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디지털을 만나다.Ⅰ. 사진의 역사Ⅱ. 사진의 종류와 속성Ⅲ. 사진과 디지털의 만남Ⅳ. 디지털 사진과 윤리Ⅴ. 결론Ⅰ. 사진의 역사그것은 불가능하다!성공적인 사진 프로세스가 발명됐다는 최초의 공식발표에 대해서 독일의 유력한 출판물인 Leipziger Stadtanzeiger는 "철저한 독일의 조사에 의해 밝혀진 것처럼, 일시적인 반영을 포착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 바람조차 잘못이다." 라고 큰소리 쳤다. -아라비아의 사람들은 한낮의 더위를 피하기 위해 아주 어두운 방에서 약간의 문만 열어놓고 생활 하였는데 그 틈으로 들어온 빛이 상을 맺는 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적어도 아리스토 텔레스 시대부터 작은 구멍을 통과한 광선이 상을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는데 그런 불신을 갖는 다는 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었다.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카메라의 전신은 카메라 옵스큐라였다. 카메라 옵스큐라란 말 그대로 어두운 방(dark chamber)을 뜻하며 바깥을 보여주는 핀홀 구멍이 뚫려있는 어두운 공간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는 맺힌 상을 개선시키기 위해서 그 핀홀에 렌즈를 만들어 넣게 되었고 실제 방만했던 크기도 쉽게 가지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아졌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화가로 하여금 도화지 위에 투사된 이미지를 따라 그릴 수 있게 해주는 그림용 도구가 되었다. 하지만 어떻게 카메라 옵스큐라 이미지를 영구적으로 고정시키는가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었다.최초의 영구적 사진을 만든 사람은 프랑스 중부에 살고 있던 발명가 니엡스였다. 아스팔트(역청)를 바른 백랍판에 노광후 라벤다유에 담그면 빛 받은 부분은 굳어지고 받지 않은 부분은 녹아버리는 데 이를 라벤다유와 등유의 혼용제로 씻어 명부는 아스팔트가 암부는 퓨터판이 나타나는 양화를 얻을 수 있었다. 1826년 최초로 촬영된 니엡스의 사진은 자신의 2층 작업실에서 바같풍경(이웃집 지붕)을 촬영했는데 노출시간이 장장 8시간 걸렸다. 니엡스는 자신이 만든 사진을 태양이 그린 그림이라는 뜻으로 He계적으로 수백만 장이 존재하게 되었다. 인물을 찍고, 전쟁을 취재하고, 먼 나라를 탐사해서 그 증거로서 사진을 가져오는 등 이제 사진은 없는 곳이 없게 되었다.1880년대 즈음 두 가지 기술이 완성됨으로써 감도가 좋은 건판을 가능하게 했을 뿐 아니라, 불편하고 깨지기 쉬운 유리판 자체의 필요성을 없애게 되었다. 그 첫째가 새로운 젤라틴 유제의 개발이었는데, 이것이 감광성 은염을 지지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것은 소뼈와 가죽을 처리해서 얻은 젤리 같은 물질인 젤라틴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었다. 건조되더라도 그 감도를 유지했기 때문에 또 다른 발명품인 롤필름에도 응용될 수 있었다. 롤필름은 누구나 사진을 간단하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듦으로써 사진의 혁신을 가지고 왔다. 또한 롤필름은 새로운 종류의 카메라를 가능하게 했다. 저렴하고 가벼우며 작동이 간단해서 누구나 잠재적인 사진가로 만들었다. 이스트만은 1888년에 코닥 카메라를 내놓았고 거기에는 100장의 사진을 찍을 만큼의 필름을 장전할 수 있었다. 한 롤을 다 찍으면 필름이 들어있는 채로 카메라를 이스트만社로 보냈다. 그러면 곧 새로 필름을 장전한 카메라와 함께 현상 인화된 사진을 소유자에게 돌려보냈다. 코닥 카메라는 거의 하룻밤 새에 국제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롤필름의 상용화로 인해 가벼운 카메라와 다루기 쉬운 롤필름을 사용하여 누구나 잠재적 사진가로 만들 수 있었다.앞서 언급하였던 1830년경의 다게레오 타입의 사진술을 발명한 루이 다게르는 자신도 한 가지만 더 있으면 자신의 발명이 더욱 완전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바로 '컬러'였다. "다른 것은 바랄 나위가 없지만 이 모든 광선의 산물들을 그 빛나는 온전한 색으로 보여서 휘둥그레진 사람들의 눈을 볼 수만 있다면" 이라고 안타까워했다.몇 번의 실패가 있고 나서 1861년 드디어 영국 물리학자 제임스 맥스웰이 검은색과 녹색 그리고 빨강색으로 가색법을 창안하였고 이를 이어받아 1907년 가색법을 바탕으로 안토안, 뤼미에르 형제가 오토크롬 프로세스 방식을 심과 이목을 모았지만 조악한 화질 때문에 다른 인쇄매체에 비해 지질이나 인쇄 성능까지 뒤떨어던 신문에 전자 사진을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못했다. 아날로그 방식이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된 것은 1990년 다이캠(Dycam)의 출시부터다. 32개의 화상을 저장할 수 있는 메모리 칩을 적재한 다이캠은 376x240의 해상도로 TV 화면만큼도 못했던 마비카보다는 눈에 띄게 개선된 화질을 자랑했지만 애석하게도 흑백 사진만을 촬영할 수 있었다.다이캠 이후, 도시바에서 12개의 40만 픽셀 컬러 이미지를 저장할 수 있는 MC200 카메라를 발표했으며, 코닥사는 니콘의 F-3 또는 캐논의 EOS카메라의 바디를 이용해 뒷부분에 전자 메모리 장치를 장착한 전문가용 디지털 카메라 DCS 시리즈를 개발했다.디지털 이미징으로 인해 사진의 많은 과정이 신속 용이하게 되면서 사진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많은 신문사들이 이미 화확약품을 사용하는 암실을 없애고 사진가들에게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해서 사진을 인터넷을 통해 회사로 곧바로 전송하고, 인쇄용 사진을 디지털 이미징을 사용해서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광고사들도 상업용 이미지들을 처리하는데 디지털 이미징을 이용하고 있으며, 일부 예술가들도 디지털 이미징이 그들이 이미 찍은 여러 종류의 사진 제작을 더 용이하게 하기 위한, 혹은 완전히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위한 유용한 도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디지털 카메라는 어떤 장면의 톤을 수치로 변환함으로써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 이미지의 작은 점마다 차례로 샘플링이 이루어져서 각각의 점에 대한 수치들이 하나의 조합으로 기록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디지털 카메라들은 CCD 라고 하는 이미지 센서를 이용해서 관선을 전자적인 신호로 바꾸어 준다. 그 정보는 우선 이동식 메모리 카드에 저장되었다가 컴퓨터로 옮겨진다.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면 많은 장점이 있다. 많은 양의 필름을 살 필요 없이, 사진을 찍어서 컴퓨터로 옮겨놓고 그 저장장치를 촬영에 다시 사용할 수 있다. 