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쿼터스의 이해 (Ubiquitous)목차1. 유비쿼터스란? 2. 유비쿼터스 시스템의 4가지 주요특징 - Anytime, Anywhere, Anything - 가상현실과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차이 3. 실생활 속 유비쿼터스 - 홈 네트워킹 시스템 4. 유비쿼터스 기술 과제 5. 순기능과 역기능 6. 문제와 극복유비쿼터스란?어원 : Ubiquitous [jubíkwts] 어디에나 있는, 편재하는(omnipresent) 다양한 종류의 컴퓨터가 사람, 사물, 환경 속에 내재되어 있고, 이들이 서로 연결되어, 필요한 곳에서 컴퓨팅을 구현할 수 있는 환경 사용자가 컴퓨터나 네트워크를 의식하지 않고 장소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자율적 컴퓨팅기계가 사용자의 행동을 배워 필요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구조기계를 사용하기 위해 사용자가 기계를 배워야 하는 구조현재 유비쿼터스메인프레임의 시대PC의 시대유비쿼터스 IT 사회제2의 물결제3의 물결제1의 물결컴퓨터 인간컴퓨터 = 인간컴퓨터 인간거대하고 고가인 컴퓨터 한대를 복수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PC가 보급돼 1인 1대씩 컴퓨터를 사용여러 장소에 숨어 있는 컴퓨터를 사람들이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는 자각이 없는 상태로 이용화분자판기디지털TV침대커튼화장실건물와이저(Mark Weiser)의 설명유비쿼터스 컴퓨팅의 4가지 주요 특징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음 사용자가 의식할 수 없음 가상공간이 아닌 실제 세계에서의 어느 곳에서나 사용이 가능 인공지능 인터페이스로서 사용자의 상황(장소, ID, 장치, 시간, 온도, 날씨 등)에 따라 서비스가 변해야 함컴퓨터 = 도구유비쿼터스컴퓨터컴퓨터컴퓨터컴퓨터컴퓨터X X Xu-배지u-목걸이u-의복u-신발Anytime, Anywhere, Anything가상현실과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차이'현실세계로 돌아가자(Back to Real World )'인간 가상컴퓨터 현실inout실생활 속 유비쿼터스버스를 타거나 전철 개찰구 통과할 때 사용하는 교통카드 핸드폰, P2P 등 여러 아파트들의 핸드폰으로 집안내의 기기를 조절하는 것 –홈 네트워킹 텔레메틱스홈 네트워킹 시스템지능형 홈 미래 신개념의 주택 안정성, 쾌적성, 표현성 인간의 욕구 충족 극대 네트워크화된 각종 생활가전을 통해 질 높은 서비스 제공1 2 3 4유비쿼터스 기술 과제공간적 지리적 제약으로부터의 해방 통신대상 제약으로부터의 해방 서비스 및 컨텐츠 선택의 제약으로부터의 해방 통신용량의 제약으로부터의 해방순기능과 역기능지속적 성장이 가능한 순환형 시스템의 정착 정보습득과 활용이 최적화돼 소모성 자원의 효율적인 사용이 가능 대량 생산의 획일적인 '하드와이어드' 사회를 개개인의 다양성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프로그래머블' 사회로 탈바꿈1) 순기능1) 역기능개인적 차원 - 사생활 침해 사회적 차원 - 소외계층의 부조화 불법 콘텐츠 국가적 차원 - 국가간 정보화 격차의 심화문제와 극복정보 수집 및 가공, 독점의 위협성 크래킹에 의한 정보 유출, 바이러스 유포, 각종 컴퓨터 범죄, 프라이버시 침해, 저작권 침해 등 누군가의 실수가 곧바로 범죄에 이용되고, 시스템의 작은 버그가 엄청난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 개인의 정보가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무차별적으로 수집․가공, 판매되고, 그러한 정보들이 몇몇 소수의 손에 독점되어 개인적인 습성과 취향 등이 상업적으로 이용될 가능성1) 문제2) 극복네트워크와 컴퓨터를 합리적이고 안전하게 활용하기 위해 확실한 보안의식을 일반 사용자들에게 인식시켜 주는 것이 필요 관민일체로 더욱 안전하고 엄중한 방어환경 구축 정보 공개의 등급과 적절한 제한{nameOfApplication=Show}
신학자이면서 철학자이고, 또 성직자이면서 늘 자기의 죄성에 마음 아파하던 고뇌에 찬 한 인간, 아우구스티누스. 그는 과연 어떤 삶의 발자취를 걸어왔을까요?누군가에 대해 알아보려면, 그가 과연 언제 태어났고 언제 죽었는가에 대한 관심부터가 떠오릅니다. 왜냐하면 그가 어떤 시대를 살았는가가 그가 누구인가를 말해주는 수형도의 제일 앞자리를 이루기 때문이죠.아우구스티누스는 서기 354년 11월 13일 타카스테에서 출생하여, 430년 8월 28일 히포에서 사망하였습니다. 그는 이 지상에서 76년의 삶을 누렸으나, 그가 살았던 세기는 4세기와 5세기에 걸칩니다. 그의 출생연대는 기독교가 국가에서 공인된 후 41년이 지난 후이고, 그의 죽음은 서로마가 476년만에 멸망하기 36년 전에 해당됩니다. 이 같은 몇 개의 연대적 연관성만으로도 그가 살았던 시대의 격동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지요?아우구스티누스가 살았던 시대의 로마제국은 정치, 군사, 경제, 문화 등의 여러 국면에서 격변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었습니다. 본래 로마는 지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지중해 주변 세계를 통일하고, 동으로 시리아, 옛 페르시아 지역 등의 문화적 보고들을 포용하는 문명의 종합전시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다양성과 이질성이 세계 로마를 대표했지요.
