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사회, ‘똘레랑스’의 사회영어교육과 황지영몇 년 전, 내가 고등학생 일 때,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읽었다. 사실 그 때에 고등학생이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을 받아서 읽었다. 그 때는 지금의 나보다 더 지식이 더 부족한 상태라서 그런지 재미를 느끼지도, 잘 이해하지도 못했다. 정말 요즘에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많이 실감하고 있는데 이번에 다시 기회가 되어서 이 책을 읽고 나서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었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배경지식이 있는 상태의 사람이 이해하는 정도와 관련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보는 것과는 그 얻는 양이나 질이 굉장히 다르다. 게다가 같은 사람의 경우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그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게 되면 다시 새로운 감정과 새로운 무언가를 느끼고 얻게 되는 것이다.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겉으로 나타나는 내용뿐만 아니라, 그 안에 암시되어있는 어떤 작가의 의도라든지, 바람을 느낄 수 있었고, 거기에 더불어 감동마저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 읽었던 당시에는 잘 알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사회상, 홍세화씨가 왜 망명자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지금은 완전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내가 마치 작가가 된 듯 한 느낌이어서 그의 슬픔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단순한 에피소드보다는 그 사건이 의미하는 똘레랑스의 개념에 집중해서 읽게 되니 정말 새로운 책을 읽는 것 같았다.‘똘레랑스’란 홍세화씨가 제시한 정의에 의하면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갖는다. 그 전까지 내가 생각한 똘레랑스의 의미가 첫 번째로 제시한 의미였다. 똘레랑스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을 뜻한다. 문장 자체로 파악되는 의미를 머리로는 이해하고 그것이 어떤 것이라는 개념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제일 나에게 와 닿았던 때는 그가 한국은 ‘정’의 사회이고 프랑스는 ‘똘레랑스’의 사회라고 말한 부분에서 이었다. 똘레랑스라는 것이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런 개념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자유, 평화와 대등한 위치의 의미인지, 관습, 도덕과 같은 좀 더 작은 의미인지, 내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두 번째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똘레랑스의 의미 외에 그것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이 ‘정’의사회라고 하는 것에 프랑스에서의 ‘똘레랑스’를 비교한 순간, 그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퍼져있는 하나의 사유방식이고, 이러이러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법이나, 관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책에 제시된 몇 가지의 예를 통해서 이러한 사유방식이 실제로 사람들의 행동에서 그들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저절로 실현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정’의사회라고 하지만 우리 스스로 이런 행동은 이렇기 때문에, 또 저런 행동은 저렇기 때문에 우리 사이에는 정이 흐르고 있고, 또는 어떤 사람은 정이 메말랐다고 말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프랑스 사회에서도 그럴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김치와 마늘냄새가 난다고 했다가 도리어 치즈냄새는 어쩠냐는 소리를 들었을 때, 아무 말도 못하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아, 우리사회는 똘레랑스의 사회이기 때문에 나는 이 차이를 인정해야지. 우리는 다르니까 내가 한국인들의 냄새에 왈가왈부할 수 없지’라고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이해한 똘레랑스의 위치라면 위치, 개념이라면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교수님께서는 똘레랑스의 의미를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 ‘엥똘레랑스’의 개념을 생각해 보면 더욱 분명히 다가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책에서도 볼 수 있었던 인종주의자들에 관한 사례,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가지는 경우 등의 몇 가지 사례를 통해서 대조적으로 똘레랑스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다. 