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상주의2. 중상주의의 시대적 배경3. 중상주의의 의의4. 경제이론과 정책.화폐론.무역론과 순세무역정책.산업론과 산업진흥정책.임금론과 인구증가정책.식민지쟁탈정책5. 국가별 중상주의6. 중상주의 쇠퇴와 결론1. 중상주의중상주의는 서구의 13세기 경부터 18세기 중엽에 걸쳐서 중세적 경제조직이 해체되고 산업혁명에 의해 지배를 확립하기까지의 초기 단계에서 원시적 축척을 수행하는 데 사용된 여러 정책과 이를 뒷받침한 이론체계이다. 이 시기에는 기독교도들이 십자군원정으로 동서문명이 상호 교류하게 되었으며 항해술의 발달, 신대륙의 발견, 인도항로의 발견 및 금광의 발견과 채굴 등은 내외경제를 발전시켰다. 이에 따라 화폐의 중요성이 인식되었으며 자본의 축적으로 새로운 산업이 발생하고 발전하게 됨으로써 중세까지 지배하여 왔던 지방적인 지배력만으로는 불충분하여 통일적인 지배력이 요구되었다. 그리하여 유럽 및 신대륙, 유럽 대 동양간의 무역을 발달시키는 크나큰 계기가 마련되어 연안무역의 영역으로부터 원양무역의 영역으로 확대되어 유럽의 일부 국가는 대외무역의 힘을 경주하였다. 따라서 대외무역에 의하여 금, 은 등 귀금속과 재화가 막대하게 유입됨에 따라 봉건제도와 중세적 도시국가는 드디어 붕괴되었고, 중앙집권적 국가의 지도하에서 화폐를 중심으로 한 개방적인 교환경제가 확립되었다. 또 이로 말미암아 일국이 타국에 대한 무역정책과 태도를 수립할 필요가 생겼으며, 바로 여기에서 중상주의라고 하는 최초의 상업정책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환경아래 그 당시의 경제사상은 어디까지나 금, 은 등의 귀금속을 중요시하고, 이것을 획득하기 위해서 상권을 확대하고 그 방법으로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장려하는 일련의 보호 간접적 무역정책에 편중하고 있었다는 점에 특색이 있으며, 그 당시의 학자들이 이것을 이론적으로 전개하려고 노력하였으나 큰 성과는 없었다.이러한 중상주의를 구분해서 보자면 중금주의 시대와 중상주의 시대로 나눌수 있다. 중금주의 시대는 유럽에서 통화주의와 중금주의에서 나온 사상이. 다시 말하자면 자본으로서 화폐의 속성이 조 금씩 인식되고 국부증진을 위해서는 단순한 개별통제에서 벗어나 상업뿐만 아니라 공업을 육성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사조가 나타난 시대라고 볼 수 있다.2. 중상주의의 시대적 배경중상주의는 15세기 후반에 국가사회가 대두하여 부국 강병책을 추구하면서 체계화되었다. 모든 학문이 초기에서는 한 개인이 단독으로 체계를 세우기보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단편적 지식과 경험적 지혜가 누적되어 형성되는 것처럼 경제학도 중상주의 시대에는 중심인물이 없었고 전문적 경제학자도 없었다. 경제학을 생업으로 삼는 것은 그 당시 사회적 여건으로 볼 때 불가능하였으므로 중상주의 학자들은 상인, 정치가, 관료 또는 철학자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실제로 경험하면서 시정되어야 할 점이나 자기의 이해 관계를 위해서 소책자를 발표하였고 이것들이 집합되어 중상주의가 성립된 것이다.중상주의자들은 무역의 차액으로서 금은보화를 축적해야 나라가 강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중세 유럽사회는 봉건영주국가로 구성되어 있었고, 민족의식이 희박했으므로 돈만 있으면 군대를 고용할 수 있었다. 도식국가들이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용병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며 재력만 가지고 있으면 누구나 막강한 힘을 구사할 수 있었다.중상주의의 출현의 배경으로서는 국가사회가 출현하면서 각기 부국강병책을 추진하였으며, 신대륙이 발견되어 새로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그 이전에는 유럽사회가 폐쇄되고 정체되었으므로 내부적인 분배문제가 심각하여 소비를 극소화시키고 소득을 평준화함으로써 사회의 불만을 해소하고 욕망을 극소화시킴으로써 자원의 빈곤을 극복하였다.그러나 신대륙이 발견되어 새로운 물자와 금은보화가 유입되자 사회에너지를 해외로 방출시키고 각자가 마음껏 이기주의적 가치관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스페인은 신대륙으로부터 금은보화를 약탈해옴으로써 한때 번영을 누릴 수 있었으나 영국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함으로써 해상권을 장악하면서 해상무역에서 우위를 차지하였다내지 상상을 가리켜 중상주의라고 부른다.중상주의의 개념을 어떠한 의미와 내용을 가지고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 경제학이 독립과학으로 성립한 이후 많은 해석이 행해졌으나 대체로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의 두 종류 해석으로 나눌 수 있다. 좁은 의미의 해석은 이미 아담 스미스에 의해 주어졌다. 그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국부론』4편에서 "경제학은 국민과 군주를 다 부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국민을 부하게 하는 경제학상 두 개의 다른 주의가 생겼다. 그 중의 하나는 중상주의라고 불렀고 다른 하나는 중농주의라고 논하였다.즉 한나라의 부의 증대는 외국무역의 번영에 의해 또한 그 정도에 따라 일어난다는 것과 외국무역을 매개로 하는 국민의 부를 증대하기 위하여서 국가는 각종의 강력한 보호와 통제를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아담 스미스의 해석은 그 후의 중상주의의 해석에 대해 하나의 초석을 제공하였으며 이러한 좁은 의미의 해석에 대해 중상주의의 본질은 경제적, 정치적 측면에서 착안되어 양자의 결합에 있다고 하는 넓은 의미의 해석이 나타났다. 슈몰러는 그의 논문 "중상주의와 그 역사적 의의"에서 '중상주의는 그 진수에 있어서는 국가건설이다. 국가건설이라는 것은 동시에 국민경제의 건설이다. 그 본질은 결코 화폐 증가라든가 무역 차액 학설 속에서나 관세장벽 보호관세 및 항해조례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사회 및 그 조직 국가 및 그 제도를 전면적으로 변혁하는 것이고 지방적, 영역적 경제정책에 대신하는 국가적, 국민적 정책을 가지고 행하는 곳에 있다'라고 진술함으로써 근대국가에 있어서의 정치적, 경제적 측면의 평행적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요컨대 넓은 의미의 해석은 중상주의를 16세기 이후의 근세적 국가성립기에 있어서의 국가주의적 경제상상 및 경제 정책으로 총칭하고 있다. 중상주의는 일반적으로 근세의 서유럽의 본원적 자본 축적기에 있어서의 경제정책체제 및 그것의 기초를 형성하는 경제사상 내지 경제이론 체계라고 주장된다.그러나 아담 스미스 이후 2세기에 걸쳐 여러 분야에서경제이론의 특징이었다. 그 결과 중상주의의 경제이론은 화폐중심의 체계라고 하기도 한다. 중금주의자들은 당시의 가격혁명과 강력한 국가건설을 위한 부의 필요성으로 말미암아 화폐에 대한 많은 관심을 표명하였으며, 화폐와 부를 동일한 것으로 보았으므로 한 국가의 경제정책이 군주주의 재보, 즉 화폐와 귀금속의 축적량을 증대시키기만 한다면 성공적인 정책이라고 판단하였다.중금주의자와 중상주의를 구별하는 것은 중금주의자들은 절대적 이익을 가져다 주는 한이 있더라도 금, 은의 방출에 거부반응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중상주의와 중금주의를 구별하는 학자로는 영국의 ‘먼'을 들 수가 있는데 ‘먼’이후 중상주의자들은 중금주의자들과는 달리 일반적으로 화폐를 교환수단으로 파악했다. 