니코마코스 윤리학 - 3권수강 과목 :서양 고대 철학담당 교수 :박 성 호 교수님제출 날짜 :05년 4월 11일학 과 :철 학과학 번 :20040063이 름 :지 성 신목차Ⅰ. 서론Ⅱ. 본론(1) 행위의 일반적 구조와 덕의 관계(2) 선택과 심사숙고(3) 용기와 절제Ⅲ. 결론Ⅳ. 참고 문헌Ⅰ. 서론옳고 그름의 이해가 공간적 ? 시간적 사건들의 제한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고 존재하는 초월적인 존재인 단일한 ‘좋음(善) 자체’의 인정에 달려있다고 믿는 한, 윤리학을 형이상학의 소산 이외의 다른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여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지나친 도식적 윤리관에서 탈피하여 윤리적 진리와 가치의 개연성을 인정하며, 따라서 경험적 성격과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개념이 요청되고 등단하게 된다. 왜냐하면 윤리에 있어서는 형이상학과 달리 유효성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무엇을 아는가 함보다는 어떻게 유효한 인물이 되는가 함이 문제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어떻게’의 올바른 방법으로 자연적 덕, 즉 습관화된 성격의 상태로서의 중용을 제시한다.aret?는 하나의 상태(굳어진 상태)이다. 우리는 지난 2권에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도덕적 덕은 실천을 통해서만이 유효하고, 도덕이 목적을 향유하고 있기 때문에 실천 이전에 사고의 단계는 필연적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제3권의 논의가 바로 이 부분에 해당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선행의 조건들을 공부하기 전에 행동의 일반적인 구조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1장에서 3장까지는 하나의 행위가 어떠한 조건 아래서 고의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는가를 묻고 있으며, 5장에서는 도덕과 비도덕은 고의적인 것이라는 주장을 정립한다. 그 과정에서 특히 심사숙고와 선택에 관한 이론이 전개된다. 6장부터 마지막까지는 앞 권들에서 논의되었던 도덕적 유의 종합적 예시로서, 용기와 절제에 관한 설명을 들어 중용의 덕의 종류에 관해 구체화한다.Ⅱ. 본론(1) 행위의 일반적 구조와 덕의 관계하나의 행위가 시초를 가지고 있는 것들을 그는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상태를 이른다. 즉 자신의 의사에 따라 이행 여부를 충분히 결정할 수 있거나, 혹은 충분치는 않더라도 그 반대편의 선택 역시 행위자의 의사에 주어져 있는) 경우이다. 이 경우 행위자가 자신이 처한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가가 문제의 분기가 된다. 왜냐하면 행위란 개별적인 것들에 속하는 것이요, ‘유의적’이란 말과 ‘무의적’이란 말은 행위가 행해지는 순간과 관련되어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행동하는 경우에는 그것은 무지나 무의식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무지가 무의적인 행위를 이끈다는 것은 타당해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무의적인 것이 되려면 고통과 후회가 따라야만 한다. 「왜냐하면 무지 때문에 어떤 일을 하고서 그 행위에 대하여 조금도 마음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은 무엇을 자기가 하고 있었는지를 몰랐으니까 유의적으로 그 행위를 한 것은 아니나, 고통을 느끼고 있지는 않는 까닭에 무의적으로 했다고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의적인 행위란 ㉠거부가 불가능한 강제성을 띠는 상황과 ㉡무지로 인한 경우로 나뉠 수 있다. 따라서 플라톤이 규정한 무의적인 행위의 원인으로서의 인간의 정념-노여움과 분노- 역시 유의적으로 다루어야 할 분류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반박한다.