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Ⅰ. 서 론11.1 연구의 목적 및 범위11.2 연구의 내용2Ⅱ. 본 론32.1 구개음화의 정의32.2 구개음화의 체제42.3 규칙화112.3 통시적 구개음화232.3 앞으로의 전망28Ⅲ. 결 론30참고문헌32구개음화 연구Ⅰ. 서 론모든 물체는 인접한 것들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의 언어생활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언어의 변화는 조금 더 효율적?경제적으로 발화하고자 하는 외적인 욕구 외에도 언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내적인 규칙에 의해 좌우된다. 음소들은 모여서 음절을 이루고 구절, 문장을 이룬다. 이 각 음소들은 자신들의 변별적 자질을 중심으로 각각이 놓이는 자리에 따라 그리고 앞뒤의 다른 음소에 따라 위치에 제약을 받는다. 때론 다른 음과 같아지려는 현상을 도출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음운규칙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구개음화는 같아지려는 현상, 즉 동화)(同化, assimilation)의 영역에 속한다.본 연구에서는 이 구개음화 현상에 대해 공시적인 면과 통시적인 면을 실례를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구개음화의 규칙화를 실현해 보고 연구에 있어서의 남은 문제와 앞으로의 전망을 고찰한 후 매듭지으려 한다.)1.1 연구의 목적 및 범위본 연구는 국어의 구개음화(口蓋音化)가 공시적 음운규칙과 통시적인 조건변화에 따라 어떠한 양상으로 생성되고 있으며, 어떻게 발달하여 왔는가를 연구함으로써 국어의 구개음화에 대한 종합적이고도 체계적인 변화와 원리를 찾아보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국어의 구개음화는 지금까지 입천장소리되기(구개음화)란 명칭 아래, 음운론의 하위 분야인 음운변화의 일종으로서 단편적인 연구가 구조주의 문법에서부터 최근 생성음운론의 이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지속되어 왔다.구개음화의 연구 영역은 크게 통시적인 면과 공시적인 면으로 나누어 고어, 표준어, 지방어 등으로 고찰되었고, 근자에는 그 연구가 구개음화의 제약성이나 규칙화에 매달려 있다고 본다.통시적인 측면에서 관심을 보인 것은 주왕산(1948)을→ 바치e. 닫히 → 다치위의 실례를 통해 구개음화는 뒤에 오는 음이 앞에 음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역행동화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두 음 사이에 다른 음이 끼어 있지 않으므로 인접동화이며, 또 동화되는 자음이 i나 y에 가까워졌지만 i나 y로까지 바뀐 것은 아니므로 부분동화이다.이러한 구개음화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경구개 위치에서 나타나는 모음인 i(y)의 존재를 주목해야 한다. 이 말은 구개음화가 나타나는 치조음 /ㄷ ㅌ/이 i(y)의 영향을 받아 가까운 위치인 /ㅈ ㅊ/에서 소리 나고자 하는, 즉 동화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구개음화는 치조음인 ㄷ과 ㅌ을 구성하는 [-고음성]의 자질 자체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자질이 뒤에 있는 모음 ‘ㅣ’가 가진 [+고음성]에 동화되어 일어난 것임을 알 수 있다.)이것을 동화로 해석하는 것은 ‘ㄷ ㅌ’과 i나 y사이의 관계보다, 또는 ‘ㄱ ㅋ ㄲ’과 i 및 y 사이의 관계보다, ‘ㅈ ㅊ ㅉ’과 i 및 y 사이의 관계가 더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어째서 i나 y는 다른 자음들보다 구개음과 더 가까운 음인가? 이는 전설모음 /i/가 발음되는 위치가 경구개 아랫니며, /y/도 혀와 입천장 사이의 거리가 조금 더 좁혀지기는 하여도 같은 위치에서 발음되는 반모음이다. 즉 자음 중 모음 /i/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발음되는 자음은 구개음이다. 구개음화는 /i/나 /y/가 먼 거리에 있는 자음을 자기와 가까운 자리에서 나는 자음으로 바꾼 현상이며 따라서 동화현상인 것이다.2.2.1 구개음화의 원인국어의 음운사를 볼 때, 근대국어에서 가장 뚜렷한 한 가지 음운변화로 거론할 수 있는 것은 구개음화이다. (이숭녕, 1972:68), (이기문, 1972:64)지금까지 선행 연구자들에 의하여 연구되어 온 구개음화의 발생 원인을 보면 다음과 같다. 구개음화란 발음에 있어서 힘의 절약이나, 발음을 쉽게 하고자 하는 경제적 본능에서 나온 것이다. (김형규, 1976:57) 이는 Saussure(1931:1때 17세기 초엽을 상회할 수는 없을 것으로 추측된다.이상을 통해서 본다면, 문헌자료를 의지하는 한 구개음화의 시기를 후퇴적인 구개음화(t계, n계, l계, s계)와 전진적인 구개음화(k계, h계)로 양분하여 언급할 수도 없고, 오로지 처음 문헌에 한두 개 나타났다고 해서 계열별로 시기를 추정하는 것도 무리가 있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유창돈(1973:94~5)의 15세기 국어에도 t계가 있었음을 주장하는 것과, 박홍길(1961:121)에서 『두시언해 초간본』에 t계 구개음화가 나타난다고 했으나, 그것이 타당한 것인지 의문의 여지가 있는 것과 같다.그러나 이명규(1974:127~130)에서 t계의 『연병지남』, 『중간두시언해』, 『마경초집언해』, 『경민편언해』, 『노걸대언해』, 『첩해신어』, 『송강가사』 등과 k계의 『동문유해』, h계의 『첩해신어』, n계의 『중간두시언해』, 『노걸대언해』, 『마경초집언해』 등에서 그 연대를 찾으려고 노력하였다.우민섭(1995)에 따르면 방언에서 중앙어보다 구개음화가 더 빨리 나타났을 것이므로 지방적 요소가 가미된 문헌자료)를 통해 『몽산화상법어약록(蒙山和尙法語略錄)』(1577)에서도 구개음화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며, 『두시언해(杜詩諺解)』중간본(重刊本, 1632)에서는 아주 생산적인 표기를 보인다고 하였다. 문헌 기록상의 남부방언은 16세기부터 구개음화가 확실하게 실현되었는데, 발생단계에서 확립단계까지 약 1세기의 기간은 소요되었을 것이므로 15세기의 방언을 수록한 문헌이 없어 단정할 수는 없으나, 남부방언의 구개음화는 15세기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 당시는 중앙어와 지방어의 언어차가 지금처럼 현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 중앙어는 표기의 보수성이 작용하고 지방어는 언중들의 언어실상을 그대로 반영했을 것이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비교적 이른 시기에 방언에서 구개음화가 발생한 사실은 중앙어의 구개음화 발생 시기를 추정하는 데 중요한 암시를 준다고 하였다.또한 구개음화는 ‘쟈, 져, 죠, 지’ 등 i, y에 선행하는 --------------+-유기적 (aspirate)-+--+--+--+---+------성문적 (glottal)--+--+--+--+-+-------유성적 (Voiced)---------------++++++2.3.2 구개음화의 종류과거 전음이나 습관음으로 처리하였던 시기의 주장들을 보면, 주시경(1910:23), 이규방(1922:50), 김두봉(1922:65), 정국채(1926:32), 이완응(1929:13) 등에서는 주로 ㄷ>ㅈ, ㅌ>ㅊ 두 종류만이 거론되었고, 이병기(1920:84,86)에 오면, 닿소리의 버릇에서 ㄱ>ㅈ, ㅎ>ㅅ 등을 거론하였다. 