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속의식 무용1) 성향분석무속은 초기의 순수 제의식 만을 추구했던 것이 전승되는 과정에 있어 의미나 내용이 축소, 변경, 왜곡의 변형적 발전으로 이루어졌으나 민족적 대중의 예술, 서민의 예술로서 뿌리를 내림에 따라 한국적 민족정서를 가장 많이 담아내고 있는 예술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이러한 무속의 굿은 지방마다의 생활 풍속과 자연환경에 따라 의식절차 및 무무(巫舞), 무악(巫樂), 무복(巫服)등이 지방색을 갖고 전승되어 왔으며 이를 토대로 무속성향을 살펴보면 북쪽에서는 동작이 활발하고 동적인데 비하여 남쪽은 유교나 불교적 색채를 뛰며 비교적 소박하고 우아한 춤사위로 이루어져있으며 기능적이고 예술적 성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또한 무무(巫舞)는 무당의 성향에 따라 크게 강신무와 세습무로 구분할 수 있다. 또 무원의 수에 따라 독무와 쌍무, 집단무로 나눌 수 있으며 목적과 내용에 따라 청신과 송신무, 부정을 풀어주는 세령무, 악귀를 물리치는 전투무, 신을 즐겁게 하는 향연무 등으로 나눌 수 있다.강신무는 접신(接神)한 상태의 강신무당에 의해 추어지는 춤으로 이 춤은 무아지경에 이르러 신령의 움직임으로 공수를 하고 곡예적인 요소가 많이 내재되어 있는 무무(巫舞)로서 즉흥적인 형식으로 발작적이고 일정한 춤사위가 없으며, 도무 ? 잡무 등의 춤사위가 주를 이루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신이 되어 신명난 춤을 추게 되며, 신무(神武)의 춤으로 인해 주술적 상징의 춤사위가 많이 나타난다. 둘째로 세습무는 대를 이어 오는 무가집안의 세습무당에 의해 추어지는 춤으로 오신(娛神)적인 요소가 강하며, 화려하고 체계적인 형식에 따라 이루어지는 무무(巫舞)라 하겠다. 따라서 춤사위는 즉흥적이라기보다는 정형적인 틀을 지니며 주술성보다는 예술성을 많이 내포되어 있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즐기게 하는 연희적, 제의적인 상징적 춤사위가 많이 나타나는 것이다.이와 같은 무무의 특징으로 보아 북쪽의 무무(巫舞)는 강신무의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남쪽의 경우우리나라 전 지역에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현(現) 전국에 분포하고 있는 무속의 양상은 대체로 지리상 한강 이북지방의 무속과 한강 이남의 경기, 충청, 전라도를 포함한 지역과 동해안 지역, 제주도 지역의 것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지역적 특징은 남쪽으로 갈수록 유교나 불교적 색채를 띠어 소박하며, 혈통에 따라 대대(代代)로 무(巫)의 가제권이 계승되는 세습무가 지배적인데 비해, 중부를 포함한 북부지역의 무속에는 신의 영력에 의해 무(巫)가 되는 강신무의 지배적인 양식화를 보여준다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지역에 따라 무속의 형태를 제시하면 표 2와 같다.표 2의 분석결과 굿에 의한 무속 춤의 춤사위는 지역에 따라 상이하고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무복의 경우 북쪽지방으로 갈수록 화려하고 다양한 형태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결론적으로 한국 무속의 양상은 북쪽 지방으로 갈수록 춤사위가 동적인데 반해 남쪽지방은 소박하고 우아한 춤사위로서 무릎 굴신이 많고 기능적이며 예술적 성향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무당춤도 북쪽과 제주지방은 주술성이 강하고 활발하며 남쪽은 부드러운 춤사위가 많이 나타나는 것이다.2. 경기도당굿의 구조적 분석1) 의식 춤의 형태경기도당굿의 의식절차 중 6종류의 춤이 나오게 되는데 춤의 이름에 따라 활용하는 곳이나 장소가 다르며, 춤의 형태 ? 