그들은 화폐의 퇴장을 반대했고 화폐는 지속적으로 유통되어져야 한다고 주장을 전개했다. 그들은 화폐의 유동현상을 정적이 아닌 동적인 것으로 파악했으며 화폐 량의 증대가 고용 및 국민소득의 증대를 유발한다고 믿고 화폐 량의 증대가 가져다줄 승수작용도 인식하였다. 중상주의의 출발점은 불완전고용의 상태였다. 그들은 구매력 증대를 통해서 유휴의 노동력, 토지, 생산자본을 언제든지 물가의 인상없이 투입할 수 있는 불완전 저고용상태를 상정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이자율의 크기를 유통상태에 있는 화폐 량의 크기에서 유도해 내었다. 대부분의 중상주의 가들이 낮은 이자율이 생산활동에 유효하다는 것을 강조하여 고리대금업자, 금융업자들이 인위적으로 화폐가치를 인상시킨다고 비난하면서 한 국가의 산업발전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이자율이 낮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만약 이자율을 낮게 유지하자면 금은의 보유량이 많아야 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그들의 통화 정책적 요구와 일치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중상주의자들이 유효수요와 고용량의 관련성을 인식하였다는 것은 화폐의 자동조절작용을 부인하는 것이 되며 화폐를 중립적이라고 보는 후대의 화폐론에 대한 반기로서 화폐작용을 유동적으로 파악한 것이다..무역론과 순세무역정책중상주의의 무역론은 중상주의 화기 위한 수단으로 보았다. 영국의 중상주의는 유통면의 상업적 성격뿐만 아니라 공업적 성격까지 포괄하여 무역론을 전개, 이것은 중상주의 본질에 내제되어 있는 보호주의를 확충하는 두 개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중상주의 제국들은 국부증대를 위한 무역차액을 유지하기 위해 수출을 장려하고 수입을 억제하는 다양한 정책들을 실시하였다. 특히 철저한 무역정책을 실시한 영국이 대표적 국가였다. 이러한 정책을 위한 시책으로는 수출세 경감제도, 수출보조금, 관세환급, 독점 및 특권제도, 수입관세 등이 있다.수출세 경감제도는 자국상품의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수출상품에 대한 수출세를 경감하거나 전폐한 제도이고, 수출보조금은 외국인이 영국상품의 질이나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아 구매하기 꺼릴 때 외국인이 그것을 사가도록 정부가 그 값을 대신 치러 주는 것이며, 관세 환급은 상품을 재수출한다는 조건 하에 수입을 해오는 상인에 대하여 관세를 면제해주거나 저율의 관세만을 부과하는 것을 의미하면 중간무역을 위한 상품수입이나 수출을 위한 원료구입등이 해당된다.그리고 독점 및 특권제도는 정부가 대회사에게 독점이나 특권을 부여하여 상권을 신장시키기 위한 것이며 소수인에게 특허 회사를 설립케하여 무역상의 특권을 인정한 것은 무엇보다도 무역에 대한 통제가 용이하다는 이점이 있다. 수입관세는 무역흑자유지를 위한 중상주의자들의 외국상품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라 할 수 있으며 외국상품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공격적이었다. 중상주의시대의 수출입 관세정책은 이전까지의 지방적이고 다양한 제도를 전국적인 범위에서 통일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산업론과 산업진흥정책중상주의자들의 공업에 관한 견해는 두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무역차액론의 공업적 성격과 결부하여 공업을 적극적으로 육성장려 하는것이고 다른하나는 공업을 외국과의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첫 번째는 중상주의자들은 그들의 출신국가에 관계없이 증가된 인구를 양육하고 가급적 수출량을 늘려 무역흑자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모든이다.
제 1절 사회보험이란1. 사회보험의 의의사회보험은 사회정책을 위한 보험으로서 국가가 사회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 보험의 원리와 방식을 도입하여 만든 사회경제제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회보장기본법 제3조 제2호에 의하면, "사회보험이라 함은 국민에게 발생하는 사회적 위험을 보험방식에 의하여 대처함으로써 국민건강과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를 의미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회보험은 국민을 대상으로 질병·사망·노령·실업 기타 신체장애 등으로 인하여 활동 능력의 상실과 소득의 감소가 발생하였을 때에 보험방식에 의하여 그 것을 보장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사회보장은 사회보장기본법 제3조 제1호에 의하면, "사회보장이란 질병·장애·노령·실업·사망 등 각종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고 빈곤을 해소하며 국민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제공되는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복지서비스 및 관련 복지제도를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회보장이란 용어는 1940년에 개념이 확립되었으나,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1935년 미국에서 사회보장법이 제정된 때부터이며, 그 이후에 보편적으로 사용되어 왔다.우리나라는 1960년 제4차 개정헌법에서 처음으로 "국가의 사회보장에 관한 노력"을 규정하였고, 1963년 11월 법률 제1437호로 전문 7개조의 "사회보장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였다. 그 후 1980년 10월 개정된 헌법에서 "사회보장"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하였다. 사회보장이라는 의미는 역사적, 사회적 배경과 시대 및 학자나 국가에 따라 여러 가지로 표현되고 있는데 "사회보장의 아버지"로 불려지는 비버리지가 1942년 영국정부에 제출한 보고서 사회보험과 관련 서비스에 의하면 사회보장의 정의는 실업·질병 혹은 재해에 의하여 수입이 중단된 경우의 대처, 노령에 의한 퇴직이나 본인이외의 사망에 의한 부양 상실의 대비, 그리고 출생·사망·결혼 등과 관련된 특별한 지출을 감당하기 위한 소득보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는 빈곤과 결부시켜 사회보장은 `궁핍의 퇴치'라고 말한다.이는 국민소득의 재분배로 실현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한 일정 소득의 보장은 결국 국민생활의 최저보장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였다. 사회보장아래에 사회보험과 공공부조 그리고 사회복지서비스 이렇게 3가지로 나뉘는데 사회보험은 계속 소개하기로 하고 일단 공공부조에 대해서 알아보자.공공부조는 나라마다 상이하게 표현되고 있다. 공공부조는 한국과 일본, 미국에서는 법률상 공공부조 또는 공적부조로, 영국에서는 국가부조로, 프랑스에서는 사회부조로 표현한다.사회보장기본법 제3조 제3호에 의하면, "공공부조라 함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하에 생활유지 능력이 없거나 생활이 어려운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립을 지원하는 제도를 의미한다"라고 정의하고있다. 