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노동의 새벽』―어린 시다의 꿈을 위한 노래박노해는 1983년, 동인지 『시와 경제』 2집에 작품 7편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그후 1984년, 시집 『노동의 새벽』을 출간하여 문단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고, 그 결과 이른바 ‘박노해 현상’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켰으나, 역설적이게도 그는 오랫동안 독자들 앞에 ‘얼굴 없는 시인’ 으로 남아있었다. ‘박노해 현상’은 부정하기 어려운 80년대의 문학적 사건으로 굳어지고 말았다. 박노해가 주목받기 시작한 지 약 7년만인 1990년에 그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그럼으로써 모든 억측과 짐작, 호기심과 신비감의 부작용이 상당부분 사라졌으며, 시간이 더 흐름으로써 시인, 문필가, 노조운동가, 혁명가, 사상가로서의 그의 면모 또한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박노해가 그 당시 발표한 작품은 시집『노동의 새벽』에 수록된 것과 그 이후 몇권의 잡지에 수록된 것이 전부이다. 8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들 중, 작품의 양만을 두고 본다면 박노해의 자리는 맨끝에 가까운 자리임이 분명하다. 그 정도의 작품밖에 창작하지 않았는데 그를 어떻게 중심명단에 올릴 수 있는 걸까. 그건 적어도 문학사적인 견지에서 바라볼 때, 박노해의 출현과 그의 작품세계는 80년대 시단을 다채로울 뿐 아니라 풍요롭게 만들면서 그 나름의 한 자리를 확고하게 구축했기 때문일 것이다.박노해의 본명은 박기평이다. 박노해의 ‘노해’가 ‘노동해방’의 약어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름에도 반영된 그의 정신은 『노동의 새벽』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결국 이 시집에서 시의 근간을 구성하는 내용은, 소외된 노동으로부터 공장 노동자들이 해방되어, 인간다운 삶뿐만 아니라 역사의 주체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원인과 그것의 극복을 위한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그가 생각한 소외의 원인은, 자본주의와 산업화의 문제, 낮게 책정된 임금문제, 열악한 노동환경, 자본가, 권력자, 유한계층의 허위, 사치, 부패, 타락, 허영, 자만 등으로 정리된다. 시의 전반에 걸쳐 이러한 요소들은 노동자들의 분노의 근원으로 나타난다. 그럼 극복의 방법으로는 어떤 것들이 드러나 있을까. 이 점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시집 『노동의 새벽』앞 부분에 수록된 작품들을 보면, 노동자의 비애와 슬픔, 한탄과 자학이 주로 나타나 있을 뿐, 소외된 노동을 적극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방법은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뒷 부분으로 갈수록, 그것을 위한 일종의 방법론이 분명하게 표출되어진다. 두 가지의 방법론이 포착되었는데 첫째, 노동자 자신이 스스로 각성하여 대립되는 계급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 그래서 박노해는「밥을 찾아」에서 라고 말한다. 둘째, 이기심을 버리고 노동자끼리 단합하여 공동의 적을 향하여 투쟁하는 것이다. 「별 볼일 없는 나는」에서, 시인은 라고 말하며, 전열을 추스르며 싸울 것을 외친다.그의 시에서 나타난 방법론이 옳은가의 여부를 이 자리에서 평가할 수는 없다. 다만 일관된 힘 하나로 창작에 임해온 박노해의 작업이 어떠한 결과에 도달했는지, 노동자 시인의 마음을 읽어 내릴 수 있는 것에 만족할 뿐이다.이제 박노해 작훔의 문학성이 어느 정도의 성공을 이루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박노해 문학의 장점 중 가장 첫째로 뽑히는 것은 구체적인 현장감각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상상력으로 시를 쓰지 않고 체험으로 시를 쓴다. 박노해의 작품은 공장노동자의 한 사람으로 자신이 노동했던 작업현장을 소재로 삼으면서 그 속의 문제점을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에, 상상이나 선입견, 독서 체험이나 관념으로 노동의 현실을 묘사한 작품보다 박진감이 넘치고 실감난다. 