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1. 서론2. 본론ㄱ. 작품의 줄거리ㄴ. 하 사장과 숨은 그림 찾기ㄷ. 일모 선생과 숨은 그림 찾기ㄹ. 직선과 곡선3.결론1. 서론이윤기의 은 1998년에 제29회 동인 문학상을 수상한 단편 소설이다. 다른 소설에서도 그렇듯이 역시 이 소설에도 작가 이윤기가 추구하는 작가 정신이 드러나 있다. 필자로 하여금 같은 단편소설을 네 번이나 읽게 만든 이 고약한 작품을 지금부터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하겠다.2. 본론ㄱ. 작품의 줄거리일모선생은 ‘나’의 은사이다. 지금 일모선생은 대구 근교의 소도시 경산에서 과수원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일모 선생은 마치 ‘권투 선수의 세컨드’처럼 나에게 있어 삶의 휴식처이며, 재충전을 해주는 사람이다. 퇴임한 일모선생은 제자들의 근황과 정보를 수집하며, 또 그것들을 꿰뚫고 있다. 그런 재미로 살아가는 사람이다.미국에 거주하고 있던 나는 자신의 서고에만 있는 자료 때문에 한국을 찾았다. 서울에 있는 호텔의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은 나는 일모선생의 소개로 경주에 있는 한 호텔에서 머물게 되었다. 그 호텔의 사장은 ‘하 사장’이라는 사람으로 그도 역시 일모선생의 제자이다. 나는 그 호텔에서 묵게 되면서 하 사장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알게 된다. 그는 지독한 구두쇠이며, 흑백논리에 사로 잡혀있는 외고집의 사람이다. 또 그런 점은 나의 심사를 거스르기에 충분했다.작품이 완성되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자, 나는 서고에 있던 책을 하 사장의 호텔에 맡기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에 갔다가 다시 귀국했을 때, 나는 맡겨두었던 책들이 냄새나는 재래식 화장실에 처박혀있는 것을 보게 된다. 분노한 나는 일모선생에게 찾아가 하소연하지만, 나의 숙박비를 지원해준 사람이 하 사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참담함을 느낀다.ㄴ. 하 사장과 숨은 그림 찾기이 소설은 ‘나’가 일인칭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다. 얼핏 보면 소설의 주인공인 나인 것 같지만 사실은 이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는 사람은 바로 ‘하 사장’이다. 하 사장은 좋게 말하자면 철저한 자기 관리와 생활태도를 가진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나쁘게 말하자면 지독한 구두쇠에, 세상을 자신만의 고장 난 상자 안에 가두어놓고 바라보는 사람이다. 누군가가 그 고장 난 상자를 고쳐주려 하면 그것은 고장 나지 않았다고 우기며 거부하는 사람이다.필자는 작품의 제목과 내용과의 연관성, 그리고 이 소설이 의미하는 것 등을 이해하지 못해 네 번에 걸쳐 읽고 또 읽고를 반복했다. 어쩌면 별 내용 없는 쉬운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작품 머리에 있는 구절. ‘찾아본 데 있는 것은 어쩌나? 잃어버린 것을 찾아 뒷걸음질할 때마다 마음에 묻어드는 이 섬뜩한 두려움.’과 작품을 끝맺는 구절인 ‘무서운 일이다. 잃어버린 물건이 내가 이미 뒷걸음질해 본 곳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은’은 무언가를 말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보인다.그러면 작품 속의 ‘나’가 말하는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며, 그 잃어버린 것을 발견한 ‘내가 이미 뒷걸음질해 본 곳’은 어디일까?처음에 ‘나’는 하 사장에 대해서 지독한 구두쇠에 외골수이기는 하지만, 그 검소한 생활태도와 자기관리를 보고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하사장의 호텔에 책을 맡기고 미국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그의 책이 냄새나고 습기 찬 재래식 화장실에 쌓여있는 것을 보고는 하 사장을 ‘천박한 수전노, 병적인 양생주의자, 대롱으로 세상을 보는 대롱 눈’이라며 그를 경멸한다.여기에서 ‘나’는 또 하나의 ‘숨은 그림’을 찾은 것이다. 책이라는 소중한 것을 똥처럼 취급하는 하 사장. 그것은 ‘선비’를 대접해주지 않으며 오히려 똥처럼 취급하는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세상을 발견하고 울분을 토한다.하지만, ‘숨은 그림 찾기1’이 말하는 진짜 숨은 그림은 그것이 아니었다. ‘나’는 하 사장에게 그러한 취급을 받고는 위로받고자 하여 일모선생을 찾아간다. 그런데 일모선생은 ‘나’에게 오히려 ‘자네는 너무 고상한 일을 하느라고 발 밑 분별을 제대로 못한 셈’이라며 핀잔을 준다. 그리고 ‘나’는 자신이 호텔에 머물며 작품을 썼을 때 자신을 지원해 주던 ‘운담 프로그램’이라는 장학금이 하 사장의 돈 이었다는 것을 알고 놀란다.‘나’는 하 사장이 그렇게 구두쇠 노릇을 해가며 번 돈을 장학금으로 받으며, 하 사장을 옹졸한 구두쇠라고 여기면서 보란 듯이 자기 돈을 써대던 것이다. 게다가 하 사장은 그렇게 모은 돈으로 글 쓰는 사람들을 후원했던 것인데, ‘나’는 그런 사람을 ‘책과 선비를 똥처럼 생각 하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경멸했던 것이다.‘나’는 하 사장의 삶과 사상은 잘못 됐으며, 세상의 이치를 모르는 꽉 막힌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하 사장이야 말로 정말 세상의 이치를 품에 안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이야 말로 ‘나’가 찾은 진정한 ‘숨은 그림’이다. 그래서 ‘나’는 ‘무서운 일이다. 잃어버린 물건이 내가 이미 뒷걸음질해 본 곳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은’이라며 자신의 심정을 고백한 것이다.ㄷ. 일모 선생과 숨은 그림 찾기위에서 필자는 하 사장을 작품의 주인공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런 의미로 볼 때 일모 선생 역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일모 선생의 이야기는 작품의 전반부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크게 보여주는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작품 전체적으로 는 중요한 비중을 가진 인물이다.우선, 나에게 ‘세컨드’같은 사람이며, 나에게 하 사장을 소개시켜 주었으며, ‘숨은 그림 찾기를 배우는 시간’을 준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조금씩 ‘나’의 공부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다.