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비우스 선교방법Ⅰ. 들어가는 말네비우스는 초기 한국교회에 크게 이바지한 선교사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는 그의 선교방법에 대해서 알아보고 한국복음화의 크나큰 영향을 미친 그의 선교정책들이 조선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기로 한다.Ⅱ. 본론1. 네비우스네비우스(John L. Nevius)는 1829년 4월 4일 뉴저지 주에서 태어난 네덜란드 사람이다. 장로교회의 목사가 되기 위해 프린스톤에서 공부했고 1853년 장로교회 외국선교위원회를 통하여 그가 원하던 중국남포 선교를 하게 되었다. 그의 저작 『선교교회의 개척과 발전』(planting and Development of Missionary Churcbes)를 통해 조선에 있는 미국인 선교사들의 관심을 받게 된 네비우스는 1890년 조선에 초청되었다. 그는 초기 조선교회의 선교의 크게 이바지 하였고 많은 조언과 충고 등을 아끼지 않았다.2. 네비우스 선교방법네비우스는 원주민 교회들의 독립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원주민 교회의 설립에 목표를 두고 있는 미국 장로교회선교사들과 조화를 잘 이루기 위함이었다. 또한 원주민 가운데서 고용대리인을 뽑아서 그들을 이용하여 선교하는 종래의 방법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나온 것이었다. 네비우스는 종래의 선교방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제기했다.① 새로운 개종자들로 고용 대리인을 만든다는 것은 그들이 관리 하고 있는 선교 지부에 위험한영향을 끼친다. 만일 고용 대리인이 자리를 옮기거나 해고되는 경우에는 선교사와의 아름다운신뢰의 관계는 산산이 깨어지게 되기 쉽기 때문이다.② 새로운 개종자로 고용 대리인을 만든다는 것은 종종 고용된 그에게 큰 유익이 없는 것으로본다. 그것은 일종의 직업감각을 자극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체제는 돈을바라는 마음을 자극하며, 보수를 바라는 기독교인들의 수를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다.③ 그것은 기독교인들 자신 그리고 비기독교 단체들이 보는 앞에서 진정한 선교의 동기를오해시킬 우려가 있다. 영적인 것을 모르는 비기독교인들은 선교사들이 마치 경제적이나사회적인 이권을 위해 사람을 고용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이 같은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네비우스는 흔히 삼자운동이라고 하는 선교방법을 내세웠는데 이것은 자조(自助;self-supporting), 자치(自治;self-governing), 자전(自傳;self-propagandizing)을 의미한다.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지 않고 자립하며, 교회운영을 자치적으로 하며, 스스로 전도하는 교회로 만드는 것이다.ㄱ. 자조한국교회는 시작에서부터 자조(自助;self-supporting)원칙에 의해 세워졌다. 마을의 신자들은 교회를 세울 힘이 있을 때까지 서로 집을 돌아가면서 모이고 지도자를 세워 진행을 책임지게 했고 선교사들이 일년에 한두번 방문하여 조언을 하고 감독과 치리를 했는데 이런 때를 제외하고는 신자들이 거의 모든 일을 스스로 처리해 나갔다. 한국 기독교인들을 교회 자립의 능력을 굳게 믿고 있었다.네비우스가 자조에 근거를 둔 것은 성경에 근거한 것인데 성경은 가장 권위있는 하나님의 말씀일 뿐만 아니라, 성경에는 교회 자립과 성장의 명확한 기준과 본보기들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 자립의 가장 큰 비결은 성경공부반이라고 믿었다.ㄴ. 자치네비우스는 교회가 자치(自治;self-governing)하기 위해서는 항상 그곳에 거주할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어느 한곳에 계속 거주할 수는 없었고 또한 원주민중에서도 정식으로 신학을 졸업한 목사나 전도사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조사(助師)라는 제도를 통하여 지방교회를 맡아 순회하며 지도하는 선교사를 돕는 사람인 조사를 세웠다. 