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서 문하회 마을 소개주요 문화 유적관광 문화 현상방문 및 작업 후기【 서 문 】이번 ‘관광과 문화’ 수업을 듣게 되면서, 그리고 이 보고서를 작성하게 되면서 가장 먼저 이 곳 하회마을을 떠올리게 되었다. 수업시간에 강의를 들으면서 강조된 ‘고유성’의 측면을 살려보려는 내 생각이 미친 곳이 이 곳이기 때문이다. 원래 역사 방면을 좋아하는 이유도 없지는 않았기에 이 기회를 빌어 조상들의 삶이 깃든 곳을 발로 밟고 둘러보며 그 당시의 삶을 느낀다는 것에 흥미가 생긴 것 같다. 논문도 아니고 연구자료도 아닌 단지 report를 쓰는 데 직접 갈 필요까지 있겠냐는 생각도 해봤지만 이 기회에 직접 가서 조금이나마 알고 느끼고 돌아오자는데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주말을 이용해 안동으로 향했다. 시간적 여유도 많지 않고 자가 운전으로 방문하여 지리적 어려움도 있어 내가 원한 만큼의 성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의 자료와 느낀 점을 통해 이 보고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특히나 후회했던 것은 교수님이 항시 강조하신 사진 문제였다. 직접 찍고 확인해보니 너무나도 부족해서 후회스런 사진들이 많았다. 결국 내 사진은 참조 위주로 전락하고 타 자료 사진을 도용해야 한 것이 안타깝다.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나의 안동방문기이제부터 나의 안동하회마을 방문 보고서를 시작해 볼까 한다.【 하회 마을 소개 】하회마을은 낙동강이 태극모양으로 돌아 흐른다 하여 하회(河回), 혹는 물도리동이라 하며 풍수상 태극형, 연화부수형에 속하는 길지이다. 이 곳은 고려말, 조선초 공조전서를 지낸 류종혜 선생이 하회마을에 터를 잡은 후 600여 년을 풍산 류씨가 세거해 온 동족마을이다. 조선중기 유학자 겸암 류운룡 선생과 임진왜란시 영의정으로 국난 극복에 큰 공을 세운 서애 류성룡 선생 형제분으로 인해 널리 알려졌다.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지리적 여건으로 외침을 한 번도 겪지 않아 상류층의 기와집에서부터 민가의 초가 토담집에 이르기까지 전통고가와 민속이 잘 보존되어 있다.※ 참 조 (2004 . 1 .)인구106세대 224명(남 112 여 112)문화재18점(국보 2, 보물 4, 사적 1, 중요무형1, 중요민속 10)건물458동(와가 162, 초가 211, 기타 85)ㆍ1980.12.31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 23호 지정ㆍ1984. 1.10 중요민속자료 제 122호 지정이런 고택 등외에 하회탈이나 지역특산품인 안동소주, 향토음식인 간고등어로 유명하기도 하다. 근래에는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Ⅱ세가 방문하여 한국 문화를 체험하고 간 바 있어 세계의 이목을 끌기도 하였다. 또한 전통놀이로써 선비의 놀이인 ‘선유불꽃놀이’와 서민들의 놀이인 ‘하회별신굿탈놀이’가 공존하고 있다. 두 가지 놀이를 간략히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선유불꽃놀이별신굿탈놀이하회의 선비들이 중심이 되어, 부용대 단애 밑을 흐르는 강 위에서 선유시회를 겸한 불꽃놀이의 축제가 있었는데, 이 축제를 오늘날은 속칭 하회줄불놀이라 한다. 이 불꽃놀이는 자연경관으로 높은 단애와 단애 밑을 흐르는 강 강변의 백사장과 소나무들의 3가지 요소가 잘 갖추어져야 할뿐만 아니라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하므로, 서민들이 중심이 되었던 별신제의 탈놀이와는 대조를 이루었던 행사이다.우리나라의 탈춤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다.탈놀이 중에는 탈을 쓴 광대가 양반을 향하여 평소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여 나무랄 수 있었으며, 양반에게 수작을 할 수도 있었다.