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학기 문화산업론과제 : 문화산업에 관한 에세이1. 서 론6.25 전쟁 이후에 우리나라는 경제개발 정책 5개년 계획을 몇 차례 실시함으로써 급속도로 발전하였고 놀랍게도 오늘날 우리는, 원조을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세계 유일의 나라로 성장하였다. 시대가 변해감에 따라 1,2차 산업보다 3차산업(서비스 산업) 위주로, 또, 지식경제 같은 융합산업이 미래의 성장동력으로서 중요하게 인식되어 지고 있다.이는 문화산업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 중 예술은 융합의 형태로 거의 모든 장르에서 트렌디화 되어지고 있는데, 예술의 분야로 파생된 뮤지컬이 그러한 예로서 오페라의 음악과 연극 및 드라마적 요소가 서로 융합된 형태로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또한, 현재는 영화, 연극, 뮤지컬이 같은 줄거리에 각 극의 형식에 맞게 각색되어지며, 각광받는 시대가 되고 있다. 따라서, 대중문화와 공연예술과의 만남이라는 부분도 우리에겐 더 이상 어색한 부분이 아니다.이번 에세이에서는 공연예술(뮤지컬, 연극)과 대중문화가 어떠한 형태로 발전되어지고 있으며, 작품에서 어떠한 것들이 관객을 끄는 요소가 되는지 중점을 두고 이야기하려고 한다.2. 본 론먼저, 예술의 한 장르인 뮤지컬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뮤지컬은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스타일과 제작방향의 면에서 다른 색깔을 가지며 많은 뮤지컬 작품들을 생산하게 된다. 19세기 후반에 접어들어 유럽을 풍미한 오페레타와 그 계열의 음악극 형식을 수용하면서, 20세기 이후에는 미국인의 기호에 맞추어 발달한 대중 음악(가요or 팝)을 삽입한 뮤지컬들이 대거 등장(맘마미아)하기도 했고 현재에는 음악이 들어간 연극도 뮤지컬이란 말로 대신하여 쓰기도 한다. 뮤지컬은 오페라의 한 부분인 오페레타에서 출발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뮤지컬은 오페라의 형식을 많이 닮았다. 그러나 오페라는 주로 고전적인 문학의 스토리가 중심이며 음악의 형식은 고전주의 음악에 근거하고 있기에 뮤지컬 음악은 오페라의 노래와 같은 형식일 수도 있지만 보다 대중적이다. 현대 공연 예술은 탈 장르적이고 복합 장르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어 연극과 오페라, 뮤지컬과 연극, 뮤지컬과 영화가 서로 상호보완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뮤지컬 작품의 구성요소는 음악, 노래, 춤, 연기 그리고 스토리의 내구성과 연결고리(scene과 scene사이의 진행), 주제(message)등이 있는데, 조금 더 현실적(상업적인 흥행요소)으로 말하자면 그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의 실력과 인지도, 제작자의 홍보, 유능한 스텝진, 연출가와 배우사이의 조화의 정도에 따라 작품의 성공여부가 결정되고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들로 하여금 감동, 곧 공감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공감이란, “공동체 속에 뒤섞임”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공동체가 가진 상식에 물드는 것이 아니라 그 상식을 받아들이면서 무엇이 옳은가를 논의하고 계속 탐구하라는 것이다. 물론, 사회 속에 뒤섞여 살다 보면 저절로, 나 자신도 모르게 사회 통념상의 윤리를 인습하게 된다.따라서 작품에 대한 공감이 많아질수록 시대의 생각을 대변하기도 한다.최근에 개봉했던 영화 ‘도가니’를 예를 들면, 장애인에 대한 인권유린을 이야기함으로써, 일부 교육자와 정치가들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와, 공감을 일으켰고, 그 분노와 공감은, 사회의 정책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하나의 작품에 모두가 공감할 순 없지만, 많은 이들이 공감을 해야 그 작품은 생명을 얻게 되고, 그로 인해, 더 좋은 작품들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게 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작품은 단순히 “작품”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고, 더 나아가 사회를 변화 시킬 수도 있다.얼마 전 “언틸 더 데이”란 뮤지컬은 본 적이 있다. 이 뮤지컬은 북한 꽃제비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이었는데,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가고, 동냥을 하는, 북한의 실상을 간접적으로 느끼고, 아기를 임신한 여성의 배를 발로 밟아 낙태 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참을 수 없는 분노 및 반대로 현재 내가 얼마나 큰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뮤지컬을 통해 현 시대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그렇다면 이런 공감이 많은 작품(대중성 있는 작품과 동일시 하겠다)만이 좋은 작품일까?라고 나에게 반문해 보자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대중성 있는 작품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예술성을 고집하는 작품들도 어느 정도 수준의 공감을 내포해야 된다는 뜻이다.작품들은 삶 자체를 반영하고 있다. 하나의 명작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인간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수많은 사조들이 난무하게 거론되며, 비판되어지고, 다시 평가받기를 반복하며 인간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어지고 있다. 따라서, 작품자체는 인간의 삶의 작은 부분일 수이지만, 크게 나아가서는 인간전체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공연은 우리의 삶이며, 인간의 삶을 대변한다. 결론적으로 공감을 창출해 내려면, 인간의 삶을, 가능성이 있는 허구를 구현해내고 창출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 위의 글을 읽고 '강남좌파'에 대한 최근 현상을 맑스주의적 혹은 베버주의적 관점(또는 혼합적 관점)을 활용하여 각자 나름대로 설명해보시오.