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雙花店(쌍화점)Ⅰ. 서론Ⅱ. 본론1. 원문과 현대어의 풀이1.1. 작품의 구성 1.2. 어석 연구 1.3. 여음의 기능2. 작자에 대한 설3. 삼장, 사룡과의 관계3.1. 서포 김만중이 파악한 「삼장」의 의미4. 주제에 대한 고찰Ⅲ. 결론Ⅰ.서론고려가요 쌍화점의 노래말이 실려 전하는 문헌은 『악장가사』, 『악학편고』, 『대악후보』이고, 급암의 소악부와 『고려사』 악지에는 ‘三藏’이라는 제목하에 쌍화점과 같은 내용의 가사가 한문으로 전하고 있으며, 『시용향악보』에는 쌍화점을 한시로 개작한 것으로 보이는 雙花曲이 실려 있다. 『악장가사』, 『악학편고』에는 쌍화점의 노래말만 적혀 있고, 『대악후보』에는 노래말과 함께 악보도 함께 실려 있다. 『악장가사』와 『악학편고』의 가사는 거의 유사하고, 『대악후보』에는 악보와 함께 1절은 온전하게 전하나 2, 3절은 부분만이 전하며 4절은 전하지 않는다.?高麗史? 에 나란히 실려 함께 언급되고 있는 ?三藏?과 ?蛇龍? 가운데 ?삼장?은 그것이 ?樂章歌詞?에 실려 있는 ?雙花店?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일찍부터 많은 논자들에 의해서 관심의 표적이 되어 왔으나, ?사룡?에 대해서는 송정헌,) 최동국,) 최용수,) 조윤미,) 김석회) 등에 의하여 간헐적으로 논의되었을 뿐 대부분은 시조에 유사한 내용의 작품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정도에 그쳐왔다. ?사룡?을 주목한 논자들 가운데서도 송정헌, 최동국, 최용수 등은 ?사룡? 자체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의미를 탐색해 나가기보다는 ?삼장?에 대한 기존 논의를 보완하는 선에서 소극적으로 언급할 뿐이었으며, 조윤미, 김석회에 이르러서야 ?사룡?은 비로소 논의의 중심으로 부각되고 있다.본고에서는 과 의 관련 문제를 검토해보고, 작자 및 각양각색으로 논란이 되어온 내용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보고자 한다.Ⅱ.본론1. 원문과 현대어 풀이)『악학편고이다店삿기광대나도자라가리라긔잔??티 ?거츠니업다2연삼장사브를혀라그뎔社主뎔삿기上座3연드레우물므를길라우믈龍우믈드레박4연술?집수를사라그짓아비집싀구박① A에 B하러 가고신?② C가 D하여이다.③ 이 말?미 이 E밧긔 나명들명㉠다로러거디러④죠고맛간 F 네 마리라 호리라㉡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⑤ 긔 자리예 G하리라㉢위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⑥ H같은 곳이 없다.1.2. 어석 연구▶A퇴계집』에는 쌍화점을 ‘霜花店’이라 표기했다. 그러므로 한자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닌 단순한 音借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양주동, 박병채, 려증동- 쌍화를 饅頭라고 보고, 쌍화점을 만두가게라고 보았다.최철- 삿기광대라는 말과 관련하여 쌍화점을 광대들의 연희와 관계되는 도구를 파는 상점으로 보았다.김대행- 몽고쪽의 만두를 파는 집이고 아직도 제주도에는 ‘상왜떡’이라는 이름의 빵이 있는 것으로 보아 널리 보편화되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C광대?외국인?중?君王?술집주인을 지칭함으로써 사회 전계층을 질서있게 망라하였다는 견해가 있으며 이 인물들이 지니는 의미론적 영역 내지는 상징성을 지나치게 확대해서 나온 것이 당시 외국군대(몽고)의 횡포 기록이며 불교계의 타락상이며, 특히 충렬왕으로 지목되는 임금의 타락상이었다. 이와는 달리 단순히 ‘외국인?중?龍?술장사’ 정도의 뜻으로 보기도 한다.▶F삿기 광대, 삿기 상좌, 두레박, 싀구박 앞에 ‘죠고맛간’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음을 간과하기 쉽다. 이 수식어는 노래 전반부 손목을 잡은 사건에서 화자의 심리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다. A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소문을 뒤집어 씌워도 별탈이 없을 것이라는 화자의 심리상태를 대변하는 것이다.광대나 上座 앞에 ‘삿기’라는 말이 붙어 있음은 바로 이들을 卑小하게 보는 징표인 것이며, 이 모두들 앞에 ‘죠고맛간’이 붙어 있음은 더욱 卑小化를 확실하게 해준다고 하겠다.▶H쌍화점 전체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대목이다. 이를 ‘?거츨’에 대한 해석에 따라 나누어 보겠다.양주동)상?석천보?석천경의 합작이거나 그중 어느 한 사람의 작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밝혀 알 수 있었다고 하였고, 김명호도 후세 儒者(유자)들에 의해 ‘新聲淫詞(신성음사)로 규탄받은 이러한 노래들은 왕 측근의 嬖幸(폐행)들에 의해 창작된 것으로 본다고 하였다.귀족계급소작설(이명구)- 작자가 귀족사회에 속한다고 하였으므로 행신배소작설과 동궤를 이루고 있다.吳潛소작설(려증동), 이능우))- 려증동은 쌍화점가는 항간유행속욕 아닌 新聲으로 충렬왕의 행신오잠의 소작이었다라고 하였다. 이능우는 쌍화점의 신성을 가르칠 오잠의 인물은 아래와 같이 못되어 王父子를 이간시킨, 심히 姦?卑賤(간녕비천)한 바가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吳潛所編說(조윤제)-『고려사』열전조에 의거하여 오잠 등의 所編歌謠라 하였다.이 밖에도 구전 민요인 쌍화점이 오잠 등을 통하여 궁중에 들어가 刪改(산개)되었을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였고), 무속과 관련된 것으로 개인작이든 민중의 작이든 문제 삼지 않는다고 하기도 하였다). 