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tburg Castle순서.1.들어가는말..2.역사3.건축(구조)4.여행정보5.마틴루터6.맺음말...1.들어가는말(바르트부르크.jpg 그림참조)바르트부르크성은 독일 튀링겐주(州)의 아이제나흐 근처에 있는 산성(山城)으로 항상 안개에 둘러싸인 신비한 성이다. 1067년 루트비히 백작이 이 땅을 처음 발견하고 ‘기다려라(Wart!) 이 산에 나의 성(Burg)이 선다’고 말한 데서 이름이 유래됐다. 높은 산 위에 세워졌기에, 성의 장벽에서 내려다보는 전망 또한 일품이다.또한 바르트부르크는 독일의 종교개혁가인 마틴루터의 유배지, 바틴루터가 신약성서를 번역한곳으로 아주 유명한곳이다. 이제 바르트 부르크 성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기로하자.2.역사바르트 부르크성의 역사를 알아보자.1067 - Wartburg의 기초전설에 의하면, Wartburg는 Ludwig에 의해 1067년에 설립되었다.영주의 방에 있는 Wartburg 그림의 기초(그림-1.jpg) Ludwig(그림-2.jpg)그림1그림21080 - 1번째 문서.Wartburg는 1080년에 처음으로 문서로 기록되었다.1130 - 영주들의 시대.활발한 정치적인 움직임들, 광대한 숲 정리들, 새로운 땅의 취득 그리고 정통한 결혼 정책때문에, Thuringian 총계의 가족의 영향은 중부 독일에서 빨리 성장했다.1155 -The Palas의 건설본관(Palas)의 건설은 1155년쯤 시작하였습니다.그것은 그 종류에서 첫번째 것이었다.그리고 그것은 알프스 산맥의 북쪽의 로마네스크식의 세속 건물중 최고로 간주된다.(그림-3.jpg)1206 - 바르트부르크에서 Minnesingers의 컨테스트전설적인 Minnesingers' 콘테스트 또는 "가수들의 전쟁"은 120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그림-4.jpg)1211-1228-세인트 Elizabeth이 시대에 Elizabeth는 Thuringian landgraves의 코트에 살았다.1221년에 헝가리의 공주는 landgrave Ludwig IV세와 결혼했다.그녀의 금욕주의고새로운 채플은 Palas로 짓게 되었다..1521 - Wartburg에서 Martin Luther로마교황에 의하여 파문당하였고 황제에 의하여 법의 보호를 빼앗겼던 Martin Luther는 Wartburg에서 법의 집행관의 오두막집에 피난처를 찾았다. 그의 보호 구금의 수 개월 동안에, 그는 오늘날 Luther Room으로 알려져 있는 드문드문 가구가 있는 방에 살고 일하였다.그는 독일어로 최초의 그리스의 본문으로부터 신약성서를 번역했다.(그림-8.jpg)1777 - 괴테의 Wartburg 방문괴테는 1777년에 5 주 동안 Wartburg Castle에서 머물렀다. 그의 그곳의 방문은 자연에 대한 그의 열의가 특징이다.오늘 Goethe가 그의 도면에서 보존했던 부패시키게 되는 건물에대한 시각적인 지식은 값을 헤아릴 수 없다.(그림-9.jpg)1817 - The Students의 협회의 Wartburgfest1817년 10월 18일에, 500명의 학생은 Wartburgfest(독일에서 1번째 중간 계층의 민주적인 공공 회의)를 위해 모였다. 1817년 예나대학의 학생단체 뷔르센샤프트가 루터의 종교개혁 300주년과 라이프치히 전승을 기념하기 위한 바르트부르크 축제를 이 부근의 숲 속에서 개최하였다(그림-10.jpg)1838-1890-바르트부르크의 재건바르트부르크 성에서 Saxe-바이마르-아이젠나흐의 집은 고전적인 바이마르의 "황금 시대"로불렸고, 그것을 부활시키고, 그것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Giessen University에 건축학 교수인 Hugo von Ritgen은 이 작업을 인수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삶의 일이 되었다.이 직업은 광범위한 예술적인 독창성을 가지고 있었다.바르트부르크의 재건 개념(그림-11.jpg)Hugo von Ritgen(그림-12.jpg)1922 - 바르트부르크의 기초공화국의 1918 혁명과 선언은 독일의 지배하는 주택에 물러날 것을 강요했다. 1922년에 Wartburg Foundation는 그때부터 성의 유지에 대한 책임을 세계 유산의 일부로서 바르트부르크1999년 12월에, 바르트부르크는 UNESCO World Cultural Heritage 리스트에 배치되었다.(그림-empty.jpg)3.건축Wartburg의 건축물에 대해서 알아보자. (그림-empty1.jpg)Wartburg에 도착할 때, 로마네스크 양식, 고딕, 르네상스와 Historicism의 예상외의 배합을 발견할수 있을 것이다. 현재 출입구는 Vorburg(앞 성)으로 3개의 문이 있는 1개의 홀을 통하여 당신을 안내할것이다. Vorburg의 오른쪽이 Margareth Hallway,the castle bailiff's lodge ,the Knights' Building라고 불리는것이며 왼쪽이 Elizabeth Hallway이다. 골격 건축물들과 오래된 주위 담에 건설되었던 흉벽은 14,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가운데 건물인 종합건물 -Neue Kamenate, Torhalle (Porch) und Dirnitz (Heated Hall Building)-은 1850와 60년대 건설되었다. 종합 빌딩은 앞 성과 중심적인 성을 분리시킨다. 성 중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인 중앙의 성의 꼭대기에서, 성의 종교유의를 위한상징인 십자가를 볼 수 있다. 메인 탑은 앞에 말한 건축물들과 같은 재령이다, 그리고 탑과 다른모든 더 새로운 건축물들은 이전 구조의 기초에 근거한다. 메인 성에서, 최고 품질의 로마네스크 양식을 발견할 수 있을것이다. Palas는 Thuringian의 주거지로서 높은 사회적 신분의 상징으로서 1157년과 1170년 사이에 세워졌다. 