그러므로 무의적이지 않은 모든 행위에 관하여서 인간이 그 시동인으로서 관여할 수 있다면 덕은 유의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덕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나 악덕한 사람이 되는 것도 우리 자신의 의도를 따르기 때문이다. 고의적이지 않은 행위에 따른 결과를 악덕으로서 비난할 수는 없다. 「여러 가지 악덕 가운데 비난 받는 것은 우리 자신의 힘의 범위 안에 있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사악이 유의적인 것으로 분류되는 것이고, 행위 중 무의적인 원인에 근거하나 일견 사악하게 보이는 행동들에 관하여서는 다만 책임의 소재를 물을 수 있을 뿐이다. 앞권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어떤 특정한 일을 줄곧 하과는 반대로 사람이 고의로 악한 행동을 저지를 수 있다고 인정하였다. 이와 아울러 그는 선택의 의미를 분석하고 있는데 이 선택의 문제는 고의로 죄를 짓는 사람은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이론에서는 제기조차 될 수 없는 문제라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선택은 일반적으로 욕망과 노여움, 소원, 일종의 의견으로서 주장되어 왔지만 ㉠욕망과 노여움에 관하여서는 비이성적인 동물들과의 차이성) 때문에, 그리고 억제를 잘하는 사람은 선택하고서 행동하지만 욕망에 따르는 행동은 선택을 수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원에 관하여서는 소원은 대개 목적에, 선택은 수단에 관계하며 또한 선택이 소원과는 달리 우리 자신의 힘이 미칠 수 있는 것들에만 관계된다는 점에서 ㉢의견에 관하여서는 선택이 현실적인 한계를 갖는데 반해 의견은 영원함과 불가능한 일에도 존재할 수 있고, 의견은 참과 거짓에 의해 가려지나 선택은 좋고 나쁨에 따라 구별되는 차이점에 의해 그 옳지 않음을 드러낸다. 다만 선택은 유의적인 것이다.) 그러나 유의적인 모든 것이 선택의 대상은 아니기 때문에 선택이란 미리 숙고함으로써 결정된 것이 아닐까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술한다.우리는 성취하려고 노력하는 목적에 관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목적 달성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들에 관해서 생각해야만 한다. 여러 가지 대안들 중에서 어떤 수단이 더 나은 것이고 왜 다른 것보다 그것이 더 나은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이것을 실천적 사고practical thinking)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재미로 생각을 하거나 재미로 숙고하는 일은 거론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할 일이 ‘있으니까’ 심사숙고한다. 그리고 아무 일에서나 관련된 것도 아니고 우리들에게 관계된 일에 대해서만 심의한다. 우리들에게 이해관계가 있고 우리들에게 의존하는 일에 관해서만 숙고한다는 것은, 영원불변하는 존재(자연 세계의 질서, 수리 논리적인 명제, 신학적 진리와 같은 존재)는 심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을 특히 지성에 있어서도 우리의 힘이 미칠 수 있고, 또 이루어질 수 있는 것들에 관하여서만 의미가 있다. 숙고를 통해 선택이 이루어지는 까닭이 바로 이것이다.심사숙고에도 방법이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기하학적 방법을 연상할 수 있다. 이것은 목적으로부터 후진적으로 역행하는 분석 연구인데, 수학에서 도형을 구성하는 방식과도 같다. 미리 구성이 상정된 도형으로부터 출발하여 그 조건이 무엇인가를 묻는 이러한 방법이 가능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목적에 관하여서는 심사숙고를 거치지 않고 오직 수단에만 관계시키기 때문이다.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이기 때문에 목적은 다 같다.) 그러니 선택한 수단이 도덕적인가 비도덕적인가를 논할 여지가 있을 것 같으나, 문맥으로 보아 아리스토텔레스는 수단의 효과에 역점을 두고 있으며, 도덕성에는 별다른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2장에서 우리들이 건강을 원한다 할 때에도 건강에 있어 필요한 수단들을 분석하는데 이 선택은 도덕적 책임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수단의 효과에 역점을 둔다는 말은 도덕적으로 평가할 원리를 새삼 문제 삼지 않고, 다만 어떤 행동의 구조 안에서 기술만이 문제되어진다는 뜻이다. 