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1. 작가 ‘윤흥길’에 대한 이해1.1 윤흥길의 생애와 전기적 고찰1.2 윤흥길의 문학관1.3 윤흥길의 문학세계2. 윤흥길의 중편소설 (1973)2.1「장마』2.2 소설『장마』의 주제- 전쟁으로 빚어진 한 가정의 비극과 그 극복2.3『장마』의 줄거리2.4『장마』의 등장인물2.5『장마』의 상징적 소재2.6 어린이 화자의 특색을 중심으로 -어린이의 눈에 비친 진실2.7 무게의 역전2.8 파괴된 유년3. (1976)3.1 근대화가 낳은 왜곡된 현실에 대한 자각3.2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의 전체 줄거리3.3「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의 작품 구조와 등장 인물3.4「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소시민에서 도시 빈민으로3.5「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에 나타난 상징적 의미3.6「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의 시대적 배경3.7 이어지는 이야기: 「직선과 곡선」「창백한 중년」「날개 또는 수갑」3.8 윤흥길 소설의 주제 - 산업화에 대한 비판적 성격4.「장마」의 교육적 적용4.1 소단원 개관4.2 제재의 활용 방안4.3 알아두기4.4 학습 활동참고 문헌작가 ?윤흥길?의 생애와 문학[장마],[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중심으로1. 작가 ‘윤흥길’에 대한 이해1.1 윤흥길의 생애와 전기적 고찰1) ‘정읍’에서의 행복한 시간윤흥길은 1942년 12월 14일, 전라북도 정주군 정주읍 시기리에서 아버지 윤상오씨와 어머니 조옥성씨 사이에 손위 누이 하나를 둔 2남 4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7년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서 이리시로 이사하기 전까지 살았던 정읍에서의 유년은 윤흥길 일생에서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는 자전소설에서 정읍을 다음과 같이 술회한다.“ 지금도 나는 내 소중한 정읍을 다치고 싶지 않다. 내게 있어 정읍은, 이를테면 나만이 아는 곳에 꼭꼭 숨겨 둔 비상금과 같은 것이다. 내 영혼이 곤경에 처했을 때, 치명적인 위기에 처했을 때 외에는 함부로 꺼내 쓰고 싶지 않은 것이다. 정말 그렇다. 산 좋고 물 맑은 정읍에서 보낸 내하는 인기작가나 유행작가가 항용 드러내기 쉬운 위태위태한 단명(短命)의 징후 같은 것을 그의 문학에서는 조금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문학은 오히려 본래적인 미덕이 간직하기 마련인 듬직한 중량감을 빚어냄으로써 독자의 확고한 신뢰감을 획득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어떠한 거센 풍파라도 능히 견뎌낼 뚜렷한 자신의 문학적 개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른바 단명의 유행작가와 명백히 구별되는 것이며, 그러면서도 독자의 일시적인 기호나 취향에 영합함이 없이 자신의 세계를 꾸준하게 천착 확대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른바 부박(浮薄)한 인기작가와도 뚜렷하게 구별되는 것이다.그는 우선 치밀하고도 섬세한 사실주의적인 묘사를 문학적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점에서 그는 얼핏 보기에 그다지 모험적이거나 실험적인 작가가 아닌 듯이 보인다. 그는 대개의 경우 일단 차분한 관조자의 자세를 취한다. 이는 그의 문장의 지배적인 톤이 요설이나 웅변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엄격하게 절제된 관조자의 그것이라는 사실과 긴밀히 관련되는 점이다. 이는 작중의 행동이나 사건과 그것을 진술하는 내레이터의 톤 사이에 일정한 편차가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된다.이로 인해 작중현실 안에서는 대개의 경우 일종의 아이러니가 빚어진다. 이는 그의 작중의 분위기를 약간 흐릿한 것으로 빚게 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그가 펼쳐내는 작중현실은 일단 그 윤곽이 부각되기는 하면서도 어딘지 아련한 안개 같은 것이 거기에 서려 있는 듯하다. 