 70%가 FTA□ 한국도 국제질서 변화에 따라 FTA를 적극 추진하는 방향으로 전략 전환- 동북아 경제허브 구상의 일환으로 노무현 정부 들어 FTA를 통상전략의 핵심으로 설정하고 적극 추진· 인접국뿐만 아니라 세계 주요국과 FTA를 전방위적으로 추진하여 명실상부한 동북아의 경제 허브로 부상한다는 구상□ 2006년 2월 3일 양국정부는 한미 FTA 협상을 추진할 것을 공식 선언- 미국이 요구해 오던 네 가지 규제항목의 축소 또는 폐지 요구를 한국정부가 전격 수용하면서 FTA 논의가 급진전(2006. 1. 24)· 네 가지 규제항목 :쇠고리스크 축소로 대외신인도를 상승시켜 외국인 투자 증대에 기여- IT, 자동차, 철강, 기계 등 자본·기술집약적 제품군의 대미 수출경쟁력이 더욱 강화될 전망· 수출 제품의 형태도 완제품과 함께 부품·소재로까지 확대- ‘소수상품 편중형’ 수출구조가 한미 FTA를 통해 개선될 것으로 기대· 의류, 섬유, 신발 등 가격경쟁력에서 열세를 보이던 일부 품목들이 관세 인하에 따라 경쟁력을 회복한미 FTA 체결에 따른 산업별 예상 파급 효과분야수출증대효과수입증대효과국내업계 피해농산물X◎◎제조업섬유/의류◎XX자동차△△X전자/정보통신O△X의약품X◎◎서비스금융X◎O교육X◎O법무/의료XOO주 : ◎ 영향이 매우 큼, O 영향이 있음, △ 영향이 미미, X 영향이 거의 없음□ 한국 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 미래 성장동력으로 부각되고 있는 서비스 산업의 혁신을 촉발· 유통산업이 개방을 통해 경쟁력 제고에 성공한 것처럼, 여타 서비스 분야에서도 구조조정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기 대· 서비스산업의 발전이 제조업 등 여타 산업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는 ‘확산효과’도 발생- 산벙ㅂ별 가치사슬 확대를 통해 제조업 부문의 국제분업구도로의 전환 및 편입이 확대· 미국의 첨단기술과 연계한 부품, 소재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통해 미래 성장동력 산업의 확대 발전- 문화 지식기반 서비스업 등에 대한 투자도 증가하여, 내수시장 기반 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 국내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이루어지는 경우 해외 소비가 내수로 전환되는 서비스 부분의 수입대체가 본격화될 전가□ 한미 FTA, 협상 출범을 통해 주요 통상 파트너를 한국과의 FTA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유발- 한미 FTA가 출범할 경우 한국시장에서 경쟁력 하락이 우려되는 국가들이 한국과 FTA 추진을 시도· 미국과의 FTA 협상 이후 호주, 중국, GCC 및 EU 등과의 ‘전방위적 FTA'협상이 시작- 일본과 같이 FTA 협상이 정체되어 있는 경우에도 한미 FTA가 영향을 미칠 수 있음□ 안보 위주의 한미 동맹을 경제급 등 시장규제 시스템의 폐지에 관심은 있으나 여타 서비스 부문에 비 해 우선순위는 낮음→ 의료서비스와 관련한 언어 및 문화의 차이, 전문의 이동의 불편성, 해외 의료소비의 상대적 경쟁력 등으로 의료부 문 서비스 개방은 여타 서비스 부문보다 상대적인 강도가 약할 것으로 전망□ 미국은 FTA를 통해 경제와 안보를 동시에 추구하는 통합전략을 추구-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은 안보와 경제의 ‘통합전략’ 형태를 유지· 동북아의 경우 중국의 부상과 영향력 증대를 견제하고자 하는 숨은 의도도 보유· 미국은 한국을 동북아 지역 내 영향력 확대를 위한 파트너로 인식- 미국은 경제적 이득은 물론 정치적 영향력 강화까지 추구하는 “포괄적이고 깊이 있는” FTA 협상을 추진4. 한-미 FTA의 추가협상)1) 배경 및 경과□ 2007년 6월 30일 서명된 한·미 FTA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요인으로 3년 5개월간 발효되지 않고 표류 중 이었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미국의 자동차산업은 GM과 크라이슬러가 부도 직전까지 갈 정도로 심각한 위기를 겪게 되었음.