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시인 뿌쉬낀‘삶이 그대를 속일지라고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이 한구절의 시구를한번이라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의 곁에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는 그 사람.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뿌쉬낀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뿌쉬낀은 1799년 6월 6일 모스끄바의 귀족가문에서 출생했습니다. 그의 아버지 세르게이 뿌쉬낀은 이름 있는 귀족가문 출신이었으며 그의 어머니 나제즈다 오시뽀브나 간니발은 18세기 터기인에게 잡혀 포로가 된 후 뛰어난 충성심으로 뾰뜨르 대제의 총애를 받았던 이디오피아의 장군 이브라김 간니발의 손녀였습니다. 뿌쉬낀의 곱슬머리와 검은 빛 피부가 증명해 주듯 그의 몸속에는 흑인의 피가 흐르고있었습니다.어린 시절 뿌쉬낀은 프랑스인 가정교사로부터 교육받으면서 성장하였고, 외할머니 마리야 알렉세예브나와 유모 아리나 로지오노브나로부터 러시아어 읽기와 쓰기를 배웠으며 러시아 민속이야기와 민요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유모를 통해 어린시절부터 러시아 민중의 생활에 대한 깊은 동정과 이해, 러시아 민간 전래문학에 관한 흥미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후에 그는 그녀에게 바치는 몇 편의 헌시를 쓰고 그녀를 자신의 ‘뮤즈 신’이라고 칭송했습니다.뿌쉬낀의 창작시기는 대개 1813년부터 1817년까지의 리쩨이 학교시절, 1817년부터 1820년까지의 뻬쩨르 거주시절, 1820년부터 1826년까지의 남러시아와 미하일롭스끼 유배시절,1830년 가을까지의 제까브리스뜨 사건이후, 그 후 1830년대중반까지로 구분됩니다.1813년 뿌쉬낀은 귀족자녀의 교육을 위해 뻬쩨르근교에 세워진 6년제 기숙학교 ‘짜르스꼬셀스끼 리쩨이’에 입학하여 당대의 유수한 석학들로부터 다양한 과목을배웠습니다. 이 시기 뿌쉬낀은 문학 활동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고 이 시절 쓰여진 그의 시가 120여 편에 달합니다. 그 중 제르좌빈의 칭찬을 받은 습작 ‘황제마을에서의 회상’ 을 비롯한 그의 초기 시 작품은 조국의 과거와 현재를 반영하는 테마와 인간의 사랑, 우정, 애수 즐거움을 구주의 및 초기 낭만주의 시인들의 영향을 받아왔습니다. 문학 활동에 있어서 태양과 같이 찬란한 광채를 내기 시작한 시기 이지만 이 시절위대한 시인은 공부에는 그다지 특별한 재능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단조로운 학교 수업이 천재의 관심을 끌기엔 역부족이었기 때문일까요? 그는 30여명정원의 반에서 26등이라는 하위의 성적을 맴돌았다고 합니다.그 후 리쩨이 시절의 명성이 문학계로 퍼지면서 ‘뻬제르부르그 시기’의 활동이시작됩니다. 1817년 6월 리쩨이 졸업이후 뻬쩨르의 외무성 관리가 된 그는 3년동안의 방탕한 사교계 생활에 빠지게 됩니다. 당시 자유롭고 진보적인 사상에 심취해 있던 뿌쉬낀은 진보적 문학 서클 ‘푸른램프’에 가담하여 미래의 제까브리스뜨 당원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였습니다.이 시기의 시에서는 이미 아나크레온풍의 ‘가벼운 시’의 기운은 없어지고, 무겁고 비극적인 모티프와 고전주의적 기풍이 증가되면서 주꼽스끼적 낭만주의의 서정성이 두드러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제까브리스뜨 시인들과 친교를 맺고부터 집필한정치적 성향이 짙은 서정시 중에서 ‘자유’와 같은 송시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라지쉐프의 시 ‘자유’와 동명인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이 밝힌 것처럼 라지쉐프의사상을 계승하면서 자유의 찬미였던 것입니다.또한 뿌쉬키의 ‘자유’는 라지쉐프뿐만 아니라 제르좌빈의 시 ‘제후와 판관들에게’와 ‘총신’의 전형적 시민적 파토스를 불러일으키는 웅변적 서정시로서 고전주의적전통을 따르고 있지만, 그 사상의 원천은 제까브리스뜨적 경향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송시는 새로운 낭만주의적 격정으로 충만 되어 있었으며, 게다가 일반적인 자유주의적 이념 외에도 나폴레옹의 독재와 그것의 몰락, 알렉산드르 1세의 총신들과 더불어 기도된 빠벨 1세의 살해 등 일련의 정치적 음모의 역사를암시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자유’는 당시 제까브리스뜨 운동가들의 정신적인지침서가 되었던 것입니다.