이상의 說은 모두 과 을 同歌로 보고 민요, 채집된 속요, 행신배창작, 개인 창작(오잠), 개인 刪改 등으로 다루어 왔다.3. 삼장, 사룡과의 관계은 『고려사』악지 속악조에 29번째 나오는 속악명인데, 이는 의 제 2연을 한역한 것이라 하여 과 을 同歌로 취급해 왔다. 양주동의 『여요전주』조에 과 을 동일시한 이후, 줄곧 그렇게 다루어 왔다. 그러나 박준규는 『고려사』악지 속악의 題名 순서 및 기록 방법을 자세히 분석하여 이 의 解詩가 아니라 원래 한어체로 존재한 것이라 하였으나, 이후에도 박준규의 주장과는 상관없이 양자를 동일 작품으로 취급해 왔다. 의 原詞는 俚語體냐 漢語體냐는 확실히 알 길이 없으나 당대의 기록 당시에는 한어체로 기록한 것이 증명되면 ?의 관계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첫째, 『고려사』악지 속악의 31편중 ?은 俚語體 24편에 들어가지 않는 점,둘째, 閔思平(1295-1359)의 소악부를 보더라도 이 아니라 의 내용이 7언 절구의 漢詩로 되어 있는 점,셋째, 『고려사』편찬자한 대(隊)를 만들어 남장(男粧)이라 일컫고 이 노래들을 교열(敎閱)하였다. 뭇 소인들과 더불어 밤낮으로 가무(歌舞)하며 무람없이 하여 더이상 군신(君臣)의 예(禮)가 없었고, 뒷바라지하고 하사(下賜)하는 비용은 이루다 기록할 수 없었다.[右二歌 忠烈王朝所作 王狎群小 好宴樂 倖臣吳祈金元祥 內僚石天輔天卿等 務以聲色容悅 以管絃房太樂才人爲不足 遣倖臣諸道 選官妓有姿色技藝者 又選城中官婢及女巫善歌舞者 籍置宮中 衣羅綺 戴馬종笠 別作一隊 稱爲男粧 敎閱此歌 與群小日夜歌舞褻慢 無復君臣之禮 供億賜與之費 不可勝記])?서포집(西浦集)?에는 위에 인용한 두 작품의 의미를 부연하여 지었다고 밝히고 있는 ?악부(樂府)? 2수가 실려 있다. ?서포집?의 해당 부분을 우리말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악부(樂府)??삼장(三藏)?과 ?유사(有蛇)? 두 노래는 고려(高麗) 충렬왕 때에 나왔다. 그 말이 비록 속되긴 하나 자못 예스런 뜻이 있다. 이제 문득 비기어 저으기 부연하여 이르기를,[三藏有蛇二歌 出於高麗忠烈王時 其語雖俚 而殊有古意 今輒擬而稍演之云]君演三藏經 그대는 삼장(三藏)의 경문(經文)을 연의(演義)하고妾散諸天花 첩은 여러 천화(天花)를 뿌렸노라天花요亂殊未央) 천화(天花)를 흩뿌리기 아직도 한창인데井上梧桐啼早鴉 우물가 오동나무엔 이른 까마귀 울도다不愁外人說長短 바깥 사람들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건 걱정하지 않으나傳茶沙彌是一家 차 나르던 사미(沙彌)는 한 집안이로다?기이(其二)?玉石無定質 옥인가 돌인가는 정한 바탕 없고姸치無正色 고운가 미운가는 바른 빛깔 없도다玉石在人口 옥인가 돌인가는 사람의 입에 달려 있고姸치在君目 고운가 미운가는 그대의 눈에 달렸도다日月本光明 해와 달이야 본디 빛이 밝으나讒言自成膜 헐뜯는 말이 스스로 막(膜)을 이루도다)여기서 일차적으로 주목해 보아야 할 대목은 김만중이 ?삼장?과 ?사룡?을 가리켜, “그 말이 비록 속되긴 하나 자못 예스런 뜻이 있다[其語雖俚 而殊有古意]”고 언급한 부분이다. 김만중은 자신이 파악한 이 ‘예스런 뜻[古意]’에 따라 ?악부? 2수를 지 소지가 많을 것이 틀림없지만 조금도 부끄러울 것 없는 떳떳한 행위였다는 것이다. 제2수의 주제는 “해와 달이야 본디 빛이 밝으나 / 헐뜯는 말이 스스로 막(膜)을 이루도다[日月本光明 / 讒言自成膜]”에 드러나 있다. 즉 옥이 돌로 취급되기도 하고 고운 이가 미운 이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다 헐뜯는 말이 막을 이루어 밝은 판단력을 흐려 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제1수에서나 제2수에서 한결같이 환기시키고 있는 바는 소문이나 참언이 진실을 가리고 있다는 것이다.김만중이 ?삼장?의 의미를 ?사룡?과의 공통 문맥 속에서 파악하고 있었음은 그의 ?악부? 제1수가 부연하고 있는 의미를 분석해 볼 때 좀더 분명히 드러난다. ?삼장?과 ?악부? 제1수를 비교해 보면 ?삼장?의 제1?2구 “삼장사(三藏寺)에 향(香)을 피우러 갔더니 / 사주(社主)가 내 손을 잡더이다[三藏寺裡燒香去 / 有社主兮執余手]”는 “그대는 삼장(三藏)의 경문(經文)을 연의(演義)하고 / 첩은 여러 천화(天花)를 뿌렸노라 / 천화(天花)를 흩뿌리기 아직도 한창인데 / 우물가 오동나무엔 이른 까마귀 울도다[君演三藏經 / 妾散諸天花 / 天花요亂殊未央 / 井上梧桐啼早鴉]”와 대응되고, 제3?4구 “만일에 이 말이 절 밖으로 나가면 / 상좌(上座)여 이는 네 말이라 하리라[此言兮出寺外 / 謂上座兮是汝語]”는 “바깥 사람들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건 걱정하지 않으나 / 차 나르던 사미(沙彌)는 한 집안이로다 [不愁外人說長短 / 傳茶沙彌是一家]”와 대응된다. 이렇게 대응시켜 보았을 때 ?삼장?의 제3?4구는 부연되는 과정에서 그다지 큰 내용 변개가 일어나지 않았으나 제1?2구는 아주 큰 내용 변개가 일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삼장? 제1?2구에서는 삼장사(三藏寺)의 사주(社主)가 나의 손을 잡은 행위가 제시되고 있는데 반해서 이를 부연한 ?악부? 제1수에서는 각자 삼장(三藏)의 경문(經文)을 연의(演義)하거나 여러 천화(天花)를 뿌리며 밤을 새운 상황이 제시되어 있는 것이다. ?삼장?에서처럼 삼장사장
