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 길리건 「다른 목소리로」Ⅰ. 서론1. 문제제기여성들이 도덕적 갈등과 선택의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고, 어떤 행위를 수행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 집단의 여성들을 연구 표본으로 선정하면서 기존의 도덕발달에 대한 심리학적 설명이 여성들의 경험에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문제 인식은 기존에 수행된 연구들에서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제외되어 온 사실과 관련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여성의 경험이 인간 발달에 대한 심리학의 설명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그 결과 여성의 발달에 문제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여성들의 경험이 기존의 인간 발달 모델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모델이 전제로 하는 인간 조건에 대한 이해에 한계가 있고, 삶에 대한 어떤 진실들이 간과되었을 수도 있다.2. 연구 질문길리건은 이 책을 통해 기존의 심리 이론에서 묘사했던 관점에 대한 비판과 함께 그런 차이가 생기는 이유로써 각각의 연구 대상이 서로 다른 주제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가지 사고방식이 발생한 원인이나, 역사적으로 어떤 문화에서 어떤 사고방식이 우세했는지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경험과 사고방식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그리고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어떻게 대화하는지,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며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떤 이야기들을 하는지의 문제이다.이 책은 ‘대학생 연구’, ‘임신 중절 결정 연구’, ‘권리와 책임 연구’라는 세 가지 연구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방식이 중요하며 언어와 상호적인 인간 관계를 고찰함으로써 그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연구방법은 모두 면접을 통해 자아관과 도덕관, 갈등과 선택의 경험에 대해 동일한 질문이 주어졌다. 첫째 대학생 연구에서 대학생들이 자기 자신과 도덕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들을 그들이 경험한 도덕적 갈등과 선택에 연결시킴으로써 성인 초기의 정체감과 도덕 발달을 살폈다. 그리고 ‘임신 중절 결정 연구’에서는 행위자의 경험적 특징인 독립성의 증대에 두고, 여성적 특징인 애착 관계의 발달은 장애가 되는 것으로 인식했다. 즉 심리학자들은 여성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독립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 그들이 도덕 발달에 있어서도 실패했음을 의미한다고 보았다.(2) 중기 아동기에 속하는 아이들의 놀이에 관한 연구레버(Janet Lever)는 초등교육기간을 연구하면서 또래 집단을 사회화의 주체로, 놀이를 그 기간의 사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으로 정하고 아동들의 놀이 가운데 성적으로 구분되는 것이 있는지 연구했다. 연구에서 남아들은 여아들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건물 밖에서 놀며, 큰 집단을 형성하여 놀고, 경쟁적인 놀이를 많이 하며, 여아들의 놀이보다 더 오랫동안 지속된다고 특징지었다. 레버는 이 연구에서 남아들이 아동시절을 거치면서 규칙을 정교화하고 분쟁을 해소하는 공정한 절차를 발달시키는 반면, 여아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피아제의 관찰을 입증·확장시켰다고 주장한다. 레버의 연구에 있어 주목할 점은 그녀의 전제가 남성적 모델이 법인체 중심의 현대사회에서 성공 요건으로 더욱 적합하기 때문에 여성적 모델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다. 반면에 여아들이 놀이를 통해 발달시키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대한 민감성과 배려는 시장 가치가 거의 없으며 전문적인 성공을 저해하기까지 한다고 본다. 따라서 레버는 남아들이 놀이에서 독립심과 다양한 집단들의 활동을 조정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직적 기술을 배우지만 여아들의 놀이는 주로 소규모의 친밀한 집단 속에서 특히 가장 친구 친구와 둘이서,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결론 내린다.위의 분석을 통해 중기 아동기에 속하는 남아와 여아가 서로 다른 인간 관계적 태도와 사회적 경험을 겪으면서 사춘기에 이른다는 것을 암시한다. “개인화의 두 번째 과정”인 청년기는 행위자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독립하는데 있어 중대한 시기이며 여성의 발달은 이 시기에 가장 복잡해지고 가장 문제점이 많은 것으로 여겨져 왔다. 에릭슨(Erik Erikson)에 따르면 심리 사회적 발달에는 8단 여겨왔고, 여성들이 어떻게 이런 인식을 갖게 되는지에 대한 연구를 방치해왔다. 길리건은 본 연구를 통해서 여성들의 도덕 발달이 이런 인식을 정교화하는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인간의 도덕발달에 대한 고찰을 통해 기존의 발달 심리학에서 규정한 성차이와 그것에 대해 내린 판단들을 밝힐 뿐만 아니라 왜 여성 발달의 본질과 의미가 그토록 오랫동안 방치되어 왔는지도 규명하고자 한다.(5)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 단계교육심리학자인 콜버그(Lawrence Kohberg)는 아동기에서 성인기에 이르는 도덕성의 발달을 6단계로 나누어 보여준다. 