퇴임한 일모 선생은 제자들의 현황과 자료들을 모으고 있다. ‘나’는 이런 일모 선생을 보며, ‘평생 사람의 역사를 다루어 온 그의 곁에서 보내는 시간은, 나에게는 숨은 그림 찾기를 배우는 시간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의 숨은 그림 찾기는 ‘인생 공부’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작품 전체에서 볼 수 있는 일모 선생의 모습은 지식이 풍부하고, 고상하고, 재치 있으며, 말도 잘한다. ‘나’는 이런 일모 선생을 존경한다. 어찌 보면 일모 선생은 ‘나’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인간관 일 수도 있다. 하 사장은 이런 일모 선생과 많은 면으로 비교되는 인물이라 하겠다.작가는 ‘숨은 그림 찾기1- 직선과 곡선’에서 이 일모 선생과 하 사장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인생과 세상에 대해, 세상에 숨겨진 ‘숨은 그림’에 대해 논하려 한 것이다.
◎목차◎I. 서론II. 본론1.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의 준말 사용 실태2. 왜 준말을 사용하는가3. 준말 사용의 문제점과 개선방향III. 결론I. 서론현대 사회는 과학이 발전하고 통신 매체가 발전해 가면서 전 세계의 지구촌화를 만들고 있다. 이런 과학과 통신매체의 발달은 전화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확연히 알 수 있다. 초기의 전화기는 자석 발전기를 직접 손으로 돌려 교환원을 불러 상대방과의 연결을 부탁하는 방식의 자석식 전화기였다. 1877년 에디슨의 탄소송화기, 1880년에는 수화기만 들면 곧바로 교환원에게 연결되는 방식의 공전식 전화기가 발명되었다. 그리고 1891년에 스트로우져에 의해 자동식 다이얼 전화기가 발명되기에 이른다. 이후 버튼 전화기, 무선전화기 등이 발명되고 비슷한 통신 장비로 삐삐라 불리던 무선 통신기와 휴대전화가 등장하게 된다.필자가 본문에서 다룰 내용은 마직막의 휴대전화에 대해서이다. 휴대전화의 기능 중 하나인 문자 메시지에 대해 조사하려 하는 것이다.오늘날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문자 메시지를 통해 많은 대화를 나누며 다른 여러 가지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한다. 문자를 통해 전해지는 짧은 용건의 표현은 젊은이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수단인 것이다.그렇다면, 젊은이들은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 과연 표준어를 완벽하게 사용할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표준어를 쓰는 부류는 극소수에 달한다. 대부분이(심지어는 국어를 공부하는 국어국문학과의 학생들까지도) 한글을 줄여서 말하는 ‘준말’을 써서 메시지를 보내는데, 본문에서 필자가 논술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의 준말에 관해서이다.문자 메시지 준말에 관한 기존의 자료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고, 이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진 논문은 발견할 수 없다. 이에 필자는 경험과 사용실태를 바탕으로 나름대로 조사한 바를 서술하고 그 장단점과 개선방향을 제시 하도록 한다.II. 본론1.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의 준말 사용 실태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발신할 때는 수신자의 지위, 연령, 친밀도 등에 따라 그 메시지의 문체양상이 달라진다. 사회적으로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일 경우 준말보다는 최대한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려하고, 지위가 낮을 경우에도 자신의 체면을 생각하여 약간의 격식을 갖추어 메시지 문체를 조절한다.a) 날씨가 좋군요. 식사는 하셨습니까?b) 날씨가조아요~식사하셨어용?c) 날씨조타!밥문나?위의 예를 보자. a)는 사회적 지위가 발신자 보다 높은 사람에게, 또는 수신자의 연령이 발신자보다 높은 사람에게 보낼 때의 메시지 양식이다. 이처럼 문자 메시지 수신자의 사회적 지위나 연령이 발신자보다 높을 경우에는 a)같은 양상의 문자 메시지를 발신하게 된다. 그런데 이와 같은 경우라도 수신자와 발신자간의 친밀도가 높을 경우에는 b)와 같은 양상으로 변화할 수도 있다. b)는 이 외에도 연령과 사회적 지위가 같을 경우에 쓸 수가 있다. 이는 자신보다 높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친밀도를 높이기 위한 엔터테인먼트적 도구로서 존댓말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c)는 수신자가 발신자와 사회적 지위가 같고, 연령이 같거나 낮을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 경우이다. 이 경우 친밀도는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친밀도가 최악으로 나쁜 경우라면 예외가 될 수도 있겠지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친밀한 사람에게 발신하는 경우가 평균적이기 때문에 위와 같이 생각해도 무방하겠다.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의 사용에 있어서 사회적 지위, 연령, 친밀도 등은 강한 고려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렇다면 위와 같은 수신자의 신분이 사회적 지위와 연령이 같으며 친밀도가 있을 경우에는 어떠한 양상으로 문자 메시지를 발신할 것인가? 그 양상은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다. 둘째, 준말을 사용한다. 셋째, 이모티콘을 사용한다. 이러한 구분은 개인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젊은 층에서 통용되는 바로는 위와 같은 구분은 어느 정도 타당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첫째로,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 이유는 이렇다. 휴대전화 문자메세지로 한번에 보낼 수 있는 내용의 양은 한정적이다. 보통 휴대전화의 한 화면에 차기만 하면 그 이상의 글자는 전송되지 않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러한 메시지 내용의 양적 한도성을 생각할 때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 쓰는 것이 휠씬 경제적이다. 