-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8년 대선 당시에는 한·미 FTA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었으나, 취임 이후 미국 근로자의 일 자리 창출을 위한 교역확대 등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한·미 FTA의 진전 방안을 모색함.- 그러나 미국 자동차 산업의 어려움과 한·미간 자동차 교역의 불균형 등을 이유로 업계·노조·의회로부터 자동차 관련 기 존 협정 내용에 대해 조정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받아 왔음.□ 지난 2010년 6월 26일 토론토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한·미 FTA의 진전을 위한 모멘텀을 마련함.- 미국 내에서는 엽계·노조·의회로부터 섬유·노동·환경·금융·투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수정 요구가 제기되었으 나, 미 행정부는 상기 협의에서 자동차와 쇠고기 수입에 국한하여 문제를 제기함- 이중 쇠고기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 측이 FTA와 한·미 FTA에 따른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이해관계가 단기적으로나마 일부 조정될 것으로 평가됨- 추가협상을 통해 양보한 자동차 분야의 경우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국내 글지의 대기업들이 주도하는 산업이나, 협 상을 통해 얻어낸 양돈 분야나 제약산업은 상대적으로 대 세계 경쟁력이 떨어지는 분야임.- 따라서 추가협상은 국내적으로 경쟁력 있는 분야의 잠재적인 이익을 그렇지 못한 분야에 양보한 결과로 평가될 수 있 음- 또한, 자동차부품의 경우 즉시 관세철폐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주공급업자인 중소기업들의 이익은 유지됨□ 한·미 FTA는 본질적으로 양국 간 경제동맹이지만 결과적으로 상호 경제이익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외교안보 동맹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한·미 FTA를 통해 양국이 경제공동체로서 맺어지면, 교역 및 투자가 활성화 될 경우 미국기업이나 소비자 입방에서 한국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됨.- 따라서 한반도의 외교안보적 안정성이 자연스럽게 미국기업들과 소비자의 이해관계의 일치하게 되므로 우리 입장에서 는 결과적으로 실질적인 추가 안보동맹을 추진한 것과 유사한 효과가 기대됨.5. 한-미 FTA 비준 절차6. 한-미 FTA 이행법안 미 의회 통과의 의미와 시사점)□ 2011년 10월 12일 한·미 FTA 이행법안이 공화·민주 양당의 초당적 지지를 받으며 미 의회를 통과했음- 2011년 10월 3일 오후 늦게 제출된 한·미 FTA 이행법안은 최단 처리과정을 거쳐 의회 회기일로 6일째 되는 10월 12일, 하원에서 찬성 278, 반대 151, 상원에서 찬성 83, 반대 15의 압도적 지지로 가결 처리됨- 이로써 한미 FTA는 지난 2007년 6월 30일 미 행정부가 서명한 이후 만 4년 3개월 만에 미 의회를 통과하게 되었음- 상·하원을 통과한 한·미 FTA 이행법안은 행정부로 이송되어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만 받으면 발효에 필요한 모든 미 국 내 조치가 완료됨□ 한·미 FTA 이행법안의 미 의회 통과는 한·미 FTA 추가 협상 함
의화단 운동2011300674 중국학과 1기 장은미1. 서론2. 본론가. 의화단의 기원과 구성1) 의화단의 기원2) 의화단의 구성나. 의화단운동1) 의화단운동의 배경2) 의화단운동의 전개과정3) 의화단운동의 결과3. 결론※ 참고문헌0. 서론변법자강운동이 실패로 끝난 후 열강의 중국 침략은 가속화 됐다. 완전한 식민지 상태라고 말할 순 없지만 그 당시 중국은 반 식민지화 된 것이다. 변법자강운동이 끝난 1898년 무술년 다음 해인 1899년 산동반동에서는 의화권에서 의화단으로 이름을 바꾼 한 단체가 1901년까지 청조를 상당한 혼란으로 빠뜨린다. 