디자인과 장식의명료함, 화려한 장식은 호엔슈타우펜가의 연한 자줏빛의 궁전의 건축물에 필적한다. 이것은 북알프스 산맥의 보존된 세속의 건축물 중에 선도하는 위치를 보증한다. 성 지반들 중에서 가장 바깥 모서리에 있는 중세의 구조물들중 유일한 생각나게 하는 것은 역사적인 기사들의 욕실이다(1889-1890). 욕실은 Palas의 남벽에도 만들어졌으며 Gadem(영빈관)은 1810수 있다.★매일 영업시간 (성입구.jpg 그림참조)3월 ~10월 :Guided Tours: 8:30-17:00시성 문을 닫는시간: 20:00시11월~2월Guided Tours: 9:00-15:30 Uhr성 문을 닫는시간: 17:00 Uhr12월 24일 안내인이 있는 마지막 여행은 11.00에 있다.12월 31일에,안내인이 있는 마지막 여행은 14.00에 있다.★입장 가격안내인이 Palas를 가이드하고 박물관은 스스로 관람하는 가격:성인들 6.5유로 장애인 5.5유로 학생들. 3.5유로 가족 카드 16.5유로박물관만 관람하는 가격:성인들. 3.5유로 장애인. 3유로 학생들. 2유로Wartburg는 단체 할인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인들과 학생들은 증명서를 체줄시 가격 인하를 받을 수 있다.6살이하 자녀들은 무료다.예약은 25명의 사람들 또는 그 이상만 받는다 관광 여행 날짜 전에 10 일에 취소하면 전액환불 가능.결제가능수단: 현금, ec-cash, 신용카드(비자, eurocard), 보증인 / 계산서★주차주차장에서 성까지 거리는 대략 500 피트이고 주차장에서부터는 걸어서 여행해야 한다. 중년이 지나고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을 위해, 주차장과 성 사이에 셔틀이 있다.주차 비용 :PKW 3유로 Motorcycle 1유로 Camper 4유로 Coach 6유로★당나귀 타기Wartburg Castle에 전통적인 당나귀 타기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당나귀 정거장은 좋은 날씨에 여름 동안에 열린다. 만약 당나귀 정거장이 당신의 방문 동안에 열리는지 알고 싶다면 ,정거장의 경영자와 접촉하라.Mr. Holzer Telefon : (+49) 36 91 / 21 04 045.마틴루터그는 1483년 11월 10일 작센안할트주 아이슬레벤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엄격한 가톨릭신앙의 소유자였고 자식의 교육에도 관심을 가졌다. 마르틴은 1501년 에르푸르트대학교에 입학, 1505년 일반 교양과정을 마치고 법률공부를 시작하였는데, 자신의 삶과 구원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신임을 재발견하였다. 이 결과가 당시 교회의 관습이 되어 있던 면죄부(免罪符) 판매에 대한 비판으로 1517년 ‘95개조 논제’가 나왔는데, 이것이 큰 파문을 일으켜 마침내 종교개혁의 발단이 되었다. 그는 교황으로부터 파문칙령(破門勅令)을 받았으나 불태워 버렸다. 1521년에는 신성로마제국 의회에 환문되어 그의 주장을 취소할 것을 강요당했으나 이를 거부, 제국에서 추방되는 처분을 받았다. 그로부터 9개월 동안 작센 선제후(選帝侯)의 비호 아래 바르트부르크성(城)에서 숨어 지내면서 신약성서의 독일어 번역을 완성하였다. 이것이 독일어 통일에 크게 공헌하였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비텐베르크로 돌아와서는 새로운 교회 형성에 힘썼는데, 처음에는 멸시의 뜻으로 불리던 호칭이 마침내 통칭이 되어 ‘루터파 교회’가 성립되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에서 파생된 과격파나 농민의 운동, 농민전쟁에 대해서는 성서 신앙적 입장을 취함으로써 이들과는 분명한 구분을 지었다. 그 뒤 만년에 이르기까지 가톨릭 교회와 종교개혁 좌파 사이에서 이들과 논쟁 ·대결하면서, 성서강의·설교·저작·성서번역 등에 헌신함으로써 종교개혁 운동을 추진하였는데, 영주(領主)들간의 분쟁 조정을 위하여 고향인 아이슬레벤에 갔다가, 병을 얻어 그곳에서 죽었다. 그의 업적은 대부분 문서 형태로 남아 있어, 원문의 큰 책이 100권(바이마르판 루터전집)에 이른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하여》(1520)는 《로마서 강의》(1515∼1516)와 함께 초기의 신학사상을 잘 나타내고 있는데, 루터는 상황 속에서 자기를 형성하고 발언하는 신학자였기 때문에, 만년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저서와 강의를 통하여 그의 사상을 남김없이 토로하였다. 그는 신학의 근거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신의 철저한 은혜와 사랑에 두고, 인간은 이에 신앙으로써 응답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하느님께 반항하고 자기를 추구하는 죄인이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자유로운 군주’이면서 ‘섬기는 종’이 되는 것이며, 신앙의 응답을 통었다.
