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무용가 김백봉활동분야 : 무용출생지 : 평양주요수상 : 서울시 문화상(1953), 보관문화훈장(1981),주요작품 : 《만다라》 《우리 마을의 이야기》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의 수제자이다. 1927년 평양에서 트럭운전사의 딸로 태어났다. 평양의 명윤여학교에 다니던 시절, 당시 거리에 붙은 최승희 무용공연 포스터를 보고 무용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13세 때 아버지와 함께 진남포의 최승희 무용공연장을 찾아가 제자가 되고 싶다고 청하여 승낙을 받고, 그해 6월 18일 최승희를 찾아 일본 도쿄[東京]로 갔다.1943년 김백봉은 최승희무용단 단원이 되어 일본?만주?중국?동남아시아 각국을 순회 공연하면서 최승희의 춤맥을 잇게 되었다. 1946년 평양에 있던 최승희무용연구소 부소장 겸 상임안무가로 활동하였고 1949년에는 최승희무용단 제1무용수로 활약하였는데, 특히 《화관무》와 《부채춤》은 스승인 최승희에게서 전수받은 것이다.최승희의 남편인 안막(안필승)과 김백봉의 남편인 안제승은 형제간이었는데, 이들 최승희?안막, 김백봉?안제승 부부는 1946년 6월 월북하였다가 김백봉 부부는 탈출하여 우여곡절 끝에 서울에 돌아왔다. 그뒤 김백봉은 박기홍에게서 승무를, 이동안에게서 태평무와 승무를 전수받았다.1953년 서울에 김백봉무용연구소를 설립하였고 1965~1992년 경희대학교 무용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1981~1985년, 1987년 예술원 회원이 되었으며, 1992년 경희대학교 무용과 교수를 정년퇴임한 뒤 명예교수가 되었다. 1995년 김백봉춤보존회가 결성되었고, 1996년에는 예악당에서 최승희의 춤만을 재현하는 대공연을 열어, 최승희가 추었던 《초립동》 《격(格)》 《연인도》 《보살춤》 《낙천(樂天)》 등을 재조명하기도 하였다.1953년 서울시 문화상, 캄보디아 문화훈장, 대한민국예술원상, 1981년 보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하였고, 1988년 서울올림픽 식전행사 공로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1999년에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에서 뽑은 20세기를 빛낸 예술인 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화관무》를 비롯해 《무당춤》 《청명심수》 등이 유명하며, 특히 일명 《보살춤》이라고도 불리는 그의 《만다라》는 최승희가 추었던 보살춤의 재연이었다. 주요작품에 무용 《종이여 울려라》 《종의 정》 《심정》 등과 무당춤 《광란의 제단》 등이 있다.♧ 남과 북으로 갈린 스승과 제자의 춤춤은 인간의 육체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다. 또 음악과 미술. 사람의 몸이 한데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다. 시인 예이츠가 발레리나의 춤을 보고 감동 어린 시를 지었던 것처럼 무용은 인간이 구현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예술 장르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무용은 전근대 시대까지만 해도 기생들의 전유물이었다. 기방에서 술자리와 함께 반드시 동반되던 것이 무용이었다. 물론 궁중 제례나 연회에도 무용이 쓰이긴 했지만 광범위한 무용 문화는 기방에서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기에 전근대인들의 무용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높지 못했다. 연회자리의 여흥을 돋우기 위한 것으로만 인식했던 것이다. 이런 무용에 대한 관점을 일소하고 한국적인 무용 문화를 만들어낸 두 여인이 있다.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현재 지극히 당연히한국 전통무용으로 보아오는 무용들도 없었을 것이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각자의 공간에서 한국 전통무용문화를 개척한 스승과 제자. 최승희와 김백봉♧♧아름다운 코리안 댄서 - 최승희최승희는 방에서 이루어지던 한국의 전근대 무용문화를 무대로 올린 사림이다.그녀가 만들어낸 무용은 우리나라 무용의 골간이 되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현재 남과 북에서 한국전통무용이라고 불리워지는 춤들은 없었을 것이다.최승희는 일제 치하 조선의 문화가 고사하고 있을 때에도 당당히 코리안 댄서라는 이름을 달고 해외에서 한국무용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렸다.그녀는 근대 한국무용의 창시자일뿐만 아니라 전파자이기도 했다. 일제시대 한국민들은 최승희와 손기정의 이름을 가슴에 품고 그들을 흠모했다고 한다. 식민지 치하의 한국민들에게 최승희의 존재는 하나의 희망과도 같았다.최승희는 그녀의 인생과 무용 편력이 알려주듯이 더 많은 사람과 함께 호흡하며 민중과 가장 가까이 있는 무용을 지향했다.처음 일본의 무용가 이시이 바쿠밑에서 무용을 수업하며 1급 무용수로서 이름을 날리던 최승희는 이시이의 무용이 점점 민중과 멀어지는 귀족지향적인 성향을 보이자 과감히 그를 결별하고 나와 새로운 무용의 길을 모색한다.그런 와중에 그녀는 한국의 전통무용을 배우고 신무용과 한국 전통무용의 접목을 시도한다. 그녀는 많은 아름다움 한국무용을 개발 안무하였으며 직접 무용수로서 한국무용의 아름다움을 구현하였다.