종래에는 "공적부조"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나, 1995년 12월 30일 제정된 사회보장기본법에서 "공공부조"라는 용어로 변경하였다.공공부조에 대한 또 다른 협의의 개념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심화됨에 따라 그 구조적 산물로서 빈곤이 발생됐다는 역사적 인과관계를 인정하여 국가의 책임하에 일정한 법령에 따라 공공비용으로 경제적 보호를 요구하는 자들에게 개인별 보호 필요에 따라 주게 되는 최저한도의 사회보장을 일컫는 데 이 역시 사회보장의 일환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와 같이 공공부조는 빈자의 생활보호 기능에서 그 의의를 찾아 볼 수있는데 생활보호는 최저한의 수준에 그쳐야하며 이를 국가최저원칙 또는 사회최저원칙이라 부른다.공공부조제도는 사회보험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상자 적용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공공부조가 지니는 제한점에도 불구하고 빈곤퇴치 대책의 일환으로 이를 적용하게 된다. 공공부조와 관련해서는 의료보호법과 생활보호법이 적용되고 있다. 아무튼 사회보험은 운영과 방법론에서 보험기술과 보험원리를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공공부조와 상이하다. 사회보험은 사회의 연대성과 강제성이 적용되며, 사보험과는 다른 주요한 특성을 갖고 있다.2. 사회보험의 특성일단 사회보험의 경영주체가 공적기구라는 것이다. 따라서 공영보험의 특성을 가지는데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가 직접 관장할 수도 있고, 법에 의하여 법인체 및 기타 공공적 성격의 기관에서 관장할 수도 있다. 또한 제도의 목적에서도 사보험은 개인적 필요에 의해서 하는데 강제적으로 최저생계나 의료를 보장받기 위해서 가입하게 된다. 또한 사회보험은 법적 수급권을 가진다. 가입대상으로는 개별보험이 아니고 강제가입이라는 것도 특징인데 보통 일정한 연령의 사람이나 일정한 종업원규모를 가진 사업장에 종사하는 근로자 등과 같이, 일정조건하의 사람은 법에 의하여 강제적으로 가입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점이 사보험과 다른 점이다.3. 사회보험의 한계먼저 사회보험은 근로자 개인의 전체로서의 생활 그 자체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고, 특정한 보험사고에 대하여만 이를 구제하는 제도라 할 수 있다. 또한 모든 사고를 사회보험이 구제할 수도 없다. 단지 근로자의 노동생활, 소비생활과정에서 중요한 몇 가지 보험사고만을 구제할 뿐이다.사회보험도 보험이기에 총수입의 범위내에서 총지출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보험금의 지급은 금액이나 그 지급기간 등의 면에서 일정한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근로자라고 해서 모두 사회보험에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근로자중에서도 영세기업 근로자나 불규칙적인 근로자는 제외된다. 즉 자영업주, 자유노동자, 농민, 영세기업종업원 이 밖에도 일반국민 모두가 골고루 사회보험제도의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제 2절 사회보험의 종류1. 산업재해보상보험산업재해해상보험이란 사업장에서 업무상으로 발생하는 산업재해를 보험사고로 하는 사회보험이다. 특징으로는 업무상의 산업재해는 사용자의 단독책임으로 돌아가는데 업무상의 재해라 하더라도 사용자가 그것을 보상할 능력이 없게 되면 재해를 입은 근로자를 구제할 길이 없기 때문에 업무상의 재해에 대한 보상을 확보하는 것은 재해를 입은 근로자를 보호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사회보험제도로 이를 도입하고 있다. 다른 쪽으로 생각해볼 때 개별 사용자에 따라서 지나치게 많은 부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산재보험은 공업화가 진전되면서 급격히 증가하는 산업재해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1964년에 도입된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보험제도인데 산업재해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산업재해 자체를 예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나 이미 발생한 산업재해로 인하여 부상 또는 사망한 경우는 그 피재근로자나 가족을 보호 내지 보상해 주기 위해서는 산재보험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할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산재보험은 산재근로자와 그 가족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가 책임을 지는 의무보험으로 원래 사용자의 근로기준법상 재해보상책임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가 사업주로부터 소정의 보험료를 징수하여 그 기금(재원)으로 사업주를 대신하여 산재근로자에게 보상을 해주는 제도이다.2. 건강보험건강보험제도란 일상생활의 우연한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하여 일시에 고액의 진료비가 소비되어 가계가 파탄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보험원리에 의거 국민들이 평소에 보험료를 내어 기금화 하였다가 보험사고가 발생할 경우 보험급여를 해 줌으로써 국민 상호간에 위험을 분담하고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보장제도이다. 원래 의료보험이었는데 건강보험으로 바뀌었다. 일반적으로 요양의 급여라든가 휴업중의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현금급여, 사망에 따르는 장의비용, 부양가족에 대한 요양의 급여, 출산수당 등의 형태가 있다. 급여가 바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급은 결정되기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지급은 실제 수진과 치료 등의 일련의 의료행위가 끝난 다음에 결정된다.3. 연금보험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는 사람이 사고나 질병으로 인하여 소득활동이 중단되거나 더욱이 사망한 때에는 본인은 물론 가족의 생계가 막막해지는 등 생활수준이 극도로 악화되게 된다. 또한 큰 부상이나 아무런 질병도 없이 지냈다 하더라도 일정 연령에 도달하게 되면 노후생활이 염려스러워 지는데 따라서 누구나 불시의 사고나 노후에 대비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지만, 실제 생업에 종사하다보면 이에 대한 대비책 마련이 쉽지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소득활동을 할 때 조금씩 보험료를 납부하여 모아두었다가 나이가 들거나, 갑작스런 사고나 질병으로 사망 또는 장애를 입어 소득활동이 중단된 경우, 본인이나 유족에게 연금을 지급함으로써 기본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소득보장제도가 국민연금제도이다.4. 