연구 가설은 20여년 이상의 기간을 통해 콜버그가 관찰한 84명의 남아들에 대한 경험적 연구에 토대를 두고 있다. 콜버그의 척도에 따랐을 때, 도덕 발달이 가장 미약한 집단이 바로 여성이다. 대부분의 여성은 3단계에 속하는 행위자로써 도덕을 대인 관계적인 것으로 파악하며 선의 개념도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거나 즐겁게 해주는 것과 동일시한다. 따라서 연구는 여성들이 남성들처럼 인간관계가 규칙에 의해 지배 받는 단계(4단계) 혹은 규칙이 정의의 보편적 원리에 종속되는 단계(5, 6단계)로 발전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도덕적 관점이 부적합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전통적으로 남성의 활동이라 여겨졌던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도덕 발달관에서 도출된 성숙관은 남성들에 대한 연구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따라서 남성들의 발달에서 강조되는 개인화의 중요성을 전제하고 있다.만약 여성들에 대한 연구에 중점을 두고 여성들의 삶으로부터 발달이론을 구성해 나간다면, 위의 관점과는 다른 도덕관이 형성되고 발달도 달리 설명될 것이다. 이 새로운 관점에서는 도덕문제들이 일어나는 원인으로서 권리의 충돌이 아닌 책임의 충돌을 들 것이며, 그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형식적이고 추상적인 사고방식이 아닌 맥락적이며 이야기체적인 사고방식을 들 것이다. 공정으로서의 도덕관이 권리와 규칙에 대한 이해를 도덕 발달의 중심에 두는 것처럼, 보살핌과 관련된 도덕관은 책임과 렇다면 왜 일까?콜버그는 그들의 대답을 분석하여 도덕성이 6단계(3수준 6단계)를 거쳐 발달한다고 결론 내린다. 아이들은 처벌을 피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옳다"는 자기중심적 관점에서 출발하여 6단계를 거치면서 마침내 보편적 원칙에 일치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완전히 성숙한 관점을 얻게 된다.Ⅰ. 전인습적 수준1. 처벌과 복종 : 옮음은 권위에 순종하고 처벌을 피하는 것으로서 인식.2. 개인적 도구적 목적과 교환 : 옮음은 자기 자신의 필요를 만족하기 위해 행동하고 다른 사람들의 그러한 행위를 용인하는 동시에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다른 사람들과 '공정한 거래'를 하는 것.Ⅱ. 인습적 수준3. 개인 상호간의 기대와 관계 그리고 순응 : 옳음은 한 개인의 사회적 역할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의무와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인식.4. 사회체계와 양심의 유지 : 옮음은 자신의 시민적 의무와 집단의 복지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 개인적 관계 보다 집단의 이익을 중시.Ⅲ. 후인습적 수준5. 우선적 권리와 사회계약 또는 유용성 : 옮음은 기본권과 가치, 사회의 법적 합의를 유지하는 것이라 생각.6. 보편적 도덕원칙 : 완전한 도덕적 성숙은 모든 인간이 따라야만 하는 추상적인 원칙을 충실히 지키는 명백히 하는 것.하인즈가 약을 훔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이유들과 그 행위의 부당성을 지지하는 이유들을 함께 고찰해보자.우선 제이크는 처음부터 하인즈가 약을 훔쳐야 한다고 확신하며 재산의 가치와 생명의 가치가 충돌한다고 규정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에이미의 응답은 하인즈가 약을 훔쳐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그녀는 모호하고 불확실한 태도로 대답한다. 에이미가 고려하는 것은 재산이나 법이 아니라 약을 훔치는 행위가 하인즈와 아내의 관계에 미칠 영향이다. 그리고 에이미는 시간의 흐름이 개입된 인간관계에 대한 하나의 이야기로 본다. 따라서 그녀는 이 문제를 하인즈와 제를 사이에서 더 많은 논의를 통해 해결해야만 하는 갈등으로 생각한다. 면접자는 콜버그의 딜레마에서 제기되는 질문들을을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규칙들을 찾고자 한다. 이 규칙을 따르면 행위자의 자율성이 확보되는 동시에 공동체에서 행위자가 영위하는 삶은 안전해진다. 이에 반해 에이미는 선택을 하는 사람의 특성과 선택의 상황에 따라 선택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인정하여, 무조건적인 대답보다는 맥락적인 대답을 제시한다. 그리고 사람들 간의 관계성을 전제로 하며 남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은 남의 필요에 응답하는 것을 의미하며, 자기 행위의 범주를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은 침범의 행위를 절제하는 것이 아니고 보살핌의 행위를 능동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에이미는 관계성을 전제하고 나서 독립의 변수를 고려하고, 제이크는 독립성을 전제하고 나서 관계성의 변수를 고려한다. 무엇을 우선시하는냐에 따라서 서로 다른 자아관과 인간관계관이 도출되는 것이다.(4) 여아와 남아가 보는 세계관여아가 보는 세계는 서로 보살피고 보호하는 관계가 이루어지는 곳인 반면, 남아가 보는 세계는 위험한 대립과 폭발적인 분열을 내포한 관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남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것도 제이크는 만약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위 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을 침해할 때에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이며, 에이미에게는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가와 상관없이 남들이 그녀가 할 것으로 기대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두 아이 모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를 원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이 어떤 것이냐는 문제를 해석하는 방식에 있어 다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피해를 입는 경우란 제이크는 그의 권리가 침해되었을 때이며, 에이미는 그의 필요에 대해 적절한 응답이 없을 때이다.