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식으로 참고해서 읽으시면 됩니다.----------------------------------------------------일본의 CEO가 변하고 있다? 일본 기업의 CEO들이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IT 버블붕괴 이후 파나소닉과 도시바를 바닥에서 탈출시킨 나카무라 구니오(中村邦夫)회장과 니시다 아츠토시(西田厚聴)회장이 2000년대에 일본의 새로운 경영자로서 주목받았다. 그들은 종전의 일본 경영자들과는 달리 의사결정이 빨랐고, 리스크가 따르는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과감히 추진하기도 했다. ’잃어버린 10년‘을 지나온 일본의 CEO들은 과연 진정으로 변하고 있는 것일까?○ 일본의 CEO - CEO 개념의 표현이 아닌 ‘경영자’나 ‘사장’이란 표현을 사용 ▷ 일본 기업 대부분의 CEO가 내부 승진자 출신의 전문경영인이기 때문 ▷ 일본 정부는 전쟁 준비에 자원을 집중해야 했기 때문, 이를 위해 배당을 통제하는 방식 등으로 자본가인 오너 경영자를 경원시하였다○ 기존 일본기업 CEO 시스템의 문제점 - 일본 사장의 이미지 : 역전 마라톤 주자 ▷ 자신의 재임시에 큰 과오없이 다음 사장에게 무난히 바통만 넘겨주면 그만이라는 생각 - 요코나라비: 다른 기업 수준으로만 하면 된다는 ‘대등의식’ - 전략적 결단에 약한 CEO : 큰 실수만 없다면 회사가 성장할 수 있었던 회사의 결정방식 ▷ 그러나 일본 경제가 저성장 단계로 돌입하고 불확실성이 증대하자 리스크를 떠안기 싫어하고 모든 이해관계자의 평판에 일일이 신경 써야 하는 일본 기업의 사장의 결단력이 문제점으로 부각됨. - CEO 발탁되는 조건 : ① 현재 또는 전임 사장이나 회장과 잘 통하는 사람 ② 동료나 부하로부터 평판이 좋은 사람 ③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평판 좋은 사람○ 일본 CEO의 변신 - 2000년대 초반 IT 버블 붕괴에 대처하는 일본 경영자 ▷ 빠른 의사결정, 과감한 선택과 집중, 주주 중시 경영 등 그동안 경원시하던 미국식 경영 방식, 글로벌스탠더드 적극 도입 ▷ 파나소닉 : 마쓰시타의 사업부제를 과감히 폐지, 사명 개명(파나소닉) ▷ 도시바의 ‘선택과 집중’ : 니시다 사장 취임 이후 곧바로 미국 전기회사의 원자력 사업을 인수(5,000億円)하였으며, 플래시메모리에도 2兆円을 과감히 투자 ※ 도시바는 이후, 신속한 의사결정을 추진했다. 사업 집중을 위해 창업 당시부터 사용하던 긴자의 도시바 빌딩을 매각하였고, 액정패널 사업에서도 철수하는 등 재빠른 행보를 이어나갔다.
학번 이름20대가 일본을 망하게한다!?Minimum lifeMinimum life20代미니멈 라이프란?일본 20대들의 의식구조와 소비 트렌드를 가장 표현하는 말¥간단히필요 최소한의 생활'미니멈 라이프' 세대-1미니멈 라이프의 20대가 일본을 바꿀 것이라 이야기되고 있다.일본의 한 TV 프로그램인 '일본을 만드는 법'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이러한 트렌드를 심층 분석하면서, “소비하지 않는 20대가 일본을 망친다.”닛케이 신문'미니멈 라이프' 세대-2미니멈 라이프 세대란? 1980~88년생까지 20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현재 일본에 약 1150만 명미니멈 라이프 세대의 특징생활이나 인생에 구속받는 것은 싫어 편한 것이 제일, 귀찮은 건 싫어 다치는 것은 싫어 손해보는 것은 싫어생활이나 인생에 구속받는 것은 싫어 편한 것이 제일, 귀찮은 건 싫어 다치는 것은 싫어 손해보는 것은 싫어'미니멈 라이프' 세대-3미니멈 라이프 세대, 시대가 낳은 산물미니멈 라이프 세대의 특징일본의 28세의 인생과 닛케이 평균 주가버블븡괴아시아통화위기한신대지진・ 옴진리교 사건미 국9・ 11 테러취직빙하기하 락'미니멈 라이프' 세대-4위기의식이 낳은 '미니멈 라이프'자기방어돈, 인간관계 생활패턴 축소지향안정적 편안한 삶상처받기 싫어하는 경향'미니멈 라이프' 세대-5휴일에는 무엇을 하나요?goo ,All About43%'미니멈 라이프' 세대-6자동차도 필요 없고 친구도 최소한자동차를 소유할 의향이 있는가?