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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대 미술] 로마시대의 예술 평가B괜찮아요
    『로마의 역사와 미술 (BC 1000 ~ 395)』고대 로마는 에트루리아 라틴 사비누스의 3종족이 접하는 곳에서,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여 시장도시로서 성장하였다. 로마는 한때 에트루리아인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시벽(市壁)을 갖춘 도시로 발달했다고 한다. BC 6세기 말에는 에트루리아계(系) 왕을 추방하고 귀족에 의한 공화제를 실시함으로써 로마는 여러 라틴 도시의 맹주(盟主)가 되어 고대 로마국가의 중심이 될 기초를 닦았다. 현재 종착역(테르미니) 부근에 그 일부가 남아 있는 세르비우스 왕의 시벽(市壁)은 BC 4세기의 것으로, 이 무렵부터 로마는 광대한 영역을 지배하는 국가의 중심으로서 발전하였다. 270년경 제정로마 시대의 황제 아우렐리아누스가 축조한 시벽은 주위 46 km에 달하며, 현재 그 대부분이 남아 있다. 그러나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막센티우스 왕을 폐위하고 그리스도교를 공인하여 산피에트로 대성당과 개선문을 세운 무렵부터 로마는 제국의 중심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밀라노와 라벤나로 이탈리아반도의 정치적 경제적 중심이 옮겨졌으며, 이후 중세에 걸쳐서 로마는 산피에트로 대성당을 갖는 로마가톨릭교의 중심지로서의 구실을 하게 되었다.BC 5세기경부터 500년까지 고대 로마를 중심으로 로마제국 전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로마의 미술은 일찍이 이탈리아반도로 이주해 온 에트루리아인의 미술과 반도 남부에 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던 그리스인의 미술, 이 두 요소를 이어받아 이것들을 융합하여 발전시킨 것이다. 로마 미술은 그 형식의 대부분이 그리스 미술에 바탕을 두었지만, 실용적이고 현실적이라는 점에서는 지극히 에트루리아적이다. 처음에는 에트루리아의 영향에서 출발하였으나 에트루리아가 점차 세련된 그리스 미술의 영향을 받게 되자 로마도 서서히 그 형식을 계승하고 다시 공화정(共和政) 말기부터 직접 헬레니즘 세계와 접촉함으로써 그리스의 영향은 로마 세계를 풍미하여 그레코로만 시대를 출현케 하였다로마인들의 그리이스 세계정복은 평소 그리이스 미술에 절대적 동경을 가지들이었기 때문이고, 로마인들은 그리이스 시대의 미술품을 복제하거나 수집하였다. 그러나 로마인들이 그리이스 미술을 그대로 복제한 것만은 아니고 그들의 필요에 따라 그리이스 형식을 변형하였다. 로마인들은 멀리 북아프리카, 영국, 스페인, 페르시아만, 카스피해까지 그 들의 우수한 유물을 남기게 되었다.Ⅰ. 건축 (Structure)로마 미술의 특질을 가장 적절하게 나타낸 것은 건축이다. 실용성과 위시성을 중시한 로마 건축은 외관미를 추구한 그리스 건축과는 달리 거주성(居住性)에 기초를 두고 내부 공간을 충실히 하였다. 기둥과 들보로 이루어진 그리스 건축과 에트루리아의 분묘나 성문에 사용한 아치형식 또는 궁륭식(穹式)을 채용함으로써 수많은 기념비적 건축물을 만들어냈다. 건축양식은 그리스의 도리스 이오니아 코린트식의 3건축 양식에 모방, 기초로 하여 새로 이오니아식의 주두(柱頭)와 코린트식의 주두를 짜 맞춘 콤퍼지트식, 그리고 에트루리아 건축에서 유래한 토스카나식을 발전시켰다. 한편 구조면에서는 아치형이나 궁륭식을 채용함으로써 돌이나 벽돌을 쌓아올리고 다시 그 위에 분말로 된 일종의 시멘트를 사용하는 공법을 도입함으로써 거대한 건물의 건조를 가능하게 하였다. 로마 건축사상 불후의 명작이라고 말하는 판테온은 고대 로마의 가장 큰 원개건축(圓蓋建築)이다. 로마 건축의 또 다른 큰 특징은 건축의 다양성이다. 