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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튤립, 그 아름다움과 투기의 역사 평가A좋아요
    마이크 대시의「튤립, 그 아름다움과 투기의 역사」I. 들어가며버블 현상이란, 실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많은 사람들의 투기를 유발하여 가격상승이 지속되게 되지만, 이윽고 거품(bubble)이 터지는 것처럼 급격히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현상을 말한다. 이 현상은 외환거래 및 주식 등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거품이 사라진 뒤에는 공황상태가 출현한다.)불과 몇 년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주식 붐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 코스닥 시장이 생겼고, 정부의 IT산업 지원과 맞물려 여러 벤처기업들이 태어났다. 코스닥에 상장된 중소 벤처기업의 주식이 폭등함에 따라 많은 자본이 주식시장으로 몰려들었고, 이는 주식의 상승을 더욱 부추기게 되었다. 그러나 거품이 커지면 터지기 마련이듯 끝없이 오르기만 하던 주식들도 폭락의 과정을 맞게 되었다. 정보에 어둡던 개인투자자들은 큰 손해를 보았으며, 이는 많은 사회문제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었다.이 즈음하여 화두가 되었던 이야기들 중 필자의 기억에 남는 것은, 주식시장에서 투기를 근절하고 투자를 장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세의 변동에서 차익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투기는 확실히 극단적이고 모험적이다. 이 투기적 현상이 그릇된 기대심리와 만나게 되면 거품은 발생하게 마련이고, 또한 그 거품은 언젠가는 터지기 마련이다. 즉 버블현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역사상 최초의 버블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튤립 버블(Tulip mania)로 알려져 있다. 1635년경 네덜란드에서는 튤립의 구근 가격이 하룻밤에도 2∼3배씩 천정부지로 치솟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격거품이 빠졌지만, 멋모르고 여기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꽤 오랜 기간 동안 경제적 후유증을 겪었다. 마이크 대시의「튤립, 그 아름다움과 투기의 역사」는 이 튤립 버블이 일어나기까지의 네덜란드와 튤립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II. 본문1. 동쪽에서 온 이방인 : 튤립광활한 중앙아시아의 톈산 산맥 야산에서 자라던 튤립게 된다. 매우 높은 산지의 황량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던 튤립은 투르크인들에게 다산과 생명의 상징으로 숭배되었고 그 후 투르크인들이 이동함에 따라 튤립도 저절로 서쪽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이후 18세기 말에 와서 투르크인 들이 점령한 땅에 정착하여 오스만 왕국을 세우게 됨에 따라 튤립도 정착하여 그들의 정원에 심어지게 되었다. 생명과 다산의 상징이었던 튤립은 원예를 중요시하던 그들에 의해 이전에 한 번도 오르지 못했던 고귀한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이것은 점차 심화되어 신의 꽃으로까지 여길 정도였다. 그로 인해 투르크인들은 정복 전쟁시 이 꽃을 몸에 지니게 되었고 그리하여 튤립은 점차 더 서쪽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점차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오스만제국에서 튤립은 대중에게도 전파되어 더욱더 확고한 위치를 굳히게 되었고 오스만이 지중해 최강자가 됨으로서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은 오스만과 협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유럽과 왕래를 하게 되었고 꽃을 식품이나 약초로만 생각하던 그들에게 아름다운 정원과 그 가운데서 돋보이던 튤립은 관심을 끌게 되었고 점차 유럽으로 진출하게 되었다.2. 튤립 열풍의 시작이 당시의 유럽은 튤립이 퍼져나가기에 적절한 때였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은광이 발견되고 인도로 가는 교역로의 발견으로 유럽에는 이전의 어느 때 보다 돈이 많았고 부자들은 재미있게 돈을 쓰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었다. 르네상스가 과학에 대한 흥미를 다시 일깨웠으며 인쇄술이 새로운 발견과 개인들이 간직하고 있던 오래된 지식들을 널리 퍼지게 했다. 이러한 발달의 결과로 엘리트 계층에서 식물학과 원예술이 유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에 의해 튤립은 자신들의 정원에 희귀하고 인기 많은 식물들을 들여놓고 싶어 했던 부유한 시민들로 인해 널리 퍼져나가게 되었다. 튤립이 교양과 부유함을 드러내는 과시의 수단이 된 것이다. 이것은 이후 대량으로 재배되면서 사람들은 자기만의 희귀한 것 - 즉 새로운 품종 을 원하게 되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튤립의 아버지라고 불렸던 클루시우스는를 유포시켰던 식물학자였다. 하지만 신교도라는 이유로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로 인해 여기저기를 떠돌며 연구를 하게 되었다. 클루시우스는 많은 연구 활동과 서신왕래로 많은 수의 신품종들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고 꽃의 인기는 날로 더해져만 갔다. 이러한 것들은 앞으로 다가올 네덜란드의 튤립열풍의 배경이 되었다.3. 네덜란드의 튤립 열풍1630년대 네덜란드 경제적 상황은 투기(튤립열풍)가 퍼질 수 있는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스페인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이 사라졌고, 30년 전쟁으로 강력한 경쟁자였던 동유럽의 직물산업이 붕괴되어 네덜란드 직물산업이 호황을 맞고 있었다. 