그리하여 독자는 처음 다소 당혹감을 의식하게도 되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모든 윤곽이 백일하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보다 어떤 신선한 여운을 느끼게도 되는 것이다.그의 이러한 아이러니는 특히 「황혼(黃昏)의 집」「장마」등과 같이 철없는 어린이의 시점으로 어른들의 세계를 진술하고 있는 일련의 작품들에 있어서 잘 나타난다.그러나 이러한 아이러니는 의도가 원색적으로 드러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런 점 역시 엄격하게 절제된 그의 관조자적인 문장의 톤과도 긴밀히 관련되는혹은 연대성이라는 상식적인 수준이 아니라, 전자의 비참한 삶의 현실을 통해 후자의 인습화된 의식 세계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윤흥길 문학의 특색이 드러난다. 양문규는 그것을 일컬어, 가난한 이웃을 사랑하라는 당위적인 명제에 대한 위악성을 띤 반성적 고찰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부자는 경멸해도 괜찮은 것이지만 빈자는 절대로 미워해서는 안 되는 대상”이라는 생각에 매여 있으면서도, “소주를 마시면서 양주를 마실 날을 꿈꾸고 수십 통의 껌값을 팁으로 던지기도 하고, 버스를 타면서 택시 합승을, 합승을 하면서는 자가용을 굴릴 날을 기약”하는 것처럼, 이론과 실제는 이토록 판이하게 다른 것임을 작가는 토로하고 있는 듯하다.연작격인 에서 화자로 변신한 권기용은 그토록 소중했던 아홉 켤레의 구두들을 모조리 태워버리기 때문이다. 음독자살 시도로 “죽는 연습”을 한 그는 극단에 몰린 자 특유의 악착같음으로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만 생각하기로 결심한다. “수단껏 뺏을 작정”이라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오 선생과 권기용 사이에서는 전과는 또 다른 갈등이 생겨나게 된다. 삶의 벼랑에서 ‘나체’가 되어본 자, 구두를 태우고 맨발로 뛰는 자를, 그렇지 않은 자가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오 선생의 직업이 교사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권기용에게 있어 재로 날아간 아홉 켤레의 구두는 교육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제 그는 철저하게 자기가 받은 교육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인간의 삶을 날것 그 자체로 보려 한다. 실제가 아니라 이론을, 삶이 아니라 관념과 도덕을 가르치는 교사 오 선생과 그것들 모두를 거부하기로 한 권기용의 대립은 바로 ‘직선과 곡선’의 그것이다.살펴본 바와 같이 윤흥길은 최대의 민족적 과제인 분단의 현실에 대해 나름대로의 문제 제기를 하며, 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진 제반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가 현실에 대해 질문하는 방식은 70년대 여느 작가들과 사뭇 다르다. 가령 분단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적 상상력을 앞세우기보다상징되는 동시에 민족이고, 구렁이를 향한 돌팔매질은 우리 민족에 대한 수난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적 장치이다.‘저주받은 사람이 죽으면 구렁이가 된다.’라는 우리나라 전래의 무속 신앙은 이 작품의 경우에 있어서 단순한 미신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빨치산이 되어 죽은 아들의 어머니인 친할머니나, 국군으로 간 아들의 전사 통지서를 받아야 했던 외할머니에게 우연히 나타난 구렁이는 결코 우연의 등장이 아닌 필연의 결과이며 미신이 아닌 확신이요, 확증이다. 그것은 혼란한 역사의 돌팔매에 쫓기는 불행한 영혼이며 우리 역사가 치러야 했던 음산하고 저주스러운 동족상잔의 비극을 극명하게 표상 하는 구체적 실체이다. 