사진을 찍는초기의 파리의 거리, 카페, 상점, 공원과 사람들을 찍은 사진 수 천 장을 남겼다. 그의 생전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파리의 시각적인 기록을 원하는 미술가, 건축가 등의 사람들에게 사진을 판매해서 겨우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어떤 장소의 겉모습에 대한 기록을 할 수 있는 사진가들은 많았지만 파리의 느낌과 분위기까지 전달해 줄 수 있는 사진가는 아트제가 유일하였다.아우구스트 잔더는 2차대전 전 독일의 사람들을 기록한 사진가이다. 그의 사진들은 피사체의 개인적인 특징을 나타내려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독일을 구성하고 있던 계층들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노동자, 군인, 상인, 시골의 가정 등 기타 유형들을 모두 의도한대로 포즈를 취하게 해서 촬영하였다. 이러한 인물사진들은 너무나 사실적이고 비감성적이기었기 때문에 개인성은 사라지고 계층과 사회적 역할만 드러났다.ⅱ. 사회적 의미의 사진사진은 곧 단순한 세상에 대한 기록에서 부터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고 그것을 기록하는 것으로 옮겨 갔다. 19세기말 덴마크 태생의 신문 기자였던 제이콥 리이스는 사회변화를 위해 사진을 이용한 최초의 인물들 중 하나였다. 리이스는 뉴욕 슬럼가의 비참한 생활상에 대한 글을 써오다가 어떤 설명으로도 보여줄 수 없는 그가 10년간 경험하며 지켜본 비참한과 악덕을 고발하기 위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루이스 하인은 특히 아동 노동력의 혹사와 같은 문제에 열정적인 사회적 의식을 가진 교육받은 사회학자였다. 20세기 초에는 이런 악덕이 널리 퍼져있었기 때문에 그는 개혁자들에게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서 그것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는 비참함과 분노에 찬 목소리로 그 아동과 그의 가족들이 제조업자의 짐을 덜어주고, 그로 하여금 월세를 낼 수 있게 해주는 '기회'를 제공하려 애썼다.ⅲ. 보도사진월드컵에서부터 전쟁에 이르기까지 어떤 뉴스 꺼리가 있더라도 우리는 그것의 사진을 보고 싶어 한다. 오늘날 우리는 보도사진을 당연시 하지만 뉴스와 사진이 언제나 동반되었던 것은 아니다. 18세기는 것이다. 사진이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기록하기 시작했을 때 그것을 인정하느냐 마느냐 문제는 그전까지의 인간의 눈으로 직접 본 것만을 시각적 진실이라고 믿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큰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러한 문제들이 하나의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으로 인정되고, 나아가 사진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시각이 더 이상 인간을 당황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를 다양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원천으로 인식 될 때, 사진은 비로소 하나의 예술의 장르로서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Ⅲ. 사진과 디지털의 만남-아날로그 사진에서 디지털 사진으로2000년대인 지금 우리는 디지털 시대, 전자매체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사진은 급속하게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해 가고 있고, 그에 따라 사진의 정체성에 역시 위기의식이 최고조에 다다르고 있다. 과연 디지털 사진을 사진이라 할 수 있는지,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만약 디지털 사진을 디지털 이미지라고 분리시킨다면 무엇이 달라질 수 있는지 등등, 디지털 사진에 대한 광범위한 문제의식과 여러 가지 의구심들은 또 다시 사진을 위기 국면으로 치닫게 했다. 디지털 사진은 무엇보다도 사진=진실이라는 불변의 진리를 파괴하여 사진의 진실성을 무용화한다. 디지털 사진은 또한 완전히 다른 코드, 다른 기호체계를 갖고 있으며, 거기에는 각양의 합성과 조작, 왜곡이 있고, 프로세스에서도 기존 아날로그와 달라 이미지가 알고리즘과 수치영상으로 존재하며, 모니터에서 순간적으로 생성되고 소멸되는 방식을 취한다.디지털 사진이 아날로그 사진을 위협하고, 사진의 진실성을 파괴하는 토대는 바로 포토샵이다. 포토샵에서 연출되는 이미지는 디지털 픽토리얼리즘이다. 컴퓨터에 의한 자유자재의 이미지 합성, 전용, 변조는 새로운 미학적 표현양식으로 자리한다. 이제 디지털 사진의 미학은 사진의 전통적 "타임(time)" 이미지에서 "이벤트(event)" 이미지로 전환시키고, 모니터에서 순간적으로 생성되고 소멸되기 때문에 곧바로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작을
인류 최초의 프로젝트는 무엇일까?내가 생각하는 인류 최초의 프로젝트는 ‘바벨탑 건설’이다. ‘인류역사의 초기, 즉 대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후 노아의 후손들은 다시 바빌로니아 땅에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도시를 건설하고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세우기로 하였다. 성경에 기록된 그들의 탑 건축 목적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탑을 쌓아올려 자기들의 이름을 떨치고 홍수와 같은 야훼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의 민족신 야훼는 노아의 홍수 이후에는 물로써 대심판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는데, 그 약속의 표징이 무지개였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야훼를 불신하는 상징으로 바벨탑을 세운 것이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야훼는 탑을 건축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언어를 혼동 시켜 멀리 흩어지게 함으로써 탑 건축이 중단되게 하였다.’ 창세 11:9의 내용이다.인류 최초의 프로젝트는 결국 ‘실패’로 끝이 났다. 인간의 신의 대한 불신으로 신이 노하여 사람들의 마음과 언어를 혼동 시켜 놓았으므로...데드라인은 프로젝트 관리에 관한 소설이다. 요는 이렇다. 그리 명석하지 않지만 많은 노력을 하는 프로젝트 관리자인 ‘톰킨스’가 거대통신사로부터 실직을 당하고 우울한 날을 보내던 중 소프트웨어 수출국을 꿈꾸는 독재자의 스파이로부터 납치를 당해 모로비아의 최고지도자인 NNL로부터 프로젝트를 담당할 것을 종용받는다. 이미 준비된 경력 있고 수완 좋은 비서와 약 200명의 개발관리자와 수십 가지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인력과 함께 6개의 프로젝트를 관리하며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히고 불가능한 데드라인과 싸운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과 역량을 발휘하고 또한 그 자신의 역량뿐만 아니라 주위 인재들을 활용하여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끈다는 내용이다.