그 뒤 최현배(1929:34)에서 n>?이, 박상준(1932:48)에서 ㅎ>ㅅ이, 심의린(1935:13)에서 ㅋ>ㅊ이, 이상춘(1948:24)에서 l>λ 등이 추가되었음을 알 수 있다.*주왕산(1948:102) : ㄷ, ㅌ, ㄱ, ㅋ, ㅎ*이인모(1949:108) : ㄷ, ㅌ, ㄱ, ㅎ*정인승(1949:20) : ㄷ, ㅌ, ㄱ, ㅋ, ㅎ, ㄲ, ㄴ, ?*최현배(1956:82) : ㄷ, ㅌ, ㄱ, ㅋ, ㅎ*이숭녕(1956:27) : ㄷ, ㅌ, ㄱ, ㅎ*김민수 외(1960:13) : ㄷ, ㅌ, ㄱ, ㅋ, ㅎ, ㄴ, ㄹ*고창식 외(1965:36) : ㄷ, ㅌ, ㄱ, ㅋ, ㅎ위의 구개음화 현상을 분류해보면 다음 4가지로 구분이 가능하다고 본다.첫째, 고대국어에 있어서의 구개음화와 현대국어에 있어서의 구개음화로 양분할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은 구개음화의 발생시기와도 관련이 있어서 자칫 시대구분을 잘못하면 무모한 오류를 범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둘째, 표준어에 있어서의 구개음화와 지방어에 있어서의 구개음화로 양분할 수 있다. 현행 표준어에는 t계의 경우만을 구개음화로 인정하고, 그밖에는 방언으로 취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하여 부득이한 예외가 생겨 모순을 범하게 되었으니 혜다(計算)에서 온 ‘세다, 셈’ 등을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음이 바로 그것이다.)셋째, 고유어에 있어서의 구개음화와 한자어에 있어서의 구개음깁따] 솥에 넣다 [소테 너타]이게 우리네집 밭이다 [이게 우리네집 바치다]우리네 밭이랑 마리네 밭이랑 다 팔았다 [우리네 바치랑 마리네 바치랑 다 파라따]굳이[구지] 곧이듣다[고지드따] 땀받이[땀바지] 맏이[마지] 미닫이[미다지] 해돋이[해도지]굳히다[구치다] 닫히다[다치다] 묻히다[무치다]위의 예는 우리말 어간의 끝자음 /ㄷ, ㅌ/가 /ㅣ/로 시작하는 문법형태소 앞에서 /ㅈ, ㅊ/로 바뀌는 변화로, 이러한 변화는 ‘밭+이’ 같은 곡용, ‘땀받-+-이, 굳-+-히-’와 같은 파생어 형성에서 나타난다.위의 단어용례에서 변화의 대상이 되는 /ㄷ, ㅌ/는 [-공명성, -지속성, +설정성, +전방성]으로 표시되는 치경음이며 변화의 결과인 /ㅈ, ㅉ/는 [+지연개방성]으로 표시되는 파찰음이다. 이 변화는 치경음 /ㄷ, ㅌ/가 [+성절성, +고설성, -후설성] 자질을 가진 /ㅣ/ 앞에서 파찰음 /ㅈ, ㅊ/로 바뀌는 과정이므로 다음과 같이 기술될 수 있다.[-son -cont +cor +ant] → [+del rel] / [___]x [ [+syll +high -back] ]Y(x=어휘형태 Y=문법형태)위의 생성음운론을 위시한 단선음운론의 규칙화를 통해서 보면 경제적이면서 효율적으로 구개음화의 원리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것이지만 전면적인 접근이 불가능한 난점이 있다. 그것은 현대국어에서 구개음화가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구개음화가 일어나지 않는 경우들이 다수 있는데 (예 : 디디다?견디다?티끌?마디 등) 이들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다.또한 구개음화 규칙과 전설모음화(모음축약)규칙이 서로 불투명 관계에 있기 때문에 심각한 난점을 지니게 된다. 이 불투명성 문제)는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가능하면 불투명성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음운규칙이 배열되게 된다. 이에 대해 김진우는 의미의 투명성을 위해서는 음운론적 불투명성은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단선음운론에서는 구개음화가 ‘경계(김영기)’ 혹은 ‘의미의 투 ‘설마
Ⅰ.서론“문학은 시대의 거울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 문학에는 우리 시대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한국 현대 문학은 전대의 문학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시대 변화에 적응하면서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또한 한 시기의 문학이란 그 자체로서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리나 앞뒤로 연결되면서 발전해 나가는 역사적 과정의 필연적인 일부이기 때문에 한국 현대 문학을 올바르게 감상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상황과 문학적 상황이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고려해야 한다.세계 각국의 근대화는 보편적으로 국민국가의 성립, 자본제생산양식의 완성이라는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근대화 과정에 있어서는 식민지체제라는 특수한 상황에 의해 참죈 의미의 근대화가 봉건주의를 청산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외세를 극복하는 문제까지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우리는 1930년대의 문학 역시 이러한 역사적 과정의 일부요 그 일환으로 보아야 한다.우리나라의 근대 문학은 충분한 성숙을 이룩하기도 전에 외래문화에 휩쓸려 바깥에서 들어온 근대문학의 형식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당시 1930년대의 시대상황과 연관하여 당대 문학의 특징과 대표작가와 작품을 알아보기로 한다. 또한 풍자문학이라는 당대의 중요한 문학의 한 흐름을 통해 1930년대 문학을 더욱 깊게 고찰해 보도록 하겠다.Ⅱ. 본론1. 시대적 배경(1)일제의 탄압 정책1928년에 발효된 치안 유지법에 기초하여 조선인들에 대한 사상 탄압이 가중되었다. 특히 만주 사변, 중일전쟁으로 인해 일제가 조선을 대륙 침략을 위한 병참 기지로 삼으려 함에 따라 식민지 조선에 대한 경제적 수탈 역시 가중되었다. 이처럼 일제의 만주 침략 노골화로 인한 동아시아 정세의 악화는 조선 사회를 더욱더 불안하게 만들었으며, 그 심한 위기감으로 하여 한국 문학 역시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되었다.(2)일제의 사상 탄압1938년 3월 중등학교 교과목에서 '조선어' 과목을 폐지시킴으로써 일제의 식민지 사상 탄압 정책은 더욱 가혹하게 진행되었다. 문학에서는 신아들이게 되었다. 자기 시대의 사회적 현실을 정면에서 다루지 못하게 된 객관적 여건이 하나의 설명으로 제시될 수 있다. 또한 30년대의 우리 문단을 지배했던 모든 문학적 논의는 한국현실보다는 서구적 문예이론을 원천으로 해서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다.)1)1930년대 소설문학의 특징(1) 도시 문명에의 관심: 도시적 삶과 현대 문명에 대한 사실적 접근이 나타났으며 도시적 삶의 병리(病理)를 섬세하게 묘사했다.(2) 농촌 농민의 삶 제시: 자연과 흙을 주무대로 살아가는 향토색 짙은 농촌과 농민의 삶을 제시했다. 