물론 가장 크게 그 의미가 다가온 것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 그가 꼬레를 제외한 모든 나라에 갈 수 있게 되고,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시작하게 된 사연 자체가 우리나라의 엥똘레랑스적 사유방식을 열실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힘 있는 정권의 입장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빨갱이, 중립이든 반대의견을 가졌든 무조건 빨갱이라고 몰아세우고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를 배척해야할 대상으로 삼아 억압하고 쫓아내고 굴복하게 만들었던 우리나라의 상황이 마치 내가 그 시대에 살았던 것처럼 생생하게 보였다. 이것이 바로 엥똘레랑스적인 행위이고 그런 사건의 직접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작가는 더욱 프랑스의 똘레랑스를 우리와 공유하고 본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망명신청을 하고 인터뷰를 할 때의 그의 상황은 정말 부끄럽게까지 느껴졌다. 마치 스펙트럼처럼 극좌파에서 극우파에까지 다양한 정당이 있는 프랑스 사회에서 남과의 당연한 차이를 인정하고 살아온 사람이 하나의 정권에 떠받들고 동의하지 않는 다는 이유로 한국에 돌아가지 못 하게 된 홍세화씨의 입장을 이해하기란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프랑스에 망명자로서 남아있어야 하는 처지를 설명하기 위해 한국은 남과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이상한 나라라고 설명했어야 하는 작가의 상황은 정말 안타까웠다. 우스운 것은 프랑스의 입장에서 그런 엥똘레랑스를 보여준 우리나라 상황과 홍세화씨를 이해하고 망명자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들의 사유방식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우리를 꼬집는 것처럼 느껴졌다.이 책을 읽으면서 똘레랑스의 의미에 주목하고 그 것이 어떻게 실현되는지에 대해서 보면서 최근에 알게 된 상대주의의 개념에 연결해 보게 되었다. 내가 몇 년 전에 비해 똘레랑스의 의미를 더 쉽게 이해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그 둘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나와 남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되, 나의 관점을 포기하고 남을 신봉하는 것도 아니요, 나의 관점만 고집하는 것도 아닌 너의 관점에 귀 기울여 듣는 것, 이것이 상대주의이자 똘레랑스의 진정한 의미인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차이를 인정하면서 서로의 의견을 토론이나 대화를 통해 공유(일치와는 다르다)하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나의 기준, 관점, 주관, 표준을 성찰해보는 태도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이미 읽은 다른 친구에게 나는 이런 소리를 들었다.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는 프랑스 사대주의적인 책이라는 것이었다. 작가는 똘레랑스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말하면서 우리식의 ‘정’중심 사고보다는 그들의 방식, 그들의 태도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작가의 멘트를 보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 멘트는 ‘내 똘레랑스 얘기가 친불적인 얘기라고요? 사대주의라고요? 아, 내 얘기가 그렇게 들리셨습니까? 그럼 할 수 없군요. 똘레랑스에 대해서 다시 반복하여 말씀드려야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아직 똘레랑스를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었다. 작가는 똘레랑스의 의미를 피부로 직접 느낀 사람이고, 약 30년을 한국에 살아왔던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독자들이 그의 글을 사대주의적이라고 생각할 것을 이미 예상했던 것 같다. 실로 내 친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이 안타까웠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부끄럽고 반성할 점이 많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에서 마지막까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사실 작가와는 달리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프랑스 사회에 똘레랑스가 있듯이 우리나라에도 정이 흐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의 생각을 그들과 똑같이 만들려고 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강요한 것은 아니며, 한국인으로서의 작가는 우리가 우리의 사유방식이자 생활방식인 ‘정’을 버리고 냉정한 개인주의로 우리 사회 분위기를 바꿔버리자고 말한 것도 역시 아니다. 오히려 그는 우리나라, 한국을 그 누구보다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한 사회와 다른 한 사회의 만남을 절절하게 느낀 입장에서 그가 바란 것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엥똘레랑스적인 행동방식에 의해 힘들었던 그가 똘레랑스의 사회에서 느낀 개방성, 상대성은 어느 누구에게 보다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그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토론, 대화를 통해서 나의 방식을 성찰하는 것, 그리고 더 나은 방식은 수용할 줄 아는 것.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작가의 의도와 똘레랑스의 진정한 의미가 상충되지 않음을 느꼈다.