이러한 타당성을 파악한 대부분의 젊은층에서는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 문자 메세지를 발송하는 것을 법칙과 같이 삼았고, 그렇게 문자 메시지를 발송해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둘째의 준말을 사용하는 것 또한 첫째와 같은 원리이다. 긴 단어를 나름대로 줄여서 메시지를 작성한다면 많은 여백을 절약할 수 있다. 셋째의 이모티콘 사용역시 첫째, 둘째와 같은 범주로 이해할 수 있겠으나, 그와는 약간 다른 성격으로 신세대의 흥미와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겠다. 요즘 세대의 청소년과 젊은층에서는 새로운 것을 선호하고 추종한다. 이모티콘은 문자의 조합을 이용하여 어떠한 형상을 만들어 내는데, 사람의 표정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문자의 조합으로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이러한 이모티콘의 특징이 요즘 젊은 층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조건을 갖춘 문자 체계인 셈이다.위에서 제시한 ,, 등의 예를 사용의 실재를 통해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다.(보기 1)오늘일어나보니까니문자가와있더라.어젯밤너무피곤해서문자확인도하지못하고잠들어버렸어.그래서이제야답장보내.야.어제교수님이내주신과제뭔지알지.나지금도서관에있으니까와서같이공부하자.과제도좀알려주고.아까부터이빨도아프고머리도지끈거리고죽겠어.너여기올거면올때약국들러서진통제좀사다주라.땡큐~보기1)은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 사용실태의 예를 든 것이다. 보기에 작성해놓은 표의 칸 하나를 휴대전화의 문자 작성 한도라 할 때, 띄어쓰기를 하게 되면 그 내용이 모두 하나의 칸 안에 들어가지 않게 된다. 또한, 저러한 문자 메시지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모두 이해하게 된다. 보기1)같은 경우는 휴대전화의 기계구조상 어쩔 수 없는 방식을 취한것이라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이 이대로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보기2)인나봉께니문자와있네.어젯밤에피곤해서문자못보고이제야답장보낸다.어제교수님이낸과제알지.나짐도서관있응께일루와.공부과제같이하자.아까부터이빨머리가아파죽겄다.올거면약좀사와라.위의 보기2)는 보기1)과 같은 내용이다. 보기1)의 내용을 더 적은 글자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다보니 저러한 문장이 형성되었다. 보기2)같은 양상의 문자 메시지 내용의 특징은 준말을 사용한다는 것과, 조사가 생략되어 있다는 점이다. 보기2)에서 나타나는 준말은 “일어나보니까-인나봉께”, “지금-짐” 등이 있으며, 조사의 생략은 “문자가(-가)”, “도사관에(-에)”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문자 메시지의 간략화는 이미 대중화 되어있다.이번에는 문자 메시지에 쓰이는 대표적 준말들을 나열해 보겠다.보기3)표준어준말표준어준말표준어준말사랑해샹훼- 해라- 하셩됐다즐지금짐-이다- 이당꺼져라즐일어나다인나다내일낼이런뷁싫다시로하하하ㅎㅎㅎ헉허걱싫다시러킬킬킬ㅋㅋㅋ- 하면- 하믄좋다조아가르치다갈치다있다이따좋다쪼아- 해요- 해용오랜만올만조금좀(일)요일(일)욜화이팅홧팅시험셤데리고델꼬가지고가꼬위의 보기3)에서 제시한 이외에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준말들이 존재한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의 준말은 은어라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그 생성에 관해 살펴보면 개인별로 개성에 따라 그때그때 무작위로 만들어 내는 것이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라서 정확한 생성 과정은 파악하기 힘들다.또한 이러한 준말 중에는 다수의 외계어가 섞여있기도 하다. “즐"이나 ”뷁“같은 경우는 국어 표기법을 완전히 무시한 형태의 외계어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유행어이기도 하다. 그것은 그 의미 불확실한 글자 속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그러한 의미로 대중들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갈래에서 볼 때 인터넷 용어인 ”아햏햏“도 마찬가지의 경우라 할 수 있다.또, 일련의 준말들을 살펴보면 발음이 비슷한 문자를 무작위로 대체하여 만들어 내는 것이라 이해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자메세지의 준말 사용은 이모티콘이라는 또 다른 문자 표현 수단을 만들어 낸다.이모티콘은 감정의 표현을 문자를 이용해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이모티콘은 어떠한 양상으로 사용되는가. 대표적 이모티콘의 예를 들어보겠다.보기4)뜻이모티콘뜻이모티콘뜻이모티콘부정(-- )( --)긍정(--)(__)욕심난다$ ,.$좋다^0^자랑하다vㅡㅡv알았다ㅇㅇ슬프다ㅠㅠ쑥쓰럽다*^0^*피곤하다ㅍ.ㅍ난감하다-_-;;발표요청(ㅡ0ㅡ)/어이없다ㅡㅡ;;어지럽다@.@만세\ㅜ0ㅜ/욕하다ㅗㅡㅡㅗ토라지다>.
근대 소설에 대한 고찰 요약- 전문수 外 2명 -과 목 명: 현대문학강독담당교수: 교수님제 출 일: 2254년 04월 25일 월요일우 주 대 학 교 인 문 대 학국 어 국 문 학 과 1학년 5427023김 이 박■ 목 차 ■1. 근대소설의 정착과 인식지평의 분화기- 전 문 수 -2. 소설경향의 몇가지 흐름- 張 良 守 -3. 해방공간의 소설- 김 상 태 -1. 근대소설의 정착과 인식지평의 분화기- 전 문 수 -소설은 인간의 한살이에 대해 알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하여 발생 된 문화양식의 하나이다. 소설은 세계에 대한 작가의 인식방식을 드러내게 되는데, 그 세계란 인간사이의 관계구조 속에서의 인간과 사회(제도구조)와의 관계구도 속에서의 사회. 이 두 가지이다.기본입론에 입각하여 이 두 측면은 다시 두 갈래로 하위 분류할 수 있게 된다. 첫 번째 측면은 주인공의 삶이 타인의 성정으로 인한 것과 세계에 대한 주인공 자기자신의 성정으로 나눌 수 있으며, 두 번째 측면은 주인공의 삶이 사회제도에 의해 야기되는 문제이더라도 과거의 제도로 문제가 발생하느냐 현제도로 해서 발생하느냐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우리의 고전소설에서는 첫 번째 측면에서 타인의 성정을 문제로 한 권선징악적 윤리 소설과, 사회제도가 문제가 되더라도 과거의(옛 왕조 때) 제도문제로 시각을 바꾸어 신제도에 대한 문제를 피했다.