이것은 뿌리 없는 도시적인 삶의 공허감을 벗어나려는 의도의 반영으로 볼 수 있으며 농촌 농민 계몽 운동과도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3)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제고됨 :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재조명하는 작품들이 발표되었고, 이 작품들은 민족의식을 간접적으로 고취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지만 한계가 있었다.(4) 인간 문제의 탐구: 특정의 시대적 사회적 조건을 벗어나 인간의 근본적 문제를 탐구하려는 작품들이 등장했다. 이 작품들은 인간과 인생 그 자체의 묘사에 중점을 두었다.(5) 여류 작가의 등장: 박화성, 최정희, 장덕조 등2)1930년대 시문학의 특징(1)순수서정시에의 지향과 옹호가 두드러지게 된 현상이다.이 순수 서정시 운동은 주로 박용철, 김영랑, 신석정 등이 중심이 된 '시문학(1930년 창간)' 동인들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이들은 시가 지나치게 사회성을 가지고 사회적 이념의 전파를 위한 수단으로 도구화되는 것을 거부했으며, 또 지나치게 기교 위주로만 치닫는 경향도 마땅하지 않게 생각한 나머지, 시 자체의 순수성과 서정성을 지향하고 옹호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의 이론적 기수인 박용철은 릴케의 영향을 받은 시론 '시적 변용에 대하여'란 글로 시의 서정성을 강조했으며, 이를 시로써 실천한 것은 김영랑이다. 김영랑은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끝없는 강물 흐르네' 등의 시에서 보듯, 감각적인 언어의 섬세한 다듬질과 가락의 음악성 등으로 순이다. 이런 당위성을 제일 먼저 깨닫고 풍자문학의 긴요성을 30년대 문학에서 맨 먼저 주창한 사람은 최재서 였다. 그는 요컨대 20년대의 국민주의 문학이 사회주의 문학의 압박을 받아 잠식당한 대신 신흥문학(사회주의문학)이 성행했으나 이것도 30년대 중엽부터 발발한 여러 사회 정세로 말미암아 활동불능에 빠진다. 풍자는 역시 공격이나 비판이 막힌 여건 속에서 사회의 비리나 인간의 비행 및 우행 등에 간접적으로 조소하거나 야유하며 비난하는 표현법이다. 그러므로 일제의 통제 아래 억눌려 지냈던 식민지 시대에 있어서는 이런 간접 화법 적인 우회적 기법이 많이 시도, 활용된 것이다 이것이 특히 30년대에 들어서 표현의 자유를 심히 통제 받게 되자 문학의 기법도 발전되어 풍자의 방향으로 나가게 되었는데 바로 작가 채만식이 맨 먼저 활용하여 성공하기에 이른 것이다.2)풍자의 방향(1)농촌의 황폐현상 고발식민지화 정책이 고조되어가던 당시에 황량한 농촌이나 피폐한 어촌 또는 산촌들의 가난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20,30년대를 전후해서 매우 많았다. 이는 군소 카프 계열의 시나 소설의 흐름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런 농촌 등의 가난 문제는 시 장르보다 소설이나 희곡에서 훨씬 강세를 드러냈다. 김유정의「소나기」,「만무방」,「금따는 콩밭」, 박영준의 「一年」, 백신애의 「赤貧」,채만식의 「농촌 스케치」,「광부大暴落」,「감독의 안해」등이 이에 속한다.(2)도시의 빈곤상 묘사날로 강화되는 통치 상에 정비례하여 쇠퇴 일로를 걸어 황폐화된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나온 식민지의 군상들은 도회지로 몰리게 된다. 이른바 총독부 당국의 토지 조사사업, 산미증산 계획, 고리채 등에 시달리다 농촌을 물러 나온 뿌리뽑힌 자들은 도시의 막벌이 노동꾼이나 부랑자 또는 실업자군으로 남게 되었다. 산적, 종로의 주민들이 그들인데 이는 다분히 지식인 소설)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3) 인텔리의 실직과 소외지식인의 궁상을 다룬 데에 와서 풍자문학의 절정을 이루게 된다. 이 무렵 발표된 현진건의 「貧妻」, 이상의 「타낸다. '무녀도', '황토기', '신화' 등의 작품이 있다,⑩ 최정희 : 여류 소설가로서 현실 고발적. 객관적 경향이 나타나고, 여성 의식의 순수 결정체이다. '천맥', '인맥', '지맥', '흉가' 등의 작품이 있다.⑪ 안수길 : 으로 등단했고, 민족적 비극을 서사적으로 전개했다. 작품으로 는 '적십자 병원장', '제3인간형', '북간도' 등이 있다.⑫ 황순원 : , 동인이고, 범생명적인 휴머니즘을 추구했다. 작품으로 는 '늪', '별', '기러기' 등이 있다.⑬ 이상 : 동인으로, 심리 주의적 내면 묘사 기법인 '의식의 흐름'을 추구했고, 현대 사회의 심리적 고통과 자의식을 표현했다. '날개', '종생기', '동해', '지 주회사' 등의 작품이 있다.⑭ 유진오 : 동반자 작가로, 회의적 지식인의 고뇌와 무력감을 묘사했고, 도시인의 정신 적 고뇌를 나타냈다. '김 강사와 T교수', '나비', '창랑정기' 등의 작품이 있다.⑮ 채만식 : 동반자 작가로, 식민지 시대의 어두운 현실과 갈등을 투철한 사실성의 토 대 위에서 그렸다. 작품으로는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 '탁류', 태평천하' 등이 있다.? 박태원 : 세태 소설을 썼으며. 작품으로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천변 풍경' 등이 있다.2) 시(1) 시문학파① 김영랑 : 시문학파를 주도했고, , 에 관련. 감각적인 시어를 고운 가락으로 표현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오매 단풍 들것네' 등의 작품이 있다.② 박용철 : 시문학파를 주도했고, , 주재. 생에 대한 회의가 주조 를 이루고 감상적인 가락이 특색이다. '떠나가는 배', '싸늘한 이마' 등의 작품이 있다.③ 이하윤 : 시문학 동인이다. 해외 시의 소개와 서정시 운동을 했고, '들국화', '실향의 화원', '물레방아' 등의 작품이 있다.(2) 모더니즘① 김광균 : , 동인으로, 도시의 소시민층의 감정을 노래하여 모 더니즘적 경향이 강한 시풍이 나타난다. '외인촌', '추일 서정', '설야', '와사등' 등의 작품이 있다.② 장만영 미지즘이 더욱 분명한 경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는 8?15광복 후 월남하였으며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여 정치주의 적인 시를 주장하였고, 서울대학교?연세대학교?중앙대학교 등에서 문학을 강의하다가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 시집에 〈바다와 나비〉(1946) 〈새 노래〉(1948)가 있고, 저서에 〈문학개론〉(1946) 〈시론〉(1947) 〈시의 이해〉(1949) 등이 있으며, 1988년 〈김기림 전집〉이 간행되었다.《기상도 분석》〈기상도〉는 모두 424행의 장시로서 〈세계(世界)의 아침〉 〈시민행렬(市民行列)〉 〈태풍의 기침시간(起寢時間)〉 〈자취〉 〈병(病)든 풍경(風景)〉 〈올빼미의 주문(呪文)〉 〈쇠바퀴의 노래〉 등 7부로 이루어져 있다. 7부로 엮어진 이 시는 7부 각각이 "태풍"이라는 한 핵을 향해 수렴되고 긴밀하게 엮어지면서 유기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1부 〈세계(世界)의 아침〉과 이 시의 대단원인 7부 〈쇠바퀴의 노래〉는 그 시적 구조가 시간상으로 원형을 보여주듯이 공간상 원형을 보여주고 있음을 놓칠 수 없다. 말하자면 구조상 대칭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이 시의 특색이다. 다시 말해, 1부 〈세계(世界)의 아침〉이 "새로운 생활"을 찾아 떠나는 모습이라면, 7부 〈쇠바퀴의 노래〉는 태풍을 거침으로써 또 하나의 "새로운 생활"이 거듭남을 확인한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생활에 대한 재생이자 쇄신작업이라고 할 만하다. 〈세계(世界)의 아침〉의 단순한 무조건적인 새로운 생활에 대한 동경이 〈쇠바퀴의 노래〉에 와서 새로운 생활에 대한 희망과 미래에의 믿음으로 바뀐 것이다. "우울과 질투와 분노와/끝없는 탄식과/원한의 장마에 곰팽이 낀/추근한 우비"는 벗어 던지고 "날개와 같이/가벼운 태양의 옷"을 갈아입어도 좋다는 것이다.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시 〈기상도〉에서 가장 핵심을 이루는 부분은 3부〈태풍의 기침시간(起寢時間)〉을 구심점으로 해서 그 여파를 다룬 2부 〈시민행렬(市民行列)〉과 4부 〈자취〉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현대문명의 기