靜觀一禪論1. 정관일선의 생평일선(一禪) 1533(중종28)∼1608(선조41). 조선 중기의 선사(禪師), 호는 정관(靜觀). 성은 곽씨(郭氏). 연산(連山) 출신. 서산문중(西山門中)의 4대파 중의 하나인 정관파(靜觀派)의 창시자이다. 15세에 출가하여 선운(禪雲)에게 《법화경》을 배우고 그의 법화사상(法華思想)을 전수하였다. 그 뒤 법화 신앙에 심취되어 《법화경》을 부지런히 독송하였고 그 공덕의 뛰어남을 역설하는 한편, 시주를 얻어 3,000권이 종이를 마련하고 1,000부의 경전을 인출하여 보시(布施)하는 등 경전 유포에 큰 공훈을 남겼다. 한 때 속리산 법주사(法住寺)에 머물렀고, 만년에 휴정(休靜)의 강석에 참학(參學)하여 그의 심인(心印)을 이어 받았다. 1608년 가을에 병을 얻어 덕유산 백련사(白蓮社)에서 입적하였다. 그는 임진왜란 중에 승려들이 왜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의승군(義僧軍)으로 나가 전쟁에 참여함을 보고 승단(僧團)의 장래를 깊이 걱정하였고, 전쟁에 참여하는 일이 승려의 본분인가에 대하여 개탄하였다. 또한 유정(惟政)에게 글을 보내어 전쟁이 끝났으니 한시 바삐 관복을 벗고 승가(僧家)의 본분을 다할 것을 권하기도 하였다. 철저한 수도승으로서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경전을 인출하거나 왜란에 휘말려 있는 승단을 깊이 걱정한 점은 또 다른 현실 참여를 나타내고 있다. 저서로는 《정관집》1권이 있다.2. 山寺에서의 淸淨 修道壬亂基 승려들의 현실 대응 양상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변된다. 우선은 승병을 조직하여 직접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산중에 남아 교단을 지키는 일을 수행하는 승려도 필요했다. 임란 반발 시 靜觀一禪의 나이는 60세로 현실적으로 직접 전장에 나가기는 힘들었다. 더구나 그는 평생을 淸淨 求道의 수행 생활로 일관한 인물이다. 자연 임란 대응 양상은 산중에서의 활동으로 한정되었다. 이러한 점은 그들의 사상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詩文을 통해 볼 때, 그의 삶은 전반적으로 속세와는 단절된 모습으로 그려져 西人, 그리고 南人과 北人이라는 당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다. 그로 인한 고통은 백성들을 더욱 힘들게 하였다.당시 불교계를 바라보는 일선의 시각은 냉정하다. 종군한 승려들 사이에서는 급속한 세속화 경향이 나타났고, 그나마 山寺에 남은 승려들 또한 수행보다는 방관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급급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끊임없는 자기 수행을 통한 敎團의 자정과 함께, 이 땅의 衆生을 위해 佛法을 호소하는 길을 방편으로 삼았다.구체적인 모습으로 우선 祈禱가 있었다. 자비로운 부처님의 힘으로 患亂으로 인해 고통받는 백성들과 이미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極樂往生을 비는 동시에, 나라가 처한 위기 상황을 부처님의 설법으로 극복하게 되기를 간절히 비는 것이다. 여기에 종교인으로서의 사회적 임무가 있는 것이다. 그들의 정신적 상처를 어루만져 주면서, 안정을 되찾아 함께 佛國土를 향해 가는 것, 그것이 바로 衆生 救濟인 것이다. 또한 그는 佛像 造成과 經典 刊行, 寺刹 佛事 등 가시적인 방편을 통해 환란을 극복하고자 했다.일선은 淸遠, 圓慧, 天機 등의 스님들과 여러 선비들의 힘을 모아 『法華經』과 『楞嚴經』등 삼천 여부의 경전과, 阿彌陀佛, 觀世音佛, 大勢至佛의 상을 만들었다.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볼 때 이는 엄청남 재력과 노동력이 투여되는 작업이었다. 이에 일선은 勸詞를 지어 대중의 보시를 부탁하고 있다. 이 땅의 백성들이 경전을 읽으면서, 불상에 절하면서, 또한 사찰을 찾으며 그 법력을 의지하여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이 이러한 작업들을 가능하게 했다.그는 이러한 활동 외에도 종교인으로서 본분을 지키고, 제자들을 양성하는 것을 가장 큰 임무로 여겼다. 일선은 道伴인 四溟惟政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종교인으로서의 본분이 무엇인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들으니 지금 왜적은 물러갔고 큰공을 이미 이루었으므로 대궐에 나아가 사퇴하기를 청하시려한다 합니다.……그러나 무엇 때문에 꼭 그렇게 해야 합니까. 아뢰지 않고 떠나 버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만일 아뢴다면 반드시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이러한 신념으로 일선은 題號詩, 示法詩를 통해 제자 양성에 주력했다{贈盲聾禪老맹롱선사에게 주다贈玄默현묵스님에게 주다不聞聞自性듣지 못하면서 제 품성을 듣고,玄玄言外旨그윽하고도 그윽함음 말 밖의 뜻이고無見見眞心보지 못하면서 참 마음을 본다.默默靜中存묵묵함은 고요함 속에 살아가네.『靜觀集』,『佛全』第八冊 p.26上『靜觀集』,『佛全』第八冊 p.25下.이 시들은 모두 스님에게 준 贈詩에 해당한다. 交友詩가 벗들과의 교우를 매개로 하여 전개되는데 비해, 題號詩는 상대의 인품이나 바라는 바를 별호로 지어 주는 작호가 전제되어야 하는 차이점이 있다. 이 시들 중 앞의 경우는 交友詩의 일종으로서 상대의 수행을 격려하는 의미가 강하며{) 이 시의 경우는 제호시로서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盲聾선자를 고유명사가 아니라, 귀머거리와 장님인 스님이라 해석하면 시법시가 된다. 사실 맹롱이 법호로는 좀 어리지 않는 면이 있으며, 무엇보다 『정관집』에는 「눈먼 선자에게 준다」는 시가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이 작품을 시법시로 보고자 한다., 뒤의 경우는 題號詩로서의 기능이 강하다.그는 이름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대개 이름이란 實에 대한 賓이요, 實이란 이름에 대한 주인이다. 