직접적인 체험만이 리얼한 작품 창조의 지름길이라고 못 박을 수는 없다. 제 아무리 직접적인 체험의 현장 한가운데 있었다 하더라도, 그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능력이 없다거나, 감상과 선입견에 지배되어 있다면, 몸만 현장의 가운데 있을 뿐, 그의 의식 속에 들어온 것들은 한낱 왜곡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박노해의 경우, 현장을 투시하는 눈과 노동의 현실을 바라보는 각성된 눈을 동시에 구비하고 있어 보인다. 「바겐세일」, 「시다의 꿈」,「가리봉 시장」등에 나타난 노동현실은, 특히나 노동의 현장에서 그 일원으로 지내본 사람만이 그려낼 수 있는 세계이다. 또 그는 탁월한 언어능력, 혹은 표현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러한 능력은 자신이 인식한 노동의 현실을 형상화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바겐세일」의 뒷부분, 일당과 연관된 언급들에서 보여 지는 형상화의 수준이 탁월하다. 다른 한가지로, 그의 시에 등장하는 언어들은 의도적으로 꾸민 흔적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그리고 그가 이러한 언어를 사용하여 창조해낸 시형식도 꾸민 흔적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독자들은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받게 된다. 작위적이고 어색하지 않게 읽히는 그의 시에는 끝까지 무엇인가를 성취하고자 하는 인간상이 드러나 있어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이쯤에서 장점 외에, 단점이라고 분류될 만한 몇 가지 지적을 하고자 한다. 위에서 장점으로 분류되었던 요소들은 다른 입장에서는 단점으로 작용될 수도 있다. 우선 모더니스트들에게 박노해의 시는 달갑지 않을 것이다. 한번 읽어서도 완전히 이해가 되는 그의 시는 다시 읽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라는 그들의 사상에 빗겨난다. 어려운 시의 가치를 더 인정하는 그들에게 박노해의 시는 너무 쉽다. 그리고 그의 시는 세월이 지나면서 그 인화력을 잃어간다. 대부분이 그렇듯이 시는 세월의 흐름 속에 조금씩 잊혀지게 마련이다. 또, 초기시의 단골소재였던 저임금, 장시간노동, 열악한 노동환경 등에 대한 분노와 좌절은 예전과는 달리 그 자체만으로 큰 울림이 없다. 시대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우선 나조차도 시를 쉽게 이해하고 안타까운 감정을 가지며 그를 접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주 가벼운 감동일 뿐이다. 또 그의 시는 자기중심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동료들을 위하여 궂은 고생을 한 박노해를 생각할 때 자기중심적이라는 말은 부자연스럽지만, 그의 시는 자기중심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물론 개인의 체험에서 기인하는 시 창작이 개인의 상황에 의존하는 게 당연하지만 그의 시는 독자와의 공감대를 형서하기에 조금 부족해 보인다. 그는 그가 겪은 체험을 독자와 함께 나누려 하지 않는다. 여기서 독자들은 감정이입에 불편을 겪게 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나와 같이 약간의 차이를 두고 시대를 살거나, 다른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그를 전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 그의 시에는 가해자와 피해자,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이분법적 분류가 지나치게 드러나 있다. 이 이분법적인 의미 구조를 통해 드러나듯이 그가 겨냥하고 있는 것은 가진 자의 횡포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자본주의 사회 체제에 대한 고발이다. 이런 의미 구조는 단순하지만, 단순한 그 자체에만 머물게 되면 결국 무엇 무엇을 위한 한풀이 혹은 무엇 무엇을 위한 도구에 그치고 만다. 이런 식의 생경한 한풀이는 그의 시에서 자주 보여 진다. 가진 자에 대한 피해의식과 분노, 저항의식은 피지배자, 즉 가지지 못한 자의 위치에 있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심리가 아닐까. 그는 시에서 지나친 피해의식과 분노를 표출함으로써 앞서 말했듯이 독자의 감정이입에 불편을 주고 시를 그저 한풀이에 머물게 만든다.