이 의화단이라는 단체는 손오공이나 관우 같은 소설 속 인물을 숭배하는 비밀 결사 조직으로 이들의 주장은 ‘쓰러져가는 청을 부축해서 일으켜 세우고, 서양 세력을 멸망 시킨다’는 ‘부청멸양’이었다. 위로부터 개혁인 양무운동과 변법자강운동이 실패로 끝난 후 다시 등장하게 된 일종의 민중 운동인 ‘의화단 운동’은 또 다른 민중운동인 ‘태평천국 운동’과 달리 ‘멸만흥한’이 아닌 ‘부청멸양’을 외치고 있어 외세의 중국 침략이 가속화됨에 따라 민중의 의식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따라서 본고에서는 의화단 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통해 그 당시 민중 의식이 변화하게 된 원인을 분석하고, 의화단 운동의 전개과정 및 결과를 통해 청과 의화단과의 관계 및 외세의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며, 이를 종합하여 결론에서는 의화단 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밝히고자 한다.1. 본론. 의화단의 기원과 조직0) 의화단의 기원의화단의 전신은 의화권 혹은 의화(합)문으로 그 이름은 1778년(건륭 43)의 관방문서 속에 나타나고 있다.) 당시는 산동 · 직예 · 하남 · 강소일대에 분포되어 있었으며 비밀결사의 하나인 백련교) 가운데 한파인 팔괘교(八卦敎).라는 설과 매화권(梅花券) 또는 신권(神券), 및 대도회로부터 왔다는 설 그리고 민간이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하여 만든 단련(團練)으로부터 왔다는 설이 있다. 의화단에 참가한 무리들은 농민 수공업자들이 많 많은 부녀자들도 참가하여 소녀들로 조직된 홍등조(紅燈照)와 중년 부녀자로 조직된 남등조(藍燈照), 과부들로 조직된 사과조(砂鍋照) 등이 있었다. 이 가운데 홍등조는 홍색의 옷을 입고 홍등을 들어 표시하였으며 부녀 중의 첨병이었다. )나) 의화단의 규율의화단은 비록 통일된 조직은 없었으나 기율은 오히려 엄격했다. 의화단은 일률적으로 단규(壇規)를 지켰다. 단 밖에서 활동할 때에는 스스로 식량을 준비하였으며 밤이면 거적을 깔고 누워 자는 고생을 할지라도 조금도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그러므로 일반 민중은 청의 군대는 무서워하여도 의화단은 무서워하지 않았다. 의화단은 투쟁의 정의로움과 엄격한 규율로 민심을 얻게 되어 대단히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다) 의화단의 신앙의화단의 신앙은 일치되지 못했다. 즉, 각 단(團) · 단(壇)은 통일되고 고정적인 신앙이 없었다. 단지 신령이 몸에 붙어있어 총알이나 칼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미신 · 사상만이 서로 비슷할 뿐이었다. 의화단이 신봉하는 신령도 가지각색이었는데 『봉신방(封神榜』,『삼국연의(三國演義』,『서유기(西遊記)』,『삼협오의(三俠五義))』등과 같은 소설속의 인물에서 취하였다. 그 내용도 천진하고 유치한 성숙되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의화단이 입는 의복도 각 단마다 어떤 단은 붉은 색을, 또 어떤 단은 노란색을 좋아하여 그 색으로 머리 수건을 통일하던지 요대를 통일하였다,)라) 의화단의 구호의화단의 구호는 의화권으로 있을 때는 ‘반청복명(反淸復明)’에 두었으나 청일전쟁이후의 열강의 침략이 가속화 되자 ‘부청멸양(扶淸滅洋)’의 구호로 바뀌게 됐다. 이와 같은 유형의 구호가 처음 나타난 것은 1898년 7월 사천에서 일어난 반기독교운동 때의 격문 속에서 ‘순청멸양(順淸滅洋)’이란 구호였다. 그리고 가을, 산동의 유명한 의화권 수령 조삼다(趙三多) 등이 관현(冠縣)에서 3,000명을 모아 일어났을 때 이와 비슷한 ‘조청멸양(助淸滅洋) 혹은 ‘부청멸양(扶淸滅洋)’의 기치를 걸면서 보편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 구호를 사용하민가를 철거하여야 하였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조상을 받드는 중국인들의 감정을 크게 해쳤다, 이에 산동인들은 철도부설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때가 의화단의 활동시기여서 그 규모는 더욱 확대되었다. 