위의 두 아이들의 대답을 통해 도덕 발달의 궤도를 추적한다면 그것은 다른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제이크를 통해 보면, 발달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와 평등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인간관계를 맺는 안전한 방법을 발견할 때에 이루어진다. 에이미를 통해 보면, 발달은 확대되는 인간관계의 그물 조직 속에이다.
사랑과 경제의 관계를 통해 본 이주결혼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확대는 비이성적이고 사적 영역으로 간주되었던 감정, 사랑, 애정, 친밀성, 돌봄의 행위에 대해 여러 가지 산업으로 대체되면서 공적 영역화 되었고 시장에서는 이와 관련된 소비재가 유통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서구의 학자들은 자본주의는 경제 체계일 뿐만 아니라 문화체계임을 지적하며, 일루즈는 문화를 감정 자본주의라는 용어로 설명하며 이는 친밀한 관계와 시장의 영역 모두에 확장되며 감정은 합리화되고, 양화되고, 측정과 통제가 가능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친밀성과 경제적 행위의 결합은 개인주의화, 자아관리 및 실현의 중요성, 성적 자유주의, 여성경제활동 참여 증가, 전 지구적 시장경제 확대 등 후기근대적 맥락에 있다. 최근 우리사회에서도 친밀성과 가족의 변화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 경제와 후기근대사회에서의 사회 변동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가족변화는 출산율 하락, 육아를 포함한 돌봄의 공백, 결혼규범의 변화, 부계가족 원리의 약화 등으로 나타나며 후기산업사회에서 우리들의 사적 생활이 또 다시 패러다임적 전환을 맞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들이다.최근 한국 남성과 동남아 여성들 간의 국제결혼의 증가 현상은 친밀성과 가족변화에 관한 중요한 물음을 제기한다. 이들 결혼의 특징은 동남아 여성들이 결혼을 하면 남편의 나라로 이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결혼을 원하는 남성들은 낮은 경제적 지위와 열악한 문화자본으로 인해 자국의 여성들과는 결혼하기 어려워 외국인 여성과 결혼을 한 후, 그녀들에게 ‘전통적’인 여성성을 원한다. 또 외국 남성과 결혼하고자 하는 동남아 여성들은 모국의 경제적 열악함과 자국 남성들의 경제적 무능함 때문에 보다 잘사는 나라로 이주하기를 희망한다. 앞에서 제시한 국제결혼의 특징은 경제적 요인과 동기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으며 결혼중개업체를 매개로 하여 상업적 거래와 경제적 합리성이 극대화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그러나 전통적으로 결혼은 남녀간의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통해 ‘사랑의 완성’으로써 인식되어져 왔다. 따라서 현재 증가하고 있는 국제결혼의 사회적·문화적 측면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한국남성과 이주여성들에게 있어 ‘사랑과 결혼’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국제결혼을 통해 남성과 여성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기위해 이재경 선생님의 논문은 후기 근대사회에서 어떻게 사랑과 친밀성이 자본주의와 결합하는지 이론적 논의를 제시하고 있다.일반적으로 사랑과 친밀성은 사람들 간의 관계 속에서 느끼고, 표현하며 서로 돌보고 공유하는 감정과 행위 전반을 포함한다. 이런 사랑과 친밀성은 개인적 차원에서 발생하여 사회·경제적 요소들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제도화된다. 그리고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라고 주장하는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결혼과 가족은 남녀 간의 권력 차이와 이를 둘러싼 다툼이 일어나는 정치의 영역이라고 말해 왔다. 이는 사랑과 친밀성이 사회적·정서적으로 구성되는 동시에 전체 사회의 자원, 위계, 권력이 분배되는 방식과 상호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경제원칙에서는 감정, 사랑, 애정, 친밀성, 돌봄의 행위와 결합되는 방식들은 감정이나 사랑이 노동력의 형태로 판매되는 것과 감정적 담론, 경제적 합리성으로써 친밀한 관계를 맺는 과정과 방식에 있어 서로 혼합되며, 그 중 하나로 결혼시장의 확대를 통한 경제적 합리성이 사적 관계를 맺는 과정이나 방식에 개입됨을 알 수 있다. 결혼과 행위 전반을에 대한 이론화 작업은 엥겔스로부터 시작되어 마르크스주의 여성주의자들의 생산과 재생산 노동에 관한 논의로 이어져 왔으며, 최근에는 사적생활의 상품화와 한 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사랑이나 감정이 경제적 합리성과 결합되는 있어 서로한 도덕적 저항과 후기 자본주의 서로한 강력한 비판들이 제시되지통한그에 있어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사랑과 친밀성의 욕망은 인간의 본래적 속성으로 인식되기보다 사회문화적 산물로서 간주될 수 있는데 이런 측면에서 현재의 결혼중개업체의 성업은 남녀의 조건이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농촌이나 도시의 하층계급 남성과 동남아시아 여성의 국제결혼에 있어 그 절차는 내국인들 간의 결혼에 비해 더 상업적 거래의 성격이 강하다. 