만일 實이 없으면 어떻게 그 이름을 세울 수 있으며, 만일 이름이 없으면 어떻게 그 實을 나타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實이 없는 이름은 빈 이름이며, 이름이 없는 實은 實이 아니니, 이름과 實이 서로 맞아야 비로소 각각 완전하게 되느니라.『靜觀集』,『佛全』第八冊 p.29中즉, 實과 名은 각기 主와 賓의 입장이지만, 이 두 가지가 서로 합치될 때야 완전한 實과 名으로 자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분히 실천 철학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하여 일선은 주변의 구도자들에게 출가의 마음과 자신의 새로운 이름(法號)에 알맞은 實相을 찾아, 세속에 연연하지 말고 부지런히 善을 행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단순한 호칭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이렇듯 고도의 방법을 동원해 壬亂에 대응했다.3. 主客對立을 超越한 出世間의 佛法정관일선의 사상이나 생애를 엿볼 수 있는 자료로는 『정관집』의 詩 64篇과 文13篇이 유일하다. 이런 자료의 빈약함으로 인해 정관일선에 관한 연구는 문학방면의 소논문 2편만이 있을 뿐이다.우선 출가자가 지녀야 하는 모습과 삶의 태도에 대한 그의 생각을 살펴보도록 하자.{欲向語言知自性말로써 자성을 알려고 하는 것은,還如撥火覓浮도리어 불을 헤쳐 물거품을 찾음과 같다네『靜觀集』,『佛全』第八冊 p.28中 「贈禪子」출가란 속세를 벗어나 인간 근원의 自性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나선 고달픈 길이다. 自性을 찾기 위한 苦行길은 필요불가결한 과정이다. 영욕으로 가득찬 세속의 범부들이 뭐라 하든 끝없는 求道의 길을 가야하는 것이다.일선이 제시하는 수행의 방법으로는 話頭와 參禪이 있다. 화두{) 話則이나 公案, 古則을 의미하는 것. 라는 것은 禪宗의 祖師들이 정한 法門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제시한 理法에 따라 정진하면 반드시 禪旨에 이를 수 있다는 뜻에서 公案이라고도 한다. 수행자의 궁극적인 목적인 轉迷開悟를 얻기 위해 던져지는 화두는 일종의 참고서로서의 역할고 함께 지속적인 수행의 방편이 된다. 禪子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화두를 갖기 마련이고, 그 화두 속에서 끝없는 정신적 투쟁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정관집』을 살펴보면, 그의 수행의 무대는 거의 대부분이 山寺로 한정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山寺 생활을 통해 물들지 않는 求道의 법을 터득하고 있다. 오랜 參禪을 통해 얻어진 것은 바로 내안의 부처를 바로 보는 것이었다. 이 마음 다스리는 법에 求道의 관건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깨달음을 표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여실하게 보는 了悟의 경지 라고 정의해 볼 수 있겠다. 세상 만물의 경계로부터 分別心을 끊고서, 다시 그 분별심 자체 마저 끊어 버린 상태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런 경지는 直見不見 直聞不聞 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보고 듣고 알되, 그것을 의식하 無言이 모두 道가 아니다. 이것은 有와 無의 구분과 그것을 의식하는 것 자체를 뛰어 넘는 寂照의 경지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至道는 有言 속에서도 無言 속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며, 또 반대로 어느 쪽에서나 찾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至道란 그냥 그렇게 如如하게 들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지가 바로 깨달음의 窮極地로서의 妙悟 의 경지인 것이다. 이러한 경지는 見山祗是山 見水祗是水 의 경지에 다름 아닌 것이다.정관일선은 교계의 원로로서, 산사에서의 철저한 淸淨 求道를 행한 인물이다. 그의 求道는 話頭 參禪의 방편으로 일관되게 진행되었다. 또한 그가 지향한 轉迷開悟의 세계는 主客 대립의 分別相을 끊어야 접근이 가능한 出世間의 세계였다. 그의 문학에서는 勇猛 정진의 끝에 맛보는 法悅의 세계에 깊게 沈潛한 모습이 잘 형상화되어 있다.4. 求道行과 山寺 생활의 문학1) 자연과 山寺 생활의 敍景的 묘사정관일선의 문학 세계에서 가장 큰 특징은 문집 전반에 걸쳐 흐르는 담담한 禪的 분위기이다. 여기서는 다른 선사들의 작품들에 비해 담담한 산사 생활의 모습과 자연에 대한 서경적 묘사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次三老韻{) 『靜觀集』,『佛全』第八冊 p.27中」를 보면 산사의 일상사를 통해 출가승의 삶을 여과없이 나타내고 있다. 속인들에게는 신비로움마저 가지고 있는 출가승의 일상사를 마치 한 폭의 수채화같이 묘사하고 있다.「題上院三絶{) 『靜觀集』,『佛全』第八冊 p.25下」은 山寺 생활의 주된 배경인 자연의 아름다움을 서경적으로 묘사한 시이다. 자연은 수행자들에게 가장 가까운 생활 공간이다. 그들의 생활이 속세를 벗어나 자연 속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자연은 그들 문학의 영원한 소재인 것이다. 일선의 시 역시 이런 자연의 모습을 읊은 시가 많다.자연을 안락의 대상으로 느끼고 또한 거기서 만족하는 시인의 모습은 곳곳에서 발견된다.「偶吟{) 『靜觀集』,『佛全』第八冊 p.25中」이란 시는 운수행각 도중 떠오르는 아침해의 광경을 노래한 것이며, 「題望仙樓{) 『靜觀集』,『佛全』29上