Cinderella is fictional character.1.Cinderella complex is...▶유래 : 미국의 콜레트 다울링의 저서 《신데렐라 콤플렉스》에서 나온 말로서, 계모에게 학대당하던 아가씨가 왕자와 결혼하게 된다는 《신데렐라》에 연유.▶사전적 의미 : 남성에게 의탁하여 안정된 삶을 꾀하려는 여성의 심리 상태를 일컫는 말▶설명 : 이 말은 자기 자신의 능력과 인격으로써 자립할 자신이 없는 여성이, 마치 신데렐라처럼 자기의 인생을 일변시켜 줄 왕자가 나타나기를 고대하는, 즉 남성에게 보호되어 살아가고 싶어하는 여성의 의존심리를 뜻한다.2. “Cinderella complex 주제 선정 이유”올 여름 공중파 방송 3사에서 파리의연인, 황태자의 첫사랑, 풀하우스 라는 신데렐라 드라마를 동시에 선보였고 파리의 연인은 시청률 50%를 기록하면서 우리사회에 큰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나 온달 콤플렉스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일이지만 최근 신분상승을 위해서 돈 있고 능력있는 배우자를 만나려는 욕구가 신데렐라 신드롬을 타고 사회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아 지고 있습니다. 진부하고 허황된 동화속 이야기인 신데렐라이야기에 10대부터 60대 여성 시청자까지 함께 열광하고 있는 지금, 정말 현실에서도 신데렐라가 존재하는지 과연 신데렐라를 쫒는 여성들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신데렐라가 환상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노력하면 얼마든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여성들, 그로인한 무분별한 성형 과 명품사용 ,그들을 이용하여 온갖 사기 행각을 벌이는 남성들의 발생 등 여러 가지 부작용과 이로 인해 결혼의 조건의 우선순위가 “돈”이 되어 버린 우리사회의 결혼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바로잡아 보는 기회로 삼고 싶었습니다. 백마 탄 왕자님과의 결혼으로 신데렐라는 영원한 해피엔딩의 상징으로 남아 있지만, 동화 속 이야기에는 나오지 않는 결혼 후 신데렐라의 아픔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3.신데렐라 콤플렉스가 현재 우리사회에서 부각된 배경1) 대중매체의 또한 드라마는 공감을 통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준다. 현실을 반영하다보니, 드라마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고 주인공이 되어보기도 한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어느 연구 조사기관에서 텔레비전을 많이 보는 계층인 10대에서 30대 여성 142명을 상대로 텔레비전 시청 시간 과 그 중 드라마 시청 시간에 대한 설문조사를 해 보았다.그래프는 다음과 같다.그래프를 보면 142명중 대부분이 하루 평균 2시간 정도의 텔레비전 시청 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그런데, 또 대부분이 평균 1시간 이상의 드라마를 본다고 했다. 드라마의 방송분을 1시간으로 생각했을 때,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1편이상의 드라마를 본다라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신데렐라 드라마의 열풍은 큰 영향이 되었을 것이다.신데렐라 콤플렉스 관련 드라마의예- 별은내가슴에, 신데렐라, 이브의모든것, 명랑소녀 성공기, 천국의 계단, 발리에서 생긴 일, 풀하우스, 황태자의 첫사랑, 파리의 연인 -를 봤을때 그 인기도와 영향도 또한 어느정도 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② 인터넷 보급으로 인한 가치관 확산인터넷의 보급으로 무수한 정보들을 얻는 과정에서 무분별하게 급속도로 퍼지는 정보력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돈을 최고의 가치관으로 여기고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서 받아들인다는 것이 문제점이다. 인터넷 채팅방이나 카페 같은것을 보면 상류층과의 만남을 위한 커뮤니티가 있을 정도로 영향력도 크다고 할 수 있으며 가치관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2> 경제난,취업난(특히 여성의 경우 차별이 존재)->개인의 노력으로 신분상승 불가능미혼남녀의 취업률 차이는 10%내외의 차이로 남성이 우세 했지만 기혼 남녀의 취업률 차이는 남성이 절대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경제 연구소의 보고에도 볼 수 있듯이 여성은 결혼후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수 없는 사회구조 속에서 살아가고있다. 이런 탈출구 중 하나로서 여성들이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빠져드는 것이다.3> 물질만콤플렉스를 꿈꾸게 된다.본론의 내용은 드라마 ‘파리의 연인’을 시청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신데렐라 컴플렉스와 관련한 두가지 상황을 가정하여 조원간의 토론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가정 1 ) 만약 한기주가 가난해졌다면 과연 강태영은 그와 결혼했을까?▷ ‘ 결혼은 불가능 할 것이다. ’ 라는 입장.* 둘 사이에는 이전과는 다른 조건의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강태영 : 가능성이 있는 젊은 여성 >> 한기주 : 이혼을 경험한 나이 많은 남성⇒ 사랑하는 마음은 있지만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한기주와의 결혼은 조건적으로 따져봤을 때 강태영에게 많은 손해가 된다고 생각된다는 이유에서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입니다.▶ ‘ 예정대로 결혼을 할 것이다.’ 라는 입장.* 한기주의 능력을 인정하여 회복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전에 거대한 기업을 훌륭히 경영할만큼 능력이 있는 한기주의 경제적 회복 능력을 기대.