이 이야기는 소설이다. 하지만 단순한 소설을 뛰어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소설이기에 가능한 적절한 비유와 연상, 그리고 과장 등의 장치를 통해 여러 가지 상황들을 유기적으로 연계시켜 마치 실제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 하는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야기 속에 너무 많은 프로젝트의 관리요소와 활용 그리고 팁들이 소개 되어 후반부로 갈수록 혼란스럽고 혼미해지기에 이르렀으나 기틀이 되는 뿌리생각은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과연 프로젝트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것이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간질이던 나의 뿌리 생각이었다. ‘GANTT차트? , RERT차트? , 그도저도 아니면 타임카드 작성이나 진도추적인가? 마일스톤 보고 만큼이나 프로젝트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있었던가?’ 물론 정답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책을 덮고 난 후 기억에 남는 한 가지는 바로 사람이었다. 이미 프로젝트와 관련한 많은 관리 기법이나 도구들이 생겨났고 적재적소에서 활용되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보다 앞서 ‘프로젝트도 결국은 사람이 실행해 나아가는 것!’ 결국 모든 문제는 ‘사람’에 대한 문제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 숨겨진 비밀 열쇠(?)에서 더 나아가 올바른 사람을 찾고 , 그들의 일을 조율하며 적절하게 동기를 부여하고, 팀을 건전하게 구성, 유지, 결속하는 것이 모든 프로젝트 성공의 본질인 것이었다. 그럼 이 인간가치에 대한 본질과 뿌리생각을 간직한 채 그 요소요소로 한 발짝 더 다가가 보겠다.훌륭한 관리를 위한 4가지 필수 요건- 적절한 사람들을 구한다.- 그들에게 알맞은 일을 할당 한다.- 항상 동기 부여를 한다.- 팀이 결속하도록 하고, 그 상태를 유지하도록 돕는다.이 외의 나머지 일은 전부 허드레 관리업무다.국내뿐 만이 명실상부한 글로벌기업의 총수가 하루는 그 기업의 핵심두뇌들이 모인 ‘기업구조조정 본부’에게 임무를 지시한다. 그것은 바로 ‘앞으로 향후 20년 우리가 무엇을 해서 먹고살지’에 대해 조사해 보고하란 것이었다. 그 말이 떨어진 이후 구조조정 본부는 일주일 밤낮으로 자료조사와 연구를 몰두했다. 하지만 결국 보고일이 다가와서 총수에게 보고한 것은 “죄송합니다. 저희가 불철주야 모든 시장가능성과 미래시장을 예측하려 해보았지만 결국의 명쾌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송구스럽습니다.”였다. 이에 총수는 “그래, 나 역시 그 문제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해 보았으나 역시 결론에 이르지 못했어. 그러니 인재를 찾는데 힘쓰도록 하게. 앞으로는 인재가 힘이요, 경쟁력이 될 것이야.” 라고 답했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다.불확실한 미래, 혹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시장 상황과 맞닥뜨린 기업과 프로젝트는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적절한 사람들을 구하고 그들에게 알맞은 일을 부여하여 끊임없는 교육과 동기부여를 통해 범재도 인재로 키워 나가는 그래서 팀의 결속력을 높이고 프로젝트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것’ 이것이 오늘날의 프로젝트의 성공요소와 프로젝트를 넘어선 기업들의 활로 모색의 중심적인 틀이며 핵심요소라고 생각한다.인터뷰와 채용- 채용할 때는 모든 관리 감각이 필요하다 : 마음, 정신, 후각, 그리고 본능 (하지만 대부분 본능이 필요하다)- 혼자 하려고 하지 마라. 두 사람의 본능이 한 사람의 본능보다 두 배 이상 좋다- 새로 채용한 사람에게 자신이 이미 증명했던 바로 그 수준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하고, 능력을 확장할 수 있는 목표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요청 한다- 조언을 부탁 한다 : 당신이 가장 채용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또 다른 훌륭한 사람을 알고 있을 수도 있다- 말하기 보다는 들어라톰킨스가 ‘벨린다’라는 부랑자 여성의 도움을 받아 인터뷰를 통해 관리자를 선발하는 과정을 보고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먼저 가르치려고 말하지 말고 먼저 들어라’라는 것과 새로 채용한 사람에게 자신이 이미 증명했던 바로 그 수준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하고, 능력을 확장할 수 있는 목표는 다음으로 미루게 함으로서 그 사람의 적정수준의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인본위주의 인력관리는 당장의 효과보다는 조직문화와 구성원들의 심리적인 소속감과 안정감을 부여하여 프로젝트의 성공에 기여할 것이다.생산성 향상- 생산성에 관한 단기적인 해결방안은 없다- 생산성 향상은 장기적인 투자의 결과다- 즉각적인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모두 헛소리다실제로 단기간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을 헛되게 쓰지 않도록 하는데 모든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유효한 작업시간 동안에 정해진 생산을 보인다면, 조절해야 할 실제 변수는 유효한 작업의 크기다. 따라서 비효과적인 작업시간을 줄인다면 장기적으로 생산성의 향상에 기여할 것이다.위험관리- 프로젝트의 위험을 관리하는 것으로 프로젝트를 관리한다.- 각 프로젝트의 위험을 조사하고 관리한다.- 궁극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원인이 되는 위험을 추적한다.- 각 위험에 대한 발생 확율과 예상되는 소요 비용을 평가한다.- 각 위험에 대해 위험이 구체화되는 것을 나타내는 초기 증상을 예상한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세를 갖고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을 위험 담당자로 임명한다.- 나쁜 소식이 조직의 계층구조 상위로 전달되는데 용이한 (필요하다면 익명으로) 채널을 수립한다.‘원인이 되는 위험을 관리하는 것으로 프로젝트를 관리하라’ 소프트웨어 개발은 위험한 사업이다. 반드시 위험관리가 수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나..언제나 위험은 항상 그 실체를 드러나기 전에 몇 가지 초기증상을 드러낸다. 