신전을 비롯하여 장대한 바실리카 극장 경기장 별장 목욕장 개선문 기념주(記念柱) 수도 도로 등이 역대 황제에 의하여 세워졌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바실리카 및 개선문, 카라칼라 황제의 목욕장,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별장, 콜로세움, 트라야누스 황제의 기념주, 갈의 수도교(水道橋) 등이 있다.《Coloseum》Colosseum 앞에 있는 네로 황제의 동상 Colloso (collosus [거대하다]라는 어원)에서 따온 이름이다.로마의 예술품 중 현존하는 가장 거대하고 유명한 건축물로서 콘크리트와 돌로 지은 거대한 투기장으로 가로 190m, 세로 15져 있으며, 로마인들은 각층마다 그리스의 세 가지 건축양식을 사용하였다. 첫 번째 층은 도리스 (Doric)식이며, 두 번째 층은 이오니아식(Ionic) 세 번째 층은 코린트 식(Corinthian), 마지막 층은 코린트식과 이오니아식 양식이 결합하어 건축 하였으며, 이 층에는 각 기둥 사이의 벽 가운데 작은 정사각형 모양의 창을 내어 놓았다. 이러한 콜로세움의 건축 구조는 로마식 건축 형식에 그리스 건축 형식의 결합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이다. 건물의 지붕에는 햇볕으로부터 관중을 보호하기 위한 Velarium이라는 천막이 설치되어 있으며, 이는 채광과 환기구의 역할을 동시에 하였다.세계의 7대 불가사이 중 하나라는 콜로세움의 건축양식은 후대의 건축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출처 :{/알고싶은%20우리의문명/그리스/콜로세움.htm{{{《Catacomb》Catacomb 혹은 Catacomba 라는 말은 라틴어와 그리스어가 섞여진 'catacumbas' [구덩이 또는 동굴의 옆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네로 황제 집권 시기 때부터 밀라노 칙령이 선포되기 이전까지 계속되어진 그리스도교와 교인들에 대한 탄압과 박해를 피하기 위한 지하 동굴로 예배를 드리기 위한 예배 장소이자 그리스 신도들의 지하묘지이다. 구조는 지하 10 15 m의 깊이에 대체로 폭 1 m 미만, 높이 2 m 정도의 통로를 종횡으로 뚫어 계단을 만들어서 여러 층으로 이어져 있다. 또한 통로의 곳곳은 넓은 방처럼 되어 지도자급 교도의 묘실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통로의 벽면에도 시체를 두는 벽감(loculus)을 일정한 규칙으로 설치하였다. 사각형 loculus들이 일반적이지만 그밖에 다른 형태 묘들도 있어서 아치형 묘소, 석관, 평장, 침실형 묘소, 경당형 묘소 등을 볼 수 있다. 아치형 묘소(arcosolium)라고 하면 서기 3세기와 4세기의 전형적인 묘의 형태로 그 위를 아치 형태로 해서 벽에 깊숙하게 타원형 벽감(nicchia)을 파 들어간 묘이며 상당히 큰 편이다. 대리석판은 수평으로 해시신을 안치한 묘이다.이 catacomb에는 그리스인들의 종교적 정신을 엿 볼 수 있는 벽화들이 많이 그려져 있는데, 당시 로마시대에는 회화가 많이 발달하지는 않았으나, 그리스교도 인들이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기 위하여, 비석이나 벽에 종교적 의미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 이러한 벽화들의 대부분은 회벽을 칠해 마르기전에 수성 그림을 그리는 방법의 프레스코 형식이었다.출처 : {http://www.fractal.co.kr/art/westart/index.htm{{{Bust of Christ in the Catacomb of Pontianus Wall painting in catacomb of Marcellino{{《Triumph Arch (Arco di Constantino)》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막센티우스(Maxentius)를 밀비안 다리 전투(312년)에서 물리친 것을 기념해 315년 세운 개선문으로 높이 21m,벽에는 그의 업적과 전쟁 장면을 새긴 부조가 있다. 