당시 유럽국가 가운데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았던 네덜란드인들은 앞다투어 교외에 대저택을 짓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만끽했고, 부에 취한 네덜란드 사람들은 신교의 칼뱅주의적 검약정신이 사라진지 오래였고, 소비 지향적인 국민이 되어갔다. 그런 그들은 과시욕을 드러내며 더 큰 부를 안겨줄 대상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튤립이었다. 꽃에 대한 네덜란드인들의 강한 애착은 지리적인 요인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데, 그들은 국토가 좁은 탓에 대형 공원을 가꿀 수 없었다. 대신 앙증맞은 공원을 만들어 한가운데에 가장 아름다운 꽃을 심었는데, 이 가운데 가장 값진 것이 튤립이었다. 척박하고 모래가 많은 토양에서도 튤립은 잘 자랄 수 있었다.튤립은 16세기 중엽 터키 술레이만에 파견된 네덜란드 대사 오기에르 부스베크가 튤립뿌리를 처음으로 유럽에 전했다고 한다. 튤립이란 이름도 당시 터키인들이 즐겨 쓰던 터번을 의미하는 튤리판에서 유래된 것이다. 1573년 부스베크는 당시 네덜란드 최고의 식물학자였던 카롤루스 크루시우스(튤립의 아버지로 불림)에게 튤립 한 뿌리를 선물한다. 그리고 그는 이를 번식해 다시 여러 사람에게 배분했고, 자신이 집필한 에 기록했다. 초기 튤립은 귀족과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 튤립이 처음 유럽에 꽃을 피운 곳도 고상한 꽃재배를 취미로 하던 당시 유럽 최고의 은행가인 푸거의 아우 꽃의 색깔에 따라 튤립을 다양하게 분류했는데 위계서열에 따라 군계급과 같은 이름을 붙였다. 최상급 꽃은 앞에 황실을 상징하는 붉은 줄무늬가 있어 ‘황제’라고 불렀고, 이어 ‘총독’과 ‘제독’,‘장군’ 순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1624년 황제튤립은 암스테르담 시내의 집 한 채 값과 맞먹는 값에 거래 되었다고 한다. 가장 인기 있는 “최상”의 품종들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진귀하고, 가장 훌륭한 튤립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것은 가장 비싸기도 했던 “셈페르 아우구스투스”인데, 꽃을 지탱하고 있는 가느다란 줄기가 잎과 분명하게 구분이 되어 있고, 그 선명한 색상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줄기와 꽃의 기부가 만나는 곳은 무늬없는 푸른 색인데, 여기서부터 화관이 갑자기 순백색으로 변한다. 여섯 개의 꽃잎 모두 가운데에 가느다란 핏빛 불꽃이 솟아올라 있고, 꽃의 가장자리는 그 핏빛 음영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 꽃을 본 행운아들은 그것이 아프로디테만큼 유혹적인 경이로움, 그 자체라고 한다.튤립은 만개할 때까지 무늬나 색깔을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이 튤립투기를 더 극대화 해 주었는데, 튤립이 어떤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튤립이 아름답고 새로운 색깔과 모양을 내는 것은 바이러스의 감염 때문인데, 강렬하고 화려한 색깔을 띠는 것은 모자이크 바이러스 때문이라 한다.) 이런 이유로 가난한 서민층까지도 일확천금을 꿈꾸며 튤립 구근에 모든 것을 걸었다. 이러한 현상은 많은 튤립 재배자와 튤립의 매매자, 즉 꽃장수들을 탄생시켰는데 당시 튤립 매매를 시작했던 많은 네덜란드인들의 관심사는 상당 부분 튤립의 타고난 아름다움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볼품없어 보이는 갈색 꾸러미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그들은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해 튤립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에서 튤립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자 프랑스인들도 한몫 챙기기 위해 1634년 파리 근교와 프랑스 북부에 튤립시장을 열었다. 이는 튤립열풍이 달 그리고 거대한 폭발튤립 구근에 대한 투기가 계속되던 가운데, 1635년 가을부터 구근 거래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그래서 ‘바람거래’로 불린 튤립 선물거래가 나타났다. 파는 사람은 미래 일정시점에 정해진 종류의 튤립구근을 전달하기로 약속하고 사는 사람은 받을 권리를 갖으며, 결제시점이 되면 시가와 거래가 차이를 현금으로 결제하는 것이다. 점점 더 많은 꽃장수들이 관례를 무시하고 소유하고 있는 튤립만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땅 속에 있는 것까지 사고팔게 되었다. 이제 구근은 더 이상 실제적인 교환 대상이 아니었다. 이때 주고받았던 것은 약속어음이었다. 구근 열풍을 가장 무절제하게 만들었던 것이 바로 약속 어음의 등장이었다. 약속 어음의 도입으로 튤립 매매는 단순히 일 년 내내 가능한 사업 그 이상이 되었다. 그것은 거래를 투기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구근이 아닌 어음 그 자체의 판매와 전매를 조장하였다.대부분의 거래는 어음결제로 이루어졌고, 이 어음의 만기는 대부분 튤립구근을 캐는 다음해 봄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쥐고 있는 것은 현금이 아니라 약속어음이었기 때문에 투기열풍이 끝나갈 무렵 ‘눈에 보이지 않는’ 튤립구근은 돌고 돌아 실체가 없는 거래가 되어 버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기에도 튤립구근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현물을 인도할 수 없었고, 돈조차 없어 결제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튤립을 전매하는데 열을 올렸기 때문에 그 가격이 얼마인지 밝히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튤립 열풍은 1637년 1월 마지막 주와 2월 첫째 주에 연합주 전역에서 절정에 달했다. 이 이례적인 두주일 동안 엄청난 금액의 돈이 일순간에 튤립으로 몰렸다. 튤립 구근 하나가 심지어 5200길더에 팔리기도 하였다. 당시 목수의 1년 수입이었던 250길더와 비교해 보면 그 가격의 거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1637년 2월 첫째 화요일, 튤립가격의 대폭락은 하를렘에서 시작되었다. 튤립 시장의 안정성에 불안감이 감돌기 시작하면서 수요가것이다.