그리고 철도부설이 끝나면서 많은 중국인 운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자 이들도 여기에 가세하여 배외운동은 더욱 격렬해지기 시작하였다.)나) 기독교의 포교 확산황하의 범람원인 산동 북서부는 인구밀도가 다소 조밀한 곳으로 극심한 빈곤의 상태에 놓여 있었다. 신사는 농촌에 거의 살지 않았다. 계절적인(즉 농한기를 이용한) 직업이 된 도적질은 촌락간의 싸움에 불을 질렀다. 청조 정부와 신사는 지방사회의 통제력을 잃고 있었다. 1890년대에 공격적인 독일 선교사들은 부분적으로는 비기독교도와의 소송에서 신자를 옹호함으로써 더 많은 신도를 끌어보았다. 1898년 산동을 세력범위로서 장악한 이후 독일이 보인 오만한 태도는 기독교의 선교 사업이 내륙으로 확대되어가면서 오랫동안 축적된 반기독교 감정을 더욱 고양시켰다. 이 무렵 유럽 열강과 일본은 거듭해서 중국 정부를 굴복시키고 있었다. 반 선교사 폭동은 외국인이 청조에게 아주 무거운 벌칙들을 부과하게 했으므로, 청조는 지방관이 선교사나 교민을 적대시하지 못하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산동 농민들은 의화단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방어 했다.)다) 거듭되는 자연재해산동지역은 직예 · 하남지역과 함께 자연재해가 계속적으로 발생하였다. 자연재해는 19세기후반부터 화북지역에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었지만 특히 1898년에는 더욱 심하여 아사자만 16∼17만 명이나 되었으며 가옥을 비롯한 농경지 피해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이와 같은 환경은 산동 · 직예 · 하남 등지에서의 의화단의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하도록 하였다.)라) 민족주의의 등장서구 열강은 1898년과 1899년 동안 전반적인 제국주의) 팽창의 일환으로 중국에 대한 압력과 불법행위를 자행했다. 독일은 자국 선교사를 공격했다는 구실로 산동 성의 항구 청도(홍등은 ‘흥청멸양’의 구호로 의화단을 이끌고 평원현(平原縣)에서 교회를 파괴하고 교도들에게 해를 끼쳤다. 이에 대해 산동 순무) 육현은 의화단이 일으킨 이 사건을 무마시키려 했다. 육현의 태도에 불만을 품은 미국공사 콩거가 청에게 항의하여 육현은 사직하게 되었다. 서구 열강의 요청에 따라 육현의 자리는 원세개가 대신하게 됐다. 원세개는 세력을 분화시키면서 무력으로 의화단을 적극 평정하였다. 이에 의화단은 결국 그 활동범위를 직예로까지 옮기기 시작했다. 직예로 들어온 의화단은 지역을 확대해 가면서, 가는 곳마다 교회를 불태우고 교민을 살해하였으며 선교사를 징계하면서 철도와 전선 등 서양의 것을 파괴하였다. 의화단이 직예 지역으로 확대되면서 반제, 반기독교 운동이 거의 전국 각 지역에서 일어났다.)나) 전국에서의 호응 확대산서성은 직예의 바로 이웃에 있어 의화단 운동의 중심 구역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산서에서 의화단 활동은 산동 · 직예 지역의 의화단과 만나 신속하게 발전하였다. 하남성 및 내몽고에서 교회를 공격하고 선교사와 교인들을 징계하였다. 한편 산동 · 직예로 부터 육로와 해로로 영구(營口), 錦州(금주), 조양(朝陽) 등지로 오기 시작한 의화단은 점차 전 동북지역으로 파급되어 많은 청소년들이 권술을 익히고 있었다. 동북의 각처에 의화단이 확대되자 철도를 파괴하고 교회를 불태우는 등 반제운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동북 지역은 산동 · 직예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많아 그 영향을 더욱 깊게 받았다. 북방의 의화단 활동에 의하여 연해 지방과 양자강 연안의 지방에도 의화단의 선동 벽보가 붙어 의화단의 공격목표와 기율에 관하여 설명하였다. 이에 따라 남경 · 진강 · 서주 · 태주지역은 물론 호남 · 호북 지방 그리고 강서 절강 지방에서도 의화단의 충동에 의하여 반 기독교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렇게 의화단운동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크게 미쳐 거의 중국 대부분 지역에서 반기독교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다) 서태후의 열강에 대한 불만서태후는 무술정변으로 훈정(訓政)의 왔다. 