의상의 형태도 물론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춤들은 현존하고 있는 것으로써 상당히 변형되고 축소되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진쇠춤진쇠춤은 나라에서 경사가 났을 때나 궁전에서 만조백관이 모여 있을 때 연행되던 춤으로 무속춤 중 유일하게 관중무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는 독특한 춤이다.문관다운 점잖은 춤을 추며 궁중무의 성격을 지녀 비교적 우아하고 어깨, 팔의 선이 유연하다. 마치 궁중무에서 한삼 던질 때의 곡선이 유연하듯이 철육소매를 팔목의 움직임에 따라 유연하게 뿌리기도 한다. 동작선은 좌우의 움직임이 많음에 따라 철육소매를 좌,우로 뿌리는 동작들이 많으며, 특히 서로 마주본 대립무 형태가 많 춘다.춤의 특징으로는 동작이 매우 섬세하며, 다양하게 선을 그리는 춤이다. 제석신에게 정성을 드리는 이 춤은 그 대상신과 무복, 무구에서도 불교의 색채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어 불교 계통의 민속무와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라를 이용한 동작들은 불교 의식무의 바라춤과도 연결되고 장삼을 이용한 동작들은 마치 승무에게 장삼을 처리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다른 춤들이 사방의 규격을 이루며 주로 좌, 우, 상, 하의 직선적인 동작선을 구성하고 있음에 반해, 이 춤은 서로 엇비낀 삼각의 형태로써 그 동작선이 특이하여 주로 사선을 이룬다.제석춤의 특징적인 춤사위는 엇붙임 사위로 큰 원을 그리며 천천히 도는 동작의 엇붙임 사위로 빙글 사위, 한 발들어 옆에 딛는 동안, 또는 옆으로 뛰는 동작의 옆사위, 한 발딛고 뛰면서 한 무릎 세워 앉는 동작의 띄어서 반 앉는 사위, 한 발 뒤꿈치로 강하게 찍으며 머무는 동작의 한 발 찍는 사위, 양발 모으고 뛰는 동작의 모듬발 뛰는 사위, 한 발 S자 형태로 밀면서 돌리는 동작의 밀어서 공 그리는 사위, 한 손은 머리위에서 제끼고 또 한손은 앞으로 들어 받치는 듯한 동작의 대받침 사위, 뛰어 앉으며 양팔을 비껴 위, 아래로 뿌리는 동작의 양팔 모아서 옆으로 뿌리는 사위, 양팔 머리위로 뿌리는 동작과 양팔 옆으로 뿌리며 휘젖는 듯한 동작의 휘젖는 사위, 한 팔씩 감고 풀어 연풍대로 돌아가는 동작의 연풍대사위, 몸 앞에서 바라치는 동작과 양손 모아 바라치면서 제끼는 동작과 바라 제쳤다가 엎는 동작 등의 바라를 이용한 사위가 있다.제석춤의 장단은 처음 엇미리 장단에 의해 바라춤이 시작되고, 도드리 장단에 가서는 장삼춤을 추며 점차 빨라져 도무, 회선무 등으로 끝난다.?터벌림 춤터벌림 춤은 축귀를 뜻한 즉, 발로 가서 잡귀를 쫓아내는 형용의 춤이다.발차는 사위가 매우 특징적이며, 이것은 마치 토지신에게 알려 잡귀 역신들의 난동을 막듯이 터닦기나 마당 밟기를 하는 의식적인 춤으로 방수를 따라 움직이는 동작선이 매우 엄격하고 다양하다.설음 장단에 의한 발차는 사위는 매우 힘차며, 조임채에 가서는 더욱 힘차게 몰아준다. 반설음 장단에 의해 발차는 사위는 매우 힘차며 조임채에 가서는 더욱 힘차게 몰아준다. 그리고 연기자가 직접 꽹과리로 반설음 조임채, 자진굿거리 등의 장단을 쳐가며 춤을 추는데 이 것은 연기와 반주가 분화되기 전의 굿의 특성을 발견하게 하는 흥미있는 부분이다.? 손님 굿손님굿 춤은 때로 (깨끔춤)이라고도 불리어지고 있다. 이 춤은 역신을 몰아내기 위하여 추는 것으로 터벌림 춤과 그 형태가 같다.손님이라 함은 질병을 두려워하는데서 연유한 말로 질병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역신을 잘 대접하고 달래서 돌려보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 같은 굿과 춤이 생겨난 것이다.손님굿 춤은 서민적인 춤으로써, 이 춤이 실시되는 굿거리의 대상 신인 손님을 구축하지 않고 오히려 신격화하여 그 손님을 위하여 춤을 춘다. 그러나 신칼을 휘두르는 동작이나 발로 내차는 동작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손님굿 춤은 손님을 잘 접대하려는 소극적인 의식만이 아니며, 궁극적으로 마치 처용무에서 처용의 춤이 역신을 즐겁게 하여 감복케한 것이냐, 아니며 역신을 상대로 싸워 물리친 것이냐 하는 논란과도 유이하다.손님굿의 반주 장단은 터벌림춤의 장단과 같다.? 