Ⅰ.서 론1980년대는 탄압과 저항, 허위와 폭로, 보수와 진보, 한계와 가능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함께 엇갈렸던 시대였다. 이 시기의 문학에서는 전반적으로 농민과 농촌, 노동자와 노동환경, 사회 모순과 부조리, 환경문제, 분단 극복과 통일 지향의지 등에 대한 경향을 나타내는데, 이 중에서 민족문학과 해체문학이 주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시대든지 문학 속에는 현실이 반영되어있다. 그래서 역사적인 배경은 문학을 이해하는데 단서를 제공해 준다. 우선 1980년대의 시대적 배경을 알아보고, 문단의 전반적인 특성을 알아본 뒤 80년대 문학을 대표하는 해체문학과 민중문학의 특성과 대표작품을 분석해보려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80년대의 문학사적 의의를 살펴보겠다.Ⅱ.본 론1. 시대적 배경80년대는 5월 광주로부터 시작되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앞장서서 보호해야 할 국가권력이 거꾸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파괴하고 그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국민들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국가에 대한 사고를 수정해야만 했다. 국가와 정권의 분리, 그리고 특정 정권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그것이었다. 5월 광주의 실질적 포격의 주체이자 5공 정권의 실세였던 군부와 그 세력들의 속성을 언론과 경제 등 다각적인 측면서 해부한 소설이 등장하였다.일상적인 폭력을 가능케 했던 문제의 배후에는 분단 조건이 가로놓여 있었다. 전쟁과 분단은 합법적인 폭력집단인 군사 집단의 비대화 부채질했으며 거기에 과도한 정신적, 물질적 권한을 부여했다. 왜곡된 군사 문화의 만연과 비이성적인 권력남용은 현실사회를 황폐화시켰다. 분단 현실은 정권의 위기 상황 때마다 이용되었으며 비도덕적인 폭력적인 정권의 면죄부 구실을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1980년대의 분단소설은 민족현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고조와 함께 양질 면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이룩하였다.1980년대는 계급?계층적 사회인식이 심화?확산되는 시기였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은 노동자 계급의 시각에서 사회를 보을 쓰는 것을 앞서 나간 형태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박태일, 오태환, 정일근, 안도현 등에 의해 민중성과 서정성을 조화시키려는 노력들이 있었다. 이전에도 민중문학이 시도되긴 했으나 미흡하였고, 80년대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민중문학이 정착할 수 있었다.셋째, 문학의 운동화가 실현되었다. 문학의 운동화는 기존 서구 근대 부르주아사회가 정착시킨 시?소설?비평의 분류법을 백지화시키면서 전통적인 민족양식을 오늘의 민중문학 양식으로 재창조 계승 발전시켜 나가게 했다. 80년대는 정통성 없는 독재 정권에 대해 민주화를 요구하기 위해 민중의 역량을 결집하여 투쟁해 나아가는 역사로, 문학은 운동의 한 방편으로 민족의 역사를 올바로 세우는 데 복무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한 몸부림으로 인식할 수 있다.)이처럼 80년대 문학은 해체문학과 민중문학의 등장, 문학의 운동화 실현 등으로 살펴볼 수 있는데 이러한 문단의 전반적인 특징 역시 당시의 시대상황과 무관한 것이 아니며, 어쩌면 모순적인 당대 현실에 대한 반발로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3. 문학의 전반적인 특징(1) 해체문학의 전반적인 특징80년대는 80년도의 5?17과 87년의 6월 항쟁을 한 굽이로 하는 정치 사회적인 변동이 있었다. 이 변동은 우리 80년대 문학에 직접적이고도 강렬한 영향을 드리웠다. 우선 문학에서의 민주화 운동과 이의 발전인 사회 변혁수단으로서의 운동문학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 운동은 소시민이냐 노동자냐 아니면 집단이냐 와 같은 문학담당 주체 문제, 수기?르포 등과 같은 새로운 장르의 확산, 기법으로서의 리얼리즘 논쟁 등을 불러왔다.80년대 문학의 새로운 경향은 혼합과 잡종에 의한 극심한 장르해체 현상인 형식의 해체, 장르의 해체 같은 해체문학의 등장이었다. 이는 80년대 초반 젊은 시인들과 소설가들에 의하여 주도되었던 현상이다. 80년대란 새로운 변동사회 내지 역사적 현실에 대응하기 위한 이 해체문학 운동은 일단 지금 현재 반성기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해체문학은 거의 무질서할 정도로 자유로운 상태로 방치되었다. 이러한 삽화야말로 시작도 끝도 없이 전개도는 세상사는 이야기에 해당되는 것이며 이런 삽화의 자유로운 대립과 단절, 중첩과 반복 등은 우리의 삶, 그 자체의 입체적인 모습임을 의미했다. 따라서 주인공의 삶의 과정을 통해 주제를 읽어내려는 노력은 불가능해졌다. 전통적인 소설문법에 익숙한 독자들이 이 작품에서 당황하게 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 외에도 복거일의 , 정종명의 은 알레고리 기법)을 통한 현실해석이나 비판방법은 시대적 상황을 제 3자의 위치에서 삶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태도를 지닌다. 그렇기에 냉소를 머금고 현실의 왜곡을 암시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 이 방식은 현실해석의 날카로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제공하지만 작가가 직접 현실에 뛰어들지 못한다는 단점을 지닐 수도 있다.(2) 민중 문학의 전반적인 특징80년대는 그 벽두부터 천둥과 번개가 이 땅을 울리고 내리쳤고, 그렇지만 대다수 민중들의 끝없는 자기생존투쟁, 흑은 올곧은 세상에로의 전진을 위한 부문적 ?집단적 몸부림을 크게 깊게 보여 주어왔다. 사회의 각 현장에서, 더러는 고독한 창작의 작업실에서, 그리고 셀 수 없이 끓어오르고 타오르는 삶과 죽음의 변주곡 속에서, 이 땅의 민중들은 참 목숨 ?참 세상?