고용보험고용보험이란 실직근로자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전통적 의미의 실업보험사업 외에 적극적인 취업알선을 통한 재취업의 촉진과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위한 고용안정사업, 근로자의 직업능력개발사업 등을 상호 연계하여 실시하는 사회보험제도이다. 따라서, 실업보험은 단순하게 실직자의 생계를 지원하는 사후적 소극적인 사회보장제도에 그치는 반면, 고용보험은 실직자에 대한 생계지원은 물론 재취업을 촉진하고 더 나아가 실업의 예방 및 고용안정, 노동시장의 구조개편, 직업능력개발을 강화하기 위한 사전적 적극적 차원의 종합적인 노동시장정책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고용안정사업으로서 근로자를 감원하지 않고 고용을 유지하거나 실직자를 채용하여 고용을 늘리는 사업주에게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여 고용안정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하고 직업능력개발사업으로서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직업훈련을 실시하거나 근로자가 자기개발을 위해 훈련을 받을 경우 사업주·근로자에게 일정 비용을 지원해준다. 또한 실업급여사업으로서 근로자가 실직하였을 경우 일정기간 동안 실직자와 그 가족의 생활안정 그리고 원활한 구직활동을 위하여 실업급여를 준다.
목차 -1-제1절 고전학파-2-제2절 케인즈 혁명-3-●케인즈혁명●케인즈이론제3절 반케인지언●통화주의학파-4-●합리적기대학파-5-●공급중시학파-6-제4절 케인즈 혁명 대 반혁명의 퍼포먼스-6-제5절 경제학의 새지평-7-조선대 3학년 올림 ㅋ-1-제1절 고전학파18세기 중상주의가 맹위를 떨칠 때 유럽 각국이 국내산업 보호라는 명분 때문에 각종 규제와 간섭으로 민간기업들의 자유로운 경제행위를 저해했었다. 아담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사회가 그 자신의 의도 밖에 있는 목적을 증진시키게 된다고 하고 실제로 사회의 이익증진을 의도하는 때보다 효과적으로 이를 증진시킨다고 하였다. 아담스미스 이외에도 맬더스 ,리카도 ,왈라스 , 마샬 등이 고전학파에 드는데 이들은 공급은 수요를 창출한다고 생각함으로 공급중시를 하였고 정부의 간섭과 규제를 배격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세계각국은 고전학파의 이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되어 왔는데 그 이유는 1929년의 세계대공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당시 고전학파의 이론만으로는 세계대공황을 설명할 수 없을뿐더러 해결책까지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제2절 케인즈 혁명●케인즈혁명그리하여 1929년 미국의 주식시장이 붕괴됨으로써 시작된 세계대공황으로 고전학파의 경제이론은 붕괴되기 시작한다. 대공황과 대량실업이란 고전학파 경제이론에서는 있을 수 없는 현상이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과잉생산은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우선 생산하면 다 팔린다고 생각한 고전학파의 경제이론이 부정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케인즈는 공항의 와중에서 방대한 자본재가 축적되어 있고, 고도의 기술혁신을 이루고 있으며, 고도인력을 지니고 있고, 풍부한 자원과 노동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물적 생산이 불가능하며, 풍요속의 빈곤에 떨고 있는 역설적 현상의 요인을 해명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또한 자유방임주의적 자본주의는 이미 힘을 잃었고 고전학파 경제학은 구조적으로 큰 변화를 일으켜온 현대 자본주의경제의 변천과정을 해명할 수 없음을 인식한 것이다. 그리하여 새이 아닌 총수요를 중시했다. 이러한 세계대공황같은 문제는 총수요부족이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케인즈는 경제이론 중 특히 화폐이론과 투자이론을 중요시하였다. 소득수준은 유효수요의 규모에 의해서 결정되므로 아무리 엄청난 투자를 하더라도 수요가 없다면 지속할 수 없으며 모든 것은 수요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다고 했다. 예를들어 석유회사가 성공하려면 유맥을 정확하게 짚어야 하듯이, 기업도 수요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투자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면 경제적 측면에서는 수요가 모든 것을 규정하므로 유효수요를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모든 문제의 관건이라고 했다.수요는 크게 투자수요와 소비수요 및 정부수요로 나누어지는데 소비수요는 소득에 의해서 결정되며 누구든지 가계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는 소득수준에 맞추어 소비하기 때문에 소비수준은 대개 안정적이며 소득보다 작다. 정부수요는 정치적 차원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경제외적인 변수이므로 남은 문제는 투자수요이다. 투자수요의 규모에 따라서 사회의 총수요가 결정되는데, 투자수요는 수익률과 이자율에 의해서 결정된다. 지금은 호경기라도 정국이 불안해지고 기술혁신이 정체되어 경기전망이 나쁘면 투자가 줄어들 수도 있다. 따라서 투자수요는 이자율과 자본의 한계효율에 의해서 정해진다. 이자율보다 투자 수익율이 높으면 투자가 증가되고, 이자율보다 투자수익률이 낮으면 투자는 일어나지 않는다.이자는 화폐수량과 유동성선호에 의해서 결정되며 유동성선호란 모든 사람은 불확실한 내일에 비해서 확실한 오늘의 현금을 선호한다는 뜻이다. 내일은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으며, 신변상의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고, 또는 화폐가치가 하락함으로써 손해를 볼 우려가 있기 때문에 좋은 투자기회가 나타나더라도 이를 실체화시킬 수 없으면 오늘의 화폐는 내일의 화폐보다 가치가 크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유동성을 선호하고 이를 보장하기 위해서 적절한 자본의 가격을 매긴것이 이자율이다.투자수익률은 불안정하고 각 부문마다 다르다. 기술, 정치, 사회 등 경제외적 변수에 의해서 결정되라인은 케인즈 혁명이라는 말을 쓸 만큼 케인즈의 학문적 기여를 찬양하였다.-3-제3절 반케인지언1970년대에 이르러 주요 선진경제는 거의 예외없이 이례적인 인플레이션의 가속화와 심각한 불황으로 실업의 급증 및 국제수지의 불균형까지의 삼중고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러한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을 해명하기 위해 많은 이론들이 제기되면서 30년간 주류경제학의 위치를 고수해오며 그 영향을 뿌리깊게 부식시켜온 케인즈학파의 이론이 그의 논리적 오류와 착각을 정면에서 통박하기에 이르렀는데 이 때 생겨난 학파들이 통화주의자, 재정균형론자, 공급중시파 등이 있다.●통화주의학파케인즈 정책을 유일한 정책기조로 하여 총수요관리정책을 실행해 오던 중 1960년대 후반부터 주요국가에서 격렬한 인플레이션이 진행되어 경제적 불안이 심화되어 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인플레이션에 대한 관심이 초미의 경제문제로 부상하게 되었고, 정책 논의는 실업문제로부터 인플레이션 문제로 그 초점이 바뀌게 되었다.