⇒ 사랑의 힘으로 한기주를 도와 재기를 꿈꾸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에서 예정대로 결혼을 할 것이라는 의견입니다.▷ 갑자기 변화된 상황에서 오는 경제적 박탈감 (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 )⇒ 물론 돈을 목적으로 생각한 결혼은 아니었지만 이전에 한기주가 가지고 있던 능력으로 누렸던 부유한 생활이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바뀐 상황에 여러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는 의견입니다.▶결혼의 이유는 돈이 아닌 사랑이다. ( 예정대로 결혼을 할 것이라는 입장 )⇒ 둘의 사랑은 진실한 것이기 때문에 ‘돈’이라는 이유로 쉽게 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한기주가 지니고 있는 능력으로 최소한의 생활은 충분히 꾸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에 둘은 헤어지지 않고 사랑으로 극복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입니다.(가정 2 ) 결혼을 한 한기주와 강태영은 과연 잘 살수 있을 것인가?▷ ‘잘 살수 있을 것이다.‘ 라는 입장.극 중에서 한기주는 많은 부를 향유하고 있고, 계층도 매우 높은데 반해, 강태영은 상대적으로 별 볼 일 없는 게 사실이지만, 둘은 사랑이라는 끈끈한 하나의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그녀는 한기주에게 사랑 받는 아내가 되려고 노력할 것이고, 그 사랑을 느끼는 한기주는 더욱 강태영에게 물질적, 정신적인 만족을 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이런 결혼 생활을 통해 서로 만족을 느끼고 사랑이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입니다.▶ ‘잘 살수 없을 것이다.’ 라는 입장.사실, 강태영이 한기주에게 끌린 이유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기 보다는, 그가 GD자동차 사장이고, 부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와 결혼하면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옷 등의 그녀가 지금까지 가지지 못했던 물질적 풍요로움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끌려 한기주와 결혼하였을 것이라는 의견입니다.사랑이 중심이 되어야 할 결혼 생활에 있어서 사랑보다 돈이라는 물질적 요소에 큰 가치를 부여하다 보니, 결혼 생활을 하는 두 사람의 사이는 점점 삭막해져 갈 것이고, 결국 결혼 생활의 파탄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서로간의 사랑과 믿음이 없이 시작한 결혼 생활은 오래 지속될 수 없고, 서로에 대한 불만과 불신만 늘어나게 되어 결국은 좋지 못한 결말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드라마 내용을 바탕으로 한 사회 전반적인 부분까지의 토론□ 여성이 우선시 하는 결혼의 조건은 ‘능력’이다.- 여기서 말하는 ‘능력’은 개인의 가능성을 비롯하여 전반적인 경제적 부유함을 뜻합니다.- 날이 갈수록 여성들은 결혼하려는 남자의 조건으로 ‘능력’ 구체적으로는 ‘경제적 능력’을 우선시 하고 있는데, 이것은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고 가지고 있는 성향이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입니다.□ TV가 ‘신데렐라컴플렉스’를 조장.- 위 서론에서도 밝혔듯이 ‘신데렐라컴플렉스’ 는 수많은 드라마의 주제로 쓰이고 있는 것 이 현실입니다. 이런 드라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자주인공은 별 볼일 없는 존재이며 남자주인공은 경제적인 부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 여자들은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라 남 자들에게 의존하는 성향을 지닌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는 조원들의 생각입니다.그 대표적인 예로써는 파리의 연인, 천국의성들은 소위 잘나가는 남자를 만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명품을 마구 잡이로 구입하고 많은 돈을 들여 성형수술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남자들은 이러 한 여성의 심리를 이용하여 금품을 갈취하는 등의 범죄가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잘못된 사회적 풍조의 만연.- 여성 : 토론에 참여한 저희 조의 여성들을 포함하여 많은 여성들은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무조건 돈이 많은 남자들을 선호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남성 : 이 역시 저희 조의 남성들도 인정한 것으로 남성들은 여성의 내적인 면보다는 외적인 면을 중시하는 외모지상주의에 빠져 있으며 자신보다 조건적으로 (학벌, 집안 등 ) 낮은 여성을 선호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 결혼경사현상 )□ 물질중시 풍조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님.