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사관과 민주주의사관의 비교목차1.민족주의 사관과 민주주의 사관의 발생배경-식민사관과 이사관에 대한 논리의 빈약성2.민족주의사관의 개념-협의적 민족주의-광의적 민족주의3.민주주의(민중주의) 사관의 개념4.결말민족주의 사관과 민주주의 사관의 발생배경민족주의 사관과 민주주의 사관의 입장을 비교 하고 나아가 우리의 미래 지향적 사관정립을 위해서는 우선 그 발생의 배경을 찾아보고 과거 사관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태도를 가져야 하겠다.우리 나라의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우리의 강토 ? 민족 , 그리고 우리의 정신을 모두 빼앗기 위해서 한국사관을 조작하려고 만든 것이 식민 사관이다. 이는 일본의 침략을 학문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뒷받침해 준 하나의 합리성을 가장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한국인이 한국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 이었다. 이런 이유로 우리의 뜻있는 학자들의 연구는 주로 고대사 연구나 고증학적 학풍으로 흘러가 학문적 경향이 짖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하에 일본이 우리 한국사관을 어떤 식으로 왜곡 시키고 식민주의 사관을 꾸며 냈는가를 간단히 살펴 보고 반박해 보기로 하겠다첫째가 반도적 성격론이다. 한국은 반도라는 자연환경 속에서 오는 특성인 부수성과 주변성르 지니고 여러 세력의 압력에 시달려왔기에 일본의 온적적 지배를 받음 으로써 한국은 반도사적 성격을 지양 할 때를 얻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둘째는 사대주의론이다. 사대주의는 중국과 이웃하느 소국의 행로로서 곧 예속을 의미하고 이는 타력의존적이면 무기력한 민족이라는것을 골자로 한다. 이런 입장을 반대로 보면 우리나라는 오랑캐 침략시 중국과 군사적 협력으로 나라를 안전히 지킬수 있고, 양나라간의 무역의 이점으로 문화의 부흥, 책봉이란 외교적 수교를 통해 쿠데타를 방지 할 수 있었다.셋째는 당쟁론이다. 당쟁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 민족이 불식하지 못하는 하나의 생리현상으로 단정해 버린것이다. 하지만 당쟁시대로 깊게 들어가보면 우리나라는 200년국사관을 조작하고 있을 때 민족적 자각에 뒷받침된 사학연구자들은 민족주의사관에 의한 한국사를 연구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들이 살던 시대적 산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 있어서 민족에 대한 자각이 뚜렷해지던 시기는 아무래도 그들의 활동무대에 등장하던 19세기 말엽으로부터의 일이 아닌가 한다. 물론 민족적인 감정은 오랜 옛날로부터 있어온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왕이나 일부귀족이 아니라 국민에 의하여 뒷받침된 민족적 자각은 독립협회 활동을 전후한 시기라고 보아야 할것이 아닐까 한다. 청국-러시아-일본등 열강 제국들의 침략에 대한 방황 속에서 민족적자각은 일어났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한 민족주의 사관을 ‘협의적 민족주의사관’이라고 할수있다. 그러나 이와같은 사관으로 한국사를 연구한 단제 신채호와 육당 최남선의 민족주사학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은 역사적인 발전에 대한 개념이 결여되어 있다는 곳에 있다. 단제 신채호의 사상을 살펴보면 다음을 알 수있다. "역사란 무엇이냐? 