[yahoo]'미니멈 라이프' 세대-7자동차도 필요 없고 친구도 최소한'미니멈 라이프' 세대-8소셜(social)소비'1ℓ for 10ℓ'사회공헌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생수 1리터를 사면 아프리카에 10리터를 제공하는 채러티 상품이광우, 일본 재발견, 삼성경제연구소, 2010, p28~33 消費しない20代が日本を滅ぼす!? http://diamond.jp/articles/-/4503 Yahoo!リサーチ 「男性の消費と恋愛意識」 に関する調査 http://prtimes.jp/main/html/rd/p/000000028.000000624.html http://semtl09.blog.me/30142837316출처{nameOfApplication=Show}
-대한항공(KAL)과 일본항공(JAL) 성공사례-일본항공(JAL)은 세계 1등 항공사였다. 한때는 전 세계 기업 중 매출액 3위를 기록, 일본주식회사라는 애칭(愛稱)으로 불릴 정도였다. 대한항공(KAL)은설립 초기 일본항공을 벤치마킹하려고 몰래 일본항공 매뉴얼을 구해, JAL의 J를 K로만 바꾸고 그대로 따라했다.지난 1월 19일, 일본의 자존심으로 통하던 일본항공은 무려 256억달러 라는 천문학적인 부채(負債)를 감당 못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됐고, 엄청난 규모의 공적자금이 투입된다. 혹독한 구조조정으로 직원 중 3분의 1인 1만5700명이 쫓겨날 예정이다.항공기 130대 보유, 전세계 38개국 103개 도시 취항, 세계 화물 수송 4년 연속 1위, 여객 수송 17위, 연간 매출액 10조원 돌파, 항공동맹체 스카이팀(SkyTeam)의 주도적 항공사 2009년 3월1일 창사 40주년을 맞은 대한항공의 화려한 성적표다. 무엇이 대한항공과 JAL의 현재의 모습을 만든 것인가?1. 기업 개괄1) 대한항공(Korean Air)대한항공(大韓航空, Korean Air)은대한민국최대의 항공사이다. 아시아의 대형 항공사 중 하나로 인천국제공항을 중심으로 하여 유럽,아프리카,아시아,오스트레일리아,북아메리카를 운항하는 국제선과 김포공항을 중심으로 한 국내선을 운영하고 있으며 스카이팀의 창설 회원사이다. 주요 경쟁사로는 아시아나항공이 있다.1929년에 신용욱이 조선비행학교를 설립함으로써 태동하였다. 이후 조선비행학교는 1936년10월에 조선항공사업사로 바꾸면서 정기운항을 시작하였다. 해방 이후 조선항공사업사는 미군정의 허가를 받아 1946년3월 1일대한국민항공사(Korea National Airlines)(1948년10월까지는 대한국제항공사)로 이름을 바꾸고 영업을 재개하였다. 그러나 수요급감과 환율상승으로 인한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1962년대한민국 정부가 출자하여 대한국민항공사를 인수함으로써 대한항공공사(大韓航空公社)를 설립하였다. 1969년2월 28일에 Ltd.)주식회사일본항공인터내셔널(일본어:株式?社日本航空インタ?ナショナル, Japan Airlines International Co., Ltd.)은일본도쿄 도시나가와 구에 본사를 둔 아시아최대의 항공회사이다. JAL 그룹의 지주회사인 주식회사 일본항공의 자회사이다. 일반적으로는 지주회사와 마찬가지로 '일본항공' 또는 JAL(잘)로 줄여 부르는 경우가 많다.JAL이라는 브랜드는 사실 일본항공 인터내셔널과 일본 국내선을 다루는 "일본항공 재팬"이라는 두 회사가 사용하고 있었다. 일본항공 인터내셔널은 2004년에 '일본항공 주식회사'에서 회사명을 변경하며 국제선 담당 회사로 발족하였으나, 2006년10월 1일일본항공 재팬을 흡수 병합하여, JAL로 명명되는 비행기 편의 운행을 단독으로 보유하는 사업체가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보잉 747편을 보유하고 있으며(2005년3월현재 약 76대), 중남미까지 운항하는 아시아 지역의 3개의 항공사 중 하나이다. 말레이시아 항공은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대한항공은 LA 경유 상파울루까지, 일본항공은 멕시코시티와(밴쿠버 경유), 상파울루까지(뉴욕 JFK 국제공항 경유) 운항하고 있다.2. 위기와 기회1) JAL의 위기: 정부실패신뢰도일본 경제 부흥과 함께 승승장구하던 JAL에 먹구름이 드리운 것은 1985년 8월 단일 기종 사고로 역대 최고 희생자(520명)를 낸 JAL 123편 추락사고다. 