세계인들은 코리안 댄서 최승희에 열광하였고 그녀의 명성과 더불어 한국무용은 세계무대에 당당히 발을 내딛었다. 최승희는 결국 그녀가 지향하던 민중중심의 무용 문화의 구현을 위해 이념적 정치적으로 혼란하던 해방정국에서 사회주의자인 남편 안막을 따라 북한을 택한다. 그리고 그녀는 1969년 정치적으로 숙청당하기 전까지 북한에서 한국무용의 전통을 수립하였다.♧♧스승의 무용을 이어받아 - 김백봉세계적인 무용수며 아름다운 한국 근대무용의 창시자였던 최승희가 북한으로 가버린 후 남한은 다시금 한국 무용의 불모지가 된다. 최승희를 잃어버린 남한의 한국무용은 이정표가 없이 부유하고 있었다. 그러한 때에 최승희의 제1수제자이면서 동서이기도 한 김백봉은 과감히 남편과 함께 월남하여 한국무용의 기틀을 다진다. 애초 김백봉은 최승희와 함께 월북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1952년 전쟁의 와중에 몇상자의 무용복만 챙겨들고 남편과 함께 다시 남한으로 내려온다. 그녀의 월남은 남한의 전통한국무용으로서는 가뭄의 단비와 같은 일이었다. 김백봉은 남한에 스승 최승희의 무용을 전수하고 또 이에 덧붙혀 자신이 직접 무용들을 안무하기도 하였다.최승희가 개발한 하나의 부채를 들고 독무하던 부채춤을 양손에 부채를 들게 하고 화려한 군무로 발전시킨 사람이 김백봉이다. 우리가 현재 부채춤 하면 떠올리는 아름다운 대형과 호화로운 무용춤사위는 김백봉의 창작물이다. 또 화관무로 알려진 장삼을 손에 들고 화려하게 펼쳐지는 군무 또한 김백봉이 개발 창작한 것이다. 그녀가 없었다면 남한사회에서 한국 전통무용은 경제개발의 논리 속에서 그대로 잊혀졌을지도 모를 일이다.몇 년전 월북했다는 이유로 남한사회에서는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최승희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시작되면서 김백봉은 그녀의 존경하는 스승의 춤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 노령의 나이에도 혼신의 힘을 다하여 스승의 춤을 재현하며 자신의 무대를 스승에게 바친다는 김백봉은 최승희의 훌륭한 수제자인 동시에 동반자로서의 위치에 올라있었다.남과 북으로 갈려서 각자가 속한 공간 속에서 한국 전통무용의 맥을 잇고 이를 더욱 아름답고 풍성하게 만들었던 이 스승과 제자는 우리 전통문화의 보배와 같은 존재이다.♧♧♧그녀의 삶과 가족무용가 김백봉의 삶과 예술은 마치 하나의 잘 연출된 작품처럼 완벽한 데가 있다. 그는 이 시대를 살아온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갖가지 시련을 겪었지만 그러한 시련들은 마치 그의 예술가의 삶을 완성하기 위한 조건인 듯, 그의 삶과 예술은 하나의 행복한 사슬로 엮어져 있다. 그는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때 어머니는 냉골에서 그를 낳았을 정도로 그의 집은 형편이 좋지 않았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신문배달, 은행소사, 평양일곡회사의 사장, 운전기사, 염료개발 등으로 살림을 일군 분으로 그의 일본 유학비며 첫 발표회비용을 마련해 줬으며 딸을 위해서 항상 재정적인 뒷받침을 해줬다. 이런 도움은 월남 후 그가 무용연구소를 낼 때나 발표회를 마련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는 그의 아버지, 그리고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 온가족이 "나를 위해 희생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아버지와 함께 피난길을 떠나면서 어머니와 동생들을 남겨두고 떠나 평생 이산가족으로 살게 된 것은 뭐라 말할 수 없는 한이라는 것이다. 딸을 위해 더구나 무용을 시키기 위해 이렇게 찬동하고 도와준다는 것은 당시의 시대적인 통념으로는 어려운 것이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딸과 그 스승의 일이라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는 온 가족의 도움 속에서 유년기의 꿈을 키웠고 그 꿈을 현실로 이뤄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의 남편은 “버젓이 동경 유학까지 한 인텔리가 자신의 일을 버리고 평생 나만을 위해 살았고 나 때문에 빛도 못보고 갔다”고 그가 한스러워 할만큼 그의 무대를 위한 연출가이며 대본 구성작가였고그의 예술의 찬미자이며 동반자이고 없어서는 안될 후원자였다. 그는 무용학자로서 무용이론의 정립과 우리의 신무용사를 정리하는 업적을 남겼지만 아내인 그로서는 미안한 마음이 많은 모양이다. 자식농사는 마음대로 안된다는 옛말이 있지만 이말도 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바쁜 엄마 일하는 엄마로 항상 나돌아 다니는 속에서도 그의 자녀들은 ‘착하고 탈없이 컸다’고 그는 고마워한다. 아들 안병철씨는 한의사로 딸 병주씨와 병헌씨는 모두 무용의 이론과 실기로 대학강단에서 제몫을 하고 있다.