    사회과학| 2005.05.15| 5페이지| 1,000원| 조회(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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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속의 음모이론 평가A좋아요
    영화 속의 음모이론 (CUBE, 아웃브레이크를 보고)서론더운 여름, 우리를 즐겁고 시원하게 해주는 것 중 하나가 귀신 이야기이다. 귀신 이야기가 우리에게 이렇게 영향력이 큰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것이 나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일 것이다. 만약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것이 내 등뒤에 있다면 그것은 몹시 섬뜩한 느낌일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것이 실재하고, 단순한 이야기 속에서가 아닌 현실에서 나를 감시하며, 심지어 나를 조종하고 있다면? 그것은 기분이 나쁜 것을 넘어서 매우 공포스러운 일일 것이다.얼마 전 ‘트루먼 쇼’라는 대흥행을 기록한 영화가 있었다. 물론, 그 당시 한창 문제시되던 몰래카메라라는 소재를 사용했다는 점도 흥행의 원인이었다. 하지만 그 근본적인 이유는 이와 같이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조종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영화로 옮겨놓은 것이 사람들에게 어필했기 때문이 아닐까? 바로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이 음모이론(theory of the conspiracy)이다.90년대에 들어서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 중에 상당수가 음모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JFK’ ‘컨스피러시’, 그리고 얼마 전의 ‘큐브’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화가 음모이론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음모이론은 영화 외의 다른 장르에서는 쉽게 찾기가 힘들어 보인다. 굳이 찾아본다면,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으로’나 김진명의 ‘하늘이여 땅이여’ 정도의 책뿐인 것 같다.그럼 왜 유달리 영화에서 이런 음모이론을 다루고 있는가? 그것은 음모이론의 성격과 관련지어진다. 일단 음모이론은 확실히 정형화된 이론이 아니다. 확실히 정형화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 내용은 상당히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사실이 음모이론의 사실성을 장담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의 소재는 ‘트루먼 쇼’에서 몰래카메라를 사용한 것 같이 바로 우리 생활에 접해있는 것이기 때문에 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 양쪽 측면을 동시에 만족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수단이서 이런 음모이론을 많이 다루고 있는 것이다.그리고 영화에서 이런 음모이론을 많이 다루는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아직 음모이론은 확실히 정립된 이론이 아니며, 어떤 의미에서는 이론으로 성립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음모이론 성립의 기반은 사실로 추정되는 것들이 거부되는 데 있다. 즉,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부족한 경우, 혹은 그런 증거들이 음모의 주체라는 혐의가 짙은 것들에 의해 부인되는 상황을 음모이론은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음모이론은 하나의 확립된 이론으로 존재한다기보다 어떤 가정의 형태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논의가 요즘 들어 활성화되는 것은, 구소련의 붕괴 이후 더욱 강화되고 있는 미국의 힘에 의한 지배, 즉 ‘팍스 아메리카나’로 상징되는 강대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그 첫째 이유일 것이고, 둘째로는 자본주의 체제가 더욱 공고해지면서 “세상에 대해 나는 잘 모르고 있다”는 개개인의 두려움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음모이론이 어떠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에 음모이론 자체가 정론화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목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그렇다면, 이러한 음모이론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음모이론의 주체는 궁극적으로 누구이고 우리의 역사 인식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영화 ‘큐브’와 ‘아웃 브레이크’를 분석함으로써 알아보도록 하자.본론“세상” 이라는 이름을 가진 또 하나의 CUBE‘17576개의 벽이 살인을 시작한다...큐브’라는 구호와 함께 작년 가을 새로운 공포 영화로 선보인 영화, ‘큐브’는 경찰 쿠엔틴, 여의사 할로웨이, 여대생 리븐, 자폐아 카잔, 탈옥수 렌, 건축가 워스, 이렇게 6명의 주인공이 큐브를 탈출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음모이론에 기초한 영화이다’, 혹은 ‘반(反)음모이론에 기초한 영화이다’ 하는 등 의견이 분분한 상태이다. 우리는 이 영화를 어떻게 봐야 은 정부, 군산복합체 등 권력의 음모라고 히스테리적 반응을 보일 때, 워스는 음모란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이 이 큐브를 설계하고 만든 사람임을 밝힌다. 그런데 여기서 워스가 단순히 자신이 이것의 외형을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특별한 음모란 없었다고 하지만 과연 음모가 없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외형은 워스가 만들었지만 누가 이것을 시켰냐고 묻는 질문에 워스는 대답하지 못한다. 