『La Pianist』: 사랑을 향한 불편한 욕망제 출 과 목:담 당 교 수:제 출 학 생:학 번:학 과:제 출 일 자:영화 『La Pianist』우선 나름의 분석을 정리해보기 이전에 영화를 통해 느낀 점들을 간단히 설명해 보고자 한다. 분석적 목소리는 자연스러운 감상을 거친 후에 비로소 제기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이 영화의 생소한 분위기에 대해, 내가 느낀 낯설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영화는 적막했다. 시각적으로 어두운 단색의 이미지가 두드러졌고, 앞서 말했듯이 청각적으로 매우 조용했다. 인물들이 움직일 때나 말할 때, 그런 것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장면들에서 배경음향은 절제되고 있었다. 음악이 사용될 때는 대부분 극중인물이 피아노 연주를 할 때로, 연주장면부터 음악이 자연스럽게 다음 장면으로 이어진다 하더라도 잠깐의 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또 음악은 장면이 바뀌거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갑자기 단절되는 특징을 보였는데, 인물의 주변을 따라 흐르던 피아노 연주곡이 갑자기 정지되었을 때 삭막하고 정적인 극적 효과는 훨씬 커졌다. 이렇게 음악적 배경을 아낀 효과가 꽤 크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영화 전반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청각이 쉼으로써 시각이 더욱 활발히 움직여 주인공의 행동 하나, 표정 하나, 더 나아가 눈빛 하나를 흘려보냄 없이 잡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단색의 어두운 색상들은 억눌려 있는 여자주인공의 심리와 전체적으로 풍기는 답답한 분위기를 대변해 준다. 검정, 회색, 갈색 등의 색상들은 안정적이고 고전적으로 보이면서도 또 그만큼 무언가 억눌린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러한 색상의 이미지는 여주인공의 심리변화를 전적으로 보여주는 역할도 하고 있는데, 이는 본문에서 설명하도록 하겠다.처음 글을 시작하면서 이 영화가 나에게 무척 생소했다고 토로했는데 이것에 대한 설명은 모두 다 한 셈이다. 음악적 효과에 큰 의지를 하는 다른 영화와 달리 이 영화는 너무 조용했다. 우선 그것이 낯설었고, 영화가 시각적 오락임을 염두 해두었을 때 이 영화의 장면들은 너무나 단조로웠다. 색도 색이거니와 대부분의 행동들이 정적이었기 때문에 뭔가 보이지 않는 내부의 무언가를 눈으로 쫓듯이 장면을 이해해야 했다. 물론 이것도 낯설기 그지없었다. 이 영화는 결코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때로는 영화를 보고있는 눈을 힘들게 하기도 하고 당황해 하는 머리를 갸우뚱거리게도 만들며, 후에는 거의 자포자기의 심정으로까지 몰고 가는 것이다. ‘보여진다’라는 표현보다 ‘읽힌다’라고 말하는 게 백 번 어울릴 듯 하다.어찌 됐건 주인공은 내 눈앞에서 욕망을 끄집어내었다가, 다시 주춤하며 속으로 삼켰고 나는 그 과정을 여실히 지켜봤기에 나름의 생각을 골똘히 해보았다. 나의 감상에 편향되어 영화 전체를 설명하지 못하고 부족하게 끝날지도 모르지만―무엇보다 내가 불편하게 봤기 때문에 불편했다고 불만만 늘어놓을지도 모르지만―영화가 문학작품과 같이 보는 사람의 의식에 관대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리 실례가 될 것도 없겠다. 그런 용기로 이 당혹스러운 영화를 살펴보고자 한다.유별난 여자여자는 마치 신경질적인 기숙사 사감정도의 이미지로 보이지만 나름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대외적인 행동이나 말투, 즉 일상은 지나치게 평범하고 절도 있으며 잘 짜여진 계획표처럼 느껴지지만 그녀가 혼자 있을 때 하는 행동들은 무척 특수하다. 욕조에 앉아 거울로 자신의 은밀한 곳을 비춰보며 그곳을 면도칼로 자해하는 여자가 몇이나 될까. 있기나 할는지 모르겠다. 또 아무렇지도 않게 남자만 득실대는 포르노샾에 가 당당히 방 하나를 꿰차고 먼저 왔었던 남자가 버리고 간 정액이 묻은 휴지를, 그것도 쓰레기통에서 꺼내 냄새를 맡는 여자는 세계인 통계로 몇이나 될까. 