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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불교와 기독교에서의 사랑의 이유에 대한 고찰
    사랑이란 인간이 태초부터 가지고 있는 인간의 본성 중에 하나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 부모님에 대한 사랑, 이성에 대한 사랑 등 사랑의 종류는 많다. 그 종류가 다를 뿐 누구나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사랑을 하면 세상이 달라져 보 인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모든 것이 좋게만 보이고 주위의 사물들이 새롭게 느껴진다. 사랑하기 싫다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아니,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없을 것이다.사랑의 감정은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억지로 사랑하려 한다고 사랑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일방적으로 내가 사랑한다 해서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해야지 하는 마음을 먹고 사랑하지 않는다. 자녀도 마찬가지이다. 함께 생활하고 한 핏줄 이라는 유대감을 느끼고 한 집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부모님을 자연스럽 게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사랑은 일방적인 사랑보단 쌍방향적 사랑일 때 깊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기독교는 그의 실천적 삶이 사랑이며 불교는 자비라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사랑과 자비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사랑이 자비요 자비가 곧 사랑 이다. 어머니가 자식에 대한 정을 사랑이라 표현하고 또는 그 정을 자비라 표 현한다 하여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이렇듯이 하나님의 사랑을 기독교는 기독교식으로 표현한 것이며 불교는 불 교 식으로 표현한 것이다.그러면 사랑의 대상이 누구이건 간에 사람들은 왜 사랑하여야 하는가? 나는 사랑의 이유를 기독교와 불교에서의 입장을 비교하려고 한다. 우선 기독교에 서의 사랑의 이유를 살펴보도록 하자.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예수는 사랑을 제일로 내걸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나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한복은 제 15장) 이것은 예수의 유언으 로 이 유언 가운데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이 어떤 것인가가 잘 나타나 있다.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랑,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랑, 죄인과 의 인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햇빛과 비를 주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완벽한 사랑을 본받는 예수의 사랑은 무조건적 사랑이요, 무차별적 사랑이요, 무아적 사랑이다. 그것은 무엇을 얻기 위한 사랑, 대가를 바라는 사랑,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사랑, 자신의 부족함을 보충하기 위한 사랑이 아니라 아가페 사랑이 다.기독교에서의 사랑은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번째는 하나님의 인간 에 대한 사랑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 랑의 증거이다. 또, 그리스도가 자기의 목숨을 십자가에 내던진 것은 우리에 게 사랑을 보이신 것이다.두번째와 세번째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코자 우리 인간의 하 나님에 대한 사랑과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여기서 하나님에 대한 사 랑과 이웃 사랑은 불가분한 것이다. 요한서1서 에는 이 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잇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 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 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기독교적인 입장에서 우리가 사랑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는 하나님이 사랑 하라 고 명령하기 때문이다. 좀 더 설명하자면 기독교의 기본 원리인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께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기회를 마련 할 수 있고, 하나 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을 우리에게 강요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깊은 뜻을 담고 있는 이 사랑은 분명 실천 가능한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남을 사랑할 수 있기에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다음으로 불교의 입장에서 사랑의 이유를 살펴보도록 하자. 