그러한 초기증상들을 책에 나타난 대로 마치 ‘매가 먹이를 찾아내듯’ 언제나 예의 주시하며 살피고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개발 프로세스 모델링과 시뮬레이션- 작업을 완료하는데 필요한 프로세스에 관한 자신의 직감을 모델링 한다- 동료들 간 상호교류와 프로세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사고를 개선하는데 그 모델을 사용 한다- 결과를 모의실험하기 위해 모델을 사용 한다- 실제 결과에 따라 모델을 조정 한다현 이직율, 채용율, 앞으로의 예상 이직율, 투입 전 교육훈련 시간, 교육훈련을 위한 기존 사람들의 시간할애, 새 팀원 추가에 따른 생산성 감소, 인원이 많아짐에 따르는 상호작용의 불이익, 결속된 팀에서 생기는 시너지, 통합의 대가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요소들 간의 역학관계 모델을 통해 10명이 1년 할 일을 20명이 6개월에 못하는 이유가 설명이 되며, 얼마나 생산성이 더 낮아지는지에 대한 수치화가 가능해진다.프로세스와 프로세스 향상- 좋은 프로세스와 지속적으로 향상되는 프로세스는 모두 훌륭한 목표가 된다- 이들은 또한 매우 당연한 목표이기도 하다. 훌륭한 개발자들은 그렇게 하라고 말을 하든 안 하든 간에 여기에 초점을 맞춘다.- 공식적인 프로세스 향상 추진 계획은 시간과 돈이 든다. 그러한 프로세스 향상작업은 프로젝트 작업을 뒤쳐지게 할 것이다. 생산성 향상이 실현된다 하더라도 그 계획을 실행한 프로젝트가 프로세스 향상에 들인 시간을 상쇄하지는 못한다.- 프로젝트에 향상 방법을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선정한다면 본전 (그러한 변화에 투자한 시간과 비용)을 뽑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표준 프로세스는 사람들이 중요한 지름길로 갈 기회를 놓치게 할 위험성이 있다프로세스 향상 추진 계획은 그야말로 양날의 검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야 물론 긍정적이지만 한창 프로세스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의 프로세스 향상작업은 언급한 대로 작업을 뒤처지게 하고 실제로 성공적일지라도 프로세스 향상에 들인 시간을 크나큰 기회비용으로 지불해야한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한 가지라도 제대로 프로세스를 향상시킬 수 있는 루트를 찾아 실천해 옮긴다면 그러한 기회비용- 변화에 투자한 시간과 비용-을 뽑을 수 있는 기회가 되므로 신중을 기해야겠다.
공정성이론에 입각한 동기부여의 모범 사례성공적인 조직관리자는 조직 구성원들이 그들의 잠재능력을 활용하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조직원 자신이 노하우, 힘, 시간, 상상력, 집중력, 결단력 등 무형의 인적 자산을 최대한 개발하도록 하는 것이다.이렇게 조직 구성원에 동기부여를 할 때는 두려움이나 보상을 전제로 하기보다는 자발적으로 동기가 유발되도록 해야 한다. 이에 따라 조직원이 행동이나 관습을 성공한 조직의 그것으로 바꾸고 스스로 목표를 설정, 실천하도록 해야 한다.폴 마이어는 "당신이 무언가를 생생히 상상하고, 간절히 바라며, 진정으로 믿고, 열심히 그에 따라 행동한다면 결국은 그것을 이룰 수 있다."라고 동기부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이렇듯 조직관리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동기부여’의 여러 핵심이론 중 공정성이론에 입각하여 실제 우리 주변에서 사용되었던 사례들을 중심으로 동기부여에 대해 생각해보려한다.동기 부여먼저, 동기부여란 개인이 목표 지향적인 행동을 자발적으로 일으키고 방향을 제시하며 지속시키는 과정을 의미한다. [Landy & Becker, 1987]이러한 동기부여의 개념은 가정생활, 학교생활 등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개인의 목표 지향적인 행동을 설명하고 예측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동기부여란 조직에서 개인이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개인적 목표와 일치되는 조직목표를 향해 좁은 수준의 노력을 자발적이고 지속적으로 기울이도록 스스로를 이끌어나가는 과정 및 조직이 그러한 개인의 동기 부여된 행동을 촉진하는 일련의 행동”표1) 동기부여과정성공긴장완화미충족욕구긴장긴장완화방법탐색목표지향적행동선택실패욕구 충족 미흡? 동기부여의 중요성① 개인이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② 구성원 개개인으로 하여금 맡은 바 업무를 해낼 수 있다는 과업수행에 대한 자긍심과 자신감을 갖게 된다.③ 자발적인 업무수행노력을 촉진하여 개인의 직무만족과 생산성을 높이고 나아가 조직유효성을 제고시키는데 적극 기여한다.④ 조직을 변화시키는 추진력이 된다.⑤ 경한다. 임금구조가 공정하게 설계되면 구성원들의 자기 계발노력을 촉진할 수 있으며 경력 개발을 지원할 수 있다. 임금구조가 개인이 미래의 경력과정에서 어떤 보상을 받게 될 것인가를 의미하므로 개인은 자신의 위치, 미래의 위치를 예측할 수 있다. 세 번째로 공정한 임금구조를 갖춘 기본급이외에 부분적으로 개인의 성과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는 메리트 임금제도와 인센티브 시스템이 있다. 메리트 임금제도는 다른 사람들의 주관적인 평가를 근거로 하여 개인의 성과에 대해 보상하는 성과-보상 합치 프로그램이다. 비가시적인 성과를 눈에 보이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큰 특징을 가지고는 있지만 성과측정이 쉽지 않고 주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구성원이 성과와 보상사이의 강한 연계를 경험하게 되어 개인성과가 더욱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인센티브 시스템은 객관적인 성과지표를 근거로 하여 개인의 성과에 따라 보상이 정해지도록 하는 성과-보상의 합치프로그램이다. 위의 메리트 임금제도와 다른 점은 어느 정도의 성과를 산출해 내면 그에 따라 얼마만큼의 보상이 따르는지를 명문화시켰다는데 있다.4. 개인 임파워먼트의 실행개인 임파워먼트 실행과정은 의 과정을 거친다. 개인 임파워먼트를 촉진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역량에 기초한 임금시스템을 도입하거나 의미 있는 사회적 보상의 개발이 필요하다.5. 동기부여 관리제도의 개선(1) 공정한 인사정책의 실시기업은 인사관리의 기본원칙을 확립하여 공정한 인사정책을 실시하여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인사제도의 원리가 취지가 일관되게 적용되어야 하며 절대적 기준이 아닌 상대적 기준에 비추어 분배적 정의 개념에 비추어 본 분배적 정의 개념에 기초해야 한다. 또한 주관이나 우연이 아닌 논리적인 필연이나 근거에 따라 인사관리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2) 내부노동시장의 개발내부노동시장의 개발은 구성원들을 동기부여 시킬 뿐만 아니라 근로자의 성장. 발전과 기업의 성장. 발전을 동시에 추구하는 방안이다. 