군옹님 춤군옹님 춤은 먼저 모시기 위한 것으로 화살을 사방에 쏨으로써 잡귀를 몰아내는 형신의 전투성이 짙은 춤이다.무관다운 엄숙한 춤인 것이 그 특징이라 하겠으며, 동, 서, 남, 북에 나쁜 액을 모두 쏘아 보내는 이 춤은 매우 의식적이다. 무신을 위하여 무무의 영향을 받아 활을 이용한 활달하고 세찬 동작이 많고, 특히 일반적인 무무의 특징적인 도무 동작이 강하게 나타난다.군옹님 춤 외 쌍군옹님 춤도 행해지는데 군옹님 춤은 여자의 춤이고, 쌍군옹님 춤은 남, 녀의 춤이다. 각기 대상신과 장단에서 연원한 명칭들로써 (올림채춤)이라고도 칭하며, 이 춤은 매우 까다로운 장단인 올림채 장단에 의해서 시작되어 자진굿거리 장단에 맞추어 화살을 이용한 춤을 춘 후 화살을 쏘아버리고 끝낸다지된 동작의 구름 사위, 팔을 옆으로 뿌려 바람을 만들 듯이 잦은걸음으로 나가는 동작의 바람 사위, 공그리며 던지는 동작의 수건을 이용한 사위, 수건을 위로 뿌려 훌 듯이 잡는 동작, 수건을 양손에 비껴 위로 받쳐드는 동작, 공그려 어깨에 들어 얹는 동작, 용그리며 도는 동작 등이 있다.- 이상의 6가지 작품 중 도살풀이의 형태는 가장 무속적이면서도 한국서민의 정신을 상징하는 요소들이 몸짓과 수건으로 잘 조화를 이루어 무대화되어졌기 때문이다. 여성의 춤으로써 긴 라인을 수건으로 끊임없이 선을 그어주는 그 자태는 의식 춤이라기 보다는 한국무속의 정수의 진면목을 제시하는 것으로 판단되어진다. -3. 살풀이춤의 개념과 분석1) 살풀이춤의 개념논의살풀이는 일반적으로 액(厄)을 푼다는 의미로 남도무악에서 나온 것이라는 통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살풀이춤을 보면 남도무악(시나위)인 살풀이 곡(曲)을 반주음악으로 쓰고 있을 뿐, 춤의 형태에서 종교적 형식은 없고 예술성이 돋보인 춤이다.한말 때는 무당굿을 할 때 의식적인 무당춤 이외에도 모인 사람과 더불어 여흥이나 뒤풀이로 즐기는 이른바 야제(野祭)의 춤이 성행되어 무굿은 잡희적 요소가 농후하게 노출되면서 제의(祭儀)라기보다는 무당들의 연희로 변질됨으로 야제에 대한 금지령이 내려지고 무당들은 여기서 민중생활의 이면에 깊이 숨어들어 무업을 계속하거나 아니면 표면적 무업을 버리고 특수예인집단의 일원이 되어 촌락을 다니면서 가무회를 하거나 아니면 기녀가 되어 기방생활을 하게 되면서 살풀이춤이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무당들은 종교의식으로서의 춤 이외에도 여흥으로 구경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춤을 추기도 하고 구경꾼들도 합세하여 허튼춤을 추기도 하는데, 지금의 예술적인 살풀이춤은 무속계에서 파생된 창우들이 미화시킨 이른바 ‘수건춤’이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아울러 현존하는 살풀이춤은 주술적인 의미는 없고 단지 ‘살풀이’라는 시나위 곡에 맞추어 추어지므로 음악적으로 관계지어 ‘살풀이춤’이라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 하였다.일상적으로
데이빗 고든(David Gordon) : 불명료함지난 18년 간 데이빗 고든의 작업은 개개인의 질주 동작을 하나의 틀로 만드는 구조 찾기와 관계되어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안무를 자기 방어로 본다. 왜냐하면 현대 무용의 이데올로기가 개개인의 퍼포먼스 스타일과 신체 구조에 대한 허용을 계속 조장해 왔기 때문에, 자기 몸과 스타일이 남들의 시각이 아니라 보기 좋은 이들 무용수들을 위해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안무가가 됨으로써 예술적으로 살아남는다. 그러나 안무가 자기 방어라는 이런 류의 생각은 또한 고든을 공격적으로 만들었다. 기존 규칙을 바꿔 가면서 동작을 배열하는 새로운 체계의 개발은 학문적 법칙을 비판하고 무시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학창 시절에도 고든은 늘 어떻게든 교육 내용의 약점을 찾아내곤 했다. 그러나 그는 낡은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것에 대해서도 늘 비판하려 한다. 저드슨 교회 무용단의 전성기에 만들어진 그의 신랄한 작품 `엉터리 아침식사`는 그의 동료들의 새로운 무용 창작법을 풍자적으로 개작한 것이었다. 