그런데 1920년대 근대소설로 오면서 이 두 가닥의 성격이 변화한다. 하나는 인간 성정이 문제되더라도 주인공 자신의 성정, 즉 개인주의적 절대 자유사유에 의한 세계인식으로 되고, 또다른 하나는 사회제도라도 당대의 현제도에 대대 문제를 바로 다룬다. 기존 제도의 바른 수행이 아니라 개조에 목적을 갖는 것이며, 역사에 피동체가 아니라 능동적 주체로 된다.이런 시각에서 보면 1921년에서 1930년 사이의 소설은 개인주의적 소설군과 사회주의적 소설군으로 구분될 수 있다. 이런 두 인식지평이 열리면서 각각은 다시 분화를 일으켜 다음 시기의 여러 현대소설적 남상을 만든다.1. 개인적 삶 같은 노동자들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서로는 애정을 잃지 않는다. 참고 견디면 내일의 밝음이 온다는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다. 한편, 그는 정직한 작가였다. 작품과 작가 사이가 밀착되어 신뢰되는 특징이 있다.1921년 초의 염상섭과 현진건은 근대소설의 두 인식지평을 대척적인 자리에서 우람하게 열고 있는 것이다.2. 세계인식의 두 대립과 분화 - 주요섭 ? 최서해 ? 이익상 ? 나도향식민지하에서의 빈곤에 대한 인식이 구체화 되는 단계에 접어들며 하층민의 빈곤에 관심의 초점이 놓인다. 주요섭은 이런 가난의 분리현상을 예증한다. 「인력거꾼」에서는 노동자의 참상이 치밀하게 해부되는데, 인력거를 타고 다니는 자와는 극단적인 대립을 보인다. 식민지하의 고통이 공유되지 않고 분리되는 것이다.최서해는 소외된 계층의 실제 체험을 작품화한다는 데서 전혀 기존 관념을 깨고 있다. 일인칭 고백체의 시간을 통해 생생한 가난의 체험을 호소한다. 체험적 수기들은 세련된 소설 장치가 아니라 의식된 민중의 항의인 것이다. 따라서, 민중들의 반항이 행동화하여 잘못된 세계를 개조하고자한다. 이것은 가난의 적을 라는 쪽으로 예각하게 하여 사회적 계급의식으로 발전해 가는 것이다. 최서해를 통해 소설적 인식지평이 다른 차원에서 열리고 있다는 것이 소설사적 의의가 아닌가 한다.이익상은 파스큘라의 초기 회원으로서 프로작가로 활동했다. 그는 「광란」과 「쫓기어 가는 이들」등에서 있는 자의 돈을 훔친 도둑과 빚으로부터 도망가는 농민을 정당화 한다. 최서해보다는 계급적 의식이 도식화 되고 있다.이상 주요섭, 최서해, 이익상의 소설을 볼 때 이 시기는 사회적 삶에 대한 고통이 구체화 된다는데 특징이 있다. 소설사적으로 보면 세계에 대한 인식지평이 그만큼 확대되기에 장르의 분화가 일어났다고 할 것이다.나도향 역시 하층민의 고통을 문제로 삼았지만 앞의 소설가들과는 매우 다르다. 신계급의식이 아니고 구계급의식인 것이다. 아직도 나도향 당대에는 이런 실상이 사실이었다. 식민지적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신계급 구성이 재편되는 신문연재소설이었다. 초기 문학사의 이런 이원화현상을 가져오게 한 일제 식민지 문화정책과의 관계를 앞으로 깊이 다루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와 관련한 역사소설의 성격문제도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하더라도 그것은 현재화된 해석없이는 작가정신을 찾을 수 없다.4. 농촌현실에 대한 두 시각 - 이기영 ? 조명희 ? 이무영 ? 심훈이기영은 그의 많은 작품에서 소작인이 벌이는 지주와의 투쟁을 다루었다. 그는 프로작가를 대표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농민의 착취문제를 의도적으로 다루었다고 봐진다. 그러나, 농민의 참상이 그렇더라도 계획적인 집단투쟁을 유도하려는 작가의식이 지나치게 노출되어 문학으로서의 문제점 역시 가져왔다. 그 농민의 참상이 일제의 수탈 때문이었다면 소설사의 지평뿐만 아니라 항일문학의 측면에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조명희는 「낙동강」등의 농촌소설을 썼다. 김기진은 당시 조명희의 「낙동강」을 두고 거의 프로소설의 완성품에 가깝다고까지 높이 평가하였다. 그러나, 농촌의 참상을 구체적으로 그리는데는 소홀하고 분노와 규탄만 일삼아 전투성만 암시하였다. 그러나, 일제 수탈의 구체적 현장이 농촌이었고 이로 하여 토지를 잃고 만주 등지로 이주하는 민족이동 현상이 실제였고보면 이들 작가의 시선은 일단 정확했던 것이라 본다.이무영은 「흙을 그리는 마음」을 필두로 농촌소설에 전념했다. 그러나, 마치 농촌이 이상향처럼 그려지고 있어서 작가의 주관과 현실적 객관 사이의 시각차를 갖는다. 심훈도 「상록수」가 동아일보에 당선되어 농촌 소설가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농촌계몽소설이다. 농촌의 아픔을 함께 나누지 않는 지도자로서의 자세가 현장과 유리되어 있다. 농촌을 소재로 했으나 진정한 농민소설로서의 문제점을 남긴다.5. 동반과 순수의 비화해 - 이효석 ? 이태준 ? 유진오 ? 채만식순수 서정소설을 쓴 작가라고 취급되는 이효석이나 이태준의 작품들은 당시으 일제 탄압에 의해 도피처를 찾아 위장되어 있다는 증거들을 찾을 수 있어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이효석의 여러 몇가지 흐름- 張 良 守 -1930년에서 1945년 해방이 되기 전까지의 한국문단은 여러 가지 색채와 음성이 뒤섞인 성격의 것이었다. 1920년대에는 퇴폐적인 경향이, 그 중반 이후로는 프로문학과 국민문학이 첨예하게 맞섰던 사실과 견주어보면, 문단을 주도하는 어떠한 흐름도 없었다는 것이 이 시기의 특성이라면 특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한민족이 일본이란 이민족의 강압에 매여 고통 속에 살아간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작품 속에 어떻게 수용했는가에 주목하며 작가적 태도, 작품 경향에서 몇갈래의 흐름을 정리할 수 있다.1. 제한된 현실에서의 비판적 리얼리즘의 실현이 시기의 작가들은 조선총독부의 강한 검열, 그로 인한 삭제 ? 복자 ? 게제금지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러한 극한적인 문단상황에도 불구하고 초소한의 허용된 여건 아래에서 현실참여적인 작품을 발표한 작가들이 있었다.이태준은 9인회의 회원으로 KAPF로 대표되는 비문학적 정치주의에 반대, 예술성을 중시하여 순수문학의 기수가 되었다.그의 소설을 가리켜 역사 부재 ? 사회 부재의 문학, 감상적 ? 패배주의적인 문학이라고 하는 주장이 현재까지 학계의 중론처럼 되어 있지만 이제 이러한 피상적이고 사실과 유리된 논의는 재검토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일제치하 한국인의 고통스런 삶을 작품화 하고 있다.다른 작가들의 이 시대의 작품에도 물론 삶의 고달픔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작품의 경우 그 가난과 고통의 원인이 밝혀져 있지 않은데 반해 이태준은 그에 대해 언급을 하고 있다는 점은 결코 가벼이 평가해서는 안 될 일일 것이다.