또한 그 내부 구조는 워스 조차도 모른다. 그는 단지 이런 것을 만들도록 돈이 들어왔고, 그에 따라 만들었을 뿐이다. 워스 조차도 전부를 아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큐브에 이 사람들을 가두어 두었는가? 그리고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 했는가?음모이론은 이런 질문들에 답하는 방편 중의 하나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루어진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아주 쉽게 생각하는 이른바 ‘이성’이라고 하는 것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설정한 것인가? 그리고 누가 그 ‘이성’에 ‘우월하다’라는 가치를 부여했는가? 이런 상황 속에서 ‘큐브’가 마지막으로 미로의 열쇠를 풀어내는 자로 이른바 반이성적이라 할 수 있는 자폐아를 설정하고 ‘이성’을 말하는 경찰 쿠엔틴이 극도의 폭력성과 잔인성을 지니는 인물로 설정한 것은 아이러니컬하다. 우리는 아무도 모르는 새에 ‘이성’이 우월한 가치라는 것을 자신 안에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를 이렇게 하도록 했는가?음모이론은 결코 큐브와 같은 영화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작하는 글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음모이론은 바로 우리들의 삶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이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른 누군가의 음모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렇게 타인의 의지에 의해 움직이는 세상이 궁극적으로 나 자신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분류’라는 개념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즉, 어떤 실체에 의해서 기준이 정해지고, 그 기준을 벗어나게 되면 그것 갇힌 사람들이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 만들어진 큐브의 운동법칙을 따르지 않으면 죽음을 당하듯이 말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란 또 하나의 큐브일 수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이러한 음모는 누가 주도하는가? 음모이론에서는 음모를 주도하는 실체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이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영화 내용 중에서 할로웨이가 정부나 군산복합체 등 이런저런 권력들에 대해서 말을 하지만, 영화 끝까지 그들에 대한 내용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음모이론의 주체는 누가 되는 것인가?아웃브레이크, 미국, 시스템괴질이 발생하고, 그 마을에서 샘플 혈액을 채취한 미군은 그 마을을 폭격으로 없애버린다. 영화 ‘아웃 브레이크’의 시작 부분이다. ‘아웃 브레이크’는 생물학 무기 개발을 하다가 퍼져나간 바이러스를 은폐하려는 정부와 그것에 맞서 그 바이러스를 퇴치하고 사람들을 구하려하는 정의로운 군인 겸 의사인 샘(더스틴 호프만)의 대결이 그려진 영화이다.그런데 이 영화는 그 스토리가 에이즈에 대한 음모이론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져 더 화제가 된 영화이다. 에이즈는 지난 80년대 초 미국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아직까지도 그 치료약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 아주 무서운 질병이다. 그런데 그 에이즈가 갑자기 생겨난 원인을 설명하는 가설 중 하나가 바로 미국의 생물학 무기 개발설이다. 즉, 미국이 세균전을 준비하기 위해 아주 강력한 바이러스를 개발하다가 나온 것이 에이즈라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은연중에 담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에이즈의 처음 숙주로 주목되는 것이 아프리카 녹색 원숭이인데, ‘아웃 브레이크’에서도 역시 숙주는 아프리카 원숭이라는 점이다. 특히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직접 옮아갈 수 없는 에이즈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퍼진 것 또한 이런 미국에 의한 음모설을 뒷받침한다. 그래서 이 영화가 에이즈에 대한 음모이론을 우회적으로 돌려서 담고 있는 영화라고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에이즈가 실제로 미국에서 실험 도중에 발생한시작하는 글에서 설명했듯이, 사람들이 음모이론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더 공고해진 자본주의 사회 체제와 팍스 아메리카나로 대표되는 미국의 힘이다. 미국이 세계 곳곳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얘기는 정말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들리고 있다. 가깝게는 지난 91년 걸프전을 가리켜 미국이 무기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계획된 음모아래 진행하였다는 주장부터 시작해서, 멀게는 지난 73년 피노체트 칠레 쿠데타를 비롯한 남미의 군사 정변이 모두 미국의 음모였다는 것, 베트남 전쟁이 미국의 도발이었다는 것, 우리나라의 예를 보면 박정희 군사 쿠데타가 미국의 지원 아래에서 이루어졌다는 것 등 매우 많다. 특히, 베트남 전쟁이 북베트남의 기습침공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지속적 도발에 의한 것임을 증명하는 미 정보문서가 공개됨으로써 미국의 음모론이 현실이기도 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경제논리가 강조되면서 신식민주의적 발상 아래 미국이 전 세계에 걸쳐 경제 지배를 획책하고 있다는 논리가 퍼지기도 한다. 