Ⅰ. 서론이성부의 시는 섬세하고 결이 고운 전통적인 서정시나 형식의 파괴와 갱신을 통해 인식의 새로움을 추구하는 전위적인 실험 시와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서정시, 실험시들을 발표하고 있는 시인들의 시세계를 정교한 필치가 눈에 보이는 세필의 인물화에 비유한다면, 이성부의 그것은 커다란 붓으로 뼈대만 그려놓은 그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시의 한 특징을 지칭하는 이른바 남성적 이라는 표현은 강건한 어조 즉, 문체상의 특질보다는 이처럼 선이 굵은 그의 시세계 전반을 가리키는 말로서 더욱 어울리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바꿔 말하자면 그의 시가 일견 단순해 보일 정도로 일관된 성향을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단순성은 일정한 지향을 지녔거나 혹은 목적을 내세우는 시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은 많은 경우 개개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중대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성부의 시들은, 거친 필치의 그림이 사려 깊은 눈길 속에서 오히려 빛나는 감동으로 살아나오듯이, 우리가 그것을 낱낱으로서가 아니라 전체로서 주목하는 가운데 어떤 강력한 자장을 발산한다. 이 자장은 그의 시들이 뭉치고 흩어지고 때로는 부딪혀 맴돌면서 생성하는 에너지에 의해 형성된 것인 듯하다. 특이한 것은 이 에너지가 전체의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시 그 하나하나의 작품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강한 힘으로도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우리는 현대의 문학작품에 대하여 흔히 그 구체성 여부에 주목한다. 구체적인 사물 혹은 경험 현실과 결부되지 못한 작품은 관념적인 독백에 그쳐 절실한 감동을 자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성부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벼」, 「몸」등이 절찬을 받는 것은 이러한 구체성의 덕목에 힘입은 바 크며, 그의 시가 전체적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이유 또한 그의 많은 시들에 일상적 삶의 구체성 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데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들은 개별작품을 대상으로 하여 살펴볼 때 대체로 온당한 듯하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이성부의 시는 이 같은 일반은 무엇보다도 그가 현실에 뿌리박고 있다는 데에 있다. 유장한 호흡, 남성적 어조 또한 그를 그답게 만드는 요소이다.그의 시는 80년대 말과 90년대로 이어지는 민중의 승리와 좌절, 이념의 퇴조와 전망의 상실을 경험하면서 변모하고 있다. 시집 『야간산행』(1996, 창작과 비평사)은 이러한 변모의 구체적인 결과인데, 이 시집에서 펼쳐지고 있는 그의 시세계가 과연 민중과 역사로부터의 도피인지, 아니면 시인의 정신세계의 발전과 성숙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손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시가 민중의 세계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아의 내면 세계로 눈을 돌리고 있으며, 그가 지녀왔던 남성주의의 풍모에 정신주의적 품격을 결합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Ⅱ. 본론이성부의 초기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60∼70년대의 깜깜했던 세월을 가슴에 느끼지 않으면 안된다. 그가 60년대에 등단했고 70년대에 중요한 시집 『우리들의 糧食』,『百濟行』,『前夜』의 작품들을 썼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의 시는 바로 그 시대의 어둠에 대한 보고서이며, 동시에 그 어둠을 참고 이겨내려는 의지의 산물이라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어둡고 추운 계절, 어떠한 전망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 절벽 앞에서, 그는 땅에 엎드려 시대와 삶의 밑바닥에 매우 조심스럽게 흘러가는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하려고 애썼다. 어둠을 바라보면 볼수록, 그리고 그 어둠에 익숙해져 어둠이라는 사실 자체도 망각해 가는 사람들의 무딘 신경증에 그는 분노하면서 어둠을 깨고 길을 트려 애썼다. 그것이 때로는 현실에 대한 분노로 나타나기도 하고, 민중에 대한 넉넉한 믿음과 기대로 풀리기도 했다가, 때로는 분노와 기대가 사랑으로 어우러지며 종합되기도 하였다. 리얼리즘이 현실비판과 낙관적 이상주의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결국 이성부의 초기시는 정통 리얼리즘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비판이 추상화되고 세부적인 면에서는 희망의 근거가 신념의 차원에 머무는 때도 없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도 그 흉터, 파묻힌 어둠커다란 잠의, 끝남이 나를 부르고죽이고, 다시 태어나게 한다.