따라서 가련한 두 노파의 한 맺힌 설움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우리들에게도 그 구렁이는 비극의 실체로서 리얼리티를 가지고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할머니의 머리카락 타는 냄새를 맡고서야 그 비극의 실체, 즉 구렁이가 사라졌다는 결말 처리는 인간의 숨결이 있어야 역사가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다는 작가 정신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또 이 작품에 드러난 친할머니와 외할머니가 한 집에 살고 있는 상황 설정 자체가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2.6 어린이 화자의 특색을 중심으로 -어린이의 눈에 비친 진실소설 창작에서 화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똑같은 내용이라고 해도 그것을 ‘누가’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소설은 천차만별로 달라지게 마련이다. 시대가 변하고 소설의 모습 역시 변해도 ‘어린 화자’에 대한 작가들의 관심은 여전한 듯하다. 아직 세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어린이를 굳이 화자로 내세우는 데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즉 작가가 노리는 결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말이다.이 소설 에서 어린 화자 ‘나’가 해내고 있는 역할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나’는 오염되지 않은 객관적 시선의 소유자다. 그래서 독자는 특정한 관점을 강요당하지 않고 상황 자체를 냉정히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 소설 속에서 ‘나’는 이데올이었다. 그런 질문만 받으면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우선 질문 자체가 일방적인 대답을 강요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묻는 순서부터가 매번 외삼촌 쪽이 먼저였다. 그리고 내 처지로서는 도저히 누구는 좋고 누구는 싫다고 얘기할 입장이 못 되었다. 사실대로 얘기하려면 둘 다 좋다고 해야 된다.)‘나’가 처해 있는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 아군 아니면 적군 식으로 살벌하게 대립하는 세계는 급기야 아이에게까지 선택을 강요한다. ‘사람백정’ 운운에 맞먹는 폭력임에 틀림없다. 유년기의 내면에 가해진 이러한 폭력과 상처를 보여줌으로써 작가는 정치적 이념으로 양분된 잔인한 현실을 더욱더 효과적으로 고발하고 있다.3. (1976)3.1 근대화가 낳은 왜곡된 현실에 대한 자각“작가에겐 어떤 형태로든 불행한 시대를 그리고 증언할 책임과 의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밝음 저쪽에 가려진 어둠 가운데서 진실을 끄집어내고 그것에 덮인 먼지를 떨고 닦는 작업, 역사의 표면에 떠오르지 못하고 삶답지 못한 삶을 살다가 흐지부지 사라지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영웅 또는 위인들과 동시대를 살다가 흔적은 남김으로써 존재 의의를 부여해주는 작업들이 바로 어려운 시대를 사는 작가가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될 중대한 역할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1977년 윤흥길은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직선과 곡선」,「날개 또는 수갑」,「창백한 중년」등 네 편의 소설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문단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이 작품들의 특징은 한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일관되게 이어지는 ‘연작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은 ‘권기용’이고 때는 1970년대, 장소는 경기도 성남시다. 이 연작은 근대화?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진 우리 사회의 모순을 무력한 소시민의 자존심과 분노를 통해 날카롭게 드러낸다.「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1970년대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한 소시민의 삶을 통해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권출한다.