진보적인 젊은 지식층과 전 러시아 국민의 반농노제적 기운을 반영한 그의 ‘농촌’은 감상주의 문학의 목가적인 자연민의 희망과 반농노 제도에대한 전국민적 기운의 구현자로서의 시인의 명성을 드높이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뻬쩨르부르그 창작기 마무리 작품으로 1820년 여름에 발표된 서사시 ‘루슬란과 류드밀라’는 러시아 문학 발전의 명백한 경계인 동시에 낭만주의적 승리를입증하는 작품입니다.고전주의적 서사시와 비교할 때, 이 작품은 보다 새롭고 낭만적인 인간에 관한묘사를 증시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서사시의 주인공들에게 개인적인 성격과 특징을 구체적으로 부여해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인공들의 개성에 특징을 부여하면서, 작가는 고대 러시아의 역사를 바탕으로 하는 영웅 서사시의 전형을 재현하곤했습니다. 즉 초원의 약탈자(뻬체네끄 족)로부터 끼예프를 구원한 루슬란의 형상을 통해 작가는 애국심, 용감성, 인간의 힘과 같은 러시아적 영웅의 특성을묘사했습니다. 류드밀라는 뿌쉬킨과 동시대의 여성상으로 요정 같기도 하면서, 자유분방하고 착하면서도 유쾌한 처녀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두 주인공의 모습과 심리적으로 성실하게 묘사된 행동은 독자들로 하여금 독특한 감명을 주었던 것입니다.또 자연에 대한 매혹적인 풍부한 묘사와 자유롭게 압운된 장단격과 서사시 장르에서 첫 시도된 4보격 운각시의 새로운 예술적 기법과 잘 조화되면서 시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시인은 독자들로 하여금 삶의 이유를 캐는깊은 사색을 하게 하면서 , 아나크레온적이고도 비가적인 모티브로러시아 국민성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그러나 당대 러시아 고전주의 진영의 보수적인 비평은 ‘루슬란과 류드밀라’의낭만주의적인 기운과 독창성을 비난했습니다. 현실적인 러시아 문학의 기운과 어울리지 않는, 즉 뿌쉬낀이 시도한 낭만주의 기법에 반기를 들었던 것입니다.그러나 이렇게 비평의 화살이 심해질수록 ‘루슬란과 루드밀라’ 는 더 많은독자층의 열광을 받았으며 , 그의 낭만주의 기법에 감탄한 주꼽스끼는 ‘패배한스승이 승리한 제자에게’ 라는 표시를 단 자신의 초상화를 보내 시인을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천재시인라프로 유배당했다는 것입니다.뿌쉬킨은 남부유형지에서 관대한 성품을 가진 인조프 장군 휘하에서 근무하면서 자유롭게 글을 쓰고 책을 읽을 수 있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유배지 도착 후 그는 얼마 있다가 라옙스끼 장군 일가와 함께 까프까즈로 이동하였고, 그 곳에서 바이런의 작품을 탐독 했습니다.그의 시 문학은 바이런의 작품들보다 다양한 성숙한 단계를 맞습니다. 이른바낭만주의를 개화시킨 엘레지 장르의 작품들이 이 시기에 씌어졌으며, 오를로프 장군을 위시한 ‘아르자마스’와 ‘평화 연맹’의 회원 등 제까브리스뜨 비밀 결사요원들과 친교를 맺게 됩니다.그러나 이 때 제까브리스뜨들은 뿌쉬낀의 격하기 쉬운 성격을 달갑지 않게여겼으며, 무엇보다도 천재적 시인의 장래를 염려하여 비밀 회원으로 끌어들이지 않았습니다.1820년 9월 인조프 장군이 몰다비아의 도시 끼쉬뇨프로 전근됨에 따라 뿌쉬낀도 끼쉬뇨프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끼쉬뇨프에서 그는 다양한 소수민족의 언어, 풍습, 전설 등을 접할 기회를 얻었으며, 귀향 시기의 대표적 작품으로 꼽을 수 있는진정한 자유와 사랑, 자연, 그리고 개인의 영적인 체험 등을 노래한 낭만적이고이국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까프까즈의 포로’ ‘도적의 형제’등을 발표 했습니다.1823년 8월 무신론적인 내용이 담긴 편지가 검열관에 의해 발각되어 뿌쉬낀은오데사로 추방되어 쁘스꼬프 근교에 있는 부친의 영지 ‘미하일롭스꼬예’로 전근발령되었습니다. 그해 여름 전근하면서 서사시 ‘집시들’과 ‘에브게니 오네긴’의집필을 착수 하였습니다. 주관적 낭만주의와 삶에 대한 낭만적 이상화로 일관되었던 뿌쉬낀의 서정성은 작품 ‘집시’를 계기로 점차 극복됩니다. 즉, 주인공의성격묘사가 세밀해지면서 주인공의 형상은 현실적인 사회적 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어 그의 시는 서정성이 줄고 서사시적 극적 효과가 증대되면서 개인적인심리 상태를 추격하는 그의 문체는 보다 딱딱 해집니다.