이런 상업적 거래의 성격 때문에 외국인 아내에 대해 섹슈얼리티, 가족관계, 경제 등의 영역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고자 한다. 또한 국제결혼에서 이루어지는 환불과 교환의 개념 때문에 인신매매나 매매혼이라 비판한다. 이런 사실에 근거해 이재경 선생님은 두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시각을 지적한다. 하나는 결혼의 거래적인 성격은 가부장제 사회의 젠더 권력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하나는 결혼의 시장화 현상이 강화되는 지구적 차원의 현상 속에서 이주결혼은 젠더와 계급의 결함으로 일어나는 결혼의 거래라는 것이다.자세히 살펴보면 우리사회에서 급증하고 있는 국제결혼은 가난한 나라 여성의 경제적 동기와 한국 남성의 가부장적 추구로 인해 결혼은 도구적 성격이 강조되면서 감정이나 정서적 용인이 간과되어왔다. 그러나 외국인 신부들의 결혼동기를 결혼과 이주를 통해 이들이 자신들의 삶을 어떻게 만들어가고자 희망 하는지에 대한 물음도 제기되어야 한다. 이주 여성들은 안락한 생활을 기대하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동기로써 친정가족의 경제적 지원을 통해 경제활동의 욕구 또한 가지고 있다. 기존의 연구들에서도 여성들의 결혼이주와 노동이주(결제적 측면)의 중첩된 욕망을 보인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이는 여성이 자신의 삶을 기획하고자 하는 행위성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여성들의 경제적 동기와 남성의 가부장적 욕구가 만난 국제결혼은 갈등의 요인 또한 각자에게 바라는 성역할에 대한 좌절로써 발생되기도 한다.이재경 선생님은 본 글에서 매매혼 보다는 정략결혼의 개념이 이주 결혼 부부관계의 성격과 갈등을 이해하는 데에 더욱 적절하다고 말한다. 그 근거로 결혼 동기가 도구적이라고 하더라도 친밀한 관계에서 교환되는 사회·문화적 자본은 사랑의 감정을 구성하는 한 요소이기 때문에 결혼당사자들에게 사랑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주결혼에서 애정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데 있어 장애물은 언어와 문화적 차이로 인해 사랑과 친밀성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는 도구가 부재함을 꼽을 수 있다. 결혼과 가족은 성별분업과 자원의 분배가 이루어지는 경제적 단위지만, 다른 경제적 행위와는 구분된다. 왜냐하면 결혼과 가족 안에서는 감정 및 정서적 관계와 경제적 행동이 상호동기와 의미를 부여하는 관계라는 점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이주결혼의 경제적 동기만을 강조하거나 인신매매나 매매혼으로 규정하는 담론으로 젠더 권력관계를 비판하는 것은 자칫 인종적, 계급적 편견을 재생산하는 논리가 될 수도 있다.
서구 정치사상에서의 공사개념과 가부장적 성 차별성서구 정치철학자들은 공적인 세계를 공동 삶에 관련한 문제가 논의되고 실행되는 인간 활동의 영역으로 정의하고, 그 외의 나머지로 간주되는 가정 또는 개인적 일에 해당하는 영역으로서 사적인 세계를 정의했다. 이런 이분법이 갖는 중요한 측면은 공적, 사적 구분이 여성들의 삶에 있어서 남성에게 갖는 함축과는 다른 함축을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공사의 구분은 성별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또한 공사구분이 성별 비대칭성을 지적함으로써 공사구분이 성별화된 것임을 여성주의 분석을 통해 주장한다.많은 학자들은 서구 정치철학이 전제해 왔던 공사구분이 여성을 공적인 영역으로부터 분리·배제하는 방식으로 개념화된 결과 여성의 종속적 삶을 유지 정당화시키는 주요 토대가 되어 왔다는 점에 의견의 일치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공사개념의 복합적 성격 때문에 일치가 되지 않는다. 여성이 공적 영역으로부터 배제된 채 사적 영역에 머물러 왔다는 역사적 사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명분 위에서 정당화되어 왔는가에 대한 분석이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정당화가 가능하도록 한 공사개념의 논리를 살펴보고, 이를 비판한 후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여성주의가 지향해야 할 공사구분의 방향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우선 역사적으로 고대 그리스의 시민성 개념과 공사구분을 살펴보면, 그리스 사상에서의 공사구분은 위계적인 가치 질서 안에서 위치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나타나는 공과 사의 구분은 모든 것을 이분법적 분류의 방식을 통해 개념화하는데, 그들의 공사구분은 자유의 세계와 필연성의 세계로 이분화하여 생각한다. 자유의 세계에는 가정이 해당되며 이는 공간적 구분을 기초로 한 것이다. 공적 세계는 필요 차원을 넘어서 인간다운 좋은 삶의 실현을 위한 선택과 실천이 행해지는 영역이다.그리스에서 공적 세계에 참여할 수 있는 자는 자유 시민(아테네의 남성들, 가정을 소유한 자들)에 한정된다. 여기서 가정을 소유한다는 것은 세계의 특정 부분에서 자신의 위치를 가지고, 정치적 조직체에 소속되는 것, 즉 공론 영역을 구성하는 시민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리스 정치에서 공적 세계를 구성하는 정치연합체의 기본 주체는 가장이 되며 국가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가정이 된다. 그리스의 시민성 개념은 공사의 구분을 전제하며 이는 성차별화, 계급차별화된 것이다.다음으로 근대 자유주의의 시민성 개념은 모든 성인을 포함시키는 보편성을 특징으로 한다. 즉, 근대의 평등개념은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개념으로 확대되어 정치연합체를 구성하는 기본단위는 개인이다. 근대의 기본 전제는 모든 인간은 각각이 개인의 존엄성을 갖는 동등한 권리를 갖는 자유로운 존재라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근대 자유주의의 공사구분은 더 이상 공간적인 것이 아닌 무엇이 개인적인 것이고, 무엇이 공동체에 관련되는 것인가 의존한다.