목 차1. 내가 이 사람을 선택하게 된 동기? .............21. 구 본 창 (具 本 昌) 이라는 사람은? .............22. 구본창의 작품세계 ..22-1)) 구본창의 초기사진3. 작품특징 .....34.다양한 시각에서 본 사진작가 구본창 ..........41. 내가 구본창이라는 사람을 조사하면서 느낀 점................7* 참고문헌1. 내가 이 사람을 선택하게 된 동기?어떤 사진작가를 탐구해 볼까 하다가 외국인 보단 한국 사람을 하는 게 더 날거라는 생각에 한국 사람들 중에 뽑기로 했다. 일단 자료가 많은 사람들을 찾기 위해 학교 학술정보관에 한사람씩 이름을 다 검색해 봤는데 그다지 많은 자료들이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한권이라도 책이 있는 사람이 몇 안 되었다. 그중에 나는 구본창 이라는 사진작가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특이한 이름과 그의 활동에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1. 구 본 창 (具 本 昌) 이라는 사람은?그림 구본창구본창은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상경대학을 졸업(1975)하고 함부르크 국립 조형미술학교에서 사진 디자인을 전공(1985, 디플롬 디자인 취득)하였다. 서울·도쿄·함부르크 등지에서 9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COLOR 2인전(1982, 함부르크 시립미술관 초대) 일본·미국에서 개최된 세계 보도사진가 100인 초대전(1985, 86) 미국 로체스터 대학 초청 2인전(1990) 11월전-한국사진의 수평전(1991, 경향의 세례를 받았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1980년대 중반, 유학에서 돌아온 구본창은 사진 매체를 통해 자신의 극히 사적이고 내면적인 의식세계를 절제되고 섬세한 터치로 표현한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당시 한국 사진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었다. 그리고 그의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던 꿈과 환상, 고독과 공허감, 초현실적인 일상의 경험에서 얻은 감정과 에너지가 다발이 되어 하나씩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국현대사진의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2-1))구본창의 초기사진진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이들에게는, 구본창 하면, 미싱으로 박아 이은 미감광 인화지 위에 형상화된 인체를 정착시킨 연작 〈태초에(In The Beginning)〉(1991-1998)와, 유제를 바른 두꺼운 한지 위에 인화된 나비와 곤충의 이미지들을 마치 작은 나무상자 안의 표본처럼 가느다란 금속 핀으로 꽂아서 고정시켜 놓거나, 새·사슴·거북이 같은 작은 생명체들을 뢴트겐 사진처럼 만들어 합성하여 푸른 모노크롬 색조의 포토그램 이미지로 구성한 〈굿바이 파라다이스(Good-bye Paradise)〉(1993) 등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며, 사실상 이러한 작품들이 그림 「굿바이 파라다이스」그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하지만 이번에 선보이는 사진문고에서는 구본창의 잘 알려진 최근 작품들보다는 독일에서 사진 공부를 하면서 찍었던 컬러·흑백 스트레이트 사진 20여점이 책 머리에 실려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작품들은 대상의 선과 면, 형태 등의 조형적 요소로 구성된 간결하면서도 역동적인 프레임 형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생략을 통해서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의 독특한 스타일이 이 무렵의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산지미냐노에서 찍은 두 할머니의 사진(p.31)인데, 그의 사진 중에서 드물게도 스트레이트 기법으로 인물의 정면을 포착한 이 사진은 마치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을 보고 간의 독백' '긴 오후의 미행' '숨' '태초에' '굿바이 파라다이스' '화이트'로 이어지는 구본창의 일련의 작품 흐름에는,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과 사유가 미니멀리즘의 형식과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방식으로 절묘하게 포착되어 있다. 이러한 일련의 작품들에 대해 "그가 만들어내는 세계는 허구처럼 보이지만, 그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상상력이나 감성, 갖가지 상념이야말로 어떤 현실보다 리얼한, 살아 있는 것이다"라고 표현한 김승곤의 말은, 구본창의 사진세계를 단적으로 암시하고 있다.?기존 이미지 탈피그림 「In the beginning」작품 제작 시 관심이 있었던 것은 눈에 익숙했던 대상물을 클로즈업하거나, 다른 상황에 던져 보여주어 기존 이미지를 탈피하도록 유도하고, 그 대상물의 새로운 의미를 느낄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틀에 박힌 시각에서 벗어나는 것, 이를 통해 그들은 마치 무작위적이며 권태로운 듯 나열된 것들이며 대체로 뒤편에서 소외당한 것들, 또는 사라져버림 운명의 것들이다. 이러한 대상물은 당시 나의 심경을 대변해 주며 또한 이 시대에 잊혀질 수 없는 우리의 삶이 일부라 생각된다.사진은 대부분 흑백필름 코닥 Trix400으로 촬영되었으며, 컬러로 촬영된 것은 편집을 위해 흑백으로 처리하였다. 카메라는 의도적으로 소형 자동카메라를 사용하였으며, 이는 인물이나 대상물이 카메라를 의식하기 이전에 순간적으로 포착하기 위한 것이며, 우연히 마주치는 상황에 가장 신속히 반응하기 위한 것이다.