이때 1956년에 화폐수량설-재설(The Quantity Theory of Money-A Restatement)이라는 논문에서 현대판 화폐수량설을 재구축하고 인플레이션 문제에 관해 많은 업적을 쌓아 올린 프리드만(M. Friedman)을 비롯한 시카고학파가 중심이 된 통화주의이론이 대두되었다.이 통화주의자들은 반케인즈주의적 비전에서 화폐만이 중요하다는 기본명제 아래 새로운 경제세계관, 이론모델, 분석방법, 인플레이션의 해명 등 새로운 이론적 프레임워크를 구축하여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게 되었다. 통화주의자는 임금과 물가는 기대물가상승률을 반영한 변동메카니즘에 의하여 단기적으로는 경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완전히 신축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경제는 장기적으로는 완전고용으로의 자체 회복기능을 갖는다고 확신했고, 자본주의 경제는 본질적으로 안정화를 위한 자동적 자체조정력이 내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정책개입이나 그릇된 경제운용으로 말미암아 경기침체국면을 여러 차례 경험했으며 드디어는 1하고 실업의 증대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주요 원인이라고 인식하고 디스인플레이션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떠한 고통스러운 부작용도 견디어 나가야 만이 경제는 자동적인 자체회복기능에 의하여 장기적인 완전고용균형상태로 복귀한다고 역설하였다. 가격메커니즘을 저해하는 정부의 민간부문에 대한 정책적 규제나 시장 간섭을 근본적으로 배제하였다.-4-●합리적기대학파합리적 기대가설은 1950년대 이후 시몬즈, 무스 등에 의해 주장되었으나, 1960년대 후반 이후 경제여건의 악화로 스태그플레이션현상이 심화되자 케인즈 이론의 한계를 인식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회의가 점차 대두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1970년에 이르러서는 사전트, 바로 등에 의해 더욱 발전되어 현대 거시경제학에 새로운 혁신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 이론은 경기변동에 대한 심리적 이론으로부터 출발된 것으로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각에 따라 반응한다는 것이다. 즉, 모든 사람들이 경제적 조건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할 때는 투자가 증대하여 경제를 확대시키지만 경제적 조건이 비관적일 때는 투자가 없으므로 불황을 가져온다는 것이다.1970년대 미국 경제학계에 커다란 충격을 가져다준 합리적 기대가설은 경제예측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 연구함으로써 케인즈 경제학을 부정하고 통화공급관리의 중시, 정부의 재정정책과 시장개입의 폐기, 자유시장 기능의 극대화 등 적극적인 이론으로 거시경제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다. 합리적 기대가설만이 케인즈 이론의 약점을 발견한 것은 아니나 이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즉, 이 가설은 두 가지 전제조건, 즉 첫째, 개인이나 기업가들이 과거나 현재보다도 미래에 대한 예상에 따라 행동한다. 둘째, 사람들은 합리적 판단에 따라 행동하고 그것은 정부시책의 영향을 중화시킨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케인즈 이론은 다음과 같은 오류가 있다고 하였다.첫째, 불합리한 기대이다. 합리적 기대가설에 의하면 모든 거시적 경제모델들을 구축하는 데 사용되는 방법은 정책이 바뀌면 틀린 예측을 도출해낼 수 있으므로 정책평적으로 변할 수 없다고 보았다.셋째, 자이적인 성공척도이다. 케인지언 경제모델은 정책의 성공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자의적인 척도에 의존하기 때문에 명확한 결정을 내릴 수 없으나, 경제주체들이 스스로 최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전제로 한 합리적 기대가설에는 정책의 성공여부를 적절히 판단할 수 있다. 즉, 합리적 기대가설에서는 최적으로 행동하는 경제주체들이 각자의 조건하에 새로운 기회들을 활용함으로써 국민의 생활수준은 개선되나, 케인지언 모델하에서는 개별적 결정을 총량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국민 개개인의 후생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5-●공급중시학파공급중시경제학은 1970년대 이후 장기적으로 구조적 침체국면에 처한 미국의 경제를 부활시키기 위해 생산성의 증대와 공급측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980년 미대통령선거에 사용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즉, 지난 50년 동안 케인즈의 경제이론이 주도권을 잡았으나 생산성의 뒷받침 없이 일방적인 유효수요의 창출에 의한 정부부문의 확대로 스태그플레이션이 심화되자 생산능력을 적극 증강한 인플레를 억제하는 공급중시경제학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그런데 공급중시경제학은 아직 통일된 이론적 체계가 확립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많은 학자들이 공급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나 아직도 고용과 경제활동수준을 결정해주는 유효수요의 원리를 적용시켜 경제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아직 이론체계를 구축하지 못했으나 레이거노믹스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미국경제를 회복시키려는 노력의 상징이 되었다.공급중시경제학의 근원으로서 고전적 경제이론은 오랫동안 서구의 경제철학을 지배해 왔다. 특히 대부분의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균형예산을 옹호하고 조세가 투자 및 생산의 감소나 근로의욕을 감퇴시켜서는 않되며 과중한 조세는 투자를 위한 화폐를 누출시키고 비생산적 부문으로 자금을 유출시킨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공급중시경제학의 공로는 지금까지 소홀히 공급되었던 공급측면을 중시하고 세율과 세제가 생산활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변수임을