한편 당시 집시들의 집필에 힘쓰고 있던 뿌쉬낀은 1825년 12월 14일 발생한제까브리쓰뜨 난이 실패했다는 소, 거절당했고 실망한 그는 4개월간 까프까즈로 여행을 떠납니다.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1830년 가을 볼지노영지에서 머물면서 ‘에브게니 오네긴’과 ‘벨낀 이야기’ ‘작은 비극들’등을 집필하면서 창작에 깊이 몰두하게 됩니다.이 시기에 뿌쉬낀은 자유의 몸이 되어 모스끄바의 시인들과 친교를 맺으면서 자신의 명성을 재확인 합니다.‘위대한 변화’의 순간이라고 그 자신이 표현했던 당시의 사회는 제까브리스뜨의투쟁의 결과가 필연적으로 가져다 준 희망찬 새 러시아의 시작이 되어야 했습니다. 새 황제와 새 정부에 대한 기대에 걸 맞는 국민의 의식 개혁과 교육의 필요성,나아가서 반농노제의 실현을 위한 정치 제도의 개선을 니꼴라이 황제 앞에제시했습니다. 그는 러시아 역사속의 위대한 뾰뜨르 대황제는 곧 평화로운 조국의 개혁가요 애국자임을 상기시키면서 니꼴라이 황제 정부의 올바른 사회 개혁을갈망했습니다. ‘뾰Em르 대제의 아라비아 인’ ‘뽈따바’ 등, 일련의 뾰뜨르 대제 시대의 영웅적인 민중의 역사를 상기시킨 뿌쉬낀의 영우 서사시적 작품들은 바로 당시 러시아 국민들의 새 조국의 앞날에 대한 염려의 소리가 되었던 것입니다.1830년 가을을 볼지노에서 보낸 그는 1823년 시작한 ‘에브게니 오네긴’을 8년만에 탈고했습니다.서사와 전 8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강약격 4각운의 14행을 1절로 노래하는장편 운문 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배경은 1810년대 말에서 1820년대 중반까지로서 당대의 러시아 사회와 문화의 현상을 시대의 주인공 오네긴과따찌야나, 그리고 렌스끼의 형상을 중심으로 구현했습니다.‘에브게니 오네긴’ 속에는 그 후 1840년대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을 꽃피운‘생리학적 인상기’ 문학, 즉 ‘자연파’ 문학의 내용을 예고한 주제가 이미 사용되고 있었고 작품 속에는 동시대의 제까브리쓰뜨와 같은 젊은 인쩰리겐찌야들의 사상과 도덕성이 주인공 오네긴과 렌스끼의 대조적인 형상 묘사를 통해 구현되어있었습니다. 작가는 오네긴의 이성과 렌스끼의 지성을 결합시켜 1820년대의 러시아 젊은했으며,
귀향-쁠라또노프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떨어져 복무하던 알렉세이 알렉세예비치(이후 이바노프)는 제대 명령을 받고 군대를 떠나게 되었다. 부대원들은 그를 보내야 하는 아쉬움과 전우애로 그의 송별회를 열고 몇몇 동료들은 기차역까지 그를 마중한다. 그러나 가차는 오지 않고 결국 그는 부대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다음날 그는 전날보다는 간단하게 작별인사를 하고 기차역으로 왔다. 어제 도착해야 했던 기차는 아직도 오직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바노프는 잠시 망설이다 기차역에 남기로 한다. 기차역에는 그가 어제도 보았던 한 여인이 앉아있었다. 그녀는 항공 정비대 에서 계약직 보조 요리사로 일하고 있던 마샤라는 여인이었다. 이바노프는 그녀를 몇 번 본적이 있었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기차를 기다린다. 마샤는 이미 낯설어진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어색하고 심지어 두렵기까지 했다. 이바노프 역시 군대를 떠난 다는 것은 마치 고아가 되는 듯하다 생각한다. 이바노프는 우울함에서 벗어나고픈 생각에 마샤에서 볼에 입 맞추어도 되냐고 묻는다. 그녀는 잠시 놀랬지만 이바노프의 조심해서 살짝 할 테니 그냥 아저씨라 생각하고 허락해 달라는 말에 웃으며 허락한다. 기차는 밤이 되어서야 도착하고 이틀 동안 그들은 함께 기차를 타고 갔다. 셋째 날, 마샤가 20년 전 태어난 그 도시에 도착했다. 이때 이바노프는 사 년째 보지 못한 아내와 두 명의 자식이 기다리는 집까지는 아직 하루를 더 가야하는데도 마샤를 따라 내린다. 마샤는 그의 관심에 큰 감동을 받는다. 이틀 후 이바노프는 다시 고향을 향해 출발했다. 그는 마샤에게 입 맞추고 영원히 그녀를 기억하겠노라 약속한다. 마샤는 눈물로 그를 배웅한다.한편 그의 고향에서는 그의 아내 류보프 바실리예브나와 열두살난 아들 뾰뜨르, 나스쨔가 엿새째 기차역으로 그를 마중 나가고 있었다. 결국 엿새째 되던날 이바노프가 도착하고 그는 4년만에 아들 뾰뜨르를 보게 된다. 두 사람은 집으로 향했고 그의 아내는 집에서 그들을 마중했다. 일이 끝나고 잠시 집에 들른 사이 이바노프가 도착한 것이다. 이바노프와 류보프는 감격의 포옹을 한다. 