자동차영화관에서 카섹스를 즐기는 연인을 민망하게도 코앞에서 들여다보다 그 자리에서 소변을 보는 여자. 그러고선 다급히 뛰어 도망가는 여자. 그녀는 성적인 부분에서 다른 이와 차별된다. 평소에는 너무나 정상적이어서 오히려 이상해 보이는 여자가 성적인 부분이 개입된 상황에서는 정상적이길 거부한다. 여자는 사춘기 소녀의 상태에서 더 이상 성적으로 성숙해지지 않은 것 같아 보인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남학생을 도리어 더 차갑게 대하고, 멸시하며 한편으로는 미칠 듯이 질투하기도 한다. 자신의 제자의 코트 주머니에 유리컵을 직접 깨서 넣은 사건도 있었다. 극단의 방법으로 유치한 질투를 하는 것이다. 황당하기도 하지만 여자를 잘 살펴보고 있으면 어린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그녀의 행동은 이해되기 어려운 것이다. 도대체 여자는 왜 당혹스런 행동을 하는 걸까.Classic 한 여자여자는 피아노 교수라는 것 자체에서도 클래식함이 느껴지지만 실상 더 많은 부분에서 그런 성격이 부각되고 있다. 그녀는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에서 충분히 클래식하다. 고전적인 안일한 색상을 고집하고 대외적인 행동도 그러하며 무엇보다 늘 무엇을, 이를테면 욕망 같은 것을 억누르고 있는 듯 보인다. 고전은 그 자체로 숭고한 미를 가지지만 그 만큼 다른 것에 대한 욕구를 억제하게 한다. 상식에 벗어나는 일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그 답답한 체계 속에서 안일하게 욕망을 숨기고 있다. 적어도 주인공은 그래 보인다.그녀는 웃지 않고, 외출할 때 장갑을 꼭 끼며, 화장을 하지 않는다. 옷은 소녀처럼 단정하고 딱딱해 보이는 것만 입으며, 꽤 나이를 먹었음에도 자신의 어머니에게 사사건건 간섭을 받는다. 그 자체로 경직되고 갇혀있는 그녀. 그녀는 분출할 통로가 필요하다.그녀의 당혹스러운 행동들은 이 억제된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의 제자들과의 사이에서 지시하고 명령하는 존재이다. 권위적이고 융통성 없는 모습이다. 그녀는 자신의 그런 일상에 염증을 느끼고 클레메를 계기로 욕망을 분출한다. 그 전에도 자신의 성기를 자해한다던가, 포르노샾에 간다던가 하는 일탈적 행위가 있었지만 그녀는 조금 자유로워지는 걸 선택하기보다 극단으로의 탈출을 시도하는 것이다. 정도를 넘어선 욕망의 드러냄, 아니 꼭 정도를 넘을 욕망을 일부러 만들어 내는 듯이 보인다.그녀는 이때부터, 즉 클레메로부터 적극적인 고백을 받고 둘의 관계가 예사의 것을 넘어선 그 순간부터 변하기 시작한다. 클레메와 화장실에서 사건이 있은 후 점차, 극단적으로. 먼저 눈에 띄는 그녀의 변화는 외모에서 발견할 수 있다. 늘 하나로 묶어 그녀를 더욱 신경질적으로 보이게 했던 머리를 풀었고 블랙, 그레이, 브라운 계열의 침침했던 그녀의 옷차림이 밝아졌다. 그녀는 심지어 빨간 모자를 쓰기까지 한다. 그리고 화장기가 전혀 없던 그녀의 얼굴은 단정히 화장되어졌다. 옷차림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또 클레메를 향해 가까이 다가가려 노력한다. 레슨을 할 때에 가까이 앉는다든가, 다리를 꼬고 앉는다든가 하는. 또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자신의 클래식한 면모를 내버리고 전혀 반대의 왜곡된 성적취향을 보여준다. 제자에게 권위로서 군림하고 지시하던 자신을 버리고 클레메에게 자신한테 명령하라고 말한다. 그의 지시는 무엇이든 다 따르겠다고 한다. 갇혀져 있는 세계와 너무 확 뚫려 있는 세계를 중간정착점 없이 뛰어넘은 그녀는 이제 더 드러난 욕망을 호소한다. 그녀의 닫혀있던 욕망은 한번 맛본, 어쩌면 처음이었는지도 모를 사랑 때문에 타오르는 것이다.왜곡된 사랑, 사랑방법그녀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품은 사랑이 결국 그와는 다른 성격의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녀의 언어로서 그 감정은 사랑이다. “바하를 연주한 귀한 손에 입맞춰도 될까요?”라고 물어오는 남자에게 어떻게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그녀는 종종 그에 대해서 귀여운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대학원 시험을 치르러 온 그를 불안정한 눈길로 계속 지켜볼 때가 그랬다. 그때 그녀의 표정은 짝사랑하는 소년을 몰래 바라보는 소녀의 것이었다.