특히 IMF사태는 IMF를 통한 미국의 경제 지배라는 이른바 ‘IMF음모론’을 불러올 정도로 음모론은 결코 무시할 수만은 없어 보인다.그렇다면 이런 음모의 주체는 미국이 되는 것인가? 영화 ‘아웃 브레이크’에서는 생물학 무기를 위해서는 사람들을 희생시켜도 된다는 논리, 그러한 음모에 의해서 미국의 고위층이라 할만한 사람들이 움직인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국이 그 일을 행했다는 것보다 누구도 그 생물학 무기가 왜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반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지난 냉전 기간의 군비경쟁을 생각해보자. 그 군비경쟁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안정적인 이윤창출을 노리는 군산복합체들의 음모가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그 군산복합체가 탄생할 수 있는 배경을 제공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를 갖고 있는 현 사회 시스템일 것이다. 그리고 50년대 미국을 휩쓸었던 매카시즘을 떠올려보자. 그것이 정치적 안정성을 추구하는 이들의 가상의 적을 만드
    사회과학| 2005.01.06| 6페이지| 1,000원| 조회(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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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의 정치적 지위와 관련하여 프랑스 혁명 다시 보기 평가C아쉬워요
    목차Ⅰ.서론Ⅱ.혁명전의 프랑스 여성의 사회적 지위Ⅲ.혁명기의 여성1.혁명의 배경1)17, 18세기의 살롱2)계몽주의의 확산2.혁명 활동1)바스티유 그리고 베르사유로의 진격2)살롱 중심의 여성 클럽3)지롱드당의 몰락Ⅳ.프랑스 혁명에서의 여성 배제 이데올로기1.들어가며2.여성의 정치참여에 대한 남성들의 불안감 - 자연적 질서의 파괴3.공적인 여성들에 대한 비난과 애국적 어머니 상 강조4.성차별에 대한 합리화 - 의학적인 뒷받침5.요약Ⅴ.프랑스 혁명과 여성의 지위1.여성의 정치적 성장과 반동 이데올로기2.프랑스 인권 선언의 남성적 성격3.프랑스 헌법상 남성의 지위1)혁명 전기 여성의 지위2)혁명 후기 여성의 지위3)정치적 권리의 획득4.프랑스 혁명의 여성사적 의의Ⅵ.결론내가 바꾸어 쓴 세계사 교과서▶ 다음은 프랑스 인권선언에 나타난 내용이다.「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1789. 8. 26)?제1조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제2조 모든 정치적 결사의 목적은 인간의 자연적이고 소멸될 수 없는 권리를 보존하는 데 있다.?제3조 모든 주권의 원리는 국민에게 있다. 어떠한 단체나 개인도 국민으로부터 명시적으 로 유래하지 않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제6도 법은 일반 의지의 표현이며, 모든 시민은 스스로 또는 대표자를 통해 입법에 참여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다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프랑스 인권선언의 의미이다. ?「남자와 시민의 권리 선언」(1789. 8. 26)?제1조 남자는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제2조 모든 정치적 결사의 목적은 남자의 자연적이고 소멸될 수 없는 권리를 보존하는 데 있다.?제3조 모든 주권의 원리는 남자에게 있다. 어떠한 단체나 개인도 남자로부터 명시적으 로 유래하지 않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제6도 법은 일반 남성 의지의 표현이며, 모든 남자는 스스로 또는 대표자를 통해 입법에 참여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Ⅰ.서론우리가 프랑스 혁명을 떠올릴 때면, 으레 자유와 평등, 박애가 함께 떠수 없게 된다. 그것은 처 아닌 모든 여성을 그 열악과 보호의 필요성 때문에 법적 무능력자로 간주하고 일정한 후견인의 후견 하에 두지 않을 수 없게 된 까닭이기 때문이다.이러한 모순에도 불구하고 부의 수장권과 처의 무능력은 로마법, 게르만법 이래 움직일 수 없는 철칙으로서 당시의 프랑스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물론 앙시엥 레짐하에서도 개인으로서의 여성은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 사람이 없지 않았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남성들에게 족쇄를 채웠던 프랑스의 카테린느 드 메디시스(Catherine de Medicis)),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등 직접 권력에 참여한 여성은 물론이려니와, 루이 XV 때의 Pompadour부인과 같은 사람은 관전에 출입하여 세력을 쥐고 있는 특권 귀족을 내몰고 부인의 친구인 Choiseul 공을 등장시키는 데에 성공할 정도의 걸물이었다. 또 7년 전쟁때에는 국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Hohenzollern왕가에 대한 Pompadour부인의 개인적 혐오로 인하여 프랑스가 전쟁에 가세하였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Dubarry부인 역시 당대의 세력가 Choiseul외상을 실각시킬 정도로 뛰어난 수완가였다. 그러나 이러한 극소수의 특수 여성을 제외하고는 앙시엥 레짐하의 일반여성은 노예적 상태를 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이미 정해진 ‘예속’이라는 운명의 테두리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었다.앙시엥 레짐의 신분 구성은 제1신분이 승려, 제2신분이 귀족, 제3신분이 평민이었으며 그 종교적 지주는 교회였다. 따라서 가톨릭적 권위주위와 금욕, 복종의 윤리가 지배하였던 당시의 일반여성의 지위는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더불어 엄격한 가톨릭 교리에 얽매어 있었다.