조직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못하는 선수들에게 높은 연봉과 인센티브를 부여한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고,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객관적인 보상기준을 정해 놓고, 그 기준에 따라서 보상을 올려줄 때만 선수들 개개인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다.과연 높은 연봉 지급이 좋은 동기부여가 되는가?엄밀히 말하면 높은 연봉지급이 팀의 좋은 성적과 개인의 좋은 성적에 대한 강한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아니고, 높은 연봉에 대한 기대감이 강한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다. 선수들은 시즌을 마치고 나서 다음해의 연봉계약을 한다. 다음해의 연봉은 지난해의 성적을 기준으로 산출되기 때문에, 다음해의 연봉은 지난해 성적의 결과이기도 한다. 즉 선수들은 다음해의 연봉을 위해서 높은 연봉을 위해서 한해를 열심히 뛴다. 좋은 성적이 높은 연봉을 가져오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높은 연봉이 선수들에게 강한 동기부여가 됨은 당연한 사실이다. 일례로 항상 약체로 평가 받던 인천연고의 팀을 자금력이 우수한 현대가 인수하고 나서 현대의 성적이 급속히 오른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자신들이 열심히 하기만 하면 높은 보상이 있다는 것이 선수들로 하여금 동기부여를 해서 창단 첫해 한국시리즈 준우승까지 이루었다.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선수들에게 높은 연봉을 지급하고 있는 삼성은 올해 페넌트레이스 우승했다.물론 과감한 연봉의 삭감 및 동결도 선수들로 하여금 강한 동기부여를 하는 방법의 일종이다. 동결이나 삭감을 통해서도 강력한 동기부여가 가능하다.표2) 현대 유니콘스의 예 (2000시즌 우승이후)(단위 : 만원)선 수2000시즌연봉2001시즌연봉성 적1999 시즌2000 시즌박 경 완11,50023,000타율:0.221 홈런:23타율:0.282 홈런:40박 재 홍13,00020,000타율:0.295 홈런:24타율:0.309 홈런:32박 종 호7,50014,000타율:0.301타율:0.340전 준 호11,00013,000타율:0.291타율:0.316김 수 경6,00012,700방어율:4.14 사례 4 - 경찰공무원에 있어서 동기부여의 방법1. 동기부여의 의미 및 문제제기조직의 존재의 이유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조직구성원들의 동기부여(MOTIVATION)가 필수적이다. 여기서 동기부여란 조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여 사기를 증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이는 리더십과 연관시켜 생각할 수 있다. ‘고요한 바다 위에서는 누구나 선장이 될 수 있다.’는 격언이 있다. 뒤집어 말하면 리더십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폭풍우가 몰아칠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떻게 하여 폭풍우 속에서 조직 구성원의 사기를 증진시키고 동기부여를 시킬 것인가가 관건인 것이다.경찰 공무원에 있어서 경찰서장이 경찰을 동기부여시키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동기부여요인 다시 말해 보수나 승진 같은 요인은 영향을 미치기가 힘들다. 입법자가 아니고서는 법률에 정해진 사항을 임의로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에 경찰공무원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요인을 알아보고자 한다.1. 리더가 솔선수범한다.리더가 거만하거나 자만하다면 조직원들은 뒤에서 그를 욕하고 결국 사기가 저하 될 것이다. 반면에 리더가 겸손하고, 정직하게 자기 본연의 업무는 물론이고 궂은 일 까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조직원들은 그를 존경하고 그를 따라서 성실히 최선을 다하는 동기부여가 이루어 질 것이다.2. 의사결정에 조직구성원을 참여시킨다.리더는 혼자서 결정하지 말고 필히 종사원을 불러 의견을 묻고 함께 토의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경찰이 관료제라는 점에서 그 동안의 관행으로 실행에 어려움이 존재 하나 스스로 참여하여 제시한 안건에 대해서는 설혹 자신의 의견과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뒤로 물러서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자기의 의견과 일치한 결정이 났을 때는 물론 보다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될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참여는 곧 책임감을 유발하며 책임감은 곧 행동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동기부여를 할 수 있다.3. 조직구성적 인센티브(상품, 표창, 기타)에 비해 적용률이 상당히 낮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비관리자급의 인센티브 적용사례많은 기업들이 텔레마케팅 업무수행 결과를 향상시키기 위해 텔레마케터들에게 인센티브를 적용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지는 인식하고 있으며, 진지하게 투자수익 모델을 가지고 미리 예산 책정을 하고 있다.그러나 결코 인센티브는 그 자체로서 기적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동기부여와 인센티브는 성공적인 콜센터 관리를 위한 방법들 중 하나의 기본적인 요소로서 작용한다. 결코 회사는 돈으로 직원들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직원들은 가장 중요한 회사의 재산이며, 성공적인 콜센터를 위해 모든 필수적인 요소들을 적용시켜 바람직한 인사관리를 해야 할 것이다.(2) 성공적인 콜센터 관리를 위한 요소들?지속적인 코칭과 텔레마케터 교육훈련은 가장 중요한 인적재산에 투자하는 것이다.?텔레마케터들은 업무수행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텔레마케터들에게 가능한 한 높은 책임감을 부여한다.?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 헤드셋, 의자, 공간, 빛, 벽 색깔 등을 충분히 고려한다.?정보를 공유한다?회사, 팀 또는 그룹, 고객에 대한 정보 공유?특히 고객의 재산에 관한 업무를 진행하고 있는 텔레마케터들에게 그들 임무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지속적인 고객관리가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기타 공유할 만한 지식?신입 텔레마케터들을 위한 회사소개 자료 제공?사내보 제공?알림판 이용?정기미팅 진행- 커리어 개발 : 텔레마케터들이 확실한 비전과 자신의 잠재적 커리어 개발에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개인의 발전(승진, 승급)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알게 되는 것은 그들에게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며 또한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공식적인 직원 표창 : 업무실적이 좋은 텔레마케터는 공식적으로 칭찬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그 대상자를 이 달의 텔레마케터로 선정하여 상을 주는 방법을 사용한다.(3) 인센티브의 유형1. 금전적 인센티브있다.