또 그는 가장 최근 작품인 `꼭 이해할 필요는 없는 대상`은 `엉터리 아침식사`의 내용과 구성에 대해 아이러니칼한 논평이 되고 있다.포스트 모던 댄스의 안무가들 사이에서 연극성에 관한 논쟁이 한창일 때 고든은 관객에게 볼 만한 구경거리가 되야한다는 쪽을 지지한다. 그러나 그는 볼 만한 순간들과 매혹적인 수법들을 교묘하게 사용하며, 종종 그 순간과 수법들을, 동작간의 관계와 그 관계에 연극성을 가미한 것 사이의 차이가 동작에 고도의 안정감을 줄 때까지 강화시킨다. 즉 사실적인 것 과 연극적인 또는 대본에 의한 것이 갖는 불명료함이 궁극적으로 춤의 표면으로 감질나게 떠오를 때까지이다.커닝햄에게서 이따금씩 공부를 계속하면서 그리고 세터필드와 결혼한 상태에서 고든은 테크닉을 다듬는 것이 무용 창작보다 훨씬 덜 흥미롭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커닝햄과 함께 작품 구성을 했고 그 다음에는 로버트 던의 구성 강좌에 들어갔다. 이 강좌는 후에 저드슨 무용단으로 발전돼 그 에너지를 폭발시켰다. 하지만 이미 워링으로부터 우연성을 이용하는 테크닉을 배웠던 고든은 던의 수업에서 이 우연성에 대해 경직된 접근태도를 보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든은 애초부터 저드슨 교회의 상황에서 이방인 같은 느낌을 작고 있었다. 당시 그는 작품의 창작뿐만 아니라 이본느 레이너와 함께 무용도 하고 있었으며 자기 방식에 대해 심각하게 의문을 품었다. 그는 자기 작품에 대한 강력한 부정적 반응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결국 1971년까지 안무를 중단했다.
트리샤 브라운(Trisha Brown) : 중력과 가벼움트리샤 브라운은 워싱턴주 애버딘에서 태어났다.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의 밀스컬리지에서 무용을 배우고 오르곤 폴 프랜드의 밀스와 리드컬리지·뉴욕대학 등에서 무용을 가르쳤다. 1962년 저드슨댄스시어터의 창립단원이 되고 즉흥무 단체인 그랜드 유니언의 단원으로 활약하였다.1960년 여름 브라운은, 당시 즉흥과 동작 본래의 임무에 의해 야기된 제반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서부연안의 무용가겸 무용 교육자인 앤 핼프린과 여름 워크숍을 가졌다. 샌프란시스코에 소재한 핼프린의 스튜디오에서 브라운은 시몬느 포르띠, 이본느 레이너, 라몬테 영, 테리 라일리, 로버트 모리스 등과 공연하게 된다.브라운이 안무한 초기작품들은 즉흥에 구조를 적용했다. 그녀가 저드슨에서 공연한 첫 무용 `트릴리엄`에서의 규칙은 다음과 같다. 나는 설 수고, 앉거나 누울 수도 있었으며 결국 가벼운 동작으로 끝냈다. 이 춤에서 나는 공연에 앞서 내 의도를 나 스스로에게 주지시키지 않았다 1963년 작 `가벼운 추락`은 스티브 팩스톤과의 듀엣을 위한 작품으로 격렬한 접촉의 탐구 작업에서 얻은 소재-높이 오르기와 정지-가 기본이 된 작품이었다.1966년에 브라운은 `줄`을 공연했다. 이것은 `모터`와 `자가제품`, `내부`등 세 무용의 모음이었다. `모터`는 원래 미시건주 앤 아버에서 열렸던 원스 어게인 축제 때 어느 주차장에서 처음 공연된 작품으로 스케이트보드를 탄 브라운과 폭스바겐을 모는 운전자와의 듀엣이었다. 저드슨에서 `줄`을 공연했을 때는 폭스바겐이 모터 스쿠터로 대체됐다.1968년에, 브라운은 설치 작품으로 알려지게 되는 무용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이 춤은 다양한 외부 보조 수단들-밧줄, 도르래, 궤도, 케이블, 암벽등반 장비, 거대한 나무못, 말판 등-을 사용하는데 그 목적은 물체의 위치와 방향의 변화를 통해서 자연스런 동작의 환영 대 중량과 중력의 힘간에 싸우게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설치 작품의 첫 작품은 인식의 과정에 대해서 심각하게 문제점을 제기한 `평면들`이었다. 