이태준의 소설은 항일적인 발언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문학이 흔히 빠지기 쉬운 단선적 모습, 경직성을 극복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이태준은 1930년대 한국문단의 정상의 자리를 차지한 작가이며 그의 작품은 한국단편문학을 1920년대의 수준에서 한 단계 더 끌어올려놓는 공적을 이룩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채만식은 1930년대 이후 한반도의 식민지 현실을 정확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그 반역사상을다. 이에 대부분의 문인들은 현실에서 얼굴을 돌리거나 멀리 도피해버렸다.이효석은 유진오와 더불어 한국현대문학사에서 가장 성격이 뚜렷한 동반자작가의 한사람이다. 그러나 프로문학에 대한 일제의 탄압이 차츰 강화되자 유약한 서생의 면모가 특히 현저했던 그는 작가적 태도를 바꾸어 버렸다.이후 그의 작품은 원시적인 성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의 소설에서는 원시적인 생명력이 넘쳐 흘러 어떤 신비감마저 불러일으킨다. 그 특유의 시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문장에 의해 청신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다. 세련된 언어감각에 의해 서술 묘사된 효석의 작품들은 뛰어난 형식적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의식없는 분방한 자웅의 교섭은 동물적 쾌락 이상의 의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 성의 결합에 창조적 ? 재생산적 의미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그의 소설이 현실에 발을 딛고 있지 않다는 것과 함께 효석의 문학에서의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김유정은 어리석고 착한 시골사람들의 삶을 유머러스하게 그리는 특유의 소설세계를 보여준다. 흔히 그의 대표작으로 지목되는 작품들을 독자는 당시의 현실과 관련지어 심각성을 가지고 읽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 작품에서 식민지가 된 나라의 현실의 어두운 그림자나 농민에 대한 제도적 착취 같은 것은 감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의 작품들은 잘못된 현실을 정면에서 해부하고 이를 문제삼고 있지는 않다. 이런 면에서 그는 당시의 일제 식민통치라는 현실에서 한걸음 물러서 있는 것이 사실이다.유정의 작품은 다같이 농촌과 농민의 삶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이효석의 작품세계와는 다른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할 것이다. 다만 그 궁핍의 원인까지를 말하라고 한다는 것은 당시의 심한 검열이란 현실을 감안할 때 그에게 무리한 요구라 해야 할 것이다.유진오는 1932년까지 대표적인 동반작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는 KAPF에 대한 2차에 걸친 검거선풍 이후 작가로서의 모습을 바꾸어 버렸다.유진오는 투명한 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현실과 타협하다.
※요약 논문※신문학 초기 문예사조 수용의한 양상과 그 의의An Aspect of Accepting the Trendof Literary Thoughts in the Early Daysof New Literature and Its Significance안양전문대학 논문집 제 20집. 1997.김 승 종 교수목 차I. 서론II. 수용의 기본입장과 관점1. ‘예술을 위한 예술’과 ‘인생을 위한 예술’2. 민족문학의 개성론3. 보편성에 입각한 특수성III. 수용태와 논리1. 고전주의2. 낭만주의3. Feminism4. 자연주의IV. 결론I. 서 론1910년 후반에 나타난 안서의 상징주의 수용은 당대의 첨단 문예사조와 호흡을 같이 해보겠다는 서구수용 의지의 발동이었다. 다른 편으로 말하면 서구에의 열등 컴플렉스를 그 모방을 통하여 해소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본고에서 검토될 안서의 포괄적 문예사조 수용은 상징주의의 역사적 좌표를 보다 연락있게 점검하고 그 지향을 조명해보기 위해 이에 도달하게 된 서구 선행 문예사조의 본질과 그 변천을 파악해보겠다는 기획에서 이루어진다.안서의 문예사조 수용의 검토는, 그의 대표적 업적의 하나인 상징주의의 수용과 거의 동렬선상에서 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사조론 서술관점에 의거한 안서의 첫 문예사조 수용 작업은 「學生界」제2호(1920. 9. 1)에서 고전주의를 언급한 것이었다. 그리고 동지 5호에서(1920. 12. 1)에서 낭만주의를 소개하고 있다.본고는 상징주의를 제외하고 이러한 면모를 중심으로 안서의 문예사조 수용을 살펴보려 한다. 이에 앞서서, 문예사조의 수용과 관련하여 그 기본입장과 관점 파악에 유효한 「‘예술을 위한 예술’과 ‘인생을 위한 예술’」, 「민족문학」의 개성론, 시대반영으로서의 문학관 및 각 문예사조가 입각한 「시대정신」에 대한 소견 등을 역시 동일한 검토 관점으로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II. 수용의 기본입장과 관점1. ‘예술을 위한 예술’과 ‘인생을 위한 예술’안서의 입장은 ‘예술을위한예술’과 ‘인생을위한예술’을 지양한 예술교양주의로 요약되는데, 예술적 입장에 입각된 인생 감화가 그 내포였다.추정컨대, 안서는 예술은 인생고를 해소시켜 평탄하게 이끌어 주는 위무의 기능이 있다는 견해를 가진다고 추정된다. 이러한 견해는 당대 식민지 상황과 결부될 때, 현실도피, 역사의식의 몰각으로 재단되어 비난을 면치못할 것이지만, 「위무의 기능」의 적용을 민족적 현실로까지 확대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지극히 소박하고 순응적인 현실관임은 물론이다.이러한 입장표명은 안서가 근본적으로 문학을 예술로 보는 관점을 가지고 있기에 ‘예술을 위한 예술’의 자율성과 심미성에 공명하고 한국근대시문학의 예술로서의 개화를 바라고 있지만 한편, 일제의 식민지배치하의 궁핍한 시대현실 하에 있어서 문학의 사회 참여를 통한 계몽적 역할에 맹목일 수 없는 처지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즉 문학의 예술성 지향과 시대현실과의 갈등을 전자의 입장에서 포괄하려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안서를 포함 전대의 공리주의 시문학을 비판하고 시의 예술성에 눈떠, 한국근대시문학의 예술성 추구의 노선을 택한 사람들의 사회적, 역사적 한계로서 공과와 포폄이 분기되는 그들 운명의 단면이다.2. 민족문학의 개성론안서는 문예사조를 서구 전체에 적용하여 일반적으로 개설하기에 앞서 각국 민족문학의 개성적 차별성을 언급하려 시도하였다. 안서는 이어서 근대 이전 교통 ? 