한 장이 아닌 여러 장의 사진을 한 페이지에서 보여주는 것은 한 장의 사진이 가질 수 없는 시각적인 이미지 상호간의 연상작용을 의도하려는 것이다.4.다양한 시각에서 본 사진작가 구본창?사진작가로서 구본창구본창의 본업은 사진작가이며, 그의 주가를 높였던 것도 사진이다. 예민한 감성과 뛰어난 감각 그리고 품격 있는 문화적 소양은 그가 이 땅에 구본창이라는 이름을 당당히 상표화 시켰던 토대이며 그것은 사진을 통해서 발현되었다. 그의 출현은 정말 발휘했기 때문이다.구본창이 사진계의 스타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는 그의 "매어"를 꼽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관대했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았다. 천성에서 오는 그런 매너를 두고 "영원한 예스맨"으로 말해지거나 혹은 경영학도다운 "관리의 귀재"라는 말도 떠돌았다. 그러나 그의 매너는 당시 보스 중심의 당파성과 사협중심의 아마추어리즘에 찌들었던 주류 및 비주류 사진가 모두에게 신선한 모습이었다. 만약 그가 뛰어난 예술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모난 성격을 가졌다면 어찌됐을까. 답은 간명하다. 그는 결코 사진계의 스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중도적, 온건적, 어떤 면에서는 회색적인 성향이 모든 이들이 그에게 거부감을 갖지 않은 스타로 자리할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 물론 작가로서 그러한 성향이 문제점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독일에서 귀국한 후 사진 계 연고가 없어 자리 잡는데 고전을 했고 그 때문에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여러 단체의 "얼굴마담"역을 했던 것도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한국사진의 발전을 위한 정말 악역 아닌 악역이었다는 생각을 한다.구본창의 뛰어난 사진적 능력에다 온건한 매너와 중도적 성향의 성격은 곧 한국사진의 중추적 인물, 새로운 사진의 주도적 인물로 자리 잡게 했다. 그는 초기에 아주 감각적인 사진을 선보였고(열두 번의 한숨, 장막, 일분간의 독백, 긴 오후의 미행), 곧 이어서 형식실험과 혼합매체기법을 적극적으로 구사하기 시작했다.(생각의 바다, 굿바이 파라다이스). 그의 일련의 작업은 미학적, 예술적 완성도를 논하기에 앞서 그 동안 철저히 스트레이트 사진에 의존했던 한국사진의 고루하고 단조로운 형식적 내재율을 파괴하는 기폭제가 되기에 충분했다.물론 그의 자유분방하고 다양한 사진적 형식을 부정하거나, 표현의 순수성과 창조성에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당시에는 그가 한국사진을 망치고 있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되돌아보면 그의 작업이 결론적으로 맞춰 진행되고 있는 것이 전적으로 그의 공헌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진교육이 여전히 권위적이고 선생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가 지난 10여 년 동안 교육자로서 보여준 눈높이 교육은 분명 평가 받을만하다고 본다.90년대 초반 그가 특히 젊은 사진학도들에게 크게 어필했던 것도 단순히 그의 작품이 신선하고 현란해서가 아니었다. 당시 시간강사였지만 그가 학생들의 입장에서 사고하고 이야기해했던 교육자였기 때문에 시너지 작용을 한 것이다. 자신이 지도하는 학생들일지라도 함부로 말하지 않았던 그는 자신의 시각보다 학생들의 시각에서 사진을 설명했던 교육자였기 때문이다. 팬을 가진 스타 사진가가 되었던 것도 단순히 작품 때문은 아니다. 그의 교양 있는 매너와 학생들의 눈높이로 다가가는 교수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에게 교육받은 학생들이 전적으로 그를 따랐던 것도 그의 수평적 교육태도와 학생들의 창의성 발견에 있고, 나아가 학생들 개개인에 맞게 이끌어주는 자율적이고 개방적인 교수법에다 그러면서도 빈틈없이 체크하고 꼼꼼하게 지적하는 무결함 때문이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80년대의 국제화 물결은 90년대에 들면서 맹렬한 기세로 전국을 감쌌다. 이 땅에 사진적 백그라운드가 있는 작가이건, 전혀 없는 작가이건 간에 , 구본창을 찾았으며 그는 그들에게 일할 터전을 주거나 작가로 서는데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다. 눈에 띄지 않게, 서로 마음을 주고받은 상황이었기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사진 계에 한때 "구본창 계열"이 이야기될 정도로 그의 도움으로 작가로서 혹은 상업사진가로서 입지를 구축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전시기획자로서 구본창최근 전시획자로서 구본창의 역할은 눈부시다. 첨병으로서 한국사진을 국제화하는데 앞장서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국제관계자들과 폭넓은 교류를 통해서 전시를 꾸미고 우리 사진가들을 추천하는 일에 열심이다.부정적인 시각에서 보면 그의 그러한 행동이 작가인진, 큐레이터인지 모호함을 던져주고 잇지만 뒤집어 보면 국제화에 대응하는 인재가여했다.