이 작품은 1968년에서 71년 사이에 여섯 번이나 공연되었다.1971년 브라운은 설치에 의해 부과되는 컨트롤의 가능성을 충분히 이해했다는 느낌에 도달했고 이어서 적분이라는 수학적 원리를 토대로 춤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은 작품이 전개되면서 무용의 깊은 내부적 구성이 드러나게 된다.1976년에서 1977년 사이에 안무된 `정렬`은 브라운의 안무 경력에 있어서 하나의 모범이요 역사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 속에서는 이전의 네 가지 작품과 다른 두 작품의 바리에이션이 뚜렷하게 등장한다. 이 작품 프로그램에 실려있는 해설에는 예전 작품들이 그 안에 군데군데 들어있는 이 무용의 몸체가 즉흥무 시절의 단원에 의해서, 당시 `일렬로 늘어서라`는 교훈으로부터 파생된 소재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만들어졌다. 라인의 지속적인 형성과 수정이 이 무용을 질서와 무질서 사이를 넘나들도록 만든다고 설명돼 있다.1978년 트리샤 브라운은 독무 `워터 모터`를 발표했다. 어떤 면에서 이 작품은 그녀의 초기 주제를 연상시키는데, 특히 서고, 앉고, 눕기도 하며 마지막엔 세분된 동작(경박한 동작)으로 끝나는 `트릴리엄`이 연상된다. 워터 모터는 2분 30초 정도의 짧은 소품이라 너무 금방 끝나버린다. 그럼에도 그 무용은 완전하며 유쾌한 기분을 주는, 간결하게 구성된 작품이다. 동작과 위치가 중간이 생략된 채 나열되고 그것은 물을 가르며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내려앉았다 하는 보트의 뱃머리와도 같은 이미지를 떠올려준다. 또한 그것은 관절과 수족의 순수한 움직임을 보여주며 때로는 외관상 불가능한 조합으로 보인다. 에너지는 갑자기 떨어졌다가 다시 충원된다. 때때로 브라운의 몸은 기쁨에 들떠 동시에 두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워터 모터는 절묘한 무질서를 포용하는 브라운의 논리적 체제를 활짝 들여다보게 해주는 그러한 작품이다.
1960년대에 들어 현대무용에는 새로운 실험적인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머스 커닝햄의 뉴욕 스튜디오에서는 로버트 던이 무용 콤포지 클라스를 지도하고 있었다. 던은 작곡가인 죤 케이지에게 작곡법을 배웠다. 1962년 던은 자신의 학생들을 위해 저드슨 교회에서 처음으로 콘서트를 열었다. 이 교회는 후에 저드슨 댄스 씨어터로 알려지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포스트 모던 댄스는 음악가, 시인, 그리고 화가들이 수시로 참여했던 무용수들과 안무자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1970년대 들면서 미국 전역에서는 댄스 그룹이 활발하게 결성되었고, 이들은 안무적으로 새로운 시도 내지는 실험적인 작품들을 만들었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대표적인 그룹이 그랜드 유니온이다. 이 그룹에는 트리샤 브라운, 이본 레이너, 데이비드 고든, 스티브 팩스톤, 그리고 더글라스 던이 참여했다.이 그룹은 다른 그룹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그 다음 10년 동안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했으며, 특별히 즉흥무용인 `콘택트 임프로비제이션`에 전념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사이에 활동했던 유명한 안무자들은 제임스 컨닝햄, 로라 딘, 루신다 차일드스, 메르디스 몽크, 그리고 루디 페레츠 등이 있다.저드슨무용단의 안무가들은 그들의 작업과 매주의 토론을 통해서 무용미학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그들은 발레와 현대무용에 나타나는 형식화를 반대했다. 그들은 전통적인 발표회 형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무용공연을 연출하는 협동적인 방법을 발견했다. 이 분야에서 선배 권위자들에 의해 평가되길 원치 않는 젊은 예술가들이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친근한 공간에서 실험할 수 있는 자유를 원하는 이들에게 이것은 도시의 판에 박힌 공연에 대한 하나의 대응물이 되었다.기존 안무가들에게는 두 가지 의미에서 전형들이 있었다. 