- 하지만 물질을 중시하는 풍조는 비단 여성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이를 ‘온달컴플렉스’라는 용어로 설명할 수 있는데 조원들 모두 청춘의 덫이라는 드라마를 그 대 표적인 예로 꼽았습니다. 이 드라마는 이종원이 자신의 야망을 위해 가진 것은 없지만 자신만 바라보는 심은하를 버리고 부유한 집안의 딸인 유호정을 선택하는 내용입니다. - 해결책1.매스컴의 변화방향방송사에서 드라마를 만들 때의 의도를 보면, 분명 좋은 의도가 담겨있고, 사람들의 정서를 담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비롯해 앞에서 열거한 많은 나쁜 영향을 미치게된다는 점이다.그렇다면 결국, 방송사에서 드라마를 제작할 때 어느 정도는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의도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왜 방송사는 그런 의도를 드라마에 넣는 것인가? 아마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시청률이라고 생각한다.각박해져가는 세상현실 속에서 돈이 가장 중요시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 지쳐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드라마의 그런 모습들에 자연스레 눈이 가게 될 것이다. 방송사는 결국 시청률을 통한 광고의 수다.
결혼과가족 과제물(자서전)“20장의 나의 요약집”제1장 나의 탄생응애~응애~ 세상에 처음나온 나의 우렁찬 목소리, 모두가 축복해 줬을 것이다. 여기다 이모가 써주신 축하 산문시를 적어보고 싶지만 분량이 엄청난 관계로 적지는 못할 것 같다.제2,3장 유아시절이때의 기억은 솔직히 가물가물, 생각이 나지 않는다. 생각이 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기억력이 대단한 사람일 것이다.제4장 나의 동생이 생기던 시절먹을거 밖에 몰랐던 나. 울다가도 먹는것만 입에 넣어줬으면 울음을 그쳤다고 할 정도 였으니까.. 동생을 보러간다는 말에 아버지 손에 이끌려서 병원으로 갔다. 몇시간 뒤에 보이던 조그맣게 생긴 인형이라고 해야될까. 아주 작은 아이가 보였다. 사내아이였다. 사실 솔직히 징글웠다. 쭈글쭈글한 얼굴과 조그만 손과발 하지만 하루이틀 지나면서 점점 이쁜아기 모습으로 바뀌었고 점점 부모님의 관심이 동생에게 쏠리게 되자 질투심도 생겼던거 같다.제5장 나의 어린시절겨울쯤 이었다. 엄마와 동생과 한약방을 가는길이었다. 눈이 와서 그런지 바닥이 미끌 미끌 거렸던걸로 기억한다. 한약방을 거의 다 도착했을때 엄마와 동생은 뒤도 안돌아보고 들어가버리고 나는 거기서 미끌어졌었다. 그런데 그만 내가 십자가 모양으로 앞으로 넘어져 버렸고 바로옆에 있던 아주 큰 트럭은 나를 보지못하고 몇m정도 앞으로 움직이더니 왼쪽 앞바퀴가 나의 오른팔위에 올라가 한 5분넘게 정지해있었다. 그때 정말 계속 소리지르고 울어댔지만 아저씨는 듣지 못했고 이상하게 여긴 엄마가 밖으로 나와서 나를 구출(?)해 주었다. 내 생명의 은인(?)인 것 이다. 솔직히 난 그때 두꺼운 파카를 입고 있어서 그런지 전혀 아프다는 느낌은 들지않고 푹신한 느낌만 들었다. 하지만 나에겐 아주 끔찍하고 무서운 경험이 었다. 아직까지도 오른쪽 팔이 정상적으로 있다는걸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미스테리 인것 같다. 카이스트에 의뢰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제6장 나의 어린시절내가 태권도 학원을 다니던 시기 이다. 우리집은 에 눈을 떴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같이 다녔던 그 여자아이가 전혀 여자로서의 감정이라고 해야하나, 여자라서 느끼는 불편함 이나 신경쓰이는일 같은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남자친구들 보다 친했던 그 친구가 내 유치원 시절에 떠오르는 유일한 기억이다.제8장 나의 국민학교 입학하던 시절엄마 손에 이끌려 입학식을 하러간 초등학교,(그 당시 입학할때만 해도 국민학교 였다.) 왠지 분위기가 유치원과는 또달리 삼엄한(?) 그런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이상한 할머니 선생님과 할아버지 선생님은 왜 그렇게 많은지 한 반에 있는 아이들도 너무 많았고, 나와 달리 너무 활발할 성격의 아이들과 적응 하는것도 쉽지 않았었다. 우리학교는 정원이 너무 많아서 1학년만 해도 17반까지 있어서 1주간격으로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눠서 수업을 했다. 1교실도 2반이 나눠서 같이 쓸정도로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정말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 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매일매일 공부하는것도 정말 나에겐 고통이었고 그 때는 왜그렇게 구구단이 어려웠던지 요즘에들은 19단도 외운다는데 미스테리다. 게다가 내 짝궁여자애는 왜 그렇게도 못생겼었는지 정말 학교다니기 싫을 정도 였다. 그 당시엔 별로 친한 친구도 없었고 매일 아침에 일어나 버스를 타는것도 나에겐 모든 것이 고통스서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나의 1학년은 소리없이 지나간것 같다.제9장 나의 마지막 10대 시절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학교 생활에도 나름대로(?)는 적응을 해가고 있는 그시절 이제는 학교다니는것도 재미있었고 나름대로 친한친구들도 많이 생겨서 좋았던겄 같다. 