마츠 에크(Mats Ek)스웨덴 출생, 1962년 Donya Feuer 무용전공, 1965년 Mariebergs College 연극 전공, 1966년 스톡홀롬 Marionette Theatre, The Roayl Dramatic Theatre에서 예술감독 역임, 1973년 쿨베리 무용단의 무용수로 활동, 1976년 쿨베리 무용단의 안무가로 활동, 1985년 쿨베리 발레단의 예술감독 역임, 1993년부터 현재까지 프리랜서 안무가로 전세계 유명 무용단 함부르크 발레(Sleeping Beauty, 1996), 네델란드 댄스 시어터(A Sort of, 1997) 그리고 파리 오페라(Appartement, 2000) 등에서 새로운 작품을 창작 작업하고 있다.‘고전에 대한 공격인가, 도전적인 창조인가’라는 작품에 대한 극명한 찬반 속에서도 쿨베리 발레단을 세계적인 무용단으로 성장시킨 현대무용의 이단아 마츠 에크(Mats Ek). 그는 40년 동안 총 30여 작품을 창작하며 연극적인 풍자와 해학을 혼합한 안무로 (1982), (1987), (1992), (1996) 등 수많은 대표적인 고전 발레를 그 만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하여 관객들에게 충격과 즐거움을 선사하였다.주요작품잠자는 숲속의 공주 (함부르크 발레, 1996), A Sort of (네델란드 댄스 시어터, 1997), On Malta (스웨덴 오리온 시어터, 1996), Johanna (스웨덴 오리온 시어터, 1998), ‘파리 오페라’에서 Appartement (2000) 를 비롯한 다수의 작품 안무, 스웨덴 로얄 드라마틱 시어터 객원 안무 (Don Juan,1999 / Andromaque,2002), 쿨베리 발레(Fluke, 2002)안무철학'마츠 에크의 안무는 유머와 추진력으로 가득차 있으며, 고전의 창조적인 각색을통해 작품에 역동적인 생기를 더하고 있다.' - The Time 2001/6/8대머리 백조와 나약한 왕자, 사랑에 배신당하고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바보 지젤,요염한 십대의 마약중독자 오로라 공주, 담배를 물고 있는 자유분방한 카르멘.이 모두는 마츠 에크가 새롭게 탄생시킨 고전의 주인공들이다.‘고전에 대한 공격인가, 도전적인 창조인가’라는 작품에 대한 극명한 찬반 속에서도 쿨베리 발레단을 세계적인 무용단으로 성장시킨 현대무용의 이단아 마츠 에크(Mats Ek).그는 40년 동안 총 30여 작품을 창작하며 연극적인 풍자와 해학을 혼합한 안무로 ‘지젤(1982)’, ‘백조의 호수(1987)’, ‘카르멘(1992)’, ‘잠자는 숲속의 미녀(1996)’ 등 수많은 대표적인 고전 발레를 그 만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하여 관객들에게 충격과 즐거움을 선사하였다.그러나 그의 급진적인 해석은 ‘소름끼치는 백조의 호수, 징그러운 잠자는 숲속의 미녀,외설적인 카르멘(파이낸셜 타임즈, 1992)’이라는 악평과 함께, ‘백조의 호수’ 초연당시에는평론가들이 공연중에 극장을 뜨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마츠 에크식의 재해석은 추함속에 아름다움을 보며 과장을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고전에 자신의 개인적인 신념을 적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예술가적 철학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원작의 균형을 깨뜨리고, 흑과 백, 선과 악, 추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을 바꿈으로써 고전을 재해석 하는 방식을 통해 그는 진정한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인간의 모든 동작을 표현하고자 했다.안무스타일마츠 에크는 오늘날 유럽에서 손꼽히는 천재안무가 중 한사람이다. 우리나라에는 2003년도에 선보인 와 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안무한 는 차이콥스키의 음악과 동화적 요소만 같을 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가득 찬 '마마보이' 왕자에, 우아함 대신 강인함과 개성이 넘치며 발랄한 이미지를 지닌 대머리 백조가 등장한 유머러스한 작품. 또한 정신병동을 배경으로 한 새롭고 파격적인 재해석과 모던한 안무로 지금껏 회자된다.
차 례1. Warming up ...............21-1. Warming up에 대하여 : 양 날의 검 - 유연성1-2. Warming up의 십계명2. Warming up- 박수 .......52-1. Warming up의 순서Å 손가락 체조 기본 스트레칭 (5분)? 박수치기 (5분)? 박수 놀이 응용하기 (3분)1. Warming upWarming up"은 "예습"이고 "Coolling down"은 "복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미국에서는 Warming up과 Cooling down의 비중을 각각 4대 6의 비율로 강조하고 있는데,그 중 워밍업(warming up)의 중요성에 대해서 살펴보면,모든 장르의 춤이나 혹은 운동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warming up을 해야 하는데이는 갑자기 무리한 동작이나 곧바로 춤으로 들어가서 생기는 각종 문제들을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Warming-up 시간은,보통, 최소 15분에서 20분정도 실시하는 것이 적당하나 춤을 비롯한 세심하고 전문적인 신체의 움직임을 요하는 경우, 계절이나 기온에 따라 20분에서 30분정도가 적당하다 할 수 있다. 