김동인의 『광염(狂炎) 소나타』1. 줄거리어느 여름날, 음악 평론가 k는 사회교화자 모씨와 함께 음악가 백성수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백성수의 아버지는 k와 동창인 백모씨이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광폭한 성질로 유명하였으나 그 음악의 야성 넘치는 선율은 세인들로부터 천재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하였다. 백모씨는 어느 양가집 처녀 사이에 백성수를 가지고 백성수가 태어나기 전 심장마비로 급사하게 된다.30년 후 명망있는 음악 평론가의 반열에 오를 k는, 어느 날 저녁 평소 자주 찾던 회진 예배당에서 명상을 하던 중, 언덕 아래 집에서 불이 난 것을 알게 된다. 그때 한 청년이 놀란 사람처럼 예배당으로 뛰어 들어와 사면을 살피더니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계통에서 벗어난 자유 분방한 소타타를 연주하는 그 청년을 보고 k는 30년 전 심장마비로 사망한 자신의 옛 친구를 떠올리게 된다. 연주가 끝난 후 그 청년이 바로 자신의 친구인 백모의 아들인 백성수임을 확인한 k는 그 청년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게 된다.집으로 돌아온 후, k는 예배당에서의 곡을 이어서 연주하도록 백성수에게 명하지만 백성수는 한낱 감정의 재와 같은 연주만을 하게 된다. 보다 못한 k가 직접 예배당에서의 연주를 반복하자 그제서야 백성수는 k를 밀쳐내고 그 소나타를 완성하기에 이른다.백성수는 유복자로 자라며 어머니의 도움으로 소학과 중학을 마치고 생계를 위해 직공으로 취직하게 되지만 집에 사다 놓은 피아노를 연주하며 음악에 대한 정열을 대신하고 있었다. 10년 뒤 그의 어머니는 병에 걸리게 되었고 약값 등으로 돈은 거의 바닥나게 된다. k와 만나기 몇 해 전 여름, 불안한 느낌에 공장에서 돌아온 백성수는 어머니가 혼수상태임을 알게 되고, 돈을 구해 무작정 길거리를 헤매던 중 어느 담배 가게에서 동전 몇 닢을 홈지게 된다. 이 일로 인해 그는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 한 채 감옥에 가게 되고 반년 뒤 겨우 출옥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이미 분묘도 없이 세상을 뜬 뒤였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분노로 그때의 담배 가게에 불을 지른 후, 숨을 곳을 찾아 예배당에 들어왔다가 k를 만나게 된다.k는 사회교화자 모씨에게 백성수의 편지를 보여 주며 백성수의 예술적 천재성이 그간 어머니의 온화한 교육 탓으로 표면에 나타나지 못한 것일 거라고 말한다. 백성수는 자신의 야성적인 천재성을 제대로 표출하기 위해 방화, 살인, 시간 등을 저질렀음을 편지를 통해 k에게 고백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백성수는 경찰에게 붙잡히고 예술가 협회의 탄원으로 겨우 사형을 면하고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 k는 야성으로 충일된 예술가의 달성을 위해 집개, 사람 개가 과연 중요한 것인가라고 모씨에게 묻는다.2. 등장 인물 소개① 백성수: 천재적 음악성을 지니고 있으나 작곡의 동기를 얻는 방법이 광기에서 비롯되어 결국 정신 병원에 들어가는 인물② k씨: 백성수 아버지의 친구이자 백성수의 후견인 노릇을 하는 음악 평론가(예술 지상주의자이기도 하다)③ 사회교화자 모씨: k씨의 대담 상대 역할 윤리 도덕을 앞세우는 사람의 대표( k씨와는 반대 입장을 지닌 인물이다.)3. 작품의 이해와 감상‘광염 소나타’는 1930년 에 발표된 김동인의 소설로서 그의 예술관을 잘 보여 주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동인은 많은 평문들을 통하여 예술의 자율성과 독자성을 강조하였다. 김동인이 규정한 미는, 반이성주의, 반규범, 반도덕적인 성격을 지닌 것으로 방랑과 파괴, 음습함, 기괴함 따위의 부조화된 광기의 속성을 지닌다. 이 작품에서는 이러한 그의 예술관이 ‘백성수’라는 한 예술가의 삶을 통해 형상화되고 있다.이 작품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 추구한 음악의 세계는 광기라는 예술적 정열에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백성수’는 과히 악마적주의적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다. 이러한 주인공을 보는 김동인의 시각은 부정적이라기 보다는 따뜻한 동정에 있다. 그것은 음악가 k의 시선을 통해 시종일관 나타난다.