이 사실은 서태후를 크게 고무시켜 수구파의 의견을 받아들여 열강에 대한 선전을 결심하게 되었다. 결국 6월 21일에 선전조서를 내려 30여 년이래 서양 열강이 가져온 나쁜 일을 박하면서 공사관을 포위 공격하도록 하였다.)라) 동남자보선언 (東南自保宣言)북경에서 서태후 정권이 열강에 대한 선전을 결정했을 때, 화중, 화남지방에서는 미묘한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곧 양광총독 이홍장, 양강총독 유곤일, 호광총독 장지동이 열강세력과 타협하여 이른바 동남호보(東南互保)를 체결하였다. 의화단 세력이 화북을 석권하였을 때 이들은 의화단을 비도(匪徒), 반도(叛徒)로 규정하여 정부에 강력히 탄압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런데 서태후로부터 선전포고의 지시를 받았다. 지방의 독무들은 지시에 따를 것인지 아니면 따르지 않을 것인지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당시 유곤일은 1900년 6월 22일에 지시를 받자마자 동남은 재부(財富)의 지역으로 국가 재원이 되는 지역이라 인식하여 만약에 이곳을 보전하면 대국에 전기가 있을 것이라 보고, 장지동에게 자기의 호보의사를 통보하였다. 장지동도 유곤일의 자보의견에 찬성하고 두 사람은 상의하여 지시를 따르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홍장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홍장 또한 선전지시를 내리기 하루 전인 6월 20일 총리아문으로 하여금 청 정부에게 ‘먼저 내란을 평정하고 다시 외국의 모욕을 갚자’는 건의를 한 바 있어서 처음부터 ‘의화단 토벌‘ 쪽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여기에 동의하고 중앙의 지시에 따를 수 없다며, 신속히 의화단을 해산하고 외국인들과 공사관을 보호하라고 요구하였다. 열강 연합군이 점차 북경을 조여 가는 상황에서 ’동남호보‘에 가담하는 지방당국은 더욱 늘어 처음의 강소, 강서, 안휘, 호남, 호북 외에도 절강, 산동, 복건, 광동 등이 참가했으며 사천, 섬서는 이에 동조하는 자세를 취하였다. 따라서 의화단이 강남지구로 발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고 이 지역의 사회경제가 안정될 수 있었다. 특히 이 지역에 대한 열강의 진)
2011300674 중국학과 장 은미 한국관광공사의 해외진출사례 - 2009 년 중국시장 진 출 을 중심으로 -서 론 - 선정이유 - 기업소개 본 론 - KNTO 외국관광객 유치증대사업 - KNTO 중국인관광객 유치증대사업 - KNTO 중국인관광객 유치증대사업 성과 결 론 목 차선정 이유기업 소개 한국관광공사KNTO 중국지사 소개 설립 연도 중국지사 1972 년 1 월 홍콩 선전 사무소 설치 1980 년 7 월 타이페이 선전사무소 설치 1984 년 타이페이 선전사무소 → 타이페이 지사로 개칭 1987 년 홍콩선전사무소 → 홍콩지사로 확대 개편 1994 년 베이징지사 설치 2002 년 상하이지사 설치 2006 년 칭다오 지사 설치 2007 년 광저우 지사 설치 2009 년 선양지사 설치주요사업 내용평가지표 외래관광객 유치 증대 노력 지표정의 외래관광객을 국내로 유치하기 위해 펼치는 한국관광상품 판매촉진활동 , 언론홍보활동 , 온라인마케팅활동 등 공사의 종합적인 해외마케팅활동 노력에 관하여 평가한다 . 세부 평가내용 ① 한국관광상품 판매촉진 및 지원 노력 ② 한국관광 홍보 강화 노력 ③ 온라인 관광정보 제공 노력 외래관광객 유치증대 사업 사업 활동 범주사업활동 평가 (1) 비계량 평가 (2) 계량 평가국내외 관광객 현황 2009 년 한국관광공사 경영실적 보고서2011 년 대한민국의 미래 , 관광산업에서 길을찾다글로벌 시장 개척 SWOT 분석 S W T OSWOT 분석을 통한 사업 내용중국인관광객 유치증대사업 국내 여행처럼 자유롭게 , 경쟁국 대비 선제적인 개별관광객 (FIT) 유치마케팅 실시 중국 해외여행시장이 급증하고 여행패턴이 선진화됨에 따라 해외 여행의 개별여행화도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됨 국가별 관광목적자 개별여행 