서론금융산업의 동향본론1.금융권상의 현상황2.금융산업의 실패원인(1)은행원상의 문제점(2)주식시장의 문제점3.정부의 대책(1) 통합금융법 제정(2) 은행에 투자자문업 허용(3) 독창적 신상품은 승인제도 활용결론서론금융산업의 동향IMF위기는 우리나라를 미증유의 혼란으로 몰아넣은 국가 초유의 사태였다. IMF사태는 그 중에서도 그 동안 신성불가침으로 여겨졌던 금융권의 대규모 전면적인 구조조정을 가져옴으로써 그 절정에 달하기도 했다. 사태가 벌어지는 동안에 우리나라는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와 비효율적인 운영으로 경제가 파탄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1997년 금융위기 이후 부실금융기관의 정리가 가장 중요한 현안문제로 대두됐다. 금융권의 구조조정이라는 명목 하에 64조원이라는 대규모의 공적자금이 조성됐고 그 후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금융권에 대한 강도 높은 수술이 단행됐다. 부실채권 정리 및 증자지원 등 하드웨어 중심의 개선을 비롯한 소프트웨어 중심의 금융구조조정이 추진돼 왔다. 그러나 이후 1999년 7월 대우그룹의 워크아웃으로 부실채권의 규모가 급증,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정리 및 증자가 또다시 중요 현안으로 부상됐다. 이런 가운데 주가 하락, 금리 인상, 환율 절하 등 금융시장의 불안 양상이 표출되면서 금융위기의 재발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또 국내 금융기관들은 금융시장의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고 시장의 환경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함으로써 자금시장의 동요를 더욱 가속화 시키는 미숙함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구조조정의 목표는 금융위기의 조속한 해결과 금융위기 재발 방지대책 마련을 통한 경쟁력 강화만이 지상과제가 됐다.본론1.금융권상의 현상황그동안 160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금융권의 구조조정을 추진하여 왔으나 아직도 우리 금융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지난 6년간 우리 금융시장은 세 차례나 경색국면이 되풀이되면서 경제위기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2004년 상반기 현재 단기부동자금이 그 동안의 저금리기조에 힘입어 400조원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금융기관들의 기업에 대한 시설자금 대출 비중이 외환위기 이전 15% 이상 수준에서 지난해는 한 자리수로 급감하였다.이는 금융구조조정의 결과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이 산업자금의 안정적인 공급원으로서 중개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직접금융 시장의 상황도 별반 나을게 없다. 1999년 주식시장을 통한 기업자금 조달 규모가 한 때 40조원을 상회하였으나 2003년에는 20조원대로 크게 감소하였다. 회사채 시장도 국채 및 통안채 시장의 급팽창으로 절대 시장규모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 동안 과잉유동성이 1999년 정보통신 산업의 투자열기를 타고 코스닥 버블을 초래하고, 2001년에는 가계신용 버블을 일으키는 등 금융시장의 불안정성만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2. 금융산업의 실패원인(1)은행권상의 문제점외환위기 이후 외자유치와 인수합병을 통해 거대은행이 탄생하였고 대부분의 은행들도 ‘글로벌 스탠다드’인 BIS비율을 8% 이상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아직도 대부분의 한국기업들이 부채비율 200%기준과 현금창출능력 면에서 국제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때문에 과거 기업과 은행사이에 존재했던 ‘관계 지향적 구조’가 급격히 붕괴되면서 기업금융 경색현상이 고착화 되고 있는 것인데,신용경색이란 한마디로 금융기관에서 돈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기업들이 겪는 돈 가뭄이라고 할 수 있다. 신용경색 현상이 발생하면 기업들은 자금부족으로 정상적인 경영이 힘들고 무역업체들도 수출입 활동에 큰 제약을 받게 된다.이제 우리나라 은행들은 기업들의 성장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거나 장기적 신뢰관계를 구축하는데는 관심이 없고 당해연도 경영실적만 보고 경제여건이 악화되면 대출회수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그리고 국내 주식시장도 당초 의도대로 기업자금 조달원으로서의 은행권 역할을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 6년간 우리나라 주가는 급등락을 반복하면서 대부분의 국내 투자가들에게 큰 손실을 안겨주었다. 그 동안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안정적인 기업들의 자금조달 창구라기보다는 투기판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였다.(2)주식시장의 문제점이제 국내투자가들은 주식시장을 떠나고 있고 외국인 투자비중이 세계 유래 없이 40%에 달하는 등 시장은 기형적인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지하는바와 같이 외국인 투자자들은 투자수익 극대화에 급급하여 지난 6년간 매도·매수를 반복함에 따라 시장불안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이렇게 되자 현재 정부는 연기금의 주식투자 제한규제를 철폐하여 국내 주식수요기반을 확충하려고 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노력이 우리나라 주식시장을 영·미식 자본시장 위주로 재편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대답은 부정적이다. 우선 연·기금의 장기주식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다. 다름 아니라 시가배당제가 정착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 우리나라 연기금이 미국과 같이 주식의 장기투자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인다고 가정해 보자. 현재 액면배당도 힘겨워 하는 우리기업들의 재무능력을 감안할 때 연기금 등은 주식보유기간 중 오랫동안 현금흐름의 악화를 감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더구나 장기보유 후 연금지급을 위해 주식을 매각할 때 주가가 크게 떨어져 있다면 연기금 부실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한 마디로 대부분의 우리 기업들이 현금창출 위주의 경영이 정착되지 못한 환경 하에서는 규제완화가 시장을 활성화하기보다는 오히려 큰 재앙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난 2년 전 규제완화라는 명분하에 규제개혁위원회는 신용카드사들의 카드채 발행한도를 크게 확대하였다. '소비자신용평가제도' 등 기본금융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지 못한 상황에서는 규제완화가 시장 붕괴의 부작용만 초래했던 경험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3.정부의 대책기업과 금융의 부실 악순환 고리를 단절하기 위해서는 금융구조조정을 통하여 금융산업을 정상화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금융구조조정은, 신속·과감하며 국민의 부담을 최소화시키는 방법으로 추진해야하고, 이해당사자간 책임원칙을 확립하고 국제기준의 구조조정수단 준용해야 한다. 신용질서 및 금융의 안정성 유지를 위한 병행조치도 동시 강구해야 할 것이며, 우선 은행의 정상화를 추진한 후 비은행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본격 추진해야 한다.