인류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부터 발전하며 공간부터 확대하는 심적 활동상태의 기록이다." (신채호 저, 이만열 주석, [조선 상고사] )'아와 비아' 역사를 볼 때는 주체성이 확립되어 있지 않으면 제대로 역사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엔 '나'라는 주체성을 확립하고 역사를 기술해야 된다는 단제의 사상이 표현되고 있다. 이는 외래사상에 대해서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단제가 가지고 있는 역사의 시간적인식은 민족의식의 강약과 투쟁의 승패에 있었을 뿐이었다. 그 대립과 투쟁을 지양하여 새롭고 보다 높은 것으로 발전하는데 대하여는 언급이 었었던 것이다. 육당의 경우에 있어서도 발전에 대한 개념을 찾아볼 수 없음은 마찬가지이다. 그에게 있는 것은 역시 “조선정신 발로”의 강약뿐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이 점에서 그들의 민족주의사학은 가장 치명적인 결함을 드러내 놓고 있는 셈이다. 민족의 얼을 내세운 위당의 철저한 정신사관도 단재의 역사관과 흡사한주독립의 길을 찾자는 역사관이라고 하겠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볼때, 그 뒤의 민족주의 사관도 그궤를 같이 하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해방 후 민족주의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 였고 한국국제정치학회에서는 1967년 “조선민족주의”심포지움을 개최했고, 1976년에 이르러서야 한국정치학회가 개항 100년 심포지움을 개최함으로써 한국 민족주의가 안고 있는 제문제가 다각적으로 검토괴기 시작했다. 그 뒤 아세아정책연구원에서 “한국민족주의의 이념”이란 연구논총을 발간했다. 여기에 기고한 최상용 교수의 민족주의사관을 살펴보자.최상용교수는 한국 내셔널리즘의 담당세력은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라는 전제 아래 “전전 한국민족운동은 대체로2기, 즉 사가들에 의해 반식민지화 시대로 불리우는 시기와 일본 식민통치의 시기‘개화’, ‘동학’등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고, 후기의 민족운동은 3.1운동으로 대표된다”고 논하고 있다. 그리고 전후 북한은 ‘점령공산주의’, 남한은 ‘점령민주주의;의 사상적 세뇌를 받게 되었다”고 주장했다.그뒤 1978 김용욱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한국민족주의 운동을 다음과 같이 구분했다. 제 1기 : 개항 이후 한일 합방을 경과해서 3.1운동 이전까지, 제2기 : 3.1운동 이후에서 8.15해방 후 1979년도 이전까지 1945~현재 라고 했다.이처럼 몇몇 학자들의 주장은 우리 나라의 역사를 줄곧 민족자주독립을 위한 민족주의로 일관하였다. 여긱서 협의적 민족주의 개념은 대외적인 것이기에 외교사적 용어이고, 국제관계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정치사 연구에서 이러한협의적 민족주의사관은 탈피되어야 하겠다.위에서본 여러학자들은 민족주의 이론을 제각기 다른 각도에서 정의를 내리고 있다. 이처럼 민족주의에 대한 개념이 다의적이고 다양하기 때문에 단순히 민족독립을 주창하는 민족주의와 구별하여 광의의 민족주의로 규정할수있다고 본다. “대내적 통일 ?발전을 지향하는 이데올로기”라고 했을때 이 민족주의는 그 이념이 퍽 다양하고 다의적이다 으로써 1.대회적으로 정치적 지도권을 특권 귀족층의 독점으로부터 해방하여 국민적 기반으로 확대하고, 2.대외적으로 오랫동안 국제사회의 조직원리였던 왕조주의를 타파하고, 독립구가를 형성하려고 했다.㉡최상용 20세기 민족주의 특징은 카교수가 지적한 “Socialization of Nation, Nationalization of Socialism" 명제에 따라 분류해 본다.1.중국의 공산주의적 민족주의2.소련의 일국사회주의3.독일의 국가사회주의4.동구공산제국의 신민족주의5.한국민족주의 평화통일과 자유민주주의가 종합되어야 한다.㉢문승익 민족주의의 시초부터 정치적으로 혁명적인 사상이며 운동이었다. 