비율 (’08 년 ) 추진배경추진 실적 중국 FIT 대상 비자 간소화 방안 건의 (2009 년 2 월 ) 및 법제화 실현 (7 월 ) ☞ 2010 년 7 월부터 중국인 관광객 비자 발급 대폭간소화 FIT 여행 목적지로서 한국관광 이미지 구축 ☞ 중국 3 대 인기여배우 리빙빙 활용 FIT 전용가이드북 제작 등 FIT 전용 쿠폰북 (16 천부 ) 및 T-Money 카드 (8 천매 ) 제작 배포 등 FIT 전용 한국관광상품 개발 일자 추진내용 3 월 50 여개 유력 여행사 대상 FIT 상품 개발 설명회 4 월 상품개발 팸투어 (4 월 , 7 월 ) 및 전문여행사와 MOU 체결 5 월 신규 FIT 상품 개발 및 온 오프라인 판촉사업 추진중국 FIT 상품유치 실적 및 향후 목표 FIT 전용 상품을 통해 총 25, 145 명 모객중국인관광객 유치증대사업 중국 방한상품 품질관리 노력 저가 덤핑상품으로 한국여행에 대한 만족도 하락 - 부정적 구전효과 발생 및 방한 재 방문율 감소 ☞ 추진전략 : 선도형 중고가 우수상품 개발 및 확산 중국시장 한국관광산업의 문제점 및 해소방안 도출연도별 사업추진 프로세서중고가 우수상품 소재개발 (1~2 월 ) : 47 개 신규소재 발굴 중저가 우수상품 개발 지침 수립 및 공유 (2 월 ) 상품개발 팸 투어 및 상품소재 평가회 등 워크숍 실시 (2~4 월 ) `09 년 사업 추진 실적 2009 년 총 52 개 상품 개발 , 6,407 명 모객 ( 전년 대비 300% 증가 )중국인 관광객 유치증대사업 성과 중국시장 고성장 추세 지속 , 5 년만에 2 배 성장 (`09 년 ) `09 년 중국인 134 만명 유치 달성 ( 전년대비 15% 증가 ) 중국 최대 온라인 여행사 씨트립 선정 ‘ 최고의 자유여행 목적지 상 ’ 수상 ☞ 수상배경 : KTO 의 활발한 FIT 유치 마케팅으로 중국내 자유여행 붐 조성에 기여‘ 아시아 쇼핑의 중심 , 홍콩에서 한국으로 ’, 동북아 쇼핑객 유치 극대화로 9 년만에 관광수지 적자에서 흑자 전환 - 관광수입 93.9 억불 , 관광수지 0.6 억불다양한 관광상품 개발 및 지속적 상품 품질관리 노력으로 방한 일본인 , 중국인 관광객 재방문 의사 상승 일본 : 73.8 → 77.3 점 중국 : 69.5 → 71.2 점결 론{nameOfApplication=Show}
한국관광공사 해외진출 사례- 2009년 중국시장을 중심으로 -2011300674중국학과 장은미Ⅰ. 머리말Ⅱ. 한국관광공사 소개1) 한국관광공사 정의2) 주요업무3) 조직도4) 주요사업 내용 및 실적 평가 방법Ⅲ. 외래 관광객 유치증대 사업1) 사업활동 범주2) 사업활동 평가3) 국내외 관광객 현황4) 글로벌 관광 시장 개척 SWOT 분석5) SWOT 분석을 통한 한국관광공사 2009년 사업내용Ⅳ. 중국인 관광객 유치증대 사업1) 국내여행처럼 자유롭게, 경쟁국 대비 선제적은 개별관광객(FIT) 유치 마케팅 실시2) 중국 방한상품 품질관리 노력Ⅴ. 중국인 관광객 유치증대 사업성과1) 중국시장 고성장 추세 지속2) 아시아 쇼핑의 중심, 홍콩에서 한국으로3) 중국인 관광객 재방문 의사 상승Ⅵ. 마무리Ⅰ. 머리말세계 각국은 자국을 대표하는 하나의 ‘여행정보회사’라고 할 수 있는 NTO를 갖고 있으며 NTO는 'National Tourist Office' 또는 ‘Natioanl Tourism Organization’의 약어로 ‘국가관광기구’ 또는 ‘정부관광기구’로 불린다. 전 세계의 모든 NTO들의 사업 목표는 외국인 관광객을 자국으로 유치하여 자국에 보다 많은 수익을 안겨다 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국을 효율적으로 해외에 널리 알리고 이미지를 좋게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전 세계 NTO들은 활발한 마케팅 활동을 벌이고 있다.우리나라의 NTO는 1962년 6월 26일 교통부 산하의 국영기업체로 설립된 '한국관광공사'로 해외 관광시장 개척 및 국민 관광 진흥 활동을 주 업무로 수행하는 정부투자기관이다. '한국관광공사'는 설립 이후 외래 관광객 유치 활동에 주력하여 관광 외화 수입 증대를 통한 국가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해 오고 있으며, 또한 80년대 이후부터는 국민의 여가 시간 및 소득 증대에 따라 증가하는 국민관광 수요에도 부응하기 위하여 국민 관광 진흥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균형 있는 관광산업 발전을 도모하는 등 '한국관광공사'는 한국관광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이에 본고에서는 관광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상품을 공기업인 한국관광공사가 어떻게 유형화 된 상품으로 만들어 해외시장에서 판로를 개척하는지를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관광시장을 중심으로 조사하고자 한다. 