본래 크리스트교는 모든 사람이 신 앞에서 평등하다는 원칙 아래 남녀를 차별하지 말아야 할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그들의 금욕적 이념에서 여자는 죄의 근원이라고 하여 천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Tertulliants는 여자를 ‘죄악의 문’이라고 까지 하였다.) Gallia 종교회의에서 한 사교는 부인혀 현실타개에 실패하자 국왕은 175년만에 처음으로 삼부회를 소집하였다. 그러나 불평에 가득 찬 제3계급들은 오히려 울분의 분출구를 혁명의 불길로 연결시켰다. 즉 그들은 삼부회에서 이탈하여 국민의회를 형성하고 왕과 그 부류의 특권층과 맞섰던 것이다. 그러나 Louis16세는 국민의회의 모든 요구에 불응했을 뿐만 아니라 사태를 더욱 악화시켜 같은 해 7원 16일에는 국민의 신망을 모으고 있던 재무상 Necker를 해임시키고 새로 Breteuil을 임명하였다. Necker의 해임 소식이 전해지자 파리 시민들은 걷잡을 수 없는 불안에 휩싸였다.그때 식량난으로 허기진 민중은 양식가게, 창고 등을 털어서 굶주린 배를 채웠고 이리하여 파리의 질서는 완전히 깨어지고 말았다. 이미 왕정부에 의하여 구질서를 회복할 가망은 없어지고 말았다. 정치에 대한 극도의 불신감은 정치범을 감금한 바스티유감옥의 공략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그 후에도 식량의 위기는 절정에 달하여 단결한 자유의 외침과 의회의 인권선언만으로는 민중의 굶주린 배는 채워질 수 없었다. 빵집에는 아침부터 기다란 행렬이 늘어섰고 온종일 기다려도 한 조각의 빵도 손에 넣을 수 없었던 부인들의 원망은 하늘을 찌를 듯 하였다. 이 때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 지는 몰라도 베르사유에는 빵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어서 왕이 파리로 들어오기만 하면 빵은 저절로 그를 따라 들어 올 것이라는 예측이 부인들 사이에 퍼지게 되었다. 그것은 곧 이와 같은 사태를 빚어낸 불합리한 정부를 타도하여 왕을 파리로 데려다 놓고 민중의 감시 하에 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발전하였다. 이때부터 즉 1789년 9월 중순부터 10월 5일의 베르사유 대행진에 이르기까지의 시종의 주도권은 완전히 여성들에 의하여 전임되었다. 이 시기에 여성들은 시위를 할 때에는 빈부를 막론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경종을 울리고 북을 치며 관헌과 수비대에게 야유를 퍼붓고, 구경꾼들의 옷소매를 잡아끌어 시위대에 합류시키는가 하면 상점이나 직인들의 작업장으로 들데올로기1.들어가며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프랑스 혁명 초기의 여성들은 누구보다도 더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그런데도 결과적으로는 이렇다 할 정치적 권리를 얻지 못하였다. 혁명의 초기에는 양성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지만 혁명이 전개되고 조직화되는 과정에서 여성은 배제되어 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리고 어떻게 여성은 정치의 주변부로 밀려났을까.2.여성의 정치참여에 대한 남성들의 불안감-자연적 질서의 파괴.공동의 적인 국왕이 살아있을 때 국민들의 목표는 오로지 왕정타도였다. 따라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협력했다. 그러나 왕이 죽고 얻게된 자유를 분배하는 과정에서 남성들은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여성들의 정치적 관심이 높아져 재판정이나 정치 토론에 몰려드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불안해했다. 남성의 영역으로 생각했던 정치에 여성을 참여하게 하는 것은 남녀의 구분을 없애 자신들의 기득권이 위태로워 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이 느낀 위협은 그 시기의 그림에 잘 드러나는데, 이라는 판화를 보면 군인의 복장을 한 남성들과 치마를 입고 총을 든 여성들이 대치하고 있다. 여성들은 남성들을 향해 엉덩이를 보이며 상대방을 조롱하고 있고 그들이 든 창 끝에는 남성을 상징하는 베이컨과 소시지들이 달려있다. 남성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아연해하는 광경이다. (참조)남성들에게 있어 여성의 정치 참여는 오랫동안 당연히 여겨왔던 자연질서인 성차별을 뒤엎는 끔찍한 일이었다. 이런 생각은 반혁명주의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정치적 성향의 남성들이 공유한 것이었다.반혁명주의자들은 사회가 혼란한 것은 여성들이 해방되었기 때문이라며 혁명 당시는 물론 이후로도 줄곧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쓰는 반동적인 담론에는 체제 전복을 기도하는 여성들의 이미지가 주종을 이루었으며 여성에게 사회적 지위를 인정하는 것은 곧 약자 전체의 지위를 올려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는 여성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곧바로 사회 질서가 뒤집힐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군하는 것은 다른 공화파 남성들과 다를 바가 없었고 더욱 신랄하기까지 하였으나 그녀 또한 비난을 받았다. 대다수 남성들과 생각을 같이 하는데도 그녀가 비난받은 것은 책을 씀으로써 공적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녀에게 가해진 비난을 보자.“드 케랄리오 양. 추하고, 나이는 이미 고개를 넘어섰다. 혁명 이전에도 그녀는 흰 머리칼로 인한 불명예와 남성들의 냉담에 대해 평화롭게 글을 씀으로써 스스로를 위안했다. 혁명 후에 선동가적 무질서에 굴복하고 또 한 의심할 바 없이 ‘자궁의 분노’에 지배되었던 그녀는 로베르와 결혼했다. .....가정에서 버림받고 정직한 사람들에 의해 조롱당한 그녀는 이 가련한 남자와 구차하게 연명하며....”)위의 모든 경우에서 볼 때 남성들이 공적인 영역의 여성을 비난할 때는 어김없이 성적인 문제를 들고 비난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는 예쁘지 않다는 것까지 비난에 덧붙인다. 이런 여성들은 자연적 질서를 거슬렀기 때문에 나쁜 여성으로써 매도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애국적 어머니의 역할을 강조한다. 