요컨대, 민족주의는 기존의 합법적인 정부 - 그 합법성이 세습권이나 왕권 신수설에 기초하는 공부 - 의 전복을 위한 사상 ? 운동이었고, 또 새로운 정치적 실체 - 민족과 국각가 상호부합되는ㄴ 국가 - 의 수립을 위한 사상 운동이었다. 이와 같은 민족주의 본래의 뜻을 생각할 때 - 좀더 새롭게 명확한 개념 정의가 없이 -‘민족주의’ 라는 이름표를 위정척사사상이나 개화사상이나 동학사상에 붙이는 것은 타당한 일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특히 위정척사사상의 경우처럼 기존질서세계관의 보존을 위해서 투쟁한 경우 여기에다 민족주의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것은 역설적이기조차 하다.여기서 ‘발전’ 개념을 ‘민주적 근대화’라고 규정할 것을 제안하면서 ‘자유적 근대화’를 “자기의식에 기초해서 자기의지에 따라 자기행동으로 나타나는 성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한배호 한국사회는 오늘날 공업화를 지향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사회에 이미 한말 이후, 특히 3.1 운동을 겪은 후에 생동하기 시작한 근대적 의식과 근대화에의 의욕이 성숙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양호민 한국의 민족주의는 군부엘리트의 지도하에 추진되고 있는 제3세계형 사회주의의 방향으로 발전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 경제는 한국에서는 벌써 거의 전면적으로 제도화되었으며, 이것을 토대로 하여 사회계층은 재편성?? ? 재형성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민원 원랠 근대 민족주의의 발상지인 프랑스에 있어서 사상적으로 보면 민족이란 개인의 자유스러운 의사의 결사, 또 동의에 의한 참여로 형성되는 하나의 정신적 공동체였다. 이런 의미에서 민족주의는 정치적 자유와 그리고 인민주권사상과 일치되는 것이었으며, 또 민족 주의와도 같은 사상적 근원을 같는 것이었다. 따라서 민족주의의 전체서 ? 통일성은 자유주의적인 부분성 ? 다원성과 조화로운 표리관계에 있었다.㉦신복용 볼의 논거와 관련하여 한국민족주의의 투쟁목표를 살펴본다첫째로 볼의 지적처럼 외국의 정치적 ? 경제적 침략, 즉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한 투???성격을 띠고 있다.둘째로 한국민족주의가 투쟁해야 할 다음 목표는 내정개혁이었다.셋째로 투쟁목표는 계층적 갈등의 극복이었다. 이 문제는 민족운동의 주체세력이 누구였느냐 하는 데에서 비롯된다.㉧김영작 1. 근,현대한국민족주의의 첫 단계라고 할 수있는 개국 전후부터 식민지화된 시기까지의 반침략, 반봉건 민족주의하에서는 민족주의의 내부에 다음과 같은 사상적 갈등과 그로인한 문제점이 있었다. 곧 전통사상을 고집할 것인가 ,근대사상을 수용할 것인가, 전통적 가치관 체제를 유지할 것인가 반봉건적 체제에도 전환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상호갈등 대립하였다 2. 3.1운동 이후 좌익과 우익 사잉에 민주공화제와 소비에트 체제관 및 독립 운동의 추진방법 그리고 주체형성에 관한 민족노선과 계급노선 문제를 둘러싸고 때로는 접근하고 때로는 극심함 갈등 ? 대립을 되풀이 해왔다. 3. 해방이후의 민족주의 성격은 통일 민족주의였다. 미,소에 의한 남북 분할점령 바람에 우리의 민족주의는 체제관을 둘러싼 갈등이 더욱 첨예화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통일보다는 이데올러기의 선택을 우선하는 남북 정치세력의 의해 각기 독자적 정부가 수립됨으로써 분단이 고저화 되고 통일민족주의가 공동화되었다.위에서 본 여러 학자들은 민족주의 이론을 제각기 다른 각도에서 정의를 내리고 있다. 이처럼 민족주의에 대한 개념이 다의적이고 다양하기 때문에 단순히 민족독립을 주창하는 민족주의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