이 대형 참사에 충격을 받은 승객들은 그 해 설립한 민간 항공회사 ANA로 발걸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JAL은 그 후에도 착륙 중 타이어가 떨어져나가는가 하면 엔진 부품이 시가지에 떨어지는 등 사고가 잇달아 일어나면서 신뢰도도 함께 떨어졌다. 그 결과 JAL의 국내선은 올 4~9월 전체 노선(153개)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103개 노선 승객 탑승률이 60%를 밑돌았다. 일반적으로 탑승률이 6할을 밑돌 경우 항공사는 채산을 맞추기가 힘들다고 한다.민영화JAL은 1951년 필리핀에서 빌린 여객기 1대와 직원 39명의 국영기업으로 출발했다 보호아래 승승장구하던 JAL은 1980년대 중반에 하나의 전환기를 맞이했다. 바로 당시 수상이었던 나카소네 수상이 추진하는 국영기업의 민영화 추진 사업에 의해 민영화 대상으로 선정된 것이다. 이후 2년 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1987년 완전 민영화됐다. 그런데 바로 이 민영화가 JAL이 속으로 곪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보통 민영화가 되면 정부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기업의 지분을 소유한 주주 집단이 독립적으로 기업을 경영하게 된다. 만약 기업의 수익이 악화되면 무엇이 문제며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 지 고민하는 것이 경영진의 임무다. 기업이 인수 또는 파산하지 않도록 기업 체질 개선을 위해 끈질기게 노력하는 것, 이것이 일반적인 민간 기업의 모습이다. 그런데 JAL의 경우는 달랐다.1987년 민영화가 됐어도 민영화라는 간판만 달았을 뿐이었다. 정부의 지분을 민간으로 넘겼으나 주주 지분율이 최대 3%를 넘지 않을 정도로 했다. 경영을 지휘할 전문경영인 제도가 도입됐으나 그 동안 정부의 강력한 보호막 속에서 성장한 탓에 이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다. 대주주도 없고 전문 경영인도 제 역할을 못하는 주인 없는 기업이 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민영화 이후 JAL은 여러 이해관계자에게 휘둘리기 시작했다. 바로 여기서 JAL 내부에 숨은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다. 바로 주인 없는 기업과 이 기업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이용하려고 하는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JAL 몰락의 근본적인 원인을 초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JAL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는 누구일까? 바로 정부, 직원, 금융기관, 거래처, 주주, 소비자 등 여러 그룹들로 나뉠 수 있다. 이 중 JAL을 경영 파탄으로 이끈 주된 이해관계자 두 그룹이 있다. 바로 정부와 직원이다.우선 정부는 JAL에 어떠한 악영향을 끼쳤을까? 87년 민영화 이후에도 정치가와 관료들은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 임원 자리에 관료 출신의 ‘낙하산 인사’가 내려온 것은 예사였다. 정부가 JAL 이사회를 주무르는 것을 빗대 ‘JAL 이사회는로 지방 공항의 건설을 들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전국 균형발전이라는 정책 하에 1현(우리나라의 도에 해당) 1공항 건설을 추진해 왔다. 이렇게 되면 인구가 많지 않은 지방에도 공항을 건설하게 된다. 만약 JAL이 일반 민영기업이라면 유동인구가 적은 지방 공항에는 수지 타산 때문에 노선을 신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JAL은 항공 노선을 신설하고 적자 운영을 해야만 했다.이 뿐만이 아니다. JAL은 국토교통성이 추진하는 지방 공항 건설비를 보조하기 위해 매년 공항정비대금을 내야 했다. 2008년에는 약 1200억 엔을 지불했다. 이에 대한 대가는 물론 있다. 나리타 공항 및 하네다 공항 등 고수익 노선을 우선적으로 차지할 수 있는 기득권을 얻었다.