참 나라로 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비록 자신은 으깨어지더라도 역사의 가는 길에 밑거름과 횃불이 되고자, 자신의 온몸을 북소리로 두드리었다.80년대에 역사의 합법칙적 발전이라는 이해 위에서 리얼리즘 창작방법론을 채택하여 전개된 민중문학(운동)은 피지배계급인 민중의 관점으로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분단 극복이라는 커다란 두 과제의 해결에 문학적 실천을 통해서 기여하고자 했던 공리를 가지고 있는 개념이다.방법적으로 그것은 전형성(전형적 상황과 전형적 인물의 창조)을 중요시하며 반영과 재현이라는 방식으로 민중의 삶과 투쟁과 해방을 형상화해내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그것만이 진보적인 문학으로는 유일한 방법으로은 1980년 5월 18일에 광주 일대에서 늦봄의 따스한 햇살을 받아 활짝 피었다가 5월 27일에 정치군부의 총칼에 의해 무참하게 잘린 한국민중운동의 꽃이다.1985년의 5월에는 광주항쟁과 관련된 두 사건이 있었다. 책의 압수와 출판인의 구속을 야기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 황석영 기록)의 출간과, 광주항쟁의 본격적 거론을 촉발했을 뿐 아니라 그 당시 미국의 태도가 무엇인지를 공개적으로 질문하게 만든 서울의 미국문화원 점거사건이 그것이다. 그 두 사건은 광주항쟁의 진실을 계속 숨기거나 왜곡한 5공에 일격을 가한 중대한 사건으로서, 그때를 전후해 우리의 소설도 광주항쟁을 서서히 다루기 시작했다. 이렇듯 경직된 삶을 만들어 놓은 국가 공권력에 대한 실체규명작업의 하나로 광주 항쟁를 형상화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다른 무엇보다 지금까지, 5월을 그린 여러 소설 중에서 홍희담의 중편 「깃발」만큼 화제의 중심을 차지했던 작품은 없다. 홍희담의 「깃발」은 광주항쟁의 현장에 참여한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광주항쟁의 성격과 의미를 재조명하고 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전망을 제시하였다. 이 작품은 노동자의 시각에 고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생활의 부재, 사건 전개의 도식성 등의 결함을 안았다. 그러나 다른 소설들에서 보여지는 피해자로서의 자기 인식에서 벗어나 역사 속에서 자기 발견을 위한 노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뚜렷한 성격을 드러냈다. 이것은 권력 이데올로기의 비도덕성에 초점을 두고 있기에 그 피해자로서의 비극성이 강조되었던 여타의 소설에서 한 걸음 나아가게 하는 요소였다.②분단체험 소설70년대가 농민?노동자?빈민 소재 소설의 성행을 낳았다면 80년대 전반기는 분명 분단과 이로 인한 각종 후유증을 증언하는 문학의 유행기 였다고 할 수 있다. 70년대의 노동자, 농민 소재 문학이 분단 현실이라는 상황을 수용하여 휴전선 이남의 현실에만 특수 확대경을 갖다 댄 것이라면 80년대의 분단 소재 문학은 우리 시대의 기본적인 갈등과 모순의 핵으에서부터 80년대에 걸쳐 비평활동을 하였으며 우리문학과 문학이론을 공부하여 평단에 진출한 이들은 튼튼한 이론을 바탕으로 문학작품을 깊이 있게 분석하는 특징을 보였다. 또한 이들 모두 문학에 대한 통시적인 안목을 보인 것이 특기할 사항이었다.4. 대표작품 분석(1) 시분석1) 민중시80년대는 흔히 민중시의 시대라 일컬어진다. 사실 이 시기에는 그 어느 시기보다 비판적 담론이 시대의 중심에 떠오르고 있었던 시기였다. 이에 따라 시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도 노동자시, 농민시 등 민중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민중시의 다양한 형식이 모색되었다. 1970년대 유행하기 시작한 민중시는 80년대에는 인간다운 삶에의 열망이 시로 표출되고 사회적 쟁점을 첨예하게 반영하여 80년대 시의 흐름을 주도하였다. 이러한 80년대 민중시를 이끌어 나간 시인들로는 김정환, 하종오, 박노해, 김남주, 곽재구 등이 있다.♣ 대표적 시인 ⇒ 박노해‘노동 해방’의 약자인 ‘노해’를 그의 필명으로 삼은 박노해 시인은 1958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출생하여 1983년 『시와 경제』에 ‘시다의 꿈’외 6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1988년에는 1987년 민주화 운동의 결과로 제 1회 노동문학상을 수상하였고, 1991년 사회주의 혁명을 목적으로 한 남한 사회주의노동자동맹의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안기부에 검거되어, ‘반국가단체 수괴’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구속되었으나, 1998년 8월 15일 정부수립 50주년 경축 대통령 특별사면을 석방되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산업 현장으로 뛰어들어 자신의 일상적인 노동 체험을 시적 언어로 형상화한 시인으로, 노동운동사상 ‘전태일’ 이후 노동자의 대표적 상징체이기도 하다.1980년대 노동문학, 혹은 노동자 문학의 활성화에 불을 당긴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며, ‘현장적 구체성’ , ‘체험의 진실성’, ‘최고 수준의 정치적 의식과 예술적 형상화 능력’ 등의 말로 칭송받았던 『노동의 새벽』의 표제시인 「노동의 새벽」을 살펴보자.전쟁 같은 밤일을
Ⅰ. 서론역사적으로 이상주의적인 경향과 현실적인 경향은 언제나 병존해왔다. 넒은 의미에서의 리얼리즘(realism)이란 현실과 예술의 관계를 규정하는 범주이고, 현실과 예술을 분리하여 보지 않기 때문에 후자 쪽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위대한 예술은 일정하게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볼 때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은 보편미학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는 삶 자체의 구체적인 형상들을 전형화하는 예술방법 혹은 창작방법으로서의 리얼리즘이다.앞으로 이 본고에서는 우리 문학에서 리얼리즘이 등장해 활발히 전개되었던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걸쳐 리얼리즘이 나타나게 된 배경과 전반적인 모습, 그리고 대표적인 작가들과 그 작품들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그 시기 등장한 카프(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와 리얼리즘의 모습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어보고자 한다.Ⅱ. 본론1. 리얼리즘의 형성 배경(1) 일본의 문화통치와 민족문학의 발전일제의 한반도 식민지정책의 양상을 이야기한다면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수탈, 그리고 문화 왜곡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적 과정 속에서 우리의 자생적 근대화는 억압되었다. 이러한 일제의 식민지정책이 가장 크게 변모된 계기는 민족적 거사인 3ㆍ1독립운동이었다. 이 운동을 계기로 일제는 이른바 무단통치 방식에서 문화통치로 그 방향을 바꾸게 된다. 일제는 이를 통해 1910년대부터 형성해 온 식민지 체제의 길 위에서 일련의 유화 정책을 실시하면서 민족운동의 분열과 개량화를 기도하였다. 그러나 문화통치가 그 본질에 있어서 그 이전의 무단통치와 다를 바 없다 하더라도, 한국 지식인의 활동과 그 한 부분으로서의 문학운동에 커다란 전기를 마련하였다.