본 수업 지도안개념 : 비교급대상 학습자 : 중학교 1학년수업 수준 : 상방법실행시간1. 제시전형적인 예주의집중개념정의주의집중파악단계다양성예가 아닌 경우2. 연습연습 가연습 나연습 다3. 피드백칭찬/격려유도교: 이번시간에는 두 가지를 서로 비교할 때 어떻게 영어로 표현하는지 배우겠습니다. 이 표현은 간단하면서도 유용하게 사용되니까 집중해서 잘 익혀보도록 합시다.(ppt자료, 사진 제시)-유명 연예인 비와 송혜교의 사진. 비에게는 Tall, 송혜교에게는 short가 제시되어있다.교: 이 사진에서 비는 어떤 특성을 가졌나요?학: 키가 큽니다.교: 그렇습니다.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합니까?학: 비 is tall. 이라고 합니다.교: 맞았어요. 그렇다면 송혜교는 어떻습니까?학: 키가 작습니다.교: 네. 영어로는 송혜교 is short. 라고 하죠.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을 비교할 때 우리말로는 어떻게 합니까?학: 비는 송혜교보다 더 키가 크다. 라고 합니다.교: 잘했어요. 이것을 영어로 하면 비 is taller than 송혜교. 이렇게 표현합니다.(칠판에 적는다) 그럼 다른 예를 한번 볼까요?(분필과 펜을 양손에 집어 든다)교: 자 이것을 봅시다. 이 펜은 길이가 길고 분필은 짧죠?학: 네교: 그럼 우리말로는 펜은 분필보다 길다. 라고 하죠?학: 네교: 그럼 또 이것을 영어로 하면 좀 전에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The pen is longer than the chalk' 라고 합니다.(칠판에 적는다. 두 문장이 제시된 상태가 된다)교: 우리말에서 ‘~보다 (더) ~하다’라고 표현하듯이 영어에서도 마찬가지로 규칙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어떤 규칙이 있는지 말해 볼까요?(예를 든 두 비교급 문장을 통하여 쉽게 규칙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돕는다.)학: (여러 가지 반응 - 대부분 찾아내지만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교: 아주 잘했어요. 여러분이 찾은 것을 규칙으로 나타내 보면‘형용사(부사) +er + than’ 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교: 자, 그럼 이제 우리 두 아이들이 다투는 대화를 듣겠습니다.좀 전에 배운 비교급 문장이 많이 나오니까 주의해서 들어보세요.(Dialog 자료를 들려준다)-내용Tom: My dad is taller than your dad!John: What? But my mom is prettier than your mom!Tom: Well.. my sister is more beautiful than your sister!교: 방금 두 아이들의 대화를 잘 들어봤나요? 여러분도 어릴 때 이런 대화 많이 해봤죠?학: 네 (재밌어한다)교: 조금 전의 대화에서 누구의 아빠가 더 크죠?학: Tom의 아빠입니다교: 맞았어요. 이때 Tom이 뭐라고 했죠?학: My dad is taller than your dad 이라고 했습니다.교: 아주 잘했어요.(칠판에 문장제시)교: 이 문장에서 보면 Tom이 tall + er + than을 사용했습니다. 그러자 John이 뭐라고 했죠?학: My mom is prettier than your mom. 입니다.교: 그렇죠?(같은 방식으로 칠판에 문장 제시 후 문장구조 설명)교: 그런데 이 문장을 잘 보세요. Pretty에 er를 붙이면 prettyer가 돼야 되는데 prettier가 됐죠? 영어에서는 y로 끝나는 단어 뒤에 er가 붙을 때 y를 I로 바꾸고 er를 붙인답니다. 비슷한 예로 heavy의 비교급으로 heavier를 들 수 있어요. 그렇다면 large처럼 e로 끝나는 단어는 어떻게 할까요? e를 두 번 쓸까요? 누가 말해 볼 사람?학: (자원, 없으면 교사의 지적으로 선택) er를 붙이면 e가 두 번 되니까 한번만 해서 l. a. r. g. e. r로 해줍니다.교: 아주 잘했어요. (박수) 정말 똑똑한 학생이군요. 다른 학생들도 모두 이렇게 생각했죠?학: 네교: 이렇게 항상 모든 단어에 er를 붙이는 것은 아니랍니다. 어떤 철자로 끝나느냐에 따라서 약간 씩 변형된다는 것을 알아두세요. 그럼 big을 비교급으로 나타내볼 사람?학: (자원, 없으면 교사의 지적으로 선택) b. i. g. e. r입니다.교: 원래대로 하면 그렇게 되죠? y나 e로 끝나지도 않았지요. 그런데 이렇게 짧고 모음하나 자음하나로 끝난 경우에는 자음을 한 번 더 써주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경우에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학: (방금 그 학생) b. i. g. g. e. r 입니다.교: 맞았어요. 우리 모두 박수쳐줍시다. (박수 짝짝짝)교: 자, 그럼 다시 Dialog로 돌아가 봅시다. John의 대답에 Tom은 뭐라고 했나요?학: (대부분 머뭇거린다. 아직 배우지 않은 표현이고 들은 지 좀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교: Tom이 한 말은 (판서하면서 읽어준다)‘my sister is more beautiful than your sister’ 이었습니다.여기 (more beautiful 부분 가리키면서) 처음 보는 것이 나왔죠?학: 네. 원래 beaulfuler가 돼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교: 아주 좋은 지적 이예요. 그런데 원칙대로 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학: 너무 길어요. 발음하기 힘들어요. 등 여러 가지 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