우리집에서 불과 50m도 안되는 곳에 사는 친구집에 나는 거의 우리집 드나들듯이 드나 들었고 그 친구도 우리집을 제집 드나들듯이 드나들 정도였으니까... 그런 이유도 있었겠지만 내가 학교 다니는것이 즐거웠던 이유는 아마도 내 첫사랑인 그아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2학년으로서 학교 처음들어 갔을때 정말 온몸에서 빛이 난다고 해야 할까? 정말 만화음으로 수업시간에 손을 들어서 발표를 하기 시작하고 학교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된 것 이었다. 나 자신도 스스로 의아해 할 정도의 아이가 되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내면속에 내성적인 성향이 완전히 싹 가시게 된 것은 아니었다. 어느정도의 노력으로 인해서 점차 그런 생활에 익숙해진 정도라고 해야할까 아무튼 내가 배움의 터에서 배운 최초의 값진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3학년때 역시 나의 가장 친한 친구와 같은반이 되었다. 매일 같이 등교하고 같이 붙어 다니고 같이생활 하는 어느정도 집 밖의 생활에서도 적응이 한층 쉬워진 이유이기도 할것이다. 이 때 나의 첫사랑을 무마시켜 버릴 정도로 이쁜 여자 아이가 또 다시 내눈에 들어왔다. 첫사랑 아이 처럼 반짝반짝하는 빛은 나지 않았지만 나의 마음에 쏙드는 아이였다. 뭐 별다른 스캔들이나 일은 없었지만... 아직 나는 여자들앞에서 쑥맥이 되버리는 아이였다.제11장 나의 국민학교 4학년 시절이 시기는 나에게 정말 지루한 시기였다. 고리타분 하고 답답한 할머니 담임 선생님, 정말 나와는 코드가 맞지않는 아이들... 너무 지루한 1년이었다.제12장 나의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이때 부터 나는 국민학생이 아니라 초등학생이 되었다. 학교 이름이 바뀌고 나서 학교를 다니는 것이 재밌기도 하고 뭔가 새로운 느낌이 들어서 학교를 다니는게 한동안 정말 한동안은 즐거웠다. 이 때 까지만 해도 나는 학교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었고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정말 받아보지 못했던 ‘우’를 비롯한 ‘미’,‘양’ 으로 더럽혀진 나의 성적표는 정말 황당 그 자체였다. 이렇게 된 이유는 나의 노력 부족도 있었겠지만 아마도 나의 사춘기 시작이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학교생활에 완전히 적응해 버린나. 매일 친구들과 야구장,노래방 같은 곳을 다니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공부는 뒷전이던 나, 게다가 여자친구 까지 생겨 버렸으니 공부란게 흥미 있을 리가 없는것이다.발렌타인데이 날이었다. 사실 그런날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내가 순진시면서 아이들과 좀 더 친해지려고 노력하시는 것 같았고 뭐든지 눈높이를 맞춰서 생각해주시려는 선생님이 셨다. 원래 담임선생님이 오시기 전날, 그러니까 두 번째 오신 선생님과 마지막날 우리는 파티를 준비했다. 그 자리에서 아이들과 선생님 모두 눈시울을 붉힐정도 였으니까 얼마나 아이들과 가까운 선생님이셨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또한 이 시기엔 나의 여자관계의 전성기라고나 할까? 데이라는 데이에는 우리학년 각 반에서 1명정도의 여자아이들에게 선물받고 오죽하면 5학년 여자애들한테도 선물을 받았느니 말이다. 정말 지금은 슬픈 일이지만 나의 여자복은 이 때가 끝이었나보다...ㅠㅠ 내가 지금은 이래도 그땐 나름대로 매력 있었나 보다. 우울한 현실이여... 지금이랑 상황이 바뀌었으면 좋으련만 흥진비래라고 했던가... 정말 그때가 그립다. 나의 외로움을 누가 알겠는가... 이번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보낼지 걱정이다.제14장 처음으로 머리 빡빡깍고 다니던 시절중학교 정말 내가 가기싫어 했던곳이다. 왜냐면 짧은 스포츠머리와 교복때문이었다. 유명한 가수 젝스키스노래 ‘폼생폼사’ 가사에도 나오지 않던가 “머리 빡빡 깍는건 정말 참을 수 없어“ 라는 말이있듯이 정말 기억하기 싫은 3년의 시작이었다. 학교 다니는것이 무슨 군대도 아니고 정말 하루하루가 짜증나고 오히려 짧은머리 때문에 신경쓰여서 공부에 방해가 될정도 였으니까...제15장 내 인생에서 최고의 성적을 받은 시절1학기 기말고사때였을 것이다. 영어와 수학은 정말 자신있었고 국사나 국어에 약한 나, 아무생각 안하고 그 놈의 핸드폰을 가지고 싶어서 무작정 국사와 국어를 팠다. 그 결과 나도 어이없는(?) 점수를 받았다. 허걱! 전교 5등! 내가 5등을했다는 생각보단 머릿속엔 핸드폰이 먼저 떠올랐다. 역시 난 아직 철이 덜들었나보다... 아무튼 내 인생에서 가장 기쁜날 중에 하루 였다.첫 미팅날이었다. 친구들과 나는 나름대로 잔뜩 꾸민상태에서 온갖기대를 하고 나갔다. 그러나 결과는 왠 초등학생같이 생긴 애기들이 보였다... 절망이었다.은 0.x 대로 낮아졌다. 내가 안경을 쓰게 될 줄이야. 나의 꿈은 이렇게 시력과 맞바꿔 가고 있었나보다.제18장 집을 떠나던 시절2학년이 되면서 나는 학교 기숙사에 강제로 끌려 갔다. 상위권 아이들은 무조건 귀남(貴男)관이라는 곳에 끌려가서 공부만 해야했다. 정말 우울한 내 젊은시절 책과 씨름만 해야하다니 이렇게 또 1년이 훌쩍 흘러갔다.제19장 수능시험 보던해12년동안 공부한것을 하루에 평가 받는해였다. 이때 나에게 가르침을 주신 은사님은 정말 평생잊지 못할 좋으신분이었고 정말 많이 본받고 싶은분이었다. 제자들은 모두다 자식같이 돌보아 주시고 한명한명 정말 자상하게 대해주시고 고3수험생보다 열심히 노력하시는 분이었다. 오죽하면 과로로 몇 번 쓰러지실 정도였으니까...