개 요Ⅰ. X-Japan의 짙은 화장 뒤에 숨겨진 인본의 인디문화-인디음악에 대한 재고찰(再考察)Ⅱ. 일본음악의 생명줄 인디밴드Ⅲ. 한국 인디 뮤직씬의 형성-그들의 밥값이 우리의 제작비Ⅳ. 한국적 상황에서의 의미 - 인디음악이 과연 대안인가?(1) '다양성'의 부재는 20대 이상이 음반시장을 떠나게 만들었다(2) 시장에 '다양성'을 부여하는 근본적인 방법- 비주류음악 뮤지션들의 활동 기반 마련(3) 다양한 음악 유통 - 음반소비자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 주는 것(4) '음악 산업적인 관점'에서 비 주류 음악씬 바라보기Ⅰ. X-Japan의 짙은 화장 뒤에 숨겨진 일본의 인디문화누구에게나 낡은 서랍장 속의 앨범을 꺼내어 볼 때와 같이 짙은 회상을 불러일으키는 기억을 가지고 있다. 유독 음악 듣는 것을 좋아했던 그래서 밥보다 음악이 더 좋았던 그 시절 나에게는 X-Japan이 그러하다. 우연히 발견한 친구에 책 속에 끼어있던 화려한 화장에 예쁘장하게 생긴 젊은 여자의 사진. “이 사람이 남자게 여자게?” 라는 장난스런 친구의 물음에 속으론 ‘아니 무슨 그런 별 시답지 않은 질문을 하고 난리람!’ 하고 생각했지만 바로 뒤이어지는 친구에 말에 나는 잠시 충격에 머리가 멍해지는 경험을 했어야만 했다. 그 사진 속의 인물이 바로 X-Japan의 리더 ‘요시키’였다. 짙은 화장과 과장된 비주얼로 치장한 예쁘장한 외모와는 달리 그들이 추구했던 광풍과 같던 비트와 사운드는 감탄의 차원을 넘어 일종의 문화적 충격과도 같은 것이었다. 게다가 덧붙여 쉽게 접할 수 없는 금지된 것이라는 애매모호한 신비스러운 느낌과 함께... 그렇게 언밸런스함과 치명적 유혹으로 나가온 X-Japan과 나의 고교시절은 언제나 함께였고, 또한 그들의 음악은 물론이거니와 영상물을 수집하는 한편, 해석된 가사를 음미하며 그들의 음악 세계에 탄복하고 또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X-Japan을 알았다”는 일본인이 있다.짙은 화장만큼이나 강렬한 음악으로 파괴와 허무를 노래하는 X-Jap규모가 다르다. X-Japan은 레코드를 내줄 회사를 잦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처음부터 전혀 다른 이유로 인디즈로 시작하는 뮤지션들도 많다. 우선 자신의 음악 생활을 자유롭게 지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색깔을 지키키 위해서라면 마이너가 되어도 좋다는 것이다.어떤 의미에서는 X-Japan의 역사는 일본 음악 산업과의 10년 전쟁사이다.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X-Japan의 리더 요시키는 훌륭한 뮤지션임과 동시에 뛰어난 비즈니스 맨이다. LUNA SEA를 발굴한 엑스터시 레코드, GLAY를 발굴한 플래티넘 레코드. 둘다 요시키가 경영하는 레코드 회사이다. 엑스터시 레코드는 자신의 레코드를 내기 위해 할 수 없이 설립한 인디 레코드 회사이지만 요시키는 자신의 밴드인 X-Japan외에도 GLAY, LUNA SEA, LADIES ROOM 등 뛰어난 뮤지션을 발굴해 냈다. 또한 27살 때는 메이저 레코드급인 플래티넘 레코드사를 설립했다. 자신이 엑스터시에서 키워 낸 밴드들을 메이저 레코드 회사가 가로채는 것에 분통을 느껴 만든 회사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밀리언 셀러를 만들겠다는 오기가 발동해 회사의 이름이 플래티넘(미국에서는 밀리언 셀러를 플래티넘으로 부른다)이 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GALY는 플래티넘을 통해 밀리언 셀러를 달성하는 데 이르렀다.요시키의 성공 요인은 일종의 독특한 승부감과 비즈니스 감각도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그의 뛰어난 창작 능력이다. 누구나 레코드를 낼 수 있는 인디 레벨의 레코드 회사들. 그들의 존재가 일본 가요의 원동력이 아닐까.X-Japan의 의의를 점검하는 것은 단지 “이들이 과거 일본 가요계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었으며 또한 실력도 있다”를 말하는 데에 있지 않다. X-Japan은 바로 일본의 )서브컬처, 나아가 얼터너티브 컬처(alternative culture)를 이해하는 열쇠인 것이다. (여기서 얼터너티브란 주류에 대한 대안, 비주류 문화라는 뜻을 갖는다. 너바나, 펄잼, REM 등으로 대표되는 얼터너티브 음독립적인 자본'에 의한 음반 제작을 인디음악의 요건으로 보냐하면, 그래야만 뮤지션이 생산해내는 음악의 내용과 함께 '장르와 스타일'이 획일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주류 음반 제작자들은 음반 발표 후 3개월 이내에 모든 비용을 환수하고 수익을 창출하려고 하는 철저한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이는 일반 기업들처럼 상품을 기획하여 제작한 후 마케팅을 통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과 하나도 다르지 않고, 여기에는 예술로서의 음악을 창작하는 방식이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다. 즉, 당장의 손익을 따져서 이른바 '팔리는 음악'만 기획/제작할 뿐 그 이외에는 안중에도 없는 상태이다. 그러니 이런 제작 환경에서는 '팔리는 음악'에 해당되지 않은 음악과 뮤지션들은 설자리가 없어진다. 공중파TV의 음악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듯이 그 가수가 그 가수 같이 보이고, 그 노래가 그 노래처럼 들리는 상황은 주류 음반 매니지먼트회사들의 손익 예상 하에 가장 수익에 대한 기대치가 높게 반영된 '제품'들만 생산되어져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립적인 자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음악은 대개가 '상업화와 획일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얘기를 역으로 하면 '상업화와 획일화'된 음악에 종속되지 않기를 바라는 뮤지션들이라면 인디음악이란 '방법론'을 어쩔 수 없이 라도 택하는 것이고, 이것이 인디음악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이다.Ⅱ. 일본 음악의 생명줄, 인디밴드X-Japan, 이들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바로 인디밴드에서 가장 크게 가장 크게 성공한 그룹이라는 점이다. 인디음악 혹은 인디 레코드. 기존의 가요 업계에서 독립된 존재들을 가리킨다. 일본의 인디 음악의 시조는 1978년 고지라 레코드에서 내놓은 밀러즈의 ‘충격X' 라고 알려져 있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반을 제1차, 1980년대 중반을 제2차라고 한다면 제3차 인디즈 붐을 이끌었던 밴드들은 1980년대 초반 , 메이저급 레코드 회사로부터 입도선매격 으로 계약을 했다가 붐이 사라지면서 버림받은 밴드들이다. 