그러나 통계자료의 한계 때문에 2009년의 사업성과를 중심으로 한국관광공사의 중국시장 개척 사례와 성과를 분석하겠다.Ⅱ. 한국관광공사 소개1) 한국관광공사 정의한국관광공사의 주무부처는 문화체육관광부로 1962년 6월 26일 관광법규 내 의 한국관광공사법에 근거해 설립되었다.관광법규 내 한국관광 공사법 상에 의하면 한국관광공사의 목적은 관광 진 흥, 관광자원 개발, 관광산업의 연구개발 및 관광요원의 양성·훈련에 관한 사업을 수행하게 함으로써 국가경제 발전과 국민복지증진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2) 주요업무사업분야핵심활동국제관광진흥외국인 관광객 유치 선전, 국제 관광시장 조사 및 개척, 관광관련 국제협력 증진, 국제관광에 대한 지도 및 계몽국민관광진흥국민관광홍보, 국민관광동태조사, 국민관광에 대한 지도 및 계몽관광재원개발관광단지 조성 · 관리 · 운영 및 처분관광자원 및 관광시설 개발 선도 사업, 관광지 개발, 관광자원 조사관광산업의 연구·개발관광산업 정보수집·분석 및 연구, 관광산업 연구에 관한 용역 사업관광요원의 양성·훈련관광종사원에 대한 재교육, 관광관련 국가 자격시험 시행·관리출처: 손대한 외(2004), 『홈페이지 관광산업론』,p.486.3) 조직도자본금 324억 원의 한국관광공사는 2011년 1월 기준으로 544명의 임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4개 본부, 13개 실 · 뷰로 · 단, 36개 팀·센터, 5개 국내지사, 3개 지역 협력단, 15개국 27개 해외지사가 있다.▶ 중국지사 소개한국관광공사의 중화권 진출은 1972년 1월 홍콩선전사무소를 설치하면서 시작되었으며, 1980년 국제적으로 중국을 대표하고 있던 중화민국의 수도 타이페이에 역시 선전사무소를 설치하면서 시작되었다. 1984년에는 타이페이 선전사무소를 타이페이 지사로 개칭하고 확대 개편하였으며, 1987년 홍콩선전사문소 역시 늘어나는 관광 수요에 부응하고자 홍콩지사로 확대 개편 하였다.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관광공사의 본격적인 중국진칠이 시작되었으며, 1994년 베이징지사를 설치한 후 2000년대 꾸준히 지사를 늘리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의 지사 중 중국 지사가 7개로 가장 많은데 그 이유는 중국 시장의 규모가 크며 각 성(城)의 특징이 서로 달라 각각에 맞는 마케팅 활동을 효율적으로 전개하기 위한 것이다.3) 주요사업 내용 및 실적 평가 방법(1) 외래 관광객 유치증대 사업 :해외진흥활동을 통한 외래 관광객 실적 및 유치실적으로 평가(2) 컨벤션 진흥사업 : 국제회의 참가 외래객 유치실적으로 평가(3) 국내관광 활성화 사업 :관광정보서비스 제공, 국내관광 홍보활동의 효율성으로 평가(4) 관광경쟁력 강화 사업 : 관광자원컨설팅 실적으로 평가Ⅲ. 외래관광객 유치증대 사업1) 사업활동 범주2) 사업 활동 평가한국관광공사는 공기업으로서 매년 기획재정부의 경영실적평가를 받는다. 본 고에서 이 내용을 담는 이유는 무형의 상품인 관광 상품의 수익성을 평가 할 때의 기준을 설명하기 위함이다.아래의 표를 통해 한국관광공사의 외래 관광객 유치 증대 사업에서 외래 관광객 유치실적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1) 비계량적 평가(2) 계량적 평가3) 국내외 관광객 현황⇒ 방한외래관광객 입국자수 및 관광수입 모두 꾸준히 상승하고 있음을 위 자료는 보여주고 있다.