류보프는 곧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아들 뾰뜨르는 다섯 살인 여동생 나스쨔와 어미니에게 심한 잔소리를 하며 식사준비를 한다. 이바노프는 애늙은이 같은 뾰뜨르를 보며 놀라지만 한편으론 이상야릇한 거부감을 느낀다. 열두 살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그의 아들을 보면 그는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별탈없이 저녁식사를 잘 하던 중 나스쨔의 말 한마디 때문에 일이 벌어진다. 그녀가 자신의 삐로그를 챙겨 놓았다가 셰묜아저씨게 드린다는 말을 듣고 이바노프는 셰묜이란 사람에 대해 처음 알게 된다. 셰묜은 이바노프가 없는 사이 이년 여 동안 그 집에 드나들며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하고 필요한 물건들을 가져다주기도 하며 류보프를 흠모하던 사내였다. 그의 존재를 알게 된 이바노프는 아이들이 자러 들어가자 류보프와 싸우기 시작한다. 그는 계속해서 셰묜의 이야기를 하며 추궁한다. 이때 뾰뜨르는 잠들지 않고 부모님의 모든 대화를 숨죽인 채 듣는다. 싸움이 격해지자 나스쨔가 깨서 울기 시작하고 뾰뜨르는 아버지에서 엄마는 잘못한 것이 없다면서 대든다.그렇게 밤이 깊어가고 날이 밝아 뾰뜨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집에는 어린 동생밖에 없었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뾰뜨르는 나스쨔에게 옷을 입히고 급하게 어디론가 향한다. 한편, 이바노프는 이때 기차역에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가족들을 떠나 마샤에게 갈 생각으로 기차에 오른다. 그녀와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생각과 자신이 그녀보다 나이가 좀 많다는 등의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그는 무심히 차창 밖을 바라본다. 기차에서 멀리 떨어진 기차역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두 아이가 뛰어오고 있었다. 큰 아이가 작은 아이의 손을 잡아끌며 달리고 있었는데, 그 둘은 같이 넘어졌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온 힘을 다해 기차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이바노프는 계속되는 마샤에 대한 생각으로 뛰어오는 두 아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두 아이는 이바노프가 있는 쪽을 향해 자기들을 봐달라는 듯 손을 흔들어 댔고 이바노프는 그 둘을 자세히 보았다. 그는 다름 아닌 뽀뜨르와 나스쨔였던 것이다. 기진맥진해져 넘어지는 아이들을 더 이상 바라볼 수 없었던 그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기차는 이미 출발했고 그의 사랑하는 두 아이들은 철로를 따라 계속 달려오고 있었다. 이바노프는 배낭을 기차 밖으로 던졌다. 그리고 아이들이 달려오고 있는 모랫길을 향해 뛰어내렸다.
눈-빠우스똡스끼모스크바에서 연극을 하던 여배우 따찌야나 뻬뜨로브나는 전쟁으로 인해 작은 시골도시로 피난을 오게 된다. 그녀는 뽀따뽀프 노인의 집에 세 들어 살게 되는데 세든 지 한달만에 그 노인이 세상을 떠났다. 따찌야나는 무료한 시골 생활 속에 모스크바를 떠난 것을 후회한다. 하지만 이미 모스크바로는 돌아 갈 수 없어 그녀는 시내의 병원으로가 공연 할 것을 결심하고 마음을 가라앉힌다. 따찌야나는 차츰 이 도시를 맘에 들어 하고 집안의 물건들에도 익숙해지고 애정을 갖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딸 바랴에게 집안의 물건을 건들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녀는 뽀따뽀프 노인에서 현재 흑해 함대에 근무하고 있는 아들이 한 명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책상 위의 순양함 모형 옆에 그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그의 사진을 보며 어디선가 본 듯하다 생각하며 혼자만의 대화를 하곤 한다.겨울이 한창일 무렵 뽀따뽀프의 이름 앞으로 같은 필체의 편지가 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편지들을 책상 위에 계속 쌓아 놓다가 어느 날 밤, 잠에게 깨어나 잠시 망설이다 편지를 뜯어보았다. 