좋은 선택이 의도의 올바름에 의하지 않고 수단의 효과에 의하여 측정된다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Ⅰ-(1)의 주장에 모순되는 것 같이 보이며 따라서 저술의 전체적인 부분과 연관하여 다시금 찬찬히 살펴볼 여지를 남긴다.(3) 용기와 절제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 최고선이라고 주장하고 이성에 따라 행동한다는 이념을 행복에 관련시킴으로써 용기나 절제와 같은 전통적인 덕목들을 이성에 의거하는 다양한 행동유형으로 분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이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전통적 미덕의 삶이 최선의 삶의 형태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시도를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아리스토텔레스는 도덕적 덕 중의 하나를 절제라고 부른다. 절제란 쾌락에 빠져들려는 유혹을 또는 부(富)와 같이 제한적으로 좋은 것을 너무 추구하려는 유혹을제의 덕을 가지게 되면 부를 적당량으로ㅡ즉, 마치 부 자체가 목적이고 또 무제한적으로좋은 것인양 부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다른 무엇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ㅡ추구할 수 있게 된다.아리스토텔레스는 도덕적 덕 중의 또 하나를 용기라고 부른다. 쾌락에 탐닉함으로써 우리가 놓치기 쉬운 보다 더 중요한 선을 위해서 쾌락의 유혹을 물리치도록 습관화된 성향이 절제이듯이, 그와 마찬가지로 용기란 좋은 인생을 위해 우리가 반드시 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에 따를 수 있고 어떤 고통이든 감내하도록 습관화된 성향이다. 어렵고 지루한 일이 고통스러워서 그것을 회피하는 습관은 우리들이 가져야 할 진실로 좋은 것에 해당하는 지식과 기술을 가지지 못하도록 방해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러한 나쁜 습관을 비겁이라는 이름의 악덕으로 부르고 있다.진정으로 좋은 것을 얻기 위한 고통스러움과 고생을 습관적으로 회피하는 사람은 전쟁터에서 부상이 두려워 도망치는 군인과 마찬가지로 비겁한 자에 지나지 않는다. 좋은 동기의 승리를 위해 자신의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의 부상을 두려워하지 군인은 고귀하다. 그래서 진실로 좋은 것을 얻기 위한 고생을 떠맡고, 고난을 감수하며, 고통을 인내하는 사람도 역시 용기의 덕을 가진 자이다.절제와 용기는 다 같이 도덕적인 덕이지만 다르다. 절제는 육체적 쾌락의 유혹을 물리치고 또 제한적으로 좋은 것에 대한 우리의 갈망을 조절하는 일과 관련된 덕이다. 용기는 고통과 고난을 인내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그 양자에는 매우 중요한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겉으로 좋게 보이는 것과 진실로 좋은 것) 사이에서 올바로 선택하는 습관들이다. 절제와 용기는 다같이 단기간 동안에만 좋은 것과 장기간이나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해서 좋은 것 사이에서 올바로 선택하는 습관이다.)Ⅲ. 결론소크라테스는 인간이 알면서 불의를 행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주장에 따르지 않았다. 인간은 알면서도 불의와 정의를 다 같이 행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세 종류의 잘못이 있다.
목차Ⅰ. 서론Ⅱ. 본론(1) 덕의 특징(2) 도덕적 덕의 유(3) 도덕적 덕의 종차 - 중용Ⅲ. 결론Ⅳ. 참고 문헌Ⅰ. 서론아리스토텔레스는 1권에서 자신의 정의가 이전의 견해에 비추어 얼마나 적합한지를 보이고 난 후 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덕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적인 덕으로, 곧 신체의 덕이 아닌 영혼의 덕이다. 행복은 덕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므로 우리는 덕에 대해서 탐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덕을 탐구함으로써 우리는 행복에 대해서도 더 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아리스토텔레스는 1권 마지막 장에서 덕을 이성적 요소와 비이성적 요소로 나누어 구분하였다. 인간의 특수한 본성은 이성에 있으나, 이 이성이 사고와 의지로 나눠지기 때문에 「우리는 덕 가운데 어떤 것을 이론적 또는 지적인 덕이라고 부르며, 다른 어떤 것은 실천적 또는 윤리적인 도덕적 덕이라고 부른다. 철학적 지혜나 이해력이나 실제적 지혜는 지적 덕이요, 관후라든가, 절제는 윤리적 덕으로 나눌 수 있다.」{)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최명관 역. 