통신의 두절로 커다란 편차있던 각국 민족문학의 성격이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국제사회가 개막되면서 급기야 동일한 사조적 경향을 띠게 되었다고 사정을 설명, 일반적인 개괄의 단서를 확보한 뒤, 각 민족문학의 독자적인 특징이 지속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안서는 이에 연결시켜 한국민족문학의 개성을 우회적으로 거론하게 된다. 이러한 한국문학 개성론은 제한적이고도 보수적인 민족주의의 소산이 아니라 개방된 서구 수용에 입각한 세계문학의 개관과 전망을 통하여 거득되어진 것이며, 이는 안서의 시대관과 관련있음을 부연하고 싶다.3. 보편성에 입각된 특수성안서는 문예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띤 것이 그 시대의 시대사상이라고 소개한다. 이것은 시대현실 반영론과 이에 따른 realism론을 기대케 하나, 문학이 반영하는 시대정신은 그러한 맥락보다는 근대의 전개로 야기된 정신적 풍토이다.안서는 문예사조론에 접근하는 객관적 태도에 대하여 시대사상, 지방색 또는 국민성 등 특수성이 형상화된 문학작품은 어디까지나 문학의 보편적 가치인 ‘文學의 文學되는 本質’의 다양한 변주들인 바, 이는 어디까지나 그 본질적 가치에 입각되어져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 구체적인 세목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문학의 예술성 즉 심미적 자율성을 의미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안서의 견해는 타당성을 가지며, 앞서 점검된대로 문학의 자율성과 심미성을 중시하면서 근본적으로 문학을 예술로 보는 시각과 본연의 개성을 인정하되 서구개방을 통한 한국시문학의 보편성 추구에 강세를 둔 안서의 의식과 동일한 일관성을 띄고 있다고 할 것이다.III. 수용태와 논리1. 고전주의안서는 르네상스 이후 인간성 회복을 위한 당대 인문주의자들의 그리스, 로마의 고전중시를 소개한 뒤, 이들이 모방하였고 체현했던 그리스 로마의 예술적 경향을 요약하는데, 신고전주의자들이 완성하게된 삼일치의 법칙 Three Unites 적합성의 법칙 decorum의 근원을 제시하고 나서, 古典主義에 대한 입장을 개진한다.안서는 古典主義에 대해 비판적 면모를 드러내는데, 안서는 자신의 古典主義비판이 시인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지 않고 고전의 규범만을 모방하려드는 점에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태도는 문예사조사상 古典主義의 일반적 한계의 지적과 동일하며, 한편, 안서의 전신자로서의 비판적 수용은 그것의 단순하고도 획일적인 답습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안서는 수용상황과 古典主義의 의고적 태도를 결부시켜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했다.안서가 古典主義에 보이는 비판적 태도의 근거는 그의 古典主義에 대한 글에서 나타나는 가치론적 비판과, 당대 인사들의 보수적인 문학관을 의고주의로 비판하는 것. 그리고 조선조이래 강력한 주류를 형성해 이 시기까지 그 여열을 떨치던 성리학적 시관과 시작의 답습태도에 충격을 가하는 견해이다. 안서가 古典主義를 비판적으로 소개한 이유가 밝혀지며, 당부를 떠나 안서의 문예사조 점검이 단순한 이입사례로 파악되지 않는 작업임을 가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이러한 전대비판과 관련된 시의식은 안서뿐만아니라, 근대의식과 서구세례를 받은 초기 한국신문학 개척자에게 동일하게 검출된 수 있는 개연성으로 볼 수도 있지만, 춘원과 안서를 제외하고는 명백하게 이관계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면서 주장을 개진하는 예를 더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차원에서 안서가 춘원의 영향을 전수하였다는 사실을 설정해 볼 수 있다. 춘원의 초기 문학론의 핵심인 「情 의 分子」강조도 그의 글에서 연관성을 띤채 시경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즉, 춘원의 정서강조는 시경의 성리학적 교훈주의에 입각한 재래의 해석을 비판하는데서 강도 높게 제기되고 있다.안서의 고전주의 소개는 문예사조 진전상 노정된 고전주의 한계에 대한 학술상의 비판을 소화하여 신문학건설 과제에서 점검된 당대의 문학현실을 교정하려는 전신자로서의 자기주장의 일면이 시론의 성격을 띤 채 내포되어 있다고 하겠다.고전주의의 전통주의가 경박한 개혁론을 불신하는데 그 한 근거가 있었다는 점이 안서에게 의식되지 않은 것과 고전주의의 전통지향이 민족문학의 자기정체성의 지속의 측면에서 유의미하게 저작되지 않았던 까닭은 중국에의 사대와 관련된 당대의 잔존 역사적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2. 낭만주의낭만주의에 대한 안서의 입장은 전항에서 이미 예견되었듯이 호의적이고 지지적이다.안서는 낭만주의의 도래는 古典主義를 반대한 운동의 결과이며, ‘近代文學의 모든 根底’를 구축하게 되었다고 소개함으로써, 낭만주의에 대한 안서의 이해와 입장 파악에 포괄적인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안서는 낭만주의가 형성되는데 있어 그 근거를 제시한 사상적 향도자가 루소라 지적하고, ‘Return to Nature’에 함축된 그의 주장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이 소개에서 자아와 이상 구현을 전제로 한, 낭만주의의 상상력 발휘, 내용위주, 주관성, 그리고 감정과 정서의 중시경향이 ‘抒情的詩的傾向과 同一’하다는 인용 첨부는 적절한 소개일 뿐 아니라, ‘一面의 正鵠’이란 동조에서 20년대 중반 이후 안서 시론에서 주요한 거점이 되는 감정 중시론의 배반을 확인할 수 있겠다. 또한, 안서는 개성의 표현에 관련된 낭만주의의 자유분방한 태도가 이끌어낸 현실의식의 상대적 결여를 소개한 글을 썼는데, 이러한 문면이지만, 민족문학 건설의 의지 하에 이러한 이해가 근거가 되어 20년대 중반이후 일견 당대 현실과 무관해 보이는, 전통적 소재위주의 국민문학 운동에 투신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다시말하면 그것이 식민지 상황이라는 시대 현실 하에 일응 요구되는 저항시의 대상(代償)으로서의 낭만적 우회라는 사정이 이해될 수 있을 것이란 추정이다.안서의 시에 대한 의견은 말할 것도 없이 시에서 열정과 정석 중시되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요구되는 것인데 그것은 「상징주의적 관점의 견해」이다. 이 시기 안서 시론의 기본 골격이 낭만주의에 입각한 상징주의 시론이라는 요약이 가능하다.그동안 상징주의가 자유시론과 더불어 집중적으로 조명되면서 안서의 낭만적 경향의 검토가 간과되었는데, 낭만주의 시론이 상징주의 시론의 배면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3. Feminism근대문학의 한 사조이자 한 경향으로서의 Feminism에 대한 안서의 소개는 아마도 이 땅 최초의 이 관계 사례가 되지 않을까 한다. 남녀평등과 부인의 지위향상은 개화기 이래 몇몇 시론(時論)에서 개진되었으나, 문학관의 시각으로 Feminism을 거론하게된 예로서는 처음이 아닌가 한다. 안서의 Feminism 소개는 르네상스이래 발전되어온 인간성의 자각, 개성의 중시가 자연과학의 발흥과 더불어 인습적으로 시대를 지배하던 종교?도덕상의 표준과 권위를 해제시키는 과정에서 형성된 개인주의?합리주의 경향을 자연주의의 배경으로 논하는 과정에서 그 한 방면의 양상으로 참조되고 있다.