통치 권력의 합법적 정당성을 시민들이 합의한 계약에서 찾는 자유주의에서 공과 사의 구분은 시민들이 합의한 계약내용에 따라 통치되어야 할 부분과 그런 통치 권력이 개입할 수 없는 영역간의 차이 이다. 자유주의 사상에서 개인의 사적 영역이 절대적 가치를 갖게 된 이유는 자유주의가 평등의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공동체의 모든 개개인이 동일한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이는 자기 자신의 삶이 추구할 목표를 결정할 수 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최선의 행위를 선택할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자율적 존재다. 따라서 자유주의 정치 사상가들이 추구했던 이상적인 정치공동체는 공동체가 그 구성원들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런 개개인의 자율성은 궁극적으로 자율성의 발휘를 통한 개개인의 자아실현이며 각 개개인을 절대적 가치를 갖는 존엄한 존재로 이해함으로서 인간의 평등성을 인식했다. 그 결과 여성에게 성차별적 위계질서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근대 자유주의적 시민성 개념은 만인 평등을 기본이념으로 하며 공적 활동에 있어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제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 현실의 차원에서 볼 때 자유주의 제도 하에서도 가부장적 질서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근대 정치 사상가들의 논의 안에는 자유주의적 논리와 그리스적 또는 공화주의적 논리가 서로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남성이었다는데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자유주의 사상가들(남자)은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정치공동체를 이상으로 삼으면서도 현실적 제약여건을 이유로 공동체 안에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불가피한 것으로 정당화시켰다. 이런 이상과 현실괴리는 그들이 전제한 남성적 정치관이 자율적이고 평등한 시민공동체를 계약적 모델을 통해 이해하며 정치공동체를 구성하게 되는 개인들을 자기이익을 최대화할 것을 목표하는 합리적 이기심을 갖는 이들로 가정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특정한 자격을 요구하는 배타적 시민성 개념으로 귀결하게 된다. 그리고 롤즈가 주장하는 사회계약의 참여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능력으로 개인적인 의지를 초월해 일반의지를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주장한다. 이런 능력은 남성들의 능력으로 현실적으로 남성에 비해 여성이 갖추기에 불리한 신체적, 경제적, 정서적 독립성을 포함한다. 시민에게 요구되는 조건을 갖출 여건이 여성에게는 현저히 불리하다.
< 카렌 퀸란 사건의 의학적·법적 측면 >사실관계카렌 퀴란(Karen Quinlan)은 자신만만하고 독립심이 강한 젊은 여성이었으며, 양부모 집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으로 이사해서 남자 룸메이트 두 명과 함께 살고 있었다. 카렌의 친구들은 그녀가 순진하면서 자유분방한 인물로 설명하였다. 카렌의 부모는 부정하였지만, 친구들은 카렌이 헤로인, 코카인을 시험 삼아 복용한 일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카렌은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며 인근 술집에서 진 토닉을 몇 잔 마신 후, 갑자기 현기증을 일으켜 친구들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침대에 눕히자 그녀는 이내 잠이 들었고 친구들이 15분 후에 상태를 살펴보았을 때 카렌은 숨을 쉬지 않았다. 룸메이트 한 명이 구급차를 부르는 동안 다른 한 명은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카렌은 처음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곧 도착한 경찰관의 처치로 다시 숨을 쉬게 되었지만 의식은 회복되지 않았다.카렌이 뉴저지에 있는 뉴턴 기념병원의 집중치료실에 입원했을 때, 카렌의 가방에서는 발륨 한 병이 발견되었다. 그녀가 저녁 술과 함께 발륨을 복용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카렌은 며칠 동안 다이어트 중이었다. 발륨은 벤조다이아제핀으로 만든 것으로 알코올과 상승작용(조합에 의해 약효가 강화되는 작용)을 일으켜 호흡이 억제되어 무산소증이 야기되었고, 그 결과 약 30분 후에는 뇌의 대부분이 손상을 입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당시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1975년의 뉴저지 주법에 의하면 카렌은 뇌사가 아니었다. 심한 혼수상태의 한 형태로 지속적 식물상태(PVS)였다. 카렌의 경우 비록 혼수상태였지만 때때로 눈을 떴고, 간혹 갑자기 웃거나 우는 것 같은 시늉을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두 눈이 동시에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녀는 대뇌피질이 파괴된 것으로 판단된다. 예전에 이런 상태의 환자는 굶어 죽었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정맥 영양관과 비위급식관을 사용한 영양분의 공급이 시작되었다. 처음에 카렌은 정맥관를 통해 영양을 공급받았다. 그러다 재삽입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녀가 입원한지 5달째에 그녀에게 비위관을 사용한 급식이 개시되었다.