은행의 구조조정은 먼저 자본충실도 제고가 위기극복의 관건이므로 은행을 수익 성 양호한 투자유망 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데 주력하고, 또한 은행간 합병으로 증자여건을 개선하고 대외신인도 제고도 필요하다. 이때 기도입된 적기시정조치를 이용하되, 정부가 대주주인 은행의 경우 정부가 주도하는 방안을 병행하여 합병시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합병을 적극 유도해야 한다. 비은행 금융기관 구조조정은 금융권별로 확립되어 있는 적기시정조치제도에 의거 대주주 및 경영진의 자기책임하에 경영정상화 노력을 촉구하고 회생가능성이 희박하면 정리해야 한다. 업무단절과 정리부담의 최소화를 위해 영업양도, 가교금융기관 방식 등을 이용하면 정리가 될 것이다.2007년 통합금융법이 제정되면 정부 승인없이도 은행이 투자자문업을 할 수 있게 되는 등 금융관련 규제가 대폭 완화되고 금융기관간 장벽도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 통합금융법에 미처 포함되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상품이 등장할 경우에도 정부가 승인절차를 거쳐 허용하게 되므로 우리나라의 금융업 발전에 속도가 붙게 된다.한국개발연구원(KDI)은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기관 업무영역 체계 개편 관련 정책세미나에서 이같은 구상을 발표했다.정부는 앞으로 금융연구원 등으로부터 제안을 받아 내년 중 통합금융법 관련 세부 방침을 확정할 계획이다.(1) 통합금융법 제정정부는 금융겸업화 시대에 맞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40개 금융관련 법을 4개 기능별 법률로 통합 오는 2007년 시행키로 했다. 통합금융법에서는 판매 가능한 금융상품을 일일이 열거하도록 한 현행 방식과 달리 상품의 개념을 포괄적으로 정의하는 포괄주의를 채택되므로 지금의 불합리한 금융규제가 대거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또 포괄주의에 따라 법에서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몇몇 고유업무만 제외하면 자유롭게 겸업할 수 있으므로 금융기관들이 본격적으로 종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이와함께 전혀 새로운 개념의 신상품을 도입할 수 있으므로 상품 개발 경쟁이 촉발되고 금융업이 선진 수준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통합금융법에서는 금융기관의 업무를 금융업무와 본점 건물 신축 등의 금융과 관련없는 업무로 나누어 금융업무만 법률로 규제하며 금융관련 업무는 고유업무, 부수업무, 겸영업무로 구성된 금융업무와 그 밖의 비금융업무로 나누어진다.
책소개고인돌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부심은 그다지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과거의 흔하디 흔한 문화유산에 관심을 돌릴 만큼 여유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매개하고 있는 고인돌에 대해 갖가지 역사적 상상력을 제공해 주고 있다.길을 걷다보면 유독 시선을 끄는 돌이 있다. 그냥 어디선가 굴러온 돌이 아닌, 단순하지만 뭔가 인위적인 냄새가 나는 그런 돌을 보면 더욱 그렇다. 누군가가 공을 들여 가져다놓았거나 쌓아놓은 돌, 무언가를 표시한 것 같기도 하고 설치예술 같기도 하고 기념물 같기도 한 그런 돌들…. 우리는 그런 돌을 통해 무수한 상상력을 제공받는다. 누가 만들었을까, 언제 만들었을까, 어떻게 만들었을까,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왜 만들었을까 등등.“고인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다!”우리나라는 고인돌의 왕국이다.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많은 고인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2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화순, 고창, 강화지역의 고인돌군(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 그것은 하나의 경이로운 사건이었다. 세계문화유산을 하나 더 가졌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고인돌을 세계가 인정하고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보호하고 보존한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수수께끼 같은 역사의 실마리를 풀어주는 고인돌!문명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고인돌은 단순한 바위 덩어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단지 돌 몇 개를 오브제로 사용한 미니멀 아트 정도로 그것을 인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인돌은 수수께끼 같은 역사의 실마리를 후손에게 남겨주기 위해 수천 년 세월의 풍상을 말없이 견뎌내고 있다. 우리는 고인돌과 거기에서 발굴된 부장품(副葬品)을 통해 그 당시를 살다간 사람들의 흔적과 가치관과 세계관 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기록으로 남지 않은 선사시대의 역사를 규명하는 데 있어 고인돌의 역할은 클 수밖에 없다. 고인돌에 그 해답이 적혀 있기 때문이다.삶과 죽음 혹은 성(聖)과 속(俗)의 경박사 이영문이 가이드로 참여한다. 문화유산을 찾는 것은 풍요로운 삶을 영위해 나가는 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문화유산은 색다르고 생소한 지식세계로 우리를 여행하게 하는 편안한 학습의 공간이며, 정신적인 휴식공간이기 때문이다.고인돌의 분포북유럽 ·서유럽 ·지중해 연안 ·북아프리카 ·서남아시아 일대의 신석기시대 묘제로 분포하나, 한국의 고인돌과 직접적인 문화적 관계는 없는 듯하다. 중국 랴오닝성과 산둥반도 및 일본 규슈[九州]에도 분포하나, 한국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미미하다. 전남지역은 전국에 분포된 고인돌 2만9000여기 가운데 65%인 1만9000여기가 몰려 있는 한반도 최대의 고인돌 지역입니다.이 지역에는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국가사적 410호인 화순군 도곡면, 춘양면 일대 고인돌군 596기를 비롯해 장흥군 2509기, 고흥군 2055기, 나주시 1210기, 보성군 1606기 등 1000기 이상 분포지역이 8개 시 군에 달합니다..이들 고인돌군은 청동기시대 생활상을 반영하듯 남해안과 영산강, 보성강, 섬진강 등지에 고루 분포돼 있고 이 일대에서 석촉, 무문토기, 비파형동검 등 수천점의 유물이 출토돼 선사유물의 보고(寶庫)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고인돌은 제주도를 포함하여 전국에 분포하나, 황해도 ·전라도에 가장 밀집되어 있으며 한 곳에 수백 기의 고인돌이 군을 이루어 분포한 경우도 있다. 북방식 고인돌은 한강 이남 지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데, 전북 고창에서 발견된 북방식 고인돌이 최남단의 것이다. 남방식 고인돌은 전라도 지방에 밀집 분포하며, 경상도와 충청도 등 한강 이남 지역에서도 많이 보인다. 한편, 개석식(蓋石式) 고인돌은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지석묘는 석관묘, 옹관묘와 함께 청동기 시대 묘제로서 유럽전역, 인도 동남아 등 세계권역에 분포 하고 있다. 