따지 않지만 엉터리, 애송이, 원초적으로 순수한 음악, 혹은 그런 마인드로 만들어진 음악의 총칭으로 사용된다. 굳이 말하자면 악기를 다루지 못해도 “쟝~”하고 기타 현 하나를 울리는 것으로 자신의 기분이 좋아진다면 음악이라는 마인드이다.세계 진출에 성공한 뮤지션에서 로 파이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디 레코드. 일본음악의 힘이라면 바로 누구나 인디 레코드를 낼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점이라고 하겠다.Ⅲ. 한국 인디음악 씬(Indie Music Scene)의 형성앞서 말했던 일본보다는 한참 이후 이지만 1994년 펑크클럽 ‘드럭’의 탄생으로 인하여 한국에도 인디음악과 문화가 싹트기 시작하였다. 한국에서 인디음악 씬은 아래 3가지로부터 형성되었다.① 펑크클럽 '드럭'의 탄생 (1994년)② 계간지 오늘예감에서의 '인디레이블 담론' 제시 (1995년)③ 배드 테이스트(Bad Taste) 1집 [One Man Band... BadTaste](1996/BMG)와 V.A. [Our Nation - Crying Nuts/Yellow Kitchen](1996/드럭) 발매그리고 본격적으로 인디음악 씬이 형성된 것은 1995년부터 홍대 주변에 계속해서 라이브클럽들이 들어섰는데, 이를 기반으로 라이브 활동을 하는 밴드들이 생겨나면서였다. 언론에서는 1996년에 있었던 '스트리트 펑크쇼'(홍대 주차장거리와 명동) 이후에 거의 폭발적인 관심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이 라이브클럽들에 몰려가거나, 적어도 문화평론가들이 매체에서 청탁 받아서 쓰는 글들에 관심을 가졌다. 이때에는 문화센터의 주요한 강좌에 대중음악강좌가 여러 개 있을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이 컸다.문화운동가들은 인디음악 씬에서 어떤 사회변혁의 가능성을 찾으려고 했고, 일부는 당시 속속 생겨난 라이브클럽들의 주인들과 공동의 이해를 바탕으로 생산적인 일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태동된 것이 1997년 초에 '인디씬 중흥'의 기치를 걸고 결성된 '개방적 클럽 연대'(개클련)이다. 개클련은 이름 그대로 홍대앞에 산재해 있던 라이브 이상의 연주자가 연주하는 업소는 '유흥업소'로서 허가를 받아야 했으므로 일반 음식점으로 영업을 하던 라이브클럽들은 대부분 불법적인 상태에 놓여 있었다 - 와 관련된 활동을 진행하여 이후 법 개정이라는 성과를 얻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1997년 한해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한 개클련은 해가 넘어가면서 한계에 봉착하게 되고, 결국 점차 흐지부지되면서 사라져가기에 이른다.개클련 활동이 중단된 이유로 결국 당시 인디 씬을 이끌어가던 주체들의 대부분이 음악의 프로페셔널이 아니라 문화 운동 판이라는 원래의 배경을 남겨둔 채 잠시 '파견'을 나온 상태로서 여의치 않을 경우 언제든지 자신이 떠나온 원래의 바닥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입장에 있었던 것이다. 이는 어릴 때부터 실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음악 판에 속하면서 그 속에서 자신의 음악, 생업, 삶, 꿈을 찾아나가려는 뮤지션들의 입장과는 태생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드럭에서 V.A. [Our Nation - Crying Nuts/Yellow Kitchen]이 발표된 이후에 1997년에는 클럽 재머스에서 V.A. [Rock 닭의 울음소리](고스락, Hot Dog!, 재머스밴드2, 청년단체, 아무밴드, 내귀에 도청장치, 악마야, 허벅지밴드)과 강아지문화예술이라는 신생 레이블에서 V.A. [One Day Tours ](최희경, 갱톨릭, 기완, 강아지, 옐로우 키친, 배드 테이스트, 박현준, 민경현)이라는 음반이 나오는 등 각개 약진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은 인디레이블 '시스템' 하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그들의 밥값이 우리의 제작비9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시장은 도박판과 비슷하다. 대형기획사들은 패가 되는 음반에 최대한 베팅을 한 다음 잭 팟이 터지기를 기다린다. 승자, 즉 대박이 되는 한해 대 여섯 장의 음반은 1천억 원 대에 이르는 판돈의 80% 이상을 가져간다. 전체 음반의 0.1%도 안 되는 대박음반을 터뜨리기 위한 대형기획사들의 베팅은 천정부지로 올라가 이제 음반 한 장의 평균 제작비용이 1억 원을 .
미술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을 구분하는 기준은 모호하고도 다양하다.포스트모더니즘은 추상이나 환원적 양식에서 과거의 묘사적 양식으로 돌아간 경향, 퍼포먼스나 설치, 비디오아트 같은 실험적 경향, 과거의 양식을 차용하고 역설적 모방을 하는 경향, 영역이 모호한 복합적인 미술의 경향, 개념 미술적이면서도 정치적인 비판의 의도를 강하게 띤 미술 등을 말한다.1980년대 셰리 레빈은 뒤샹의 ‘샘’을 찍은 앨프리드 스티글리츠의 사진을 다시 찍어 현대미술의 두 거장을 하나로 묶은 사진을 자신의 작품으로 제시했다. 작품을 찍은 사진을 그대로 다시 사진으로 찍어 버젓이 예술로 내놓는 것은 중대한 도발이었다. 그러나 레빈의 사진은 그것이 표절이라는 점을 작가 스스로 인정한다는 사실 때문에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의 반열에 올랐다. ‘모더니즘적’ 뒤샹과 ‘포스트 모더니즘적’ 래빈의 사례에서 보듯, 모더니즘의 여러 특징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으로 그대로 이어지며, 이러한 연속성으로 인해 그 둘을 분명하게 구별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넌 왜 ‘디자인 론’ 수업 듣니?”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그는 이내 대답했다.“그냥요”충분이 있음직한 흔한 대화의 일부이다. 하지만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요즘 우리들은 타인이 어떠한 질문을 해왔을 때 ‘그냥~’ 혹은 ‘그냥요’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대답은 대단히 ‘포스트모더니즘’ 적인 사고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논리적인 판단이나 합리적 설명은 필요 없다는 말이다. 그저 느낌으로 왜인지는 몰라도 그냥 좋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성적인 느낌이나 자신의 의지를 중요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성격과 매우 닮아있다.‘이성적이고 합리적 판단을 위한 진리는 하나다’라고 말하는 모더니즘에 반해 ‘이성에 대한 믿음은 허구일 뿐이고 이성적인 합리성도 하나의 주장에 불과 하다’라고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원주의를 인정하고 있다. 하나의 진리만을 주장하지 않고 이성적인 판단보다 감성적인 느낌이나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은 어느새 우리 가까이에 성큼 다가와 있다.