이 소설은 음악가 k와 사회교화자와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여기에서 작가의 분신으로 설정된 인물은 음악가 k이다. 그는 진정한 예술을 위해서는 여타의 회생은 감수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예술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보는 인물이다. 작품에서 그는 백성수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교화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그 질문은 대답을 요구한다기보다는 모든 것을 사회적 효용의 의미로 몰아가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기도 하다. 그 저항은 한 천재 예술가를 광인으로 몰아가는 사회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기도 하다.마지막으로 이 소설의 서두는 작가의 직접 개입으로 시작된다.독자는 이제 내가 쓰려는 이야기를, 유럽의 어떤 곳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여도 좋다. 혹은 사오십 년 뒤에 조선을 무대로 생겨날 이야기라고 생각하여도 좋다. 다만 지구상의 어떠한 곳에 이러한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있는 지도 모르겠다. 혹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능성뿐은 있다. - 이만큼 알아두면 그만이다.그런지라. 내가 여기 쓰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백성수를 혹은 알벨트라 생각하여도 좋을 것이요, 짐이라 생각하여도 좋을 것이요, 또는 호모나 기무라모로 생각하여도 괜찮다. 다만 사람이라 하는 동물을 주인공 삼아 가지고, 사람의 세상에서 생겨난 일인 줄만 알면.....이러한 전제로써, 자 그러면 내 이야기를 시작하자.이렇게 작가가 직접 개입하여 이야기의 전말을 전해주고 있다. 이러한 면은 고대 소설의 흔적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설정이 독자의 흥미를 유발시키고 있다.4. 단어풀이① 탄주: 가야금이나 바이올린 따위의 현악기를 연주함. 여기서는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뜻② 재재: 조금 수다스럽게 재잘거리는 소리 또는 그 모양③ 교의: 다리가 긴 의자④ 스케르초: 교향곡, 현학 4중주곡의 제 3악장에 쓰이며, 템포가 빠른 3박자, 격렬한 리 듬, 그리고 기분의 급격한 변화 등이 그 특징⑤ 미상불: 아닌 게 아니라 과연⑥ 명재경각: 거의 죽게 되어 곧 숨이 끊어질 지경에 이름⑦ 낟가리: 낟알이 붙은 곡식을 그대로 쌓은 더미⑧ 아다지오: 악보에서, 안단테와 라르고 사이의 느린 속도로 연주하라는 말 또는 그 속도 로 연주하는 곡이나 악장⑨ 언어 도단: 말할 길이 끊어졌다는 뜻⑩ 시간: 시체를 간음함5. 김동인의 생애1900(1세) - 10월 2일, 평안부 하수구리 6번지에서 부호 부 대윤과 모 옥씨(둘째부인) 사이의 차남으로 출생.1918(19세) - 가와바다 미술 학교 입학, 부친상으로 일단 귀국하여 김혜인과 결혼한 후 다시 도일.1919(20세) - 가와바다 미술 학교 중퇴 한국 최초의 문예 동인지를 효오군오에서 간행 후 귀국. 출판법 위반 혐의로 6개월 징역. 2년간 집행 유예 선고를 받음.1921(22세) - 속간 문제로 상경. 한때 방랑 생활, 진남포, 대구, 경주 등지로 떠돌아다님.1924(25세) - 첫 창작집을 출간, 후신격인 발간.1925(26세) - 이때부터 두 번째 방랑 시작, 파산1926(27세) - 가산을 정리하고 남은 돈 1만 5천원으로 관개 사업에 손을 댐.1928(29세) - 아우 동평의 라는 영화에 제작을 도와, 평양, 진남포, 경주, 혜천, 선친 등지를 돌아다니며 영화 흥행에 힘썼으나 실패1930(31세) - 다시 상경. 불면증으로 고생함. 40여 일간 조선일보사 학예부에 봉직 김경애와 재혼함. 서울 서대문구 행촌동으로 이사.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하여 신문, 잡지 들에 소설, 사담 등을 씀. 그러나 생계는 더욱 곤란해짐.1935(36세) - 12월에 월간 을 손수 발간1942(43세) - 천황불경죄라는 죄명으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6개월간 복역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