그녀는 처음 클레메와 성적인 접촉을 할 때에 평소의 모습처럼 자신의 뜻을 강요한다. 금방이라도 사정할 것 같은 클레메에게 “네 거 보지말고 내 얼굴 봐”라고 말하며 마치 피아노 레슨하는 시간처럼 행동한다. 후에 자신과 그가 완전히 연인이 됐다고 생각한 그녀는 오래도록 속에 담아놓았던 욕망을 풀어낸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서툴렀고, 그녀의 욕망 또한 너무나 왜곡되어 있었다. 사랑을 갈구하는 클레메에게 그녀가 요구한 것은 일반적으로 이해되지 못할 변태적 성행위방법이었다. 그녀는 새디스트다. 그런 행위에 집착한다. 욕조에 앉아 자신의 성기를 면도칼로 상처 내는 것은 그녀 방식의 자위행위다. 클레메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당신은 병자예요. 병원에 가보세요.” 라고 말하는 그를 만나기 전 그녀의 성적 욕망은 너무나 결핍되어 결국 왜곡되어 버린 것이다.
기형도 『입속의 검은 잎』기형도. 왠지 꿈결 같은 이름이다. 그에 대해서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던 것이라고는, 요절했고 미칠 듯이 외로웠던 사람이라는 것, 죽어서 더 유명해진 불멸의 시인이라는 것 정도다. 시집을 읽고나서 한가지 의문이 생겼다. 그는, 어째서, 그토록 외로워했나, 하는.그의 시속의 모든 감각적인 비유들은 슬프다. 쓸쓸하고 아프다. 태양은 ‘노랗고 딱딱’ 할 뿐이다. 그는 늘 무엇인가를 잃은 사람처럼 부족해 보인다. 그것은 사랑일까, 의식일까, 꿈일까. 온통 수수께끼 같은 그의 내면들을 훔쳐보며 뭔가 나는 난감해진다. 나는 그의 속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공감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처럼 처절하게 외로워한 적도 없고, 늪에 빠지듯 고독의 한 가운데로 잠식해 본 적도 없다. 경험해 보지 못한 자가 바라보는 모든 어두운 심상들은 위대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런 극에 달한 절망까지도 하나의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의 아픔을 매력으로, 동경의 감정으로 생각한다면 실례가 될까.그는 「안개」에서 “안개가 끼지 않은 날, 사람들의 얼굴은 낯설다”라고 말했다. 마음 편히 안주할 그 어떤 곳, 어떤 이도 없었던 시인의 속내는 늘 방랑중이다. 그의 시 속, 안개와 비와 눈의 이미지들은 힘없고 어두운 그의 정신과 닮아있는 듯하다.나는 그의 시 중 「죽은 구름」을 좋아한다. 빈 집에 들어와 조용히 생을 마감한, 미치광이라고 불리던 사내. 창문에 스몄다가 사라진 구름. 저 홀로 없어진 구름이 창문의 것이 아니었듯이 기형도, 그도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던 걸까? 그래서 미치광이처럼 남모르게 슬픔, 욕망 다 껴안고 조용히 흘러간 것일까? 사내가 죽기 전 찾아들었던 빈집은 기형도가 가지고 있던 ‘시’ 라는 공간과 같아 보인다. 기형도는 죽기 전 시 속에서 가장 덜 외로웠으리라.“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는 말을 남긴 시인은 이 부패하고 무질서한 상황들 속에서 질식할 것 같은 복면을 쓰고 살아야 하는 오늘을 버렸다. 사라져 버린 그는 누구인가?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믿었던 사람이고, 그 믿음이 언젠가 자신을 부를 것이며, 그러므로 기꺼이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 사람이다. 그는 분명히 자신의 말을 그대로 지켰을 것이다. 내가 본 그는 정직하고 성실하다. 그가 남긴 이 한권의 시집은 가장 치열하게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간 한 젊은 시인의 어제다.
일본의 가업과 장인정신서론일본에서 라면집을 평가하는 기준은 언제부터 이곳에서 이 장사를 해왔나이다. 이런 것은 라면집 뿐만 아니라 소바집, 오까시집(일본전통과자집), 하물며 동네에 있는 조그만 이름없는 빵 가게조차도 가업을 잇는 일이 흔하기 때문에 가능하다.일본에서 몇 대째 가업을 잇는 전통과 그들이 갖고 있는 장인정신은 기본적으로 이에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이에의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영속하는 존재로서 이에와 그 이에의 구성원들이 혈연에 의해 구성되기는 하나 우리나라에서처럼 대를 이을 사람이 없을 때 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비친족원들(비혈연자)을 이에의 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지속시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자 한다. 