엄격히 따지자면 불교에서는 사랑을 부정한다. 불교에서는 사랑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 다.우선 사랑은 본질적으로 자기애이다. 우리들은 자기 편의에 따라 타인을 사 랑하며 이렇게 해서 타인을 속박한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할 때도 그 부모는 자기 자식을 자기 소유물로 사랑하는 일이 많다. 자식이 자기 부모를 떠나 자 기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 부모들은 배신당했다고 생각한다. 남녀는 사랑에도 역시 상대를 속박하는 느낌이 있다. 결국 단적으로 말하면 사랑은 욕망의 일 종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욕애 라고 부른다.다음으로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행해서 집착심을 일으킨다. 이와 같이 병 적으로 집착된 사랑을 불교에서 갈애 라고 부른다.또한 사랑과 미움은 등과 배의 관계로 사랑 속에는 미움이 포함 될 가능성이 있다. 사랑이 깊을 수록 미움의 가능성도 커지는 것이다.이렇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사랑을 부정하는 것이다. 사랑을 떠나는 것을 불 교에서는 이상으로 보고 있다. 이렇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사랑 대신에 자비를 말하고 잇다. 자비의 뜻은 타인의 괴로움을 이해하고 타인의 신음을 공감하는 것이다. 즉, 지혜로운 사랑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사랑과 불교의 자비가 궁극 적으로 뜻하는 것이 비슷하기에 나는 자비를 사랑으로 보려고 한다. (이하에 서의 자비는 사랑을 뜻함)불교에서의 자비는 공관(空罐)에 근거한 무연자비(無緣慈悲)로서 무차별적 인 자비이다. 주는 자와 받는 자와 재물의 상을 떠난 순수한 자비이며 베풂 없는 배풂, 자비 아닌 자비라 할 수 있다.아집이 있는 곳에 이웃과 중생에 대한 순수한 사랑은 불가능하다. 자기와 남 을 가르고 분별하는 곳에 순수한 보시가 있을 수 없으며 오른손이 하는 일이 왼손이 모르게 남을 돕는 일은 불가능하며 중생을 중생으로 보는 한, 보살의 순수한 자비는 있을 수 없다.나는 불교적 관점에서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인연 과 윤회 때문이라고 생 각한다. 인(因)은 원인, 연(緣)은 결과로 인연이란 원인에 의해 생기는 결과를 말한다. 즉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생기기 때문이 이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저것이 멸하기 때문에 이것이 멸한다. 라는 것이 다. 사람의 전생은 한번이 아니다. 내게도 무수한 전생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 고 전생의 시점에서 보면 지금의 생은 내생이 될 것이고 다음 생의 시점에서보면 지금의 생은 전생이 될 것이다. 무수히 많은 전생의 인과 (잘했든 못했 든, 크던 작던, 넓던 좁던, 개인적이던 여러 사람을 위하던)는 지금의 내 업이 될 것이다. 또 지금까지의 내 자신의 업은 다음 생으로 이어질 것이다. 인연설 에 기초해서 설명해보면 현세의 삶이 곧 원인이 되어 내세의 삶의 형태를 결 정하게 된다. 그러므로 현세가 아주 중요해 지는 것이다. 또한 내세를 위해 현 세를 잘 살아야하니 그것이 목적이 되어 또한 아주 중요하게 된다.
    인문/어학| 2005.11.30| 5페이지| 1,500원| 조회(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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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참선의 의미와 참선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
    참선의 의미참선은 참회나 발원 그리고 기도 등과는 차이점이 있다. 이런 것들이 다분히 외부지향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면, 참선은 철저히 내부지향적이라는 것이다. 밖을 향해서 무언가를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이켜 비춘다는 데 참선을 특징이 있다. 이것은 말하자면 가장 불교다운 수행법이라 할 수 있다. 초기 경전에 의거해 보건대 부처님 당시의 제자들은 다만 법문을 듣고 각자 나무 밑이나 한가한 곳에 가서 사우한 것으로 되어 있다. 부처님께서는 외부의 어떠한 신과 같은 대상을 향하여 복을 빌거나 현실적 문제의 해결을 바라도록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스스로의 지혜를 돌이키도록 하고, 자비심으로써 세상을 살아나가도록 가르치셨던 것이다.이러한 점에서 참선은 가장 불교적 수행이라 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 해 온 참회나 발원 혹은 기도 등도 결국은 참선을 제대로 하기 위한 준비과정 내지는 적응단계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참회를 통해서 비워진 마음자리에 발원을 채움으로써 자기변화가 시작되었고 기도를 통하여 강력한 변화를 체험하였다면 이제 그 마음자리 자체를 밝히는 것이 바로 참선이다. 