『향연·파이돈·니코마코스 윤리학』 세계사상전집1. pp.228아리스토텔레스는 이론적인 덕과 실천적인 덕을 구별함으로써 현실에 더 정확하게 근접하고 있다고 하겠다.{) 서귀남.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 예지의 향연, 1985. pp.48본론에서는 이 두 가지 덕 중 도덕적인 덕을 중심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적 사변을 살펴보기로 한다.Ⅱ. 본론(1) 덕의 특징아리스토텔레스는 먼저 덕이 어떻게 생기는지,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는지에 대해서 논의한다. 덕 가운데 지적인 덕은 대부분 교육에 의해서 생기고 경험과 시간을 필요로 하여 자라게 된다. 반면 도덕적 덕은 습관에 의해서 생긴다. 이런 까닭에 에티케{) 에티케의 원래 의미는 성격에 가깝다. 도덕적 덕이라는 번역은 성격에 있어서의 탁월함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원래의 의미가 더 잘 드러날 수 있다.라는 이름도 습관이라는 낱말로부터 나온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 덕들은 결코 본성적으로 우리에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본성에 의한 것은 다르게 습관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본래적으로 덕을 받아들일 수 있고, 습관에 의해서 그것을 완전하게 할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덕이 본성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기술과 마찬가지로 먼저 행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정의를 행함으로써 정의롭게 되고, 용감한 행동을 함으로써 용감하게 되듯이 활동의 차이에 의해서 성격의 차이가 따라나오므로 우리는 어떤 일정한 활동을 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젊어서 어떤 습관을 기르는가 하는 것이 뒷날의 모든 차이를 결정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결코 과한 것이 아니며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성을 선한 생활이나 행복에 맞도록 변형될 수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에서 비롯했다고 할 수 있다.{) 렘프레히트, 김태길, 윤명로, 최명관 공역. 『서양철학사』 을유문화사, 1989. pp.101아리스토텔레스는 덕에 따라서 행할 때 행하는 자는 다음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기술한다. 첫째, 덕에 따라서 행하는 자는 그가 하는 행위를 알아야 하며{) 학예의 경우와 비교 가능하다. 예를 들어 어떤 이는 우연히 문법에 맞게 글을 쓸 수도 있는 것이고, 남의 것을 봄으로써 문법에 맞게 글을 쓸 수도 있다. 따라서 그 자신이 문법에 맞게 글을 쓸 때에만 문법가라 할 수 있듯이 덕에 따라서 행동하는 자는 그 자신이 행하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둘째는 덕에 따른 행동은 행동 자체 때문에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로 덕에 따라서 행하는 자는 그의 행동이 확고하고 불변하는 성격에서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중 덕을 소유함에 있어서 첫 번째 조건인 아는 것은 전혀 또는 거의 영향력을 가지지 않는 반면 나머지 다른 조건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 조건들은 옳은 행위나 절제 있는 행위를 자주 하는 결과로 생긴다. 그러므로 「정의롭거나 절제 있게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의롭거나 절제 있는 사람이 행하듯이 행동하는 사람이 정의롭거나 절제 있다고 불리운다. 이때의 실천지를 가진 사람은 덕에 대한 하나의 표준을 제시하는 하나의 이상형을 제시해준다」{) 윤희조.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에 대한 정의 -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1.고 말할 수 있다.(2) 도덕적 덕의 유덕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덕이 포함되는 유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단 영혼의 욕구적인 부분에서 생겨나는 것{) 정념. 능력. 성품을 모두 열거하고 이것들 가운데 어떤 것이 도덕적 덕인지를 찾아간다.