공화국의 이념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는 자녀를 잘 돌볼 의무가 있다고 하고 어머니로서의 미덕을 찬양함으로써 여성이 가족에 묶여 정치 활동에 참여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물론 애국적 어머니의 역할을 의식적이고도 정치적인 프로그램으로 진행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1793년 여성의 정치클럽이 법적으로 금지된 후에 공화적 어머니로써 여성상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여성들의 모임이 금지된 후에도 여성들은 남성들의 모임에 참여하였고 식량부족과 물가고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기도 하였으며, 1774년 겨울에는 식량 폭동의 선두에 서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1775년에는 여성들이 입법부의 방청석에서 배제되고 어떤 종류의 정치적 모임에도 참여할 수 없게 되었으며 다섯 이상이 길에서 모이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애국적 어머니 상은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과 병행하여 대두되었다. 혁명 초기의 그림들이 혁명을 선동하는 여신
    사회과학| 2005.01.06| 20페이지| 2,000원| 조회(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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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인병과 스포츠 운동처방 평가A좋아요
    ▷ 한눈에 보기◁I. 들어가며 : 건강의 정의와 성인병 ------------------------------------ p.2[1] 건강의 정의 ------------------------------------------------ p.2[2] 성인병의 개념 ---------------------------------------------- p.21. 성인병의 정의와 특성2. 성인병의 위험인자3. 위험 수준의 분류II. 성인병의 증상과 예방 및 운동치료 ---------------------------------- p.6[1] 고혈압과 운동 ---------------------------------------------- p.61. 고혈압2. 고혈압의 증상3. 예방 및 치료[2] 당뇨병과 운동 ---------------------------------------------- p.111. 당뇨병2. 당뇨병의 증상3. 예방 및 치료[3] 비만증과 운동 ---------------------------------------------- p.161. 비만증2. 운동 요법3. 식이 요법4. 행동 수정 요법[4] 골다공증과 운동 -------------------------------------------- p.201. 골다공증2. 골다공증의 증상3. 예방 및 치료[5] 심혈관계 질환과 운동 ---------------------------------------- p.231. 고지혈증2. 동맥경화증3. 뇌졸중4. 심근경색증5. 심혈관 질환의 대처요법III. 마치며 : 운동과 스포츠 활동의 효과 ------------------------------- p.34[1]운동의 효과 ----------------------------------------------- p.341. 운동의 생리적 효과2. 운동의 정신적 효과[2] 건강측면에서 본 스포츠 활동 --------------------------------- p.38< 참고 문헌 > -------------------. 인체내에서 콜레스테롤을 혈관으로 운반할 때 관상동맥 질환을 유발시키는 대표적인 위험인자는 저밀도 지단백 콜레스테롤(LDL-C)이며, 고밀도 지단백 콜레스테롤(HDL-C)은 국부 혈관조직에 침착된 콜레스테롤을 제거하는 작용과 더불어 저밀도 지단백 콜레스테롤이 세포에 축적되는 것을 막는 작용을 하여 관상동맥 질환의 예방 인자로 알려져 있다. 운동을 하면 인체 내의 저밀도 지단백 콜레스테롤은 감소하고 고밀도 지단백 콜레스테롤은 증가하여 고지혈증과 비만 방지는 물론 콜레스테롤의 비율을 낮추어 동백경화와 허혈성 심장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 꾸준히 운동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한다.4) 운동부족현대인들은 기계문명의 발달로 인해 많은 일들을 신체활동 없이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간편한 일 처리로 많은 사람들에게 운동부족 현상이 심각해졌고, 자신의 건강 체력이 감퇴되는 등 일상생활에서도 활력이 감소되고 있다. 직장이나 사회생활에서도 과중한 업무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과로한 상태에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생활습관을 길러 비만, 과체중, 고혈압을 예방하고, 당질대사 이상을 조절하며, 고밀도 콜레스테롤의 농도를 증가시키는 등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 인간의 신체는 운동이 부족할 경우 체력과 신체 기관의 기능들이 날로 퇴화하여 관상동맥 질환, 고혈압, 비만, 근골결계 질환 등의 퇴행성 질환이 더욱 가속화되기 때문이다.5) 흡연흡연은 심혈관계, 호흡기계, 신장 등에 질병을 일으키는 위험인자 중의 하나이다. 담배연기 속에 포함되어 있는 니코틴, 타르, 일산화탄소 등은 호흡기와 소화기의 기능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협심증, 폐암 등의 질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흡연과 관련된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70% 이상이나 관상동맥 질환에 걸릴 위험성이 높으며, 하루에 2-3갑 이상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의 경우에는 비흡연자보다 관상동맥 질환에 걸릴 위험성이 2-3배 이상 높다고 한다.흡연자가 피우는 담배 속에 있는 니서 기술하는 사항은 해당 지단의 일반적인 경향이므로, 개인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WHO의 제 1기임상적으로는 경도에서 잠재적 또는 경계영역에 이르는 고혈압 수준이며, 안정시의 과다한 혈액 순환이 특징이다. 즉, 심박출량의 증대가 나타나고 대부분은 1회 박출량의 증가를 동반하지 않는 심박수의 증가에 의한 현상이다. 