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경부고속도로 즉, 영남위주로 성장하였고, 이는 1970, 80년대 영남권과 호남권의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정치권에서는 이런 지역감정을 부추이며, 이용하였고 국가 행정조직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런 환경에서, 고위 관료들이 승진을 하려면 정치적 성향이 어떻게 되느냐가 주요 관건이었다. 이는 김대중 정권으로 바뀌면서 진급이 어렵던 호남권 고위공무원들이 대거 승진했던 현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렇듯 우리는 영남 호남 위주의 양극화를 보아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강남 좌파”라는 독특한 소재가 나타났고 이념의 다원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왜 일어나고 있고 맑스와 베버의 계급론적 관점으로 이것을 어떻게 풀 수 있는지 규명해보려고 한다.강남좌파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편의상 강남에 살면서 혹은 기득권 세력, 부자이면서 보수적 관점보다는 서민의 입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내리도록 하겠다.그렇다면 이 정의가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해석의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자신의 행동은 항상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영악한 계산을 하고 있지만 서민들에게는 너희편이다’라는 위선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이러한 점은 지금까지 양극화로 좌파와 우파 혹은 영남과 호남으로 나누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으며 사회적 흐름,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기득권이 자신의 계급을 공고히 하기 위한 또 하나의 이념을 내세운 것이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최근 조국 교수가 자신 스스로 강남좌파라고 커밍아웃 하고, 그것을 당당하게 대처해가는 과정에서, 많은 질타도 받았지만 그만큼 많은 스포트라이트도 받게 되었다. 이것이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좋은 예이다.마르크스는 “지금까지의 모든 인간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라고 말했다.실질적으로 자본주의에서 제도적인 계급을 없지만 사회적 계급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자본가와 노동자, 즉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로만 구분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회가 그만큼 복잡해지고, 분화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면 삼성 이건희 회장은 자본가이고, 그 외 하위 CEO, COO, CFO들은 다 노동계급이라고 볼 수 있는가?이처럼 사회가 점점 세분화되어 맑스주의로는 세분화된 계급을 표현하기가 힘들게 되었다.이에 베버는 맑스의 계급론과 같이 사회계층을 구분하는데 있어서 경제적 자원을 바탕으로 구분한 계급적 차원을 인정하였고, 더 나아가 지위와 파벌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경제적 자원에 있어서도 맑스가 언급했던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라 계급을 구분하는 것에 동의를 하면서도 그 이외에 학위나 졸업장, 기술 자격증 등의 다양한 요인들을 제시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생활양식을 통해 표현되는 지위에 따라 계층을 구분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 지위를 결정하는 생활양식으로는 의식주를 비롯하여 말투나 몸짓, 직업 등을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파벌을 형성하는 것은 권력의 측면에서 계급이나 지위와 무관하게 계층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하였다.요즘 정치판을 바라보자면 대표적으로 흥미를 둘 수 있는 인물이 안철수 교수를 들 수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본인은 개의치 않치만 “강남좌파“란 책을 쓴 강준만씨는 이들을 강남좌파의 종결자라고 표현을 하였다. 왜 강준만씨는 안철수 교수를 대표적인 강남좌파로 정의를 내렸을까?이를 베버의 시각에서 바라보자면, 경제적 자원을 바탕으로 구분한 계급적 차원 및 사회적 지위와 파벌, 정치적 권력 등의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안철수 교수는 전문직종과 회사의 CEO로서 경제적 수단, 사회적 지위를 소유하였다. 또한 개인적인 횡보를 한 듯 보이나 박원순 시장을 후원하고, 시골의사 박경철 또한 같은 생각을 가지고 행동을 하였으므로 전문적인 당파는 아니어도, 하나의 파벌을 형성하였다. 그 파벌은 국민의 소통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켜줌에 따라 정치인들도 불안에 빠뜨릴만큼 정치적 영향력를 발휘하고 있다. 베버는 권력을 '타인의 힘을 거슬러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능력' 이라 하였는데 안철수 교수는 자의든 타의든 정치권에 영향을 주는 인물로서 베버의 계급적 관점에 높은 위치에 부합하는 인물이다.안철수 교수는 국민적 사랑을 받으며, 여럿 매체에 주목을 받고 있는데, 신드롬에 가까운 이런 현상들은 개인적으로 시장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은 안철수 교수 개인으로 봤을 때도 전혀 손해볼 일은 아니다. 화제가 되었던 주식기부도 실제로 신드롬이 나타나면서부터 정치세력주로 분류되어 몇 배나 올랐고 실질적으로 기부를 해도 더욱 많은 돈을 번 셈과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직업적 정치인이 아니기에 이러한 점이 정치적 수를 잘 두었다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이슈화되고 있는 이러한 시점에 기부를 한다는 것도 정치를 업으로 삼는데 있어서 기회의 폭을 늘여놨다고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것은 단지 때를 보고 있다라는 신호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강준만씨의 말처럼, 안철수 교수는 서민들의 편에서 서있지만, 서민들의 소통의 욕구와 정치인의 불신을 해소시켜줄 대안으로서 긍정적 방향의 강남좌파, 종결자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