카렌이 의식을 회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성 클레어 병원 측에서는 가능성이 “100만 분의 1”밖에 안 되는 아무리 무력하고 무능력한 환자라도 도울 의무가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카렌이 의식을 다시 회복할 수 없다는 현실을 가족들이 수용하였으며,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카렌이 자신의 몸을 이런 상태로 계속 유지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 데 대하여 동의했다. 퀸란 부부는 만약 끔찍한 일이 그녀 자신에게 벌어진다면 기계에 의존해서 식물상태로 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카렌이이전에 두 번이나 말했다고 증언했다.법적 배경퀸란 사건은 1975년 당시에는 윤리위원회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전례가 없었고 따라서 법정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퀸란 사건의 법정 공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송의 일반적인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주(state)사건의 경우, 제한적 관할권을 가진 검인 법원, 지방법원, 시법원에서 심리한다. 판결이 난 이후, 상소는 순회법원에 할 수 있다. 그 다음에는 주 항소법원이 있다. 주 단계에서 마지막으로 심리하는 곳은 주 최고법원이다.반면 연방사건은 다른 체계에 의해 심리된다. 연방 체계에는 두 개의 독립적이고 중간적인 단계가 있다. 지방법원과 항소법원이다. 항소법원은 보통 3명의 판사로 구성되지만 지방법원은 판사가 한 명이다. 민사사건이나 형사사건은 주 사건이나 연방 사건으로 심리가 벌어지며 살인과 고살은 각 주마다 형법으로 규정하게 되어있는데, 그 정의는 주마다 서로 다르다.첫 재판 판결 내용:1975년 미국의사협회는 ‘죽게 놔두는 것’을 위해 호흡기를 떼어내는 것을 ‘안락사’와 동일시하였고 안락사는 살인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1976년 초에는 죽음과 죽는 과정이 관련된 사건들에서 환자와 가족들의 권리를 명확히 하는 법적인 기준이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았었다. 의사들은 의료과오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에 대해서도 하나의 정의는 ‘공동체가 하는 의료행위의 정상적 기준으로부터의 일탈’이고 1975년에 대부분의 의사들은 환자가 죽는 순간까지 치료를 지속해야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라고 생각하였다. 의식불명인 환자가 죽도록 적극적으로 돕는 것은 분명히 일탈이었을 것이다.카렌의 호흡기를 제거하기 위해 조셉 퀴란은 법률 구조사무소에 상담을 구했다. 변호사는 폴 암스트롱이 사건을 맡았으며 그는 카렌을 죽게 할 수 있는 근거를 찾기 위해 신경과 의사들이 그녀의 상태가 회복 불가역적이고, 정상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암스트롱은 미국 헌법에 있는 죽을 권리에 근거한 주장을 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975년까지는 판단능력이 존재하는 환자의 죽을 권리를 인정할 것인지에 대하여조차도 최고법원이 아직 어떠한 판결을 내린바 없기 때문에, 카렌 퀸란처럼 자기보호 능력이 없는 환자가 죽을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주장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15년 후에 최고법원은 크루잔 판결에서 결정을 바꾸게 된다.암스트롱은 조셉 퀸란이 카렌의 호흡기가 제거되기를 원한다고 뮤어 판사에게 진술함으로써 이 소송에 한하여 카렌의 후견인으로 다니엘 코번 변호사가 선임되었다. 그 이유는 후견인은 피후견인의 이익을 보호해야하는데 이 경우 피후견인은 자기보호 능력이 없는 환자였고, 그 환자가 아직 인격체인가 하는 문제조차 해결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암스트롱의 주장을 들은 판사는 카렌이 인격체인지 여부를 먼저 판단하지 않고서는 조셉 퀸란을 후견인으로 지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카렌이 입원한 지 거의 7개월이 지나 뮤어 판사는 코번이 카렌의 후견인 노릇을 계속해야하며 호흡기를 떼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뮤어는 카렌의 자발적 의사가 서면으로 기록된 적이 없으며 그녀의 의사에 관한 부모의 증언도 그녀 본인의 죽음과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정적인 것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헌법상의 죽을 권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뉴저지 주 최고법원 판결 내용 :암스트롱은 뉴저지 주 권을 근거로 논변을 펼쳤다. 프라이버시권이란 순수한 개인적인 문제를 정부의 간섭 없이 개인이 결정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현재는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된 것으로 인정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프라이버시권은 연방최고법원이 1965년 그리스볼드 대 코네티컷 사건에서 의사가 결혼한 부부에게 피임제를 처방하는 것을 금지하는 주법이 위헌이라 판결했을 때 처음 권리로서 인정되었다. 이는 미국 헌법에 규정된 개인의 기본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 판단하였다.상급법원에서는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데 있어 의사의 역할에 관한 증언이 주요 쟁점이 되었다. 그러나 판사들은 의사들이 환자의 호흡기를 떼어 내는 것과 처음부터 호흡기를 부착시키지 않는 것을 매우 다르게 본다는 점에 대해 놀랐으며 당시 미국의사협회의 공식적인 입장은 의사가 환자에게 호흡기를 부착하지 않는 것을 허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단 환자에게 호흡기를 부착한 후에는 환자가 죽도록 호흡기를 떼는 것을 금지시켰다. 