참선의 목표는 ‘본마음*참나’를 밝히는 데 이다. 그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으며, 청정무구하여 일찍이 티끌 세간 속에 있으면서도 물든 일이 없이 완전하다고 한다. 이러한 청정무구심에 관해서 사실상 말로써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다만 비유를 통해서 그 일단을 엿볼 수 밖에 없다.《금강경》에 관한 다섯 스님의 주석을 함께 모은 『금강경오가해』라는 책에 실린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대나무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하나 일지 않고,달빛이 연못을 꿰뚫어도 흔적하나 남지 않네.산사에 고요히 앉아 있자면 바람이 휘이 하고 지나간다. 특히 대나무 사이로 훑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는 듣기가 여간 좋은 것이 아니다. 그 대나무가 움직일 때마다 마당에 비친 대나무 그림자도 함께 움직인다. 하지만 아무리 대나무 그림자가 마당과 섬돌을 쓸어내려도 마당 위의 티끌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림자가 아무리 움직인들 마당이 쓸어 질 리는 없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보름달이 연못 밑바닥까지 비춘다고 하여도 물에는 달빛의 자취가 남을 까닭이 없는 것이다.이것은 비록 세파에 찌들고 시달려 살아가는 인생이라 할지라고, 본래의 성품은 조금의 어지러짐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본마음’ 또는 ‘참나’라고도 하며 ‘자성청정심’이라고도 한다. 참선은 이러한 자성청정심에 관한 확고한 믿음 내지는 인식 상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즉 내가 본래 완벽하다는 데서 출발하는 수행인 것이다. 따라서 완벽을 향해서 나아가는 수행, 즉 불완전한 나를 완전한 나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본래 완전한 나를 확인해 나갈 따름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 불교의 참선과 다른 명상수행법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 내재 해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진실한 삶을 위한 참선선은 본래 무공덕, 무소득 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이것은 라는 뜻이다. 일본의 유명한 선사인 도원의 《학용도용심집》에도 소득을 바라는 마음으로 불법을 수련하여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즉 건강하게 되고 싶다, 출세하고 싶다, 노이로제를 치료하고 싶다는 등, 무엇인가 이익을 얻으려 생각하여 참선을 하여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선에서는 깨침조차 구하여서는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깨침이야말로 선의 생명일진대 그것마저 기대하여서는 안된다고 하는 이야기다.지금 우리는 서국적인 사고 즉 합리주의와 물질주의, 과학 만능주가 팽배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인류는 문명이 발달하면 발달 할수록 원래는 건강하고 행복해야 할테지만 거꾸로 정신적인 장애를 받고 괴로워하고 있다.소득을 바라고 참선을 하여서는 안된다. 하지만 참선적 수련이 정신적인 건강이나 육체적인 건강에 도움이 된다면, 괴로움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이것을 활용 하는 것도 현대인의 생활의 지혜 일 것이다.어떤 스님이 물었다.“무엇이 도를 닦는 것입니까?”“도는 닦는데 속하지 않는다. 닦아서 체득한다면 닦아서 이루어 졌으니 다시 부서서져 성문(聲聞)과 같아질 것이며, 닦지 않는다 하면 그냥 범부이다.”《마조록》이상은 마조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마조스님의 가르침은 가히 파격적이라 할 만 하다. 우선 상식적으로 사람들은 수행이라는 원인을 통해서 깨달음이라는 결과를 얻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상식적인 견해에 불과할 뿐이다. 참다운 도는 상식에 기반 하면서도 상식을 초월 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도는 닦는데 속하지 않는다는 표현이야 말로 참선수행의 핵심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자성은 본래 완전하기 때문에 선이다 악이다 하는데 막히지만 않으면 도닦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자성이란 스스로의 성품 즉 본마음 ? 참 나를 이야기 한다. 본마음? 참 나는 본래 완전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이라고 해서 취한다거나 악이라고 해서 버린다거나 공을 관찰해 선정에 들어간다거나 하는 것은 공연히 일은 만들어 내는 것이다. 오직 한 생각 망념이 삼계 생사의 근본이니, 이 한 생각 망념만 없으면 즉시 생사의 근본이 없어지며, 부처님의 위없는 진귀한 보배를 얻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인문/어학| 2005.11.12| 4페이지| 1,500원| 조회(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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