(2) 서구 문예사조의 유입문화통치를 바탕으로 문학의 발전을 꾀한 1920년대에는 일정한 근대사조가 단독으로 주류를 이룬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여러 개의 사조적인 것이 들어와서 혼류를 이루었다. 예를 들면 사실주의적인 것, 상징주의적인 것 동인1920년대의 한국문학에서 김동인 만큼 이질적인 요소의 복합성을 지닌 작가도 드물다. 당대에 쏠렸던 문예사조가 거의 그의 문학작품에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당시 한국의 근대문학 자체가 안고 있었던 문제와 이어지면서 동시에 그의 개인적인 성격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이러한 문학적인 배경 하에서도 작품의 양식과 방법도 여러 가지로 실험하여 그때마다 변화가 대단한 작가였다. 그러나 대체로 봐서 이 작가의 초기 작품을 근대 사실주의의 경향 하에 두는 것이 옳다고 본다.『약한 자의 슬픔』만 해도 우선 작품의 주제가 신여성으로서 주인공 엘리자베트가 속악한 사회 환경 때문에 희생을 당하고 불행해진 생애의 기록으로서, 일종의 현실 폭로의 소설이라고 볼 수밖에 없으며, 태반의 외계 장면들의 묘사법에 있어서 사실주의적인 사실의 수법을 본받고 있는 것이 특징적으로 눈에 띈다.「약한 자의 슬픔」1919년 2월『창조』 창간호에 발표되었고 애정의 갈등이 필경에는 계층의 대결과 비극으로까지 전개되는 이야기이다.「마음이 옅은 자여!」주인공 K는 자기 아내가 구식에, 무식하다는 이유로 한때 자식까지 팽개친 비정한 아버지이다. 그리하여 인생의 구렁텅이에 빠져 갖가지 비극을 겪다가 참다운 자아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다.「감자」생활환경 때문에 윤리적 파탄과 인생관의 변이를 가져온 주인공이 끝내 현실적 갈등의 희생물이 되고 마는 비극적 인간의 한 모습을 그렸다. 김동인 특유의 직선적이고 고압적인 문체를 통해 그 구체적 성격창조와 장면묘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목숨」계층간의 대결을 보여줌에 제재의 특이성을 더해 준다. 또한 소박하고 단순하기는 하나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하였다.「유서」1924년『영대』에 발표되었고, 바람난 아내와의 심각한 갈등을 형상화하였다. 그로인해 이혼 직전의 위기에까지 치닫게 되고, 그 위기를 가짜 유서 연극으로 해결을 보게 된다. 작가는 이를 보여줌에 회유화의 기법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부애를 되찾으려는 고뇌를 제조선민중의 최대의 대중운동이라 할 수 있는 3?1 운동은 그것이 비록 부르주아 민족운동이었다 할지라도 실제 운동과정에서 민중의 역량이 과시됨으로써 새로운 양상이 전개되었다. 사상적인 측면에서 민족주의 운동과 더불어 계급주의사상이 등장한 것도 이러한 민중역량을 체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계급주의 운동은 당시 가장 급진적인 개혁운동으로 받아들여져 3?1 운동 이후 매우 활발해졌다. 20년대 한국문학사에서 정치적 대응물로서의 이데올로기는 두 가지가 크게 떠올랐으니, 민족주의 문학론과 계급주의 문학론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좀더 강렬한 정치의식을 편 것이 프로문학론이었다.)(1) 모체1) 염군사프로문학은 운동의 형식으로 나타났음을 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조직론을 바탕에 깔지 않으면 운동의 개념은 성립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프로문학의 첫머리에 오는 것이 바로 염군사이다. 염군사는 1922년 9월에 송영, 이적효, 이호, 박세영, 김홍파 등이 주동하여 조직한 최초의 사회주의 문화단체이다. 이 단체는 ‘해방문화의 연구 및 운동을 목적으로 함’을 그 강령으로 삼고 기관지《염군》을 2호까지 간행하고자 했으나 일제의 검열에 의해 금지 당했기 때문에 그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는 없다.임화가 의 존재의미를 사회적 자각을 통한 문화 영역에 대한 인식이라고 규정한 것은 매우 타당하다. 그리고 이 규정은 카프의 조직을 에서부터 설명하려고 했던 연구 성과에 이미 회의를 느끼고 있음을 말해 주는 중대한 요건이 된다. 그러나 임화가 이 중대한 요건을 자각했다 하더라도 그는 의 실체를 드러내 줄 수 있는 아무런 객관적인 자료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의 구성적 요건이나 그 실패를 더 이상 논의할 수 없었던 것이다.)2) 파스큘라(PASKYULA)는 1923년에 박영희, 안석영, 김형원, 이익상, 김팔봉, 김복진, 연학년 등의 이름의 머리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염군사가 사회적으로 이름나지 않은 청년들이라면 파스큘라는 당시로서는 사회적으로 이름난 문사들로 조직된 것이다. 따라서아 문예운동단체이자 한국 최초의 전국적인 문학예술가 조직이다.1922년 9월 이호, 이적효, 김두수, 최승일, 박용대, 김영팔, 송영, 김홍파 등이 조직한 와 1923년 박영희, 안석영, 김형원, 이익상, 김기진, 김복진, 연학년 등이 조직한 가 결합하여 1925년 8월 결성되었다.창립 당시 구성원은 박영희, 김기진, 이호, 김영팔, 이익상, 박용대, 이적효, 이상화, 김은, 김복진, 안석영, 송영, 최승일, 심대섭, 조명희, 이기영, 박팔양, 김양 등이었다. 이들의 초기 활동을 흔히 신경향파 문학 혹은 자연발생적 프로문학으로 부른다. 이 시기의 주요 논객으로는 김기진과 박영희를 들 수 있고, 주요 작가로는 최서해, 이기영, 이익상, 주요섭, 이상화 등을 들 수 있다.라는 명칭이 일반화된 것은 1927년 9월 이른바 방향전환 이후부터이고, 여러 곡절을 겪고 해체된 것은 1935년 5월 21일이다.) 그러나 1925년 8월의 와 의 통합에서부터 1926년 2월《문예운동》의 간행에 이르기까지, 계급문단의 조직적인 통합과 그 확대과정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자료는 없다. 다만《문예운동》의 간행을 통해 계급문단의 가시적인 출현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2) 의 조직범위와 이념과 노선첫째, 의 문단적 위치는 22명의 동맹원들에 의해 그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최남선과 이광수를 위시하여《창조》,《폐허》,《금성》의 동인들이 완전히 외면해버린 이 조직에는 , 의 구성원과《개벽》을 통해 등단한 경향적 문인들이 가담하고 있다. 이들 동맹원의 성향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분류가 가능하지만, 당시 사회운동의 조류를 놓고 볼 때, 아나키스트 계열(권구현 등), 민족주의 계열(김동환 등), 공산주의 계열(박영희, 김복진 등)로 나누어 볼 수 있다.둘째, 의 조직은 무산계급 문화의 수립을 그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이것은 이미 나 에서도 거듭 천명한 바 있는 계급문학 운동의 지표이지만, 그 실천의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제대로 검토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셋째, 의 조직 핵심세력이 되 강화로 말미암아 사상탄압이 강화되어 일본의 NAPF 탄압을 비롯해, 식민지 한국에서도 사상탄압이 강화된다. 