이에 더하여 의사 측 입장은 일단 의사가 환자를 담당하게 되면 환자의 복지를 추구할 절대적 의무가 의사에게 부여되므로 결코 환자를 죽게 내버려둘 수 없다고 주장했다.판사들은 왜 호흡기를 떼어 낼 수 있는 다른 병원으로 카렌을 옮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는가에 대해 전원을 허락하지 않은 성 클레어 병원의 조치가 부도덕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 결과, 1976년 1월, 뉴저지 주 최고법원은 만장일치로 퀸란 부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헌법이 보장한 프라이버시권은 죽어가는 무능력한 환자의 가족이 환자에게서 생명유지 수단을 제거함으로써 환자가 죽게 만드는 것을 허용할 정도로 넓다고 판시했다. 연방최고법원에서는 아직 이와 비교할 만한 판결을 내린 적이 없으므로, 뉴저지 주는 프라이버시권을 ‘죽게 내버려두는 경우’에 적용한 첫 번째 주가 되었다. 또 뉴저지 주 최고법원은 조셉 퀸란이 카렌의 후견인이 되는 것을 허락했으며, 카렌의 생명유지 기구를 떼어 내는 것에 관하여 담당 의사들에게 법적 면책권을 주었고, 장차 문제될일반인들로 구성된 윤리위원회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판결 이후 :카렌의 담당 의사는 카렌의 인공호흡기를 단번에 떼어내지 않고, 서서히 떼어내는 시도를 하였다. 인공호흡기를 서서히 떼어낸다는 것은 환자에게 새로운 호흡법을 가르치거나 호흡에 필요한 다른 근육들을 만들어주어서 기계에 의존하지 않아도 호흡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환자를 훈련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카렌에게서 4시간 동안 호흡기를 떼어 내었고, 이후 여러 주일에 걸친 힘든 노력 끝에 12시간 동안 호흡기를 뗄 수 있었다. 마지막에 카렌은 호흡기를 완전히 떼어 낼 수 있게 되었고 이런 과정에서 성 클레어 병원은 카렌을 다른 시설로 이송시키기를 원했다. 그리고 뉴저지의 의료보호국은 사립요양원에 카렌을 입원시키도록 했고 10년이 휠씬 지난 1986년 이 요양원에서 카렌 퀸란의 신체는 사망 선고를 받았다. 죽기 몇 달 전 카렌은 폐렴에 걸렸고 퀸란 부부는 카렌의 폐렴을 치료하기 위한 항생제 처치를 거부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카렌은 죽었다.< 크루잔 사건의 의학적·법적 측면 >1990년 낸시 크루잔(Nancy Cruzan)사건의 판결은 미연방최고법원이 죽어가는 환자의 권리를 명시적으로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판결이다.사실관계1983년 1월 11일 한밤중 당시 24세였던 낸시 크루잔은 미주리 주의 시골 빙판길에서 차의 중심을 잃었다. 그녀는 차에서 35피트 떨어진 곳으로 튕겨져 나갔고 물구덩이에 얼굴이 처박히면서 사고현장에 응급구조대가 도착했을 때 이미 심장이 멈춰 있었다. 구조대원들은 심장에 강심제를 투여하고 쇼크를 가했다. 하지만 그녀의 뇌는 15분간 산소결핍상태로 인해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다. 7년간 지속되었으며 미주리 주가 그녀를 치료하는데 지불하는 비용은 연간 13만 달러에 달했다. 주목할 점은 퀸란 사건의 경우 인공호흡기의 제거가 쟁점이 되었던 반면 낸시 크루잔 사건에서는 급식관의 제거가 주요 쟁점이 되었다. 낸시의 부모, 조 크루잔과 조이스 크루잔은 법원에 딸의 급식관을
- 카렌 퀸란 사건 -사실관계카렌 퀴란(Karen Quinlan)은 자신만만하고 독립심이 강한 젊은 여성이었으며, 양부모 집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으로 이사해서 남자 룸메이트 두 명과 함께 살고 있었다. 카렌의 친구들은 그녀가 순진하면서 자유분방한 인물로 설명하였다. 카렌의 부모는 부정하였지만, 친구들은 카렌이 헤로인, 코카인을 시험 삼아 복용한 일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카렌은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며 인근 술집에서 진 토닉을 몇 잔 마신 후, 갑자기 현기증을 일으켜 친구들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침대에 눕히자 그녀는 이내 잠이 들었고 친구들이 15분 후에 상태를 살펴보았을 때 카렌은 숨을 쉬지 않았다. 룸메이트 한 명이 구급차를 부르는 동안 다른 한 명은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카렌은 처음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곧 도착한 경찰관의 처치로 다시 숨을 쉬게 되었지만 의식은 회복되지 않았다.카렌이 뉴저지에 있는 뉴턴 기념병원의 집중치료실에 입원했을 때, 카렌의 가방에서는 발륨 한 병이 발견되었다. 그녀가 저녁 술과 함께 발륨을 복용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카렌은 며칠 동안 다이어트 중이었다. 발륨은 벤조다이아제핀으로 만든 것으로 알코올과 상승작용(조합에 의해 약효가 강화되는 작용)을 일으켜 호흡이 억제되어 무산소증이 야기되었고, 그 결과 약 30분 후에는 뇌의 대부분이 손상을 입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당시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1975년의 뉴저지 주법에 의하면 카렌은 뇌사가 아니었다. 심한 혼수상태의 한 형태로 지속적 식물상태(PVS)였다. 카렌의 경우 비록 혼수상태였지만 때때로 눈을 떴고, 간혹 갑자기 웃거나 우는 것 같은 시늉을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두 눈이 동시에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녀는 대뇌피질이 파괴된 것으로 판단된다. 예전에 이런 상태의 환자는 굶어 죽었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정맥 영양관과 비위급식관을 사용한 영양분의 공급이 시작되었다. 처음에 카렌은 정맥관를 통해 영양을 공급받았다. 