짐승도 藝術도아직은 만나지 않은 아침이여 전라도여그대 심장의 더운 불, 손에 든 도끼의 고요하늘 보면 어지러워라 어지러워라꿈속에서만 몇번이고 시작하던내 어린 날, 죽고 또 태어남이그런데 지금은 꿈이 아니어라.사랑이어라.光州 가까운 데서는푸른 삽으로 저녁 안개와 그림자를 퍼내고시간마저 무더기로 퍼내 버리면거기 남는 끓는 피, 한 줌의 가난아아 사생아여 아침이여창검이 보이지 않는 날은도무지 나는 마음이 안놓인다.드러누은 山河에는마음이 안놓인다.―시집『우리들의 糧食』중 「전라도·2」전문처음부터 아침 노을의 아들 이라고 전라도를 불렀으니 그 의미와 느낌이 아주 심각하다. 아침 이면서 노을 이라고 말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노을은 흔히 저녁 어스름이 깔리기 전의 하늘을 가리키는 것이지, 아침의 여명이나 새벽의 빛을 두고 이르는 표현이 아니다. 그런데 아침이면서 노을이라는 모순어법 속에는, 시인의 의미하는 바가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아침이 새로운 활력으로의 탄생을 말한다면 저녁은 끝나가는 죽음의 시간을 상징한다. 시인은 바로 전라도에 그러한 모순의 두 가지 역사적 속성이 공존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 이유는 이 작품이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 더 쉽게 설명될 것인데, 이 작품의 내용을 계속 따라가 보면 전라도는 시작/끝 죽음/태어남 불/고요 피/가난 등으로 중층의 구조에 놓여 있다. 이것은 어둠 이라는 중심이미지를 둘러싼 고난의 능동적 수용에 의해 그 극복을 꿈 꾸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므로 그의 논리는 어두울수록 어둠을 벗어나려는 희망과 의지가 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3연에서 시인은 사랑이어라 라고 감탄과 탄식을 섞어 내보낸 다음, 푸른 삽으로 저녁 안개와 그림자를 퍼낸 다고하여 질곡의 역사를 걷어붙이겠다고 의지를 밝힌다. 그 뒤에 남는 것이 끓는 피/ 한 줌의 가난 이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는데, 우리 삶의 허위를 씻어낸 그 밑바닥에 혁명을 꿈꾸는 피와 어떤 것으로 직접 등장하는 것도 몇몇 경우에 그치고 있으나 시인에게 그것이 주는 느낌은 매우 무겁고 넓다. 그의 고향은 한번도 잘난 체하지 않는 슬픔을 만나서, 이제 비로소 살아 펄떡이는 평등을 나누어 갖는 (前夜) 곳인데, 그 중심에 무등산이 서 있다. 그 산에서 시인은 자신을 넓은 가슴으로 맞아들이는 안위를 느끼기도 하고, 어떻게 사람도 크게 서는지를 (百濟行) 배우기도 한다. 어머니의 땅이 바로 그 산 자체이기 때문이다.2. 無等山과 蘭芝島기쁨에 말이 없고,슬픔과 노여움에도 쉽게 저를 드러내지 않아,길게 돌아누워 등을 돌리기만 하는 산.태어나면서 이미 위대한 죽음이었던 산.무슨 가슴 큰 역사를 그 안에 담고 있어저리도 무겁고 깊게 잠겨 있느냐.저 산이 입을 열어 말할 날이이제 이를 것이고,저 산이 몸을 일으켜 나아갈 날이이제 또한 가까이 오지 않았느냐.―시집『빈 산 뒤에 두고』중「無等山」부분이 작품은 비록 이성부 시인의 후기 시집에 수록되어 있으나, 그 맥락은 전기의 시집과 과히 다르지 않다. 무등산은 콧대가 높지 않고 키가 크지 않은/그냥 밋밋한 능선 을 가진 산이지만, 그 넉넉한 팔로 광주를 그 품에 안고 있어 시인에게는 반가운, 따스함을 느끼게 하는 산이다. 슬픔과 노여움을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감추는 산이기에 그 따스함조차 무덤덤해 보이지만, 저 산이 입을 열어 말할 날 에 이르면 세상은 역사의 질곡을 딛고 넘어 새로운 지평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시인은 믿는다. 그 사는 하눌산이며/하눌님이 사는 산 (百濟行)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에게 있어 무등산은 절대의 진실로 거기에 묵묵히 서 있다. 그의 작품이 현실의 어둠을 말하면서도 미래의 낙관적 자세를 견지하는 이유는 모두 이러한 어둠 자체에 극복의 힘이 숨어 있다는 절대 믿음에 기초한다.백제/전라도/광주/무등산으로 연결되는 고난의 터전에서 삶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고 희망을 펼치려 애쓰는 모습은 어떻게 보면 안쓰럽고 딱하기조차 하다. 그 시절 그에게, 또 우리 모두에게 드리워졌던 어둠은 사실 살아서 스스로 부서지고 싶은 것인가를 안다.……(중략)……사람과 쓰레기가 한몸이 되어파리떼 속에서 사랑을 속삭이고,온갖 꽃을 피우고바람을 부르고 비를 부른다.난지도에 와서사람을 만나고사람의 마을을 들여다보면 안다.왜 모든 것이 아니오아니오 아니오임인가를 비로소 안다.―시집『前夜』중 「蘭芝島」부분인용되지 않은 이 시의 첫 부분은 아름다운 자기 이름을 가진/서울 변두리 난지도 라는 역설적인 구절로 시작된다. 난지도는 글자 그대로 난초버섯이 많은 섬 이라는 의미이다. 이들이 주는 이미지는 매우 맑고 깨끗한 자연환경을 연상케한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곳이 서울 시민이 버리는 쓰레기로 뒤덮인 것이다. 그 쓰레기 더미 속에서 시인은 이 시를 쓰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결코, 요즘 유행하는 생태학적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시인은 쓰레기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거기에 뿌리내려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에 대하여 말한다. 