후에 파리 개선문의 모델이 되었다. 당시에는 왕의 공로와 업적을 치하하기 위한 이러한 기념문들이 많이 세워졌는데, {형의 통로인 공랑(拱廊)에 원주(圓柱) 등을 배치하여 조각으로 장식한 본격적인 형식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는 제정 로마의 초기로 추정된다. 기본적인 형식은 큰 아치 하나로 된 단공식(單拱式)과 그 좌우에 작은 아치를 곁들인 삼공식(三拱式) 등이 있으며, 단공식은 로마의 티투스 개선문과 같은 것이고, 삼공식은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과 같은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공랑을 십자형으로 교차하여 4면에 아치를 설치한 형식도 있었다.{{Arco di Constantino Arco di Titus《Pantheon》판테온이란 다수의 신을 모시는 신전이다. Pantheon이란 말은 "모든 신들"이라는 뜻으로 범신을 숭배하기 위하여 Agrippa 집정관이 B.C.25년에 건축하여 Hadrianus 황제(76 ~138)에 의해 개축되었다.콘크리트 기반에 석회질과 경석을 섞어 만든 원각들이 있다. 외형에 어떠한 장식도 없는 본당의 내부에는 7개의 신을 안치한 작은 방들이 있는데, 이곳에 제우스, 아폴론, 아르테미스, 메르쿠리우스 등의 일곱 지상신을 모셨다. 하지만 기원후 608년에 비잔틴 황제 포카스가 Pantheon을 교황 보니파티우스 3세에게 선물을 함으로서 기독 유일신을 모시는 교회로 변하여 현존 할 수가 있었다. 수적 비례의 미와 강대한 내부 공간의 창조라는 Pantheon은 당시 로마시대의 경이적 토목 기술로서 서양 건축사의 불후의 명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출처 : {{/로마건축/판테온신전의(설명).htm{{{{Ⅱ. 조각 (Sculpture)로마인들은 주로 그리스의 조각을 모방, 수집하여 그들의 화려한 저택을 치장하는 데 사용하였다. 로마의 조각은 초상 조각과 설화적 부조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먼저 초상 조각에서 그들은 전쟁 영웅의 두상을 신성의 지배력을 지닌 모습으로 표현, 영웅적으로 이상화하여 제작하였다. 헬레니즘 시대의 초상이 인물의 미묘하고 심리적인 묘사에 치중하였다면 로마의 초상조각은 훨씬 사실적이고, 치밀했으며 개개인물의 정확하고 의지력 있는 개성적 표현에 중점을 두었다.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키케로, 카이사르의 흉상,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입상,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마상 등이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선조의 모습을 미라로 만들던 풍습과 연관된 듯한 관심이 로마에도 있었는데 그것은 사자의 초상을 밀랍으로 만들던 것이었다. 이것은 나중에 더 견고한 대리석으로 초상을 제작하기에 이른다. 로마인들은 조각 작품을 만들때 그리스 조각 양식을 모방 하였지만, 인상화하지 않고 그리스 인보다 더 실물처럼 사실화 하는 초상제작에 힘썼다. 설화적 부조에서는 로마의 황제들이 전쟁에서 승리한 역사적 사건을 과시하기 위한 기록으로서의 면을 보여준다. 그리스 인들이 신전의 프리즈에 새겨 넣었던 주제가 일상적인 행렬이었다면 로마인들은 일시적 사건을 다룸으로써 로마 조각가들의 예술적 의도가 기록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로마인들은 부
    예체능| 2004.12.10| 9페이지| 1,500원| 조회(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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