이 제도는 건전한 비판과 견제가 없는 사회는 온갖 폐단이 발생하므로, 양반이 서민에게 언로를 개방하기 위함이었다. 놀이마당은 무동마당, 주지마당, 백정마당, 할미마당, 파계승마당, 양반과 선비마당, 혼례마당, 신방마당의 8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마지막으로 하회마을의 전경을 담은 사진으로 간략한 소개를 마칠까 한다. 햇빛 때문에 사진이 마음 먹은대로 나오지 않아 아쉽지만 전경을 한 장에 담은 사진이기에 마을을 소개하기에는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다음으로는 하회마을의 주요 문화 유적에 대해 알아보겠다.【 주요 문화 유적 】하회마을에는 우리나라 조상들의 넋이 깃들어 있는 자료나 유적들이많이, 그리고 보존이 잘 되어 있다. 그 중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유적들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고택이나 서원같은 유적으로는 양진당, 충효당, 북촌댁, 남촌댁, 원지정사, 빈연정사, 옥연정사, 겸암정사, 작전고택, 하동고택, 주일재, 병산서원, 화천서원 등이 있고 서애 류성룡 선생의 징비록을 비롯한 각종 유물들, 서낭당이나 상봉정, 정려각 등과 같은 비지정 문화유산들이 산재해 있다.- 양진당양진당은 입암 류중영 선생의 호를 따서 입암고 택이라고도 불리우며 안채, 사랑채, 사당과 식객 방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본 사진은 사랑채의 모습을 찍은 것으로 현판에 ‘입암고택’이라고 적 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현 보물 306호로 지정 되어 있다.이 사진은 노거수로서 마을의 역사를 말해 주는 수령이 800여년 이상 된 거대한 느티나무이다. 너무 커서 사진에 완전히 담지도 못했다. 이것은 양진당의 담 뒤편에 있으며 나무 옆으로는 '삼신 당'이 자리잡고 있다. 한 가지 재밌는 것은 나무 주위의 새끼줄에 돈이나 소원쪽지가 아닌 입장권만 대롱대롱 달려있다는 것이다. 하긴 돈을 달아놓으면 전부 가져가 버릴테니...- 충효당이 곳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 해 문하생과 후손들이 지은 곳으로 이다. 초가삼 간에서 돌아가신 선생을 위해 조선시대의 전형적 인 사대부 집으로 지어 넋을 기린 곳이다. 현 보 물 414호이다.이 곳은 충효당 내에 지어진 ‘영모당’이란 곳으 로 서애 선생의 징비록을 비롯한 각종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하나같이 유서깊은 물건 들이었는데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내 짧 은 한문실력으로는 유물들의 이름조차 읽지 못했 다는 것이다. 부끄러울 따름이다.- 북촌댁과 남촌댁처음에 북촌댁? 남촌댁? 이라는 이름을 듣고 ‘설마 건물 이름이 그럴라구..?’하며 의심을 했는 데 사실이었다. 내 이름만큼이나 정겹게 다가오 는 건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북촌댁은 마을에서 가장 웅장하다는 안채가 인상적인 곳이었고 남촌 댁은 1954년 화재로 인해 안채와 소실 되고 현재는 문간채와 별당 그리고 사당만 남아 있다. 내가 진짜 이름이 그런 것인지 기념품 가 게 할머니께 여쭤봤는데 남촌댁에 진귀한 고서며 골동품이 많았는데 화재로 다 없어졌다고 아쉬움 을 표현하셨다.- 원지정사와 빈연정사왼쪽 사진의 원지정사는 서애 선생이 낙향하여 학문을 닦으며 정양하던 곳으로 사진 한 쪽의 지붕이 보이는 건물이 원지정사, 중앙에 자리잡은 것이 연좌루라는 정자이다. 이 원지정사는 내가 돌아다녔을 때 찾기도 힘이 들었고 제대로 설명도 되어 있지 않아 나중에 자료를 보고 나서야 ‘아~이게 그런 곳이구나..’라고 알 수 있었다. 오른쪽의 사진은 빈연정사로 겸암 류운용 선생이 낙향하여 서재로 쓰던 곳이다. 하회마을을 다 돌고 나서 알게 된 사실 중에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이 두 정사가 강을 사이에 두고 또 다른 정사(겸암정사, 옥연정사)와 마주보고 있다는 것이다.