조사는 그 교회에 상주하면서 교역자의 직무를 수행하게 하고 또 한편으로는 영수 그리고 장로들의 직분자를 세워 그들로 하여금 재정과 행정 등 자치에 관한 모든 것을 책임지게 했다.ㄷ. 자전한국교회의 자전(自傳;self-propagandizing)은 자조 및 자치의 프로그램과 병행하여 이루어 졌다. 무보수로 일하는 사역자들이 실제적으로 시골에서 지교회들을 담당하였는데 지교회들은 전도할 수 있는 사람을 세우고 개종하지 않은 이웃을 전도하기 위해 이들을 파송했다. 네비우스는 한국적 상황에 맞는 자전(自傳)의 정책 10가지 조항을 다음과 같이 세웠다.① 상위계층 보다는 중하류 계층을 전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② 여성들의 개종을 꾀하는 일과 여성 신자들을 훈련시키는 것은 교회 성장을 위한 매우중요한 목표이다. 왜냐하면 어머니들을 미래 세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③ 시골에서 학교를 운영하는 것은 기독교교육의 좋은 결과를 준다. 따라서 교회학교에 있는젊은이들에게 자격을 갖추게 해서 그들을 교사로 파송하는데 목표를 겨냥해야 한다.④ 교육을 받은 원주민 목사를 하루 속히 양성하여 피선교지로 파송해야 한다.⑤ 하나님의 말씀은 방황하는 인간을 변화시키므로 하루속히 정확히 번역된 성서를 만들어주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⑥ 모든 문학작품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 순수하고 고상한 신자들을 양육하는 일이우리의 목표가 되어져야 한다.⑦ 자조하는 교회가 되어서 우리 회원 중에 의존하는 자들의 비율을 줄이고, 교회의 자조를위해 헌신하는 신자들이 늘어날 수 있도록 양육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⑧ 대다수 한국인 초신자들은 집안 식구나 동료 친구들에 의해 교회로 인도되어지고 있으므로다수의 많은 대중을 전도하는 것보다는 소수의 사람들을 철저하게 훈련시켜 그들을 전도자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⑨ 환자들이 입원하거나 자신의 집에서 장기간 기독교인 의사의 치료를 받게 될 때, 의사는전도의 좋은 기회를 얻게 된다.⑩ 한 기간동안 의사의 치료를 받아 온 시골 환자들에게 자신의 고향을 방문하게 하는 것도좋다. 그들이 기독교인 의사로부터 치료받은 감동적인 경험이 고향 사람들에게 전해질 때,그 마을은 전도자에게 방문을 허용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3. 네비우스 선교방법의 적용ㄱ. 선교지역의 분할네비우스는 당시 조선에 선교기관이 여럿이었기 때문에 노력을 중복하거나 경쟁하지 않도록 연합적으로 지역을 분할하는 정책을 마련하였다. ‘교계예양’으로 불리워지는 이 선교지역 분할은 협정에 의하여 이루어 졌는데, 장로회와 감리회 사이에 협의를 거쳐서 교파를 초월하여 조선의 전 지역을 지리적으로 분할하여 서로 다른 지역을 책임 있게 선교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선교 구역 분계 설정은 선교부 간의 교세의 심한 격차를 주었다.ㄴ. 중하류층 중심의 선교중요한 선교정책중 하나는 1893년 선교공의회에 대하여 채택된 선교정책 제 1항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서, 상류가 아닌 근로계급과 하류층 및 여성들에게 선교의 목표를 두는 것이다. 이 정책을 시민의식(市民意識)을 고취하는 것으로, 한국의 근대 시민 사회 형성에 기여한 바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무지한 민중들을 대상으로 하려면 그들 개개인의 신앙의 결단이 있을 만한 충분한 교육적 및 영적 훈련이 있어야만 했는데. 이때 이성에서 강조점을 둔 네비우스의 선교방법으로 교회에 자조하고, 자치하고, 자전하며 개개인으로 성숙시키게 했다. 이 같은 그의 방법론의 적용은 이제까지 없던 근대적인 의미의 시민, 곧 책임과 의식을 지난 창조적인 인간성을 가꾸는데 이바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