그들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도 바람이 불고 개구장이들이 뛰어논다. 오물 더미 위에서 악취가 피어오르지만 제복을 입은 여학생이 움막으로 기어들고/왼종일 라디오 소리 들리는 곳이다. 거기에 바로 사람 들이 쓰레기와 한 몸이 되어 산다. 냄새에 질식하여 아우성만 커진 곳 이지만 거기에서도 사랑을 속삭이고/꽃을 피우고 자연을 느낀다. 향수를 뿌린 시내 중심가의 여인이나 악다구니 써가며 사는 난지도의 사람이나, 그 삶의 본질은 같다.그런데, 왜 그들은 더럽고 냄새나는 삶의 터에서 고통스러워하는가. 시인은 그것이 좌절이 아니라, 새로운 깨달음이라고 여긴다. 아니 그러기를 바란다. 사랑과 꽃은 어쩌면 시인에게만 보이는 환상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 자신은 난지도 사람들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분노와 원망을 감지해 낸다. 그 곳에서 바라보는 시월의 하늘이 서럽다 못해 불타는 노을 로 비춰지며, 사람들의 움직임 속에서 봉화산 의병 을 본다. 그래서 아니오 라는 부정을 시의 전반부와 마지막, 두 차례에 걸쳐 세 번씩를 때
엘리트 카멜레온의 변신 체험기― 전광용의 「꺼삐딴{) 은 영어의 Captain에 해당하는 말로써 까삐단에서 온 것이다. 8. 15 광복 직후 소련 군이 북한에 진주하자 이 우두머리나 최고라는 뜻으로 많이 쓰였으며 그 발음이 와 전되어 으로 통용되었다.리」1. 들어가며1960년대는 4·19로 인한 자유당 1당 독재의 붕괴, 5·16으로 인한 군사 정부의 등장 등 정치·사회적 혼란이 계속되었다. 4·19 이후 민족주의적인 분위기가 고조되고, 분단 현실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었다. 또한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인간 존재의 사회적 조건에 대한 문제 의식이 대두되어 참여 문학이 본격화되었다.이 시기에는 역사에서 제재를 취하여, 역사를 현실에 비추어 봄으로써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현실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려는 작품들이 발표되었다. 전광용의 「꺼삐딴 리」는 이인국 박사를 통해 해방 후부터 60년대 후반에 이르는 두 시대적 상황을 이어 한국인의 반성을 촉구하는 작품이다.이러한 1960년대의 소설사적 의의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첫째, 사회 상황과 인간 관계의 여러 문제를 치밀하게 그려 낸 현실 탐구형의 소설이 많이 쓰여졌다.둘째, 신진 작가들의 소설은 주로 작중 인물의 심리와 개인적 체험을 중시한 내성적 관찰 소설을 많이 썼다.셋째, 현실 참여 문제에 관심이 고조되어 사회 부조리에 대한 비판과 비인간화 현상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이에 대한 저항 의식을 형상화한 참여적 성격의 문학이 대두되었다.넷째, 역사에 대한 반성과 비판, 사회 현실에 대한 통찰과 인식을 바탕으로 한 사실적 묘사를 통해 사실주의 경향의 문학이 주류를 이루었다.2. 작가의 글쓰기 방식작가 전광용은 다양한 소재를 발굴하여 소설화하는, 그의 표현을 빌리면 가 아니라 이다. 유지와 멀리 떨어진 외딴 섬을 배경으로 한 「흑산도」「海圖抄」「바닷가에서」가 있는가 하면, 휴전선 부근의 미군부대 주변(「진개권」)이나 탄광지대를 배경으로 한 것(「지층」)도 있다. 또한 소설의 주인공들도 신분이 다양하여 위의 작품에 등장하는 어부, 쓰레기장 인부, 선술집 여인, 광산의 탄부뿐만 아니라, 미군부대의 트럭 운전수, 신문기자, 합승차의 조수, 비어홀의 악장, 의사, 대학생 가정교사, 대학교수 등도 등장한다. 소외된 민중에 대한 관심이 소설적 주제로 비등해진 70년대 이후의 경향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배경·소재의 확대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작가가 활동한 시기인 1955년부터 이후 10여 년 남짓의 문학풍토를 감안하면 이러한 민중지향성은 상당한 선구성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특히 「海圖抄」는 주목에 값한다. 이 작품이 씌어진 시기인 1958년이면 미국 혹은 친미적 성향의 위세가 극에 달한 시기여서 미국에 대한 정면적인 비판을 담고 있는 「海圖抄」는 충격적이다.그는 5, 60년대 문학의 전반적인 분위기인 침중하고 체념적인 주제접근방식과는 달리, 당시 선우휘의 작품에서 드러난 남성적이고 행동철학적인 세계관, 혹은 하근찬의 작품에서 잘 형상화된 체념을 넘어선 넉넉한 낙관과 화해, 해학의 공간으로 늘 열려 있기를 소망한다. 「G.M.C」가 그 예로 적당할 것이다.전광용이 인간을 보는 관점은 이중적이다. 인간은 그리 현명하지도 착하지도 않다. 현실적으로 좀더 출세했다든지 윤리적으로 좀더 깨끗하다든지 하는 기준이 본래적 인간을 평가하는 절대적 기준은 되지 못한다. 니체식으로 말하면 인간은 던져진 주사위일 따름이며, 이 주사위 놀이에서 확률이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결국 작가가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용기있는 개인의 선택, 즉 주체성의 문제이다.조남현은 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순차적인 진행방법에 따르는 스토리 대신 소설의 플롯을 중시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작가가 에 대한 관심을 소설의 주제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이고 있다.