(1-1)(1-2)(1-1)많은 추상 화가들은 추상미술의 순수함과 완벽성, 조화, 균형이 관객들을 감동시켜 그러한 작품들을 통해 대중에 형이상학적 위안을 줄 수 있다고 믿었다. 몬드리안은 자신의 그림을 수직과 수평 그리고 세 가지 원색과 흑백으로 축소시킴으로써 그림의 구성요소들을 시각의 본질로 나타내려 하였다.☞ (1-2) "그림이란 비례와 균형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몬드리안의 메시지를 계승 하는듯한 이 작품은 조화와 균형미 그리고 미적 아름다움을 충족시킴과 동시에 실용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상당히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컨버전스(Convergence)의 사전적 의미는 한 곳으로 집합함, 집중성, 통합 등이며 수학용어로는 수렴이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하지만 컨버전스는 단순한 통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두 가지 이상이 업그레이드되거나 새로운 것이 재창조되는 것이다. 경계를 넘나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 역시 일종의 ‘문화적 컨버전스’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을까?☞ 유려한 곡선과 뛰어난 균형성 그리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질감까지 이번 디자인 페어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작품이었다. 비록 의자와 전기스탠드간의 다소 이질적인 컨버젼스가 아쉽긴 하지만 독창적이고 유연한 사고의 결합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인 작품이었다.(2-1)(2-2)1962년 앤디 워홀이 개인전을 열 당시 주요 슈퍼마켓에서는 캠벨사의 통조림 수프 30가지를 인기리에 팔고 있었다고 한다. 워홀은 이 숫자에서 힌트를 얻어 30개의 통조림 수프를 그렸다. 소비사회에서 집요하게 반복되는 상품과 광고들의 반복을 말하려 했던 것이다. (2-1)☞ (2-2)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느낌은 앤디 워홀의 켐벨 수프 깡통을 연상시키는 반복된 패턴이었고 그 색채 또한 앤디워홀의 투명양화를 겹쳐 색깔을 바꾸었던 마릴린 먼로의 초상과 같은 인상을 주었다. 또한 마릴린 먼로의 프린트 보다 훨씬 많은 수가 판매되었다던 워홀의 작품 ‘꽃’과도 매우 유사한 패턴과 택스쳐를 지니고 있다.(3-1)(3-2)(3-1) 마그리트가 단순히 유별난 이미지의 창조자인지 20세기의 대표적 선구자 인지의 의견은 분분하다. 반면에 대중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역설과 모순 그리고 이미지의 상호작용을 사용해 ‘알아보기는 쉽지만 이해하기는 불가능한 이미지’ 덕분에 마그리트는 많이 사랑받고, 많이 모사되면,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3-2) 흡사 뒷짐을 지고 있는듯한 검은 생쥐의 단면을 두 장 이어붙이고 귀에는 커다란 전등이 붙어있다. ‘가만 생쥐의 귀가 이렇게 컸던가?’ ‘생쥐가 저렇게 당당한 포즈로 일어나 있는 이유는 무얼까’ ‘언제부터 생쥐가 인간에게 저런 등불 같은 존재였나? 그들은 사람을 피해 어두침침한 곳을 좋아하는 짐승이 아니던가?’생쥐에게 등불이라니 그리고 개선장군 마냥 저 당당한 자세로 서있는 이 유쾌한 역설을 마그리트가 본다면 어떠한 말을 건넬까?(4-1)(4-2)(4-3)20세기의 두 거장 마티스와 피카소마티스와 피카소는 야수파와 입체파라는 서로 다른 사조로 20세기 미술계를 화려하게 살다갔다. 고정된 색채 관념을 버리고 자유로운 색채 표현을 했던 마티스(4-1)와, 형태 위주의 다양하고 급진적인 실험미술을 대표한 피카소 (4-2)☞ (4-3) 마티스의 강렬한 색채와 피카소의 특유의 형태의 파편을 통해 대상의 내적심리를 표현하고자 했던 방식의 절묘한 조화였다. 비록 작은 크기의 장식품이긴 쉽게 시선을 뗄 수 없었다.(5-1)(5-2)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미술 1위에 선정된 바 있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마르셸 뒤샹의 ‘샘’ (5-1)과 진시황릉 병마용갱에서 출토된 도기인형(5-2)이 둘은 과연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뒤샹이 처음 뉴욕의 한 전시회에 남성용 변기를 출품하자 이내 엄청난 비난여론이 쏟아져 나왔다. ‘비도덕적이며 저속하다’ ‘화장실 설비에 대한 표절이다’ 등 하지만 뒤샹은 기다렸다는 듯 운영위원들을 반박한다. ‘예술이란 복잡하게 구성하거나 색을 칠할 수도 있지만 단지 선택만 할 수도 있다!’ 라고 말이다.일찍이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롭고 앞선 작품들이 전시되던 디자인페어에서 이미 우리가 알고 있었던 역사적 유물이 출품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뒤샹의 말처럼 언제나 혁신적이고 탈 관념적인 작품들뿐만 아니라 과거의 역사적 유물의 모사품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디자인의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6-1)(6-2)처음 살바도르 달리의 본 작품을 접했을 때 그 괴이한 표현방식에 시선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6-1) 모든 것은 인위적이었으며 아름답지 않았다. 편안함이란 존재하지 않았고 어딘지 모를 긴장감에 답답해하며 수수께끼를 풀듯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아야 했다. ‘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후에 안 사실이지만 이 그림은 초현실주의로 입지를 굳히게 해준 달리의 대표적 작품으로 시간에 대한 상징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었다. 시간은 고정된 것이 아닌 상대적이라는 것을 표현하기위해 더운 날 녹아내리는 치즈처럼 흐물흐물하게 시계를 묘사한 것이었다.☞ (6-2) 해파리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거대한 해파리이다. 굳이 느끼려 애쓰지 않아도 몽환적인 아우라는 강하게 주변을 감싼다. 자세히 보니 한복 몇 점이 잠자리 날개 같은 천 안쪽에 걸려있다. 역시 후에 안내문을 보고 안 사실이지만 이 작품은 일반인과는 다른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동떨어진 인간위의 인간 황후의 방을 묘사하기 위해 공중을 부유하는 듯한 신성한 느낌을 주기위한 장치였던 것이다. 초현실주의는 21세기에도 건제했다.(7-1)(7-2)스페인의 화가이자 도예가인 호안 미로(Joan Miro)는 19세기 초반의 초현실주의의 자극을 받아 더욱더 초현실주의적 환상에 장식성을 가미한, 유머감각이 넘치는 단순한 곡선과 색채에 의한 독자적 화풍을 형성하였다. 그의 초현실주의는 아주 밝은 느낌 감성과 단순화된 형태와 색채의 조화에 의한 율동적인 구성으로 인하여 조형성의 긴밀감을 꾀하였다. (7-1)