⇒ 2000~2009년 방한 외래관광객 연평균 성장률은 4.4%이며, 참고로 2010년 방한 외래객 수는 880만 명으로 그 중 일본, 중국, 미국, 대만 등 상위 4개국이 전체의시 약 68%를 차지하고 있어 이들 시장의 의존도가 높은 상태이다.4) 글로벌 관광 시장 개척 SWOT 분석· 양호한 자금조달 능력(기업 신용평가 최고등급 AAA)· 광범위한 국내외 네트워크 구축· 글로벌 관광 마케팅 역량 보유· 글로벌 경기 침체로 경쟁 심화· 수익사업에 편중된 사업평가시스템· 시장 조사 및 분석기능 취약S·글로벌 경기 침체로 경쟁 심화·수익사업에 편중된 사업평가시스템·시장 조사 및 분석기능 취약WO· 새로운 패러다임의 관광수요 증가· 동아시아 관광시장의 증가· 국내외 개별여행객 증가·중앙정부 및 지자체의 관광산업개발의지 확대T· 남북관계의 불안정 요인 상존· 인접국의 외래 관광객 유치 경쟁 심화· 관광수용태세 미흡으로 인한 국제경쟁력 부족5) SWOT 분석을 통한 한국관광공사 2009년 사업내용⇒ 고객 니즈에 맞는 상품 개발과 글로벌 마케팅을 강화하려 했으며, 지방과의 균형발전을 위한 전략을 세웠으며, 특히 미래지향적 신규 관광상품 개발과 외국인 개별여행객 유치 확대 사업을 통해 관광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관광문화를 선도하는 관광공사의 의지가 엿보인다.Ⅳ. 중국인 관광객 유치증대 사업1) 국내여행처럼 자유롭게, 경쟁국 대비 선제적은 개별관광객(FIT) 유치 마케팅 실시(1) 추진배경 : 중국 해외 여행시장이 급증하고 여행패턴이 선진화됨에 따라 해외 여 행이 개별여행화도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추진하게 됨.(2) 추진실적· 중국 FIT 대상 비자 간소화 방안 건의(`09년 2월) 및 법제화 실현(7월)⇒ 2010년 7월부터 중국인 관광객 비자 발급 대폭 간소화·FIT 여행 목적지로서 한국관광 이미지 구축⇒ 중국 3대 인기여배우 리빙빙 활용 FIT 전용 가이드북 제작 등·FIT 전용 쿠폰북(16천부) 및 T-Money 카드(8천매) 제작 배포 등·FIT 전용 한국 관광 상품개발(3) 중국 FIT 상품유치 실적 및 향후 목표⇒ FIT 전용 상품을 통해 총 25, 145 명 모객2) 중국 방한상품 품질관리 노력(1) 추진배경 : 중국시장 한국관광산업의 문제점 및 해소방안 도출⇒ 저가 덤핑상품으로 한국여행에 대한 만족도 하락⇒ 부정적 구전효과 발생 및 방한 재방문율 감소(2) 추진전략 : 선도형 중고가 우수상품 개발 및 확산(3) 연도별 사업 추진 프로세서⇒ 2007년 12월 저가 방한상품 모니터링을 실시한 이후 관광품질 개선을 위해 노력했으며, 2008년 중국시장을 타겟으로한 최초의 중고가 상품을 개발했으며, 2009년 모니터링 분석 결과 2009년 1월 중고가 우수상품 개발지침을 재수립한 후 현재 해외지사 등을 통해 중 고가 우수상품 개발 및 판촉행사를 벌이고 있다.(4) 2009년 사업추진 실적· 중고가 우수상품 소재개발(1~2월) : 47개 신규소재 발굴· 중저가 우수상품 개발 지침 수립 및 공유 (2월)· 상품개발 팸 투어 및 상품소재· 평가회 등 워크숍 실시(2~4월)⇒ 2009년 총 52개 상품 개발, 6,407명 모객 (전년 대비 300% 증가)Ⅴ. 중국인 관광객 유치증대 사업성과1) 중국시장 고성장 추세 지속, 5년 만에 2배 성장(`09)· 2009년 중국인 134만명 유치 달성 (전년대비 15% 증가)· 중국 최대 온라인 여행사 씨트립 선정 ‘최고의 자유여행 목적지상’ 수상▶ 수상배경 : KTO의 활발한 FIT 유치 마케팅으로 중국 내 자유여행 붐 조성에 기여2) 아시아 쇼핑의 중심, 홍콩에서 한국으로 (`09)·동북아 쇼핑객 유치 극대화로 9년 만에 관광수지 적자에서 흑자 전환·관광수입 93.9억불, 관광수지 0.6억불3) 중국인 관광객 재방문 의사 상승· 다양한 관광 상품 개발 및 지속적 상품 품질관리 노력으로 방한 일본인, 중 국인 관광객 재방문 의사 상승·일본 : 73.8 → 77.3점·중국 : 69.5 → 71.2점Ⅵ. 마무리‘한국관광공사’는 지속적으로 국내 관광 매력을 재창출하고 있으며 지역사회, 문화 관광, 관광 환경, 해외 교류 등 각 분야에 걸쳐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공사의 주력 사업인 해외 관광객 유치는 공세적 마케팅 전개에 힘입어 2009년도 782만명에 이어 2010년 사상 최대인 외래 관광객 879만 명을 유치하는 성과를 올렸다. 2011년. 올해 역시 일본의 지진 피해 등 한국 관광산업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중국 관광객의 지속적인 한국 방문으로 전년도 대비 외래 관광객 수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