아리스토텔레스는 감정이 덕의 유가 되지 못하는 이유를 네 가지 제시한다. ㄱ우리는 감정에 대해서 훌륭하거나 나쁘다고 이야기 하지 않는데 반해 덕은 한다. ㄴ우리는 감정 때문에 칭찬 받거나 비난 받지 않지만 덕은 한다. ㄷ우리는 화내고 두려워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지만 덕은 일종의 선택이다. ㄹ우리는 감정에 따라서 움직인다고 이야기하지만, 덕에 따라서는 아니다.그리고 능력{) 능력들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화낼 수 있는 것, 고통을 겪을 수 있는 것, 동정할 수 있는 것이다.(1105b 23-25)역시 감정과 마찬가지로 단적으로 좋다거나 나쁘다고 이야기되지 않고 칭찬받거나 비난받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좋거나 나쁘게 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능력도 덕은 아니다.소거법의 결과로 덕은 성품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3) 도덕적 덕의 종차 - 중용그러나 우리는 도덕적 덕을 성품, 즉 성격의 상태라고만 말할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상태인가도 밝혀야 한다. 즉 도덕적 덕의 유 뿐만 아니라 종차를 밝혀야 한다. 이 논의에서 도출되는 개념이 바로 중용이다.우리는 연속적이고 나눌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더 많게 또는 더 적게 또는 동등하게 취할 수 있는데 이것은 그 사물 자체에 있어서, 혹은 우리와의 관계에 있어서 둘 모두에 적용 가능하다. 사물 자체의 산술적인 중간은 만인에게 동일한데 반해 우리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중간은 하나가 아니다. 개별 사례에 따라 취할 수 있는 중간은 달라지므로 언제 해야 하는지, 무엇에 대해서, 누구에게,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가 각기 다르고 이를 적절히 취하는 것이 실천적 덕으로서 바로 중용이다.이 부분은 중요하므로 원문을 인용하겠다.「그러므로 덕이란 중용에서 성립하는 행위 선택의 성품이다. 이때의 중용은 우리와의 관계에 있어서의 중용이요, 이 중용은 이성적 원리에 의하여 그리고 또 실제적인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것을 결정할 때에 기준으로 삼을 원리에 의하여 결정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두 악덕, 즉 과도로 말미암는 악덕과 부족으로 말미암는 악덕 사이의 중용이다. 그리고 또 그것이 중용인 까닭은 악덕이 정념과 행동에 있어서 옳은 것에 미치지 못하거나 넘어서는 데 반하여 덕은 중간의 것을 발견하고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덕은 그 본체에 있어서나 그 본질을 밝히는 정의에 있어서 하나의 중용이요, 최선이라든가 옳다고 하는 점에서는 정점을 이루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최명관 역. 『니코마코스 윤리학』 서광사. 2004. pp.72:16~25
목차Ⅰ. 서론Ⅱ. 본론(1) 목적으로서의 선(2) 행복과 인간의 기능(3) 행복의 조건(4) 행복을 얻는 방법Ⅲ. 결론Ⅳ. 참고 문헌Ⅰ. 서론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제1권의 주제는 모든 행동이 목표 삼는 최고의 선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물음이다. 즉, 인간의 좋음과 행복에 대해 논의하고 그것의 보편적인 정립 기준을 제시하는 것에 논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한 방법적 수단으로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단순한 관련 사실들을 수집하여 열거하는 데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논증적으로 정당화되면서도 우리의 경험현실과 부합하는 답을 도출하는 데 설득을 두고 있다. 말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개념 구상이 심리적인 만족감 이상의 객관적인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까닭에 철학적 논증의 형식이 요구되는 것이다.「모든 기술과 탐구, 또 모든 행동과 추구는 어떤 선을 목표삼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선이란 모든 것이 목표삼는 것이라고 한 주장은 옳은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여러 가지 목적들 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 즉 활동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성과를 생기게 하는 활동을 떠나 그러한 성과가 목적이 되는 경우도 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서광사. 