사람의 몸은 15분간 워밍업을 실시하면 체온이 38~39도 정도로 상승하게 되는데 이때 몸은 근육 에너지를 발생하고 유연성을 충분히 촉진시킨 상태가 된다.하지만 지나친 워밍업은 본격적인 춤이나 운동을 할 때 오히려 무리를 주게 된다.1-1. Warming up에 대하여 : 양 날의 검 - 유연성보통 유연성이 좋을수록 운동을 잘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일류 운동선수들이 반드시 매우 유연한 것은 아닙니다. 유연성이 뛰어나면 유리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것은 아주 상대적인 개념입니다.유연성이 나쁘면 운동을 못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유연성이 보통 이상으로 뛰어나다고 해서 반드시 운동을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연성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운동에서 요구되는 수준을 소화할 수 있으면 됩니다.마라톤 선수라면 그다지 유연성이 많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연성을 늘리기 위해서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기계체조나 리듬체조 같은 종목의 선수라면 유연성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유연성에 대해서 양 날의 검이라고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유연성 훈련은 근육을 부드럽게 하지만, 관절 주위의 결합조직을 약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어느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유연성이 나쁜 사람들은 근육의 경직이 잘 생기고, 유연성이 좋은 사람들은 관절의 염좌)가 잘 생기는 것으로 보고 되었습니다.1-2. Warming up의 십계명1) 긴장을 푼다.가볍게 뛰어서 몸을 따뜻하게 만든 다음에 스트레칭을 해야 합니다. 스트레칭은 관절의 결합 조직에 직접적으로 스트레스를 주고 근육을 최대한 늘어나게 만드는 운동이기 때문에 근육이 충분히 풀어지지 않으면 갑작스런 자극으로 근육에 무리를 주고 관절에 손상을 입히게 됩니다.2) 반동을 쓰지 말고 천천히 움직인다.종종 발을 앞으로 힘껏 차면서 다리 뒤를 스트레칭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스트레칭은 반동을 쓰면 근육이 심하게 경직될 수도 있고, 관절의 인대를 손상시킬 위험성이 높습니다.(근방추에서 이것을 감지해서 근육을 수축시킵니다.)3) 호흡을 멈추지 않는다.이것은 모든 운동에 걸쳐서 강조되는 내용입니다. 숨을 멈추면 긴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스트레칭은 긴장을 풀고 하는 운동입니다.4) 적당한 자극을 유지한다.좀 어렵지만, 너무 아플 때까지 스트레칭을 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스트레칭은 몸을 늘린 다음 그 자세를 10~30초 정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밑으로 유지를 하면 별로 효과가 없고 그보다 더 오래 참아도 효과에는 차이가 없습니다.5) 옆 사람은 신경 쓰지 않는다.유연성은 사람에 따라서 많은 차이가 생깁니다. 유전적인 부분도 있을 것이고, 체형에 따라서 차이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옆 사람과 자신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생깁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페이스에 맞추어서 무리하지 말아야 합니다.6) 매일 운동해야 합니다.보통 지구력이나, 근력은 2일에 한 번만 해도 충분하지만, 유연성은 매일 운동을 해야지 효과를 최대로 얻을 수 있습니다. 근력은 같은 부위를 매일 운동하면 오히려 효과가 떨어지지만, 유연성은 매일 해주어야 효과가 좋습니다.7) 전체적으로 스트레칭을 한다.자신에게 맞추어서 필요한 부분의 스트레칭을 집중할 수 있지만, 전체적인 유연성의 조화가 중요합니다. 신체의 일부분만 유연하면 상대적으로 유연하지 않은 부위에 많은 부담이 주어질 수도 있고, 오히려 유연한 부분만 많은 일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전체적인 유연성을 고려해야 합니다.8) 간단한 동작부터 시작한다.스트레칭은 아주 다양한 동작을 이용해서 유연성을 발달시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세들 중에서 부상을 유발하는 자세들도 있고, 초보자들이 따라하기에 무리가 있는 자세들도 많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쉬운 것에서부터 어려운 것까지 차례대로 설명하겠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스트레칭을 찾으실 수 있습니다.9) 스트레칭의 후유증은 하루를 넘기지 않아야 한다.스트레칭을 하고 다리가 아파서 며칠을 고생할 정도로 스트레칭을 했다면 그것은 완전히 무리한 것입니다. 그 정도로 스트레칭을 하면 근육과 관절의 결합조직이 손상을 입으면서 유연성을 기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원래 유연성을 늘리는 것만으로도 안정성이 떨어지는 데 관절의 손상을 주면서 유연성을 기르면 관절의 안정성은 더욱 떨어지게 되겠지요....10) 정확한 자세와 주의 사항을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여기서는 정확한 자세와 주의 사항을 많이 설명할 것입니다. 