그 편지는 노인의 아들이 쓴 편지로 자신이 부상을 당해 병원에 있으나 부상은 심하지 않다는 내용과 아버지에 대한 걱정들이 써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집을 자주 생각한다고 했다.눈이 쌓인 마당, 낡은 정자, 자작나무 연기 냄새, 조율된 피아노, 촛대 위에 켜 있을 타래초, 자신이 끝내 고치지 못하고 간문에 걸린 방울 등. 그는 자신의 집의 소박한 것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편지는 어쩌면 며칠 간 휴가를 갈 수 있겠다는 말로 끝을 맺고 있었다.따찌야나는 그가 보고 싶었던 것과는 너무 다른 상황을 보고 그가 얼마나 힘들지 생각하며 그가 바라는 모습 그대로 집안과 집 주위를 정돈하기 시작한다. 한편, 뽀따뽀프 노인의 아들 니꼴라이 뽀따뽀프 중위는 기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루 이상은 머무르지 못할 것 같았다. 중위는 마을에 도착해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고 집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는 너무나 실망하며 눈시울을 붉힌 채 집 근처로 갔다. 그는 잠시 둘러보기만 할 생각으로 조심스레 울타리를 열고 들어간다. 따찌야나는 그를 알아보고 그를 집안으로 들어오게 한다. 집안의 모든 것은 그가 너무나 그리워하던 그대로였다. 두 사람은 서로 어디선가 보았던 것 같다는 말을 나누며 하루를 보낸다. 새벽이 되자 따찌야나는 그를 깨웠고 기차역까지 배웅한다. 뽀따뽀프는 돌아가는 길에 따찌야나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에는 그가 1927년 끄르임 반도에서 그녀를 보았었고 자신을 지나쳐 걸어가던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았으며, 자신의 전부가 될 수도 있는 여자가 지나쳐 갔다고 느꼈다고, 그 아가씨가 바로 당신이라고 써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항상 그리워했고 삶이 그에게 은총을 베풀어 따찌야나를 다시 만났다며 사랑을 고백하는 내용의 글이 써있었다. 따찌야나는 편지를 내려놓고 자신은 끄르임 반도에 간 일이 없지만 이제 와서 그 아가씨가 자신이 아니라고 그를 설득시켜야 하는 것인가 하고 혼잣말을 하며 수줍게 웃는다
국어정서법 리포트(한자어 사용 논쟁에 대하여)요즘 신문이나 방송매체들을 접하다보면 한자 사용에 대한 논쟁이 끊임없이 일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한자를 사용해야 한다는 측과 한자는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양측의 팽팽한 주장은 때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그런 논쟁들을 보고 있으면, 무의미한 싸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한글을 사용하고 있지만 한글의 70%이상이 한자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자어 사용에 대한 논쟁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한자어 사용에 대한 저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한자사용은 필수 불가결한일이라 생각합니다. 위에서도 잠깐 말했듯이, 한글의 반 이상의 부분이 한자어입니다. 우리가 오래 전부터 사용하고 있는 한글은 표음 문자입니다. 표음문자란 말 그대로 음에 중심을 두고 나타낸 말입니다. 이런 표음문자에는 뜻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바로 이 단점을 보안해 주기 위해 표의문자인 한자가 있는 것입니다. 한자를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같은 소리가 나는 여러 단어들을 구분할 수 있게 되고 뜻이 모호했던 단어들을 다 파악하게 됩니다. 물론 한글은 한자어의 표기를 한글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자의 교육 또한 필요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무리하지 않게 한자 교육을 시킨다면 한자사용에 대한 어려움은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받아왔던 고등교육 과정 중에 한문 수업은 조금은 어려웠던 걸로 기억됩니다. 한자도 다 습득하지 못한 상황에서 어려운 한시를 배우고 긴 글들을 배웠었습니다.