카프 제 1 차 검거(1931. 2), 카프 제 2 차 검거 (1934. 2)가 실시된 것이다.1931년 8월부터 10월까지 한위건, 양명 등에 의한 조선공산당 공산주의자협의회 사건과 연루되어『무산자』의 국내배포 및 영화「지하촌」건으로 인해 임화, 김남천, 안막, 권한 등 무산자파와 그 외 박영희 등 11명의 동맹원이 체포되어 고경흠 등과 카프동맹원으로는 김남천 만이 기소되고 나머지는 불기소 처분을 받고 풀려나오게 된다. 이 사건은 특히 공산당 재건그룹과 무산자파가 연계되어 선전선동의 임무를 카프가 수행했다는 데 특색이 있었다.)반면 1933년 말부터 1935년까지 1년 넘게 진행된 ‘신건설사 사건’은 ‘신건설사’ 전주 지방공연 중 모종의 선전삐라가 발견되어 검거가 시작되면서 34년 5월부터 카프간부들의 검거 사건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이기영, 한설야, 윤기정 등 4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항소심에서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난다.)6) 해산과정이러한 카프 1, 2차 검거가 실시되자 카프 해산논의가 자체 내에서 나오기 시작하여 이른바 전향논쟁이 벌어진다. 박영희의 유명한 전향선언(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 자신이다)을 비롯해 백철, 신유인 등의 전향선언이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1935년 5월 21일 김효식이 경기도 경찰부에 해산계를 제출함으로써 카프는 종말에 이른 것이다.(4) 주요작가와 작품1) 임화임화는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생각과 사상이 일제 강점기의 문학청년들에게 만연됐을 때,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들을 끊임없이 보여주었다. 그는 문학론과 시 창작을 통하여, 당시의 민족 현실과 민족의 삶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했다. 특히 1929년 ‘단편 서사시’라는 시 형식을 통하여, 우리 노동자?농민들의 삶을 형상화함으로써, 서정시에서 어떻게 리얼리즘이 실현될 수 있나 하는 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우
Ⅰ. 서론1910년대 몇몇 개인(최남선, 이광수 같은)의 목소리는 1920년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마치 아무 것도 없던 곳에 이식되어진 것처럼 보이는 국적불명의 각종 문예사조들이 수입되었고 우리 식으로 되어 버린 혼란스런 10년의 기간이었다. 그 혼효(混淆)의 시기에도 우리 문학사의 기본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시기였다. 본고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서구 문예사조)의 도입과 관련하여 1920년대 문학사를 개관하는 것이다. 또한 거기에서 서구의 문예사조와 우리의 시대적 배경에서 이루어진 공과(功過)의 흔적들을 더듬을 것이다.Ⅱ. 본론1. 시대적 배경이 시기는 일제의 수탈로 인해 대다수 민족은 기아상태에 빠졌다. 3?1운동의 실패로 인한 실망과 좌절로 퇴폐적?세기말적 사상이 풍미해졌으며, 때맞추어 사회주의 사상이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현상들은 국민들이 관심을 개인적 삶으로부터 식민지 현실로 옮겨가게 했으며, 나아가 한 개인의 삶에 미치는 정치?사회적인 환경에까지 관심은 기울이게 되었다. 한편, 사회에 대한 강한 비판과 반항 사상을 보이기도 했는데 이러한 경향이 문단의 일부에도 파급되어 문학적 태도로 등장하게 되었다.3?1운동의 실패를 계기로 응집되어 분출하기 시작한 민족적 역량과 저항운동은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광범위하고도 깊이 있는 것이었다. 특히 문화적 저항운동은 일정한 민족역량의 축적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조선』『동아』 두 일간지의 발행과 『개벽』등의 잡지 발간은 1920년대 우리 문학의 전개와 발전에 직접적인 기여를 하게 되었다.3?1운동 이후 문학은 이전의 이광수류의 계몽주의를 거부하고 문학엔 문학자체의 목적이 있다는 순문학 운동으로 전환하면서 동인지의 속출과 작가층의 확대를 가져왔다. 더더욱 통치방법을 전환한 일제의 문화통치가 시작되면서 당대의 작가들은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상받으려고 했다. 부분적으로 언론 출판의 자유가 허용됨으로써 강한 현실성을 얻게 되어 우후죽순처럼 잡지와 10월 창간되어 20년대에만 통권 20호를 간행한 문예지로서 20년대 중반 우리 문학의 변화를 설명해줄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동인지 시대의 폐막과 신경향파의 탄생이라는 시기상의 위치도 그러하지만, 대중 지향성과 주목받지 못한 작품을 접할 수 있는 잡지라는 점에서도 당대 문학의 지형적 변화를 보여주는데 부족함이 없다. 『조선문단』은 초반 동인지 문학의 폐쇄성과 자족성을 거부하고 대중 속에서 문학의 정체성을 찾고자 시도했다. 그 결과 대중 문예잡지의 선언과 흥미 중심적 편집을 감행하게 했고, 더불어 신진 작가들을 대거 등용시켜 자신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작품들도 경험과 생존의 문제에 천착하거나 내면의 은밀한 욕망을 탐색함으로써 보편적인 가치를 부각시켰다. 이러한 매체의 특성과 작품의 경향은 세계에 대한 객관적 인식, 현실 중심의 태도라는 틀에서 행보를 같이 하였다.) 김동인은 『조선 문단』의 공을 세 가지로 나누어 이야기한 바 있다.) 첫째는 조선의 문학을 안정적 궤도에 올려놓은 것이고, 둘째는 창조파, 폐허파, 백조파 등의 분파주의를 폐지한 것, 마지막으로 신진 문인의 산출과 시조부흥 운동이 그것이다.근대 문학의 완미한 수립 외에, 1920년대의 가장 중요한 문학사적 사실은 마땅히 좌파 문학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다. 개화기 이래 1910년대까지의 문학이 그 중점을 광의의 ‘계몽’에 두었고, 20년대 초기의 문학이 낭만적인 예술관의 실천으로 특화된 반면, 신경향파에서 KAPF(Korea Artista Proletaria Federatio)로 이어지는 좌파 문학 운동은 ‘직접적인 정치성’으로 해서 새로운 것으로 부각된다. ‘민족’이라는 추상적 단일성 대신에 ‘계급’이라는 구체적인 이분법을 기초로 해서 외적 대립과 내적 분화의 방식으로 전개된 의식적인 계급문학 운동이었다는 점이 이전의 문학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좌파 문학 고유의 특징이다.)신경향파 문학은 역사적으로 보아 1920년대 중반의 짧은 시기를 점하고 있다. 비평의 경우 1923년 박종화의 평문「문국민문학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여기서 논의의 대상으로 삼을 것은 외래적인 서구의 문예사조로서 도입되어 뿌려진 20년대 초의 낭만주의와 사실주의이다.홍사용(洪思容)?월탄 박종화(朴鍾和)?이상화(李相和) 등의 『백조』(1922)로 대표되는 낭만주의)는 시의 경우, 전대의 시에 비하여 대상의 감각적인 해석과 시어의 확충, 시의 장형화, 감정의 과도한 표출과 현실도피적인 경향을 주도하였고, 데카당스(dcadence)와 결합하는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의 시에 있어서 대상의 감각적인 해석은 앞선 시기의 시에 비하여 매우 괄목할만한 발전이었다. 