이 부분을 주의해서 반드시 잘 이해하고 실천해주십시오2. Warming up- 박수1 스트레스 제로기분이 울적하거나 머리가 아플 때는 큰 소리로 박수를 치자. 경직된 몸을 풀어주어 긴장을 해소 시키고, 자신감을 높여준다.2 살이 빠진다.박수는 제대로 치면 달리기보다 운동 강도가 높다. 온몸으로 박수를 치면 군살이 생길 틈이 없다.3 질병 예방 및 치료 효과손은 우리 몸의 축소판. 손바닥 자극으로 몸의 구석구석까지 생기가 넘치고 건강해진다.4 경제적이다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나 돈 한 푼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운동.5 머리가 좋아진다.박수는 양손 운동이기 때문에 좌뇌와 우뇌가 고르게 발달되고, 집중력이 향상된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라면 박수 치기를 생활화 할 것.2-1. Warming up의 순서Å 손가락 체조 기본 스트레칭 (5분)1.아픈 부위에 해당되는 손가락을 지압하기 전, 막힌 경혈점을 뚫어주기 위해 손가락 사이를 자극한다.손가락 사이마다 V자로 움푹 파인 부분은 신경이 집중돼 있는 곳으로 이 부분을 자극하면 자율신경의 움직임이 활발해져 숙면을 취한 듯 개운한 느낌이 든다.엄지와 검지로 아래위를 잡고 꼬집듯이 누르면서 잡아당겼다가 뗀다.한 곳마다 5~6번 실행하며 반대쪽 손도 같은 방법으로 실시한다.2.한 손의 손가락을 다른 손으로 잡고 위로 힘 있게 꺾어준다.3.다섯 손가락을 최대한 폈다가 오므린다.4.깍지를 끼고 손을 앞으로 쭉 뻗어 긴장을 풀어준다.(앞, 위, 옆, 뒤)5.무릎을 구부린 상태에서 양 옆에 손을 놓고, 손목을 꺾어 손목 근육을 10초씩 이완시켜 준다.? 박수치기 (5분)1.. 합장박수열 손가락을 마주 대고 양손을 힘차게 부딪친다.이 때 생기는 마찰 진동으로 손바닥의 모든 경혈이 자극을 받아 혈액순환이 좋아진다.
1.신경증신경증이란 흔히 노이로제라고 더 알려진 것으로 정신적 원인에 의해 일어나는 정신적 또는 신체적 증상을 일으키는 질병이다. 흔히 질병에서 보듯 신체의 구조, 장기, 신경학적 계통과 일치하는 병변은 볼 수가 없다. 그러나 대개 심리적인 이유에서 발생하는 불안을 바탕으로 발생하게 되는데 불안을 방어하는 형태에 따라서 표현되는 증상이 다르고 특이하다. 그래서 표현되어지는 병태나 방어하는 체계에 따라서 신경증의 이름을 달리 붙인다.신경증은 어느 연령에서나 발병하지만 대개 10대 후반에서 30대까지 호발하고 50대 이후는 대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인다. 여성의 경우 40세 전후에서 남성보다 많이 발병한다는 보고도 있다. 신경증 전반이 그렇듯이 사회. 문화적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는 추세라서 산업사회로 이행되면서 전반적인 증가 추세를 보인다.2.신경증에 대한 학자들의 여러 가지 견해①W.컬린영국의 내과의사 컬린은 오늘날 말하는 신경증의 개념과는 달리 신경계의 장애에 의하여 일어나는 광범위한 질환군을 지칭했으나, 병리학의 발달에 수반하여 기질적인 변화를 나타내는 질환이 신경증에서 분리되어 나감에 따라 신경증군에는 비기질성으로 보이는 질환군만이 남게 되어 오늘날 신경증의 개념과 상통하는 것이 되었다②K.야스퍼스독일의 야스퍼스가 제창한 심인반응의 개념에서는 병인이 되는 것으로서 충분히 양해가 가능한 감동을 수반하는 심적 체험을 계기로 하여 심정적 장애가 일어나 그 증세가 병인적 체험과 관련성을 갖는 것이 인정된다는 것, 또 그 심인과 관련이 깊은 상황의 변동에 따라 증세의 소장이 보이고, 원칙적으로 심인의 해소에 따라 증세의 완전한 소실이 인정되는 것이 조건으로 되고 있다는 것이 신경증의 전 영역을 거의 포함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③S.프로이트위기적 상황에 의해 야기되며, 또는 위기의 도래를 예고하는 불안을 회피하려고 하는 자아의 방위반응이라고 생각했다. 또 한계상황에 있어서의 거부반응이라고 보는 입장도 이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심인으로 되는 것은 그것이 위기 상황에 기인한다는 사실로부터 당연히 신경증은 문화를 달리하고 성격을 달리함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점을 강조하여 신경증을 특정의 문화속에 있는 인간이 각각의 문화의 성격적 요인에 영향을 받아 서로 상반되는 경향 또는 욕구에서 생기는 갈등에 의한 공포와 그것에 대한 타협형성의 시도로서의 방위수단에 의해 구성되는 심정적인 장애라 할 수 있다.3.신경증의 유형 및 증상신경증의 유형은 생성. 기전 및 증세에 있어서 질병단위는 아니다. 신경증자가 불안을 통제하기 위하여 패택한 방어수단의 유형에 따라 신경증의 유형이 결정된다.신경증은 겉으로는 다른 사람들과 특별히 다른 것이 없으며 신체의 기질적인 병변이 되지 않는 심인성에 의한 신경계의 질환이다. 신경증의 성향이 있는 사람은 긴장과 갈등이 있는 상황에 대하여 비정상적으로 과민하고, 어떤 문제에 대하여 현실적으로 대처할 수 없으며 잘못된 반응으로 문제를 처리하려 하고 자기 불확실성, 부적감, 자기비하, 자기멸시. 등의 결여가 있다.일반적인 증세를 기준으로 하고 발생기전과 요인을 고려하여 유형을 분류한다. 