수능시험 1달전 내 성적 불안감에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다. 정말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러다 수능날 시험을 어떻게 볼지 소심한 내 성격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수시모집이라는걸 뒤져보기 시작했고 수능이 끝난후에 수시 시험을 보는 학교를 찾아냈다. 수시에 의존하여 수능을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서 이다. 00대학교 였다. 보험이라고 생각하고 원서접수 마감 1시간전에 접수를 했다. 마음이 한결 안정되었다. 수능날이었다. 시험지를 푸는 순간 머릿속은 텅빈것 같았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사실 잘본것같은 착각도 들었다. 시험지를 채점하는데 정말 한숨과 눈물한줄기 밖에 나오지않았다. 평소보다 30점넘게 떨어진 내성적 가채점이긴 했지만 머릿속은 깜깜했다. 12년동안 공부한게 이거밖에 되지않나 하는 나에 대한 실망감도 들었다. 태어나서 성적 때문에 이렇게 서럽게 운적은 없지 않았나싶다.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대 수시 1차 합격... 마지막 2단계가 남았고 수시도 처음 그것도 하나 쓴거라 논술이나 면접을 접해본건 아니지만 왠지 모를 자신감이 있었다. 낯선 서울땅에 올라와서 첫째날 논술을 보고 기분이 왠지 좋았다. 붙을것만 같았다. 그런데 면접 보는날 난 많이 당황했다. 전부다 교복을 입고 오는것 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간 나도 나이가 들고 늙고 죽을날이 올것이다.이렇게 생각하니 ... 약간의 허무감도 생긴다.그렇다면...언제 찾아올지 모를 나의 죽음에 대비하고 남은 인생을 소중히 가꿀수 없을까 하는 의미 에서 유서를 통해서 내 인생을 반성 하고 값진 인생을 꾸려 나가려한다.죽음은 두렵다는 생각을 많이 해봤다.때로는 죽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해보았다.대부분 한번쯤은 이런 생각을 다 가져봤을 것이다.먼저 죽기 전에 나에 대한 반성을 해보려 한다.000 ..바로 나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불만인것은 .... 나의 가장 큰 단점 내성적인 성격... 남들처럼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의견을 잘 표출하지 못한 이런 나의 성격이 너무 싫었어. 조금만 더 나에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성격을 외향적으로 바꾸고 싶고 좀 더 적극적인 삶을 살아 보고 싶어. 요즘 들어 조금씩 나아 가고 있지만 나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라고 해도 남은 시간동안 만은 정말 적극적인 삶을 살아보자! 나 자신과의 약 속 꼭 지키는거다?이번엔 그동안 살아 오면서 정말 나에게 소중했던 고마웠던 분들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씩 해보려 한다.먼저 저를 이 세상에 있을수 있게 해주신 부모님 정말 감사드려요 항상 제 머릿속엔 큰 아들 제 걱정하고 계신거 잘 알아요.가게일 때문에 바쁘시고 힘드실텐데 걱정만 끼쳐드리고 ...그 동안 효도 못해드리고 이렇게 먼저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참 죄송한 마음 뿐이네요.저 하늘에서 지켜 보고있을 테니까 엄마,아빠 슬퍼하거나 상심 하지 마시고 밝은 모습으로 살아 주기실 바래요 저의 마지막 부탁 들어주실꺼죠? ...그리고 나 만큼 정말 아끼는 가장 친한 친구들 00,00,00 정말 너희들이 없었다면 나의 중고등학교 생활이 어땠을까 할 정도로 ... 정말 너희들이 있어 준 것 만으로도 고맙다. 정말 멋진 녀석들이야 다시 태어나더라도 너희들 같은 좋은 친구들 다시 만나면 좋을거야. 내가 없으면 슬프긴 하겠지만 ... 하늘에서 지켜 보고 있을거니까 끝까지 좋은 우정 유지하면서 살아 줬음 좋겠어 ...또 정말 저에게 따뜻한 사랑으로 가르쳐주신 은사님 000 선생님 정말 너무 배울게 많은 분이신거 같아요. 정말 너무 모든일에 최선을 다하시고 열정적인 모습 너무나도 제겐 부러운 모습이셨어요.
통신언어란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쓰이지 않다가 PC통신과 인터넷의 채팅과 게시판등 커뮤니티 활동에 의해 사용자가 직접 만들어낸 신종 단어를 말한다. 통신언어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 보도록 하자.통신 언어의 특징① - 표정과 동작이 담기지 않음통신 언어에는 상대의 표정과 동작이 담기지 않는다. 통신을 할 때에는 일상적인 대화와 달리 송신자와 수신자가 서로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의사 소통을 하게 된다.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말과 함께 전달되는 화자의 표정이나 동작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말로는 "그래그래, 네 말이 옳아."라고 하면서도 표정이나 동작으로 부정의 뜻을 나타낼 수도 있다.통신 언어의 특징② - 음성이 담기지 않음둘째로, 통신 언어는 시각적인 매체에 의해 전달되는 언어이므로 음성이 담기지 않는다. 우리가 말을 할 때에는 말의 높낮이, 빠르기, 성량, 음색 등도 표현된 말만큼이나 중요한데, 통신언어에는 이러한 음성이 드러나지 않는다.통신 언어의 특징③ - 신속성이 필요함셋째로, 통신 언어는 시각적인 매체만으로 전달해야 하므로 신속성이 필요하다. 