◇목차◇I. 서론II. 본론1. 유행어의 사용 양상에 대한 보고1) 인터넷 유행어2) 방송 유행어2. 유행어의 의미와 특성에 대한 보고1) 인터넷 유행어2) 방송 유행어3) 그 밖의 유행어3. 유행어의 기능과 개선점III. 결론●참고●I. 서론오늘날 현대인의 언어생활은 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에 따라 상당히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비단 사람뿐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속해있는 사회상황이라든지 그 사회에 유행하고 있는 언어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다. 본문에서는 그 사회에 유행하는 유행어와 그 유행어의 양상 및 특성 등을 조사하여 기술하도록 한다.유행어의 사전적 의미는 “어느 한 시기에 많은 사람들 사이에 많이 쓰이는 말.”)이라 한다. 사전적 의미 그대로 유행어는 어느 한 시기에 대중들에게 널리 통용되는 언어이다. 근래에 들어 인터넷과 대중매체의 발달이 극대화되고 그 양을 알 수 없는 유행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유행어의 성격 또한 다양하다. 이러한 유행어들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소나기처럼 쏟아져 나오며, 사용되고 있는가. 필자는 유행어의 메카라 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들을 중점적으로 조사하여 유행어의 종류, 유행어가 만연하는 이유 등을 생각해 보겠다. 또한 이런 유행어 사용의 장단점을 고찰해 보고, 앞으로 우리의 언어생활에 있어서 올바른 방향은 어떠한 것인지 조심스럽게 제시해 보기로 한다.II. 본론1. 유행어의 사용 양상에 대한 보고유행어의 사용 범위는 실로 방대하다.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단기간 안에 모든 양상을 조사하고 논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만큼 방대하다. 그러나 필자는 본문에서 그런 유행어 중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유행어들을 조사하여 종류별로 논술하도록 한다.1) 인터넷 유행어요즘 인터넷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인터넷은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인터넷은 대중들에게 수많은 정보를 수용할 수 있도록 해주지만 그에 따른 폐단도 많다. 인터넷이라는 것은 익명성을 보장해 주기 때문에 그러한 익명성을 이용하여 올바 등에서 유저들 사이에 통용되던 말로 “즐 게임 하세요.”라는 말이 있었다. 그 의미는 “즐겁게 게임 하세요.”, “좋은 시간 되세요” 등의 호의적인 인사말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말이 널리 사용되면서 그 앞 글자만을 따와서 “즐” 이라는 말이 단독적으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그 의미는 변질되었다. “귀찮으니 꺼져라.”, “됐다.”, “시끄럽다.” 등의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그것이 한글자라는 이유에서 길고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네티즌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고 널리 쓰이게 되자, 현실세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었다."KIN"은 “즐”의 또 다른 말로, KIN이라는 글자를 시계방향으로 돌리며 마치 한글 단어인 “즐”과 같은 형태를 보이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KIN"과 “즐”은 같은 의미의 유행어로 쓰이게 되었다. 이를 응용해 시중에 판매되는 라는 제품을 라고 부르는 풍조도 생겨났다.다) 뷁뷁은 표준어가 아니다. 한글 맞춤법을 완전히 무시한 단어인데도 이 단어는 유행어가 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이며, 이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뷁’이라는 단어의 유래를 살펴보면 실소가 나온다. 문희준이라는 가수의 곡 중에서 “왜 날 Break”라는 가사가 있는데, 그 가수의 발음을 보면 "Break"를 “뷁”이라고 발음 한다는 것이다. 이 가수의 안티팬들이 그것을 듣고 그 가수를 비난하는 용도로 만든 것이 이 “뷁”이라는 단어이다.말로 표현하기 어렵거나 형용하기 힘든 것, 또는 상황을 빗대어 사용하며, 그 정확한 의미는 정의 내리기 어렵다. 이러한 애매한 특성 때문에 더욱 많이 사용되는 용어가 아닐까 한다. 무의미하게 사용되기도 한다.라) 아햏햏이 단어 또한 전의 “뷁”과 비슷한 양상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아햏햏”의 “햏”은 국어 맞춤법에 어긋난 단어이다. 오히려, 그러한 이유에서 고의적으로 생겨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위의 “뷁”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생겨난 단어들은 그 정확한 의미를 정의 내릴 수가 없다. 이러한 단어를 만들어 회의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이런 내용을 품고 있는 요즘 유행어로는 “4천만 땡겨주세요.” 등이있다. 경제 불황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유행어라 할 수 있다.이렇게 당시의 사회 현실을 보여주는 유행어 외에도 인터넷 유행어와 같이 흥미를 위주로 하는 유행어들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유행어들은 대부분 개그 프로그램에서 나온다.“빠져봅시다!”, “XXX하는 쎈쓰!”, “장난하냐?”, “그런거야?”, “쌩뚱맞죠?” 등의 유행어는 그 언어를 구사하는 말투의 특이성 때문에 유행된 경우이다.