즉, 커닝햄, 제임스 웨어링, 폴 테일러, 파스로프, 슈미트와 같은 1950년대 기성 아방가르드들은 현대무용 아카데미를 창출하는 선구를 제공하였다. 한때 아방가르드였던 아카데미 자체는 그번째 저드슨 공연은 무용수들이 살아왔던 사회라는 큰 세계와 무용과 예술이라는 작은 세계에 모두를 반영하는 인간의 가치와 안무력 태크닉을 혼합 활용하였다. 콜라쥬, 우연, 친목, 공동 협회적 의사결정, 반복, 놀이, 문제 해결 등 이러한 것들을 통하여 무용수들과 무용단들은 세계를 묘사했다. 마음의 분노로 얼룩진 순박한 미국인의 꿈 같은 그러한 세계, 신체와 대담한 행동, 자유로운 결정, 복수성, 민주주의 자발성, 상상, 사랑, 재미, 모험의 세계, 전통이 자유롭게 지켜지거나 무시되는 세계, 자유가 찢어지고 분열된 체험이 고루 섞인 세계다.이전에 자신의 안무를 선보인 바 있는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제임스 웨어링의 리빙시어터 공연에 참여하거나 두 가지 표준적 방식, 즉 홀을 빌리거나 92번가의 YM-YWHA에서 열리는 젊은 안무가의 연례작품 발표회에 참여하는 길을 따랐다.1964년 로버트 던은 구성 워크샵을 다시 열었다. 그러나 이때에는 무용의 규칙이 변화했다. 일시적으로 통합되었던 저드슨에서의 선도적 물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용행위가 증식됨에 따라 제도화를 거부했다. 그러나 주간 워크샵은 공연기획을 다른 곳에서 찾고 독립된 작업을 하려는 이들 안무가들로 인해 그 가치를 상실했다. 뉴욕 밖에서의 가르침은 집단을 지역적으로 분리시켰고, 외부 계약, 독자공연, 새로운 안무가의 계속적 유입 등으로 결속은 점점 약해졌다.1965년에 이르러 메레디스 몽크, 케네스 킹, 포에브 네빌 등이 저드슨 2세대의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했다. 저드슨에서의 공연은 1968년까지 계속되었으나, 공연은 또한 화랑, 꼭대기 층, 다른 교회, 그리고 다양한 다른 비무대적 공간에서도 많이 이루어졌다.제3, 제4회 발표회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저드슨 워크샵 그룹에게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첫째, 이 두 공연은 이 단체의 확장과 함께 결속의 계기를 제공했다. 즉 이 공연들이 로버트 던의 클라스에서 독립되어 성장했던 이 단체 활동의 최초의 수확이었으며 웨어링과 커닝햄 지배권 밖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의 있어서보다는 이 공연을 위해 음악가들과 시각예술가들이 협조자로서 중요한 기여를 했다.둘째, 이 프로그램의 내용에 있어서 안무 및 기법 양식에 있어서 다양함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현대무용의 기원과 분파, 그 과거와 미래에 대해 탐색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무용은 스코숀의 `라자리트`처럼 특정한 전통을 고수하는 유형, 데비드의 `광장`처럼 전위적인 실험적 수법으로 여러 가지 무용기법을 섭렵, 포괄하는 유형, 서머스의 `조곡 또는 어린이의 놀이`처럼 전통적이거나 개인적인 양식을 조작하거나 풍자한 유형 등을 다양하게 포함하고 있다. 또한 레이너의 `우리는 달릴 것이다`, 팩스턴의 `영국인`, 쉐니만의`신문에 의한 이벤트`, 코너의 `어떤 증류과정`등의 작품들처럼 무용으로서의 동작을 규정하는데 요구되는 신체적 행위를 재정의한 작품도 있다. 비무용적인 동작도 무용구성을 위한 질료로서 사용되었으며 이러한 비무용적 소재들이 예술적 범주에 포함되는가에 관한 심미적 문제를 유발하기도 했다.셋째로 무용과 음악의 관계가 탐구되었으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결을 하려하였다.넷째, 제목 설정과 공연자체에 있어서 무용과 언어의 관계가 검증되었다. 또한 의상의 양식, `말과 말들`의 노출에서부터 `전쟁`의 울퉁불퉁한 갑옷, `도로시를 위한 벽앞에서의 체조무용`의 가죽 외투와 장화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검토가 이루어졌다. 