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kespeare의 sonnet에서 주요 소재가 되는 시간(time)과 젊음에 대한 아름다움(beauty)은 어김없이 sonnet 65번에서도 볼 수 있다.첫 번째 quatrain에서 청동(brass), 돌(stone), 대지(earth), 끝없는 바다(boundless sea)는 시간(time)을 상징한다. But sad mortality o'ersways their power 즉, 여기서 죽을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sad mortality)은 아름다움(beauty)을 나타내는데, 이는 마지막 행에 나올 black ink의 힘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아름다움으로써, 시간을 대변하는 위와 같은 것들의 힘을 압도할 것을 이 구절에서 예고하고 있는 것 같다.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은 어떻게 꽃보다 약한 아름다움이 분노에 휩싸여 시간에 대항하는 행동을 취하겠는가? 라고 해석해 보았다. 꽃은 가녀리고 약한 존재인데, 이 보다 더 약한(no stronger than a flower) 아름다움이 자신을 파괴하려는 시간에 분노(rage)하여 항변(plea)이라는 행동(action)을 한다. 움직임이 거의 없는 꽃에게서 ac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약간 어색하고 이질적인 면이 있어 보이지만, 이런 대조적인 단어를 씀으로써 그 분노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두 번째 quatrain에서 화자는 O how shall summer's honey breath hold out/Against the wrackful siege of batt'ring days=부딪쳐 오는 세월의 파괴적인 포위에 대항하여/그 여름날의 감미로운 숨결을 어떻게 지탱할까? 라고 묻는다. 물론 여기서 부딪쳐 오는 세월은 파괴적 힘을 지닌 시간이고, 여름의 감미로운 숨결은 아름다움이다. 여름이란 것은 일 년 중 한정된 시간을 뜻하고, 그 시간은 가장 강렬하고 모든 것이 생명력 넘치는 때이므로 젊은 시절 누렸던 최고의 아름다움에 비유를 한 것이다. When rocks impregnable are not so stout, nor gates of steel so strong, but time decays?' 이 구절은 차례대로 난공불락의 암석들이 강건하지 않고, 강철로 된 문들이 강해지지 않을 때, 시간은 쇠퇴해질까? 라고 해석해 보았다.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 화자는 시간의 힘이 약해져서 아름다움이 오랫동안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와 같이 쓴 것이라 생각된다.세 번째 quatrain은 시간에 대한 두려움을 다시 한 번 깨닫고(fearful meditation) 위에서 말했던 자신의 바람이 터무니없음을 한탄(alack-아아, 슬프다)하는 구절이다. 결국, 시간은 영원히 강한 파괴의 힘을 지닐 것이고, 그래서 여름날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것이다. 그 다음 구절에서는 Time's best jewel'을 아름다움으로, 이것의 근원지를 Time's chew lie'로 보았다. 여기서 chew는 씹다 의 의미가 아닌 상처를 내다 라는 의미로, lie'는 거짓말 의 뜻으로 하여 강건하기만 한 시간이 상처가 입었다는 거짓말로부터 생긴 아름다움을 어디에 숨길 것인가 로 해석하였다. 시간은 강건해서 상처를 입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이 상처 입었다고 설정(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즉, 아름다움을 포위하고 파괴해야 하는 시간이 상처를 입어 힘이 약해지자, 이 아름다움이 시간의 손아귀로부터 빠져나온 것이다. 가까스로 빠져나온 아름다움을 어디에 숨길 것인지 묻고 있다. 또한 화자는 Or what strong hand and hold his swift foot back?=어떤 강한 손이 시간의 재빠른 발걸음을 뒤로 옮겨 놓을 것인가?/Who his spoil of beauty can forbid?=어느 누가 그의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행위를 금지시킬 수 있을까? 라고 다시 한 번 묻는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O none=아무도 없다 이다. 하지만 unless this miracle have might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적은 힘을 가진다. 그 기적이란 것은 다음 구절에서의 black ink(시, 문학)이고, 이 안에서 my love(beauty)는 오래도록 밝게 빛날 것이라고 마무리 한다. 이것은 곧 마지막에 시간에 의해 파괴되어가는 아름다움을 구제할 것은 오직 시밖에 없다는 화자의 강한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우리는 불어권 사회와 문화 라는 수업에서 불어를 쓰는 나라들의 사회상과 그 곳 사람들의 생활양식, 음악 등을 배웠다. 