아리스토텔레스/최명관 옮김) 이하 인용문은 별다른 언급이 없는 한 이 책의 원문을 인용하는 것으로 한다.1장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위와 같은 표현은 『니코마코스 윤리학』 전반에 걸쳐 시도되는 전형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 방법론의 유형이다. 그는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해당 주제에 관해 사람들 일반이 가지고 있는 상식적 견해들과 믿음, 혹은 그 이전의 철학자들이 내세웠던 주장을 기초로 하여 전개시킨다. 주제가 되는 개념을 명료하게 분석하는 이 시도는 제1권에서 행복에 대한 전반적인 논지를 구성하는 것에도 넓게 적용된다.지금부터 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한다.Ⅱ. 본론(1) 목적으로서의 선아리스토텔레스는 우선 모든 인간적 행위가 목적 지향적 임을 지적한다.{) 이 부분은 반론의 여지가 있다. 우리의 어떤 행동들은 목적이 불분명하게 보이는 경우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관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논의에서 똑같은 정도의 정밀성을 구할 것이 아니라 주제가 허락하는 만큼의 명료성을 가지면 충분하다고 밝힌 바 있다(『니코마코스 윤리학』제3장).또한 이렇게 추구되는 목적들 간에는 ㄱ활동 자체가 목적인 경우가 있고 혹은 ㄴ활동의 성과가 목적인 경우도 있다. 전자는 활동과 동시에 목적이 달성되지만, 후자는 활동보다도 성과에 있어 가치가 부여되며 그래서 하나의 능력 아래 다른 기술들이 종속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말고삐를 만드는 기술은 승마술에 종속되고 승마술에 관련된 군사적 행동은 병법에 종속되어 결국 최고 우위에 위치하는 승리에 다다르게 되듯이, 총괄적인 목적은 모든 종속된 목적보다 뛰어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개별적 행동들은 일련의 목적을 향하여 목적과 수단의 연계로 사슬이 형성될 수 있으며, 그 끝에는 자체적인 이유 때문에 선택되는 목적이 자리잡게 된다{) 만일 이런 최고에 해당하는 행위의 목적이 없다면 우리의 욕구는 공허한 것이 될 뿐이다. 왜냐하면 끝없이 추구하고 욕구해도 목적은 계속 이어져, 영원히 만족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최고의 좋음(선) 이라는 것이다.이런 궁극적 선은 그 보편적인 내용을 담을 수 있는 이데아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선은 여러 범주에 있어서 많은 의미를 담고 있기에{) 실체의 범주에 있어선 신이나 이성에 대해서, 성질의 범주에 있어선 덕에 대해서, 수량의 범주에 있어선 적당한 양에 대해서, 관계의 범주에 있어선 유용한 것에 대해서, 시간의 범주에 있어선 좋은 기회에 대해서, 장소의 범주에 있어선 옳은 자리에 대해서.(1096a25-29)해당 각각에 대해 선의 정의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보편적 개념으로 묶을 수 없는 개별적인 선에 대해서 알려주는 학문이 바로 정치학이다. 정치학은 모든 인간 행위 기술의 영도격이므로 여타 학문의 목적을 내포하는 총괄적인 학문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인간을 위한 선 을 추구한다.(2) 행복과 인간의 기능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은 최고의 좋음이 행복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정작 무엇이 행복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같지 않다. 행복이 주관적 심리 상태에 그치지 않고 객관적이고 궁극적인 목적을 향한 활동이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행복의 본질을 탐구하는 기준이 제시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인간의 고유한 활동 속에서 찾았다.a영양 섭취하고 성장 활동하는 것(생명)은 식물과도 공유하는 것이므로 인간에게 고유하지 않고 b감각적인 생활 역시 동물과 공유하는 기능이므로 인간에게만 고유하다고 보기 어려우며 c이성적인 부분의 실천적인 활동만이 인간에게 고유하다.만일 인간이란 종에게 고유한 본질적 활동 으로서의 기능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곧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인간의 영혼이 인간에게 고유하며 그것에 의한 이성적 활동이 바로 인간의 기능이다. 