팝 아티스트처럼 저드슨 무용가들은 러시아의 형식주의 비평가와 문학에 적용했던 바대로 일상적, 상투적인 물체와 행동을 도입하여 이들을 신기하게 만드는 형식을 선호하였다. 신문이 의상으로 쓰이거나 갈기갈기 찢기고 놀이의 도구가 되기도 했으며, 라디오의 천박한 음향에 맞추어 낭만적인 파드뒤의 배경음이 되거나, 축구 등의 스포츠나 사교무용, 일상생활에 관한 언급이 포함되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항상 당연시해왔던 것들을 보다 주의 깊게 검증하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무의 구성에 있어서 이전에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세부적인 동작표현에 양식으로부터 탈피하였다. 이미지, 이야기, 분위기, 또는 발전 양상보다는 다양한 안무적 기법-반복, 즉흥, 과제의 인식, 하나의 사물, 정지 순간들-이 무용의 최소단위인 동작보다 우선되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무용은 표현적이 되었으며 소외, 반항, 인간의 나약성 등의 주제를 주로 채택한 듯하다. 그러나 `어떤 증류과정` `영국인`에서의 사진적 자세 `색인`의 우발적인 듯한 동작, `말과 말들`의 나체, `전쟁`의 만화 적인 난폭성 등에서 볼 수 있는 의도적인 형식적 기법 등을 통해 초기 현대무용이 한 때 유지했으나 현재는 상실해 버린 인간적 친밀감이나 인본주의적 특징을 표출하고 있다.1966년 봄에 저드슨 시어터와 시인들의 극장 기금을 모금하기 위해서 예술축제동안 입장료가 부과되었다. 공식적으로는 과거의 복고라고 이야기했지만 초기 작품 못지 않게 새로운 작품도 있었다. 너무 많은 풍자극들이 공연되었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르지만 그 중은 모금을 위한 행사였으며 아방가르드 중에서 코메디가 대표적으로 히트되는 작품이었다. 어떤 무용가들은 저드슨 무용가라고 별명이 붙었지만 그곳은 놀라우리만치 다양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안무 형태상 비표현적, 비대화적, 비신화적인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소재를 발레나 모던댄스, 자연적인 동작으로부터 구했다. 그래서 그들은 직접적인 어떤 표현보다는 함축성에 관심이 있었고 관중들에게 놀라운 동작이나 기술적인 전시를 통해서 놀라게 해주기보다는 관중들의 상상력을 촉진하는 수법을 즐겨 사용했다. 때로는 모방적 예술의 영향을 받아서 여러 가지 다양한 수단이 혼재 되어 그 결과는 움직이는 그림이나 움직이지 않는 무용처럼 보였다. 또한 저드슨의 공연 중에는 낭만적인 표현경향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회화적이거나 약간 그로테스크한 작품에서 볼 수 있다.미국 현대무용은 20세기 이후 그 출발에서부터 아방가르드들의 연속이었다.각 세대들은 새로운 주제와 무용기법 그리고 음악, 문학, 시, 연극예술과의 새로운 관계를 요구하였다.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 마안무가들은 솔로였던 머스 커닝햄의 유연한 척추 사용과 고전발레의 미세한 스텝, 엄밀하고 분절적인 기법에 결합하였다. 커닝햄의 안무상 우연성의 실험은 그의 작품의 의견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다. 즉 공간을 분산시켰고 예기치 않은 방식의 다양한 신체부분의 결합을 추구했다. 즉 논리적 절정이나 발전이 없다는 점 때문에 무용에서의 시간을 분산시킬 수 있었다. 존 케이지와의 공동작업은 커닝햄으로 하여금 가장 발전된 움직임을 가능케 했다. 협동의 방법이란 음악과 무용이 상호상관성 없이 단순히 같은 공간과 시간을 점유한다는 것을 뜻한다. 비록 병치가 때로 음악이나 무용에 극적인 표현성을 부여하지만 그러한 상호작용은 사전에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커닝햄-케이지의 공동작업은 저드슨 무용단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커닝햄 무용단의 몇몇 단원들은 안무가로서 커닝햄의 업적-현대무용에서 권위의 위계질서로 느껴지는 것들에 대한 반항과 정신적 함축성을 지닌 무용의 정화-을 존경했다.