이렇게 정부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유착관계를 형성한 JAL은 비용 절감, 경영 혁신으로 수익성을 높이는 것보다는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여겼다. 당연히 경영 체질 개선은 뒷전으로 미뤘다. 여기서 우리는 JAL이 왜 그렇게 많은 부채가 있었는지 알 수 있다. JAL의 경영진은 정부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였고 기업의 수익성 강화에는 관심이 없었다. 적자가 나도 정부 지원금으로 메우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최근 10년 동안 JAL은 몇 번의 위기가 찾아 왔지만 그 때마다 정부로부터 공적 자금을 3차례나 받았다. 그 때문에 당시 위기는 넘길 수 있었지만 ‘눈 가리고 아웅’식의 대응은 오래가지 못했다.강성노조JAL 몰락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두 번째 이해관계자는 직원이다. 직원들이 일을 열심히 안 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JAL 내부에 자리잡은 강성 노조 이야기다. JAL은 인수, 합병 과정을 거치면서 승무원 및 지상 근무자 등 1만 1000명이 가입한 JAL 노조를 비롯해 JAL기장조합, JAL승무원조합, JAL재팬조합 등 8개의 노조가 있다. 이 중 1개의 노조만이 친기업 노조며 7개의 노조는 경영진과 대립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대부분의 직원들이 노조변경하려고 하자 노조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무효화 시킨 적도 있다. 또한 퇴직자 권력이 막강해 퇴직연금 부족액이 4000억 엔에 달했지만 노조 때문에 퇴직금을 깎을 수도 없었다. 경영 악화에도 기내 스튜어디스 출신 퇴직자는 매달 45만 엔 정도의 두둑한 연금을 받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JAL의 인건비는 경쟁사 ANA보다 약 2배 정도 더 많은 상태다.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경영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 보여주는 단적인 상황이다.2) 대한항공의 기회: 모방에서 차별화로대한항공40년 전 출범 구형 프로펠러기 7대와 제트기 1대로 출범한 민항 대한항공은 1969년 출범 당시 매출액은 17억원에 불과했고 취항노선도 일본 노선 3개에 불과했다.민영화 이후 대한항공이 가장 먼저 개설한 노선은 1969년 10월 취항한 서울-오사카-타이페이-홍콩-사이공-방콕 노선. 당시 동남아 최장노선으로 베트남에 파병, 군사 지원을 하고 있던 건설 및 용역업체들의 재건 사업을 지원하는 효과를 얻었다. 1971년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화물기를 취항한 데 이어 이듬해 서울-도쿄-호놀룰루- LA 태평양 횡단 정기 여객노선을 취항함으로써 본격적으로 국제적인 항공사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대한항공이 세계 유수의 항공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형 항공사로 발돋움하는 데는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또한 이 시기는 국내 기업들의 적극적인 해외진출과 국내 경제발전으로 국제 항공 노선망을 대폭 확대할 수 있는 기회로도 작용했다.스카이팀대한항공은 2000년 6월 국제항공동맹체인 ‘스카이팀(SkyTeam)’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국제적 항공사로의 입지를 다시 한 번 강화했다. 스카이팀의 초기 참여 회원사는 대한항공을 비롯해 델타항공, 에어프랑스, 아에로 멕시코의 4개 항공사. 스카이팀 이후 지속적인 회원사 확충과 공조체제 강화를 통해 현재는 전세계 11개 회원항공사와 3개 준회원사가 가입한 동맹체로 성장했다. 스카이팀 참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