이러한 한자교육으로는 실생활에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이런 교육환경 때문에 한자사용 폐지에 대한 의견들이 나올 수 있지 않았는가 생각해봅니다. 교육방식을 개선해서 라도 한자의 교육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한자사용의 포기는 우리말인 한글의 반쪽을 포기하는 것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합니다.한자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예들은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선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말씀해 주신 예들만 생각해보아도 몇 가지나 됩니다.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예는 북한의 한자교육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북한에서 한글만 사용했던 때와 한자교육을 행하여 한자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 지금 국민(북한의 인민)들의 국어능력이 향상되고 학생들의 국어성적도 올라갔다는 이야기에 저는 역시 한자의 교육과 사용은 꼭 필요한 일이라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예로 고등학교시절의 제 친구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다른 과목의 성적은 좋았지만 국어과목 성적은 그리 좋지
우리들과 매트릭스처음 우리들이라는 책을 접하게 된 저는 제목만 보고서는 전혀 다른 내용을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우정이나 사랑, 혹은 혁명의 그런 내용일 줄 알았는데 우리들이란 책 속에 펼쳐진 이야기들은 전혀 다른 내용의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는 약간은 허무하고 어이없었지만 알 수 없는 매력을 지닌 것 이었습니다.우리들에 나오는 이들은 일정하게 짜여 진 계획 속에서 생활하고 개인의 자유란 없는 그런 사회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은혜로운 사람이라고 믿는 이가 붙여준 번호에 따라 불리워지며 혹독한 훈련과 빈틈없는 생활을 견디면 살아갑니다. 그들은 성생활조차 사랑 없이 짜여 진 계획에 의해 하는 그런 이들입니다. 현재의 우리가 보기에는 정말 이해 할 수 없는 생활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뇌수술이라고 부르는 행위를 통해 그 사회 속에서 살아갑니다. 푸르른 제복을 입고 단일제국이라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은 처음부터 자유나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개념 자체는 처음부터 알지 못하는 듯 했습니다.그들의 투명한 건물이나 기계적 도시는 아름답다거나 신기하다라는 생가보다는 답답함과 거부감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들에게 희망이란 없었습니다. 결말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예브게니 짜마찐은 자신이 살던 시기의 러시아를 이 소설을 통해 비판하고 하고 국민들에게 일깨움을 주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우리들이라는 소설을 읽는 동안 교수님이 우리들과 매트릭스를 비교해 보라고 하셨던 말씀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매트릭스에 나오는 세상 역시 인간의 자유란 없습니다. 그들은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존재하는 세상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잊은 채 살아갑니다. 그런 그들을 구원하려는 집단이 있었고 그들은 인간의 자유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 집단은 그들을 더와 세상을 구할 절대적 존재인 ‘그’를 기다렸고 마침내 그가 나타나 어둠에 대항하여 싸우고 자유라는 희망을 얻게 해주었습니다. 헐리웃 액션의 화려함과 현란한 그래픽 화면 속에 넋이 나가 자칫 중요한 의미를 놓칠 수 도 있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지금의 우리들에 대한 경고를 잡아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