문화란, 인류에서만 볼 수 있는 행동의 양식(생활방식) 중에서 유전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학습에 의해서 소속하는 사회(협동을 학습한 사람들의 집단)로부터 습득하고 전달받은 것 전체를 포괄하는 총칭이다. 이렇듯, 문화라는 것은 우리가 수업시간에 배운 것들에 국한 되지 않는다. 미술, 종교일 수도 철학, 과학일 수도 있는 문화 중에서 나는 이 report에서 프랑스의 패션에 대해, CHANEL'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Ⅰ. 패션과 문화와의 관계그렇다면, 패션이 문화와 어떤 상관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점이 생기기 마련이다. 언뜻 패션을 잘못 이해하면 단순히 옷 입고 치장하기 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것은 패션이란 말이 주로 의복이나 복식 풍 유행을 가리키는 말로 많이 쓰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패션은 이것에 국한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행, 풍조, 양식을 일컫는 말로써 어느 일정한 시기에 특정한 사회 현상이나 생활양식 등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져 널리 퍼지는 과정을 말한다. 이렇기에 패션은 한 나라의 사회 현상을 잘 반영하며, 그 예로는 로코코 시대에 극도로 부풀린 스커트 후프(파니에)나 1900년 전후 부자연스럽게 S자형으로 만든 여성 실루엣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패션이 충동적이고 비합리적이더라도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일 때 패션은 전체적으로는 사회 그 자체이고, 사회문화를 변화시키는 힘을 지니게 된다. 또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치장하는 것은 거의 본능적인 것이고, 사람들은 주어진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늘 더 개선하려고 한다. 이러한 노력은 그가 처한 장소와 사회적 배경에 영향을 받으므로 의복의 변화는 문명과 문화를 이해하는데 또 다른 시점을 제공한다. 그렇게 때문에 패션은 문화의 일부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패션(Fashion)/모드(Mode) : 흔히 말하는 패션이라는 것은 불어로 유행을 뜻하는모드(Mode)이고, 이 말은 1482년경부터 집단적인 옷 입기 방식 이라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하였다. mani re, mesure를 의미하는 라틴어 modus에서 온 것으로 추측되며 1549년부터 tre la mode는 s'habiller la mode nouvelle 을 의미하게되었다. 오늘날에는 옷과 옷을 입는 방법에 대한 집단적이고 일시적인 열광을 의미할 뿐 아니라 의류와 장신구 등 의류산업 전체를 지칭하는 의미로도 쓰이고 있다.Ⅱ. Gabrielle Chanel, 그녀는 누구인가?{{많은 이들이 패션 역사를 샤넬 이전 과 샤넬 이후 로 구분한다. 의상 뿐 만 아니라 향수, 악세사리 등에서 그녀만의 스타일을 창조한 가브리엘 샤넬. 그녀의 스타일은 6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패션 역사의 기준이 되어 우리 시대를 표현하고 있다.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말로는 샤넬을 창조한 가브리엘 샤넬을 드골, 피카소와 더불어 우리 시대에 가장 위대한 인물 이라고 평했다. 샤넬은 그만큼 자신의 패션을 통해 여성들의 모습을 바꿨을 뿐 아니라 여성들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을 변화시켰다. 그렇다면, 이렇게 위대한 여성의 삶은 어떠했을까?1833년 프랑스 소뮈르에서 가난한 행상인의 딸로 태어난 가브리엘 보네르 샤넬은 12세 때 어머니를 가난과 결핵으로 잃고 학교에 가는 대신 집에서 혼수용 바느질거리로 이보들의 돈벌이를 도와야 하는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까무잡잡한 피부에 정열적 외모를 지닌 샤넬은 스무 살 무렵부터 타고난 스타로서의 끼를 발휘하게 된다. 낮에는 온천에서 치료하는 사람들에게 물을 길어다 주고, 밤에는 싸구려 카페(1905년 작은 지방 도시의 뮤직홀 라 로통드 )에서 노래를 부르는 샤넬을 수 많은 남성들이 흠모하게 되었다. 그 곳에서 그녀의 팬들 앞에서 코코가 트로카데로에서 만난 사람 이라는 노래를 부른 뒤 이 애칭을 코코 라는 애칭을 얻게 되었다. 그 중 부르주아 집안의 아들 에티엔느 발상이 샤넬을 상류 사회로 이끌어 주었다. 이 후 자유분방하고 매력적인 이 젊은 여성의 주변에는 소설가, 시인, 배우 등 당대의 스타일리스트들이 자연스럽게 몰려들었으며 특히 샤넬이 보여주는 개성적인 옷차림에 반해버리고 말았다.샤넬은 배우인 이모와 친구들을 위해 만들기 시작한 모자가 점점 큰 인기를 얻게 되자 전문 샵을 오픈, 패션업을 본격적으로 벌이기 시작하여 제 1차 세계 대전 당시 부티크를 개설하여 크게 성공을 했다.샤넬은 그 인기에 힘입어 1915년 두 번째 가게를 연다. 그 해 미국의 패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