또 이러한 이에의 지속성은 이에의 직업(가업)이 있는 경우나 혹은 이에의 토지가 있는 경우에 많이 나타났다.{) 권숙인 이에와 친족집단따라서 그 이에의 가업은 대를 이어 물려짐이 당연했고 그 속에서 일본인들은 장인정신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그러한 장인정신이 지금의 일본을 있게 했고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전을 보장하리라 생각된다.본론이에의 상속의 형태와 가업의 정의, 가업을 잇는 사람들, 일본에서의 장인정신에 대하여 살펴본다.1. 이에의 상속{) 위의 논문 참고1 계승의 원리 ― 이에란 그 구체적인 성원의 생사를 초월하여 영속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한 이에의 계승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한 쌍의 계승자 부부가 확보되어야만 하며, 일반적으로 이들 중 한 명은 그 집에서 태어난 자녀인데, 이 자녀는 아들이든 딸이든 관계가 없다. 그러나 자녀가 여러명 있을 경우 딸보다는 아들에게,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아이보다는 첫 번째 아이가 선호된다. 일반적으로 장남이 상속하는 것이 하나의 이상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차원에서 이에의 계승은 매우 실용적으로 이루어진다.2 계승자를 결정하는 근거 ― 이에가 영속해야 한다는 점이 어떻게 계승되는가보다 중요하다. 친족적 영속성보다는 이에 자체의 번영이 중요하며 출계율보다는 이에에 대한 경제적 기여도가 이에 성원권의 핵심이다.3 계승의 방법 (장남에게 계승될 수 없을 때)1. 양자제도: 입양은 일본의 경우 가계를 계승하는데 매우 보편적으로 시행되는 관행이었다. 형식상으로는 친족의 원리에 따르는 것이지만 내용상으론 전혀 친족관계가 없는 사람이 이에의 핵심구성원으로 포함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입양이 혈연과 무관히 이루어질뿐더러 경우에 따라서는 기존의 혈연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예) 35세 가장이 15세된 자신의 동생을 아들로 입적시키는 경우가 그것이다2. 무꼬요시: 편견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실제 관행상 데릴사위를 들이는 것, 혹은 데릴사위로 가는 것은 굉장히 보편적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장남에게 이에를 상속시키고 어차피 분가시켜야할 다른 아들들에게 더욱 좋은 기회를 주기 위해 보다 좋은 집안에 상속자로 보내는 예도 많았으며, 실제 부유한 가정의 아들들도 무꼬요시가 되는 경우가 있었다.예) 마쓰시타전기: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에게 아들이 없자 외동딸을 히라타도스케백작의 차남인 히라타 마사하루에게 시집을 보내 데릴사위를 맞아 들임, 그때부터 사위는 히라타라는 성 대신 마쓰시타 마사하루로 이름을 바꾸고 마쓰시타 집안의 주인이 되어 상속을 하게 됨.{) 한국경제신문사 일본쪼개보기 p173―계승자를 선택하는데 우선적으로 고려되었던 것은 출계보다는 이에 자체의 번영과 영속성이었다. 따라서 이에가 기초적 혈연집단이기도 했지만 가업이라는 공동 이익을 위한 소규모 사회집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렇게 양자나 무꼬요시를 들이는 경우 가업을 잇게 할뿐만 아니라 성도 자신의 성으로 바꾸게 하여 대대로 대물림하였다.2. 가업이에가 계승되는 것은 이에의 성원들이 동일한 경제행위에 종사한다는 특징 때문일 것이다. 일본의 사회학자나 인류학자들은 하나의 경영공동체, 생활공동체로서의 이에의 특징에 주목해 왔는데 한 이에의 성원은 동일한 경영체의 구성원이 되며 그런 의미에서 이에는 사회적으로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분할불가능한 단위가 된다. 따라서 이에를 계승한 자의 중요한 역할은 가산을 유지, 운영하며 가업을 이어가는 것이다.12대째 지속되어온 가업이라고 할 경우 한국에서처럼 자식이 효의 일종으로 부모의 일을 이어받고 그의 자식이 또 부모의 일을 이어받는 식이 아니라 이에라는 경영체가 그 경제조직의 존속을 위하여 최선의 선택과 선별과정을 거친 결과일 수 있다. 