피는 못 속인다더니 형제가 하는 일이 어쩜 그리 똑같을까?- 하동고택하회 동쪽에 있다는 의미에서 하동고택이라 불 리는 이 집은 최근 '하회마을 선비의 집'으로 지 정되었다. 하회마을을 찾아 조선 선비의 전형적 인 모습을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어 졌다고 한다. 이 설명을 보고 내가 정말 궁금해 한 것은 과연 선비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것이 어 떤 모습일까 하는 것이다. 사극에서처럼 거들먹거리는 양반의 전형일까...아니면 학문을 위해 청렴결백하게 사는 유생의 모습일까? 그 시대에 살지 않았으니 알 길이 없긴 하지만...- 주일재이 집은 서애 선생의 증손 류만하공이 충효당에 서 분가할 때 지은 것으로, 그의 아들 주일재 류 후장공이 증축한 것이다. 주일재공은 퇴계 선생 의 도학을 사숙하여 일찌기 많은 사람들의 추앙 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문이 닫혀 있어 더 많 이 관람을 할 수 없어 안타까웠다.- 작천고택이 집은 작천 류도관공의 호를 따서 ‘작천고택’ 이라 불려왔는데 지금은 현 집주인의 이름을 따 서 ‘류시주 가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건축수법 과 양식으로 미루어 조선중기에 로 추 정하고 있으며, 특징으로는 사랑방에서 안방으로 이어지는 앞마당에 작은 토담을 두어 사랑손님과 안채의 부녀자가 마주치지 않도록 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엄격한 남녀사이를 잘 표현했다고 할 수도 있겠는데 현대의 관점에서 본다면 여자들을 너무 구속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그 시대에는 이러는 것이 당연한 처사였겠지만 말이다.?다음에 이어지는 병산서원, 화천서원, 옥연정사, 겸암정사, 상봉정 등은 여건상 방문을 하지 못하여 사진만을 참조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병산서원 화천서원겸암정사 옥연정사상봉정 부용대 단애※ 유적 외 안동의 유명한 얼굴들- 왼쪽부터 양반탈, 각시탈, 선비탈, 중탈, 이매탈, 할미탈 순이다.【 관광 문화 현상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여러 유적들을 돌아보며 조상들의 넋, 삶 등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많은 공부가 되었고 나름대로 흥미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회마을을 다녀오면서 내가 가장 많이 느낀 것은 다른 것이었다. 한 가지 문제점이라고 생각된 것이 있었는데 이것이 내 보고서의 핵심이라 해도 무리는 없을 듯하다. 우선은 내가 찍은 사진을 보면 느낄 수 있다.아마 나 뿐만이 아니라 하회마을을 한 번이 라도 가본 사람들은 다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전통가옥을 보존하여 세계에 우리 의 얼굴이 되어 마땅한 곳이 전통가옥을 이용 한 상권이 되어버린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목 길목마다 먹거리며 기 념품이며 간판이 즐비하다는 것이다. 나와 같이 갔던 안동 친구 역시 자신도 올 때마다 그런 것을 느낀다고 했다. 이 장면들을 봤을 때 난 내 보고서의 초점을 여기에 맞춰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전에 관광과 문화 강의를 들었을 때 이와 비슷한 문제가 제기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가 보존된 장소나 기타 관광 시설의 경우에 관광시설, 전시시설, 주민공간, 상권, 휴식공간 등이 너무 얽혀 있다는 것이다. 또 그에 대한 대안으로 뉴질랜드의 지역에서 쓰인다고 배웠던 다음과 같은 방법이 있었다.≪ 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