전신의 혈류저항은 장상범위이며, 혈장용량은 정상보다 적다.WHO의 제 2기임상적으로는 중정도 고혈압이며, 안정시에는 정상적인 순환상태에 있고 심박출량은 정상으로 심박수와 1회 박출량도 정상범위에 있다. 그러나 전신의 혈류저항은 놓으며 혈장 용적, 산소섭취량, 동정맥 산소차도 정상범위이다.WHO의 제 3기임상적으로도 고도로 진행된 고혈압으로서, 안정시의 순환이 1회 박출량의 저하에 의해 낮게 나타난다. 전신의 혈류저항과 형장용적도 높으며 동정맥 산소차는 낮은 심박출량을 보충하기 위하여 증가되어 있다.2. 고혈압의 증상일반적인 고혈압 증상으로는 머리가 무거고 정신이 깨끗하지 않으며, 어지럽고 후두부에 통증이 있으며 목덜미와 어깨의 뻣뻣함 등을 들 수 있고, 또한 가벼운 운동시에도 호흡 곤란을 느끼며, 눈에 충혈이 쉽게 오고 이유 없이 코피가 나기도 하며, 손발이 저리고 찬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증상이 있다고 고혈압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성급한 결정이다. 왜냐하면 환자에 따라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고 심한 증상을 호소하기도 하기 때문이다.1) 두통두통은 보통 긴장을 많이 하면 생기는 증상인데, 고혈압에 의해서도 발생된다. 대부분 고혈압 환자에게서 발생되는 두통은 주로 아침에 일어날 때 심하며, 그 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호전된다. 고혈압에 의한 두통은 혈압을 적절하게 치료하면 사라지기 때문에 긴장성 두통과 구별된다.2) 현기증고혈압 환자가 현기증을 느끼는 경우는 드무나, 치료를 받는 도중에 일시적으로 현기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가끔 발생한다. 이는 혈ㄹ압 강하제 사용 중에 갑자기 일어설 때 일시적으로 혈압이 떨어져 현기증을 느병은 망막, 신장, 신경, 동백 등에 각종 합병증을 일이키는 심각한 질병중의 하나이다. 다음에서 당뇨병의 개요, 증상, 예방 및 치료에 대해서 알아보자.1. 당뇨병의 개요당뇨병은 소변으로 당분이 배설되는 질병으로서, 혈액내의 당분 농도를 이용하여 판정한다. 당뇨 환자도 성인병 증가 추세에 따라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1) 원인 및 판정당뇨병은 몸 안에서 혈당을 조절하는 기관인 췌장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이 부족하거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혈당의 농도가 높아져서 소변으로 포도당이 배설되는 질환이다. 즉 당뇨병은 요(오줌)에서 당(포도당)이 나온다는 데서 명명되었다. 혈당은 섭취한 음식물에서 공급되며 인체 내에서 일종의 연료 역할을 하는 에너지원이다.정상인은 식사 후 섭취한 음식물에 의해 혈당치가 높아지면 그 정도에 따라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되며, 이때 분비된 인슐린이 혈액 내의 당분을 인체의 세포 속으로 운반해 주어 에너지로 활용되며 혈당을 정상치로 유지시켜 준다. 당뇨병 환자의 경우에는 인슐린 분비가 부족하거나, 인슐린이나 수용체가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혈당치가 상승되며, 그에 따라 오줌으로 당이 배설된다. 결국 소변으로 많은 포도당이 나오면서 물을 끌고 나오기 때문에 소변량이 많아지고 이렇게 수분이 많이 빠져나가면 갈증을 느껴 수분을 많이 섭취하게 된다. 또한 인체에 필요한 에너지원이 빠져나가므로 기운이 없어지고 쉽게 피로해지며 많이 먹는데도 불구하고 체중이 감소하는 등 여러 가지 이상이 생기게 된다.소변에서 당이 나온다고 해서 반드시 당뇨병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정상적으로 혈당치가 160~180 mg% 이하인데도 불구하고 요당이 양성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뇨병은 일반인의 상식과는 달리 반드시 혈당 검사에 의해서만 그 진단이 가능하다. 공복시 혈당이 140mg% 이상이거나 식후 2시간 혈당이 200mg% 이상인 경우에 당뇨병으로 판정한다.2) 발병 빈도당뇨병의 발병 빈도는 1000명당 2~3명으로서 연령이 이 안 되도록 간식 섭취에 신경을 써야 한다.*동물성 지방이나 설탕을 많이 사용한 음식은 삼가야 한다.*식품의 중량을 눈대중으로 익혀두는 것이 좋다.*술은 열량이 많으므로 가급적 삼간다.*섬유질을 충분히 먹는다2) 운동요법당뇨병 환자의 운동은 주로 준비운동, 본 운동, 정리운동의 3단계로 구성하는데, 자신의 건강상태와 체력수준을 정확히 평가하여 운동량을 결정해야 한다. 규칙적인 운동은 말초조직의 순환 혈류량을 증가시키고, 근육 및 지방세포의 인슐린 작용을 활성화하여 글루코스 이용을 증가시키므로 체내의 혈당을 쇠시킬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당뇨병에 대한 운동의 효과는 다음과 같다.*체중 조절에 도움이 된다.*인슐린의 작용을 강화시킨다.*동맥경화증을 예방한다*스트레스를 해소한다.*혈전증을 예방한다.(1) 운동 형태당뇨병 환자에게 적합한 운동은 심폐 기능을 향상시키고 당 대사기능을 개선하는 유산소성 운동과 근육량을 유지하거나 증가시키고 근력 및 근지구력을 높여주는 저항성의 웨이트 운동을 본 운동으로 하는 것이다. 또 본 운동은 국소적 근육군을 사용하는 운동보다는 대근육을 사용하는 걷기, 조깅, 달리기, 수영, 자전거 타기 등의 운동을 선택해야 한다. 스트레칭과 같은 정적인 운동이나 유연체조는 준비운동이나 정리운동으로 몸의 유연성을 높여주기 위해서 실시한다. 그러므로 전체 운동량의 구성은 유산소성 운동 80%, 근력운동 15%, 유연성 운동 5% 비율로 구성한다. 당뇨 환자에게 적합한 하루의 운동 에너지 사용량은 200~300 kcal로서 식이요법과 병행하면 효과가 좋다.(2) 운동 강도당뇨병 환자의 운동 강도는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채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유산소성 운동의 강도는 최대 능력의 약 40~80% 사이에서 주의 깊게 처방되어야 하며, 초기에는 40%로 결정하는 것이 적절하다. 또한 갑작스럽게 운동 강도를 증가시키는 것은 절대로 삼가야 하며 일정한 운동 강도를 유지하고 점차적으로 증가시켜야 한다. 운동 강도 결정에는 일반적으로 목표
    예체능| 2005.01.06| 39페이지| 2,000원| 조회(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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