또한 12대에 이르는 계승자 중에는 계보상 그 집안의 자식이 아닌 사람이 포함된 경우가 있을 수 있는 것도 다연하다1 가업의 배경 ― 17세기 초 내전을 끝내고 모처럼의 평화시대로 정치를 안정시킨 바쿠후는 민중을 분할 지배하기 위한 정책으로 신분을 차별화해 고정시켰다. 이 때부터 쇼군과 다이묘를 비롯한 무사계층은 물론 다른 계층의 신분에까지 본격적인 세습이 이루어졌다. 1711년 바쿠후가 내린 가업에 전념해 게을리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분수를 알아 넘어섬이 없도록 하라 는 명령이 좋은 예이다.세습은 모든 계층에서 이루어졌고 특히 기와 예를 중수하는 상공인과 문화예술인 등의 전문직 종사자들에게는 숙명적이었다.상인들의 경우 자신들의 직업을 천업으로 여기면서 자신의 가업을 잇게 할 자손의 문제에 있어서 남자이든 여자이든 개의치 않고 가장 성실히 자신의 업무를 이어받을 수 있는 자손에게 자신의 직업을 물려주었다. 또한 여자만이 자손으로 남은 경우나 여자에게 직업을 이어주고 싶은 경우는 데릴사위 내지는 양자제도를 도입하여 몇 대에 걸쳐서 계속해서 그 직업에 종사하도록 유지시켰다.2 일본인에게 가업이란 무엇인가?예1) 일본최대의 명문대인 도쿄대의 경영학부를 졸업한 대기업 상사가 아버지가 더 이상 신문보급소 일을 하지 못하게 되자 회사를 그만두고 가업을 이어받았다. 물론 본인의 선택이고 후회는커녕 자신의 직업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예2) 동경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간 엘리트로 실력과 재능을 인정받아 최고 경영자가 되기 위한 예비과정인 그룹의 기획장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 부친의 사망 후 사직서를 냈다. 모두들 의아해 했다. 얼마 후 그가 조그만 장어덮밥집의 요리사가 되어있었다. 그 사람의 가문은 5대째 가업으로 이어왔던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그가 회사를 그만 둔 이유를 모두 이해했다.위의 예시들은 우리 나라라면 가능할 일인지 의심스럽다. 신문보급소, 장어닿밥집 모두 우리 나라에선 회사의 중역보다 가치있게 평가되지 않을 것이다. 비록 내가 농사를 짓더라도 자식들은 공부시켜 다른 일을 하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교의 영향을 일본보다는 많이 받았다. 과거급제로 상징되는 유교적 가치관으로 인문지향적인 사회구조는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업을 댐루림하게 만들지 않는 모양이다.그러나 일본에서는 무사계층의 경우 태어날 때 무사의 아들로 출생하면 자동적으로 무 사의 신분이 되고, 또 관리가 될 수 있었다. 이러한 관습 때문에 같은 계층 안에서도 여려 단계로 나뉘어 있는 계급 사회의 틀 속에서 서열과 분수를 지키며 살아가는 생활형태가 몸에 배이게 되었다. 신부이 대대로 세습되었던 에도 시대는 주어진 신분을 천직으로 알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사회였다. 특히 초닌으로 일컬어지는 상인과 직인 등 전문직 종사자들은 직업을 자식에게 대물림하면서 각자 맡은 분야에서 제 1인자가 되도록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천직 개념의 직업의식을 갖게 되었다. 신분과 직업의 귀천을 불문하고 전문분야의 제1인자를 무조건 존경하고 우대하는 사회적 풍토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도공이든 칼을 만드는 대장장이든 그림을 그리는 화가든 심지어 씨름선수든 어느 직업에 종사하든 열심히 노력하고 재능을 발휘하여 일본 최고의 자리에 오르면 사회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인정과 보상을 받았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일본인들의 생각이 일본인들이 가문대대로 내려오는 가업을 잇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도록 한다.3. 장인정신일본인들의 장인정신이라고 하면 가업의 대물림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 장인정신의 실체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다. 일본학자에 물어보아도 제 분수를 지키며 사는 것 이란 평범한 대답만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오늘날 일본을 만들었으리라고 여겨지는 일본인 최대 장점으로 지적하는 일본의 장인정신에 관한 책이나 자료를 출판대국 일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유이다. 자신의 분수를 지키며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일을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일본의 장인정신이다.