그는 가까이는 낙오자들과 불구자들에 대한 연민을, 멀리로는 이들 낙오자들과 불구자들을 대량으로 만들어낸 역사와 시대상황에 대한 준엄한 비판을 겨냥한 리얼리스트이다. 그러나 그것을 전달하는 작가의 관점은 대단히 이중적이며 신중하다. 시골태생의 어리석은 사람, 쓰레기 인생, 사회에서 패배한 자들에 대해 작가는 좀더 열린 미래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사위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그들은 늘 새롭게 탄생하여 건강한 민중이 되기를 소망하는 기도의 자세를 보여준 것이다.3. 「꺼비딴 리」에 드러나는 역사의식해방 후 6·25 전쟁까지 5년 동안의 한국문학은 순수문학과 계급주의 문학의 첨예화한 주장 속에 식민지 체험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 충돌하는 속에 광복의 감격이나 식민시대의 비극을 회고하거나 암담한 현실을 그린 것이 이 시대 소설세계였다.그러나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6·25 이후 60년대 초반까지는 문단 자체가 재편성된 시기이며 전쟁의 체험은 민족과 국가의 분단을 가장 뼈 아프게 절감하도록 해준 역사적 비극 속에 작가들은 방황과 좌절의 몸부림을 보이기도 하고 거부와 비판의 시선을 던지기도 하여 불안과 절망, 좌절과 비애의 분위기 속에 위기의 현실에 대응하기 위한 온갖 방법을 찾는 시기였다.따라서 자기 풍자나 존재에 대한 탐구가 시도되었으며,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이 60년대 중반 이후 전후의식의 극복이란 과정 속에 소시민적 의식과 사회 현실에 대한 폭넓은 관심으로 확대되어 간 문학에 접맥되고 있다.여기서 작가 전광용은 주인공 이인국 박사를 통해 해방 후부터 60년대 후반에 이르는 두 시대적 상황을 이어준 작품인 를 통하여 시대적 변천에 따른 한국인의 현주소를 50년대 말의 시선으로 비춰주고 있다.전광용의 는 제목이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인물 소설(Figurenroman)에 들어간다. 이때의 인물은 영웅 소설처럼 감탄이나 존경의 대상도 아니고 사상 소설처럼 무엇인가 배울 것이 있는 대상도 아니다. 오히려 비웃음이나 비판을 받아야할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이 소설은 이인국이라는 명의가 한국 현대사 속에서 어떤 시대에서든 어느 체제 아래서든 살아남은 과정을 그리고 있다.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인간의 원초적 욕구나 욕망의 실태는 엿볼 수 없다. 단지 살아가는 인간 이인국으로 하여금 사건의 극적 확대를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인국의 삶의 도정이 몽타주적인 시대 배경과 결합되면서 그러한 전형을 넘어서고자 하는 주인공의 인간상이 객관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 작품에는 이러한 객관화된 이인국의 인간형을 통해 비극적인 시대의 단면을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이인국 박사는 뛰어난 의술을 개인의 출세를 도모하는 쪽으로만 발휘한 끝에 일제시대에도 조선 사람으로서는 꺼삐딴 의 위치에 올랐고, 해방 직후 북한에서 친일파 혐의로 감옥에 있던 중 소련군 고문관의 혹 수술을 성공리에 마쳐 절대적인 신임을 받게 되었고, 6·25 이전에 월남해 친미적인 상류 인사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마디로 이인국은 과잉적응주의자요, 출세주의자다. 자신의 부귀영달을 위한 것이라면 사대주의니 배외주의니 하는 것을 꺼리지도 않았고 가리지도 않았다. 최소한 그는 의술을 인술로 바꾸거나 의술과 인술을 연결시키는 데 실패하고 만 것이다. 이인국 박사는 살아남고자 하는 본능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서든지 최고가 되고 싶어 했고, 귀족처럼 살고자 했다. 실제로 그를 움직인 것은 생존본능보다는 부, 명예, 지위에 대한 욕망이었다. 이러한 이기적인 욕망과 자기도취적인야심은 그것이 끝내 최소한의 도덕의식과 양심을 등에 업지 않는 한 몰락과 파탄의 결말을 맞기 쉽다. 전광용은 이러한 인간세계의 이치를 일깨워 주기 위해 를 지은 것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꺼삐딴 리 는 보기 드문 고유명사이기보다는 우리 근현대사 속에서 흔히 친일파, 친소파, 친미파 등과 같은 사대주의자로 존재하는 보통명사에 가깝다.그러나 작가는 이인국 박사에게 양지만 제공한 것은 아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양지만 찾아가는 이인국 박사에게 깊은 그늘도 주고 있다. 작품의 중간 중간에서 업보(業報)의 무서운 이치를 분명하게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인국은 전처와의 소생인 아들이 소련으로 유학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는 슬픈 사연을 지니고 있으며 딸이 국제 결혼을 강행하는 것을 허락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해방 직후 소련군 고문관에게 단단히 인정받게 된 이인국은 아내가 적극적으로 말리는 것도 뿌리치고 아들을 소련으로 유학 보내게 된다. 그후 이인국은 제 살길을 찾기 위해 월남했고 그 바람에 아들과는 완전히 연락이 끊기고 만다. 이인국은 시류에 따라야 한다 는 명분에서 본인은 원하지도 않는데 딸을 미국유학을 보내고 거기서 딸은 동양학을 연구하는 미국인과 가까워져 마침내 결혼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