최근에(2005년 6월 현재) 가장 유행하고 있는 방송 유행어는 대부분 “웃찾사”, “개그 콘서트”등의 코미디 프로그램 연기자들의 말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위에서 언급한 인터넷 유행어와 방송 유행어 외에도 특정 집단에서 그 구성원들이 만들어 그 집단 안에서만 유행어가 되어 버리는 언어들도 있다. 그러한 언어는 그 집단의 특수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며, 은어의 범주로 포함 시켜도 무방하다.위에서 언급한 유행어 외의 다른 종류의 유행어나 은어들은 다음 순서에 논술하기로 한다.2. 유행어의 의미와 특성에 대한 보고유행어는 말 그대로 “유행하는 언어”이다. 이번에는 어째서 특정 언어들이 사회에 유행하게 되고, 그런 유행어가 어떠한 특성을 가지는지 논술하기로 한다.1) 인터넷 유행어대표적인 인터넷 유행어의 의미는 위에서 논한 바 있다. 그 외의 인터넷 유행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녀 라는 말이 인터넷에 많이 유행하고 있다. 이 ○○녀는 앞에 특정인물의 행동이나, 특징을 묘사해 부른다. 그 예로 “딸녀, 핥녀, 떨녀, 개똥녀” 등이 있다. “딸녀”는 최근 인터넷에 딸기를 들고 찍은 사진이 화제가 되면서 그 사진의 모델에게 붙여진 별명이며, “핥녀” 역시 인터넷 게시판에 멀리 있는 바위산을 핥는 설정의 사진을 찍은 여성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떨녀”는 온 몸을 떨면서 춤을 추는 여성에게, “개똥녀”는 최근에 나온 유행어로 지하철에서 자신의 애완견의 변을 청소하지 않고 자리를 피한 이러한 용어가 유행어가 된다는 점이 문제이다. 그들은 국어에 대한 인식 능력이 떨어지며, 모방성이 강하여, 이러한 외계어를 거리낌 없이 수용한다. 국어 파괴현상을 낳고 있는 이런 외계어들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수용하는 이들에게 국어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된다.위에서 보여준 인터넷 유행어의 양상은 타인을 비방하는 의미를 담는다. 인터넷 게시판 등에 타인을 비방하는 글들을 보면, 대부분이 비속어와 인터넷 유행어로 이루어져 있다. 인터넷에서 유래한 인터넷 유행어는, 결국 인터넷을 이용한 타인 비방이라는 것에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비방의 양상과는 별개로 인터넷 유행어의 또 다른 양상은 “준말”이라고 할 수 있다. 네티즌들은 길고 장황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최대한 줄여서 말하려 한다. “즐”의 경우도 준말의 양상을 가진다. 이러한 인터넷 유행어의 양상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에까지 미치게 되어, 요즘 젊은층이 쓰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는 대부분 준말로 이루어져 있다.이런 “준말”의 양상과 비슷한 양상으로 보이는 것이 “이모티콘”이다. “이모티콘”은 사이버 상에서 문자, 기호, 숫자 등을 조합해 감정을 나타내는 문자이다. 이러한 이모티콘 역시 길고 장황한 것을 싫어하고, 상투적인 것을 배척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취향에 가장 알맞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모티콘 중에는 문자를 조합한 ‘^^’와 한글 모음 ‘ㅠ’를 사용해 만든 ‘ㅠㅠ’이 가장 많이 쓰인다. 이런 이모티콘들은 본래 문자의 의미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오로지 그 모양이 마치 인간의 표정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각각 웃는 얼굴, 우는 얼굴로 표현하며, 어디에서나 통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 다른 예로 “OTL"을 들 수 있는데, 알파벳의 O,T,L을 조합해 만든 이 이모티콘은 마치 사람이 땅에 엎드려 있는 형상을 닮았다고 하여, 좌절이나 슬픔을 표현할 때 쓰고 있다.위에서 언급한 인터넷 유행어의 양상을 종합하면, 인터넷 유행어는 흥미와 개성을 위주로만들어진다는 것과, 그것이 국어에 얼마나 심각한사상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예전의 젊은이들만큼 사회와 정치구조 등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일순간 웃고 떠들 거리를 찾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 없는 유행어들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3) 그 밖의 유행어유행어라는 것은 대중매체의 도움 없이는 생성이 불가능한 것이다. 대중 매체만이 같은 시간에 전국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앞에서 소개한 유행어들은 전국 어디를 가서도 젊은이들을 통해 그 사용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그러나, 대중 매체가 아니더라도 유행어가 통용되는 곳도 있다. 그것은 특정 집단 안에서 이루어지는데, 그 집단의 특수성 때문에 생겨난 용어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특수집단의 용어들은 유행어라기보다는 은어라고 하기에 더 알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유행어의 특성을 고려해 볼 때 이러한 용어들도 유행어의 범주안에 든다고 말할 수 있다. 이번에는 이런 특수집단의 유행어를 제시, 분석해 보도록 하겠다.가) 군대 유행어군대 유행어는 군대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널리 퍼져 사용되고 있다. 그 이유는 군 제대를 한 남성들이 사회에 나와서도 그 용어를 사용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순환이 계속되면서 군대 유행어는 이미 사회의 유행어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대학에서 이런 양상을 많이 보이는데, 그것은 대학의 한 과를 주도하는 권력자들이 바로 예비역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권력자들이 쓰는 용어는 바로 그 집단의 용어가 된다. 예를 들어, “빡쌔다”의 경우 원래는 군대에서 쓰이던 말로 “매우 힘들거나, 곤란한 상황에서 쓰는 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밖에도 군대 유행어에는 “짬밥, 왕고, 신삥”등의 용어가 있다. 이것은 철저히 계급주의인 군대사회를 잘 나타내주는 용어로 여기서 “짬밥”의 경우 원래 “먹다 남은 음식물의 쓰레기.”라는 뜻을 갖고 있었으나, 군대에서는 “연륜, 경력”등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이 용어는 사회에서도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