그러다 그녀의 근육이 경직되면서, 정맥관을 재삽입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녀가 입원한지 5달째에 그녀에게 비위관을 사용한 급식이 개시되었다.카렌이 의식을 회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성 클레어 병원 측에서는 가능성이 “100만 분의 1”밖에 안 되는 아무리 무력하고 무능력한 환자라도 도울 의무가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카렌이 의식을 다시 회복할 수 없다는 현실을 가족들이 수용하였으며,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카렌이 자신의 몸을 이런 상태로 계속 유지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 데 대하여 동의했다. 퀸란 부부는 만약 끔찍한 일이 그녀 자신에게 벌어진다면 기계에 의존해서 식물상태로 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카렌이이전에 두 번이나 말했다고 증언했다.법적 배경퀸란 사건은 1975년 당시에는 윤리위원회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전례가 없었고 따라서 법정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퀸란 사건의 법정 공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송의 일반적인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주(state)사건의 경우, 제한적 관할권을 가진 검인 법원, 지방법원, 시법원에서 심리한다. 판결이 난 이후, 상소는 순회법원에 할 수 있다. 그 다음에는 주 항소법원이 있다. 주 단계에서 마지막으로 심리하는 곳은 주 최고법원이다.반면 연방사건은 다른 체계에 의해 심리된다. 연방 체계에는 두 개의 독립적이고 중간적인 단계가 있다. 지방법원과 항소법원이다. 항소법원은 보통 3명의 판사로 구성되지만 지방법원은 판사가 한 명이다. 민사사건이나 형사사건은 주 사건이나 연방 사건으로 심리가 벌어지며 살인과 고살은 각 주마다 형법으로 규정하게 되어있는데, 그 정의는 주마다 서로 다르다.퀸란 사건의 첫 재판 판결 내용:1975년 미국의사협회는 ‘죽게 놔두는 것’을 위해 호흡기를 떼어내는 것을 ‘안락사’와 동일시하였고 안락사는 살인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1976년 초에는 죽음과 죽는 과정이 관련된 사건들에서 환자와 가족들의 권리를 명확히 하는 법적인 기준이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았었다. 의사들은 의료과오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에 대해서도 걱정했다. 미국의 의료 과오에 대한 하나의 정의는 ‘공동체가 하는 의료행위의 정상적 기준으로부터의 일탈’이고 1975년에 대부분의 의사들은 환자가 죽는 순간까지 치료를 지속해야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라고 생각하였다. 의식불명인 환자가 죽도록 적극적으로 돕는 것은 분명히 일탈이었을 것이다.카렌의 호흡기를 제거하기 위해 조셉 퀴란은 법률 구조사무소에 상담을 구했다. 변호사는 폴 암스트롱이 사건을 맡았으며 그는 카렌을 죽게 할 수 있는 근거를 찾기 위해 신경과 의사들이 그녀의 상태가 회복 불가역적이고, 정상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암스트롱은 미국 헌법에 있는 죽을 권리에 근거한 주장을 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975년까지는 판단능력이 존재하는 환자의 죽을 권리를 인정할 것인지에 대하여조차도 최고법원이 아직 어떠한 판결을 내린바 없기 때문에, 카렌 퀸란처럼 자기보호 능력이 없는 환자가 죽을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주장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15년 후에 최고법원은 크루잔 판결에서 결정을 바꾸게 된다.암스트롱은 조셉 퀸란이 카렌의 호흡기가 제거되기를 원한다고 뮤어 판사에게 진술함으로써 이 소송에 한하여 카렌의 후견인으로 다니엘 코번 변호사가 선임되었다. 그 이유는 후견인은 피후견인의 이익을 보호해야하는데 이 경우 피후견인은 자기보호 능력이 없는 환자였고, 그 환자가 아직 인격체인가 하는 문제조차 해결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암스트롱의 주장을 들은 판사는 카렌이 인격체인지 여부를 먼저 판단하지 않고서는 조셉 퀸란을 후견인으로 지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카렌이 입원한 지 거의 7개월이 지나 뮤어 판사는 코번이 카렌의 후견인 노릇을 계속해야하며 호흡기를 떼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뮤어는 카렌의 자발적 의사가 서면으로 기록된 적이 없으며 그녀의 의사에 관한 부모의 증언도 그녀 본인의 죽음과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정적인 것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헌법상의 죽을 권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뉴저지 주 최고법원 판결 내용 :암스트롱은 뉴저지 주 최고법원에서 헌법에 규정된 프라이버시권을 근거로 논변을 펼쳤다. 프라이버시권이란 순수한 개인적인 문제를 정부의 간섭 없이 개인이 결정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현재는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된 것으로 인정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프라이버시권은 연방최고법원이 1965년 그리스볼드 대 코네티컷 사건에서 의사가 결혼한 부부에게 피임제를 처방하는 것을 금지하는 주법이 위헌이라 판결했을 때 처음 권리로서 인정되었다. 이는 미국 헌법에 규정된 개인의 기본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 판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