경증의 병인으로 심리적 요인과 부차적 및 소질적 요인을 고려하여 자율신경계의 불안정성과 내분비의 변화와 신체적 피로를 일으키는 조건이 주가 되는 기능장애를 현실신경증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전술한 불안신경증 ·신경쇠약신경증 및 건강염려신경증을 포함하며, 그 원인이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있는 경우로, S.프로이트가 사용한 용어이지만 현재는 통용되지 않고 있다.하나. 억울 반응-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소중한 사람의 애정이 식어버린 느낌이 들거나 사업에 실패했을 경우에 생기기 쉬우며, 괴롭고 슬퍼서 견딜 수 없거나 기분이 우울하여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게 된다.둘. 불안 신경증- 마음속의 불안이 발작적으로 엄습해 와서 안절부절 못 할 정도로 불안에 빠진다. 동시에 식은땀, 두근거림, 떨림, 상기, 협심증 같은 심한 통증, 탈력감, 사지 경직, 어지러움 등의 증상을 동반한다.셋. 강박 신경증- 자신도 별로 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특정한 감정이나 생각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라서 생각지 않으려고 해도 불가능한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면, 손의 청결이 자꾸 마음에 걸려 하루에도 몇 십 번씩 씻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든지, 외출시 몇 번씩 문단속을 해놓고도 자꾸 마음에 걸려 다시 돌아와 확인하는 경우이다.넷. 심기증(心氣症)- 병이 아닌데도 자신은 병이라고 생각하여 여러 가지 정신적, 육체적 증상을 호소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증상은 두통, 두근거림, 어지러움, 안정 피로, 귀울음, 피로감, 가슴이 답답함, 식욕 부진, 어깨 결림, 설사, 변비, 집중력 저하, 기억감퇴, 불면, 신경과민 등이다.다섯. 히스테리- 겉치레를 좋아하고 자기 과시욕이 강한 사람에게 생기기 쉬우며, 히스테리성의여러 가지 증상을 나타낸다. 사지가 마비되어 일어설 수 없거나 앉을 수 없고, 귀가 들리지 않거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며, 눈이 보이지 않는 등의 신체 증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증상은 본인이 의식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증상으로 나타나며,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정신면에서는 갑자기 기억이나 의식이 없어져 몽유병처럼 되거나 유아 같은 언동을 하기도 한다.여섯. 공포증- 대인 공포증, 고소 공포증, 폐소 공포증, 적면 공포증 등이 있는데, 어느 특정한 사물이나 상황에 대하여 강한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일곱. 강박신경증강박사고란 개인에게 의미가 없거나 불필요한 생각이나 이미지 또는 충동들이 의도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경우로서, 대개 문장, 기억, 장면, 음악 등이 반복해서 의식으로침범하여 불편을 초래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것은 단순히 현실 생활에서 겪는 문제에 대한 지나친 걱정 이상의 수준이다.이런 증상이 있는 사람은 이러한 생각, 충동 또는 이미지를 억누르거나 다른 생각이나 행동으로써 중화시키려고 한다. 강박행동이란 규칙에 따라 행동을 반복하는 것으로서, 손씻기, 확인하기, 숫자세기, 나열하기 등이 해당된다. 개인이 자신의 강박사고나 강박행동이 과도하며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극복하려고 노력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로 인해 일상생활이 심하게 방해될 경우를 강박장애 또는 강박신경증라고 한다.여덟. 건강염려신경증건강염려신경증은 건강이나 신체기관의 상태에 대한 강박적 집착 또는 관심을 특징으로 하는 신경증이다. 신체의 사소한 감각이나 증후를 비현실적으로 해석하여 질병에 대한 공포에 강박적으로 집착해 있고, 신체 전반이 관심의 대상이나 가장 흔한 부위는 내장 ·흉부 ·두부와 경부이고, 정신적으로 ‘미치지나 않나’ 하는 염려도 있다. 건강염려신경증자는 강박적 ·자기중심적 ·자기애적 성격의 소유자이다. 건강염려신경증은 정신적 불안을 신체나 기관에 전치(轉置)시켜서 생긴다.아홉. 이인신경증이인신경증은 자신에 대한 지각(知覺)의 변화와 일시적인 현실감의 상실을 특징으로 하는 신경증이다. 정당한 인식과 판단을 하면서도 자기 자신이나 실재 환경 및 실재 감정의 상실로 자신의 주체나 신체에 대한 확신을 상실할 뿐 아니라, 비현실적인 것 같고 변화된 것 같이 느끼고 외부 세계도 비현실적이고 달라진 것 같이 느낀다. 흔히 현기증이나 ‘미치지나 않을까’하는 공포감이 있다. 이인신경증자는 지적이고, 과민하고, 인정적이고, 내성적이며, 상상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의 도피 수단으로서 현실로부터의 후퇴를 초래한다.4.신경증의 원인신경증의 원인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우나 대개 감정적인 요소와 체질적이라고 오해될 만큼의 깊은 뿌리를 지닌 성격특성이 관계가 있다. 이런 특성은 결국 개인이 어린시절 경험하는 갈등과 감정적 태도와 관계가 깊고 이런 감정적 태도는 부모와 자녀 관계에 의해 습득되어지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