곧 애국계몽기의 시들이 짙게 간직한 이념 일변의 성격을 염두에 둘 때 이 같은 사실은 획기적이라고 하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낭만주의적인 성향의 분방한 자아의식의 토로는 때로 지나친 감정의 분출로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기도 하고, 현실에서 벗어나 상상의 세계와 몽환의 세계에 이끌리기도 하며, 설익은 관념으로 죽음을 열광적으로 찬미하고 현실을 저주하기에 이른다. 시인이 현실 속에 내던져져 있으며, 그 압도적 현실 속에 자신이 아무런 능력도 발휘할 수 없다는 생각은 역설적으로 현실을 경멸하고 또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표박이나 유랑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리하여 박종화의 시 「밀실로 돌아가다」, 김억의 「漂迫」「유랑의 노래」처럼 자폐적(自閉的)이고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성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더 한가지 지적할 수 있는 점은 감정의 절제 없는 토로로 나타난 미적 거리 조정의 실패에 관한 사실이다. 이 거리 조정의 실패는 당시의 낭만시가 감정의 극화에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의 반영이다. 말하자면, 감정을 제어 내지 절제하여 적절한 극화를 이룩하지 못하고 직접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은 단지 낭만시가 아직도 나름대로 시적 견고성을 지닐 수 없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시의 이 약점은 1930년대의 정지용?김기림을 만나서야 작품과 이론 양면에서 극복되고 있다.)다른 하나는 식민지적 현실과 관련되어 나타난 성의 틀을 마련했다. 기법상의 발전은 단편소설의 확립으로까지 이어져 김동인, 현진건, 나도향 같은 개성의 자각과 시대의 괴로움을 포착하는 단편소설이 확립되었다.사실주의의 과(過)란 첫째 문학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성질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개인주의적 소설군의 경우 강한 유미주의적 성향으로 현실, 민중과는 유리되는 성향을 가지기 쉽게 되었다. 낭만주의 작품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사실주의 성향의 작품 속에서도 개인의 침잠(沈潛)은 쉽게 있었다. 괴로운 당대의 현실을 직시하되 소설의 문체나 미(美)로 그것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또한 사회주의적 소설군의 경우, 작품성 혹은 내용보다는 목적성 짙은 정치적 발언으로 가득한 작품이 대우 받았고, 형식적인 제약을 가지게 되어, 계몽주의 문학이 그렇게 외쳐대던 교훈성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면이 있었다.4. 작가와 작품1) 시 분석《태서문예신보》, 《학지광》등에서 비롯 《창조》, 《폐허》를 거치는 동안 1920년대 전후 한국시의 형성과정은 세 가닥으로 나타난다. 그 하나는 김억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상징시의 가닥이며, 둘째 황석우로 대표되는 관념적 환각성의 가닥이며, 셋째는 주요한으로 대표되는 일본적 서정성의 가닥이다. 이 세 가닥이 당시 시단의 주류를 형성한 것으로 일단 볼 수가 있다.)베를렌느의 1920년대 초반의 한국 근대시의 형성기에 미친 영향이 매우 컸던 사실은 그 발상법이나 이미지 및 시어구사에 있어서 이와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모방이나 표절의 의미로서 전체 흐름의 일치를 두고 한 말은 아니다. 그 부분적인 일치로 사상이나 정조의 흐름과 같은 것에서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우선 1925년 8월호 《조선문학》에 발표된 와 김억의 , 박종화의 차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가을날바이올린의느린 鳴咽의單調롭은설음 때문에내 맘은 압하라.우는 鍾소리에숨은 막키며낫빗이 變하야지내간 옛날이다시금 생각나서아아 나는 우노라.설어라 나의 靈은모진 마람결에흐터저 떠도는여긔에 저긔에갈길도 반되지 못했던 시대상의 반영이기도 하고, 그 수용과정에서 실패를 자초했던 영향의 한계성이 되기도 한다.)2) 소설 분석횡보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5장, 9, 10장은 1인칭 주인공시점을 6~8장은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작품의 구성면에서 특이한 모습을 볼 수 있다.6~8장에 대해서 주목을 해보면 전지적 시점에 입각하여 김창억이 미치게 된 내력을 장황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김윤식 선생은 6~8장은 필요 없는 즉, ‘사족’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왜 6~8장을 전지적 작가시점을 사용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아무런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는 심리적인 현상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작가는 5장에서 자기 감정의 절정을 P에게 고백한 만큼 더 이상 나갈 곳이 없었던 것이라고 파악한다. 즉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작가가 작품이라고 쓴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고, 작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기 위해 글 한편을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나와 김창억이라는 인물의 동일시라는 측면을 본다면 김창억은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은 김창억처럼 하지 못함을 한탄하고 부끄러워하는 것을 보아 자기가 바라는 자신의 모습을 김창억에 빌러 표현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전지적 작가 시점에 대한 ‘사족’이라는 견해는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다.작품내용을 통해서 보면 무기력한 자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나’는 중학 시절 청개구리 해부실험을 회상하며 청개구리의 심장과 폐를 해부해 내는 것은 육체적으로 파괴된 청개구리의 모습을 자신의 현재 모습으로 생각하고 괴로워한다. 그럴 때마다 책상 서랍 속에 들어 있는 면도칼은 나로 하여금 자살의 충동을 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자살할 용기조차 없는 무기력한 인간이다. ‘나’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어한다. 그러기에 면도칼을 버리고 자살 충동에서 떨쳐 내려고 하지만 계속되어 지는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