제임스 웨어링은 저드슨 그룹에 또 하나의 중요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그는 커닝햄과 마찬가지로 기법을 가르쳤으며 1950년 후반부터 학생들에서 구성법을 강의했다. 저드슨 그룹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실용적이면서도 동시에 미학적이었다. 즉, 많은 저드슨 무용수들이 그의 작품으로부터 공연의 경험을 얻었다. 한편 웨어링, 폴 테일러, 데이비드 고든, 에이린 파스로프 등은 1956년 결성된 안무가들의 단체인 무용협회에 가담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웨어링은 무용계와 리빙 시어터에 관련된 시인 그룹 피안느 드 프리마, 알랜 몰도우에 등과의 사이의 다리 역할을 했다.저드슨 그룹의 일부는 앤 할프린에게 교육받았는데 그녀로부터는 무용의 또 다른 자유를 배웠다. 즉 즉흥연주에서 충동에 따르는 자유이다. 이것은 곧 자연과 더 가까이 하려는 욕망이며 학생들은 야외나 산의 개방지에서 작업을 했던 것이다. 그는 또한 해부학과 신체동작에 대한 분석적 접근을 강조하여 학생들은 자신들의 즉흥동작의 과정 중에 경험하는 신체변다.
루씬다챠일즈(Lucinda Childs) : 본다는 행위그녀는 머스 커닝햄에게 수업을 받기 위해 뉴욕에 왔으며 졸업 후에는 맨하탄으로 옮겼다. 챠일즈에게 있어서 커닝햄은 무용에서 그때까지 경험해 왔던 어떤 것과도 선명하게 분리되어 느껴지는 일종의 특이함과 명료함을 설명해 주었기 때문에 무척 중요한 존재였다. 커닝햄의 연습실에서 그녀는 이본느 레이너를 만났으며, 레이너는 그 근래에 만들어진 저드슨 무용단에 참여를 권했다.레이너의 작춤이 보여주는 힘과 단순성 에 강한 인상을 받은 챠일드는 저드슨 그룹의 일원이 되며, 거기에서 4년 동안 작품 13편을 안무했고 다른 이들-레이너를 포함해서 로버트 모리스, 스티브 팩스톤, 에일린 패슬로프, 제임스 워링과 같은 사람들의 작품에도 출연했다. 1963년에서 1965년까지는 워링에게 사사 받았으며 1964년에는 로버트 던의 구성 수업을 받았다. 동시에 그녀는 발레 수업에도 참가했다.챠일즈의 초기 작품 대부분은 물체와 독백을 동작의 자료로 이용하는 구성 방식에 근거한 솔로들이었다. 레이너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일상적인 활동에서 나타나는 제스처들에 대해 탐구해 나가면서 당시까지는 여전히 무용으로 간주될 수 있었던 새로운 동작과 새로운 표현 수단을 찾으려 노력했다. 무용의 소재로 보통은 여겨지지 않는 행위에서 소재를 얻어 오는 것에 대해 챠일즈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 동작들은 자체 내에서 그리고 저절로 그 일상적인 경험을 불러 일으키는 게 아니라, 그 동작을 하는데 드는 노력의 정도에 따라 그 경험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한 신념은 시각 예술에 종사하는 미니멀 아티스트들의 구상과 관련이 있는데 이들은 60년대 초반에 화가로서의 특성과 주관주의를 배격함으로써 추상표현주의를 비판했었다.저드슨에서 만든 그녀의 첫 작품은 `유희`였는데, 그 중 한 부분에서는 긴 탁자 위에 앉아 두 다리를 사용해서 신축성 있는 헝겊을 천천히 다루는 동작이 들어있다. 음악은 필립코너가 반주를 맡았다.챠일즈의 무용을 구성하는 실제 스텝들은 일상 생활의 동작보다 결토 더 복잡하지는 않지만 그 춤들은 훈련받은 무용수에 의해서만 실행 될 수 있다. 사실 그것들은 지구력, 정밀성, 명확성, 침착성, 기억력의 면에서 볼 때 더욱 테크니칼한 기교를 요구한다.반복과 관점에 대한 탐구가 계속되는 가운데 챠일즈의 연구 방향은 확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초기에 있었던 일상 생활의 실체에 대한 해부 작업처럼, 낮은 대조도를 보여주는 군무 작품들처럼, 그리고 강박적이던 솔로들처럼, 그녀의 공동 작업 역시 인식의 양상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면서 교훈적으로 작용한다. 반복과 맥락의 변화는 무용의 행위가 본다는 의식적 행위를 자극하기 때문에 세부적인 것의 세계가 생생하게 살아나도록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