세계권역에 분포함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고인돌의 분포는 함북을 제외하고는 전역에 분포하고 있는데, 전남지방의 경우 1천 2백 여곳에서 모두 1만 8백여기의 고인돌이 확인되었으며 대하에 묘실을 만들었으나 남방식 고인돌과는 달리 돌을 괴지 않고 묘실 위에 상석을 바로 올린 고인돌도 있는데, 이를 개석식 혹은 변형 고인돌이라고 한다. 고인돌의 연구에서는 지하의 묘실 구조와 축조방법을 중시하는데, 연구자에 따라 약간의 견해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이렇게 북방식 ·남방식 ·개석식 등의 3종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북한 학계는 고인돌에는 한 구역 안에 2,3기의 고인돌을 나란히 세우고 상석 높이까지 돌을 덮어 묘역을 구성한 형식의 고인돌과, 전형적인 북방식 고인돌의 두 유형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을 각각 침촌리형과 오덕형 고인돌로 부르며 전자가 시기적으로 보다 이르다고 본다. 탁자식이는 북방식으로 통칭 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탁자식이라 함은 현재까지의 개념보다는 좀 범위가 넓어진 것 같다. 지금 까지는 4∼6개의 널빤지 모양의 지석으로 상자모양의 석실을 지상에 구축하고 그위에 한 개의 대형 널빤지 모양의 돌을 개석으로 삼아 덮은 형식을 말 함이었다. 이는 지석이 상당히 크고 판석으로 되어 석실외형이 탁자모양임을 그 주요성격으로 하였다. 그러나 임병태의 분류에서는 외견이나 지석의 대소에 구애 받지 않고 지석으로 석실을(지하 혹은 지상) 구성하고 그 위에 상석으로 개석을 삼아 덮은 것을 총칭으로 정하고 석실 구조에 따라 가지고 몇가지로 세별할수 있다. 기반식을 일반적으로 남방식이라 많이 불리어 오고 있다. 삼성교수는 남방식을 구조상 A, B, C, D 4종으로 분류하였다. 그중 B형에 속하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기반식이다. 그외 A,C,D 후술할 무지석식에 포함시키면서 유독 B만을 기반식으로 분류한데는 상석구조를 표준으로 일단계를 불류한 때문이다. 구조는 부정형의 대형판석을 3·4개의 塊狀形支石으로 고이고 지하에 종종의 매장시설을 한 것이다. 이런 형식은 주로 호남·영남지방에 많으며 중부지방에도 상당수를 보이고 있으나 그 이북은 발견된 예가 아직 없다. 그리고 무지석식이라고 하는것도 있는데 이 명칭은 탁자식이나 기반식에서와 같은 상석하의 지석이 없다설이 있지만 이들은 약간식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상한연대 추측은 고인돌이 청동기 시대의 특징있는 묘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보다 이른 시기 즉 신석기시대의 요소도 갖추고 있음을 간과 할 수 없다. 이들의 주장하는 학자들의 논지는 다음과 같다. 고인돌의 분포상을 보면 주로 해안이나 강변에 분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수많은 고인돌이 한 지역에 떼를 이루어 분포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정리할 때 고인돌의 분포상이라든가, 유구의 방향, 머리방향 등으로 미루어 보아 주위의 지형적인 조건에 따라 자연에 순응하면서 고인돌이 축조, 분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위치 분포는 같은 청동기 시대 묘제인 돌널무덤의 분포상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조사보고가 제한 된 상태에서 연구된 돌널 무덤이 분포하는 입지 조건상의 특징을 보면 대체로 돌널무덤은 산이나 구릉 정상부 또는 경사면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고인돌은 떼로 지어 분포하는 반면 현재까지 조사된 돌널무덤은 떼를 이루고 있는 예가 거의 없다. 그리고 출토유물에서 특히 토기는 별개로 하기로 하고 석기의 출토비중이 높은 것에 대하여 청동제품의 그것은 매우 낮다. 이러한 차이들에서 두 묘제가 서로 다른 문화의 연원을 갖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즉 고인돌이 해안과 강변에 물과 연관하여 축조된 것은 신석기 시대 의 문화 성격을 고려하게 되고 돌널 무덤은 청동기문화를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진 묘제인 것으로 보인다. 묘제라는 것이 생활조건의 변화 속에서도 다른 제도와 달리 보수성과 전통성을 유지하는 독특한 습속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고인돌과 돌널무덤이 분포한 입지조건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각기 다른 생활상에 연유한 것임에 틀림없다. 지석묘 연대의 하한은 후행한 기반식과 무지석식의 하한이 곧 그 終期의 연대가 되는 셈이다. 藤田교수는 지석묘를 선행한 북한지방에서 는 낙랑군설치까지 B.C.세기까지 행하여졌을 것으로 보고 남한에서 주로 행해진 기반식(무지석식 포함)을 들어 기원 전후하여 등이 있다.일본 규슈[九州]지방에 분포하는 고인돌은 죠몽[繩文]시대 말기에서 야요이[邇生]시대 초기에 걸쳐 등장하는데, 그것들이 한국계 유물과 함께 발견되고 있어, 일본 야요이문화가 한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었음을 암시한다. 고인돌에서는 간돌검과 돌화살촉이 주요 부장품으로 발견되고 있으며, 민무늬토기와 붉은간그릇 등 토기류와 청동기가 부장된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의 지석묘의 기원은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우리나라 자체 발생설, 동남아시아에서 해로를 통한 전파설, 석곽묘에서 파생되었다는 설, 유럽거석 문화에서 파생 설, 시베리아 석상분 기원 설이있다. 우리나라에서의 자체 발생 설은 우리나라에 지석묘가 밀집 분포되어 있고, 또 지석묘의 연대가 주변지역보다 앞선다는데 근거를 두고 있으며, 동남 아시아로부터의 전파설은 동남아시아에서 해로를 통해 중국 동부 해안을 따라 우리나라에 전파되었다는 것과 지석묘와 난생설화의 분포가 일치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고 있다. 하지만 난생설화의 시기와 지석묘가 사용되던 시기가 불일치 한다는 문제점이 남아있다. 유럽거석 문화 파생 설은 유럽거석 문화가 지중해를 건너 하나의 흐름은 인도로 가고 다른 한 흐름은 중국으로 간다. 그리고 다시 중국에서 두 갈래로 나누어져 하나는 한국 다른 하나는 일본으로 건너 간다는 것이다.유럽거석문화──>지중해─┬─> 인도└─> 중국─┬─>한반도└─>일 본하지만 이도 지중해에서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지석묘 분포의 공백이 문제점이다. 석곽묘에서의 파생설은 크게 보면 우리나라 자체 발생설에 포함 시킬 수 있다. 이 설은 우리나라 지석묘를 동남아시아와 같은 주변지역과 연결시키는 것보다 오히려 요녕지방의 석관묘제 계통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 하다는 견해이다. 이영문은 이와 같은 견해들중 석곽묘에서의 파생설이 가장 합리적인 것으로 보고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문화가 중국 동북부지역인 요녕지방의 청동기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주변지역 즉 동남아시아나 유럽등의 지석묘들과 연결시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