이 기능의 두 부분, 이성적 원리를 잘 따르는 것과 이성적 원리를 소유하고 이성적으로 사유한다는 것의 구분은 활동 내지 훌륭한 행위로 실천된다는 점에서, 「또 어떠한 행동이나 거기 알맞은 덕을 가지고 수행될 때 잘 수행되는 것이기에 인간의 선이란 결국 덕{) 덕 은 인간에 의한 도덕적인 측면의 의미로(영어의 virtue) 사용되기도 하지만, 한편 자신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한다는 의미에서 탁월함 (영어의 excellence)의 의미로도 쓰인다.에 일치하는 정신의 활동이라 하겠다.」{) 『니코마코스 윤리학』pp.44:22~24(3) 행복의 조건아리스토텔레스는 최고의 좋음인 행복이 갖추어야 할 두 가지의 형식적 조건을 제시한다.「분명히 목적은 하나 이상 있고, 이 목적들 가운데 어떤 것(가령, 부·피리 그리고 일반적으로 기구)은 다른 어떤 것 때문에 선정되므로, 모든 목적이 다 같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러나 최고의 선은 분명히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러므로 만일 오직 하나의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고 하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 자체에 있어서 그 자체에 있어서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다른 어떤 것 때문에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보다 더 궁극적인 것으로 보며, 다른 어떤 것 때문에 바래지는 일이 절대로 없는 것을 그 자체에 있어서 바래지는 경우도 있고 다른 어떤 것 때문에 바래지는 경우도 있는 것보다 더 궁극적인 것으로 본다.」위의 첫 번째 조건은 완전성의 조건이라 불린다. 요약하면 항상 자기 자신 때문에 선택되며 다른 것 때문에 선택되지 않고 동시에 다른 모든 것들은 바로 자신을 위해 추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능동적인 것은 항상 수동적인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이었다.{) 『일러스트 서양 철학 기행』(한마음사. 고사카 슈헤이) 아리스토텔레스 편두 번째는 자족성의 조건이다. 마찬가지로 원문을 인용한다.「자족(自足)이란 관점에서 보더라도 똑같은 결론이 나오는 것 같다. 즉 궁극적인 선은 자족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 우리는 자족이란 것을 그것만으로 생활을 바람직한 것이 되게 하며, 또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행복이야말로 바로 이런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자족성의 조건을 보충한다면, 자기 아닌 다른 가치가 자기에게 부가된다고 해서 자신의 가치가 더 증대되지는 않을 정도로 결핍을 모르는 상태 {) 논문명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 개념』(최민영/가톨릭 대학교. 2003)라 할 수 있다. 부가된 선으로 인해 가치가 증대된다면 그것은 잉여물이 되며, 그렇다면 선 중에 보다 큰 것이 언제나 보다 더 바람직하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에 따라 행복을 최고의 선으로 보는 것에 모순이 일어나기 때문이다.이러한 완전성 논증과 자족성 논증은 동일한 사태에 대하여 다른 방식의 논증을 통해 접근하려는 논증방법이다.또한 행복에 조건에 관하여서 세 번째 접근 방식이 통찰된다.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일반에 의해 흔히 통용되는 견해에 대하여서도 접근을 꾀하는데, 이 상식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좋음은 세 가지로 구분되어 왔다. 즉 외부적이거나 신체에 관계되는 좋음, 그리고 영혼에 관계되는 좋음이 그것으로 이 중 정신에 관계되는 선이 가장 뛰어나고 참되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그가 주지하는 행복은 이성적 사고에 따르는 활동으로 목적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영혼에 관계되는 좋음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탁월함을 소유한 상태 이상의 행위와 활동을 목적으로 삼는다는 것과 행복이란 잘 삶과 잘 행함이라는 사람들의 견해 역시 일치한다.선은 그 자체로 즐거운 생활을 수반한다는 점에 있어서도, 말(馬)은 말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있어 즐거운 것이듯 유덕한 행위는 최고의 선을 행위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 자체로 즐거운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수긍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