페미니즘 이론과 교육여성과 교육이란 책을 읽음으로써 조금이나마 여성의 문제와 나 자신에 대해 자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 같아 기쁘게 생각한다.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요즘 여성들은 누구 앞에 나간 다는 것이 쉽지 않고, 특히 리더는 남자가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듯 하다. 이런 생각부터 바꿔 여성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또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 모두에서 여성이 그 가치를 발휘해야 한다는 말과 같이 나 자신이 먼저 변화 할 수 있길 바란다.페미니즘 이라는 단어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언어처럼 느껴진다. 페미니즘이란 뜻을 알고 나니 나 자신도 페미니스트였다는 생각이 든다. 성별의 차이만으로 불이익을 받는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표현하지 못한 점에서 난 소극적인 페미니스트에 속하는 것 같다. 솔직히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교육을 보는 것은 나에겐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우선 자유주의 페미니즘에 대하여 나의 생각을 말하자면 우선 동등한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기회가 똑같이 주어졌다고 해도 여성들에게 동등한 결과가 주어지지 않는 게 우리의 현실이며 우리는 결과가 동등하지 못한 점을 비판해야 하고 거기에서 우리의 권리를 찾아야 하므로 동등한 기회만 보장하면 된다는 식의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동의 할 수 없는 부분에 있는 것 같다. 또 여성의 능력에 따라 사회에 진출하는데 있어서의 장애를 교육을 통해서 제거하자고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처럼 전문성은 남자들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교육기관에서도 성별 중립성을 띠고 있지 못한 점을 생각한다면 현실과 좀 거리가 있는 듯 하다.급진적 페미니즘은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점엔 깊이 동감한다. 근본적 변화 없이 수백년 동안 내려오는 이 불평등이 아주 사라질 순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은 위태로울 정도로 부족하다는 데일 스펜더 의 말은 날 놀라게 했다. 인간의 지식이라고 표현된 것들이 남성들이 활동해 온 것이나 그들이 결정한 것들을 기록해 놓은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나에겐 충격이었다. 교욱적인 면에서 급진적 페미니즘은 다른 사회주의 패미니즘이나 자유주의 패미니즘과는 좀 다른 것 같다.그들의 주장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비위계적이고 비경쟁적인 참여식 교육 방법의 시도였다. 또 교육과 학교에서 여성이 중심이 되어 커리큘럼과 교과서의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은 자유주의 패미니즘의 미흡함을 보충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나는 사회주의 패미니즘이 여성억압의 중추적 요인으로 문화적 제도들을 이해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동감한다.또 산업 노동력으로서 여성의 노동에 관심을 두는 것만큼 가정에서의 여성노동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