여럿이 대화를 주고받을 경우,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신체 언어에 의해 '내가 먼저 말하겠다.'는 의사나 '너는 좀 가만히 있으라.'는 의사 전달이 가능하지만, 통신을 할 때에는 많은 정보를 재빨리 전달할 필요가 있다.통신 언어의 모습① - 표정이나 동작을 전달할 수 없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러한 특징으로 인하여 통신 언어는 다음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먼저, 컴퓨터 통신을 할 때에는 표정이나 동작을 전달할 수 없으므로, 통신 언어는 시각적인 표현으로 이러한 점을 보충하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는 익명성 때문에 무책임하게 비속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표정이나 동작을 전달할 수 없어서 나타나는 현상의 예(가) TT(눈물 흘리는 모습), ^0^(웃는 표정), 0.0(놀라는 표정), ^^;;(당황해 하는 표정), +_+(할 말이 없는 표정), *^_^*(부끄러워하는 표정)(나) 요즘 애들이 좀 싸가지가 없죠? 말하면 죽이뿐다.(가)와 같이 여러 가지 기호로 표정을 전달하려는 노력은 문자 언어의 결점을 보충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또, 기호 이외에 '벌벌, 비실비실' 등의 의태어를 사용하여 의사를 전달하기도 하는데, 이것 역시 표정과 동작을 담으려는 노력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나)와 같이 무책임한 비속어의 남용은 경계해야 할 현상이다.통신 언어의 모습② - 음성이 담기지 않아 나타나는 현상다음으로, 통신 언어에는 음성이 담기지 않으므로 이것을 대신하기 위해 개인적인 발음 습관이나 음운의 변동 현상, 또는 정서나 마음 상태를 그대로 표현하려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음성이 담기지 않아 나타나는 현상의 예(다) 제발 가지마로(가지 말어), 화안내면 가쥐(가지), 언능(얼른), 방가워(반가워), 시로(싫어)(라) 진짜 조아(좋아), 추카추카(축하 축하)(마) 넘행(너무해), 고파서링(고파서)(다)는 자신의 발음을 그대로 상대에게 전달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표현이므로 맞춤법에 어긋난 모습을 보이게 된다. (라)는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한 것이다. 음운 탈락이나 축약이 일어난 말을 '조아, 추카'처럼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하고 있다. (마)는 애교스러운 음성을 담은 것으로 정서 상태를 표기에 반영한 예이다. 일상 생활의 대화에서는 음성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뜻을 전달할 수 있지만, 통신 언어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므로 이런 노력을 보이게 된다.통신 언어의 모습③ - 신속성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마지막으로, 통신상에서 요구되는 신속성 때문에 준말과 띄어쓰기를 무시한 표기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통신 공간에서 사용되는 은어도 그 수가 늘고 있다.* 신속성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의 예(바) 겜방(게임방), 일욜에(일요일에), 잼 있져?(재미), 컴(컴퓨터), 글쿤요(그렇군요), 강퇴(강제 퇴장), 남친(남자 친구)(사) 낼만나서얘기하는게어때?(내일 만나서 얘기하는 게 어때?), 할말두없어.(할 말도 없어.)(아) 잠수(대화방에서 접속한 상태에서 다른 일을 하는 것), 중딩(중학생), 고딩(고등 학생)(바)는 말을 간략히 줄여서 사용하는 예이며, (사)는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표기한 예이다. (아)는 통신 공간에서 사용되는 은어의 예이다-네이버 지식 검색 534446번글에서 발췌-위에서 우리는 통신언어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 보았다.이런 통신언어의 특징을 살펴 보았을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통신언어 사용에 반대의견을 많이 가진다.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국어 파괴가 심각하다는데 있는데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국어의 특징중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는 유동성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국어는 계속해서 바뀌어 왔다는 것이다. 많은사람들이 국어의 파괴를 불러온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이 같은 현상이 국어의 유동성의 현상중에 하나라고 생각하지 결코 국어의 파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언어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인 의사 소통을 해치지 않는다면 굳이 통신언어에 대한 반대의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리고 경제학도로써 통신언어의 경제성을 살펴볼때 통신언어는 상당히 경제적이라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